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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SY/한국시

조용미 - 바람은 어디에서 생겨나는가

바람은 어디에서 생겨나는가


- 조용미


태풍이 올라오고 있다

나의 내면이 고요할 때
바람은 어디에 있었나

생나무 가지가 허옇게 부러진다
버즘나무 널따란 잎사귀들이 마구 떨어져 날린다
개태사 앞 향나무는 뿌리째 뽑혀 쓰러졌다
마당에 기왓장이 나뒹군다

바람은 무엇이며
어디에서 생겨나는가

키 큰 소나무들이 마구 쏟아져 들어온다
바람의 방향을 알 수 없는 나무들조차
내게로 몰려오고 있다

이때 폭풍은 나무의 편이다
나무들은 폭풍의 힘을 빌려 내게로
침입하려 하고 있다

속이 울렁인다 저 나무들의 혼이 들어오면
나는 무엇이 되는 걸까

머리칼에 바람이 갈가리 찢긴다
바람은
내 머리카락 사이에서 나와
약한 나무들의 혼을 찾아 멀리 달려가고 있다

숲이 심장처럼 펄떡이고 있다

*

"나의 내면이 고요할 때
바람은 어디에 있었나"

한때나마 내가 문학도였을 때, 나는 굳이 안 되는 시를 억지로 써보려고 고통스럽게 머리를 쥐어짤 때가 있었다. 몇 편의 시를 써서 선배에게 보이고나니 선배는 나에게 한 마디로 퉁박을 주었다. "시란 산문과 달리 폭발이 있어야 하는데, 너의 시는 안타깝게도 폭발이 없어." 나에게 그런 충고를 해준 선배는 잘 나가는 논술 선생이 되어 한 해 수억씩 벌어들인다.

조용미 시인의 "바람은 어디에서 생겨나는가"는 시의 초반부에 이미 대규모 폭발을 일으킨다. '나의 내면이 고요할 때/ 바람은 어디에 있었나' 폭발해버린 시는 사정한 남성의 성기처럼 급격하게 혹은 절정에 오른 여성의 그것처럼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마음속으로 사위어들기 마련인데, 이 시는 폭발 뒤 폭발의 정경들을 묘사한다. 사정한 뒤에 애무를 시작한 셈이다.

하지만 시인은 끝끝내 바람의 진원지를 말하지 않는다. 다만 그 바람이 폭발하는 광경들을 보여줌으로써 그것을 상상하고 짐작하게 만들 뿐이다. 나무들조차 바람의 편을 들어 내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려는 그 순간을... 아찔한 후폭풍에 휩쓸려 그 나무 아래에서 숨이 멎을 것 같다. 나의 내면이 고요할 때 그대는 어디에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