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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만화/애니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전7권)- 미야자키 하야오 | 학산문화사(2010)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전7권)- 미야자키 하야오 | 학산문화사(2010)


미야자키 하야오(宮埼駿)를 이해하기 위한 핵심 텍스트

- 그러나 결코 만만치 않은....

미야자키 하야오(宮埼駿), 만약 그가 일본인이 아니라면 최소한 양국의 역사적 연원을 거슬러 오르는, 한 작가에 대해 갖게 되는 이미지와 비판들에 대해 몇 차례의 필터링을 거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일본에 관해서만큼은 무엇이든 자유롭지 못한 우리나라에서 상대적이라고는 하더라도 자유로운 편에 속한다. 그의 작품들은 일본 아니메에 대한 선입견들 - 폭력, 섹스, 왜색풍 - 로부터 비교적 너그러운 대접을 받으며 국내에선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들만이 누릴 수 있었던 혜택들 - 청소년의 정서 순화에 유익하다거나, 어린이들도 함께 볼 수 있을 만큼 순화된 스토리란 인상 - 을 함께 누리는 거의 유일한 애니메이션 작가이다.

 

나름대로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을 보았고, 궁리해봤지만 다카하다 이사오에 대해 내가 내린 단순하지만 명쾌한 결론과 달리 그에 대해서만큼은 쉽게 결론을 지을 수 없었다. 다카하다 이사오에 대해 내가 내린 단순 명쾌한 결론은 궁극적으로 "좋은 사람"이란 평이었다. 그에 비해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은 외부로 표출되는 일본적인 색채는 초기작들의 경우 약한 편이지만 다카하다 이사오의 일본이 소재나 배경적인 측면인데 비해 하야오의 작품에 드러나는 일본적인 풍은 세계관 자체의 문제로 보인다. 나는 미야자키 하야오에 대한 평가를 그의 유일한 만화 작품인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읽기 전엔 내릴 수 없다고 잠정 결론을 내렸었다. 그 까닭은 미야자키 하야오 자신의 난해함에 기인하는 것도 있지만, 나 자신이 인간이 배제된 세상에 대해서까지 상상을 확장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그의 세계관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평가를 받기 때문인데, 애니메이션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는 그가 손수 대본을 만들고, 그렸다는 점과 런닝 타임이란 시간적 한계 등으로 한 작가의 세계관을 담아내기 어렵다는 장르적 한계를 지닌 영상물에 비해 만화가 작가의 세계관이 드러내는데 좀더 적합하기 때문이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동명이고 등장인물 등 여러 면에서 겹치지만 별도의 텍스트로 생각해야 할 만큼 다른 분위기,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생명을 조작해낼 만큼 높은 물질문명을 쌓아올린 인류는 "불의 7일간"이란 대재앙(전쟁)을  초래해 자멸하고 말았다. 간신히 살아남은 인류는 '부해'라는 인간에게 치명적인 독소를 뿜어내는 자연과 거대해진 곤충류의 습격 속에서 싸우며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바람계곡” 사람들도 그런 인류의 생존자들 가운데 하나였고, 이곳의 왕녀 나우시카는 모든 이들이 두려워하는 곤충들과도 교감을 나눌 수 있는 특이한 감성을 지닌 소녀였다. 이야기는 그런 나우시카가 ‘불의 7일간’을 초래한 거신병을 부활시키려는 음모에 맞서 싸우며 인류 복원의 비밀에 접근해가기까지의 과정을 다룬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여러 면에서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세계를 구축하는 원형질적인 작품으로 평가받는데, 그런 만큼 여러 면에서 이전의 애니메이션 작품들이 다루는 것보다 복잡한 스토리 구조를 갖추고 있다. 가장 큰 차이점은 애니메이션 작품들 속에서의 해피엔딩이나 소박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여전한 것은 자연으로 상징되는 비합리적인 세계관, 감성, 직관을 갖춘 주인공(나우시카)와 과학문명으로 상징되는 합리적 세계관, 이성을 갖춘 대립항(크샤나)의 존재이다.

 

나우시카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모든 주인공(특히, 여주인공)의 원형이란 평가를 받는다. 구원의 상징을 여성에서 찾는 것을 두고 여성주의(페미니즘)적 입장에서 보자면 루이 아라공의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식으로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은 안타고니스트 역을 맡는 여성(크샤나)조차 이해받을 수 있는 존재로 그려진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애니메이션이 상대적으로 몇몇 주인공에 집중하여 주변부 인물들을 단순화시키는데 비해 복잡한 인간군상을 솜씨 있게 그려내고 있다.

 

내가 애초에 미야자키 하야오에 대해 결론을 짓지 못한 문제는 이 작품을 읽은 뒤에도 여전히 의문점으로 남았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나의 세계관과 미야자키 하야오의 세계관이 겹치고 헤어지는 부분에 의한 것이다. “인간이 배제된 세상”을 어떻게 상상할 것인가? 그것을 긍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이 작품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그저 스토리만 따라가더라도 충분히 재미있다. 그러나 이 작품이 묻고 있는 것은 동양철학의 사유체계와 서양철학의 사유체계가 각기 다른 형태로 발전시킨 질서이기 때문이다.

 

동양 철학에서 최고의 진리 체계는 자연(自然)이며 자연은 존재의 이유를 묻지 않는다. 즉, 인간의 생존 혹은 멸종의 문제는 자연적인 생과사의 순환이란 점에선(동양적인 철학체계 안에서 인간의 죽음은 자연의 질서로 복귀하는 것인데 비해 서양의 죽음은 인간적인 것이 아니라 신적인 질문 속에 포섭된다) 자연스러운 귀결일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생명은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또한 자연스러운 선택이 아닐까? 하야오는 치열하게 질문했으나 끝내 답을 들려주지 않았다. 인간은 수천수십억의 다른 생명체들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지구상에 살아남을 가치가 있는가? 나는 하야오에 대한 결론을 아직도 내리지 못하고 있다.

* 머지 않은 장래에 그에 대해 긴 글을 쓸 날이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