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기르다 - 다니구치 지로 지음 | 박숙경 옮김 | 청년사(2005)
홀거 하이데에 대한 세미나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온 몸이 파김치처럼 피곤에 전 느낌이었다. 아내도 마감 중이라 계속 늦는데 오늘은 아예 집에 못 들어온다고 했다. 소파에 보니 낯선 책 한 권이 놓여 있었다. 다니구치 지로의 만화책 "개를 기르다"였다. 제37회 쇼가쿠칸 만화상 심사위원상 특별상 수상작이란 표식과 함께 "청년사 작가주의 01"란 글이 표지에 있었다. "너를 지켜보고 있자니 그저 눈물이 흐른다" 카피 내용은 그랬다. 첫번째 든 생각은 '청년사에서 이젠 만화도 내는군' 이란 것이었다. 80년대 사회과학 전문 출판사로 출발한 여러 출판사들이 90년대 들어 일련의 자구책으로 문학에서 아동문학으로 분야를 넓혀가는 혹은 외도하는 광경을 많이 보아왔으므로 청년사에서 만화를 낸다는 것이 별로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인데 아직까지는 이런 일들이 꼭 눈에 밟힌다. 길들여진 감각이란 그래서 무서운 거다. 옮긴이를 보니 이름이 낯이 익다. 박숙경이다. 겨레아동문학연구회의 그 박숙경. 일면식도 있는 터라 일단 반갑다.
다니구치 지로의 만화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미 국내에는 그의 작품들이 꽤 여러 종 번역되어 있는데, 다들 평이 좋은 편이다. 그중에서도 애니북스에서 출간한 "아버지"는 2001년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에서 상도 여럿 받았고 다니구치 지로를 세계적으로 널리 알린 대표작 중 하나다. 이외에도 "열네살", "느티나무 선물" 같은 작품들이 국내에 이미 출간되어 있다. 그의 그림투와 이야기를 끌어가는 솜씨는 정갈하다. 나는 정갈하단 표현에서 나물을 담아낸 접시 양 귀퉁이를 행주로 스윽 닦아낸 듯한 그런 느낌이 들어 자주 사용하지 않는 편인데, 다니구치 지로의 작품에 대해 쓴 정갈하다는 표현은 그런 인위적인 정갈함이 아닌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느낌의 정갈함이다. 그림체에서부터 내러티브, 캐릭터 구성에 이르는 전과정이 과장되지 않고, 소박하면서도 정제된 느낌을 전해준다. 거기에 일본인 특유의 섬세함이 느껴져서 좋았다.
"개를 기르다"에는 표제작인 "개를 기르다"를 포함해 모두 다섯 편의 단편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그의 나이 1947년생이니까. 우리 식으로 치자면 전후 베이비붐 세대에 속한다. 경제적으로 일본이 아직 가난함을 미처 벗어나기 전에 태어나 한창 개발과 성장의 지름길을 달려가던 50년대 후반이 그의 유년시절에 해당할 것이다. 자고 일어나면 아이들의 놀이터였던 공터에 건물이 들어서고, 모두가 성장과 개인소득 향상으로 정신없었을 그런 어린 시절을 다니구치 지로는 보냈다. 그래서일까. 그의 작품에선 상실한 유년, 성장의 이면에서 일본이 잃어버린 가치들에 대한 묘한 동경이 느껴진다. 그 중에서 이 작품집의 표제작이기도 한 "개를 기르다"는 특히 인상적이다.
작가후기에서 지로는 "개를 기른다는 것, 그것은 제가 어렸을 때부터 꿈꾸던 일이었습니다. 개와 함께 들판이나 산에서 함께 노는 광경을 떠올리며 즐거워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동물을 길러보니 '살아있는 것을 기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알았습니다. 그것은 '동물을 기른다'기 보다 '동물과 함께 산다'는 거이었습니다."라고 말한다. 나는 환경이란 말이 그 말을 운동차원에서 사용하는 이들의 의도보다 좋지 않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환경(環境, environment)란 말은 한자어든, 영어든 그 어원이든 실제적인 의미이든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바깥의 세계(外界)를 의미하는 말이다. 환경이란 말 자체에서 이미 인간과 그이외의 것이란 구분과 상대화의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같은 말이라도 환경이란 말보다는 생태계란 표현이 운동적인 차원에선 좀더 적합하다. 최근에 나는 영성(靈性)이란 말의 의미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게 된다. 기독교적 영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칼 융이나 노자적인, 불교적인, 신화적인 의미에서의 영성.
홀거 하이데에 대한 세미나 과정에서 나는 하이데가 말하는 영성은 융이 이야기하는 영성과 흡사한 측면이 있다고 주장했고, 그것은 민속학에서 말하는, 그리고 신화의 세계에서 말하는 영성과도 의미가 깊다고 이야기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영성주의는 세상 만물이 하나의 거대한 우주를 이루고 있으며, 우리는 그들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는 말이다. (혹시 "고릴라 이스마엘"을 읽은 이라면 내가 하고자 하는 이 말을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시 말해 한 인간이 한 인간으로 존재하는 것은 동시에 우주 만물과 깊은 연관을 맺는 행위이며, 이 과정을 통해서만 한 인간으로서(동시에 자연의 일부로서)의 주체성을 획득할 수 있다는 말이다. 영성의 회복은 인간 이성의 우월함에서 내려와 자신보다 약한 존재와의 관계를 새롭게 맺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말로 하자면 연대(solidarity)의 마음이기도 하다.
이런 영성의 마음을 노동의 차원으로 생각해볼 때 현재 우리 노동운동이 처해있는 상황은 노동의 영성을 회복해야만 치유될 수 있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은 괜히 영지주의(그노시즘)적 기독교인이라는 오해를 받게 되기 십상이므로 약간의 부연을 하자면, 지금 한국의 노동운동이 당면한 위기는 노동의 영성을 회복하지 않고서는 치유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정규직은 비정규직에 대해, 남성은 여성에 대해, 한국 노동자는 외국인 정주 노동자들에 대해 연대의 마음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이 부분에 대한 좀더 자세한 내용은 나중에 홀거 하이데의 "노동사회에서 벗어나기"에서 이야기해보도록 하자.) 우리들은 종종 주말이면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먹는다. 그러나 우리가 만나는 자연은 자연 그대로의 자연이 아닌 문명화된 자연에 불과하다. 인간의 문명이 만든 자동차를 타고, 문명의 도로를 따라 문명화된 자연(캐러비안 베이만이 아닌 국립공원, 도립공원도)을 잠시 맛보고 돌아오는 것에 그친다. 맨얼굴의 자연을 접할 수 없다.
지로의 단편 "개를 기르다"는 작가가 실제로 15년간 길러온 개 '탐'이 죽음에 이르는 마지막 몇 개월을 다룬다. 시바와 테리어 종이 섞인 개 '탐'은 생후 몇 개월만에 지로 내외를 만나 성장한다. 탐은 주인 부부를 이끌고 신나게 산책을 다닌다(편의상 주인공을 작가의 이름으로 하겠다). 그러나 어느새 인간보다 빨리 늙어버린 탐은 더이상 산책의 즐거움을 지로 내외에게 선사하지 못한다. 지로는 탐의 부족해진 앞다리 힘을 대신해 탐의 몸을 지탱할 수 있도록 끈을 사오고, 탐의 힘없는 앞다리 근육을 대신해 자신의 팔힘으로 탐의 상반신을 지탱하여 산책을 시킨다. 자기 자리에 똥오줌을 누는 일을 극도로 싫어하던 탐은 더이상 변을 보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날 힘도 잃어간다.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자리에 볼 일을 본 탐. 끙끙대는 탐을 보며 지로는 늙어감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담담하게 탐의 마지막 길을 함께 해준다. 탐이 떠난 빈 자리엔 어쩔 수 없이 떠맡게 된 고양이 보루(일본어로 '걸레'란 뜻)가 차지하게 된다. 주인집에 아기가 태어나자 버림받은 페르시안 고양이 보루. 보루는 처음엔 지로 내외를 믿지 못하고 경계하는 낯빛을 보이지만 어느샌가 지로 내외와 친해지고 고양이 새끼 세 마리를 낳는다. 하지만 문명의 애완 동물이 된 보루는 새끼의 탯줄을 끊어주는 법을 모른다. 하는 수 없이 수의사를 지시를 받아 일일이 탯줄을 끊어주고, 애써 젖꼭지를 찾아주는 지로.
애완동물은 우리 인간에게 몸을 맡기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다. 그것은 아주 작은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그들은 우리가 잊어버렸던 '순수'를 아주 살짝 보여주곤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맘대로 굴어도 허락해준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을 평화롭게 해준다. - 70쪽
인간이 제 아무리 만물의 영장으로 태어나 자랐다 할지라도 우리는 자연의 일부이며 자연과 함께 살아가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우리는 자연, 생태계를 파괴할 수 있을 만한 힘을 얻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 힘을 행사하고 있다. 이제 자연은 우리 인간의 보호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일 수도, 손에 잡히지 않는 거대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자연을 통해서만 우리 본래의 순수를 다시 찾을 수 있다. 우리가 맘대로 굴어도 모든 것을 평화롭게 감당해줄 자연은 이제 더이상 없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그들을 돌보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이 우리가 자연과 또, 다른 생명체와 맺는 새로운 관계 설정이어야 한다. (이 단편집에 수록된 마지막 작품인 "약속의 땅"에서 작가는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에서 만난 하얀 표범의 이야기를 통해서 문명화된 인간과 영성으로서의 자연에 문명으로서의 인간이 가하는 폭력과 자연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풍요를 동시에 맛볼 수 있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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