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대량살상무기(Weapons of Mass Destruction)는 과연 무엇인가?
누군가에게 공격적인 사람은 마음속의 공포에 의지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마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인 <스타워즈>에서 다쓰베이더가 그러했던 것처럼 미국은 오래 전부터 자국의 국민들에게 여러 형태의 공포를 확산시켜 왔다. 정치적으로는 "도미노이론"을 통해 베트남의 공산화는 인도차이나 반도 전체의 공산화를 의미했고, 그것은 다시 동남아 전체의 공산화로, 쿠바와 니카라과의 공산화는 결국 중남미 전체의 공산화를 통해 다시 미국 남부의 공산화로 이어진다는 식의 공포를 조장했다.
그들 자신은 핵을 통해 아시아와 전세계에 핵 공포를 조장했지만, 소련의 핵실험에 놀라 수많은 자국민을 스파이로 의심하여 공직에서 축출하거나 국외로 망명 혹은 추방 되도록 만드는 "마녀사냥"을 자행했다. 그것이 바로 "매카시즘"이었다.
미국 건국이래 역사상 지상군에 의해 본토가 공격당했던 유일한 사건은 멕시코 혁명 때 일부 멕시코 군이 국경선을 넘었던 일이 유일하다. 그런 나라에서 9.11테러를 당했으니 그들의 공포란 가히 하늘을 찌르고도 남음이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미국이란 나라의 국가시스템을 보라. 그들의 군산복합체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알고 넘치는 이야기이다. 그들 군수자본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언론, 학술 등 미국의 거의 전 분야를 장악하고 있다. 미국의 군수자본과 경쟁하며 대적할 수 있는 미국 내 유일한 세력은 미국의 금융자본이 사실상 거의 유일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을 공포에 사로잡히도록 만든 것은 물론 "테러"이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공포를 조장하는 미국 정부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공포의 실체로 등장한 것이 바로 "대량살상무기"이다. "대량살상무기(Weapons of Mass Destruction)" 테러 지원국 혹은 테러국가 이른바 "불량국가"들이 대량살상무기를 통해 미국의 안전과 세계 평화를 위협하고 있으므로, 미국은 세계의 경찰로서, 전지구적 책임(global responsibility)의 담지자로서 이를 사전에 예방한다는 차원에서 이들 불량국가들을 손봐주어야 한다는 것이 바로 "예방전쟁(preventive war)"이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와 예방전쟁(preventive war)
미국이 이라크 전쟁을 벌이면서 주장하는 논리와 명분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예방전쟁"이고, 다른 하나는 "대량살상무기" 파괴이다. 나는 이 두 가지 명분을 떠올리면서 동시에 두 편 혹은 그 이상의 할리우드 영화들이 떠올랐다. 하나는 <마이너리티 리포트(Minority Report)>이고, 다른 하나는 <에볼라 바이러스>다.
지난 2002년 여름 대목을 겨냥해 개봉된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스필버그 감독, 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였다. 서기 2050년대 미래 사회에서 검거 된 용의자를 판결하는 평의회에서의 세 명의 평결관들 중 이견은 제시한 한 명의 의견 즉, 소수의 의견을 의미하며 그 판결이 올바른 판단이었을 경우에 그 사건을 지칭하는 용어가 바로 "마이너리티 리포트"이다. 몇몇 초능력자들에 의해 미래를 예견할 수 있는 기술력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살인 범죄를 예측해 아직 범죄를 일으키지 않는 사람을 추적해 체포한다. 영화 속 주인공 존 앤더톤(톰 크루즈)은 그런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특수 경찰이다. 그런데 어느 날, 바로 자신이 그 범죄 예상자로 몰려 옛 동료들로부터 추적 당하며 겪는 우여곡절을 다룬 영화이다.
제레미 벤담(Jeremy Bentham)이 구상해낸 근대적 감옥의 이상형인 '파놉티콘(Panopticon)'과 마찬가지로 미래의 범죄 감시 시스템인 '프리 크라임 시스템'은 '미래에 범죄를 일으킬' 범죄자들에 대한 완벽한 감시와 통제를 꿈꾼다. 조지 오웰의 상상에 의지하지 않더라도 오늘날 고속도로변에 설치된 감시 카메라 역시 이제 막 벌어질 교통 규칙 위반에 대한 처벌과 감시를 위한 것이란 점에서는 '프리 크라임 시스템'이 의미하는 바와 그리 다르지 않다. 앤더톤은 자신이 완벽하다고 과신하던 시스템에 의해 자신이 예비살인자로 지목 당한 순간부터 자신의 생존을 위해 자신의 믿음을 부인해야 하는 이율배반에 빠지게 된다. 물론 영화 속 초능력자들의 예지 그 자체는 틀린 것이 아니었다. 그것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조작하려 했던 인물은 따로 있었으니 말이다.
'예방전쟁'이란 "미래에 일어날 것으로 확실시되는 사건에 대해 사전 예방 조처를 통해 인신을 구속한다"는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주장을 국가간 버전으로 확장시킨 것이다. 많은 안보론자들은 사실상 허구에 가까운 진실을 유포함으로써 이 허구를 그럴듯한 가상현실로 탈바꿈시킨다. 이런 "예방전쟁"의 지지자들은 다음과 같은 역사에서 그 정당성과 명분을 찾는다. 바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에 영국 네빌 체임벌린(Neville Chamberlain) 수상이 독일의 히틀러를 만나 뮌헨에서 여러 가지 사안들을 양보하지 않았더라면 제2차 세계대전이란 끔찍한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역사학자들의 연구란 기본적으로 이미 일어났었던 일들을 연구하는 것이다. 역사에서 만약이란 것이 없다고 말하는 까닭도 분명히 거기에 있을 것이다. 그들은 그런 명분을 통해 평화를 외치는 함성을 덮어버리려 한다. 그러나 그것은 진실일까.
전쟁이 발발하는 원인을 양보와 타협에서 찾고자 하는 전쟁불사론(안보주의자)자들의 논리는 그 자체로 이미 틀린 것이다. 체임벌린의 협상이 전쟁의 발발 시점을 뒤로 늦추었다는 것은 역사적 진실이고, 바로 그런 협상 때문에 나치가 전유럽을 향해 전쟁의 불씨를 당긴 것이라는 것은 가정에 불과하다. 그런데 전쟁불사론자들은 역사를 대신해 가정을 도입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그들은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와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가정(공포)을 이용(대량살상무기에 대한 공포를 조작)해 예방전쟁을 일으키고자 한다. 프러시아의 재상이었던 비스마르크는 예방전쟁을“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살”이라고 불렀다.
이스라엘은 걸프전 종전 직후 자신들이 걸프전 발발 전에 이라크의 핵시설 공습(예방전쟁)한 덕에 이라크가 핵무기를 개발하지 못하여 걸프전 당시 미군 및 다국적군에게 핵 공격을 가하지 못했다고 떠벌렸다. 오늘날까지도 NPT(핵확산금지조약)에 가입하지 않았고, 그들 자신은 400여기의 핵탄두를 가지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스라엘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떠드는 것이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이다. 그리고 현재 이라크를 공격 중인 부시 대통령의 정책인 부시 독트린의 기본 개념 역시 같은 것이다.“대량살상무기가 이전되고, 조립되며, 모이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미국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선제공격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1953년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은 '예방전쟁'을 히틀러의 발명품이라고 말했다. 아이젠하워는 "솔직히 말하자면, 이 비슷한 것(예방전쟁과 유사한 것)을 누군가 제안한다 해도, 진지하게 그것을 고려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지만 오늘날 미국은 그것을 정치적인 해결방안으로 진지하게 구사하고 있는 중이다. 아이젠하워의 말을 빌자면 부시는 히틀러의 발명품을 실천에 옮긴 셈이다.
<에볼라 바이러스>(Ebola Virus)와 대량살상무기(Weapons of Mass Destruction)
미국이 이번 이라크 침략전쟁의 대의 명분으로 삼고 있는 것은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개발 보유를 금지하는 국제사회의 원칙을 어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량살상무기란 무엇인가? 그것은 미국 사회에 내면화되기에 이른 '테러'란 공포를 실현에 옮기는 매개이다. 흔히 우리가 ABC무기라 부르는 핵(Atomic)무기, 생화학(Bio&Chemical)무기, 탄도 미사일 등을 일컫는 말이다. 미국 사회가 이런 대량살상무기에 대해 얼마나 두려워하고 있는지를 보기 위해서는 저녁 밥상을 물리고 잠시만 뉴스를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내외신을 종합해 미국과 관련한 뉴스를 듣노라면 시도 때도 없이 들려오는 것이 바로 이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전임 클린턴 대통령에 이어 현 부시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늘상 입에 달고 있으며 미국의 언론도 끊임없이 주절거린다.
이와 관련해 미국의 진보성향 잡지인 [The New Republic] 9월 26일자는 잡지의 편집인인 그렉 이스터브룩(Gregg Easterbrook)이 "The Meaninglessness of WMD"라는 글을 실었다. 그에 따르면 [뉴욕타임스]란 신문만 하더라도 8월 한달 동안만 무려 250건의 기사에서 '대량살상무기'란 단어를 사용했다고 한다. 이 정도면 테러 공포에 떠는 미국인 아니라 이들 뉴스를 받아 싣는 다른 나라 국민들까지도 모두 세뇌되고 남을 만한 것이다. 세상이 온통 위험천만(dangerous)의 끔찍(horrible)하고, 부도덕(immoral)하며 치명적인(mortal) 대량살상무기로 가득하다고 믿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할리우드 영화들까지 앞다투어 이런 무기들의 공포를 조장한다. <아웃브레이크>, <에볼라 바이러스> 등의 영화들이 그렇다.
그런데 이스터브룩은 하버드 대학의 생물학자 Matthew Meselson이 10여년 전에 발표한 논문을 이용해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공포는 정도 이상으로 과장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논문에 따르면 "사린 가스로 인명을 살상하기 위해서는 완벽한 조건이 필요한데 먼저 바람이 불지 않아야 하고 햇빛이 없어야 하며 - 비행기를 이용한다면 - 극단적인 저공 비행을 하면서 사린을 퍼뜨려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은 존재하기 어렵다. 기후 조건부터가 그렇다. 또한 낮게 나는 비행기는 요격 대상이어서 테러리스트의 비행기는 대부분 수백 피트 상공에서 뿌려야 하는데 그러면 사린은 공중에 허무하게 흩날려 테러 행위가 무의미해진다는 것이다. 또 1993년 'Office of Technology Assesment'의 연구에 따르면 완벽하게 반입된 사린가스 1톤은 8천명을 죽이겠지만 미풍만 불어도 희생자가 10% 정도로 준다"고 한다.
실제로 지난 1995년 밀폐된 지하 공간인 도쿄 지하철역에서 '사린가스'가 살포되었지만 이 사건으로 숨진 이들은 대구 지하철 참사와는 비교도 될 수 없는 수치인 12명에 불과했다. 물론 화학무기가 위험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량 살상 무기'라고 하는 화학무기 보다 지하철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아 일어난 사건이 더욱 위험하다는 것이다.
독가스를 비롯한 화학무기는 안전수칙을 제대로 교육하지 않는 지하철 공사보다, 과잉근로에 따른 피곤함보다 더 위험한가?
생물학 무기 탄저균에 대한 공포는 또 어떠한가? 영화 속의 생물학 무기는 인류 전체를 몰살시킬 수도 있을 만큼 강력하게 그려진다. 하지만 이 역시 이스터브룩의 주장에 의하면 "1971년 구 소련의 카자흐스탄의 한 지역 - 의료 수준이 상당히 낮아 평균 수명이 40세에 불과한 오지 - 에 인공 배양된 천연두 균이 퍼졌지만 사망자는 3명에 불과했고, 1979년에 구 소련의 생화학 무기 시설에 사고가 발생해 상당한 양의 탄저균이 공기 중에 살포되었지만 68명이 사망하는 데서 재앙은 멈췄다. 1989년에는 미국에서는 정부 기관으로 에볼라 바이러스에 감염된 원숭이들을 나르던 인부들은 그 사실을 까맣게 모른 채 며칠 동안 가족과 함께 지냈지만 단 한 명의 에볼라 감염자도 발생"하지 않았다.
1984년 12월 3일 인도 보팔시에 공장을 두고 있던 다국적 기업 유니언 카바이드 사의 비료공장에서 다량의 메틸 이소시안염(M.I.C:Methyliso-cyanate) 40여 톤이 누출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이 사고로 하룻밤 사이에 2천여 명의 보팔 시민이 사망했고, 60만 명의 부상자가 나왔으며 이중 5만 명은 영구적인 장애자가 되었다. 사고 원인은 저장탱크 속의 압력이 높아지면서 밸브가 파열된 것으로 밝혀졌는데 유니언 카바이드 사는 이 사고를 단지 운전원의 실수로 인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핵심적인 원인은 대표적 공해 기업인 유니언 카비이드사가 좀더 많은 이익을 위해 밸브 파열에 대비한 안전장치를 하지 않았고, 안전관리에 소홀했으며 사건 발생 직후 조기경보체제를 작동하지 않아 이토록 많은 희생자가 난 것이었다. 유니언 카바이드사는 형사적인 책임을 지지 않았다.
과연 생화학 무기는 다국적기업의 무책임하고 부도덕한 이익 창출 욕구보다 위험하고 부도덕한가?
물론 우리는 핵무기나 생화학무기, 이를 실어 나를 수 있는 탄도미사일이 안전하고 권장할 만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라크와 북한이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는 것에 반대한다. 그리고 대량살상무기가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길 바란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우리를 둘러싼 진짜 대량살상무기가 무엇인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은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를 예견하는 신(神)의 지위에 올라 예방전쟁을 수행하고, 존재하지도 않는 대량살상무기를, 실제로 존재한다면 그 모든 원료를 판매한 이들이 바로 자신들이기 때문에 그렇게 확신하고 있겠지만, 자국의 국민들을 공포에 질리게 만들어 죄 없는 이라크 국민들을 대량학살하고 있다.
미국은 이번 이라크침략전쟁의 명분으로 대량살상무기의 폐기를 주장하고, 이 와중에 '이라크의 우라늄 수입 문건'과 '화학무기공장'을 발견했다고 CNN과 폭스TV, BBC등을 통해 주장했다. 그런데 지난 25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고위 관계자는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이라크 침공의 한 명분으로 내세운 "이라크가 니제르(아프리카 중서부의 공화국)에서 우라늄 5백 톤을 수입했다"는 증거 문건은 "IAEA가 조사한 결과 위조로 판명났다"고 밝혔고, 화학공장 역시 사실 무근으로 밝혀졌다.
진짜 대량살상무기(Weapons of Mass Destruction)는 과연 무엇인가?
카타르의 알 자지라 방송은 25일 새벽 이라크 남부 바스라시 외곽에서 치열한 지상전이 전개되고 있는 가운데 미.영군 전폭기들이 바스라 상공에 집속탄을 투하했다고 보도했다. 미 항공모함 키티호크 F-18 전투기가 25일 이라크 카발라에 집속탄을 투하한 것으로 해군당국이 밝혔다. 집속탄(cluster bomb)은 모형(母型)폭탄 속에 들어있는 2백47개의 소형폭탄이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삽시간에 축구장보다 넓은 면적을 초토화시킬 수 있는 대표적 대량살상무기다. 또 이들 소형폭탄은 땅에 떨어지면서 불발탄이 될 확률이 높아 지뢰 같은 위험성을 갖고 있어 인권단체들이 사용을 강력하게 비판해 왔던 것이다.
국제인권단체인 인권감시협회(HRW)에 따르면 집속탄은 미국이 지난해 아프가니스탄전때 대량으로 사용해 어린이들을 포함해 수많은 사상자를 냈으며 지금도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지뢰역할을 하는 불발 집속탄으로 인명피해가 계속되고 있다. HRW가 아프가니스탄 현지조사를 토대로 작성한 65쪽 짜리 보고서에 따르면 "미군은 아프가니스탄에서 1천2백28개의 집속탄을 사용했으며 이는 소형폭탄 24만8천56개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알 자지라 방송은 이미 미-영군이 9천7백kg의 초대형 폭탄인 MOAB(모든 폭탄의 어머니)를 바그다드에 투하한 데 이어, 인체에 치명적인 후유증을 초래하는 네이팜탄과 열화우라늄탄도 사용했다고 보도했다. 지난 22일에는 호주의 시드니 모닝 헤럴드 신문의 종군기자가 네이팜탄을 맞고 산산조각나고 불탄 이라크군 병사들의 시신을 목격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그런데 미국은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혐의로 선전포고 없는 경제봉쇄조처를 통해 이미 100만 명 이상의 이라크인을 죽였다.
진짜 우리를 공포에 질리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진짜 대량살상무기는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이유 없는 증오와 그것이 현실정치(Realpolitik)라고 믿는 무관심, 자본주의 체제의 야만성, 즉 인간의 삶을 노예화하고 제3세계 민중들을 착취하면서 풍요를 축적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자본주의의 제국주의적 패권체제와 이에 편승하여 이득을 얻으려는 비겁함이다. <2003-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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