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역사학회에서 주최하는 제46회 역사학대회를 참관하러 서울대에 갔다가 그 인근의 모 학교에서 국어 선생님으로 있는 친구 녀석을 만나 식사를 같이 했습니다. 수업을 들어가야 하므로 두 사람이 오래도록 같이 이야기를 하지는 못했지만 요새 교육계의 주요 현안 중 하나인 교육행정정보화시스템(NEIS)문제와 윤덕홍 교육부총리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친구는 자신이 속해있는 학교에서 어떤 경로를 거쳐 NEIS가 도입되었는지, 윤덕홍 부총리에 대해 자신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제게 이야기해주었습니다. 그가 속한 학교에서 NEIS는 그야말로 어느 날 갑자기 공문 한 장이 날아와 이런 시스템을 도입하니까, 각급 학교는 이에 준비하라고 해서 준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제가 교육부총리의 계속되는 말바꾸기가 문제가 있다고 하자, 지금은 누가 그 자리에 앉아도 욕을 먹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하더군요. 솔직히 저 역시 윤덕홍 교육부총리를 보면서 꽤 괜찮은 분인데 안 되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윤덕홍 부총리가 어떤 사람이었던가요? 그는 이화여고에서 8년간 교편을 잡은 뒤 대구로 내려가 영남전문대 교수를 거쳐 1989년부터 대구대 일반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해온 어찌보면 지극히 평범한 약력의 소유자였지요. 그런 그가 대내외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1990년대 중반 재단 비리 문제로 촉발된 대구대학교 분규 사태를 해결한 뒤 1995년 직선 총장으로 선출됐으나 재단이 기획처장 시절 캠퍼스 매입 과정에서의 행정처리 잘못을 들어 교육부 감사를 요청하는 바람에 해임됐다가 4개월 만에 복직되는 우여곡절을 겪으면서였습니다. 그는 2000년 총장으로 선출된 뒤로도 지방대 홀대정책을 펴는 교육부를 상대로 자주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그런 총장이었지요. 그런 그가 장관들의 무덤이라는 교육부 장관에 임명되면서 복마전(伏魔殿)이란 비판을 듣던 교육부 개혁이 이번에는 가능할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던 이들도 있고, 적임이라는 평가도 있었습니다.
윤 부총리는 대학교수생활의 대부분을 재단의 전횡과 비리 문제로 점철된 분규 사태를 해결하고 정상화하는데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오랜 시간을 사학 재단의 비리와 분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분규가 발생했을 때 학생들과 밤을 새워 토론하면서 현장에서 비리재단을 몰아내는 데 앞장선 사학민주화운동의 선봉장으로 평가받았습니다. 그런 그가 교육부 장관이 되었을 때 우리들은 지금의 이런 혼란을 예상하지는 않았겠지요. 그런 윤 장관이 지금 장관 취임 채 100일도 안 되어서 각계의 사임 압력을 받고 있습니다. 취임 첫날부터 윤 부총리는 교육정책의 커다란 변화를 예고하는 자신의 마스터플랜을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입시지옥을 양산하고 있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자격고사'로 바꾸는 방안과 국립대인 서울대를 공익법인화하는 문제를 신중히 제고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윤 부총리의 그간 행적으로 볼 때 우리들은 앞으로 새 정부의 교육개혁의 플랜은 '경쟁력 강화'보다는 '균형 발전에 역점을 둔 민주화'에 무게가 실릴 것으로 보았습니다. 인재 양성에 앞서 비뚤어진 교육계의 구태와 부조리를 없애는 것이 먼저라는 것이 그의 평소 지론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현재 그가 처한 입장은 어떠한가요?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출범 100일을 맞이하고 있는 참여정부의 모습과 매우 흡사하게 보입니다. 취임 초기부터 잦은 말바꾸기로 인해 계속되는 윤덕홍 교육부총리의 갈짓자 행보로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에 대한 논란이 끊이질 않습니다. 간략하게 정리만 하더라도 “3월 6일/ NEIS 시행은 원칙적으로 맞는 방향이다. 개인정보 유출 위험 등 문제점은 보완해 나가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 3월 8일/ NEIS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유보해야 할 것 같다. 3월 9일/ NEIS가 생각했던 것만큼 쉽게 정보유출이 될 것 같지 않다. 3월 13일/ NEIS 중단 발언은 교수 개인의 입장을 밝힌 것이며 문제가 있다면 알아보고 보완하겠다는 뜻이다.” 등부터 한국교육노조와 가진 5월 면담에서는 수차례에 걸쳐 “국가인권위원회 결정을 존중, 수용, 따르겠다.”고 말하더니 같은 달 19일에 전교조, 학부모 단체 등과 가진 면담에서는 “인권위 의견을 존중하지만 반드시 따라야하는 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외 5월 26일 국회 답변에서는 “인권위 결정을 존중해 NEIS 3개 영역 시행을 전면 재검토하겠다.”라고 하더니 전교조와 합의 발표를 한 직후에는 “6개월 후 NEIS로 돌아가도록 노력할 것이다.”라고 말했고, 다시 전국교장단 대표들과 28일 가진 면담에서는 “NEIS 전면 재검토는 잠시 중단한다는 것이지 CS로 돌아간다는 의미는 아니다. 6개월 동안 NEIS의 민주적이고 제도적인 운영방안을 만들겠다.” 5월 29일 한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는 “6개월 동안 재검토하면 NEIS 우수성이 입증될 것이다. 결정되면 전교조가 반대해도 NEIS 시행한다.”라고 말하고 6월 1일 “고2 이하는 교무.학사, 진.입학, 보건 3개 영역은 수기로 하되 학교실정에 따라 불가피할 경우 SA, CS, NEIS 등 가능한 방법을 선택해 사용한다.”라고 했습니다. 일일이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옮겨 적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하나도 없을 지경이었으니 그에 따라 일희일비하며 학사행정을 꾸려나가야 하는 일선 학교와 교사들, 학부모들이야 오죽할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NEIS는 무엇이 문제인가?
이와 관련해서 오늘(6월 2일)자 한겨레 신문 사설은 매우 명쾌하게 정리해 두고 있습니다.
네이스반대론자들의 반대이유는 분명하다. 네이스가 위헌이며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찬성론자들은 유용한 제도이며 이미 시스템이 거의 다 구축되었다는 점을 들고 있다. 여기에 이해관계가 다른 교육단체들이 집단적으로 찬성과 반대편으로 나뉘어 실력행사를 하는 가운데 네이스의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처음으로 네이스의 반인권적 요소에 대해 제동을 걸고 이것을 교육부가 받아들이기로 했던 것이다. 네이스 실시여부는 기본적으로 이 제도를 실시하는 것이 누구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 것인가라는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 누구도 분명한 대답을 하지 않고 있다.
초중고 12년의 모든 기록을 모두 수집한다는 것은 사실상 전 국민의 정보가 국가기관에 의해 집적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연히 국민적 동의가 필요한 문제였다. 정보화시대에 개인에 대한 정보가 국가기관에 의해 관리되는 것이 과연 적절한 것인가 그 수준은 어디까지인가 하는데 대한 충분하고도 면밀한 검토가 있었어야 했다.
윤 부총리는 지난 1일 발표한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시행지침에서 예외조항을 통해 고2 이하도 NEIS를 시행할 수 있는 길을 터놓았습니다. 이것은 지난 26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합의한 후 '고2 이하 교무.학사, 보건,진.입학 영역은 NEIS 이전체제로 시행한다'고 발표한 것을 다시 뒤집은 것이 됩니다. 김일환(성균관대 법대 헌법학) 교수는 NEIS가 위헌적인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는 국가인권위의 권고사항과도 합치되는 것이죠. 우리는 불과 몇 년 전 전자주민카드의 도입과 관련된 일련의 논쟁들을 떠올릴 수 있을 겁니다. 현재에도 우리나라는 그 어느 나라보다도 철저한 주민등록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는데, 전자주민카드는 국민 각 개인의 신상정보가 고스란히 국가의 시스템 속에 저장된다는 위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NEIS의 도입 문제가 일부 언론들이 몰아가고 있는 것처럼 특정 집단의 압력에 정부가 굴복한 것이라거나 교육계의 각 집단이 서로 힘겨루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하거나 당연히 시행해야 할 중요한 국가정책을 포기한 것처럼 몰아가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는 김일환 교수의 지적대로 “정치적 타협의 대상도 아니고 정책적 판단 등에 따라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헌법’, 더 정확하게는 ‘국민의 기본권’이란 관점에따라 판단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헌법상 사생활자유에 근거하여 인정되는 정보자기결정권이란 개인정보의 사용과 공개에 대하여 원칙적으로 개인이 스스로 결정할 권리입니다. 그것을 제한하기 위해서는 헌법 제37조 제2항에 따라서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국회가 제정한 “법률”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인데, 교육부 공무원들은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이 재학생들뿐만 아니라 사회에 진출한 지 이미 오래된 1981년 이후 졸업생들까지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유리병편지>를 받는 분들의 상당수가 본인의 허가 없이 NEIS에 자신의 신상정보가 포함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NEIS가 작게는 참여정부의 행정 난맥상 혹은 서투름에 대한 비판거리가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단순히 그렇게만 볼 문제는 아니라는데 있습니다. NEIS문제는 참여정부에게 있어서는 앞으로의 국정을 어떻게 끌고 나갈 것인가를 묻는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국가의 정책은 사회 구성원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각기 다른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지만 사안에 따라서는 향후 사회 구성의 중요한 원칙, 정부의 국정 지표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를 판단할 수 있기 때문에 일부에게는 다소 비판을 받더라도 원칙과 소신을 지켜 밀고 갈 수밖에 없는 것들도 있습니다. NEIS의 경우엔 그 출발점부터 잘못되어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우선 이 정책은 DJ정부의 새만금 문제와 마찬가지로 이전 정권이 시작하기에 앞서 충분한 국민적 합의 없이 시작하고,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가 후임 정부에 가서 문제가 불거져 나오자 이해관계가 걸린 관료집단이 강한 영향력을 발휘해 후임 정부에게 부담을 덮어씌우는 것과 비슷한 양태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NEIS문제만 하더라도 노무현 정부가 시행한 것이 아니라 이전 정부에서 전시행정처럼 추진된 ‘신지식인’ 프로젝트와 비슷한 양상으로 추진되었던 것입니다.
노무현 정부에게 큰 기대를 걸었던 많은 이들(선거에서 그에게 투표를 하지는 않았지만 누구 못지않게 그의 성공을 빌어 마지않았던 저를 포함해서)이 그에게 기대를 건 것은 그가 온 국민의 여망인 정치개혁과 우리 사회 전반의 개혁을 추진하는데 누구보다도 적임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라크 파병 문제, 한미정상회담에서의 모습, 5.18 기념식 시위 이후 그가 쏟아낸 말 등 그의 여러 모습들이 비록 실망스럽기는 하지만 우리들은 참여정부가 출범한지 100일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노무현 정부가 그 본질이 어떠하든 간에 그가 처한 현실은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과 흡사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1970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아옌데는 역사상 최초로 선거에 의해 수립된 사회주의 정권이었습니다(오해마시길 참여정부가 사회주의 정권은 아닙니다). 비록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다고는 하지만 아옌데 정부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 환경은 매우 적대적이었습니다. 칠레는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미국의 영향력 아래 있었고, 기득권세력은 대통령과 의회가 새로운 개혁 정책을 준비하고 추진하는 동안 외화를 해외로 반출하고, 실업률을 높이고, 고의로 파업을 유도하는 등 개혁을 저지하려고 들었지요. 노동자의 파업이 아니라 기업주들의 파업으로 전 산업 부문의 조업이 두 차례나 전면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합니다. 게다가 국가기구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가지고 움직이는 기득권 세력의 일원이 되어있기 때문에 그들의 이해관계에 반하는 명령에는 복종하지 않거나 움직이는 시늉만 할 뿐이었습니다. 그들은 은연중에 정부의 시책에 사보타지를 가하고, 복지부동합니다.
그런 탓에 아옌데 정부는 자신들이 준비했던 개혁 카드를 펼쳐보이지도 못한 채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지금 NEIS 문제로 퇴진 압력을 받고 있는 윤 교육부총리는 교육부 수장으로 입성하기 전에 “핫바지 장관은 되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현실은 그로 하여금 결국 자신이 가졌던 교육 개혁에 대한 마스터플랜을 펼쳐 보이기도 전에 기우뚱하게 만들었습니다. 물론 교육부 직원들이 NEIS의 전적인 책임을 짊어져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사보타지를 가했다거나 복지부동했다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NEIS 도입과 관련해 학부모들의 88%가 이 제도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는 겁니다. NEIS와 같이 학생 각 개인은 물론 이미 졸업해 사회에 진출한 국민 각자의 신상 정보를 국가가 취합해 관리하는 민감한 사안에 대해 학생은 물론, 학부모, 교사들을 소외시킨 체 진행되는 제도가 아무런 무리 없이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믿는다면 개혁은 좌초하고 말 것입니다. 게다가 이 문제를 전교조와 교총의 힘겨루기 양상으로 몰고 가는 것 역시 안 될 말입니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NEIS의 본질과 참여정부 출범의 의미가 무엇이었던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합니다. NEIS의 본래 목적은 ‘교육행정정보화’를 통해 잡무에 시달리는 일선 교사달의 과중한 업무 부담을 덜어주고, 보다 나은 교육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교육권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인권선언 제 26조는 교육에 대한 권리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초등기초단계의 교육은 무료여야 한다. 기술교육과 직업교육은 원하는 누구나 받을 수 있어야 하며, 고등교육은 실력 있는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개방돼야 한다. 교육을 통해 우리는 자기의 인격을 발전시키고 사람의 권리와 자유가 소중하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전세계 모든 나라와 모든 인종과 모든 종교간에 서로를 이해하고 우호적으로 지내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 제30조는 이렇게 되어 있지요. “권리를 짓밟는 권리는 없다.” 보다 나은 교육 서비스를 위한다는 NEIS가 국민 각 개인의 기본권과 인권을 침해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 NEIS도입과 관련한 정부와 우리 사회의 원칙이어야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 출범 100일. 제 개인적으로는 노무현 정부의 출범은 사실 출범 그 자체로 상당한 의의를 갖는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가 잦은 말실수를 하던, 때로 지나치게 격앙된 모습을 보이거나, 경박해 보이는 모습이 보이는 것과 상관없이 그가 대통령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 사회는 변화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왕이면 그가 퇴임을 맞이할 무렵 그를 지지해준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떳떳하게 박수를 보낼 수 있는 대통령이었으면 합니다. 우리는 단시간에 경제가 회복될 수 있으리라 생각지 않습니다. 그것이 대통령 혼자 풀 수 있는 문제라고는 더욱더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대미관계가 단시일에 평등해지리라고 기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느 날 갑자기 남북한이 화해 협력 관계가 되어 통일되리라 기대하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NEIS문제가 어떻게 귀결되더라도 어느 일방에서는 이 문제를 가지고 트집을 잡을 것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참여정부가 국민에게 큰 빚을 진 정부라고 자임하며 출범했다는 것을 기억합니다. 개혁정당의 출범이 지지부진합니다. 막상 출범한다고 해도 총선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어제 오늘의 지역 구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국민들은 그를 지지했습니다. 그의 무엇을 지지했던가 우리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대통령의 줏대와 철학과 소신을 기대했고, 그것을 지지했습니다. 현재 참여정부는 ‘적과의 동침’ 상태에 있으며 대통령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상황이 이를 강제하고 있습니다. 물론 때로는 대통령 자신이 자청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내용의 <유리병편지>를 쓰면 어느 쪽으로부터도 좋은 소리 듣기 어려울 겁니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일이 잔뜩 꼬이면 꼬일수록 그 사안의 본질이 무엇인가, 처음 출발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지금 제가 생각하는 노무현 정부가 처해있는 문제의 본질은 그가 애초에 지지해준 국민들의 정서와 기대로부터 너무나 멀리 가 있다는 것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애써 조성된 남북평화 분위기도, 개혁에 대한 희망도, 대등한 한미관계 구축도 그는 우리 기대를 충족시켜 주지 못했고, 앞으로도 쉽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흔들릴 때마다, 위기 때마다 그를 일으켜 세워준 것이 누구였는지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건 바로 당신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바로 당신이 그에게 돌을 던지길 바라고, 그를 토닥여주길 바랍니다. 이럴 때일수록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바로 당신이 영리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안, 사안마다 이럴 때 내가 지지한 대통령은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고,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지 그것을 결정해줄 사람은 바로 당신이기 때문이지요. 대통령이 잘못했다면 가차 없는 비판을 가하십시오. 그것이 당신이 선출한 대통령으로 하여금 바른 선택을 하도록 만드는 유일한 길입니다. 대통령 선거는 이미 끝났습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 정부 출범 100일. 아직 그의 공과를 논하기엔 조금 이릅니다.
하지만 NEIS와 새만금 문제, 그리고 경제 분야를 비롯해 참여정부의 수족마비 증세까지 초래하고 있는 각료들에 대한 진퇴 문제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지금이 아니면 너무 늦습니다. <2003-06-20>
*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개인정보보호법제가 전 세계적인 기준에서 보아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 중 하나는 바로 개인정보보호를 위한 통제기관이 없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정보사회에서 국민의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개인정보보호법의 제정과 더불어 이에 관한 통제기관의 설치 및 활동이 절대적으로 요구됩니다. 이와 관련하여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상 감독기관은 행정자치부로 되어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동안 국가기관을 통한 개인정보의 처리와 연결이 잘못되었다고 지적되어 시정된 사례가 보고 되거나 기록된 적이 전혀 없습니다. 한 마디로 유명무실하다는 것이죠.
윤덕홍 부총리가 어떤 사람이었던가요? 그는 이화여고에서 8년간 교편을 잡은 뒤 대구로 내려가 영남전문대 교수를 거쳐 1989년부터 대구대 일반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해온 어찌보면 지극히 평범한 약력의 소유자였지요. 그런 그가 대내외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1990년대 중반 재단 비리 문제로 촉발된 대구대학교 분규 사태를 해결한 뒤 1995년 직선 총장으로 선출됐으나 재단이 기획처장 시절 캠퍼스 매입 과정에서의 행정처리 잘못을 들어 교육부 감사를 요청하는 바람에 해임됐다가 4개월 만에 복직되는 우여곡절을 겪으면서였습니다. 그는 2000년 총장으로 선출된 뒤로도 지방대 홀대정책을 펴는 교육부를 상대로 자주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그런 총장이었지요. 그런 그가 장관들의 무덤이라는 교육부 장관에 임명되면서 복마전(伏魔殿)이란 비판을 듣던 교육부 개혁이 이번에는 가능할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던 이들도 있고, 적임이라는 평가도 있었습니다.
윤 부총리는 대학교수생활의 대부분을 재단의 전횡과 비리 문제로 점철된 분규 사태를 해결하고 정상화하는데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오랜 시간을 사학 재단의 비리와 분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분규가 발생했을 때 학생들과 밤을 새워 토론하면서 현장에서 비리재단을 몰아내는 데 앞장선 사학민주화운동의 선봉장으로 평가받았습니다. 그런 그가 교육부 장관이 되었을 때 우리들은 지금의 이런 혼란을 예상하지는 않았겠지요. 그런 윤 장관이 지금 장관 취임 채 100일도 안 되어서 각계의 사임 압력을 받고 있습니다. 취임 첫날부터 윤 부총리는 교육정책의 커다란 변화를 예고하는 자신의 마스터플랜을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입시지옥을 양산하고 있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자격고사'로 바꾸는 방안과 국립대인 서울대를 공익법인화하는 문제를 신중히 제고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윤 부총리의 그간 행적으로 볼 때 우리들은 앞으로 새 정부의 교육개혁의 플랜은 '경쟁력 강화'보다는 '균형 발전에 역점을 둔 민주화'에 무게가 실릴 것으로 보았습니다. 인재 양성에 앞서 비뚤어진 교육계의 구태와 부조리를 없애는 것이 먼저라는 것이 그의 평소 지론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현재 그가 처한 입장은 어떠한가요?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출범 100일을 맞이하고 있는 참여정부의 모습과 매우 흡사하게 보입니다. 취임 초기부터 잦은 말바꾸기로 인해 계속되는 윤덕홍 교육부총리의 갈짓자 행보로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에 대한 논란이 끊이질 않습니다. 간략하게 정리만 하더라도 “3월 6일/ NEIS 시행은 원칙적으로 맞는 방향이다. 개인정보 유출 위험 등 문제점은 보완해 나가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 3월 8일/ NEIS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유보해야 할 것 같다. 3월 9일/ NEIS가 생각했던 것만큼 쉽게 정보유출이 될 것 같지 않다. 3월 13일/ NEIS 중단 발언은 교수 개인의 입장을 밝힌 것이며 문제가 있다면 알아보고 보완하겠다는 뜻이다.” 등부터 한국교육노조와 가진 5월 면담에서는 수차례에 걸쳐 “국가인권위원회 결정을 존중, 수용, 따르겠다.”고 말하더니 같은 달 19일에 전교조, 학부모 단체 등과 가진 면담에서는 “인권위 의견을 존중하지만 반드시 따라야하는 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외 5월 26일 국회 답변에서는 “인권위 결정을 존중해 NEIS 3개 영역 시행을 전면 재검토하겠다.”라고 하더니 전교조와 합의 발표를 한 직후에는 “6개월 후 NEIS로 돌아가도록 노력할 것이다.”라고 말했고, 다시 전국교장단 대표들과 28일 가진 면담에서는 “NEIS 전면 재검토는 잠시 중단한다는 것이지 CS로 돌아간다는 의미는 아니다. 6개월 동안 NEIS의 민주적이고 제도적인 운영방안을 만들겠다.” 5월 29일 한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는 “6개월 동안 재검토하면 NEIS 우수성이 입증될 것이다. 결정되면 전교조가 반대해도 NEIS 시행한다.”라고 말하고 6월 1일 “고2 이하는 교무.학사, 진.입학, 보건 3개 영역은 수기로 하되 학교실정에 따라 불가피할 경우 SA, CS, NEIS 등 가능한 방법을 선택해 사용한다.”라고 했습니다. 일일이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옮겨 적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하나도 없을 지경이었으니 그에 따라 일희일비하며 학사행정을 꾸려나가야 하는 일선 학교와 교사들, 학부모들이야 오죽할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NEIS는 무엇이 문제인가?
이와 관련해서 오늘(6월 2일)자 한겨레 신문 사설은 매우 명쾌하게 정리해 두고 있습니다.
네이스반대론자들의 반대이유는 분명하다. 네이스가 위헌이며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찬성론자들은 유용한 제도이며 이미 시스템이 거의 다 구축되었다는 점을 들고 있다. 여기에 이해관계가 다른 교육단체들이 집단적으로 찬성과 반대편으로 나뉘어 실력행사를 하는 가운데 네이스의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처음으로 네이스의 반인권적 요소에 대해 제동을 걸고 이것을 교육부가 받아들이기로 했던 것이다. 네이스 실시여부는 기본적으로 이 제도를 실시하는 것이 누구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 것인가라는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 누구도 분명한 대답을 하지 않고 있다.
초중고 12년의 모든 기록을 모두 수집한다는 것은 사실상 전 국민의 정보가 국가기관에 의해 집적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연히 국민적 동의가 필요한 문제였다. 정보화시대에 개인에 대한 정보가 국가기관에 의해 관리되는 것이 과연 적절한 것인가 그 수준은 어디까지인가 하는데 대한 충분하고도 면밀한 검토가 있었어야 했다.
윤 부총리는 지난 1일 발표한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시행지침에서 예외조항을 통해 고2 이하도 NEIS를 시행할 수 있는 길을 터놓았습니다. 이것은 지난 26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합의한 후 '고2 이하 교무.학사, 보건,진.입학 영역은 NEIS 이전체제로 시행한다'고 발표한 것을 다시 뒤집은 것이 됩니다. 김일환(성균관대 법대 헌법학) 교수는 NEIS가 위헌적인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는 국가인권위의 권고사항과도 합치되는 것이죠. 우리는 불과 몇 년 전 전자주민카드의 도입과 관련된 일련의 논쟁들을 떠올릴 수 있을 겁니다. 현재에도 우리나라는 그 어느 나라보다도 철저한 주민등록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는데, 전자주민카드는 국민 각 개인의 신상정보가 고스란히 국가의 시스템 속에 저장된다는 위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NEIS의 도입 문제가 일부 언론들이 몰아가고 있는 것처럼 특정 집단의 압력에 정부가 굴복한 것이라거나 교육계의 각 집단이 서로 힘겨루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하거나 당연히 시행해야 할 중요한 국가정책을 포기한 것처럼 몰아가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는 김일환 교수의 지적대로 “정치적 타협의 대상도 아니고 정책적 판단 등에 따라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헌법’, 더 정확하게는 ‘국민의 기본권’이란 관점에따라 판단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헌법상 사생활자유에 근거하여 인정되는 정보자기결정권이란 개인정보의 사용과 공개에 대하여 원칙적으로 개인이 스스로 결정할 권리입니다. 그것을 제한하기 위해서는 헌법 제37조 제2항에 따라서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국회가 제정한 “법률”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인데, 교육부 공무원들은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이 재학생들뿐만 아니라 사회에 진출한 지 이미 오래된 1981년 이후 졸업생들까지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유리병편지>를 받는 분들의 상당수가 본인의 허가 없이 NEIS에 자신의 신상정보가 포함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NEIS가 작게는 참여정부의 행정 난맥상 혹은 서투름에 대한 비판거리가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단순히 그렇게만 볼 문제는 아니라는데 있습니다. NEIS문제는 참여정부에게 있어서는 앞으로의 국정을 어떻게 끌고 나갈 것인가를 묻는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국가의 정책은 사회 구성원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각기 다른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지만 사안에 따라서는 향후 사회 구성의 중요한 원칙, 정부의 국정 지표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를 판단할 수 있기 때문에 일부에게는 다소 비판을 받더라도 원칙과 소신을 지켜 밀고 갈 수밖에 없는 것들도 있습니다. NEIS의 경우엔 그 출발점부터 잘못되어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우선 이 정책은 DJ정부의 새만금 문제와 마찬가지로 이전 정권이 시작하기에 앞서 충분한 국민적 합의 없이 시작하고,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가 후임 정부에 가서 문제가 불거져 나오자 이해관계가 걸린 관료집단이 강한 영향력을 발휘해 후임 정부에게 부담을 덮어씌우는 것과 비슷한 양태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NEIS문제만 하더라도 노무현 정부가 시행한 것이 아니라 이전 정부에서 전시행정처럼 추진된 ‘신지식인’ 프로젝트와 비슷한 양상으로 추진되었던 것입니다.
노무현 정부에게 큰 기대를 걸었던 많은 이들(선거에서 그에게 투표를 하지는 않았지만 누구 못지않게 그의 성공을 빌어 마지않았던 저를 포함해서)이 그에게 기대를 건 것은 그가 온 국민의 여망인 정치개혁과 우리 사회 전반의 개혁을 추진하는데 누구보다도 적임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라크 파병 문제, 한미정상회담에서의 모습, 5.18 기념식 시위 이후 그가 쏟아낸 말 등 그의 여러 모습들이 비록 실망스럽기는 하지만 우리들은 참여정부가 출범한지 100일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노무현 정부가 그 본질이 어떠하든 간에 그가 처한 현실은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과 흡사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1970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아옌데는 역사상 최초로 선거에 의해 수립된 사회주의 정권이었습니다(오해마시길 참여정부가 사회주의 정권은 아닙니다). 비록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다고는 하지만 아옌데 정부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 환경은 매우 적대적이었습니다. 칠레는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미국의 영향력 아래 있었고, 기득권세력은 대통령과 의회가 새로운 개혁 정책을 준비하고 추진하는 동안 외화를 해외로 반출하고, 실업률을 높이고, 고의로 파업을 유도하는 등 개혁을 저지하려고 들었지요. 노동자의 파업이 아니라 기업주들의 파업으로 전 산업 부문의 조업이 두 차례나 전면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합니다. 게다가 국가기구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가지고 움직이는 기득권 세력의 일원이 되어있기 때문에 그들의 이해관계에 반하는 명령에는 복종하지 않거나 움직이는 시늉만 할 뿐이었습니다. 그들은 은연중에 정부의 시책에 사보타지를 가하고, 복지부동합니다.
그런 탓에 아옌데 정부는 자신들이 준비했던 개혁 카드를 펼쳐보이지도 못한 채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지금 NEIS 문제로 퇴진 압력을 받고 있는 윤 교육부총리는 교육부 수장으로 입성하기 전에 “핫바지 장관은 되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현실은 그로 하여금 결국 자신이 가졌던 교육 개혁에 대한 마스터플랜을 펼쳐 보이기도 전에 기우뚱하게 만들었습니다. 물론 교육부 직원들이 NEIS의 전적인 책임을 짊어져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사보타지를 가했다거나 복지부동했다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NEIS 도입과 관련해 학부모들의 88%가 이 제도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는 겁니다. NEIS와 같이 학생 각 개인은 물론 이미 졸업해 사회에 진출한 국민 각자의 신상 정보를 국가가 취합해 관리하는 민감한 사안에 대해 학생은 물론, 학부모, 교사들을 소외시킨 체 진행되는 제도가 아무런 무리 없이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믿는다면 개혁은 좌초하고 말 것입니다. 게다가 이 문제를 전교조와 교총의 힘겨루기 양상으로 몰고 가는 것 역시 안 될 말입니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NEIS의 본질과 참여정부 출범의 의미가 무엇이었던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합니다. NEIS의 본래 목적은 ‘교육행정정보화’를 통해 잡무에 시달리는 일선 교사달의 과중한 업무 부담을 덜어주고, 보다 나은 교육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교육권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인권선언 제 26조는 교육에 대한 권리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초등기초단계의 교육은 무료여야 한다. 기술교육과 직업교육은 원하는 누구나 받을 수 있어야 하며, 고등교육은 실력 있는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개방돼야 한다. 교육을 통해 우리는 자기의 인격을 발전시키고 사람의 권리와 자유가 소중하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전세계 모든 나라와 모든 인종과 모든 종교간에 서로를 이해하고 우호적으로 지내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 제30조는 이렇게 되어 있지요. “권리를 짓밟는 권리는 없다.” 보다 나은 교육 서비스를 위한다는 NEIS가 국민 각 개인의 기본권과 인권을 침해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 NEIS도입과 관련한 정부와 우리 사회의 원칙이어야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 출범 100일. 제 개인적으로는 노무현 정부의 출범은 사실 출범 그 자체로 상당한 의의를 갖는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가 잦은 말실수를 하던, 때로 지나치게 격앙된 모습을 보이거나, 경박해 보이는 모습이 보이는 것과 상관없이 그가 대통령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 사회는 변화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왕이면 그가 퇴임을 맞이할 무렵 그를 지지해준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떳떳하게 박수를 보낼 수 있는 대통령이었으면 합니다. 우리는 단시간에 경제가 회복될 수 있으리라 생각지 않습니다. 그것이 대통령 혼자 풀 수 있는 문제라고는 더욱더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대미관계가 단시일에 평등해지리라고 기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느 날 갑자기 남북한이 화해 협력 관계가 되어 통일되리라 기대하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NEIS문제가 어떻게 귀결되더라도 어느 일방에서는 이 문제를 가지고 트집을 잡을 것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참여정부가 국민에게 큰 빚을 진 정부라고 자임하며 출범했다는 것을 기억합니다. 개혁정당의 출범이 지지부진합니다. 막상 출범한다고 해도 총선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어제 오늘의 지역 구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국민들은 그를 지지했습니다. 그의 무엇을 지지했던가 우리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대통령의 줏대와 철학과 소신을 기대했고, 그것을 지지했습니다. 현재 참여정부는 ‘적과의 동침’ 상태에 있으며 대통령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상황이 이를 강제하고 있습니다. 물론 때로는 대통령 자신이 자청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내용의 <유리병편지>를 쓰면 어느 쪽으로부터도 좋은 소리 듣기 어려울 겁니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일이 잔뜩 꼬이면 꼬일수록 그 사안의 본질이 무엇인가, 처음 출발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지금 제가 생각하는 노무현 정부가 처해있는 문제의 본질은 그가 애초에 지지해준 국민들의 정서와 기대로부터 너무나 멀리 가 있다는 것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애써 조성된 남북평화 분위기도, 개혁에 대한 희망도, 대등한 한미관계 구축도 그는 우리 기대를 충족시켜 주지 못했고, 앞으로도 쉽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흔들릴 때마다, 위기 때마다 그를 일으켜 세워준 것이 누구였는지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건 바로 당신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바로 당신이 그에게 돌을 던지길 바라고, 그를 토닥여주길 바랍니다. 이럴 때일수록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바로 당신이 영리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안, 사안마다 이럴 때 내가 지지한 대통령은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고,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지 그것을 결정해줄 사람은 바로 당신이기 때문이지요. 대통령이 잘못했다면 가차 없는 비판을 가하십시오. 그것이 당신이 선출한 대통령으로 하여금 바른 선택을 하도록 만드는 유일한 길입니다. 대통령 선거는 이미 끝났습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 정부 출범 100일. 아직 그의 공과를 논하기엔 조금 이릅니다.
하지만 NEIS와 새만금 문제, 그리고 경제 분야를 비롯해 참여정부의 수족마비 증세까지 초래하고 있는 각료들에 대한 진퇴 문제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지금이 아니면 너무 늦습니다. <2003-06-20>
*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개인정보보호법제가 전 세계적인 기준에서 보아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 중 하나는 바로 개인정보보호를 위한 통제기관이 없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정보사회에서 국민의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개인정보보호법의 제정과 더불어 이에 관한 통제기관의 설치 및 활동이 절대적으로 요구됩니다. 이와 관련하여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상 감독기관은 행정자치부로 되어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동안 국가기관을 통한 개인정보의 처리와 연결이 잘못되었다고 지적되어 시정된 사례가 보고 되거나 기록된 적이 전혀 없습니다. 한 마디로 유명무실하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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