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들의 유쾌한 정치반란은 막을 내리는가?
한해를 돌이켜보는 시점에서 저는 우리 정치사 초유의 정치 실험이랄 수 있었던 개혁국민정당(이하 '개혁당')이 생각났습니다.
지난 대선과정에서 저를 유난히 힘들게 만들었던 원인 중 하나를 제공했던 개혁국민정당. 주변의 친구들을 비롯해서 제 마음 속으로 그간 신뢰를 보내던 주변의 괜찮은 선배, 선생들이 저와 생각을 달리했고, 설득은 커녕 도리어 설득 당하지 않기 위해 무진 노력을 기울여야 했습니다. 제가 유달리 이런 일들에 취약한 정신구조를 갖추게 된 것은 사실 1987년의 대선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NL, PD의 지리멸렬한 분열 못지않게 그 무렵의 저를 피곤하게 만들었던 것은 소위 '비판적 지지'세력과 '비토' 세력간의 겉으로 크게 드러나지는 않았으나 그 안에서는 나름대로 치열했던 상황을 거치면서입니다. 87년 이후 1990년대 초반에 일어난 현실사회주의권 몰락으로 촉발된 재야세력의 대거 투항 혹은 변절은 이제사 생각해보면 단지 빌미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독립협회(獨立協會)와 <독립신문>은 1896년 (고종 33) 7월에 만들어져 정부의 외세의존정책에 반대하는 개화 지식층이 한국의 자주독립과 내정개혁을 표방하고 활동하였습니다. 처음 <독립신문>이 만들어질 때 사람들은 그 사실을 기억하고 싶지 않겠지만 서재필(徐載弼), 이상재(李商在), 이승만(李承晩),˙윤치호(尹致昊) 등이 적극 참여하였고, 협회 발족 당시에는 이완용(李完用), 안경수 등 정부 요인들도 다수 참가하였었지요. 사실 우리 역사에서 정치인들 혹은 이름높은 명망자본가 - 다른 이름으로는 사회 지도층, 오피니언 리더, 재야운동가, 지식인들 - 들의 변절은 한두해의 역사는 아니었지요. 서재필이나 이승만은 그렇다치고, 이완용, 윤치호의 친일 변절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 아닙니까. 이런 역사는 그후로도 계속되어 4.19 세대가 훗날 유신정권의 주구가 되고, 5공, 6공의 핵심 세력이 되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우리들에게 정치인에 대한 혹은 지식인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 역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제가 늘 옳았고, 현실정치에 희망을 건 분들이 늘 틀렸다고 잘난 척 뻐기고 싶어서 이 글을 쓰는 건 아닙니다. 마음은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지요. 무엇이든 빨리 잊는 우리의 기억력 탓에 개혁당의 반란은 아주 먼 옛날의 일처럼 생각될지 모르지만 바로 작년의 일이었습니다. 2002년 연말 대선을 앞두고 있는 11월 개혁당은 “부패청산, 국민통합, 참여민주주의, 인터넷정당”의 기치를 내걸고 창당하였습니다. 저는 워낙 게을러서 이 홈페이지를 몇 번 가보지 않았지만 대선 무렵에는 몇 차례 가보기도 했습니다. 개혁당의 창당을 위한 준비작업인 인터넷 홈페이지는 2002년8월 29일 오픈 했었습니다. 개혁당은 스스로를 매번 선거 때마다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그러한 정당과는 다르다며 개혁당은 2004년 원내 제 1당을 목표로 앞으로도 계속 당세 확장 활동을 해 나갈 것이라 천명했습니다.
개혁당은 다른 정당과 어떻게 달랐던 것일까요?
“첫째, 당원들 스스로 당비를 납부하고 활동비를 부담함으로써 내부의 부패구조를 일소하고 정치문화를 개혁하는 깨끗한 정당입니다. 둘째, 어떤 형태의 지역주의도 용납하지 않으며 오로지 개혁적인 정책과 노선으로 유권자의 지지를 모으는 국민통합정당입니다. 셋째, 당의 주요정책결정과 지도부 및 공직후보를 당원들이 직접 참여해서 결정하는 참여민주주의정당입니다. 넷째, 개혁당은 인터넷 기반을 통해 당원의 활동과 의사소통이 일상적으로 이뤄지게 하는 저비용 고효율의 인터넷 정당입니다.”라는 것이 개혁당의 주장이었습니다.
사실 지난 대선에서 저는 민주노동당과 권영길 후보를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말한 바 있으나 오랜 시간에 걸쳐 개혁국민정당과 노무현 후보를 두고 고민했었음을 시인합니다. 그것은 현재 우리 현실정치에서 진보의 단계가 과연 어디까지인가를 고민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 제가 자유주의자이거나 그런 정도의 개혁이 제 이상에 부합하기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결국 선거에서는 누구에게나 한 표로 자신의 정치적 의지를 실천에 옮기는 것이기 때문에 고민했던 것이죠. 저 역시 사표(謝表)의 망령으로부터 절대로 자유롭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개혁이 일차적으로 개혁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소망 정도만 이루어진다고 해도 나는 그 대통령의 임기만큼은 참 행복했을 것 같습니다.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는 공식적인 그룹은 정당 구조를 지니지 않았던 ‘노사모’와 정당체제를 갖춘 ‘개혁당’ 그리고 ‘민주당’이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은 노무현 후보를 국민 경선이라는 과정을 거쳐 선출했음에도 지지율이 낮다는 표면적인 이유로 여러 차례 수모를 안겨주었습니다. 문제의 근본 원인은 거기에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민주당이라는 기성정당의 시스템이 국민이 원하는 정치개혁을 수행할 수 있는 정당으로서의 시스템과 인적 구성을 갖추지 못한 탓에 이를 타개하기 위해 출범한 것이 ‘개혁당’이며, 정치인 노무현의 그간 행적을 지켜보며 그에 대한 정치적 후원그룹을 자처하는 시민들에 의해 결성된 것이 ‘노사모’입니다. 물론 이 두 집단간의 인적 구성에는 당연히 상당 부분 겹칠 것이라 생각합니다.
개혁당은 어째서 자신들이 독자후보를 내는 대신 노무현을 후보로 추대하였는가? 그것은 아마도 ‘노무현’이라는 한 명의 인칭 대명사 이상으로 그에 대해 거는 기대, 혹은 그를 통한 정치 개혁이 한국 정치의 지형에서 지니는 가치를 신뢰했기 때문일 겁니다. 한국 정치의 고질인 지역주의 타파, 참여민주주의의 실현, 국민통합, 인권이 보호되는 사회, 세계평화에 이바지하는 대한민국, 통일을 앞당기는 정부 등등 많은 희망을 ‘노무현’이라는 한 개인에게 투사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겠지요. 전에 언젠가 제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지금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서 그 말을 기억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지옥은 구체적일 수록, 천국은 모호할수록 매력적인 곳이 된다”는 말. 그 이유에 대해 짤막하게 말씀드리면 천국(天國)은 구체적일수록 그곳을 희망하는 이들의 숫자가 줄어들고, 지옥은 모호할수록 두려움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포지티브(positive)와 네거티브(negative)의 차이는 거기에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천국의 모습이 구체적일수록 그것을 상상해온 이들의 환상은 깨어지기 마련이고, 지옥의 모습이 모호하다면 그로인해 두려움을 느껴야 할 사람은 두려움을 갖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이라는 정치개혁의 환상을 본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개혁당은 네티즌을 비롯한 국민들의 폭발적인 지지를 받아 추진위원회의 출발 3주 만에 2만 명이 넘는 국민들이 창당기금을 납부하고 발기인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한나라당을 탈당한 김원웅 의원이 입당함으로써 민주노동당이 그토록 오랫동안 꿈꿔왔지만 이룰 수 없었던 원내의석을 가진 정당으로 단시일 내에 올라설 수 있었습니다. 개혁당의 2대 과제(2002년 대선에서 개혁정부수립, 2004년 총선 원내 1당 건설) 중 창당 제1목표인 개혁정부 수립에 성공했습니다. 그렇다면 개혁당은 자신들의 목적을 성취한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그도 일리 있는 말입니다. 개혁당은 지난 2003년 10월의 ‘온라인’ 전당대회를 통해 당 해산과 열린우리당 참여를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개혁당은 지난 27일부터 닷새간 당 인터넷홈페이지와 핸드폰 및 ARS(자동응답전화)를 통해 신당 참여 여부에 대해 전 당원이 참여하는 ‘온라인’ 투표를 실시, 찬성 3천962표(77.98%)와 반대 955표(18.80%)로 신당 참여를 가결했다고 31일 밝혔고, 투표엔 진성당원 7천264명 중 5천81명(투표율69.95%)이 참여했습니다. 저는 그 일원이 아니었기 때문에 개혁당의 진지한 속내를 들여다 볼 기회는 없었습니다만, 이런 과정을 지켜보면서 결국 지난 대선 무렵 고민했던 판단의 결과가 상대적으로 잘한 것이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지난 대선에서 진보정당에 대한 지지 의사를 철회하지 않고, 끝까지 그 주장을 펼쳤던 사람들은 마음속에 작은 앙금처럼 상처가 남아 있을 겁니다. 그것은 인터넷의 특성도 있었겠지만, 워낙 많은 수의 노무현 지지자분들에게 둘러싸여 때로는 집단 이지메를 당하는 심정이 들었던 기억들 때문일 겁니다. 민주노동당 같은 진보정당 게시판엔 노무현 후보 지지자들의 홍수처럼 쏟아지는 게시물들에 짖눌려 정작 그 정당 지지자들은 제대로 글조차 올리기 어려운 상황을 맞이하기도 했지요. 선거 막판까지 <오마이뉴스> 같은 인터넷 신문에는 소위 우리 사회의 명망 있는 지식인들까지 앞 다퉈 나서면서 진보정당 지지자들에게 이번엔 노무현을 지지해 달라는 기사를 써 올리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그런 일들은 과거지사가 되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노무현을 사랑한 것처럼, 김원웅과 유시민을 사랑했습니다. 우리가 소위 지식인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들이 자신의 전문 지식을 올바른 것에 써 주리라는 믿음과 신뢰가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들은 자신의 지식을 동원한 글을 통해 소위 ‘명망’이라는 자본재를 축적합니다. 유시민 씨를 좋아했던 이들은 유시민의 글을 통해 드러난 그의 생각에 공감하여 개혁당에 동참한 이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아주 먼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바로 어제오늘 우리가 경험했던 현실일 겁니다. 저 역시 유시민 씨의 책을 통해 세상을 보는 안목을 배웠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서도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 가슴 저밈을 느낍니다. 어떤 이는 지난 대선에서 다니던 직장마저 때려치우고 개혁당에 입당하여 당과 관련한 일을 했고, 어떤 이는 돼지저금통을 가득 채워 부디 깨끗한 정치를 해달라는 열망을 표현했습니다. 만약 지난 대선에서 이런 국민적 개혁열망이 없었다면 지난 대선이 이전의 다른 대선과 구분될 수 있을만한 희망이 무엇이 있었겠습니까. 민주당에서 자신들이 뽑은 대선 후보를 흔들어대는 모습에 분개해 노사모에 가입했던 많은 이들, 현실정치를 말로만 비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면서 ‘노무현 일병 구하기’ 운동을 펼친 유시민과 같은 이들이 모여서 개혁당을 창당하겠다하자 주저하지 않고 당원으로 가입했던 평범한 시민들, 더 이상 정치냉소에 사로잡혀서는 우리 정치를 비판할 자격이 없다고 느꼈던 이들이 개혁당 깃발 아래 모여들었습니다. 그들은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이 된 뒤 이를 누구보다 기뻐했던 사람들이고, 유시민 후보가 경기 고양 갑 4·23재·보선 선거에 출마하자 누구보다 열렬히 그를 국회의원으로 만들기 위해 애썼습니다.
개혁당은 지난 대선을 포함해 선거에서 두 번의 승리를 맛보았지만, 그 승리를 오래도록 즐길 여유는 없었지요. 지난 대선을 자신들이 주체가 되어 뜨겁게 달궜던 개혁의 바람에 그들 자신이 제물로 올려진 것입니다. 개혁신당 출범 바람을 타고 개혁당내 게시판은 무척 뜨거웠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유 의원이 당선된 뒤부터 개혁당에서는 급속도로 '신당 합류' 움직임이 일었고, 사실 대선 이전부터 개혁당 내에서도 이런 신당 창당은 당연한 수순처럼 여겨지고 있었으므로 민주당 보다는 내홍이 별로 없었다고 기억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국민들의 개혁 열망이 만들어낸 우리 정당사 초유의 정치적 실험의 결과물이랄 수 있는 개혁당의 해체 과정(아직 존재)입니다. 제 알기로 개혁당의 많은 이들이 신당합류에는 원칙적으로 찬성하지만 개별 입당 형태 혹은 흡수 통합 형태가 아닌 당대당 통합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으로 압니다. 그러나 개혁당 지도부는 당대당 합당을 포기하고, '당 해산 뒤 개별 입당'을 결정했습니다.
대선 이후 진행된 새로운 정치현실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현실 정치의 생리란 것이 원래 그런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개혁당의 이런 수순은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치역학으로 보았을 때 개혁당의 지도부들은 매우 합리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버린 사람들과 비록 개혁당 당원은 아니었으나 지난 대선에서 개혁당을 두고 고민했던 저 같은 사람에게는 요새 개그맨 정준하 씨를 통해 유행한다는 말처럼 “두 번 죽이는 겁니다.” 제 알기로 개혁당의 구호는 “개미들의 유쾌한 정치반란”이었습니다. 유시민 씨도 이런 말을 즐겨 사용했던 것으로 압니다. 만약 정치가 여의도 증권 거래소의 주식 거래와 같은 것이라고 한다면 개미들이 주도했던 유쾌한 정치 반란은 그들 개미가 깡통 차는 것으로 끝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정치가 주식 거래와 같다면 우리들 중 누가 이 나라 정치에 희망을 걸겠습니까. 최근 진보누리 게시판에 놀러갔다가 다음과 같은 요지의 글이 있길래 읽어보고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도 한 번 읽어보아 주길...
현재 개혁당은 어느 고문이 내준 조그마한 사무실에서 사무집기도 없는 상태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개혁당이 원래 이 정도로 가난한가? 그 정도는 아니다. CMS이체를 당직자인 최모 씨가 넘겨주질 않아서 그렇다는 것이다. 개혁당에는 아직 재산이 1억 5천만원 정도인가가 있다. 다른 정당에 비교하자면 별거 아닐 수 있지만 현재의 개혁당 수준으로 이 돈은 매우 큰 액수이다. 그런데 이 돈이 현재 개혁당으로 넘어오지 못하는 이유는 열린우리당의 유시민 의원이 개혁당이란 이름과 도메인을 포기하면 넘겨주겠다고 소송을 걸어서이다.
저는 유시민 의원을 포함해서 개혁당의 신당 합류파도 나름대로의 이유와 명분을 갖추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자신들 개인의 정치적 판단으로 이루어진 선택과 상관없이 하나의 정당으로 출발했던 개혁당의 몰락(?) 과정을 지켜보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제 마음은 씁쓸하기만 합니다. 그것은 개혁정당과 진보정당 사이를 두고, 특정 후보를 지지할 경우 최악의 후보가 당선될지도 모른다는 소박한 양심의 가책조차 우습게 만들어버리는 결과를 빚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현실정치를 잘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무현 후보에 대한 여전한 지지자들, 소위 ‘노빠’라는 명칭으로 불리는 분들이나 스스로 노빠다 어쩔래라고 말했다는 유시민 의원이 말하는 현실정치의 세계가 무엇인지도 잘 모릅니다. 그가 지난 2003년 7월 19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스스로 올린 글 “저도 날마다 조금씩 무식해지고 때묻어 갑니다”라는 현실정치에 참여한 초선의원의 소회를 담은 글을 100% 수용한다고 해도 어쩐지 이 현실이 슬픕니다. 그가 “정치는 일종의 산업이 되었습니다. 아직도 적지 않은 유권자들이 정치인의 공적인 활동을 중시하기보다는 여러 가지의 사적인 서비스를 요구합니다.”라고 고백한 현실이 슬프고, “열심히 선거운동을 하면 활동비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국회의원과 밥을 먹으면 밥값을 국회의원이 내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당의 당원과 대의원들은 차기 대권주자와 당권주자들이 명절에 김 한 톳이라도 선물을 보내주기를 기대합니다.
정치인들은 이런 요구를 못견뎌 하면서도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기꺼이 또는 마지못해 사적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정책을 공부하거나 독서할 시간이 없습니다. 기업인들에게서 음성적 정치자금을 받는 것은 공식적인 후원금으로는 이러한 사적 서비스의 제공 비용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정치를 오래 하면 할수록 무식해지고 타락해 갑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한국 정치의 모습입니다.
저는 이런 정치를 바꾸려면 먼저 정당을 바꾸어야 한다는 믿음에서 정치를 시작했습니다. 아직 1년도 되지 않은 지금 벌써, 저는 제가 날마다 조금씩 무식해지고 날마다 조금씩 때가 묻어가는 것을 느낍니다.” 라는 고백을 초선의원 유시민으로부터 들어야 하는 정치현실이 슬픕니다.
그리고 저는 유시민, 당신으로 인해 슬픕니다. 우리 현실이 그러하기 때문에 그 현실을 바꿔달라는 염원을 담아 당신을 국회로 보냈던 것이 아닌가요. 그런데 당신은 지금 이것이 정치현실이라고 말합니다. 나는 국회연단에 캐주얼 복장으로 서는 해프닝이 정치 개혁의 출발이라고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런 저를 당신의 개혁 마인드에 동참 못하는, 현실 상황을 외면하는 이상주의자로, 정치를 이해 못하는 보수 꼴통으로 혐오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나는 당신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1947년 파블로 카잘스는 독재자 프랑코가 스페인을 지배하는 한 절대로 첼로를 연주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프랑코의 스페인을 승인한 나라에서는 일체 연주를 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그의 연주를 갈망하는 일반대중들의 요청으로 결국 이 선언을 철회하기는 했지만 당시 영국의 상무장관이던 스테포드 크리프스 경이 어째서 영국이 프랑코 정권을 승인했는지를 설명하겠다며 그를 초대하자 카잘스는 "그는 정치를 말할 속셈이지만 나는 도덕을 논하고 있는 거야"라며 이에 응하지 않았다는 일화가 생각납니다.
당신들은 현실정치의 어려움을 말하지만 국민들은 그 어려운 현실정치의 개혁을 주장한 당신들에게 희망을 걸었던 것입니다. 당신들이 현실정치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현실정치에 몸담고 있는 이들 중에서 더러운 돈으로부터 자유로운 이가 누가 있으며, 당신의 선거운동을 도왔으니 물질적 대가를 원하는 이가 있는 것으로 보아 우리 국민들 역시 썩은 정치에 물들어 있는 것 아니냐고 질타하더라도 국민들은 바로 그런 이유로 제도가 뒷받침되는 정치 개혁을 이룩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치가 이념과 정책의 가치 실현이 아닌 당선 가능성과 세력 규합이라는 현실정치의 게임 룰에 치중할 때, 국민은 단지 게임룰에 따라 이용당하는 불쌍한 볼모로 전락하고 맙니다.
이제 개혁당과 함께 한국정치 사상 초유의 정치 실험은 코미디 혹은 비극으로 전락하여 막을 내릴 모양입니다. 끝으로 현재 개혁당 사무차장으로 있는 홍성열 씨(46·개혁국민정당 사무차장)의 말을 빌고 싶습니다. 그는 "인기 정치인에 의존해서는 개미는 결국 객체로 남을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잃어버렸던 한국정치 개혁의 꿈을 잠자던 시민들에게 잠시나마 되돌려 주었던 개혁당의 몰락 과정을 지켜보면서 한국에서 개혁이 어째서 진보보다 힘든 것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 추신 ------
어제 12월 29일자 <오마이뉴스>를 보니 "열린우리당"이 사무직 당직자 인선의 최종결정권을 놓고 진통을 겪고 있다고 하는군요.
사무직 당직자 인선 결과, 여성 당직자의 비율이 현저히 낮은데다 개혁당 출신 당직자들이 대거 탈락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이같은 반발의 목소리가 터져나온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일부 개혁당 및 신당연대 출신 당직자들은 "민주당을 탈당한 당직자들은 한 명도 이번 공채과정에서 탈락하지 않았다"고 차별적 대우에 불쾌감을 표시하고 있다.
열린우리당의 노혜경 중앙위원도 "당직자 인선에 관해서 지금 현재 어떤 원칙이 있는 지 명확히 나온 바 없고 여러 가지 무리한 진행이 있다는 것에 동의한다"면서 특히 여성 당직자 30% 원칙이 지켜졌는지 확인이 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위임 반대를 주장했습니다.
개혁당 출신의 한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이번 당직자 임명 결과, 채용이 예정되는 91명 중 민주당 탈당파는 한 명도 탈락하지 않았다"고 "철저하게 민주당+α식으로 채용이 진행됐다"고 주장했다. ...<중략>... 한편, 중앙위원회의는 상임의장 예비선거를 마친 뒤 오후 1시부터 다시 이 의제를 안건으로 상정, 사무직 당직자 임명의 건을 상임중앙위원회의에 위임하도록 한 원안을 표결로 통과시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