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천골 물푸레나무 숲에서
- 이상국
이 작두날처럼 푸른 새벽에
누가 나의 이름을 불렀다
개울물이 밤새 닦아놓은 하늘로
일찍 깬 새들이
어둠을 물고 날아간다
산꼭대기까지 물길어 올리느라
나무들은 몸이 흠뻑 젖었지만
햇빛은 그 정수리에서 깨어난다
이기고 지는 사람의 일로
이 산 밖에
삼겹살 같은 세상을 두고
미천골 물푸레나무 숲에서
나는 벌레처럼 잠들었던 모양이다
이파리에서 떨어지는 이슬이었을까
또다른 벌레였을까
이 작두날처럼 푸른 새벽에
누가 나의 이름을 불렀다
<집은 아직 따뜻하다>(창작과 비평사)
*
숲에서...
어쩌면 구태여 미천골 숲이 아니어도 좋으리라.
어쩌면 물푸레나무 숲이 아니어도 좋으리라.
그런건 아무래도 좋으리라.
숲에서....
산꼭대기까지 자란 나무들이 물 길어 올리느라 흠씬 젖은 새벽
이기고 지는 일이야 삼겹살처럼 두툼하게 살집 오른 거리에 버려두어도 좋으리라.
그 기분 나도 알 것 같다.
그럼에도 아침이면 다시 작두를 타야 하는 나는...
그 기분 알면서도 오늘은 다시 푸르게 날 선 작두 위에 올라선다.
혼자서만 정수리에 햇볕 가득하면 무엇하리.
언젠가 산 아래 사람들과 섞이지 못한다면 홀로 잘 설 수 있다면 무엇하리.
누가 나의 이름을 불렀다.
그래서 나는 다시 마른 하늘의 날벼락 같이 날이 잘 선 작두 위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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