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솥에 대한 성찰
- 복효근
어디까지가 삶인지...
다 여문 참깨도 씹어보면 온통 비린내 뿐
이쯤이면 되었다 싶은 순간에도 또 견뎌야할 날들은 남아
참깨는 기름집 가마솥에 들어가 죽어서 비로소
제 몸을 참깨로 증명하는구나
그렇듯 죽음 너머까지가 참깨의 삶이라면
두려운 것은 죽음이 아니다
살과 피에서 향내가 날 때까지
어떻게 죽음까지를 삶으로 견디랴
세상의 가마솥에서
참
삶까지는 멀다
*
복효근 시인의 <가마솥에 대한 성찰>은 성찰(省察)이 지닌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만들어주는 시이다. 비록 시의 길이는 그리 길지 않지만 다양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에서 다향적(polyphonic)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도 매우 훌륭한 시의 품격을 지니고 있다.
먼저 시인은 묻는다. "어디까지가 삶이냐?"
참깨라는 익숙한 사물을 통해 시인은 우리에게 삶을 성찰해보도록 한다. '여물다'는 말은 과실이나 곡식이 알이 들어 잘 익었다는 1차적인 뜻이 있지만, '여물다'란 말에는 사물이나 자연현상이 본래 지닌 특성이 활발해져서 제가 지닌 본성을 있는 그대로 잘 드러내고 있다는 뜻을 지녔다. 예전에 미학 세미나를 진행하다가 문화예술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친구에게 얻어들은 이야기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는데, 본래 우리 말인 "아름답다"의 어원은 "나답다"에서 유래한 것이란다.
내가 나 다울 때, 비로소 우리들은 아름다워진다. 그런데 우리가 아름답기 위해선 즉, 나의 본성을 있는 그대로 잘 드러내기 위해선 먼저 잘 여물어야만 한다. 그런 의미에서 다 여문 참깨는 아름답다. 그러나 아름다운 참깨조차도 이쯤이면 되었다 싶은 순간에 씹어보면 아직도 비린내가 난다. 비린내란 속세의 냄새다. 시인은 참깨의 효용을 따지려는 것이 아니라 참깨의 존재를 "어디까지가 삶이냐?"고 묻기 위해 '세상의 가마솥'에 들어가 참깨가 죽을 때에만 비로소 참깨의 살과 피에서 존재의 향내가 풍겨올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그러나 안다는 것과 그것을 실천하는 것 사이에는 얼마나 많은 간극이 있는가? 시인이나 작가들이 종종 스스로를 자학하고, 부끄러워하는 까닭, 자괴심으로 몸부림치며 스스로를 속물로 표현하길 주저하지 않고, 술안주거리로 올리는 까닭이 모두 거기에 있다. 우리는 아는 데로 살 수 없기 때문에 성찰하는 것이다. 가톨릭에서는 고해성사를 하기 전에 자신의 죄를 낱낱이 생각해내는 일을 성찰이라 부른다.
죽음 너머까지가 참깨의 삶이라면
두려운 것은 죽음이 아니다
죽음이란 존재의 소멸이다. 나란 존재가 소멸되는데 어떻게 그것조차 긍정하고 삶의 일부라며 견뎌낼 수 있을까? 삶은 무한의 허무를 반복(윤회)하는 것이므로 이 허무를 초극하기 위해서는 깨닮음을 얻어 부처가 되는 길밖에 없다는 것이 불교의 가르침이다. 니체는 이 같은 삶의 허무를 무한반복할지라도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고 말한다. "인간이 위대해지기 위해 내가 제안하는 공식은 '너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이다. 즉 현재의 자신 이외에는 아무 것도 되기를 바라지 않는 인간이 되라는 것이다. 미래에도 과거에도 그리고 영원히."
그렇기에...
세상의 가마솥에서
참
삶까지는 멀다
아미타불(阿彌陀佛)의 정토(淨土)인 극락(極樂) 가는 길이 어째서 나를 버리는 무아(無我)의 삼매(三昧)에 들어야만 하는지 시인은 말한다. 세상의 가마솥에 갇혀 비린내만 풀풀 풍기는 참깨 한 알에게는 극락 가는 길이 참으로 아득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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