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온 청춘에 보내는 송가4
- 송경동
광양제철소 3기 공사장
배관공으로 쫒아 다니다
잠시 쉴 때였다
10년 된 고물 프레스토를 빼서
폼잡고 다닐 때였다
읍내 정다방에 미스 오가 왔다
메마른 시골 읍내에 촉촉한 기운이 돌고
볕이 갑자기 쨍쨍해질 정도로 예쁜 아이였다
뻔질나게 다방을 드나들고
아침저녁으로 커피를 시켜 먹었다
어느 비 오던 날
낙안읍성을 다녀오는 차 안에서
사랑고백을 했다
그날 저녁 담장을 넘어
내 품으로 한 마리 고양이처럼
달겨들던 그녀, 열 아홉이었다
처음으로 성을 배웠던 시간들
빚이 져서 떠나가던 그녀
다시 빈털터리가 되어
어느 발전소 공사현장으로 떠나야 했던 나
아름다웠던 시간만을 기억하자고
깨끗이 돌아섰던 우리
돌아보면 아직도 거기 서 있는 그녀
* 황해문화, 2011년 겨울호(통권73호)
**
내게도 공사판 떠돌이로 살았던 시절이 있었지. 읍내 나가면 티켓 끊어주는 다방도 있었다. 여자를 사는 건 아주 쉽고 간편한 일이었을 텐데, 내가 돈을 주고 여자를 사지 않았던 건 어쩌면 내 신념이 강한 탓이 아니라 내 두려움이 너무 컸고, 너무 가난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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