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영 - 늙은 거미 늙은 거미 - 박제영 늙은 거미를 본 적이 있나 당신, 늙은 거문개똥거미가 마른 항문으로 거미줄을 뽑아내는 것을 본 적이 있나 당신, 늙은 암컷 거문개똥거미가 제 마지막 거미줄 위에 맺힌 이슬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나 당신, 죽은 할머니가 그러셨지. 아가, 거미는 제 뱃속의 내장을 뽑아서 거미줄을 만드는 거란다. 그 거미줄로 새끼들 집도 짓고 새끼들 먹이도 잡는 거란다. 그렇게 새끼들 다 키우면 내장이란 내장은 다 빠져나가고 거죽만 남는 것이지. 새끼들 다 떠나보낸 늙은 거미가 마지막 남은 한 올 내장을 꺼내 거미줄을 치고 있다면 아가, 그건 늙은 거미가 제 수의를 짓고 있는 거란다. 그건 늙은 거미가 제 자신을 위해 만드는 처음이자 마지막 거미줄이란다. 거미는 그렇게 살다 가는 거야.. 더보기 살육과 문명 : 서구의 세계 제패에 기여한 9개의 전투 - 빅터 데이비스 핸슨 | 남경태 옮김 | 푸른숲(2002) 살육과 문명 : 서구의 세계 제패에 기여한 9개의 전투 - 빅터 데이비스 핸슨 | 남경태 옮김 | 푸른숲(2002) ▶ 1975년 베트남 패망으로 사이공이 함락되면서 미 대사관을 통해 국외로 탈출하는 모습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썩 좋은 책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나름대로 독창적이고 재미난 식견을 보여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 "빅터 데이비스 핸슨"의 책 "살육과 문명 - 서구의 세계 제패에 기여한 9개의 전투"을 읽는 건 그 자체론 조금도 위협적이지 않으며, 이 책을 누군가에게 집어던져 운 나쁘게 정수리를 찍히거나 혹시 급소에 일침(一鍼)이라고 잘못 맞지 않는한 약간의 상처는 남겠지만 죽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거다(책이 두꺼운 관계로 살인무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혹여라도 이것을.. 더보기 대학.중용 강설 - 이기동 옮김 | 성균관대학교출판부(2006) 대학.중용 강설 - 이기동 옮김 | 성균관대학교출판부(2006) 『소학(小學)』과 『대학(大學)』 그리고 독서정한(讀書定限) 올해의 목표이자 내 나름대로 설정한 고전 독서의 첫 단추를 『대학(大學)』 공부로 시작하기로 결심했었다. 2008년 한 해의 결심이자 내 삶의 한 결절(結節)을 이루는 지점이 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유교문화연구소 소장이기도 한 성균관대 이기동 교수의 강설(講說)로 이루어진 『대학 ․ 중용 강설』은 유교 경전과 한자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인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사서삼경(四書三經)’을 풀이한 강설 시리즈의 첫 번째 권이다. 이 시리즈가 일반인들에게 비교적 널리 알려진 『논어(論語)』보다 앞서 『대학』을 첫 권으로 한 까닭은 실제로 조선시대에도 유교경전.. 더보기 인천대교의 아름다운 교훈 - <인천일보>(2008.12.22.) 인천대교의 아름다운 교훈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인천 시민들에게 인천대교 상판 연결은 특별한 감회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인천대교는 인천 앞바다를 가로질러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와 제2경인고속도로를 잇는 다리로, 대한민국의 관문인 인천국제공항과 송도국제도시를 연결할 예정이다. 인천대교는 왕복 6차로에 총길이 21.270k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다리이며, 800m에 이르는 주경간 폭은 세계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주탑의 높이는 국내 최고 높이인 63빌딩 보다 10m 낮은 230.5m이고, 선박이 주로 통항하게 될 교량과 수면의 높이는 74m에 달한다. 2009년 10월 개통을 목표로 마무리 작업 중인 인천대교는 동북아중심국가로 성장해나갈 대한민국과 인천시를 세계에 널리 알릴 상징물이다. 이 밖에도 인천.. 더보기 허수경 -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 허수경 이름 없는 섬들에 살던 많은 짐승들이 죽어가는 세월이에요 이름 없는 것들이지요? 말을 못 알아들으니 죽여도 좋다고 말하던 어느 백인 장교의 명령 같지 않나요, 이름 없는 세월을 나는 이렇게 정의해요. 아님, 말 못 하는 것들이라 영혼이 없다고 말하던 근대 입구의 세월 속에 당신, 아직도 울고 있나요? 오늘도 콜레라가 창궐하는 도읍을 지나 신시(新市)를 짓는 장군들을 보았어요 나는 그 장군들이 이 지상에 올 때 신시의 해안에 살던 도룡뇽 새끼가 저문 눈을 껌벅거리며 달의 운석처럼 낯선 시간처럼 날 바라보는 것을 보았어요 그때면 나는 당신이 바라보던 달걀 프라이였어요 내가 태어나 당신이 죽고 죽은 당신의 단백질과 기름으로 말하는 짐승인 내가 자라는 거지요 이거 긴 세기의 이.. 더보기 도박묵시록 카이지(총 39권) - 후쿠모토 노부유키 | 학산문화사 도박묵시록 카이지(총 39권) - 후쿠모토 노부유키 | 학산문화사 후쿠모토 노부유키의 "도박묵시록 카이지"는 내가 좋아하는 만화라고는 결코 할 수 없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노부유키의 그림체는 아무리 보아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더 잔인하게 말하면 싫어하는 그림체다. 내가 좋아하는 그림체는 "Arms, 스프리건"의 작가 "료우지 미나가와", "헬싱(Hellsing)"의 "히라노 코우타" 스타일이다. 하지만 후쿠모토 노부유키의 작품들이 주는 충격은 이 모든 것을 상회하고도 남는다. 1958년생 개띠인 만화작가 후쿠모토 노부유키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극(極)"이라 할 수 있다. 사실 후쿠모토 노부유키의 작품 "무뢰전 가이"를 보고 정말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는데, 워낙 그의 그림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더보기 진은영 - 70년대산(産) 70년대산(産) - 진은영 우리는 목숨을 걸고 쓴다지만 우리에게 아무도 총을 겨누지 않는다 그것이 비극이다 세상을 허리 위 분홍 훌라후프처럼 돌리면서 밥 먹고 술 마시고 내내 기다리다 결국 서로 쏘았다 출처 : 진은영, 『우리는 매일매일』, 문학과지성, 2008년 * ▶ 영화 중에서 주변에 복서를 했던 친구가 있던 덕에 잠깐이었지만 권투를 배웠다. 프로선수로 한두 번 링에 오른 뒤 권투하고는 영영 이별하고 뱃사람이 되겠다고 해대에 진학했다가 그것도 싫다고 그만두고 치기공사가 되어 이제는 이름조차 잊혀졌다. 나는 그에게 권투를 배우며 약간이나마 인생을 알 것 같았다. 상대에게 가장 빠르게 가 닿을 수 있는 주먹질은 스트레이트, 곧게 내뻗는 주먹이다. 어퍼컷이 멋있어 보이지만, 훅이 그럴듯해 보이지만 권투에.. 더보기 현실보다 무서운 교육은 없다 - <경향신문>(2008년 12월 11일) 현실보다 무서운 교육은 없다 나는 고등학교 때 데모를 했다. 대단한 운동권이었던 적도, 민주화시위를 열심히 하기는커녕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하기도 힘든데 나중에 들어보니 정보과 형사가 집까지 찾아와 학생이 요즘 공부는 열심히 하고 있는지 물어보고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후일담이긴 하지만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땐 등골이 오싹했다. 주민등록증에 빨간 두 줄이 그어지는 악몽까지 꿨으니 말이다. 나는 남들보다 특별할 것 없는 고교 시절을 보냈지만 그 중에서 유난히 기억에 남는 일은 국민윤리 시간에 선생님 얼굴을 벌겋게 달아오르게 해서 교무실까지 끌려간 일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단히 겁이 없었거나 눈치 없는 학생이었다. 국민윤리 수업 시간 중에 남북한의 통일 방안에 대해 공부했는데, 전두환 대통령이 북한에 .. 더보기 반항아 제임스 딘 - 도널드 스포토 | 한길아트(1999) 반항아 제임스 딘 - 도널드 스포토 | 한길아트(1999) “사람이 진정으로 위대해지는 것은 한 가지 경우뿐이다. 만일 사람이 삶과 죽음 사이의 간극을 넘을 수 있다면, 죽은 뒤에도 살 수 있다면 그 사람을 위대한 사람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어쨌거나 빠른 속도로 살아야 한다.”- 제임스 딘 언제던가 나는 “바람처럼 빨리 살고, 아직 젊을 때 죽어서, 아름다운 시체를 남기고 싶다. 그것이 나의 소망이다.”라고 일기장에 그렇게 적었던 적이 있다. 그 무렵의 나는 스스로 막장(漠場)이라 이름 붙였던 연립지하 단칸방 벽에 리바이스 청바지 회사에서 나온 제임스 딘의 커다란 포스터를 붙여 놓고 살았다. 내 방을 찾는 사람들은 간혹 뜻밖의 취향에 놀라곤 했다. 그랬다. 코카콜라를 마시는 일을 무슨 대단한 뇌물이.. 더보기 세기의 사랑 이야기(살림지식총서 91) - 안재필 | 살림(2004) 세기의 사랑 이야기(살림지식총서 91) - 안재필 | 살림(2004) 앞서 오승욱의 "한국 액션 영화"를 읽고 나서, 화장실에 갈 때 들고 간 책이 안재필의 "세기의 사랑 이야기"다. 화장실 가서 담배 두 대 피워문 동안 다 읽었다고 하면 심한 뻥이겠지만, 변비 있으신 분들은 필경 다 읽고 나올 수도 있겠다. 이유는 두 가지다. 쉽고 재미있으니까. 이 책은 살림지식총서 시리즈 중 한 권으로 전체 쪽수가 96쪽이다. 그러므로 맘만 먹으면(약간의 과장을 섞어서) 한 시간에 두 번 읽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 책의 제목만 안뜻 봐가지고는 내용을 파악하기에 어려움이 있다. "세기의 사랑 이야기"하면 누가 먼저 떠오를까? 왕위를 버린 윈저공과 심프슨 부인의 사랑, 비극으로 끝난 찰스 황태자와 다이애나 비의 사랑.. 더보기 이전 1 ··· 35 36 37 38 39 40 41 ··· 8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