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재 - 물의 결가부좌
물의 결가부좌 - 이문재 거기 연못 있느냐 천 개의 달이 빠져도 꿈쩍 않는, 천 개의 달이 빠져 나와도 끄떡 않는 고요하고 깊고 오랜 고임이 거기 아직 있느냐 오늘도 거기 있어서 연의 씨앗을 연꽃이게 하고, 밤새 능수버들 늘어지게 하고, 올여름에도 말간 소년 하나 끌어들일 참이냐 거기 오늘도 연못이 있어서 구름은 높은 만큼 깊이 비치고, 바람은 부는 만큼 잔물결 일으키고, 넘치는 만큼만 흘러넘치는, 고요하고 깊고 오래된 물의 결가부좌가 오늘 같은 열엿샛날 신새벽에도 눈뜨고 있느냐 눈뜨고 있어서, 보름달 이유는 이 신새벽 누가 소리 없이 뗏목을 밀지 않느냐, 뗏목에 엎드려 연꽃 사이로 나아가지 않느냐, 연못의 중심으로 스며들지 않느냐, 수천수만의 연꽃들이 몸 여는 소리 들으려, 제 온몸을 넓은 귀로 만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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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영 - 연(鳶)
연(鳶) - 오세영 위로 위로 오르고자 하는 것은 그 무엇이든 바람을 타야 한다. 그러나 새처럼, 벌처럼, 나비처럼 지상으로 돌아오길 원치 않는다면 항상 끈에 매달려 있어야 하는 것, 양력(揚力)과 인력(引力)이 주는 긴장과 화해 그 끈을 끊고 위로 위로 바람을 타고 오른 것들의 행방을 나는 모른다. 다만 볼 수 있었던 것, 갈기갈기 찢겨져 마른 나뭇가지에 걸린 연, 혹은 지상에 나뒹구는 풍선의 파편들, 확실한 정체는 모르지만 이름들은 많았다 마파람, 샛바람, 하늬 바람, 된 바람, 회오리, 용오름…… 이름이 많은 것들을 믿지 마라. 바람난 남자와 바람난 여자가 바람을 타고 아슬아슬 허공에 짓던 집의 실체를 나 오늘 추락한 연에서 본다 출처 : 『학산문학』, 2008년 가을호(통권 61호) * 오세영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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