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육과 문명 : 서구의 세계 제패에 기여한 9개의 전투 - 빅터 데이비스 핸슨 | 남경태 옮김 | 푸른숲(2002)


▶ 1975년 베트남 패망으로 사이공이 함락되면서 미 대사관을 통해 국외로 탈출하는 모습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썩 좋은 책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나름대로 독창적이고 재미난 식견을 보여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 "빅터 데이비스 핸슨"의 책 "살육과 문명 - 서구의 세계 제패에 기여한 9개의 전투"을 읽는 건 그 자체론 조금도 위협적이지 않으며, 이 책을 누군가에게 집어던져 운 나쁘게 정수리를 찍히거나 혹시 급소에 일침(一鍼)이라고 잘못 맞지 않는한 약간의 상처는 남겠지만 죽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거다(책이 두꺼운 관계로 살인무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혹여라도 이것을 18-19세기식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아니면 20-21세기에 이르러 미국인들이 생각하는 식으로 해석하는 이가 있다면, 그 결과는 아마 참혹할지도 모르겠다.

 

어째서 그런가? 찰스 다윈의 진화론이 지향했던 바가 인간 사회에 기계적인 적용이 아니었지만 일부 사회학자들은 이를 사회과학에 접목시켜 사회진화론이란 약육강식의 논리로 발전시켰고, 자유주의자들은 대중민주주의의 출현을 중우정치와 연관시켜 생각해 대중사회의 도래를 염려했다. 반드시 그 결과라고 할 수는 없으나 이런 사회 분위기는 대중민주주의의 한계를 타개할 새로운 정치 이념의 출현을 모색하게 만들었는데, 그렇게 해서 서구 사회가 출현시킨 이념은 파시즘이었다. 이 책의 한국어 제목이 "살육과 문명"이긴 하지만 원제는 "Carnage and Culture"다. "Carnage" 전쟁터 등에 즐비한 시체, 송장을 의미하는 말이고, 거기에 일반적으로 말하면 문화로 번역되기 마련인 "컬춰"가 붙었지만, 사려깊은 번역자를 만난 덕에 문명이란 말로 번역되었다.

 

저자는 전쟁을 연구하며 스스로 일종의 우월감에 빠졌나보다. 마치 실제 전장에 참여했다가 돌아온 참전병사들이 되뇌이는 것처럼 "너희들이 전쟁을 알아?"라고 말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전쟁이란 궁극적으로 이런 것이다, 라고 저자는 단정짓듯 말한다.

 

"전투에는 내재적인 진실이 있다. 전장에서의 평결은 위장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이를테면 전사자가 발생한 이유를 발뺌하거나, 비참한 패배를 승리라고 강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전쟁이란 전투의 합계이며, 전투란 결국 죽은 사람들의 합계에 불과하다. ...<중략>... 궁극적으로는 기관총탄이 어느 청년의 이마를 뚫고 들어갔다든가, 칼날이 어느 이름 모를 갈리아인의 배를 찔러 동맥이나 장기를 베었다든가 하는 서술을 가리킨다. 다른 식으로 전쟁을 이야기하면 오히려 부도덕한 냄새가 풍긴다. 그 경우에는 적의 공격을 받은 병사들이 사지가 찢어져 죽었는데도 그냥 평화로이 숨진 것이 되고, 장군들이 열아홉살짜리 청년들을 포연이 가득하고 납총탄이 날아다니는 전장으로 내몰았는데도 마치 비인격적인 부대나 로봇들을 전장의 열기 속으로 뛰어들라고 명령한 것처럼 되며, 악취 풍기는 시신이 과학이나 문화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듯 보이게 되는 것이다." <본문 29-30쪽>


 
▶ 빅터 데이비스 핸슨은 세계전쟁사 중에서 7개의 전투에서 서구의 우월한 문명이 궁극적인 승리를 가져왔다고 주장한다. 그 중 한 가지 전투인 제2차 세계대전 중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군에게 공격당한 미 항공모함 요크다운 함상의 모습이다.

일견, 저자는 학문적인 입장에서만, 혹은 가치중립적인 관점을 유지하는 듯 보인다. 아니, 위의 어느 문장들만 읽노라면 도리어 전쟁의 부도덕한 속성을 꾸짖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저자의 관점은 그리 녹록치 않다. 그 뒤이어 같은 페이지에 나오는 다음 단락을 살펴보자.

 

"우리는 죽은 자를 위해서라도 어떻게 정치, 과학, 법, 종교가 한데 어우러져 전장에서 수천 명의 운명을 결정하는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지를 설명할 필요가 있다. 걸프 전쟁 때 미국의 스마트 폭탄을 발명한 사람, 그 제조 공장을 세운 사람, 그것을 명령하고 접수하고 비축하고 폭격기에 탑재한 사람, 이 모두가 적대국인 이라크와는 다른 방식으로 가능했으며, 그런 탓에 사담 후세인의 군대에 징집된 무고한 젊은이들은 공격을 피할 기회도 거의 갖지 못한 채 죽거나, 영웅적인 항전을 벌이다가 전사하거나, 자신을 죽인 비행기 조종사를 죽이고자 했다. 이라크 젊은이들이 왜 미국 헬리콥터에 장착된 불빛이 번쩍이는 멋진 비디오 계기판의 목표물이 되었는지, 그리고 왜 그 반대는 아닌지, 혹은 추운 미네소타 출신의 GI가 왜 무더운 바그다드 인근에서 징집된 병사들보다 사막 전투에 더 능했는지는 주로 문화적 유산의 결과일 뿐 군사적 용기의 차이는 아니며, 지리나 유전자 때문에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은 더더욱 아니다. 전쟁은 궁극적으로 학살이다. 역사가들이 죽은 자를 무시한다면 전쟁 이야기는 무의미해지게 된다."<본문 30-31쪽>

 

여기서 저자의 전쟁에 대한 궁극적인 정의가 윤곽을 드러낸다. 그것은 단 한 마디 "전쟁은 학살"이란 말이다. 그가 앞서부터 내리 줄곧 주장하는 관점은 오직 한 가지다. 전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승리이고,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선 칼날이 갈리아인의 배를 푹 찌르던, 헬리콥터가 무기를 버리고 달아나는 이라크 공화국 수비대원들을 등 뒤로부터 갈겨대던 상관없이 적을 쏘아 죽이고, 찔러 죽이고, 폭파시켜 죽여서 궁극적으로 전쟁의 본질인 학살을 효과적으로 수행하여 승리를 거두는 것이다. 그는 스스로 이런 관점에서 전쟁을 살펴볼 것이라고 말한다. 거기엔 어떤 인종적 편견도 없음을 누차 강조한다. 그의 관심은 인종적, 신체적 차이에 의해 전쟁의 승패가 가늠하는 것이 아니라 군사 체제를 산출시킨 정치 체제와 그런 정치 체제를 배태한 그 사회의 문화와 사상, 정신을 아우르는 하나의 문명 체계를 고찰해본 뒤 이를 서구와 전쟁했던 다른 세계, 다른 문명과 비교해서 과연 어느 문명이 전쟁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는데 우수한 문명체계인가를 드러내 보이겠다는 것이다. 그것도 순수하게 학문적인 관심사로써...

 

저자의 의도는 프롤로그 제목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서구는 왜 승리했는가?" 이런 제목을 읽노라니 이와 비슷한 관심에서 출발한 다른 책, "제레드 다이아몬드""총, 균, 쇠"가 있는데, (지정학적인 관점이란 다소의 비판은 가능하겠지만)품격이란 측면에선 서로 비교할 수 없다. "전쟁"을 통해 문명사의 변천 혹은 "전쟁"이 문명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쳐는지란 측면에서 보자면 이 책의 저자인 "빅터 데이비스 핸슨"보다 대선배격인 "스티븐 앰브로즈" "만약에 1 - 군사 역사편"이 있다. "빅터 데이비스 핸슨""살육과 문명"을 통해 서구의 세계 제패에 기여한 9개의 전투를 조목조목 따지고 있다면 "스티븐 앰브로즈"는 서구의 전쟁 17개를 통해 만약 이 전쟁(투)의 승패가 엇갈렸다면 세계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를 묻고 있다.

 

우리는 우선 저자의 사관에 몇 가지 비판을 가할 수 있다. 그의 사관이 철저히 승자의 관점에서만 고찰되고 있다는 점이고, 둘째는 전쟁이 아닌 전투라는, 총체적인 관점이 아닌 소규모 단위로 한정짓고 있다는 점, 셋째는 전쟁과 문명의 연관성을 파헤치는 것은 좋으나 전쟁에서의 승리를 상대 문명에 대한 우월로 인식하는 점이다. 특히 세 번째 비판은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관점과 상당히 배치되는 것으로 전투기술적으로 우월한문명의 열등한 문명에 대한 지배를 정당화하는 측면이 있다. 나 역시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의 전체주의가 서구의 민주주의보다 전쟁력을 동원하는 측면에서 자발적인 면, 창의적인 면, 책임지는 자세 등에서 뒤떨어졌고, 그 결과 전쟁에서 패했다는 관점에는 동의할 수 있다. 그런데 그 표본이 반드시 서구와 비서구 지역의 전쟁에서만 찾을 일은 아니다. 단적인 예를 들어 그런 전쟁은 전략전술에 있어 평범하지만 성실한 학생(몽고메리)에 비견되는 영국군과 기발한 발상과 천재적인 전술(롬멜)을 보여준 독일군과의 전투 혹은 전쟁에서도 찾을 수 있다.

 

만약 저자의 진술대로라면 제2차 세계대전의 동부전선에서 소련군이 독일군을 물리친 것은 우파 전체주의에 대한 좌파 전체주의의 탁월한 문명적 승리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저자는 세계 역사 속에 벌어진 무수한 전투 가운데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 쉬운 몇몇 전투만을 예시로 들고 있으며, 그 가운데 일부 전투는 분명히 서구의 문명적 우월함을 증명하는데 적절해보이지 않거나, 서구의 문명이란 결국 그렇게 잔혹한 것에 불과하다는 결론밖에 도출할 수가 없다. 저자는 자신의 논리를 주장하기 위해 주변의 그런 인식엔 신경쓰지 않겠다는 투로 밀고 나간다. 빅터 데이비스 핸슨은 베트남전의 "테트 공세"도 궁극적인 승리는 미국에 있었던 것처럼 주장하는 더할 수 없는 아전인수를 보여준다.



 

"일방적이고 편향적인 보도를 본국에 보낸 언론인들의 의도가 미국의 정치적, 군사적 명령 체계의 모순을 지적하려는 데 있는 것은 아니었겠지만, 그 결과는 마찬가지가 되어버렸다. 자유언론과 자기 비판을 허용하는 오랜 서구적 전통은 결국 베트남에서 미국의 체면을 구겨버렸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자체를 구겨버리지는 않았다. 공산주의자들은 전쟁에서 이겼지만 평화를 누리는 대신 국민들을 학살하고 국가경제를 파괴했다. 폐쇄적이고 검열을 위주로 하는 사회의 필연적인 귀결이었다. 반면에 미국은 자기 비하적인 성향에도 불구하고 전쟁에서는 졌으나 평화를 얻었다. 그 결과 미국식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전에 없이 많은 지지자들을 얻었고, 개혁 군대도 더욱 힘을 얻게 되어 시련을 겪은 뒤 더욱 강해졌다."
<본문 708쪽-709쪽>

 

저자는 다시 에필로그에서 자신의 주장대로 베트남전 패배의 후유증을 극복한 미국이 치른 이라크 전쟁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라크 병사들은 규율과 조직이 형편없었을 뿐 아니라 정확한 의미에서 자유로운 개인이 아니었다. 서구 군대를 상대한 이라크의 공화군은 일찍이 크세르크세스가 거느렸던 불사의 군대와 비슷했다. 미군이 제트기에 의해 사살된 병사들 중 아무도 쿠웨이트를 침공하거나 미국과 싸우는데 투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사담의 군사 작전은 그 자신 이외에 다른 누구의 검토도 받지 않았고, 그의 경제는 가내공업의 연장이었다." <본문 729쪽>

 

저자의 저와 같은 주장을 읽으며 무슨 생각이 들었느냐 하면, 미국식 민주주의란 것이 결국 저와 같이 침략전쟁을 정당화하는 수단에 불과하다면 애써 미국식 민주주의를 수용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것이다. 게다가 미국의 부시 대통령도 이라크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 국민들에게 투표로 의사를 물은 적이 없었다. 그 자신조차 고어 후보와의 표대결에서 꼭 승리했다고 말할 수 없다는 걸 세계인들은 누구나 알고 있지 않은가. 미국은 저자의 말대로 가내공업 수준밖에 안되는 이라크가 (미국이 생난리를 친 끝에도 결국 찾아내지 못한)대량살상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혐의를 붙여 선전포고 없는 경제봉쇄조처를 통해 전쟁 발발 이전부터 이미 100만 명 이상의 이라크인을 죽였고, 그 잘난 미국식 민주주의란 것이 전쟁수행을 위해 자국국민과 우방국 국민들에게 허위로 가공된 정보를 제공하고, 위협을 통한 공포를 부추겨 결국 전쟁을 일으키고 마는 그런 것이란 사실을 과연 이 잘난 저자는 얼마나 알고 있는 건지 궁금하다. 빅터 데이비스 핸슨은 학문의 외피를 뒤집어 쓴 또 하나의 명백한 운명론자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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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마스터 키튼 세트(1~18) - 우라사와 나오키 그림 | 가쓰시카 호쿠세이 스토리 | 대원씨아이(2004)




"우라사와 나오키"란 이름은 90년대 중후반부터 우리에게 익숙해지기 시작한 일본의 만화작가이다. 내가 우라사와 나오키를 처음 알게 된 것은 "파인애플 아미(Pineapple Army, 1986)"를 통해서 였다. 이 작품에서 "파인애플"의 의미가 무엇인지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확실한 건, 파인애플이란 미국식 그레네이드(수류탄)의 별명이란 거다. 이 작품을 보면서 처음에 굉장히 낯설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그 무렵 소개되던 일본 만화의 거의 태반이 아동만화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들인데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그림체 또한 당시 만화선들보다 다소 굵고, 거칠고 인물 캐릭터 묘사도 예쁘다기보다는 평범한 느낌이어서 도리어 그런 부분들이 매우 낯설게 여겨졌다. 다만 우라사와 나오키가가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신선한 느낌인 사실적인 무기 묘사, 전문가 수준의 서바이벌 파이팅 기술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었다(서바이벌 게임 말고, 서바이벌이란 극한 상황과 지역에서 생존하는 기술을 의미한다).

 

"마스터 키튼"은 내 개인적으로는 약간 특기할 만한 작품이다. 우선 다시 만화를 읽기 시작하면서 내 평생 처음 사들인 만화책이기 때문이다(이후 우라사와 나오키의 "몬스터, 20세기 소년", 요시다 아키미의 "바나나 피쉬" 등을 사들였다). 만화책에 대해 특별한 폄하는 없었지만 이전까지는 돈을 들여 사놓고 집에 보관하면서 읽는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만큼 "마스터 키튼"의 사실적인 묘사와 탄탄한 구성력, 지적이면서 인간적인 재미는 나를 사로잡았다. "마스터 키튼"의 무엇이 그렇게 재미있었을까? 이 작품이 주는 재미의 원천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본다.

 

▶ 세계 모든 특수부대의 아버지라 불리는 영국의 SAS 휘장: Who Dares Wins

아동용 그림책의 일러스트를 문학 장르에 비유하면 시(詩)에 비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아동용 그림책은 대개 24쪽 내외로 한장한장의 그림에 상징과 함축된 의미를 담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만화는 내러티브와 화면 구성 등을 살펴보면 쉽게 영화에 비유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만화를 대체로 구분없이 사용하지만 크게 카툰과 코믹스로 분류할 수 있고, 코믹스 내에서도 극화체와 만화체의 구분을 둔다. 대개의 일본 만화들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극화체 중간중간에 코믹한 요소들은 만화체를 사용하는 방식을 오간다. "마스터 키튼"에선 이런 코믹한 만화체 사용은 전무하다. 그런 점에서 "마스터 키튼"은 완전한 성인용 만화라고 할 수 있다. 성인용 만화라고 하면 대개 섹스와 폭력이 끈적끈적하게 묻어나는 것을 연상할 수 있지만, "마스터 키튼"은 아무리 점잖은 자리에 가더라도 펼쳐놓고 읽는데 전혀 거리낄 것이 없다. 도리어 신문에서 알려주지 않는 내용, 외신의 행간을 잘 짚어봐야 해석가능한 사건들을 일러주는 교양이 녹아 있다.

 

"마스터 키튼"이 주는 첫번째 재미는 이것이 성인용 만화라는데 있다. 예를 들어 "마스터 키튼" 6권 '위선의 유니온 잭'에는 영국SAS와 아일랜드 IRA 사이의 일상화된 테러 이야기를 주요 에피소드로 삼고, 8권 "표범 우리"에서는 영국이 참전했던 걸프전쟁을 배경으로 한 에피소드를 담는다. 경우에 따라 "마스터 키튼"이 보여주는 균형잡힌 정의는 진실한 정의에 해당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작품이 보여주는 내용은 동의할 만한 수준의 것들이다. 다이치 키튼 자신은 이혼당하여 딸 하나를 둔 시간 강사다. 그는 도나우강 문명이란 고고학 분야의 소수의견를 주장하는, 그래서 학문적으로는 높이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지식인이자 전직 SAS 서바이벌 교관, 현재는 로이드 보험사의 직원이다. 그의 직업이나 생활이 성인이라서 이 작품이 성인용은 아니다. 우라사와 나오키는 스토리 작가 가쓰시카 호쿠세이와 더불어 인문학적인 교양이 녹아든 지적 재미를 만끽하게 해준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은 성인용이 된다.

 

▶ "마스터 키튼"의 주인공 '다이치 키튼'. 겉보기에 사람 좋게 웃고 있는 보험조사원이지만 영국특수부대(SAS) 출신의 서바이벌 마스터이자 고고학자로 '스펙'만 놓고 보자면 007의 제임스 본드 쯤 되려나~

 

"마스터 키튼"이 주는 두번째 재미는 주인공 "다이치 키튼"이 보여주는 균형잡힌 시선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자면 키튼의 캐릭터가 선사하는 재미라고 할 것이다. 키튼은 일본인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다. 동양과 서양의 혼합이 반드시 이 양자 사의 절묘한 배합을 이뤄낸다고 할 수는 없지만, 키튼의 경우에 한정해보자면 이 양자가 적절한 정도로 배합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서구의 합리성과 동양의 인간미를 한 몸에 녹아들이고 있다. 그는 양측의 세계에 모두 속해있지만, 동시에 약측의 세계로부터 일정하게 거리를 둔 인물이다. 그는 어느 부류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소외의 대상이지만, 스스로 자초한 고립이라는 점에서 또한 강자이다. 이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개인주의와도 일맥상통한다. 많은 이들이 조직에 소속되길 원치 않지만, 실력있는 자로 대접받고 싶어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마스터 키튼"은 이런 시선을 통해 소수자에 대한 다수의 폭력을 보여주는데, 네오 나치들에 의한 터키인 차별을 다룬 "검은 숲"에서 잘 드러난다.

 

세번째 재미는 "마스터 키튼"의 사실성이다.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소설들 "다빈치 코드"와 같은 것들은 전문적인 지식이 없어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만, 전문적인 지식을 쌓으면 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이런류의 소설을 사실(fact)와 소설(fiction)을 합성해서 팩션(faction)이라고 한다는데,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읽노라면 저절로 중세 교회와 수도원의 모습, 종교재판, 당시 사람들의 심리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스터 키튼의 사실성은 우선 그림의 배경이 되는 유럽 곳곳의 풍광 묘사가 매우 사실적이라는데 있다. 키튼이 행동하는 지역이 상당히 여러 곳이란 점을 고려해보면  이런 사실적인 묘사는 충분한 사전조사 없이는 불가능해 보인다(그는 이런 조사를 바탕으로 "몬스터"에서는 더한층 깊어진 묘사력을 보여준다). 그러나 "마스터 키튼"의 사실성이 단순히 배경 묘사 정도에 머무는 것은 아니다.

 

우선, 마스터 키튼 자신이 지닌 놀라운(?) 서바이벌 능력과 인문학적 지식에 바탕한 그럴듯한 이야기들이 지닌 사실성은 매력을 더해준다. 우선 키튼이 SAS(Special Air Service)의 서바이벌 교관 출신이고, 포클랜드 전쟁에 참전했던 베테랑이란 설정은 미국 중심에 익숙해 있는 이들에겐 참신하면서 매우 적절한 설정으로 보인다. SAS를 우리말로 직역해보면 공군특수부대 혹은 공정부대 정도가 될 텐데, SAS는 그렇게 간단하게 설명될 수 있는 부대가 아니다. 오늘날 세계에는 수많은 특수부대가 존재하는데 그 종류가 가장 다양한 나라는 물론 미국이지만, 모든 특수부대의 아버지라고 일컬을 만한 존재는 영국의 SAS이다. 제2차 세계대전 초기 덩케르크에서 치욕적인 철수를 할 수밖에 없었던 영국은 국민의 사기를 높이고 추축국에 타격을 가하기 위해 특수부대를 계획한다.

 

이때 생겨난 부대가 오늘날 특수부대란 보통명사로 사용되는 "코만도"인데, 이들 가운데 현존하는 것이 영국의 SAS와 SBS이다. 이 가운데 "돌진하는 자가 승리한다(who dares win)"는 모토를 지닌 SAS가 가장 유명하다. 특히 이들의 명성을 높이게 된 사건은 지난 1980년 5월 런던 주재 이란대사관 인질 구출 작전을 통해서였다. SAS는 헬기를 통해 대사관 지붕으로 내려와 대사관 내부로 잠입한 뒤 테러범 6명 중 5명을 사살하고, 진입 전에 살해당한 1명을 제외한 19명의 인질 모두를 무사히 구출해낸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엔 미군 레인저부대가 SAS에 의해 교육받았고, 전후엔 독일 GSG-9 등을 교육했다. SAS는 대테러작전에 필요한 전술교리는 물론 이때 필요한 무기들을 개발하여 세계의 대테러부대에 보급하기도 했다. 이들은 대테러작전에만 임하는 것이 아니라 본래 임무인 군 작전에도 참여하였는데, 1980년 아프가니스탄에선 무자헤딘을 교육시켰고, 1982년 포클랜드 전쟁, 1991년 걸프전 등에 참전했다.

 

사실, 우라사와 나오키의 "마스터 키튼"이 지닌 사실성은 그 자신의 관심과 전문지식도 중요했지만, 그의 작업을 도와주는 여러 전문가 그룹이 존재하는 덕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모든 재미의 요소들도 "마스터 키튼" 자신이 지닌 매력에는 비교할 수 없다. "마스터 키튼"은 한 권 당 서너 개의 독립된 에피소드로 구성된 옴니버스 방식의 작품이다. 그 탓만은 아니겠지만 특정 장르로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에피소드들은 그 특성에 따라 여러 장르로 분화될 수 있는데, 작품을 읽다보면 마치 종합선물세트를 풀었을 때 느낌 같다.  추리, 미스테리, 액션, 휴먼 드라마 등 온갖 장르들이 뒤섞여 있다. 이렇듯 온갖 장르의 혼합이 가능한 것은 "다이치 키튼"이란 캐릭터가 지닌 독특한 성격과 개방성에서 유래한다. 혹자는 "마스터 키튼"을 '셜록 홈즈' '맥가이버' '인디아나 존스'를 한데 버무린 듯한 이라고 묘사하는데, 물론 이 말들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지만 "마스터 키튼"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들을 고려했을 때 이 사람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유감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그는 바로 이제는 고인이 된 "피터 포크"가 열연했던 "형사 콜롬보"다.

 

"마스터 키튼"의 주인공 캐릭터의 개방성은 고고학 박사, 지식인, SAS특수부대원, 일본과 영국의 혼혈, 로이드 보험조사원 등 어느 것을 해도 어울리지만, 동시에 어느 것도 어울리지 않는다는 그만의 캐릭터를 구성해낸다. 그는 고고학박사지만 난 척하지 않고, 전직 특수부대원 출신이지만 우락부락한 근육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의 국적 역시 작중 인물들조차 헷갈려 할 만큼 모호하다. 이런 모호함은 특히 겉보기에 어수룩해 보이고, 그가 결코 이길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억센 인물들과 겨루어야 하는 위기 상황에서 더 큰 빛을 발휘한다. 어디선가 많이 본듯한 포즈다 싶었는데, 형사 콜롬보와 매우 흡사하다. 털털이 시보레를 손수 운전하고 다니는 형사 콜롬보, 어깨는 축 처져 있고, 두 눈은 졸음에 찌들었다. 누런 트렌치코트 어깨 위엔 비듬이 수두룩할 것 같은 졸린 눈의 이 형사는 늘상 자신보다 뛰어난 지능과 지위, 권력과 부를 지닌 이들과 겨루어야 한다. 범인들은 그의 외모를 바라보며 마음 속으로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그런데 결과는 콜롬보의 승리다. 마스터 키튼의 승리는 이런 어리숙함, 선량함에 의해 더욱 빛이 난다. 이는 또한 키튼의 인간미를 더해주어 "마스터 키튼"의 전체 이야기구조를 강화시켜주는 미덕을 지닌다.

 

◀ 마스터 키튼의 주요 등장인물들

 

이외에도 자칫 단조로와지기 쉬운 옴니버스 방식의 이야기들에 재미를 더해주는 적절한 조역들이 등장한다. 같이 보험조사원 일을 하고 있는 다니엘,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지만 실제로는 매우 신사적인 아버지 히라가. 아버지보다는 어머니를 닮아 명석한 키튼의 외동딸 유리코, 키튼의 어린 시절 친구이자 마치 영화 "그랑 블루"에서 장 르노가 연기했던 엔조(Enzo)를 연상케하는 캐릭터인 찰리 등이 이야기의 재미를 더한다.

 

그렇다고 "마스터 키튼"에 장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우선 그의 균형잡힌 시선이 때로 강박처럼 여겨질 때가 있는데, 균형이란 말만큼 정치적으로 위태로운 감각도 드물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예를 들어 정치적으로 민감할 수 있는 사안을 취급할 때 마스터 키튼은 선택을 한다기 보다는 그 양자 사이에 그냥 놓여진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이것은 균형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방관일 수 있다. 그의 이런 방관적인 자세는 "마스터 키튼"의 휴먼드라마가 얕은 성찰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한계로 작용한다. 실제로 다이치 키튼은 영국도 일본도 아닌 코스모폴리탄처럼 그려지지만 작품의 내용은 주로 근현대사 속에서 영국이 저지른 실책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그 과정에서 키튼의 일본인 아버지 히라가는 적절한 조언자 역할을 담당한다. 하지만 전체 18권이 진행되는 동안 단 하나의 에피소드도 일본의 실책을 다룬 것이 없으며, 일본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도 느낄 수 없다. 또 한 가지는 이야기가 18권에 이르는 동안 이야기 패턴이 익숙해져 버리는 바람에 극적인 긴장감이 떨어지는 부분이다.

 

이런 점들을 고려한다 하더라도 대중만화에서 쉽게 다루기 어려운 인종차별, 전쟁, 역사 등을 작품 속에 적절히 녹여 지적인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솜씨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이 작품만의 뛰어난 매력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아직 읽어보지 못한 분들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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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전쟁의 탄생 - 누가 국가를 전쟁으로 이끄는가, KODEF 안보 총서 15 - 존 G. 스토신저(John G. Stoessinger) | 임윤갑 (옮긴이) | 플래닛미디어(2009)

전쟁 종전일이 아닌 전쟁 발발일을 기념하는 기묘한 국가,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지만 한동안 전쟁을 먼 나라, 남의 이야기처럼 여겨왔던 오만의 결과일까. 한국전쟁 60주년을 맞이했던 2010년 한 해 동안 전쟁의 기운이 검은 안개처럼 한반도에 스며드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


누가 왜 국가를 전쟁으로 이끄는가?

국제정치학 분야에서 오랫동안 학자로 연구에 전념해왔고, <포린 어페어(Foreign Affairs)>의 편집자로 국제연합(UN)에서 정치국 국장으로 활동하며 현장 경험도 풍부하게 쌓았던 존 G. 스토신저(John G. Stoessinger)의 『전쟁의 탄생 - 누가 국가를 전쟁으로 이끄는가(Why Nations Go To War)』를 읽었다. 2009년엔 『전쟁의 탄생』 말고도, 갈라파고스 출판사에서 다케나카 치하루가 쓴 『왜 세계는 전쟁을 멈추지 않는가?』도 출간되었는데, 전쟁 발발의 근본원인에 대한 사회학적인 분석이란 점에서 이 두 권의 책은 이전(2007, 아카넷)에 나온 케네스 월츠(Kenneth Waltz)의 『인간 국가 전쟁(Man, the State and War)』과 함께 비교해가며 읽어볼 만하다.


전쟁의 역사가 곧 인류의 역사였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고, 전쟁의 원인을 찾아 제거하거나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인류의 지혜 역시 끊임없이 발전해 왔다. 앞서 언급한 케네스 월츠는 ‘전쟁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인간의 본성, 사회 또는 국가의 특성 그리고 국가체제의 구조적 특성을 연구함으로써 전쟁을 인간적 수준, 국가 ․ 사회적 수준 그리고 국제체제적 수준으로 분석’했다. 존 헤르츠(John Herz)는 국가 내부의 경쟁을 조율하는 정부가 존재하는 것처럼 국가 간의 경쟁을 조율해줄 수 있는 기관이 없기 때문에 서로 경쟁하는 가운데 필요이상의 긴장이 고조되는 악순환이 반복되어 전쟁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보았고, 오르간스키(A. F. K. Organski)는 2위 국가가 1위 국가(헤게몬)로 전환하려는 가운데 전쟁 발발 가능성이 증대된다고 보았지만 전쟁의 원인은 인류 역사상 벌어진 전쟁의 숫자만큼 다양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존 G. 스토신저(John G. Stoessinger)는 전쟁의 원인에 대해 지금까지의 전통적 - 전쟁이 인간 ․ 사회가 통제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어떤 상황이나 인간 본성, 체제, 경제적 요인과 같은 근본적인 요인에 의해 발생 - 인식을 대신하여 그것이 결국 인간의 문제이며 그 중에서도 사회의 지도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지도자(리더)의 역할에 주목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전쟁의 탄생 - 누가 국가를 전쟁으로 이끄는가』란 국내 제목이 『Why Nations Go To War』라는 영어 원제보다 저자가 추구하려는 진실에 좀더 근접해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물론 이 책에서 저자가 ‘누가 왜 국가를 전쟁으로 이끄는가?’라고 물을 때 ‘왜?’에 대한 답은 그때그때 경우에 달라지겠지만 ‘누가?’에 대한 답은 언제나 ‘지도자’가 될 것이다.


집단적 범죄와 지도자의 결정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대학 국제외교학과의 존 G 스토신저 교수는 『전쟁의 탄생』에 대해 지금까지 살펴본 몇몇 가지의 것만으로도 우리는 그가 미국 중심의 주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인물로 판단하기 쉽다. “전쟁을 일으키는 데는 외부 요인 못지않게 해당 결정을 내린 지도자도 중요하다”고 말한다는 점에서 그는 엘리트주의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는 인물로 비춰지기도 쉽다. 게다가 ‘스토신저’라는 그의 성(姓)을 보면 헨리 키신저(Henry Alfred Kissinger)처럼 그가 유대계 미국인이라는 것도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서장」에서 자신이 전쟁의 발발 원인으로 지도자를 중시하게 된 계기에 대해 설명하면서 자신의 가족사에 대해 간략하게 이야기한다.


그는 히틀러가 오스트리아를 병합할 무렵 그의 가족과 함께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서 살고 있었다. 스토신저의 계부는 히틀러 통치하의 오스트리아는 너무 위험하단 이유로 체코 프라하로 떠났지만 그마저도 점령당하자 어떻게 해서든 히틀러와 나치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다가 결국 중국대사관을 통해 비자를 받아냈고, 소련을 통과해 일본까지 넘어가는 극적인 여행을 경험하며 살아남을 수 있었는데, 오랫동안 유럽에서 살고 있던 스토신저 일가가 유럽의 집단적 광기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일본판 오스카 쉰들러(Oskar Schindler)나 라울 발렌베리(Raoul Wallenberg)로 평가받는 외교관 스기하라 치우네((杉原千畝)의 도움 덕분이었다.


존 G. 스토신저는 그와 같은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집단적 범죄와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어둠의 시대에도 우리의 인간성을 재확인하면서 심지어 가장 완벽한 방식으로 악마와 맞서려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심연 속에서도 도덕적인 용기는 여전히 살아 있으며 항상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고 있다”고 말한다. 아마도 그의 이와 같은 개인적 체험은 집단으로서의 인간이 아닌 개개인의 인간이 지닌 용기와 선택의 문제에 대해 주목하고 신뢰하게 되는, 다시 말해 훌륭한 인간이 지도자가 된다면 전쟁을 피할 수도 있으리라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스토신저는 정치나 경제적인 요인들이 전쟁의 ‘징후’를 몰고 올 수는 있어도 전쟁 수행의 ‘결정’을 직접 내리는 것은 결국 사람이기 때문에 그는 바로 ‘지도자’들이 전쟁을 해야겠다고 마음먹는 ‘그 순간’이 벌어지는 요인에 주목한다. 이 부분이 존 G. 스토신저를 이전의 다른 학자들과 구분되게 만드는 요인이면서 동시에 그의 학문적 엄밀성을 약화시키는 지점이기도 하다.


제1차 세계대전부터 새로운 세기의 새로운 전쟁에 이르기 까지

존 G. 스토신저는 전쟁 발발 요인을 지도자에게 주안점을 두어 분석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책임을 지도자에게만 묻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20세기와 21세기에 걸쳐 일어났던 주요 전쟁의 배경과 개별적 원인을 분석하고 그와 같은 상황들 속에서 지도자들이 전쟁을 결정하게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살피고 다시 이를 개념화하여 정리하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을 다루고 있는 1장 「철의 주사위」 편에서 그는 장차 세계대전으로 비화될 개전 선언 이전까지도 이 전쟁이 수년간에 걸쳐 장기화되리라고 예측한 사람이 소수에 불과하며 아이러니하게도 그 중 하나가 당시 독일의 참모총장 헬무트 폰 몰트케(Helmuth von Moltke)였음을 지목한다. 독일의 빌헬름 황제는 섣부르게 오스트리아를 지원하기로 결정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사촌이기도 한 러시아 황제가 섣부르게 전쟁에 참여하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니콜라이 2세는 그의 이런 기대와 달리 세르비아를 지원하기 위해 전쟁에 참가한다.


한 국가가 다른 국가를 적으로 인식하고 그러한 인식이 충분히 강력하고 길게 이어지면, 그 인식은 결국 사실이 된다.

위기상황에서 힘에 대한 인식은 특히 중요하다. 초기 단계에서 지도자들은 자국의 힘은 과장하고 적국은 실제보다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오스트리아에 대한 빌헬름의 서약은 러시아 군사력에 대한 근본적인 경멸과 러시아 지도부에 대한 그의 영향력을 과도하게 신뢰했다는 방증이다. 마찬가지로 오스트리아도 러시아의 군사력에 대해서 실제보다 허약하고 성가신 존재로 인식하고 멸시했다. <본문 63-64쪽>


이와 같은 인식을 토대로 상대국의 전쟁수행능력이나 의지를 낮게 평가하면서 실제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오스트리아의 요제프 황제는 “우리는 지금 물러설 수 없다”라고 호언하는 것이 세르비아의 애국자들에게는 적나라한 침략으로 비출 것이란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고, 러시아 지도부에겐 그와 같은 공언들이 참을 수 없는 모욕으로 받아들여져 전쟁 이외에 다른 대안을 강구할 수 없도록 몰아가게 될 것이란 사실을 인정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한 전쟁 계획을 입안한 군부의 고위 인사들 역시 평화를 유지하기 이전에 자아의 보존을 좀더 중시하는 경향, 다시 말해 군부와 군부의 이해관계에 귀속되어 있는 자신들의 입장과 처지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경향으로 인해 전쟁이 발발할 경우 피할 수 없게 될 막대한 희생에 대해 침묵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독가스 공격으로 눈을 부상당한 영국군 병사들이 줄지어 이동하는 모습


2장 「바르바로사 - 히틀러의 소련 공격」은 가장 의심이 많고 교활하며 사악한 인간인 스탈린이 가장 비이성적인 히틀러의 이성적 행동에 대해 기대하고 신뢰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묻고 있다. 다시 말해 그 나쁜 악마가 같은 놈은 어쩌다 더 나쁜 악마에게 속았을까? 쯤 되는 물음을 던진다. 게다가 이 악마는 처음부터 슬라브족을 노예로 만들고 소련을 그들의 레벤스라움(Lebensraum)에 포함시키겠노라 공언까지 하고 있었지 않았던가. 잇따라 전해지는 독일의 침공 예보(침공 직전 1년 동안 84번의 경고가 소련에 전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스탈린은 ‘붉은 군대’ 장교의 10분의 1을 숙청했고, 그 결과 전쟁이 벌어지기 직전까지 예하부대 지휘관의 5분의 1이 공백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존 G. 스토신저는 이처럼 어려운 시기를 앞두고 소련 전투력의 중추를 꺾어버리는 숙청을 단행한 까닭으로 스탈린 자신이 소련 내부에서 차지해야 하는 권력의 안전을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지켜내야 할 국가의 안전보다 우선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1939년 맺은 독 ․ 소 조약은 소련에게 독소처럼 작용했지만 침공 직후였던 1940년 7월 스탈린은 소련 인민들에게 전쟁을 독려하는 첫 방송에서조차 독 ․ 소 조약은 옳은 선택이었다고 강변했다. 그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저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탈린이 히틀러보다는 더 나은 지도자였다고 주장한다.


히틀러는 전쟁의 행운이 그를 배반하고 소련으로 가고 있을 때에도 그의 잘못을 깨닫지 못했다. 그는 패배가 확실해졌을 때에도 몇 번이고 군대를 증원했다. 반면 스탈린은 그의 초기 실책을 깨달았고 그리하여 최후의 승리를 얻을 수 있었다. <본문 104쪽>


완전히 새로운 전쟁, 완전한 승리에 대한 유혹 - 한국전쟁

『전쟁의 탄생』은 여러 전쟁을 다루고 있지만 무엇보다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주는 것은 3장 「승리의 유혹 - 한국전쟁」편이다. 2009년에 번역된 『전쟁의 탄생』은 열 번째 판으로 저자인 존 G. 스토신저는 판을 거듭할 때마다 새롭게 추가된 사실들을 책의 내용에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이 책에 수록된 한국전쟁에 대한 내용 역시 전쟁 발발 이후 현재의 핵 위기 상황까지 일부 반영하고 있다. 그는 한국전쟁이란 역사적 사건에 있어 가장 중요한 국면 중 하나로 유엔군의 38선 돌파를 손꼽는다. 유엔군이 38선을 넘어서면서 한국전쟁은 완전히 새로운 전쟁이 되었다.



유엔군이 38선에 접근했을 때 그것을 넘어야 하느냐의 문제는 유엔군을 진퇴양난에 빠지게 했다. 유엔군이 38선을 넘지 않으면 완전한 승리를 거둘 수 없었다. 일각에서는 북한의 무력 침략은 38선을 파괴한 행위로 볼 수 있고 따라서 침략자에 대한 ‘맹추격’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만약 유엔군의 임무가 단순히 ‘무력침략을 격퇴’하는 데 있다면 북한 침략 이전에 대한민국의 영토로 인정되지 않았던 곳으로 유엔군을 진격시켜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성립될 수도 있었다. 더구나 “유엔군이 38선을 넘느냐의 문제를 누가 결정할 것이며 만일 그렇다면 그 목적과 한계는 어디까지인가?”라는 중대한 문제도 제기될 수 있었다. 이러한 와중에 북경 주재 인도 대사 파니카(K.M.Panikkar)는 “만일 유엔군이 38선을 넘는다면 중국이 전쟁에 개입할 것이다”라고 경고를 보냈다. <본문 124쪽>


9월 하순에 개최된 유엔총회에서는 미국의 의지에 따라 38선을 넘어 한반도에 통일되고 독립된 민주정부를 수립하는 데 필요한 조치를 취할 때라고 결의한다. 10월 1일 한국군이 38선을 넘어 북으로 진격했고, 미군도 10월 7일 북진을 시작했다. 10월 2일 파니카 주중 인도대사가, 10월 10일엔 중국의 외무장관 주은래 역시 “중국은 이 침략전쟁을 방관하지 않을 것”이라 경고했지만 미국과 맥아더 장군은 이것을 중국 특유의 허풍으로 받아들였다. 트루먼 대통령은 맥아더 장군과 웨이크 아일랜드에서 만나 중국의 개입가능성에 대한 보고를 받았는데 맥아더는 중국의 개입가능성을 희박하게 평가하고 있었다. 트루먼 대통령은 한 편으론 북진을 승인하면서도 미국은 중국에 대해 적대감을 가지지 않을 것이라 선언하면서 중국 달래기에 나섰다. 맥아더는 중국을 팽창욕구는 가득하지만 실제로 그럴 능력은 없는 국가로 평가했고, 중국 인민해방군에 대해서도 경멸에 가까울 만큼 낮게 평가했다. 그는 1950년대의 중국 인민해방군을 1940년대의 장개석의 국민당 군대 정도로 생각했던 것이다. 트루먼 대통령은 맥아더의 판단을 신뢰했고, 그의 판단을 신뢰한 결과는 매우 혹독했다.


한국전쟁에서 중국의 개입은 국제문제 인식의 다양함을 실제로 보여준 좋은 예였다. 이러한 인식은 실제상황을 인식하는 데 매우 유효하다. 일단 상황이 명확하게 평가되면 특정 대안은 배제된다. 일반적으로 적대적이라고 생각하는 상대방과는 화해가 어렵기 마련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중국의 공산주의자들은 결국 한국에 개입하는 것 이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생각했다. 상대방의 힘을 무시할 정도라고 생각할 경우 위협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게 된다. 미국은 중국의 경고를 일종의 허풍으로 치부했다. 자신과 정반대의 이데올로기를 지닌 상대방과는 좀처럼 타협하기 어려운 것처럼 미국과 중국은 재앙이 될 분쟁의 문턱에서조차 상대방의 국제적 역할을 정당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것이 한반도를 또 다른 18개월 동안 파괴한 ‘완전히 새로운 전쟁’의 주된 원인이 되었다.<본문 133쪽>


트루먼이나 맥아더가 처음부터 북한 점령에 대해 생각했던 것은 아니지만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은 이런 상황을 반전시켰고, 침략자를 응징한다는 명분 아래 자신의 의지를 미국의 의지에 종속시킴으로써 유엔은 중재자에서 전쟁의 당사자가 되어 이후 남북한 혹은 양대 진영 사이에서 국제적 중재자의 역할을 포기하는 결과를 빚었다. 그 결과 전쟁은 1950년 10월 1일로부터 2년 반 동안 더욱더 치열하게 전개되었고, 미군 전사자 3만 4천 명, 남북한 130만 명, 중국이 대략 150만 명에서 200만 명 정도가 전쟁터에서 죽거나 부상당한 채 휴전했다.


남북한은 현재까지 어떤 심판자나 중재자, 완충 없이 완전무장한 채 60년간 대립하고 있는 중이다. 김일성은 1994년 사망했고, 아들 김정일이 권력을 승계해 1994년 제네바에서 북한이 핵을 동결하고 궁극적으로 2개의 경수로와 핵 발전 원자로 건설의 대가로 핵무기 개발계획을 폐기할 것을 약속하는 북 ․ 미간 ‘기본합의서’에 서명했다. 그러나 클린턴의 뒤를 이어 대통령에 당선된 부시 대통령은 북한을 악의 축에 포함시키면서 선제전쟁 전략에 대한 독트린을 발표한다. 예방전쟁, 선제공격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는 부시 독트린의 발표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침공 상황 등을 지켜보며 북한은 이것을 북한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선전포고)으로 인식했고, 2003년 NPT(핵확산금지)조약을 탈퇴하겠다고 위협했다. 2003년 4월 북한은 NPT조약 체결 32년 만에 처음으로 탈퇴한 국가가 되었다.


2003년 6월 북한과의 전쟁 위험을 감소시키기 위해 미국과 한국은 점진적으로 북한과 한국 사이 비무장지대로부터 멀리 병력을 재배치하는 데 합의했다. 1,700만 명의 인구가 거주하는 한국의 수도 서울은 군사분계선으로부터 포병의 사거리 내에 위치했었다. 미국과 한국의 입장에서 이와 같은 군사력의 재배치는 양측 100만 명 이상의 군사력으로 항상 긴장을 유지해온 전쟁의 위험 상황을 다소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됐다. 그러나 북한의 입장은 달랐
다. 이들은 거대한 규모의 재래식 군사력을 유지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 핵개발을 선택했다. <본문 137쪽>


2006년 10월 9일 북한은 지하 핵실험에 성공했다. 이전까지 부시 대통령은 북한의 김정일을 가리켜 ‘최악의 독재자’라고 지칭하며 그 같은 최악의 독재자가 다시는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스러운 무기를 가지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북한이 핵무기를 갖도록 부추긴 결과만 빚고 말았다. 미국의 샘 넌(Sam Nunn) 전 상원의원은 “우리는 악의 축의 잘못된 끝에서 출발했다”며 부시의 악의 축 정책이 잘못되었음을 시인했다.


상대 지도자(국가)의 의지에 대한 오판과 자국에 대한 오만

20세기에 가장 길었던 전쟁은 베트남전쟁으로 베트남이 독립을 쟁취하기까지 투쟁한 기간은 장장 30년에 이른다. 한 세대가 흐르고 미국의 대통령 5명이 바뀌는 동안 미국은 상대가 지닌 독립에 대한 강한 열망과 의지, 자신들과 겨루고 있는 베트남의 지도자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거의 전혀 알지 못했고, 심지어 경멸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미국의 대통령들은 물론 미국 자신은 아시아 전반에 대해 문외한이었고, 베트남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특히 존슨 대통령은 공산주의가 수없이 많은 이념적 조각들로 나누어져 있으며 이 전쟁이 지닌 기본적 특성이 공산주의 대 반공산주의의 이념적 전쟁이기 보다는 식민주의에 대항한 전쟁, 혁명과 반혁명에 대한 혁명전쟁이란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과 남베트남군은 거의 언제나 대부분의 전투에서 상대방보다 적은 사상자를 냈기 때문에 그들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있다고 간주했다. 그러나 베트남 사람들은 열악한 조건과 상황에서도 기꺼이 전투에 임했고, 죽음을 불사했다.


존슨과 미국은 호치민과 베트남을 마오쩌둥과 중국의 지시를 받는 꼭두각시로 여겼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호치민은 1920년 프랑스 공산당 창설자 중 한 명이자 옛 볼셰비키 당원으로 공산주의의 세계에서 호치민은 마오쩌둥보다 앞선 원로 공산주의자였다. 한국전쟁에 종군기자로 참전하기도 했고, 우리에겐 『콜디스트 윈터(The Coldest Winter)』로 잘 알려진 데이비드 핼버스탬(David Halberstam) 같은 이는 호치민을 가리켜 “한쪽은 간디의 모습을 또 다른 한쪽은 레닌의 모습을 가진 완전한 베트남인”이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의 주류언론은 그를 경멸적으로 묘사하여 “모스크바에서 기술을 익힌 염소수염의 선동가”라 불렀다.


오랫동안 독립을 위해 투쟁했고, 승리를 거의 쟁취할 뻔했던 나라의 독립을 방해하며 전쟁에 끼어들었던 미국은 정작 자신들이 누구와 싸우고 있는지에 대해 거의 전혀 알지 못했다. 미국은 베트남의 진구렁에서 오랫동안 싸움을 이어나갔지만 이들이 1973년 파리에서 확인한 것은 이미 1954년 제네바 협정에서 결정되었던 상태로 고스란히 되돌아갔음을 인정하는 일 뿐이었다.


미국은 인도차이나에 700만 톤 이상의 폭탄을 투하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에 투하된 폭탄의 80배나 되며 1945년 일본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300배 이상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이 폭탄들은 폭 25~50피트에 깊이가 5~20피트나 되는 폭탄 구덩이 2,000만 개를 남긴 것과 같았다. 폭격 후 베트남의 대부분은 달의 표면처럼 보였고 이후에도 상당기간 동안 아무 것도 자랄 수 없을 것으로 보였다.

미국도 전쟁이 끝난 후 후유증이 심했다. 미국의 지도부는 국민들로부터 존경심을 잃었으며 대학은 붕괴되었고 경제는 전시 통화팽창으로 부풀어 있었다. 5만 8,000명의 전사한 미군을 베트남에서 싣고 온 금속관이 전쟁의 최종적이고 유일한 의미의 상징이 되었다.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공산당의 초기 승리와 이 전쟁의 고뇌 중 어느 쪽이 희생을 덜 치르게 되었을까 하는 것이 베트남에서 해답을 찾지 못한 가장 큰 문제일 것이다. 우리는 단 한 명의 미군도 인도차이나에 파견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역사는 대안을 제시해주지 않기 때문에 선택되지 않은 길이 어느 쪽으로 인도되었을지 알 수는 없다. 아마도 베트남은 훨씬 일찍 공산화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공산주의의 형태는 모스크바와 베이징과는 다른 아마도 독립정신으로 무장한 강력한 민족주의 성격을 띤 티토주의적 공산주의가 되었을 것이다. 미국도 그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공산화의 연기의 대가로 5만 8,000명 이상의 미국인의 생명과 300만 명의 베트남 사람들의 희생, 그리고 1,500억 달러의 가치와 맞바꿀 수는 없었다. <본문 185-186쪽>


1960년대 미국의 베트남정책 입안자 중 한 명이었던 딘 러스크는 1975년 4월 남베트남의 패망으로 끝난 베트남전쟁에 대해 “개인적으로 나는 두 가지 실수를 했다. 나는 북베트남 사람들의 불굴의 의지를 과소평가했고 미국인의 인내력을 과대평가했다.”라고 말했다.


잘못된 역사와 잘못된 오해에서 비롯된 전쟁 - 유고내전

발칸반도 지역은 오랫동안 유럽의 화약고란 이름으로 불렸는데, 그 이름에 값하듯 20세기의 서막을 알리는 제1차 세계대전의 총성도, 20세기의 끝을 알리는 유고 내전도 모두 이 지역에서 벌어졌다. 키신저는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그리고 이슬람교도의 세 종교적 집단 중 어느 것도 다른 집단의 지배를 받아들인 적이 없었다. 이들은 때때로 터키나 오스트리아 또는 공산세력과 같은 외부세력에는 굴종했으나 이들 상호간에는 단 한 번도 그러한 적이 없었다.”라고 했는데, 실제로 1941년 나치가 유고슬라비아를 점령한 기간 동안 이 3개 민족은 나치에 대한 저항운동 못지않게 서로에 대한 증오 역시 맹렬하게 불태웠다. 크로아티아 민족주의자들은 악명 높은 ‘우스타쉬(Ustashes)'를 만들어 비 크로아티아인들을 학살했고,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은 '체트니크(Chetniks)'를 만들어 비 세르비아인들을 학살했다. 이들 모두와 투쟁하며 통일된 유고슬라비아를 세운 것은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의 혼혈이었던 열쇠 수리공 출신의 빨치산 지도자 요시프 브로즈 티토(Josip Broz Tito)였다. 1980년 티토가 사망할 때까지 유고슬라비아는 대외적으로 ’형제의 단결‘이라는 슬로건 속에 통합되어 있는 듯 보였다.


티토 사후 1990년대 초반에 벌어진 구 유고슬라비아에서 벌어진 내전, 처음엔 크로아티아, 그리고 이후 보스니아에 이르기까지, 인종이나 종교에 상관없이 서로 혼인하고 바로 이웃에 살며 평화롭게 살아가던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서로에게 총질을 하며 잔학행위를 일삼았던 전쟁이었다. 물론 최악의 범죄자는 세르비아였지만 그렇다고 이 전쟁에서 세르비아가 유일한 가해자도, 그렇다고 유일한 악도 아니었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전 유고슬라비아 주재 미국대사는 “그들의 가장 비극적인 실수는, 그들 자신의 역사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었다. 그들의 마음은 과거에만 가 있었으며 미래를 향하고 있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이 모든 학살의 주범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히는 슬로보단 밀로셰비치에 대해 존 G. 스토신저는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죽음과 배반의 그늘 속에서 성장했다. 그의 부모는 모두 자살했다. 그는 아내 미라와 함께 세르비아 민족주의를 위한 피난처를 찾았다”고 표현하고 있는데, 밀로셰비치의 아내 미라는 유고슬라비아를 지배했던 티토의 연인이었던 즈덴카의 조카이자 수양딸이었다.


1946년 5월 1일, 티토의 오랜 연인 즈덴카가 폐결핵으로 사망한다. 그는 즈덴카의 죽음에 가슴 아팠고, 베오그라드의 대통령궁에 조그만 기념비를 세우고, 매일 그녀의 기념비에 헌화한다. 즈덴카에게는 사촌 베라 밀레티치가 있었다. 그녀는 파르티잔과 결혼해 딸 한 명을 낳았는데, 곧이어 게슈타포에게 체포당한다. 그녀는 갖은 고문 끝에 동료들의 이름을 토설했고, 그로인해 많은 동료들이 체포되고 죽임을 당한다. 이후 그녀는 다시 파르티잔 동료들에게 체포돼 총살당한다. 티토의 연인이었던 즈덴카의 부모들은 밀레티치의 딸 미라(미랴나)를 입양한다. 그녀는 훗날 세르비아의 대통령이 된 슬로보단 밀로셰비치와 결혼하는데, 이들에게 세르비아 민족주의와 세르비아의 역사는 그들이 수호해야할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무엇보다 이들이 되찾아야 할 세르비아 역사의 성지는 코소보였다. 1389년 세르비아인들은 오스만 투르크의 진격에 맞서 코소보에서 싸웠지만 패배하고 말았다. 이후 500년간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를 받으면서 세르비아인들에게 코소보는 민족의 성지가 되었고, 이곳에 거주하고 있던 알바니아계 이슬람교도들은 같은 유고 국민이 아니라 과거의 원수들이었다.


실제로 그 장소에서 그 같은 전투가 벌어졌었는지도 명확하지 않은 과거의 역사로부터 비롯된 민족과 종교 사이의 증오에 다시 불이 붙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1914년 사라예보에서 터진 총성과 1994년 사라예보의 총성은 전혀 달랐다. 1914년 오스트리아의 페르디난트 대공의 암살사건은 유럽을 제1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로 몰아간 방아쇠가 되었지만 1994년엔 세계 열강 중 누구도 이 지역에서 벌어지는 학살과 죽임에 대해 개입하길 꺼려했다. 어느 강대국도 이 지역에 개입해야 할 이해관계가 없었던 것이다. 강대국들이 수수방관하는 동안 인종적, 종교적 증오에 휩싸인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보스니아는 서로에 대한 증오를 맘껏 불태웠다. 결국 1999년 미국과 나토가 개입하면서 잔인한 학살극은 막을 내렸다. 영국의 역사학자 노엘 맬컴은 세르비아 측이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1389년의 코소보전투에 대한 신화는 모두 거짓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어떤 한 민족이 집단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신화는 그 자체의 진위 여부로 믿음을 얻는 것이 아니란 점에서 노엘 맬컴의 주장은 아무런 힘도 갖지 못할 것이다. 기든 가틀립(Gidon Gottlieb)은 “민족주의는 여전히 강력한 힘으로 존재하고 있으며, 오직 인종적 특징이나 문화의 공유뿐 아니라 역사, 잘못 저지른 실수, 희생을 포함해 정치술의 냉혹한 고려사항을 초월하는 방법으로 국민들을 움직인 상징이나 전설적인 요소에도 근거를 둔다”고 말했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구 유고슬라비아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의 후손들은 1994년의 대학살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전쟁 - 서로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잘못된 인식이 벌인 실수

이외에도 존 G. 스토신저는 6장 「신의 전쟁」에서 인도와 파키스탄이 영국으로부터 독립 이후 현재까지 치르고 있는 오랜 분쟁의 역사를 다루고, 7장 「성지에서의 60년 전쟁」을 통해 이스라엘과 아랍의 전쟁 그리고 8장 「후세인의 전쟁 - 이라크의 이란, 쿠웨이트 침공과 걸프전쟁」을 다루고 10장 「새로운 세기의 새로운 전쟁 - 미국과 이슬람 세계」에서 21세기 초엽 9.11테러 이후 부시의 전쟁에 대해 말하고 있다. 각 장에서 다루고 있는 전쟁의 양상과 내용은 모두 다르지만 저자는 이 모든 전쟁의 양태를 두루 살피는 와중에 한 가지 결론을 도출하고 있는데, 그것은 이렇듯 서로 다른 전쟁이 결국 서로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잘못된 인식이 벌인 실수이며 전쟁은 결코 인간의 천성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학습한 결과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전쟁은 회피할 수 있다고 강변한다. 그는 무엇보다 전쟁은 지도자의 성격, 그 중에서도 ‘지도자의 잘못된 지각’이 사실상 ‘전쟁의 시작과 평화 유지’라는 정책의 향배를 결정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전쟁 발발의 원인에 대해 존 G. 스토신저 교수의 의견에 모두 동의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전쟁이 벌어지는 원인은 역사상 벌어졌던 전쟁만큼이나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세계의 모든 전쟁이 사실은 하부 구조, 다시 말해 경제적 이해관계에 기반하고 있다는 주장을 과학적 진실로 받아들이는 반면에 서로에 대한 오해와 잘못된 인식에 의해 벌어진다는 주장을 비과학적인 주장으로 판단하는 오류를 범해선 안 될 것이다. 많은 이들이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남북한 간의 군사적 긴장 고조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남북한 경제협력, 특히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이 안전판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으로 여기는데, 여기엔 한 가지 간과되기 쉬운 부분이 있다. 물론 경제적 이해관계가 서로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고, 전쟁이 양측의 이해관계를 파괴할 수 있다는 인식은 전쟁 위기를 미연에 방지하는데 좋은 전제조건이 될 수도 있지만 이것은 궁극적으로 양 측의 잘못된 오해와 인식 혹은 증오를 누그러뜨리기 위한 조건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개성공단이 아무리 잘 돌아가고, 경제적으로 밀접한 이해관계를 가진다 하더라도 증오의 물길이 파놓은 심연이 너무 깊다면 전쟁의 위기는 상존한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존 G. 스토신저의 『전쟁의 탄생 - 누가 국가를 전쟁으로 이끄는가(Why Nations Go To War)』을 통해 우리가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길 바란다.


마지막 하나의 경고는 “우리가 들어왔던 어떤 전쟁이 과연 ‘불가피’했던 것인가?”였다. 이 단어는 내가 연구를 통해 제1차 세계대전의 ‘철의 주사위’를 다루는 순간부터 수없이 떠오른 질문이었다. 십자군들은 특히 그러한 주장을 좋아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불가피했다는 주장을 찾아내기는 쉽지 않다. 역사는 역사를 만들지 않는다. 사람들이 외교정책을 결정한다. 이들은 지혜롭게 혹은 어리석게 정책을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정책을 만든다. 전쟁 이후에 역사가들은 종종 전쟁을 뒤돌아보고 운명이나 불가피성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러한 역사적 결정주의는 단순히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은유에 불과하가다. 결국 우리의 생에는 자유의지와 자기 결정이 있을 뿐이다. <본문 537쪽>


다시 말해 그는 피할 수 없는 전쟁이란 없으며, 평화란 현실을 제대로 인식했을 때 비로소 조성될 수 있다고 말한다. 전쟁이냐, 평화냐는 선택은 잘못된 인식과 현실의 갈림길에서 선택되는 것이며 전쟁을 선택하는 실수를 범한 사람은 전쟁이 수행되는 동안 천천히 그리고 아주 오랜 고통 속에서 전쟁의 맨 얼굴을 직접 대면한 뒤에야 그것을 깨닫게 된다. 그런 점에서 전쟁이 지닌 가장 큰 딜레마는 전쟁을 피할 수 있도록 해주는 가장 큰 스승이 곧 전쟁 그 자체라는데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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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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