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전명 발키리 - Valkyrie



 

난제 - 역사성과 오락성(흥행성적) 그리고 작품성
역사 속에 실존했던 인물과 사건을 영화나 드라마, 소설로 재구성하는 일은 화살 하나로 세 개의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일처럼 어렵다. 역사성과 오락성(흥행성적) 그리고 작품성을 동시에 만족시킨다는 일이 어디 그렇게 쉬운 일이겠는가? 언젠가 어느 신문 기자던가, 평론가가 영화 <트로이>에서 헥토르가 아킬레스에게 죽임을 당한다는 이야기를 썼다가 인터넷 누리꾼들을 중심으로 스포일러를 유포했다고 혹독한 비난의 대상이 된 적이 있었다. 내가 이 일을 기억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 무렵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옆 좌석의 젊은 여성 둘이 나누는 대화를 실제로 들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기자인지, 평론가인지를 혹독하게 비판했고 그 덕분에 영화 보는 재미가 반감되었다고 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를 읽지 않았다는 것을 힐난하고 싶어서 꺼낸 이야기가 아니다. 대성(大聖) 공자도 태어나면서부터 모든 것을 알았던 사람이 아니라고 고백하는데, 뉘라서 태어나면서부터 세상의 모든 고전을 읽을 수 있을까. 영화를 통해서이든, 원작을 통해서이든 누구나 그 이야기를 처음 접하는 순간은 있는 법이다. 고전이란 인류의 문화유산이란 점에서는 보배이겠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수많은 세월 동안 대중들에게 다양한 형태로 널리 전파된 이야기란 뜻이기도 하다. 이것을 영화화하거나 드라마로 장르 전이(轉移)를 할지라도 기본적인 이야기 틀을 바꾸긴 매우 어렵다. 고전이 살아남는 이유 중 하나는 그 익숙한 이야기 스타일이 대중에게 이미 숱하게 검증받았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천재가 아니고서야 누가 감히 이에 도전할 수 있을까?


두 번째 장편영화인 <유주얼 서스펙트>에서 스릴러물에 놀라운 재능을 보여주었던 신예감독 브라이언 싱어였지만, 이후 <엑스맨> 1편과 2편, 그리고 <수퍼맨 리턴즈>에서는 할리우드의 상업영화 감독으로 안주하는 것으로 보였다. 어릴 때부터 제2의 스티븐 스필버그를 꿈꿔왔던 브라이언 싱어로서는 선배가 <쉰들러 리스트>로 보여 주었던 길을 따라가고 싶은 의욕도 있었을 것이다. 그는 자진해서 영화 <발키리>의 감독을 맡았다. 사실 역사를 공부하다보면 매력적인 인물과 유난히 끌리는 사건, 극적인 요소들로 인해 깊이 매료되는 시대가 있는 법이다. 나는 나치 독일 치하에서 억압에 저항했던 숄 남매의 <백장미단> 이야기를 처음 접했던 것과 거의 동시에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의 히틀러 암살 음모 사건을 접했다.


결과를 빤히 아는 역사영화(EPIC)를 보는 재미는 어디에서 오는가?

아돌프 히틀러는 생전에 모두 42차례의 암살 기도(『독재자들』, 교양인, 2009)에도 불구하고,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정치지도자로서 가장 많은 암살 시도가 있었던 인물은 아마도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였으리라 싶은데, 『피델 카스트로 - 마이 라이프』(현대문학, 2008)에 따르면 모두 600여 차례나 있었다고 한다. 그를 제외하고는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프랑스의 샤를르 드골 대통령이 6차례의 암살 기도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았다. 늑대 무리는 조직적으로 사냥감을 공격하지만 우두머리를 잃으면 사냥을 포기한다고 하는데, 국가조직의 수장을 제거함으로써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겠다는 암살은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정치수단 중 하나다.


제임스 1세를 암살하려 했던 가이 포크스(Guy Fawkes)를 비롯해서 링컨 대통령을 암살했던 존 윌크스 부스(John Wilkes Booth),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범이라는 리 하비 오스월드(Lee Harvey Oswald), 그의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을 암살한 시르한 비샤라 시르한(Sirhan Bishara Sirhan)에 이르기까지 정치인을 겨냥한 암살은 성공유무와 상관없이 대중의 관심이 쏠린다. 이런 사건들이 수많은 음모론의 대상이 되는 까닭은 누군가 한 개인의 죽음이 시대의 향배를 어긋나게 하거나 방향을 바꿀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올리버 스톤 감독을 비롯해 수많은 미국인들은 케네디 대통령이 살아있었다면 미국이 베트남전의 수렁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유력한 대통령 후보였던 동생 로버트 케네디가 암살당한 까닭 역시 그가 범죄와의 전쟁을 강력하게 추진했던 법무부 장관 출신이었고,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당시 미국의 군산복합체가 막대한 이득을 얻고 있던 베트남전에서 미군을 철수시키겠다고 공약했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역사를 움직이는 것이 개인으로서의 위인(偉人)인지, 아니면 평범한 다수를 차지하는 대중(大衆)인지는 역사학의 오래된 논쟁거리로 남겨두자.


어찌되었든 역사영화를 보는 재미 중 하나는 그것이 우리 인류의 생애사 속에 포함되는 실존했던 인물들이 시대를 고민했던 흔적이란 것이고, 두 번째 재미는 과연 나폴레옹이 불면증과 위장장애에 시달리지 않았다면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하지 않았을 것이며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하지 않았다면 프랑스의 역사, 나아가 유럽의 역사 더 나아가 인류의 역사가 어떻게 달라졌을까와 같은 역사 속 작은 국면들이 차지하는 결과를 되짚어봄으로써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서양의 역사를 우리 한국의 역사에 대입시켜봄으로써 우리가 처해있는 실제 현실의 문제와 한계 등을 점검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비록 영화 <발키리>는 <유주얼 서스펙트>라는 걸출한 스릴러를 연출했던 감독의 작품이라고 하기엔 극적인 요소가 약한 편이긴 하지만 이와 같은 점들을 감안해서 본다면 상당히 재미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슈타우펜베르크 vs. 김재규

정치적 수장을 제거하는 암살의 상당 부분은 브루투스와 케사르의 예에서 알 수 있듯 측근에 의해 실행될수록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 최고 권력자는 항상 삼엄한 경호를 받기 때문에 암살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만 있다면 암살의 성공가능성은 비약적으로 높아진다. 그러나 암살이 암살만으로 정치적 의도까지 성공했다고 볼 수 있을까?


정치적 보복이 아니라면 한 개인에 불과한 정치인의 암살을 통해 정치적 의도까지 관철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아버지와 마찬가지였던 케사르를 암살한 브루투스의 의도는 로마공화정을 수호하고자 했던 것이지만 그의 죽음은 공화정의 몰락을 앞당기는 결과만을 초래했다.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겨냥해 민주주의를 회복하려고 했다는 김재규의 의도와 달리 그의 죽음으로 군부독재를 청산할 수는 없었다. 현대적인 국가조직은 ‘관료제’라는 단단한 배후조직에 의해 보호되기 때문이다.


영화 <발키리>에서 암살 음모의 주동자였던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이 정치인들과 군인들의 논의에 답답해했던 이유는 히틀러 암살 이후 무주공산(無主空山)이 될 최고 권력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없었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은 독일 군부의 뇌리에는 쉽게 자리 잡을 수 없는 논의, ‘쿠데타’를 끌어들인 장본인이었다. 비록 규모나 역사적 의의란 차원에서 여러 가지 차이는 있지만 슈타우펜베르크와 김재규는 상당히 닮은꼴이다. 이 두 사람을 닮은꼴이라 비교한다는 것은 본의든 아니든 박정희 전 대통령과 아돌프 히틀러를 비교하게 된다.


일제 식민 통치와 한국전쟁을 치르며 출발한 신생공화국 대한민국은 좌우 갈등, 분단, 부정부패, 경제난 등으로 최악의 위기 속에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군부쿠데타를 통해 집권했지만 이후 형식상으로는 민주선거를 통해 연속해서 재집권에 성공한다. 그의 최대 업적은 경제개발에 성공하여 수백 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한국인들에게 ‘보릿고개’란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3선 개헌에 성공한 뒤 유신이라는 초헌법적 쿠데타를 통해 독재의 길로 들어섰다. 뒤이어 오일쇼크 등으로 인한 경제위기, 민주화를 바라는 국민의 열망을 철권으로 억압하는 독재에 염증을 느낀 민중의 저항 속에 최측근이었던 김재규 중앙정보부 부장의 총에 살해당한다.


히틀러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뒤 제정을 대신해 출범한 바이마르공화국의 정치, 경제적 무능과 볼셰비즘의 발흥에 위기를 느낀 독일의 일부 민족주의자들, 군국주의자들과 결합해 국가사회주의당(나치당)을 독일 의회의 주요 정당으로 성장시킨다. 이후 힌덴부르크 대통령의 사망과 독일제국의회 방화사건 등을 통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에 비견할 만한 ‘비상대권’을 차지하고 독일 내 유일무이한 최고 권력자가 된다. 유신체제가 정권에 대한 어떤 비판, 헌법 개정에 대한 발언만으로 처벌되었던 것처럼 히틀러가 비상대권을 차지한 독일 역시 나치 체제와 총통에 대한 어떤 비방, 비판도 처벌의 대상이었다.


서민적 독재자와 귀족적 민주주의자

내가 아는 한 독일 역사에서 군부에 의한 쿠데타는 거의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퇴한 빌헬름 제정을 물러나게 한 키일 군항의 반란은 있었지만 그것은 쿠데타라기보다는 혁명이었다. 어떤 이는 독일에서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지 않았던 까닭을 독일의 민주주의가 그만큼 강력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기엔 그와 정반대의 이유로 독일에선 군부에 의한 쿠데타가 일어나지 않았다. 독일을 통일한 프로이센을 일컬어 ‘국가가 군대를 소유한 것이 아니라 군대가 국가를 소유한 이상한 체제’라는 평가가 있을 만큼 독일은 국가구조 속에 군대의 전통이 강력하게 존재했다. 그러나 한국의 역사적 전통 속에는 군부가 민간권력을 장악하는 일이 고려 무신정권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었다. 어떤 의미에서 군부의 정치화는 일제의 식민통치 기간 동안 일본 군대를 통해 습득하게 된 경우라 할 수 있다.


한국의 최고통치자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풍경 중 하나는 막걸리를 마시는 대통령이다. 민주공화정의 주인이라는 대다수 국민들이 맥주와 위스키를 섞어 마시는 동안에도 대통령은 논두렁에 앉아 막걸리 마시는 풍경을 즐겨 연출한다. 이런 풍경이 연출되는 까닭은 단순하다. 최고통치자들의 실생활이 서민적이지는 않지만 서민적이라는 인상을 줄수록 통치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박정희가 그의 정적이라 할 수 있는 윤보선이나 장면에 비해 우위에 설 수 있었던 중요한 부분 중 하나가 이 두 사람과 달리 서민적인 풍모와 출신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독일의 최고통치자였던 히틀러는 그동안 독일을 지배해왔던 기존의 지배엘리트들과 달리 매우 서민적인 인물이었다.



▶ 헤밍 폰 트레스코프(Henning von Tresckow) 대령

히틀러 암살음모를 추진했던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은 물론 에빈 폰 비츨레벤 장군, 헤닝 폰 트레스코프, 메르츠 폰 크비르하임, 베르너 폰 헤프텐, 파울 폰 하세, 하인리히 폰 헬도르프 등 히틀러 암살 음모의 주역들 대다수는 중간 이름에 귀족을 뜻하는 폰(von)이 들어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 독일의 전통적인 귀족(융커)계급 출신이었다. 하사출신이었던 히틀러는 귀족계급이 지배하던 독일군 수뇌부를 신뢰하지 않았고, 제1차 세계대전의 패배를 자초한 무능한 무리로 멸시하기 까지 했다. 그가 에르빈 롬멜을 총애했던 까닭 중 하나는 그가 자신과 마찬가지로 서민 출신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히틀러 암살 이후 권력수반에 앉을 계획이었던 루드비히 베크 전 독일육군 참모총장을 비롯해 칼 프리드리히 괴들러(전 라이프치히 시장) 같은 인물들이 히틀러 암살 이후 수립하려 했던 독일은 과거와 같은 지배엘리트들의 복귀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사실 히틀러 암살 음모에 가담했던 이들이 처음부터 히틀러의 반대파는 아니었다. 도리어 이들은 히틀러의 지지자들이었고, 그로부터 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런 이들이 히틀러에게 등을 돌리게 된 까닭에 대해 영화 <발키리>는 유대인학살 등 인류에 대한 범죄, 역사 앞에 선 인간으로서의 양심적 갈등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킨다. 히틀러가 권좌에 앉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볼셰비즘의 발호에 위기감을 느낀 독일 내 자본가들과 중산층, 영국과 프랑스의 무관심 등 여러 요인들이 합쳐진 결과이긴 하지만 일반 서민들의 열렬한 지지가 밑바탕이 되었다. 한국전쟁을 전후해 외국 유학을 다녀온 지배계급의 자식들이 사회주의자가 되고, 서구로부터 들어온 기독교식 교육을 받은 피지배계급의 자식들이 청교도적 민주주의 사상을 받아들여 자신의 계급적 뿌리와 이반된 사상을 지니게 되었던 것처럼 히틀러를 가까이에서 접한 귀족적 민주주의자들은 히틀러를 제거하고자 했고, 그의 통치로 가장 큰 피해를 겪어야 했던 대다수 독일 서민들은 여전히 히틀러를 지지했다.


쿠데타로 나치지배가 종식될 수 있었을까

역사가들이 가장 즐겨하는 질문이자 가장 꺼리는 질문은 “만약에~”란 것이다. 역사란 이미 과거에 일어난 사건 중에서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는 주요한 사건을 찾아내 인과관계와 그 의미를 찾아 묻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과거에 아무리 중요한 사건이었다 할지라도 그것이 현재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거나 의미가 없다면 그것은 역사적 사건이 될 수 없다. 브라이언 싱어 감독이 영화 <발키리>로 우리에게 묻고 싶은 질문은 무엇이었을까?

 


사실 영화 <발키리>는 역사영화로서는 매우 훌륭한 편이다. 할리우드에서 제작되는 역사 영화들이 지닌 문제점의 상당수는 역사를 희화화하거나 제멋대로 왜곡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발키리>는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진지하다(물론 다큐멘터리도 허구이며 창작자의 의도가 반영된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브라이언 싱어 감독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 ‘나치’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히틀러와 나치체제에 저항하려다 목숨을 잃은 이들도 있었다는 사실을 전세계인들에게 보여주고자 했다. 그의 이런 의도는 톰 크루즈라는 대중적인 스타에 의해 충분히 담보되었고 나름대로 성공을 거두었다.


영화 <발키리>의 장점은 이처럼 진지하다는 데 있지만, 동시에 관객들에게 왜 진지해져야 하는지 충분히 설명해주지 않는다. 역사 속의 사건이 그 자체로 극적인 요소들을 풍부하게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를 관객 모두가 읽었다고 할 수 없는 것처럼 히틀러 암살이란 대의에 목숨을 거는 요 인물들의 당위적 결의는 영화 내부에 있지 않고, 관객들의 영화 외부에서 배운 역사에서 나온다. 그 결과 논리적으로는 공감할 수 있어도 영화를 보는 동안 정서적으로 공감하기란 쉽지 않다. 


슈타우펜베르크는 영화 서두에 이미 히틀러의 제거를 결심한 사람이었고, 베를린의 히틀러 암살 음모 세력 역시 이미 준비된 사람들이다. 그들이 왜 목숨까지 걸면서 히틀러를 제거하려 하는지에 대해 관객들 보고 스스로 역사에서 배우라고 말하는 것 같다. 영화의 진행상 필요한 등장인물 수가 너무 많은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영화 <발키리>자체가 지닌 극적인 요소에만 천착해버리면 역사영화가 줄 수 있는 재미로부터 너무 멀어지는 것이기도 하다.


일반 관객들이 히틀러 암살 음모 사건을 접하게 될 때, 가장 먼저 던지게 될 핵심적인 질문이 무엇이었을까를 상상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아마도 그 질문은 ‘만약 히틀러가 슈타우펜베르크 대령과 그의 동지들이 계획했던 대로 암살당했다면 과연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였을 것이다. 역사는 정말 달라졌을까? 슈타우펜베르크의 히틀러 암살 작전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있었던 1944년 6월 6일로부터 44일이 경과한 1944년 7월 20일의 일이었고, 독일이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한 것은 발키리작전으로부터 10개월쯤 뒤인 1945년 5월 8일의 일이었다. 과연 한 명의 정치지도자가 암살당하고, 쿠데타로 나치 정권은 전복될 수 있었을까? 그 결과 독일은 연합국, 소련 등과 휴전을 맺을 수 있었을까?


우리는 이 영화 <발키리>를 통해 역사 앞에 무수한 질문들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김재규의 총탄이 유신에 종지부를 찍기는 했으나 뒤이어 12.12쿠데타와 5.18광주학살을 불러들인 것처럼 히틀러의 암살이 역사의 냉정한 잔혹성을 보여주었을지도 모른다. 역사에는 가정(假定)이 없다고 하지만 어쩌면 그와 반대의 경우를 보여주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와 같은 질문은 그저 영화를 재미있게 보면 그뿐인 관객의 입장에서 호사스러운 질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는 내일을 살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어제가 있는 법이다. 설령, 그것이 역사의 잔인한 수레바퀴 앞에서 실패라 불리게 될지라도 목숨을 걸고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되는 오늘도 있는 법이다.



영화 <발키리>는 의인이 10명만 있어도 소돔을 멸망시키지 말아달라던 아브라함의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비록 실패로 끝났고, 대중의 지지도 받지 못했지만 그들이 있어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의 광기에 휩싸인 독일이 역사 앞에서 그래도 우리 속에 이 체제에 저항한 사람들이 있었노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1980년 5월 광주의 마지막 날은 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계엄군이 탱크를 앞세워 광주도청으로 진격해오던 날 밤을 어떤 소설가는 이렇게 말했다. "그날, 살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살았고 죽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죽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는 그날 죽고자 마음 먹은 시민들의 피를 통해 산 사람들의 의식을 일깨우는 역사이기도 했다. 나는 역사가 어느 한 사람에 의해 결정되거나 이끌려 간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천하흥망에는 필부에게도 책임이 있는 법(天下興亡 匹夫有責)이라고 생각한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괴벨스, 대중 선동의 심리학 - 랄프 게오르크 로이트 | 김태희 옮김 | 교양인(2006)

 

예전에 나는 내 개인 홈페이지(http://windshoes.new21.org/person-goebbels.htm)에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인물 파울 요제프 괴벨스, 닥터 괴벨스에 대한 제법 긴 글을 쓴 적이 있었다. 물론 이 책 "괴벨스, 대중 선동의 심리학"이 다루고 있듯 1,000여 쪽에 육박하는 분량은 아니었으나, 제1차 세계대전에서 제2차 세계대전을 나는 하나의 뿌리를 가진 전쟁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이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이 전쟁이 1648년, 30년간 지속된 전쟁을 종결시킨 베스트팔렌조약(Peace of Westfalen)에 의거하여 생겨난 유럽의 근대민족국가체제의 종말이자 혹은 지속적인 파국의 시원(始源)이 된다는 것, 다른 하나는 대중사회의 도래 이후 대중과 정치, 대중과 권력, 그리고 이데올로기와 헤게모니의 문제를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준 사례가 되었기 때문이다.

 

앞서 괴벨스를 다루게 되고, 그에 대해 글까지 썼던 이유 역시 그와 같다. 로버트 O. 팩스턴의 "파시즘 - 열정과 광기의 정치 혁명"에 대한 서평을 쓰면서 "이제 정치가들은 좌우를 막론한 누구든 대중선거에 대처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한 바 있지만, 기존의 보수주의, 자유주의 정치인들이 대중을 경멸하고 멸시하는 동안,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시대의 대세라고 파악하고 있는 동안, 파시스트들은 대중이 원하는 바를 정확하게 깨우치고, 이들을 동원하는 프로파간다 능력을 이용해, 그들이 선전선동에 있어 모범으로 삼았던 좌파를 능가하는 역량(?)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독일 제3제국을 건설한 나치 세력 가운데 이 방면에 있어 가장 뛰어난 능력을 보여준 이가 바로 파울 요제프 괴벨스였음은 두 말할 필요가 없디. 우리가 지난 독재정권 아래에서 했던 여러 정치적 경험들 역시 독일의 민중들이 겪었던 선동의 경험과 유사한 측면들이 있었다.

 

나치 독일과 제5공화국은 여러 면에서 비슷한 경로를 겪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5공화국이 전형적인 파시즘 국가였다는 말은 아니다. 비록 히틀러의 뮌헨 폭동이 실패로 끝났으나 이후 합법적 정권 장악의 초석이 되었고, 12.12 쿠데타는  성공했으나 박정희 식으로 곧바로 집권 태세에 돌입한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합법적인 모양새를 갖추는 절차는 거쳤다. 이후 나치가 독일 제국의회 건물 방화사건을 빌미로 독일 내 사회주의 세력에 대한 탄압을 개시한 것과 마찬가지로 5공 역시 5.17 확대계엄조치를 통해 5.18 광주 민중항쟁을 유도하고, 이 과정을 통해 공세적 주도권을 장악하게 된다. 이후 악명을 떨친 '보도지침, 언론통폐합' 조처 등도 매우 유사한 형태로 진행되었다. 심지어는 라디오 대량 보급과 컬러 TV보급, 프로 축구, 야구, 나치의 분서와 5공의 금서, 국민차 "폴크스바겐""티코", 베를린 올림픽과 서울올림픽, 유대인 탄압과 지역감정 등 여러 방면에서 우리에게 독일 나치 정권의 정책은 낯선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에서 파시즘 혹은 대중 선동의 문제가 중요한 것은 유럽 전역에서 출몰하고 있는 네오 나치즘과 파시즘적 사례들에서도 알 수 있듯, 오랫동안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를 내면화하도록 강요받아온 우리 사회의 근저를 흐르는 기류가 그만큼 심상치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현재 우리 사회가 국가주의화 되어가고 있다거나 어떤 이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파시즘화가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내 개인적인 인식으로는 최근 유행하고 있는 탈국가주의, 탈민족주의 역시 앞서의 염려만큼이나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문제는 우리 사회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서양의 역사적 경험들을 단선적으로 우리에게 대입시켜 해법을 강구해볼 수 없을 만큼, 급속하고 변화무쌍하게 일어나고(어제까지는 산아제한을 관장하던 단체가 오늘은 출산을 독려하는 것처럼) 있으므로 모순 자체를 살피는 시각 자체도 복잡하고, 섬세해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괴벨스와 그의 아내 마그다 그리고 이들 부부의 자녀들인 헬가, 힐데가르르, 헬무트의 모습(1937)이다. 마그다는 괴벨스 못지 않은 히틀러 추종자로 자녀들 이름을 모두 히틀러의 'H'를 따서 지었고, 히틀러와 제3제국의 멸망이 눈앞에 닥치자 히틀러 없는 세상에서 살 필요가 없다며 자녀들 모두에게 청산가리를 먹인 뒤 괴벨스와 함께 자살한다.

그런 까닭에 이 책의 제목 역시 원제인 "괴벨스"를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괴벨스, 대중선동의 심리학"으로 이름 붙였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 책을 읽어내는데는 그다지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분량에 미리부터 진력을 내지만 않는다면 퇴근 후 두어 시간씩 넉넉잡고, 사오일이면 한 차례 정도는 무리없이 읽어낼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이 책을 읽는데 무려 2주 가량이 걸렸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일단 가장 큰 문제는 책이 다루고 있는 내용이나 주제에 대한 나의 넘치는 흥미와 지적 욕구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저자인 "랄프 게오르크 로이트"의 글이 매끄러운 문장과 번역에 비해 재미가 없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책이 나오고 한 달쯤 뒤였던가? 우연히 퇴근하는 길에 이 책의 옮긴이인 김태희 선생이 CBS(?)던가 모 라디오 방송에 나와서 이야기하는 걸 들었다. 말씀도 논리정연하게 잘 하고, 번역 솜씨 역시(독일어는 모르지만 우리말은) 빼어난 편이라 생각이 들었다. 대개 책이 재미있으려면 소박하게는 우선 주제가 관심있는 분야여야 하고, 문장이 좋아야 한다. 물론 장정이나 기타 등등이 좋으면 더욱 금상첨화일 것이다.

 

이 책은 그 삼박자를 두루 갖추고 있어 높은 점수를 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나는 이 책에서 크게 두 가지 문제를 발견했다. 다만 미리 밝혀두고 싶은 것은 그것은 오로지 저자의 문제이지 옮긴이나 출판사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이 책을 읽노라면 어렵지 않게 다른 평전 작가들, 예를 들면 슈테판 츠바이크 같은 이를 연상할 수도 있고, 파시즘과 관련해서는 로버트 O. 팩스턴, 빌헬름 라이히 등을 떠올릴 수 있는데, 사실 우리가 쉽게 입에 올리긴 하지만 슈테판 츠바이크, 아이작 도이처, 이사야 벌린, 요아힘 C. 페스트가 저술한 평전들을 한 번이라도 읽어봤다면, 랄프 게오르크 로이트를 이들에게 비유하는 것은 크나큰 결례란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이들과 로이트의 가장 큰 차이는 "통찰"에서 비롯된다. 사실 한 인물이 시대와 역사에 남긴 발자취를 추적해 그에 대한 평전을 쓴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며, 앞서 말한 이들이 이뤄냈던 작업들 역시 비판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들의 평전이 시대를 초월해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는 그들 자신이 한 명의 뛰어난 작가이자 역사가로서의 안목과 통찰을 통해 인물을 심도있게 파고 들어가는 성과를 남겼기 때문이다.

 

한 인간에 대해 자료를 수집하는 일은 매우 지루하고, 험난한 과정이기 때문에 평전 작가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우선 성실성일 것이다. 그 점에서 로이트는 일단 합격점이다. 괴벨스 자신이 다른 이들과 달리 생전에 일기를 남겼고, 이 일기는 나치의 역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인정받고 있다. 이처럼 괴벨스에 대해서는 제법 풍성한 자료들이 있으나, 문제는 로이트가 새롭게 입수한 자료들을 어떻게 해석하는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나는 그 부분에서 로이트가 지나치게 자료적인 충실함, 작가이기보다는 역사가적인 입장을 관철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자료가 모든 것을 말해주진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전체적인 서술에 있어 임팩트한 순간이 모자라고, 그의 새로운 해석을 기대한 독자의 입장에서 괴벨스에 대한, 그가 살아온 행적, 그가 역사 속에 남겼던 여러 궤적들을 입체적으로 그려보는 것이 쉽지 않다. 앞서도 이야기한 바 있지만 괴벨스는 이전의 자유주의, 보수주의 정치인들과 달리 대중을 상대로 정치 선동을 행했던 인물이다. 그런 그의 행적을 고려했을 때 괴벨스 평전에서 대중과 괴벨스의 상관 관계, 실제 대중의 반응 등 의미있고 생생한 일화들도 충분히 삽입되었을 법한데(전체 페이지 분량를 보자면 더욱더) 그런 내용은 거의 다뤄지지 않고 있다.

 

물론, 앞서의 문제에 대해 로이트는 괴벨스 평전을 아래의 관점(소위 '野史'라고도 하는)보다는 정사의 차원에서 접근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을 충분히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시대를 관통하는 통찰이 부족하다는 나의 느낌은 남는다. 분량은 넘치지만 괴벨스의 그런 행적들이 당시 독일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것이 다시 인류에게는 어떤 의미를 갖는지 로이트는 잘 드러내질 못하고 있다. 다소 역부족이란 인상이 든다는 것이고, 그것이 책을 읽는 내내 날 괴롭혔다. 다소 우스운 이야기이긴 하지만 책 속의 사진에 달린 설명(캡션)이 작가의 본 문장보다 도리어 의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끝으로 정리하자면, "괴벨스, 대중선동의 심리학"에서 나는 "괴벨스"는 필요충분으로 읽을 수 있었지만, "대중선동의 심리학" 영역에 대해서는 다소간 아쉬움을 느꼈고, 그 원인을 작가가 자료들을 적절하게 요리해내는 능력, 통찰력 부족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사악하였으므로 그 유능함이 더욱 돋보이는 괴벨스에 대한 책이 우리 말로 이렇듯 훌륭하게 번역되어 나왔다는 사실이 흐뭇하고, 다른 이들에게도 이 책을 권하고 싶다는 마음엔 변함이 없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이전버튼 1 이전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