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무장지대에서의 사색 - 이시우 사진 / 인간사랑 / 2007년 6월


얼마 전 국정원에서는 과거사진상규명활동보고서를 냈는데, 지난 7~80년대부터의 공안사건들 가운데 상당수가 정부공안기관들에 의해 조작된 것이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강화도에서도 배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가야만 하는 작고 외진 섬, 미법도에 한동안 국가공무원들이 자주 들락거렸다. 이유는 한 가지였다. 그들은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이곳을 찾아 미법도에 거주하는 주민들을 간첩으로 몰았다.

납북 사건이 잊혀질 무렵인 1976년 오형근씨 사건을 시작으로 미법도에 공안사건의 칼바람이 불어닥쳤다. 1977년 안장영, 안희천씨, 1981년 황용윤씨가 차례로 ‘간첩’이란 꼬리표를 달고 법정에 섰다. 오형근씨 수사 과정에서 안장영씨에 대한 첩보가, 안장영씨 수사 과정에서 안희천씨와 황용윤씨에 대한 첩보가 고구마 줄기처럼 따라나왔다. 황용윤씨의 수사 과정에서 나온 ‘첩보’가 발단이 돼 간첩으로 몰린 정영(67)씨 사건까지 서해의 작은 섬 미법도에서만 모두 5건의 간첩사건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미법도 납북 어부들은 군사독재의 하수인들에게 ‘황금어장’으로 비쳤던 게다. - <한겨레21>(2007년11월01일 제683호) 특집

불과 70여 가구가 거주하는 어촌에 불과한 미법도에 그렇게 많은 간첩들이 거주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물론 그들은 간첩이 아니었다. 이 사건들은 모두 정부공안기관들에 의해 조작된 사건들이었고, 국가기밀은커녕 검찰에서 자신이 하는 진술이 법정증거로 채택될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설령 그 사실을 알았다고 할지라도 안기부 직원들이 바로 옆방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고문과 협박에 못이겨 했던 진술이라고 자신의 진술을 번복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었을까) 어부들을 법정으로 불러내 처벌한 것은 국가보안법이었다. 어떤 이들은 국가안보를 위해 국가보안법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민주화된 시대이기에 과거에 비해 국가보안법이 남용될 위험도 적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제2차 남북정상회담 이후 비록 보석으로 풀려나긴 했지만 지난 4월 19일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된 뒤 5개월여 동안 이시우는 감옥에서, 그리고 법정에서 끊임없이 기밀과 창작, 검열과 창작의 자유를 놓고 투쟁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장장 60여일에 걸친 단식 투쟁도 불사했다. 그는 구치소에 수감된 뒤 보안법 폐지를 요구하며 단식투쟁에 들어갔고, 그의 부인이 전하는 말에 의하면 65kg이었던 체중이 20kg 정도 빠져 “뼈에 얇게 살을 발라놓은 몰골”이 되었다고 한다. 지난 5월 1일 그가 아직 감옥에 갇혀있을 때, 옥중에서 발표한 한 장의 편지가 있다.

기밀과 창작의 문제를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는 사례가 있습니다.

‘얀’이란 세계적 사진가가 있습니다. ‘하늘에서 본 지구’란 사진집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한국의 비무장지대를 하늘에서 찍고 싶다는 희망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정전협정 상으로도 어려운 일이지만 군사기밀 보호법 때문에도 불가능하다는 것이 일반적 예측이었습니다. 그러나, 유엔사군정위 비서장인 ‘캐빈 매튼’ 대령은 그를 헬기에 태워 한국의 사진가들에겐 한번도 그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비무장지대와 민통선지역에 대한 고공촬영을 했고 사진을 발표했습니다. 아마 그는 한국의 DMZ를 대표하는 사진작가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에 비해 비무장지대를 대상으로 10년 넘게 사진작업을 해온 저의 사진은 군사기밀보호법의 혐의가 씌워진 채 어쩌면 ‘모내기’그림으로 국가보안법의 피해를 당하셨던 ‘신학철화백’의 그림처럼 철창에 갇혀 영영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게 될 운명에 있습니다. FTA를 반대하는 예술가들에게 대통령은 ‘자신감을 가지라’고 하는데 소수 공안세력들은 창작의 자유 대신 기밀의 족쇄를 채워 손발을 묶고 있습니다. 실로 안타깝습니다.

이시우가 말하는 사진가는 우리에게도 『하늘에서 본 지구』라는 책으로 널리 알려진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이다. 한 사람은 군 헬기를 얻어타고 공중에서 DMZ를 촬영하고, 다른 한 사람은 풍경 사진 속에 강화 고려산 미군 통신시설의 일몰을 촬영했다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다. 이시우는 간첩일까?

먼저 간단하게나마 그의 약력을 살펴본다. 1967년 충남 예산 출생, 1988년 신구전문대 사진과 제적, 1989년 노동자민족문화운동연합 창작단장, 1990년 전국노동자문화단체협의화 풍물분과장, 1991년 전국노동자문화운동협의회 창작단장, 1993년 서울중구문화회관에서 <사람과 사진>전, 1995년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 구성혐의로 구속되었다. 풀려난 뒤 그는 강화도에 거주하면서 주로 비무장지대 DMZ의 풍경을 촬영하면서 활발한 작품활동을 전개해왔다. 사실 이 책 『비무장지대에서의 사색』은 그의 이런 작업 내용을 담아 지난 1999년 처음 출간되었고, 올해 재판 1쇄가 새롭게 나왔다. 이미 본 사람들은 다 본 책이다. 그런데 나는 이 책을 올해를 상징하는 책 10권 가운데 하나로 재선정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잊을 만하면 다시 떠올리게 되는 ‘국가보안법’ 때문이다.

2007년, 올해 10월 2일 노무현 대통령이 다시 평양에 갔다. NLL(북방한계선)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였던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갈라진 민족의 양 정상은 현재의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하자는 데 합의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자신의 발로 직접 넘어서던 그 날, 사진작가 이시우는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5개월 째 수감 중이었고, 목숨을 건 40여일의 단식 투쟁 중이었다. 지난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은 국보법에 대해 “한국의 부끄러운 역사의 일부분이고 독재 시대에 있던 낡은 유물”이라며 “국민이 주인이 되는 국민주권시대, 인권존중의 시대로 간다면 그 낡은 유물은 폐기하는 게 좋지 않겠냐, 칼집에 넣어 박물관으로 보내는 게 좋지 않겠냐”고 말했다. 하지만 국가보안법은 폐지되지 않았고, 민통선을 촬영하던 사진작가는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감옥에 갇혔다. 대통령의 말이 진실이라면 국민이 주인 되는 시대, 인권존중의 시대는 아직 오지 않았다.

지난 2003년 말 1,000여 명에 이르는 시민들이 ‘국보법 철폐’ 단식을 하면서도 끝끝내 수구보수세력의 저항을 넘어서지 못했다. 칼집에 넣어 박물관에 보내겠다던 대통령은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 저들과 보수연정을 제의하기도 했다. 그런 역사의 반동들이 모여 오늘의 위기를 자초했다. 2007년 올해 10년 만에 사회과학서점들이 경찰에 의해 압수수색을 당했다. 인터넷 헌책방 미르북 대표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되었으나 구속적부심에서 증거인멸 및 도주의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일단 석방되었다.

여기 거의 7년여 만에 재출간된 사진집 한 권이 있다. ‘슬픈 조국의 대지’를 만남과 강, 사색이란 주제로 촬영한 사진집이다. 강화도에서 정동진에 이르는 155마일 휴전선 아니 비무장지대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사색할 수 있을까? 남과 북, 좌와 우의 꽉 막힌 철옹성들 사이에서 과연 우리는 다른 것을 사유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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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 : 사형의 기원과 역사, 그 희생자들 - 카를 브루노 레더 (지은이) | 이상혁 (옮긴이) | 하서출판사(2003)

끔찍한 연쇄살인마의 얼굴 - 인류(人類)의 자화상

나는 이 책의 구판을 가지고 있는데, 목차와 다른 이들의 리뷰를 보니 내용에는 변함이 없는 듯 하다. 최근 나는 사형과 사형제도에 대한 두 권의 책을 연이어 읽었다. 사실 이 책은 스콧 터로의 책 "극단의 형벌"을 읽기 위한 용도로 다시 읽은 것이다. 스콧 터로의 책이 보다 최근의 사형과 제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면 "카를 브루노 레더 (Karl Bruno Leder)"의 이 책은 부제 '사형의 기원과 역사, 그 희생자들' 이 알려주듯 사형과 사형제도의 기원으로부터 현재에 이르는 모습을 역사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사형(死刑, Todesstrafe)이란 단어 자체로 이미 '제(制) 혹은 제도(制度)' 와 결부된다. 사형의 출발 자체가 국가나 사회 구조의 체계 및 형태에 따라 각기 다양한 목적과 형태를 띠고 실시되어 왔기 때문이다. 사형이 국가나 사회구조에 의한 것이 아닐 경우, 우리는 그것을 살인 혹은 살해라고 부른다. 영어로 살인 혹은 살해를 가리키는 단어인 'homicide, murder, man- slaughter' 는 각기 '살의의 유무' 로 구분되는데 사전에 살의가 있었던 살해 행위는 'murder' 로 사전에 모의가 없었던 살해 행위는 'manslaughter' 이 두 단어를 포괄하여 지칭하는 단어가  'homicide'이다. (이외에도 살해를 지칭하는 말은 'kill, slay, slaughter, assassinate' 등 그 양태와 양상에 따라 다르게 표현된다.) 과연 '제도로서의 살해' 즉 '사형'은 'murder'인가? 'manslaughter'인가? 또 그런 규정 뒤에 오는 사형에 대한 판단은 어떤 것이 될까?

과연 우리는 사람을 죽이는 방법을 몇 가지나 알고 있을까? 이 책은 사람을 살해하는 온갖 기술들을 나열하고 있는 듯 보인다. 사람 하나를 죽이기 위해 인류는 그토록 오랜 시간을 들여 연구해온 것이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한겨레21"에 연재하는 '역사이야기'칼럼 "우리는 무덤 위에 서 있다"를 통해 여러가지 살해 방법을 나열한 바 있는데, 그 도움을 얻어보자.

참으로 죽이는 방법도 가지가지였다. 때려죽이는 타살(打殺), 구살(毆殺), 주먹으로 쳐죽이는 박살(搏殺), 몽둥이로 때려죽이는 박살(撲殺), 격살(擊殺), 쏘아죽이는 사살(射殺), 총살(銃殺), 포살(砲殺), 칼로 찌르거나 베어죽이는 자살(刺殺), 찢어죽이는 육살(戮殺), 육시(戮屍), 생매장해 죽이는 갱살(坑殺), 바퀴로 치어죽이는 역살(轢殺), 단근질해 죽이는 낙살(烙殺), 밟아죽이는 답살(踏殺), 깔아죽이는 압살(壓殺), 독을 먹여죽이는 독살(毒殺), 껍데기를 벗겨 죽이는 박살(剝殺), 끓는 물에 삶아죽이는 팽살(烹殺), 불에 태워죽이는 분살(焚殺), 소살(燒殺), 베어죽이는 참살(斬殺), 여기서도 머리를 베어죽이는 참수(斬首), 허리를 끊어죽이는 요참(腰斬)이 있다. 또 물에 빠뜨려 죽이는 익살(溺殺), 수장(水葬), 잡아죽이는 포살(捕殺), 굶겨죽이는 아살(餓殺), 목졸라 죽이는 교살(絞殺), 액살(縊殺), 채찍질하여 때려죽이는 추살(추殺), 철퇴로 쳐죽이는 추살(鎚殺), 몽둥이로 쳐죽이는 추살(椎殺), 발로 차죽이는 축살(蹴殺), 높은 데서 내던져 죽이는 척살(擲殺), 곤장으로 때려죽이는 장살(杖殺), 폭탄을 터뜨려 죽이는 폭살(爆殺), 기둥에 묶고 창으로 찔러죽이는 책살(책殺), 꾀어내어 죽이는 유살(誘殺), 죽일 사람이 없을 때 가족 등 다른 사람을 대신 죽이는 대살(代殺) 등 인류의 역사에 있었던 사람 죽이는 방법이 모두 동원된 것이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의 현실이었다.

저자는 인류 사회가 제도로서 실시한 사형의 기원은 종교적인 '인신공양'과 종족 살해에 대한 '피의 복수'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 제도로서의 살해 행위인 사형은 인간 사회에서 가장 오래된 형벌이었다. 그것은 인류가 최초로 만든 법률이랄 수 있는 거의 모든 고대의 법에 드러나는 '받은 그대로를 돌려준다'는 인과응보 원칙과 함께 공동체가 느끼는 죄책감, 불만, 공포 등을 발산하는 한 형태로서 존재해 왔다. 고대 바빌로니아 제 1 왕조 제 6 대 왕 함무라비(Hammurabi)왕이 제정한 함무라비 법전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성문법(成文法)이다. 이 성문법은 또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이라는 복수주의(復讐主義) 법률로도 유명하다.즉, 타인의 목숨을 빼앗은 자는 그 자의 목숨을 빼앗는다는 것인데, 다른 말로는 동해보복형(同害報復刑, 탈리오의 법칙)이라고 부른다. 이외에도 사형에는 자연재해나 기타등등의 사유로 공동체의 위기 의식이 고조될 때 이를 해소하기 위한 희생양으로서 제거되는 인신 공양의 형태가 남아 있다.

우습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세계 101개 국가에 사형제도가 존치되고 있는 이유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강력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사형제도 존치론이 목소리를 얻는 까닭을 살펴보면 하나는 잔인한 범죄 행위가 주는 충격과 남겨진 유가족의 보복심리(동해보복형)에 기인하는 측면과 더불어 강력범죄로 인해 사회가 받는 스트레스(공포, 불안심리)를 사형이라는 제도의 존속으로 보상받고자 하는 심리 때문으로 이는 과거 고대 사회의 인신공양이 주는 심리적 안정, 사회적 스트레스의 발산이란 측면에서 흡사하다.

계몽주의 시대를 거치며 사회에 의한 동일한 보복이라는 사형제도의 비윤리적인 측면이 강조되면서 독일, 프랑스 등 유럽을 중심으로 한 34개국이 모든 범죄에 대해 사형을 폐지하고 있으며, 전범과 군범죄를 제외한 일반 점죄에 대하여 사형을 폐지한 국가는 스위스와 영국을 비롯한 18개 국이 있다. 이외 법률로는 존속하지만 실제로는 사형을 집행하지 않는 국가로 벨기에와 그리스 등 26개 국이 있다. 북한을 비롯한 소위 불량국가들의 인권 상황을 질책하고 있는 세계 최고(?)의 인권 수호국을 자임하는 미국의 사형제도는 1972년 잠시 폐제되었다가 4년 뒤인 1976년 부활되어 2001년 현재까지 38개 주에서 사형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근대사법제도가 출범한 후 실시된 첫번째 사형 선고는1895년 3월 25일(양력 4월 19일) 재판소구성법이 공포되고 4일 뒤에 법무아문 권설재판소에서 녹두장군 전봉준(全琫準)에게 내린 교수형 선고가 최초이다. 1948년 이후 사형당한 사람은 모두 902명이다.

이 책은 고대와 중세, 근대를 거치면서 사형의 여러 모습들을 보여준다. 아마도 저자가 강하게 주장하고 싶었던 말은 사형제도를 폐지하자는 주장인 듯 싶다. 가장 이성적인 판단의 기준이 되어야 할 사법제도가 전혀 이성적이지 않은 이유를 들어 사형이라는 비이성적인 제도를 이성을 가장한 제도로 존치시키는 이유에 대해 우리는 사형제도 뒤에 숨겨진 국가, 사회의 집단 의식이 어느 정도의 단계에 이르렀는지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사형제도가 사회의 안전판 구실을 한다고 믿는 집단 의식은 국가보안법이 국가안보의 중요한 몫을 담당하고 있다는 집단 의식으로 연계된다. 그러나 사형제도가 범죄를 예방할 수 없고, 범죄율을 저하시킬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와 함께 더욱더 잘 알려진 사실은 사형이 빈번하게 실시된 시대일수록 독재자와 독재권력이 이를 그들의 목적에 맞게 적절하게 남용해 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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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철 발언과 ‘우리집에 왜 왔니’ 놀이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이 합당한 주권에 의거하여, 또한 적법한 국제절차에 따라 로케트(굳이 ICBM이라고 하진 않겠다)의 발사에 성공하였음을 민족의 일원으로서 경축한다. 핵의 보유는 제국주의의 침략에 대항하는 약소국의 가장 효율적이며 거의 유일한 방법임을 인지할 때, 우리 배달족이 4,300년 만에 외세에 대항하는 자주적 태세를 갖추었음을 또한 기뻐하며, 대한민국의 핵 주권에 따른 핵보유와 장거리 미사일의 보유를 염원한다.”

가수 신해철이 새로운 앨범을 준비하던 중 자신의 홈페이지에 다섯줄의 글을 올렸다가 곤욕을 치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앨범 홍보를 위한 노이즈 마케팅의 일환이라 평가 절하하는 이도 있고, 그의 사회비판정신에 대해 나름 믿음을 가지고 있던 이들은 이 글이 핵미사일이라는 위험천만한 무기로 민족의 운명을 줄타기하는 북한의 김정일 정권과 그간 남북화해협력정책의 성과들을 방치한 채 사태가 악화되도록 손 놓고 있다가 앞장서서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에 참여하겠다고 나선 남한의 이명박 정권을 싸잡아 조롱한 것이라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그저 도발적인 해프닝에 그칠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신해철의 발언에 대해 국회의원 송영선은 “북한 로켓 발사 성공을 경축하는 사람이라면 김정일 정권하에서 살아야 한다”거나, <동아일보> 김순덕 논설위원은 칼럼에서 “신해철 같은 독설가는 북한에선 공개처형감”이라 비판하면서 문제가 더욱 커졌다. 신해철 역시 자위대 기념행사에 참석했던 송 의원을 친일파라 비꼬고, 셋집 빼서 나가라 호통 치는 집주인에 빗대어 독립투사였던 외증조부 이야기로 맞받아치고 나섰다. 아마도 본인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자격이 충분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신해철 본인의 의도가 애초에 무엇이었든 ‘라이트코리아’라는 우익단체의 대표가 바퀴벌레나 쓰레기는 치워버려야 한다며 국가보안법 7조 고무찬양죄로 고발하였으므로 법정에 설 운명이다.

어릴 때 동네 아이들끼리 패를 지어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왜 왔니?”하는 놀이를 하며 놀았던 적이 있는데, 지금 논설위원과 국회의원 그리고 우익단체 대표까지 나서 “우리 집에 왜 왔니?”라며 묻고, 질문을 받은 사람은 “여기가 왜 너희 집이냐?”고 되묻는 상황이다. 비록 아이들 놀이지만 어느 패에도 속하지 못하거나 선택되지 못하는 아이들은 소외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지난 2008년 세상을 떠난 故 이청준 선생의 중편소설 중에 『소문의 벽』이란 작품이 있다. 6.25동란 직후 남해의 작은 포구를 배경으로 밤마다 인민군과 국방군이 번갈아 들이닥친다. 그들은 어둠 속에서 마을 주민들에게 ‘넌 어느 편이냐?’를 묻는다. 대답 여하에 따라 생명이 오락가락하는 판국이지만 눈이 부시도록 밝게 쏟아지는 전짓불 앞에 서 있는 마을 주민들은 정작 불빛 저편의 사람이 누구 편인지 알 수 없어 잇달아 학살의 희생자가 되고 만다.

국가가 인권보다 앞서는, 민족이 핵폭탄으로 스스로의 생존을 보장받겠다고 나서는 현실에서 넌 누구 편이냐고 묻는 국가보안법이 무서운 이유도 거기에 있다. 동네 아이들 사이에선 그저 재미난 놀이에 불과하지만 어떤 한 가지 질문을 통해 국민과 비국민의 경계를 구분 지으며 심판하는 일이 실제 국가 내부에서 벌어질 때 그 결과는 전쟁만큼이나 참혹해진다. 나는 신해철의 비아냥거림이 분명 과잉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를 바퀴벌레나 내다버릴 쓰레기에 빗대며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자격을 가졌는가를 따질 것이 아니라 농(弄)이라 할지라도 ‘핵의 보유와 장거리 미사일의 보유를 염원’한다는 끔찍한 이야기는 하지 말아야 한다고 비판했어야 옳다.

그러나 지금은 그보다 먼저 아이들의 놀이에도 ‘깍두기’라 해서 이편에도 저편에도 속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배려해 함께 놀 수 있도록 하는 장치가 있는데 과연 우리 사회에 그만한 관용과 상식이 있는지 묻고 싶다.

출처 : <경향신문>(2009.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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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회 <죽산의 평화통일론과 ‘평화통일도시 인천’의 지향>


일시 : 2008. 9. 8.
장소 : 인천발전연구원 2층 대회의실
주최․주관 : 인천발전연구원

 

 


토론문


먼저 인천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계시는 어윤덕 원장님과 인천발전연구원이 인천이 배출한 정치인이자 평화통일론의 선구자였던 죽산 조봉암 선생에 대해 커다란 관심을 가지고 오늘의 이 토론회를 마련해주신 데 대해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이 자리는 지난 2007년 9월 대통령소속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지난 1959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사형당한 조봉암 선생의 명예회복을 결정했으나 그 이후의 후속작업들의 진행이 미진한 가운데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인천을 대표하는 시민재단으로서 새얼문화재단은 그동안 죽산 조봉암 선생을 명예를 회복하고, 선구적인 평화통일론을 기리는 일련의 사업들을 벌여왔습니다. 새얼문화재단은 지난 2000년 죽산 조봉암 심포지엄을 개최한 바 있고, 당신의 고향인 인천 강화에 세운 조봉암 선생 추모비 건립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왔습니다. 이외에도 <그리운 금강산> 노래비 건립사업 등 일련의 활동을 통해 인천이 장차 한반도의 평화정착에 기여하는 도시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왔습니다.

오랫동안 닫힌 바다였던 황해는 냉전이 해체되면서 다시 한 번 아시아의 지중해로서 과거의 명성을 회복해가는 중입니다. 민주화 이후 지난 10년 동안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한국전쟁과 이념대립 과정에서 빚어진 수많은 역사적 과오들을 청산하고 정리하는 작업들을 통해 많은 것들이 제 자리를 찾아가는 중이기도 합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새얼문화재단에서 일한 덕분으로 죽산 선생이 계신 망우리 공동묘지를 찾아갈 기회도 있었고, 앞서 김창수 박사가 말씀하셨던 학술심포지엄을 비롯해 국회토론회, 강화도에서 있었던 추모비 제막식 자리에도 참석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망우리 공동묘지에 있는 죽산 선생의 묘소에 세워진 비석에는 앞면에 죽산 선생의 이름만 적혀있을 뿐 묘비 뒷면엔 아무런 행장(行狀)도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유족 분들께서 당신의 명예가 회복된 뒤에야 이곳에 당신의 기록을 채우겠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아직 죽산 선생의 명예가 공식적으로 회복된 것은 아니지만 여기까지 오는 데도 무척 오랜 세월이 걸렸고, 앞으로도 많은 어려움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강화에 추모비를 건립하는 과정에서 죽산 선생의 일문인 창녕 조씨 일족 중 어떤 분은 저희 재단에 ‘왜 당신의 추모비를 세우려고 하느냐?’는 항의를 해온 분도 있었습니다. 이념과 역사의 무게에 짓눌린 세월이 길었던 만큼 피해당사자라 할 수 있는 유족의 입장에서는 그만큼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고, 실제 역사 속에서도 정권의 변화에 따라 유족들은 다시금 피해자가 되곤 했습니다.

저는 이런 차원에서도 죽산 선생의 명예를 회복하고 당신의 평화통일 유지를 이어받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 자체가 작게는 인천, 나아가서는 분단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개선하는 데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발제를 맡아주신 세 분 선생님의 말씀 역시 이 같은 의미를 다시금 강조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다만 발제에서 드러난 것처럼 거시적인 입장 이외에도 오늘의 토론회는 죽산 선생의 평화통일론을 우리 인천의 발전과 어떻게 결합시켜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을 함께 나누는 자리로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우선 이현주 선생의 발제는 죽산 선생과 인천이 얼마나 깊은 관련을 맺고 있으며 해방 이후 인천에서 죽산 선생이 보여준 활동 상황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부분에서 역으로 생각하여 해방이라는 중요한 국면을 맞이한 상황에서 죽산 같은 거물 정치인이 서울이라는 중앙 정치 무대를 버려두고, 하필이면 인천을 주요근거지로 택한 것인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한때 공산당의 주요 인사였고, 여전히 좌파적인 이념과 정서를 지닌 그가 인천을 주요 정치 무대로 활동할 수 있었던 당시 인천 지역 사회의 정치경제적인, 문화적인 기반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고, 이것은 앞으로 연구되어야 할 과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현재의 인천은 인구 270만의 광대역도시이고, 하나의 도시 슬로건으로 규정되기 어려운 매우 다양하고 다원화된 이해관계를 지닌 도시가 되었습니다. 인천을 미래의 평화통일도시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당시 상황에서 이 같은 평화통일론을 제시할 수 있었던 밑바탕에 있었을 60년 전 인천과 시민들의 문화적 토대에 대해 연구하고, 이를 현재의 인천과 비교해보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일련의 과정들이 축적된다면 앞으로 인천이 평화통일도시로 나아가는 현실적인 전략을 수립하는 데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기반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두 번째 주제 발표를 해주신 이철기 교수님의 평소 활동에서도 많은 배움을 얻고 있는데 오늘 발표에서도 거시적인 안목에서 죽산의 평화통일론이 새로운 한반도 구상의 중요한 지침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현재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결여되어 있다고 지적해주신 ‘철학, 비전, 장기적인 목표의 부재’에 대해서는 비록 ‘건국’이냐, ‘정부수립’이냐를 놓고 논쟁이 벌어지는 어수선한 시절이긴 하지만 죽산의 사상이 여전히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새로운 한반도’ 구상에 있어서 정치적․경제적 남북공동체를 구성한다는 평화통일전략의 수립에 있어서 ‘인천’의 역할이 무엇이 있을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복안은 잘 드러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통일이란 과제를 추진하는데 있어 중앙정부의 역할 못지않게 지방자치정부와 시민사회의 역할도 매우 중요할 것인데 이 자리가 구체적인 대안을 논의하는 자리는 아니지만 앞으로 그와 관련한 정책이나 시민사회의 요구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죽산의 평화통일론은 하나의 상징으로서도 좋은 지침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세 번째 주제 발표를 해주신 김창수 선생님의 발제는 비록 다른 토론자분들께서 지적하셨던 것처럼 학문적 엄밀성이란 측면에선 보강해야 할 많은 부분들이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앞서 오늘 토론회를 기획한 이용식 박사님도 말씀하신 것처럼 이 토론회가 학술적 성격 보다는 일종의 정책토론회로서 인천의 미래와 관련해서는 매우 중요한 말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제 개인적으로 이명박 정부와 안상수 시장의 인천시 정부의 정책에는 여러모로 유사한 문제점들을 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외적으로 ‘실용주의’를 표방하고, 분배와 내실보다는 개발과 성장 중심의 정책을 우선한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그 과정에서 시민사회와의 소통 부족 현상이 드러나는 것도 역시 매우 흡사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실용주의란 이념을 떠나 현실에 깊이 착근한 인식일 때에만 비로소 훌륭한 성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시민사회와의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실용주의는 독단에 빠지기 쉽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인천은 대외적으로 명품도시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물론 많은 시민들이 좀더 나은 생활을 꿈꾸고 있지만 명품도시가 담고 있는 정치적 함의 자체에 동의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앞서 이현식 사무처장님도 지적하셨지만 인천은 아시안게임과 도시축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명품도시’라는 슬로건은 내부적인 목표에는 합당할 수 있을지 몰라도 이것으로는 세계인의 공감대를 끌어낼 수 있는 보편성을 획득할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김창수 박사님의 주장대로 인천은 한반도 평화통일도시로, 나아가 아시아의 평화통일도시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역사적 근거와 현실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평화통일도시라는 슬로건이 단순한 수사에 그칠지는 몰라도 명품도시를 표방하는 인천시 정부가 인천을 ‘평화통일도시’로 탈바꿈시키자는 시민사회의 주장에 귀기울여주고 소통하고자 시도한다면 인천상륙작전이라는 거대한 전쟁의 참화를 경험한 도시, 인천의 역사와 남북분단의 첨예한 한 현장으로서의 인천을 기억하는 세계인들에게 인천이 어째서 평화와 통일을 그토록 갈망하는지 설득력 있게 다가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여기에 좀더 부연해서 인천상륙작전기념관을 평화박물관으로 전환시켜 나갈 수 있다면 인천이 평화통일도시로 내실을 채울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희 새얼문화재단에서는 앞으로 죽산 조봉암 선생의 명예회복과 인천의 평화통일도시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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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 - 표명렬 | 동아시아(2003)


『나의 천년 - 발칙한 후손의 내 역사 찾기』란 책의 저자는 표정훈이다. 표정훈은 서강대학교에서 철학과 사회학을 ,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유학을 공부한 사람이다. 아직도 이 사람을 잘 모르겠다는 표정인 사람에겐 그의 직업이 출판평론가라는 사실을 넌즈시 일러주어야 한다. 그제서야 아하, 하는 표정이라면 당신도 책을 꽤나 좋아하는 사람이다. 이 사람이 낸 이 책을 지난 2004년 9월 3일자 <조선일보>에서 서평기사로 다뤘다. 이 기사를 쓴 이한우 기자는 최장집 교수의 제자라고 한다. 나는 이한우 기자 덕에 출판평론가 표정훈에 대해 좀더 자세한 가계를 알게 되었다. 물론 이제부터 내가 독후감을 올리고자 하는 표명렬 선생에 대해서도 함께 말이다.

 

"나의 천년"은 한 집안의 가계사를 추적해간 출판평론가 표정훈의 책이다. 그의 고랫적 선조 이야기는 빼고, 그를 기점으로 3대를 거슬러 이한우 기자의 서평 기사를 읽다보니 내용이 이랬다. 그의 할아버지 표문학은 철저한 사회주의자였다. 할아버지는 인촌의 친일 행적에 대해 자세하게 알고 있었지만, 그를 비난하지 않았고, 중앙고보에서 훌륭한 스승을 만나게 해준 인촌을 분명 존경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친일 행적에 대해서는 말을 무척 아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 표명렬 장군은 보도연맹원에 남로당 출신의 아버지를 둔 그는 육사출신이었지만 라이트 밀스의 <들어라 양키들아>를 즐겨 읽던 '삐딱한' 군인이었다고 한다. 하여튼 이런 빛나는 가계를 둔 3대의 맨마지막 손자인 표정훈은 그런 가계 3대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 대학에서 운동권 학생이 되지 못했고, 대신 플라톤을 즐겨읽는 문화주의자로 남았고 그런 당당한 관찰자가 있다는 게 자랑스럽단다.

 

참 대단한 <조선일보>고, 대단한 <조선일보> 서평이다. 최근 나는 "조중동"의 서평기사들을 읽으면서 묘하게 꼬이는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다. 왜 꼭 집어서 말할 순 없지만 참 치사한 글쓰기의 전형을 보는 듯해서 말이다. 누구나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글을 쓴다. 나역시 종종 독후감을 빙자한 논설문을 작성하는 나쁜 버릇을 고치지 못해서 늘 안타깝지만, 최소한 내 의중을 교묘히 감추려고 하지는 않는데, 이 기사를 읽은 표정훈 씨와 표명렬 장군의 표정이 어떨지를 상상해보니 입맛이 더욱 씁쓸해진다. 그렇다면 <조선일보>는 아버지 표명렬 장군의 책에 대해서는 리뷰 기사를 올렸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표명렬 장군은 책을 발간한 뒤에 <한겨레>와 같은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하고 있어서 그럴까? 에이, 설마 그래서 그런 건 아닐 거다. 다른 좋은 책들을 서평하다 보니 빠뜨렸을 게다. 난 틀림없이 그럴 거라 생각한다.

 

"세계 어느 선진군대도 '주적'을 명시하지 않습니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냉전수구세력이 주적 개념을 폐기해서는 안 된다고 외치고 있지만, 이건 전쟁의 원리를 모르는 말입니다. 전쟁은 증오심이나 적개심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냉철한 정신으로 하는 겁니다. 수구세력은 국가보안법도 폐지해서는 안 된다고 강변하는데, 이 법 때문에 국가안보가 유지된다는 건 말이 되지 않습니다. 인권 탄압의 대명사인 이 악법을 지키고 있는 건 문명사회의 수치입니다."


이 책의 저자 표명렬 장군의 약력에는 이채로운 점이 많다. 우선 그가 전남 완도 출신이라는 것, 육군사관학교와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고, 우리나라 군인으로는 최초로 대만의 정치심리전학교를 수료한 최고의 심리전 전문가라는 것이다. 게다가 그는 베트남전에 전투 부대 제1진으로 참전했다. 그러나 그는 엘리트 장교가 걸어가는 길 대신에 정훈 병과를 택했다. 사회주의 국가의 군대엔 정치위원이라는 특수집단이 있다. 그들은 당원이고, 일반 병사들의 정신교육을 담당한다는 점에서 우리의 정훈병과와 비슷한 임무를 수행한다. 그러나 표 장군이 정훈병과를 택한 이유는 베트남전에서 목도한 우리 국군의 실상에 충격을 받은 탓에 우리 군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상은 이 책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의 필자 약력 소개에 따른 것이다.

 

군사학 혹은 전쟁사 관련 서적들을 들춰볼 때 종종 "그렇게 전쟁이 좋아?"라고 묻는 이들이 있다. 그럴 때마다 느끼는 막막함이란... 평화네트워크의 활동가 정욱식 씨가 MD관련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게 전쟁이 좋아서 쓸리 없지 않은가. 우리 전체 국민의 3분의 1이 군대에 다녀온다. 그럼에도 이 나라에서는 그간 변변히 군대 문제를 다룬 책 한 권이 없다. 세계에서 몇 째가라면 서러운 출판대국에서 군사학 관련 코너는 물론 다른 분야를 다 뒤져봐도 우리 군에 대한 비판서적 한 권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혹자는 "군에 가야 사람이 된다" 말한다. 혹은 "원래 군대란 게 다 그렇다"고 치부해버린다.

 

어쩌다 신문에서 군대내 구타로 인한 사망, 자살사고, 혹은 성추행, 오발사고 거기에 최근 불거진 자이툰 부대에 지급된 철모, 방탄복 문제에 이르기까지 한달이 멀다 하고, 이런저런 군 관련 뉴스가 흘러나오지만 이런 문제들은 그저 변죽만 울릴 뿐 기획 기사로 다뤄지는 법도 드문 것이 현실이다. 군은 아직도 우리 사회의 성역이자, 신성불가침이기 때문이다. 군만이 국가안보를 담보하는 최후의 보루이기 때문에, 명예를 먹고 사는 직업군인들과 군 장성들의 자존심을 건드려선 안된다. 그 결과 주간 "미디어오늘"의 보도에 따르면 "이라크엔 한국 특파원이 없다"는 기사가 나와도 할 말이 없어진다. 지난 2004년 7월초 KBS와 MBC가 외교통상부의 권유로 이라크에서 철수한 뒤 이라크 현지에는 한국 언론의 취재진은 단 한명도 없고, 다만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PD 한 명이 있을 뿐이다. 정부가 앞장 서 보도 자제를 요청했기 때문이란다.

 

구멍이 뻥뻥 뚫리는 철모와 방탄복을 입혀 자국 군대를 내보내고 이에 대해 우리 군의 안전을 위해 보도 자제를 요청하는 정부다. 이 책은 모두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철학이 있는 개혁이 아름답다'에서 그는 평화가 아닌 전쟁을 기념하는 전쟁기념관이 웅장하게 서 있는 이 땅의 현실을 꼬집는 것으로 시작한다. 한 마디로 철학이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서도 친일 청산, 과거 청산 문제는 다시금 나온다. 1987년 10월 29일 제장된 우리 헌법 전문은 이렇게 시작된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되어 있으나 우리 육군사관학교는 신흥무관학교를 계승하지 못했고, 광복군이 우리 군의 주축을 이루지 못했다.

 

'2부 1950년에 멈춘 시계'에서 그는 우리 사회의 매우 민감한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그것은 주적논쟁, 4ㆍ3사건 등과 같이 한국전쟁 전후의 민간인 학살 문제, 국가보안법 문제 등 현재에도 여전히 문제가 되고 있는 것들이다. 앞서 이한우 기자의 기사에도 드러나고 있듯, 이 책의 저자 표 장군이 진보주의자라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표명렬 장군은 매우 민족적인 보수주의자이다. 문제는 그가 진짜 민족주의자이고, 진짜 보수주의자로서의 의식을 가지고 행하는 비판조차 우리 사회 일각에서 오해받을 소지가 있다는 건 우리가 아직도 삐뚤어진 의식 속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대표적인 보수주의 사상가 에드먼드 버크는 "프랑스 혁명"에는 반대했지만, "미국의 독립"엔 찬성했다). 표 장군은 그와 같은 맥락에서 그간 우리 가 행했던 “무자비한 학살이라는 반인권, 반인륜적 행위에 대한 반성이 없는 것이야말로 자유민주주의의 정체성에 반하는 행위”라고 말한다.  “냉전 수구 정치 세력들이 정치 군인들을 동원하여 저지른 특수한 역사적 사안에 대해 마치 군이 저지른 양, 군을 볼모로 하는 획책에 휘말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표 장군은 우리에게 합리적인 보수와 냉전 수구 세력이 어디에서 작별을 고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보여준다. “총은 쏘라고 있는 것이고 총도 쏘지 못하는 군대는 존재할 필요가 없다”면서 연평해전이나 서해교전 등에 그야말로 군사적으로 대응하지 못한다고 난리치는 수구 언론이야 말로 군과 국민 사이를 이간질하는 이적행위자들이라고 규정한다 .

 

'3부 개혁의 나침반은 언제나 양극을 가리킨다'에서 그는 “군에 갔다 와야 사람된다”는 이상한 충고에 반기를 든다. “군에 갔다 와야 사람된다”는 말은 “군 생활을 통해 불합리하고 잘못된 현실에 대해서 무조건 체념적으로 순응하는 것을 습관화함으로써 비판력을 무디게 하는 소극성을 장점으로 둔갑시키는 말”이라는 것이다. 그는 “국민을 위한 국민의 군대라는 거창한 말” 구호를 앵무새처럼 반복하면서도 정작 제복을 입은 국민인 병사들을 제대로 보호하지도 못하면서 얼차례나 일삼는 장교들의 리더십을 비판한다. '4부 우리 시대, 새로운 군대를 향하여'에서 표 장군은 '군대에는 인권이 없어도 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마지막으로 그는 자신의 모교이자 군의 미래를 건설할 육군사관학교의 개혁을 요구한다. 입으로는 늘 정의의 편에 선다고 말하면서도 현실 정치 속에서는 선후배 관계를 통해 늘 강자의 편에 서 왔던 선배 군인들과 동기들의 행동을 비판하면서 그는 12.12 쿠테타에 목숨을 걸고 항거한 김오랑 소령을 참 군인의 귀감으로 삼는 육사교육을 꿈꾸는 것이다.

 

1979년 12월 12일 무렵의 나는 특수전사령부(일명 특전사)가 있는 동네에 살고 있었다.  12월 12일에서 13일로 넘어가는 자정 무렵, 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총성(종종, 야간사격 연습이 실시되곤 했지만)에 깨어났다. 그때의 내가 그 사건이 우리 현대사에 어떤 파장을 불러올지 예상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도 나는 그날 밤이 무섭다. 그날 밤이 무섭기에 우리는 오늘을 고민하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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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콤플렉스 - 강준만 외 | 삼인(1997)

우리는 어떤 영화배우나, 감독들에 대해 알고 싶을 때 ‘필모그래피(filmography)’란 것을 살핀다. 필모그래피란 ‘특정 배우감독의 작품 리스트; 영화 관계 문헌’을 의미한다. 영어에서 ‘그라피(graphy)’란 말을 동양의 그것으로 바꿔보면 대략 ‘~지(誌), ~기(記)’의 뜻을 갖는다. 우리가 누군가에 대한 기록을 일대기(一代記)라고 할 때의 그것과 같은 말이다. 어떤 배우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면 그가 어떤 영화에 출연했는지 궁금해지고, 그가 출연한 영화들을 중심으로 영화보기, 영화읽기 하는 것은 오늘날 영화에 취미를 갖고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해보는 시도이기도 하다. 그만큼 대중적인 시도인데, 종종 어떤 배우들은 그에 대해 처음 받았던 인상과 달리 도대체 이런 영화엔 왜 출연했지 하는 의문이 들만큼 형편없는 영화들에 출연한 것을 발견하게 되곤 한다. 이것을 영화배우의 것이 아니라 일반인으로 바꿔 놓을 때 우리는 그것을 경력(經歷) 혹은 이력, career, record라고 한다. 이것이 곧 ‘a personal history’이고, 한 개인이 삶으로 증명해낸 자신이다.

그럴 때 우리는 이 배우가 연기는 잘할지 몰라도 시나리오를 볼 줄 모른다거나, 배우로서의 자의식은 부족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필모그래피는 영화배우나 감독들이 남기는 인생의 긴 꼬리이다. 우리는 누구나 그런 꼬리 혹은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 강준만 교수에 대한 열혈 팬들이 생겨나게 된 계기는 역시 그가 만들었던 『인물과 사상』이란 잡지의 시도가 우리 사회의 가려운 부분을 잘 긁어주었기 때문이리라. 영화 <넘버3>에서 최민식이 한석규와 한바탕 주먹질을 한 뒤 떠들어대던 이야기처럼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니…. 솔직히 죄가 무슨 죄가 있어. 그 죄 저지른 사람이 죄지.” 우리 사회는 종종 사회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바로 그 이유로 인해 책임으로부터 면책되어도 이를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용인하는 집단무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사회에서 강준만 교수가 시도한 ‘인물비평’이란 그 성격상 지니고 있는 일정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책임이 방기되고 무화되어 버리는 우리 사회 현실의 중요한 문제들을 긁어주는 효자손이자 인물의 사후에 발행되는 평전(評傳)의 전통조차 제대로 성립되어 있지 못한 우리 사회에서 인물의 생전에 펼쳐지는 평가란 점에서 매우 의미가 깊다.

『레드 콤플렉스』는 강준만이 추구하던 인물비평에 대한 시도가 일반 출판으로까지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이 처음 출판된 것이 지난 1997년의 일이니 과거를 쉽게 잊는 우리네 관행에 따르면 잊힐 법도 하다. 물론 거기엔 인물비평보다는 다른 분야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며 침잠해 있는 듯 보이는 강준만의 발언들이 더 이상 대중의 관심을 환기시키지 못하는 탓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레드 콤플렉스』는 질기고 오래간다. 『레드 콤플렉스』, 일명 적색공포증이라 할 수 있는 이 질긴 광증(狂症)은 현실사회주의의 몰락이라는 현실상황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공포이다. 그 공포의 핵심은? 이것을 외부적 요인이라 해야 할지, 내부적 요인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으나 ‘북한의 존재’이란 실체적 그림자 혹은 유령에 대한 공포 때문이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북에 의한 적화통일 야욕’이다. 탈북이 홍수를 이뤄 우리 정부도, 이를 부추기거나(?) 돌보고 있는 NGO들조차 뒷감당을 할 수 없는 것이 오늘의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 자신이 없다.


국가보안법 폐지문제를 두고,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이 아니라는 판결을 내렸다. 잠시 후 대법원에서 이례적인 언사로 국가보안법의 존속을 강하게 주문하고 나섰다. 이 책은 노무현 정권의 출현 이전에 나온 책이다. 그런 까닭에 손석춘은 이 책의 총론격인 「왜 레드 콤플렉스가 문제인가-적색 공포증 조장에 앞장선 한국 언론」 이란 글을 통해 『레드 콤플렉스』의 질긴 뿌리의 한쪽이 착근해 있는 곳, 이를 다시 널리 유포시키고 있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언론이라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북한 김일성 주석과 정상회담을 제의하고, 대미공조보다 민족공조가 우선할 수 있다는 요지의 연설을 한 김영삼 전 대통령(어떤 의미에서 당시 상황으로 보았을 때 이런 거침없는 언사는 역시 ‘YS’니까 할 수 있는 것이기도 했고, 그가 이런 언사들을 해준 덕으로 뒤이은 DJ 정부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하다)조차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언론에 의한 조문 파동을 겪으며 전면적인 후퇴를 할 수밖에 없었다. 

어찌되었든 우리는 이 책이 나온 뒤 우리는 몇 차례에 걸쳐 평화적인 정권 교체를 이룩하고 있다. 김영삼, 김대중을 거쳐 노무현 대통령에 이르러서 우리는 민주주의의 진전을 말하고 이제는 누구도 되돌릴 수 없는 확실한 민주주의 체제를 떠올렸다. 매우 더디게 진행되긴 했으나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 출범 이후 언론개혁의 진전은 최소한 방송사에서만큼은 상당 부분 진행되었다. 비록 안티조선 운동이 <조선일보>의 수적인 우세를 잠재우지는 못했으나 최소한 일반인들에게 <조선일보>가 지닌 어떤 폐해(?)들, 그들의 정체성을 실감하게는 해주었다. 물론, 언론에 의한 레드 콤플렉스 유포는 현재에도 여전하며, 그들의 국가안보상업주의 역시 더욱 공고해지면 했지, 덜하지는 않은 상황이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매우 중요한 현상 하나를 발견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레드 콤플렉스가 사실은 얼마나 깊은 뿌리를 지녔고, 깊이 은폐되어 있었는가를 보게 되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유신시절 유신헌법을 공부하고, 그것으로 변호사시험에 통과한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고 말했다. 매우 정치적인 수사법이면서 동시에 작금의 상황을 미리 예견한 듯한 언급이다. 공교롭게도 이 책이 나온 지난 1997년은 우리나라 법조계 초유의 법조비리로 몸살을 앓았던 해이기도 하다. 지난 1997년 의정부 법조인들과 1998년 대전 법조인들의 비리와 부패가 언론에 보도되었을 때, 많은 국민들은 이것이 매우 이례적인 일이란 사실을 실감했고, 반대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진일보하고 있다는 증거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5.16 군사쿠테타 이후 군부독재정권은 삼권 분립을 약화시키고, 법조인들을 권력의 시녀로 만들기 위해 저항하는 이들에게는 철퇴로, 순종하는 이들에게는 승진을 비롯한 각종 혜택으로 길들여 왔다. 그 결과 1997년 이전까지 우리는 비록 법조계가 부패와 비리의 온상이 되어가고 있음을 알더라도 아무도 손을 대지 못했다. 그것은 정통성 없는 정부가 법조인들의 비리와 부패를 사실상 통제하지 않고 방치한 결과물이었다.

지난 97년 법조비리 사건 이후 우리 사법계는 자정노력과 더불어 구조개혁을 통해 새로운 시대정신과 헌법정신을 수호하는 법조계로 거듭나려는 노력을 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검찰을 통해 제기된 구속영장이 전직 판사라는 이유로 기각되는 일이 잇따르며 사법계 내부에 온존하고 있는 뿌리 깊은 특권의식이 여전함이 드러났다. 게다가 국가보안법이라는 반인권적, 반헌법적 법률을 위헌이 아니라고 판결하는 등, 시대정신과 우리 헌법 정신을 과연 온당하게 이해하고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이 책 『레드 콤플렉스』에서는 박홍(전 서강대 총장), 이문열(소설가), 김영삼(전 대통령), 한완상(통일부 총리), 김대중(전 대통령), 리영희(교수), 조정래(소설가), 윤이상(작곡가), 서준식(인권운동가) 등 아홉 명의 인물을 다루고 있다. 이들은 때로 가해자로 혹은 때로 피해자로 이 책에 의해 호명된 이들이다.

작가 조정래는 이런 엄혹한 시대에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내보내기 위해 두 통의 유서를 작성했다. 동료작가가 작품 발표를 위해 두 통의 유서를 쓰는 동안 다른 한 명의 작가는 200만부 판매기록을 남기는 대베스트셀러 작가로 최고의 주가를 올렸다. 그런 그가 바뀐 시대와의 불화를 견디지 못하고 최근 이런 글을 남겼다.

“레비스트로스는 백인도 인디오도 서로에게 무지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상대를 짐승으로 의심했던 쪽보다는 신이 아닌가 의심했던 쪽이 더 인간답다고 보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그와 같은 태도다. 우리가 빠져 있는 대립과 갈등이 어떠한 것이건, 상대가 영혼이 없는 짐승이라 나와 다른 견해를 가지게 된 게 아닐까 의심하기보다는, 더 우월한 정신과 고매한 인격으로 저와 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된 것이 아닐까 의심하는 슬기와 겸손을 길러보자.”

그는 현재 우리 사회가 좌와 우, 진보와 보수 상호간의 몰이해와 불화 속에 갈등국면을 고조시켜 나가고 있다고 말한다. 그에 대해 나는 전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는 그가 지난 70년대와 80년대를 거쳐 오면서 저런 글을 썼다면 그를 이해해 주었을 것이다. 아니 존경했을 지도 모르겠다. “정치적 이념이나 세계와 인생에 대해 견해를 달리 하는 이들”에 대해 서로 존중하고 인간 대 인간으로 이해하자는 말은 얼마나 합리적이고 아름다운 말인가? 그러나 국가정보부의 남산 지하실에서 물고문을 당하던 “정치적 이념이나 세계와 인생에 대해 견해를 달리 하는 이들”에 대해 그간 이문열이란 작가가 보였던 모습이나, 안전기획부에서 용공조작과 고문으로 심신을 상해 끝내 유명을 달리 해버린 “정치적 이념이나 세계와 인생에 대한 견해를 달리하는 이들”이 처했던 현실에 비해 지금 과거사 규명과 청산 작업이 결코 더 잔인할 수는 없다. 그때 그들에게 보장되어야만 했던 “인간에 대한 예의와 존중”은, “상대가 영혼이 없는 짐승이라 나와 다른 견해를 가지게 된 게 아닐까 의심하기보다는, 더 우월한 정신과 고매한 인격으로 저와 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된 것이 아닐까 의심하는 슬기와 겸손”은 바로 그때 그들에게 필요했던 것이다.

지금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에서 누리는 민주주의와 삼권분립이라는 합법적인 힘의 균형 장치가 가장 절실하게 필요했던 시기 역시 바로 그러한 때였다. 그러나 그들은 바로 그런 시기엔 권력의 시녀, 권력의 시종장 구실을 톡톡히 해왔다. 영화배우들조차 과거 그들이 출연했던 영화의 이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은 당연하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가 정치인, 법관, 학자, 시인이든 현재 그 무엇이라 할지라도 과거 그의 걸음걸이를 살피는 일 역시 마찬가지로 당연한 일이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 그리고 민주주의가 보장하는 삼권분립의 보장을 받아야 하는 것은 역시 합당한 일이다. 그러나 국가보안법 폐지를 반대하는 당신들에게 꼭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것은 웬일일까. 언젠가 “그 시절, 국보법 폐지를 반대한 법관들”이라는 제명으로 당신들의 이야기가 책으로 다뤄지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눈 덮인 들녘을 지나 갈 때에 함부로 발걸음을 옮기지 말라. 오늘 남긴 나의 발자국은 뒤에 오는 이들의 이정표가 되리니”

나는 언젠가 이 책 『레드 콤플렉스』가 더 이상 사람들이 읽을 필요가 없는 시대가 오길 소망해본다. 그러나 오늘 다시 이 책을 펼쳐 읽으며 새삼 마음이 아픈 것은 ‘레드 콤플렉스의 시대’는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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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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