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우와 유방(전3권)』 - 시바 료타로 | 양억관 옮김 | 달궁(2002)


요시카와 에이지와 시바 료타로


책을 열심히 읽는 이가 아니더라도 재미삼아 "내 인생의 책 10권"을 선정하는 일을 한 번쯤은 해보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 인생의 책 10권 중 하나는 틀림없이 "삼국지"에 할애해야만 한다. 그런데 불행히(?)도 내가 처음 접하는 "요시카와 에이지(吉川英治)"의 일어판 번역본이었다. 지난 10여년 동안 국내에서 "삼국지"가 여러 차례 다시 번역되거나 평역되어 발간되었다. 내가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황석영, 이문열 등 작가의 이름을 내건 삼국지가 있고, 다시 그 판본을 어느 것으로 하느냐에 따라 청년사판, 범우사판 등 출판사마다 삼국지의 저본을 어느 것으로 했으니 자기네 삼국지가 정본 삼국지라고 주장하며 새로운 삼국지를 발간했었다. 어떤 의미에서 이런 삼국지 발간 붐은 요시카와 에이지가 뿌린 요시카와 에이지판 삼국지의 독소를 해독하기 위한 시도인지도 모른다. 일본식 역사 소설의 시작은 요시카와 에이지로부터 비롯되었지만, 그 완성자라 불리우는 사람은 바로 시바 료타로이다.

이 두 사람을 극명하게 가늠하는 것은 '요시카와 에이지가 책상 위의 원고지와 펜 하나로 소설을 탈고했다면,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는 트럭 한 대분의 자료가 필요하다.' 는 말이다. 요시카와 에이지의 "삼국지"에는 나관중의 원작엔 어디에도 없는 부분이 과감하게 삽입되어 있곤 한다. 가령, 유비가 낙양의 차를 구하기 위해 우여곡절 끝에 장비의 도움을 받고 부용 낭자를 만나 처음 사랑에 눈뜬다는 식의 에피소드는 원작 삼국지엔 없는 대목이다. 이런 에피소드가 기억나는 분이라면 요시카와 에이지판 삼국지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음을 의미한다. 다른 의미에서 당신이 만약 와츠키 노부히로의  "바람의 검심"이나 히데키 모리의 "묵공" 등을 인상적으로 읽었다면 당신은 본의든 아니든 시바 료타로의 영향력 아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종종 일본의 만화가들이 만든 역사만화들을 읽노라면 그들의 치밀한 고증과 역사에 대한 관심에 놀랄 때가 있다. 일본의 메이지 유신 당시의 정경과 사회 분위기를 이해하는데 나는 그 어떤 역사책보다 "바람의 검심"에서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고, 춘추전국시대의 묻혀진 사상 묵가(墨家)를 상상 속에서 구현해내는데 "묵공"이란 만화의 도움을 얻었다.

일본의 국사(國士), 시바 료타로
- 한국에서 사(士)는 선비를 의미하지만 일본의 사는 사무라이를 의미한다

대관절 일본의 만화가들은 어디에서 그런 정보들을 얻을 수 있었을까? 그것이 어느 한 작가의 공로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일본은 세계 제1의 출판대국으로 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책들이 출판되고, 중고도서의 유통망 역시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정교하게 짜여져 있어 한 번 출판된 책이 영영 사라지고 없어지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출판문화가 많이 발달했다고는 하지만, 아직 일본의 출판문화를 따라가기엔 먼 얘기이다. 우리는 이제야 비로소 "조선의 뒷골목" 풍경에 대한 책이 나오기 시작했지만, 일본의 경우엔 외국의 저자가 "도쿄이야기"를 펴낼 만큼 풍부한 자료들을 비축해놓고 있다. 한 권의 책이 나오기 위해서는 트럭 한 대분의 자료가 필요하다. 설령, 직접 그 책을 소장하고 있을 필요는 없지만 어딘가에서는 그런 이야기들을 상상해낼 수 있을 만큼의 사회적 문화 콘텐츠가 비축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 문화가 형성되어야만 요시카와 에이지도 책상머리에서 펜과 원고지만으로도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일본에서 그 길을 연 인물이 바로 '시바 료타로' 라 생각한다. 지난 1996년 시바 료타로가 73세의 나이로 죽었을 때 일본 요미우리 신문이 사설을 통해 '국사(國士)가 서거하셨다'라며 그의 위치를 국가적 스승의 위치로 승격시킨 것은 고인에 대한 공치사의 의미만 지닌 것은 아니었다. 시바 료타로. 본명은 '후쿠다 사다이치(福田定一)'로 1923년 일본 오사카 후쿠오카현에서 태어나 오사카외대 몽골어과를 졸업하고, 산케이 신문 오사카 지사에 입사한 그는 처음엔 저널리스트의 길을 걸었다. 그의 문장이 건조하면서 힘있는 문체, 특별히 명문장이라 할 수는 없어도 쉽게 이해되고, 이야기 전개에 빨려드는 문체를 지니게 된 것은 그가 처음 문장을 가다듬은 곳이 신문사였기 때문일 것이다. 1955년 "페르시아의 환술사"가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작가의 길을 걷게 된 그는 5년 뒤인 1960년 "올빼미의 성"으로 나오키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대중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다. "올빼미의 성"은 지난 1999년 시노다 마사히로 감독에 의해 영화로도 제작되었는데, 일본 전국시대의 효웅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그리고 숙적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사이의 암투를 닌자(忍者)라는 존재를 통해 다룬다.


일본의 역사적 자부심 부흥

우리 역사에서도 정사(正史)가 있는가 하면 야사(野史)가 있듯 일본에서 닌자의 존재는 마치 우리의 '활빈도'와 마찬가지로 매력적이긴 하나 정사에 얼굴을 내미는 일은 거의 없는 존재들이다. 시바 료타로는 그들을 일본 문화의 한 가운데로 끌어낸다. 이외에도 그가 다루었던 역사 소재들은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수많은 작가들에게 영감을 제공한다. 일본의 검성이라 할 수 있는 "미야모토 무사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시대를 여는 최대의 전투였던 "세키가하라 전투" 등등 그는 일본 역사의 주요 사건들을 그만의 시각으로 새롭게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며, 새로운 인물상을 발굴해낸다. 시바 료타로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것은 1966년 발표된 "료마가 간다"일 것이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일본 역사소설의 정상에 우뚝 서게 되고, 키쿠지칸 문학상을 수상한다.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 그가 어째서 그토록 일본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을까? 그는 일본의 최대 격동기였으며, 근대화라 할 수 있는 메이지 유신의 전반기를 살았던 일본의 지사(志士)이자 풍운아였다. 처음엔 존왕양이파로 출발했던 그는 친서양파인 가쓰 가이슈(勝海舟)를 암살하기 위해 에도에 갔다가 그의 설득에 감화되어 오히려 가이슈의 제자가 된 인물이다. 이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고 생각하신다면, 1894년 김옥균이 상해에서 자객 홍종우(洪鍾宇)에게 암살당하지 않고, 홍종우가 도리어 그의 제자가 되었다면 하는 상상을 해보라. 이렇듯 사카모토 료마는 역사의 중요한 시기에 일본 역사를 새로운 흐름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만든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사카모토 료마는 일본인들이 상상하고 좋아할 수 있는 인물, 일본인들이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는 기백(氣魄)이 살아 있는 인물로 그려진다.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뒤, 일본인의 정신 속에서 이런 기백을 부흥시킨 존재 셋을 꼽자면, 아마도 교진(巨人)이라 불리는 요미우리(讀賣) 자이언츠 구단과 시바 료타로가 재창조해낸 인물 사카모토 료마, 그리고 일본 애니메이션의 신이라 불리운 데즈카 오사무(手塚治蟲)의 아톰. 이렇게 셋을 꼽을 수 있다. 시바 료타로는 그렇게 일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말을 부활시켜 놓았다. 기백(氣魄)! 우리 말로 '넋'이라 번역할 수 있는 이 말을 일본인들은 참 좋아한다. 백(魄)이란 한자에서는 어쩐지 같은 백(白)을 사용하는 박(迫)자의 느낌이 난다. 압도해오는 느낌이랄까. 도검(刀劍)을 숭상하는 민족이라 그럴지도....

앞서 일본의 역사만화들에 대해 잠시 이야기했는데, 특히 일본 만화는 결말 부분에 가면 모든 것이 일본으로 환원되는 구조를 갖추고 있어 마지막에 가서 한국인으로서는 맥빠지는 경험을 하곤 한다. 가령, 만화 "묵공"에서 주인공은 결국 중국에서 묵가의 정신을 펼치는데 실패하고 일본, 지팡구에 간다. 칭기스칸도 우연히 일본에 와서 한 수 가르침을 익히고, 몽골로 돌아가 천하를 통일한다. 일본만화 속에 종종 등장하는 역사적 사실은 진실을 가장하고 있지만 진실이 아니란 점에서 의사역사(疑似歷史)이고, 이를 부추긴 책임에서 시바 료타로는 자유로울 수 없다. 시바 료타로는 일본의 역사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대륙의 역사, 중국의 역사에 관심을 기울인다.

일본의 역사관과 동아시아 역사관의 차이
-민중을 어찌 볼 것인가?

"항우와 유방"을 읽으며 - 나를 민중주의자로 구분해야 하는지는 잘 알 수 없으나 - 께름직한 느낌을 감출 수 없었다. 마치 "엑스 파일"의 주인공들만이 온세상이 외계인의 존재를 눈치 채지 못하고 바보처럼 행복의 진구렁 속에 있을 때 이들을 구원해야만 하는 소수의 깨어있는 지식인 행세를 하는 것처럼 시바 료타로의 "항우와 유방"에 등장하는 주변 인물들은 모두 신랑신부를 장식하기 위한 들러리들에 불과한 것처럼 그려진다. 어쩌면 그것이 일본의 역사적 전통에 해당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한 번도 제대로 된 민중혁명, 민란을 경험하지 못한 나라 일본의 한계 말이다.

이렇게 말하면 왜 일본에 민란이 없었는가 하고 되물을지도 모르겠다. 아마쿠사 시로우 토키사다도 있지 않은가 하고 말이다. 일본 역시 수많은 민란을 거쳐 왔으나 일본 역사에서 민중이 주된 주체로 떠오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고 되물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일본의 역사에서 민중은 주로 수동적인 존재로서 동원의 대상이 된 반면 우리의 민중이란 역사적으로 수많은 외침을 통해 주체적으로 무장한 경험이 있다. 즉, 조선시대의 예만 놓고보더라도 민중이 자발적인 무장을 통해 의병을 형성해 지배계급을 구원하는 사례가 많았으므로 그에 따른 문화 전통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 된다.

일본의 전쟁은 철저히 내부적인 요인에 의한 것이 많았던 반면에 우리의 전쟁은 철저히 외부적인 요인들에 의해 민중의 자발적인 동원없이는 지배계급이 지탱할 수 없었던 경험의 차이가 오늘날 한국과 일본의 결정적인 차이로 작용한다. 그것은 현재 일본의 시민운동과 한국의 시민운동이 보여주는 형태의 차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 "항우와 유방"에서도 시바 료타로의 철저한 역사고증은 역시 돋보이는 대목이다. 시바 료타로가 중국의 고전들 특히 역사서들을 탐독해왔을 뿐만 아니라 실제 자신의 발로 중국의 역사 현장들을 찾아다닌다.

이 소설 "항우와 유방"에서 중요한 소재와 배경 중 하나로 등장하는 중국의 식량창고에 대한 묘사 역시 그의 이런 자료 수집 열정을 통한 것이다. 이 책 "항우와 유방"은 매우 재미있는 소설이지만, 같은 의미에서 매우 재미가 없다. 이것을 시바 료타로의 소설의 한계라고 한다면 필부의 식견이라 미안한 이야기겠지만 그의 소설들이 일본의 이야기를 다루는 동안엔 재미있지만, 그의 소설이 일본이란 작은 섬나라를 벗어나 대륙으로 넘어가면 어딘가 한 귀퉁이가 허물어진 듯 느껴지는 까닭 그것은 시바 료타로가 사람의 바다, 즉 인해(人海)로서의 중국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시바 료타로가 일본의 역사소설가 중 최고의 자리에 놓인다면 중국에서는 누구를 손꼽아야 할까? "나관중"을 그 자리에 놓는다고 해서 이견을 달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 책 "항우와 유방"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항우와 유방을 제외하고도 수많은 인물들이 있다. 그러나 책을 덮고 난 뒤 기억에 남는 인물들은 거의 없거나 기억에 남는다고 해도, 항우와 유방을 제외하고는 그 의미가 생생하게 살아나는 이가 없다. 만약 시바 료타로의 "항우와 유방"만을 읽은 이라면 중국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사건인 진말한초의 역사가 밍숭하기 짝이 없는 것으로 기억될 것이다.

우리에게 수많은 고사들을 전해준 장자방 장량과 한신, 범증과 번쾌, 소하와 조참, 하우영과 전영 등등 이 시기를 주름잡았던 인물들의 이야기는 그저 스쳐가는 풍문처럼 전해지고 만다.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시바 료타로를 나관중의 반열에 놓아도 좋은가? 하고 말이다. 이것은 여러모로 불리한 게임이다. 삼국지는 나관중 한 사람의 작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삼국지의 저자가 나관중이 정말 맞는가 하는 문제는 셰익스피어가 과연 실존하는 인물이었냐는 질문만큼 오랫동안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앞서 조선과 일본의 차이를 민중의 차이로 이야기한 바 있다. 물론 조선은 전제왕정의 국가였다. 하지만 조선에서 소위 '백성'이라 불린 민중을 제외하고 기술되는 역사소설을 오늘날 우리들이 상상할 수 있을까? "장길산"이나 "임꺽정"에서 민초들을 배제한 상황에서 이 역사소설들을 읽어낼 수 있을까? 마찬가지로 중국에서 "인해(人海)"를 제외하고 기술되는 역사소설이 과연 뚜렷한 생명력을 가질 수 있을까? 그것은 삼국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삼국지를 일견 세 영웅, 조조와 유비, 손권의 세력 다툼만으로 보는 사람은 삼국지를 제대로 읽은 것이 아니다. 삼국지의 바탕에 깔려 있는 것은 바로 인해이다. 삼국지만큼 민심의 동요와 그에 따른 영웅들의 성쇠를 주도면밀하게 다루고 있는 역사소설도 매우 드물다. 유비가 그토록 오래 버틸 수 있었던 이유 그것은 제갈량과 결의 형제들만의 덕이 아니었다. 그것이 가능하게 만든 것은 바로 민심이었다는 것을 저자 나관중은 끈질기게 설득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제목을 살펴보자. "항우와 유방"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 책의 주인공은 "유방"이 아니라 "항우"이다. 시바 료타로는 승자가 아닌 패자로서의 항우에 좀더 매력을 느끼고 있는 듯 보인다. 책의 전개 역시 유방이 어떻게 승리했는가하는 것보다는 항우가 어떻게 패배하게 되었는가에 중점을 두고 있는 듯 보인다. 유방은 중국의, 혹은 중국 민중의 표상처럼 묘사되고 있으며, 중국의 민족성을 그대로 상징하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유방의 전술은 기본적으로 마오쩌뚱에게 고스란히 전수된다. 1927년의 호남폭동에 실패한 마오쩌뚱은 불과 1천여 명의 패잔군을 이끌고 호남성과 강서성의 접경지역에 있는 정강산으로 퇴각한다. 그는 이른바 `정강산 투쟁`을 전개하면서 마오만의(사실은 이미 유방을 비롯한 중국 왕조 건설의 역사적 전통에 기반한) 농촌혁명전략을 구체화시킨다. 그는 농민의 지지를 바탕으로 홍군을 조직하고 `혁명 근거지`를 구축하고, 유격전술에 입각하여 지구전을 전개함으로 농촌이 도시를 포위하여 혁명을 승리로 이끌어 간다는 농촌혁명전략을 세운다.

인해(人海): 사람의 바다를 이해하지 못한 시바 료타로

사람들은 중국의 인해전술을 단순히 머리수로 밀어부치는, 사람을 총알받이로 내세우는 전술인양 오해하지만 그건 인해전술에 대한 대단한 착각이다. 중국의 인해전술은 단순히 사람의 머리수로 밀어부치는 전술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얻어 사람의 바다에서 물고기처럼 유유히 헤엄치며 승리하는 전술이다. 미국 등 자본주의 제국들의 강력한 지원을 등에 업은 국민당 군대는 결국 사람의 바다에 빠져 익사한 것이다. 이때 마오는 유방이고, 장쩨스는 항우가 된다. 그러나 어찌된 까닭인지 시바 료타로는 유방보다는 항우를 더욱 부각시킨다. 그는 마오보다 장쩨스가 좀더 좋았던 모양이다. 시바 료타로를 읽는 것은 이렇듯 여러모로 재미있는 경험이다.

작가와 두뇌 싸움을 벌이며 어떤 대목에서 작가는 어째서 이런 표현을, 이런 대목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는가를 심리적으로 겨뤄가며 읽을 수 있는 체험을 하도록 해주는 이는 오늘날 참 드물다. 분명한 건 나는 황석영의 삼국지보다는 이문열의 삼국지가 재미있고, 이문열의 삼국지보다는 고우영의 삼국지가 보다 더 재미있다. 그러나 내가 동의하는 시각은 이문열도, 고우영도 아닌 황석영의 시각(황석영의 삼국지에 황석영의 것이라 할 만한 시각이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것이 나로선 앞서 삼국지에 대한 나의 시각이 옳았다는 것을 새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했다. 나관중은 이미 민중을 바탕에 깔고 있었기에 새로운 평역은 그에겐 사족일 것이기에)이다.

시바 료타로의 책은 재미있다. 그에게는 그만의 사관이 있고, 그가 펼쳐놓는 여러 장치들, 가령 역사적 고증이나 인물에 대한 그만의 해석 솜씨, 부분적으로 동의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사건에 대한 의미 재부여 등을 갖추고 있다. 만약 시바 료타로식 표현법을 빌어 말하자면 그와 나는 적이지만, 나는 그를 인정하고, 존경한다. 하지만 기회가 온다면 나는 그대의 목을 베어주리라. 한편에서는 시바 료타로를 두고 국수주의적이라는 비판을 가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서술에는 일본 중심주의가 두드러진다. 일본 만화들 혹은 문학작품들에서 두드러지는 것들 중 하나는 선과 악의 경계가 매우 모호하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슬램덩크" 하나만 놓고보더라도 이 만화에 등장하는 그 어떤 악한 캐릭터도 궁극적으로 악하지 않다. "바람의 검심"에 등장하는 악한도 궁극적으로 악한 것은 아니다. 그들 나름의 사연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 싸운다. 메이지 유신 당시 사카모토 료마를 죽인 것으로 추정되는 막부파의 무사집단 신선조(신센구미) 역시 그들의 명분을 가지고 일본을 위해 싸운 존재가 된다. 료마가 주인공이라도 신선조 역시 나쁜 이들은 아니다. 그들은 각자 자신이 옳다는 것을 위해 싸운 것뿐이고, 죽은 료마도, 죽인 신센구미의 무사에게도 죄는 없다. 이것이 일본식이다.

한.중.일 동아시아 삼국은 모두 피흘린 근대화를 경험한다. 이들 세 나라는 모두 내전을 경험하며 근대화에 도달한다. 중국은 국공내전을 한국은 한국전쟁을 치뤘다. 그리고 일본 역시 존왕양이파와 막부파 사이에서 내전을 치른다. 그러나 중국과 한국의 내전과 일본의 내전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중국과 한국의 내전엔 체제 대결, 이념 대결의 요소들이 있는 반면, 일본의 내전엔 그것이 없었다. 이 말을 우리의 개화기에 접목시켜 보면 이렇다. 김홍집 내각은 친일적인 인사들로 구성된 내각이었다. 그러나 이때의 김홍집을 친일파로 욕하지 않는다. 이때의 친일파라는 것은 일제강점기의 친일파와는 다른 의미이다. 척사파와 개화파를 두고 우리는 어느 일방을 편들 수 없다. 그들 모두 나름의 의미를 가지고 그들의 방식으로 애국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것이 일본과 한국, 중국의 결정적 차이 중 하나를 낳았다고 생각한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일본 역사의 악역은 외부로부터 온다
- 엘리트주의, 국수주의, 냉소주의

일본의 역사에서 악역을 담당해야 할 존재가 없다보니 일본의 역사에서 악역은 주로 외부에서 온 것들이 된다. 앞서 일본의 민란이 없었다고 말하면서 실제 했던 민란의 주인공 '아마쿠사 시로우 토키사다(天草四郞)'를 말한 바 있다. 어떤 의미에서 아마쿠사는 국수적이고, 폐쇄적인 국가 일본이 상상해낼 수 있는 역사적 요수의 이미지를 그대로 담고 있다. 그는 외국의 종교인 기독교를 받아들여 민란을 일으킨다. 기독교의 혁명적 요소들이라 할 수 있는 만민평등은 막부를 무너뜨리는 그들의 이념이 될 수 있었지만, 종교란 기본적으로 혁명의 이념으로 삼기엔 불완전한 것이었다. 결국 아마쿠사의 난은 가혹할 정도로 철저히 짓밟히고 만다. 일본에서 악은 내부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것이다. 후지타 가츠히로의 만화 "요괴소년 호야"에서 절대적인 악으로 그려지고 있는 "백면인"의 존재도 일본 내부에서가 아닌 외부에서 들어온 악마적 존재를 일본의 소년과 일본의 토착 요괴들이 힘을 합쳐 물리치는 내용으로 구성된다.

일본 작가들의 작품들 가운데 역사적인 사건들을 배경으로 하는 것을 읽을 때마다 내가 느끼는 갑갑증의 원천은 사실 '시바 료타로'로부터 비롯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국적을 가지고 작품 세계를 논하고 싶지는 않지만, 일본 작가들 가운데 일부에게서는 확실히 "반민중적 엘리트주의"와 "국수주의" 그리고 세상 만사를 일종의 파워게임으로 해석하고자 하는 "냉소주의"가 물씬 풍겨난다. 나는 "항우와 유방"에서도 역시 그런 갑갑증을 느꼈다. 그가 죽은 뒤 일본에서는 시바 료타로상을 제정하여 뛰어난 저술을 남긴 작가들에게 이 상을 수여해왔다. 이 상의 1회 수상자가 "다치바나 다카시"였고, 제2회 수상자가 "시오노 나나미", 3회 수상자가 "미야자키 하야오"란 것을 생각해보면 시바 료타로상과 그 상의 실제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시바 료타로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유추해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어떤 의미에서 시바 료타로의 진정한 계승자는 바로 "시오노 나나미"일 것이다. 위에서 말한 일본 작가들의 세 가지 요소 "반민중적 엘리트주의", "국수주의", "냉소주의"를 가장 잘 실천하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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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전쟁의 역사』 - 버나드 로 몽고메리 | 승영조 (옮긴이) | 책세상(2004)


개정증보판의 의미

이 책은 지난 1995년 두 권으로 분권되어 같은 출판사에서 출판된 적이 있다. 나는 구판을 가지고 있었는데 동생이 사학과에 진학하는 바람에 큰 맘 먹고 몇 권의 역사 관련 서적들을 동생에게 넘기면서 그 때 이 책도 함께 넘겼다. 예전에도 한 차례 이 책에 대해 리뷰를 쓴 적이 있었다. 당시엔 너무 짤막하게 썼기 때문에 아쉬움이 있어서 이번에 다시 한 번 리뷰를 쓰려고 결심하게 되었다. 어찌보면 같은 책에 대해 두 번의 리뷰를 하는 셈이다. 어떤 이는 왜 같은 책을 두 번 사는가? 혹은 출판사에서 무엇 때문에 개정증보판을 내는가?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때의 개정증보판은 중복출판과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이를 출판이란 맥락에서 간략하게 이야기해보자. 모든 책에는 판권이란 것이 있다. 여기에 보면 "판과 쇄"란 말이  나온다. 책을 만드는 일도 사람이 하는 일이므로 아무리 공을 들인다 하더라도 실수가 있을 수 있고, 경우에 따라 작가나 편집자가 수정보완할 필요를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열악한 출판환경에서 대개의 책들은 초판 이후를 기약할 수 없는 실정이다. 설령 인기가 좋아 초판이 모두 판매된다 하더라도 초판의 실수를 수정보완해서 다시 책을 만드는 건 상당한 비용이 들기 때문에 출판사들이 쉽사리 이런 작업에 나서지 못한다(성의있는 편집자가 출판되어 나온 책을 다시 교정해두거나 독자들이 읽다가 지적해 준 오식이 있더라도 개정판을 만들기 전엔 수정되지 못한다). 우리나라 출판 사정상 재판이라는 건 모 유명작가들의 장편 소설을 출판사를 바꿔 출판할 때나 하는 일처럼 되어 있다. 출판사에서 수정증보판을 만드는 건 독자들에 대한 일종의 리콜 서비스와 같은 것이지만 불행히도 우리에겐 이런 관행이 일반화되어 있지 못하다.

나는 전쟁의 역사 1995년 판 초판본과 개정판 1쇄를 가지고 있다. 개정판이 이전 판본과 다른 점은 일단 분권되었던 책이 하나로 묶여 더욱 두툼해졌다는 것이고, 하드 커버 양장본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물론 지질이나 기타 도판류들이 보다 많이 추가(일일이 대조는 해보지 않았지만, 이전 도판들보다 확실히 사이즈면에서 커졌다)되었고, 초판본에서 보이던 몇몇 오식들을 바로 잡았다. 그렇다고 개정판에 오식이 전혀 없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예를 들어 개정판 276쪽의 편집자 주에서 <롤랑의 노래>에 대한 설명 중 다음과 같은 대목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1100년경에 지어진 프랑스 최초의 서사시이자 최고.최대의 무훈시. 롤랑은 샤를마뉴의 이름이다." 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롤랑"은 "샤를마뉴 대제"와 별개의 인물이다. "롤랑의 노래"에 등장하는 롤랑은 샤를마뉴 대제가  이슬람교도들과 전쟁할 때 그의 군대에서 활약한 기사 롤랑을 의미한다. 간략하게 내용을 설명하자면 이슬람교도와의 전쟁 당시 그들과 내통했던 간신 가늘롱이 샤를마뉴 대제의 군대를 곤경에 빠뜨려 후퇴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데, 가장 위험한 임무인  후위 부대 지휘를 왕의 충성스런 신하 롤랑이 자원한다. 가늘롱은 이교도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 그를 위기에 빠뜨린다. 샤를마뉴는 그에게 뿔피리를 주어 위험에 빠지면 자신을 부르라고 말한다. 하지만 롤랑은 마지막 순간까지 왕을 생각해 뿔피리를 불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대신 뿔피리를 불어 되돌아온 샤를마뉴 대제에 의해 간신은 처벌당하지만 롤랑은 이미 죽었다는 내용이다. 롤랑이 실존인물인지는 정확치 않지만 샤를마뉴 대제와는 확실히 별개의 인물이다.

그러나 이런 지적들은 개정증보판이 지니고 있는 여러 미덕들에 비하면 대단한 것은 아니다. 이 책은 무려 1,038쪽에 이르는 두툼한 책이기 때문이다. 거의 금성판 국어대사전 특장판과 맞먹는 두께다. 가끔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만큼 무지막지한 번역과 편집자의 무뇌충적인 교정교열 작업으로 망가진 책들을 볼 수 있다. 그런 경우를 제외하면 솔직히 우리나라 띄어쓰기, 맞춤법은 국어학 박사라 하더라도 완벽하게 구사하기 어렵다(이 말은 믿어도 된다, 흐흐)는 문제가 있다. 개정판은 이전의 책에서 보다 확실히 오식이 줄었고(이전 책도 오식이 많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이 책의 장점인 풍부한 편집자주와 찾아보기, 지도와 도판, 참고문헌들이 충실하게 보강되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전쟁이 벌어졌던 현장의 지도를 부록으로 뒤에 좀더 큼지막한 그림으로 삽입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하여튼 나는 "책세상"이란 출판사와는 개인적으로 독자 이상의 관계를 맺어본 적이 없지만 "책세상"이란 출판사를 좋아한다. 좋아하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지만 그 중 하나는 이 출판사에서 새로운 번역으로 "니체 전집"과 "까뮈 전집"을 내고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책세상 문고"라는 문고본을 출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서가들 말고, 애독자들 중 많은 이들이 문고본의 필요성을 느끼며 일본의 "이와나미 문고"나 프랑스의 "디스커버리 총서" 시리즈와 같은 것들을 떠올리며  부러움을 금치 못하는 경우를 종종 보아왔다. 그러나 문고본은 관리 및 영업의 어려움 등으로 출판사들의 외면을 받아왔다. 출판사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건 당연하지만 출판이란 동시에 문화적 사명감이 필요한 사업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난 책세상 출판사가 이 둘 사이의 균형을 잘 유지하는 좋은 출판사로 생각한다. 게다가 책 값이나 올릴 요량으로 얇팍한 소설책을 하드커버 양장본으로 개정해 출판하는 곳들이 수두룩한 이 때 진짜배기 개정증보판을 내는 출판사는 또 얼마나 드문가?

이 책의 저자 버나드 로 몽고메리 (Bernard Law Montgomery) 는 어떤 사람인가?
만약 군대를 컴퓨터 게임 "FIFA2002"에서처럼 심리적 부담감 없이 고를 수 있는 거라면 난 단연 영국군을 내 팀으로 고르고 싶어 할 것이다. 물론 실제로 내가 좋아하는 축구팀은 독일팀이다. 내가 영국군을 좋아하는 이유는 축구에서 내가 독일 축구를 좋아하는 것과 흡사하다. 얼핏 보면 독일축구엔 브라질 축구처럼 빼어난 기교도, 프랑스나 네덜란드 축구처럼 토탈 사커니, 아트 사커니 하는 수식이 어울리지 않는다. 그네들 축구는 때로 무미건조할 만큼 덤덤하고, 재미없지만 축구의 정석 플레이, 기본에 충실한 축구를 한다. 축구장 전체를 골고루 사용하여 공격하고, 수비할 때도 특별히 허슬플레이를 한다기 보다는 공의 방향, 공격수의 움직임을 미리 예측하고 봉쇄하는 방식이다. 물론, 전쟁사를 살펴볼 때 영국군이라고 해서 어처구니없는 실수나 혐오스러운 실책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크게 보았을 때, 영국군은 모범생이나 천재의 그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종국에 가서는 모범생이나 천재들을 능가하는 성실함과 인내력으로 승리한다. 전사를 살펴보면 영국이 승리한 전투도 많지만 그네들이 패한 전투도 무척이나 많다. 그럼에도 영국군이 패배한 전쟁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결과를 나는 그런 힘에서 찾는다.


▶ 1942년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롬멜이 지휘하는 아프리카 군단과의 전투를 승리로 이끈 몽고메리 장군


굳이 몽고메리의 전쟁사를 살펴보지 않더라도 세계사에서 영국군 만큼 보병을 사랑한 군대도 드물 것이다. 그들이 "백년전쟁"에서 우세한 프랑스 기병을 패퇴시킨 것 역시 보병의 힘이었고, 제1차 세계대전에서도 영국 보병들은 우수했다. 군대의 기본이 보병이라면 그에 가장 충실한 군대 역시 영국군이다. 물론 여기엔 그네들이 인도와 인도네시아, 아프리카를 식민지화하면서 저지른 전쟁 범죄를 논외로 한 표현임을 전제로 해서 말이다. 우리에게 "몽고메리 장군"은 소위 "고집 센 몬티"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렇게 보인 까닭 중 상당수는 역시 미군을 중심으로 한 할리우드의 전쟁 영화들이 만들어 낸 것이기도 하다. 영화 "패튼대전차 군단"을 보면 패튼과 몽고메리가 시칠리아 점령 과정에서 서로 경쟁하는 과정이 잘 드러나 있는데 역시 미국적 시각에 의한 것이다. 물론 팔레르모를 먼저 점령한 건 패튼이었다. 하지만 롬멜이 지휘하던 독일 아프리카 군단을 시칠리아까지 밀어낸 건 몽고메리였고, 그때까지 미군은 아주 멀리 있었다.

장군으로서 몽고메리에게 가장 빛나는 경력은 롬멜의 탁월한 지휘에 압도당해 영국군이 연전연패를 거듭하던 북아프리카 전선의 승세를 일거에 뒤바꿔버린 엘 알라메인 전투의 승리일 것이다. 그는 1887년 영국 국교회 주교의 아들로 태어나 일평생 성서를 탐독하고 절대적 금주가였다. 철저한 빅토리아풍 교육을 받고 성장한 그이지만 왕립 샌드허스트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해서는 학우의 셔츠에 불을 지른 사건으로 학교 당국의 처벌을 받은 적도 있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서 큰 부상을 당해 빈사 상태에 이른 적도 있었다. 39세의 나이로 베티 카버와 결혼했으나 결혼 생활 10년 만에 아내가 벌레에 물린 상처로 전염병에 걸려 사망하자 평생 재혼하지 않았다. 몽고메리는 헌신적인 아버지였으나 군인으로 임지에 따라 이동해야 했기에 아들 데이비드를 교장 선생집에 맡겨 그 집에서 따뜻한 가정의 정믈 맛보게 하려 했고, 교장 선생에게도 특별히 그 점을 간곡히 당부했다고 한다.



▶ 롬멜에게 연전연패하며 사기가 바닥까지 떨어진 북아프리카 전선의 영국군 제8군 사령관으로 부임한 직후부터 그는 부하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군기를 엄정하게 다루면서 최종적인 승리를 거머쥘 엘 알라메인 전투에 이를 때까지 훈련에 훈련을 거듭했다.

그런 그가 북아프리카 전선의 제8군 사령관이 된 것은 1942년 8월 12일이었다. 그는 다혈질이었고, 가시돋친 말을 인정사정없이 내뱉는 수다스런 다변가요, 그 자신은 틀에 얽매이기 싫어하면서도 부하들에게는 사막 한 복판에서도 엄정한 군기와 군율에 따르도록 했던 장군이었다. 몽고메리는 무슨 일이든 자신이 결심한 대로 밀고 나가는 다부진 장군이었지만, 당시 54세였던 몽고메리로서는 처음으로 이렇게 중요한 임무를 맡는 것이었다. 그가 맡은 영국 제8군은 롬멜에게 1년 동안 연전연패한 만신창이 군대였고, 사기는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병사들은 롬멜이 지휘하는 한 독일군에게 이길 수 없다고 믿었고, 영국군 총사령부가 있던 이집트 카이로에서는 연일 전해지는 패전 소식에 기밀 서류를 불태우고, 피난 보따리를 꾸렸다. 몽고메리는 최전방에 부임하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늘 이후 제8군은 진지를 1m라도 적에게 넘겨주지 않는다. 각 부대는 현 위치에서 싸운다. 현위치가 당신들의 무덤이다."


그는 부하들에게 매우 엄격했고, 사막 한 복판에서도 참모들은 정시에 시작하는 식사 시간에 언제나 단정한 복장을 하고 나타나야 했다. 그는 부하들을 다시 훈련시켰고, 용기를 북돋았다. 병사들은 부드럽고 성격 좋은 장군 보다 혹독하게 대하더라도 전쟁에서 승리하게 해주는 장군을 더 좋아했다. 왜냐하면 전쟁은 축구가 아니기 때문에 패한 결과로 지불해야 할 것이 자신의 목숨이라는 걸 잘 알았기 때문이다. 몽고메리는 후방인 런던의 다우닝가 1번지로부터 연일 쏟아지는 반격 독촉에도 불구하고 병사들에게 더 많은 휴식과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기에 섣부른 반격에 나서지 않았다. 정치적 압박으로부터 초연한 그는 점차 병사들의 인정을 받게 되었고, 결국 롬멜은 그가 파 놓은 함정으로 끌려들어가 패하고 말았다(물론, 밀리터리 매니아들은 늘 이런 문제를 가지고 상반된 의견을 내 놓는다). 그는 마치 삼국지의 육손처럼 단 한 번의 공격으로 독일군을 220km나 후퇴하게 만들었고, 결국 퇴니지에서 독일군의 항복을 받아 북아프리카에서의 전쟁을 끝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후 독일 내 영국 점령지의 사령관을 거쳐 영국군 참모총장, 나토의 유럽 연합군 최고사령부 부사령관을 지냈고, 참모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여러 권의 책을 냈고, 1976년 세상을 떠났다.

전쟁의 역사
"인류의 역사는 곧 전쟁의 역사"란 표현은 진부한 만큼 진실이다. 나는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이때의 사람이란 말은 아마 "인류"라는 말로 대치할 수 있을 것이다. 즉, 한 개인으로서의 인간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크게 보아 인류의 본성도, 늑대나 개의 본성 만큼이나 변하지 않는 그들만의 본능을 지니고 있으리란 믿음이 그것이다. 만물의 영장으로서의 인류란 말에 대해 나는 눈곱만치도 신뢰를 보내지 않는다. 인류가 배움을 통해 무언가를 배운다면 문자 이래로 기록된 그 많은 비참한 죽음들이 번번이 재현될리 없지 않은가?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 200년의 아이들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고 한다.

"어느 시대나 정치, 실업계, 매스컴에서 권력을 쥔 자들은 계획하고 가르치고 하나의 방침을 교육해서 그대로 따라오는 '새로운 사람'을 만들려고 해왔다. 나치 독일이 그랬고, 내가 열 살 때 전쟁에 질 때까지의 일본도 그랬단다. 그러나 이런 국가는 주변 국가들을 비참하게 만들고는 결국 패망했어. 내가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이런 틀에 박힌 인간과는 다른 홀로 설 줄 알지만 협력할 줄도 아는 진짜 '새로운 사람'이 되어주었으면 한다는 거다. 어떤 '미래'에서나 말이다."

우리나라는 늘상 전쟁의 위험 속에 살아온 탓인지  아니면 혹독한 군사독재 시절을 거쳐 온 반발 심리 때문인지 "전쟁사"에 대한 출판물이 그다지 많지 않은 편이다. 평화에 대한 염원과 필요성이 그 어떤 민족보다 클 것임에도 불구하고 늘상 전쟁의 공포 속에 놓여 있었던 탓에 아니, (군사)국가주의와 (극우)민족주의 아래 놓여 있었던 탓에 "반전평화"운동을 마치 덜 배운 어린 아이들,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들의 배부른 소리로 치부하려는 경향이 있다. 전쟁과 평화가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음을 알지만, 알고 싶지 않은 아니, 외면하고 싶어 했다. 국내에 존 키건의 『세계전쟁사』를 비롯해 몇 권의 전쟁사가 번역 출판되거나 육사에서 펴낸 책이 있지만 대중적으로 널리 읽히지 않는 것, 간혹 읽더라도 밀리터리 매니아들의 취미 용도 이상이 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몽고메리의 『전쟁의 역사』는 우리가 구해 읽을 수 있는 전쟁사 관련 도서들 중 가장 대중적이고, 잘 만들어진 책이다. 아마도 그런 장점 때문에 이 책의 개정판까지 나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제2차 세계대전 초반 영국을 제외한 서유럽 전역을 석권한 나치 독일로부터 최후까지 저항하여 마침내 승리에 이른 영국이었지만 제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의 신화는 저물고 있었다. 영국군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던 몽고메리 장군의 숙적은 롬멜뿐만 아니라 아군 가운데에서도 있었으니 그가 바로 조지 패튼 장군이었다. 두 사람은 전쟁 막판까지 자존심을 건 치열한 경쟁으로 전공을 다투었다.

전쟁에 대한 역사서로서 이 책은 고대 전쟁으로부터 한국전쟁 이전까지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만약 그 뒤의 전쟁 사에 대한 책을 찾는다면 구태여 이 책을 읽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이 책은 20세기 들어 가장 엄혹했던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다루고 있고, 그 이후 벌어진 다른 전쟁들 역시 이들 세계대전의 결과에 기인하거나 그 이전의 체제들로 인해 빚어진 것들이다. 그러므로 이후의 전쟁들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싶다면 역시 이 책을 미리 읽어두는 것이 좋다. 이 책은 모두 7부 25장의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전쟁의 본질"은 전체의 서두 역할을 하고, "제2부 고대 전쟁"부터 "제6부 1815-1945년의 전쟁"까지는 이 책의 본문인 전쟁사에 해당한다. "제7부 불가해한 숙명"은 이 책의 에필로그격이다.

이 책의 어쩔 수 없는 한계 혹은 필자의 한계라 할 수 있는 아쉬움이 남는 부분은 이 책의 전체 분량과 주목한 부분에서 대체로 동양에 대한 언급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관점에서 보자면 너그럽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지만 우리는 이 책의 저자인 몽고메리가 빅토리아 시대 말엽에 태어나 그가 교육받고 성장하여 보낸 인생의 전성기를 서구제국주의 전성기로부터 몰락기에 해당하는, 다시 말해 식민지 국가들의 독립과 해방 이전 시기를 보낸 인물이라는 사실에 주목해 주어야 한다. 게다가 오늘날에도 동양에 대한 서구의 인식은 미미하기 그지 없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이를 몽고메리 개인의 잘못으로만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시대적 한계를 생각해본다면 이 책에서 동양이 아주 무시당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전쟁사를 언급하는 부분에서 몽골과 중국, 일본 그리고 인도를 중심으로 다룰 수밖에 없는 것은 말이다. 그 나름대로는 중국의 손자나 몽골의 징기스칸, 한국의 이순신 등에 대하여 각별한 존경을 표한 셈이다.

몽고메리는 이 책의 661쪽에서 662쪽에 걸쳐 "조선에는 이순신이라는 뛰어난 장군이 있었다. 이순신 장군은 전략가, 전술가, 탁월한 자질을 지닌 지도자였을 뿐만 아니라 기계제작에도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중략>...일본 선원들은 용감하게 싸웠으나 이순신 장군의 철갑 전함(거북선)에는 저항할 수 없었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뭐 그렇더라도 여전히 불만은 남겠지만 전쟁사에 여러 페이지에 걸겨 많이 기록된다고 썩 좋은 일도 아니지 않나? 흐흐)

솔직히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이유는 앞서 언급한 여러 장점들에도 있지만 한 명의 직업 군인이 평생 전장을 거쳐 살아오며 경험하고 느낀 진솔한 전쟁관과 평화관이 이 책 곳곳에 묻어있기 때문이다. 물론 장군들이 쓴 전쟁회고록이나 제너럴십에 대해 군사평론가들이 말한 책은 이미 많이 있다. 그러나 많은 책들이 일종의 회고담에 그치거나  출세기, 실증적인 전사 검토에 그치는데 반해 이 책에는 우리가 전쟁을 배워야 하는 이유가 전쟁 그 자체를 효율적으로 좀 더 잘 치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평화롭게 살아갈 것인가를 배워야 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는 미덕이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매우 좋은 책이다.

몽고메리는 "전쟁의 본질"편에서 전쟁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전쟁은 왜 일어나는가? 더러는 전쟁이 문명의 소산이라고 말할 테고, 더러는 전쟁이 인간의 타고난 본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즉 합의를 도출할 다른 방법이 없을 때 항상 중재자 역할을 한 것은 다름 아닌 전쟁이었다는 것이다. 전쟁이 내린 판결은 정의보다 힘에 기초한 것이었다. <46쪽>

전쟁이란 경쟁 관계에 있는 정치 집단 간의 장기 무장 충돌을 의미한다. 전쟁에는 반란과 내란이 포함되며, 개인적인 폭동이나 폭력행위는 제외된다.<47쪽>"


그는 전쟁의 승자가 곧 정의라고 주장하지 않으며 그건 영국군도 마찬가지였음을 솔직히 인정한다. 우리는 최근 이라크 파병 문제와 관련해 스스로를 오랫동안 자유주의자로 자처하던 어떤 지식인이 국회의원이 된 뒤 "국가이성"에는 도덕을 물을 수 없다고 주장하며 파병을 두둔했던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서구에서 자유주의가 파탄난 것은 자유주의 덕목 자체가 파탄났기 때문이 아니라 자유주의자들이 너무나 손쉽게 보수화하는 경향을 보였기 때문이다). 몽고메리는 전쟁을 수행하는 국가를 단지 "정치 집단'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물론 우리의 생존 목적을 "국가와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고 믿는 이들에게는 불경스러운 일이겠지만, 그는 전쟁을 수행하는 국가에 대해 단지 정치집단으로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최근에 나온 "헌법의 풍경"이란 책에서 저자 김두식은 이렇게 말한다. 헌법의 기본권 정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정신에서 출발한다.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사상과 신앙, 표현의 자유는 인정되어야 한다. 권력자들이 "인정한다, 그러나"라며 필요에 따라 개인의 기본권을 규제하면 국가가 괴물로 돌변하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다면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지금 어떤 나라가 괴물이냐'라는 것이 아니다. 국가란 본디 언제든지 괴물로 변할 수 있는 존재라는 점이 중요하다"라고 말한다.

"서구 중세를 통틀어 일개 국가의 인력은 그다지 중시되지 않았다. 전투 때는 노예들이 소모품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14세기에 흑사병으로 알려진 일련의 전염병이 돌자, 인력이 귀해져 노예의 경제적 가치가 커지게 되었다. 그때부터 노예는 생명이 보호되어야 했고, 더 이상 소모품으로 사용될 수가 없었다. 현대에 있어서 한 국가가 전쟁을 치를 때 무장 병력 중 사병은 직업 육군이나 해군이나 공군이 아닌 민간인으로 채워진다. 그런데 민간인들은 결코 그러길 원치 않는다. 현대의 사병은 지난날의 노예나 용병들과는 딴판이다. 즉, 그들은 교육을 받았고, 사고할 수 있고, 식별할 수 있으며, 비판할 태세가 되어 있다.... 중략 ..... 현대전은 총력전이다. 또 몇 세기에 걸쳐 대단히 복잡해진 현대전은 한 국가의 활동과 존속 자체를 좌우할 정도여서, 과거와 달리 이제는 국가 전체의 사기가 중요해졌다. 그것은 필수적이다. 징용과 용병의 시대에는 국가적 전쟁에 종사하거나 전투를 하는 사람이 비교적 소수였다." <56-57쪽>


프랑스의 정치가 탈레랑은 "전쟁은 너무 심각한 일이라서 군인들에게 맡겨둘 수가 없다"고 말하지만 그와 같은 이유로 몽고메리는 "전쟁은 너무 심각한 일이라서 정치가들에게 맡겨둘 수가 없다"고 말한다. 물론 이때의 몽고메리가 말한 것은 군인과 정치가 모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뜻일 게다. 우리는 앞서 몽고메리가 말한 것을 기억해야 한다. 전쟁은 너무 심각한 일이기 때문에 군인과 정치가에게만 맡길 수 없다. 더군다나 현대의 전쟁은 총력전이기 때문에 더더욱 시민사회의 감시 아래 놓여야 한다.

몽고메리는 전쟁의 여러 이유 중 하나, 특히나 현대전에서 두드러진 특징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빈번한 전쟁에 대한 또 다른 근본적 이유로 집단에 소속하려는 인간의 뿌리 깊은 욕망을 들 수 있다. 한 사회 안에서 충성심이나 집단의 주체의식, 애국심과 같은 것이 발전하게 되면 결과적으로 이웃 집단에 대해서는 배타적이고 적대적이게 된다. 라틴어 hostis가 '이방인'과 '적'을 동시에 뜻한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지상의 다양한 민족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남다른 문화에 강하게 집착하는 경향이 있으며, 그러한 문화와 군사제도는 서로 밀접한 관계에 있다. <83쪽>


라틴어로 이방인과 적이 같은 단어로 표현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장군을 만나기는 동서양을 모두 통틀어 보더라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배타적인 마음, 조직에 대한 무조건적인 충성, 민족주의, 국가주의, 국수주의가 바로 타인에 대한 잔학 행위로 나타났었음을 우리가 "전쟁의 역사"에서 교훈으로 얻을 수만 있다면 평화의 발명에 더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는 25장 "에필로그 - 평화라는 이상"에서 예레미야서를 인용하여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모두가 거짓을 행하며, 평화롭다, 평화롭다 하나 평화가 없도다"라고 말한다. 분명 문명은 진보했고, 지난 2000년 동안 모든 선량한 사람들이 마음속 깊숙이로부터 평화를 갈구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20세기에 이르러 역사상 가장 잔혹하고 가장 혼란스러운 시대를 경험했다. 우리는 국가간의 전면적인 야만 상태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할 수 있을까? 숱한 시간들을 전장에서 보내고 전쟁을 연구한 학자로서 몽고메리는 말한다.

"진정한 군인은 타인을 적으로 삼지 않고, 인간 내면의 야수를 적으로 삼는다. 한 군인으로서 나는 희망한다. 황금빛 노을이 지고 반목과 싸움을 잠재우는 소등 나팔소리가 울리는 그날이 오기를. 이윽고 찬란한 태양이 솟아오르며 세계 온 나라의 친선과 평화를 깨우는 기상나팔 울리는 그 시대가 오기를."


아무리 많은 숫자의 군대라 할지라도 항상 승리를 거둘 수 없으며, 국민들의 마음을 영원히 장악할 수도 없다고 말이다. 평화를 애호한 사람들은 자유와 정의를 위해 싸웠다. 자유와 정의가 없으면 겁 많고 노예화된 사람들에게 평화가 주어졌다 한들 그 평화는 지상의 지옥과 같았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평화는 인간 내면의 야수와 싸워 얻은 평화이며, 만일 그 평화를 쟁취하고 유지한 미덕들이 상실된다면 평화는 지속되지 않을 것이다. 평화는 실천이라는 미덕과 함께 해야만 지켜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세대는 20세기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라도 평화를 발명해내야 하는 도덕적 책무를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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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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