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호학으로 본 스타시스템의 변화

현대의 일상세계에 존재하는 무수한 신화들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드가 모랭은 『스타』(문예출판사)를 통해 스타를 통해 본 대중문화를 읽고 다시 사회를 해석하고자 했다. 그에게 있어 스타란 사회를 해석하는 상징이자 기호였다. 에드가 모랭은 “스타는 확실히 하나의 신화인데, 그것은 단지 몽상(夢想)일 뿐만 아니라, 힘 있는 관념”, 다시 말해 세상을 구축하고, 뒷받침하는 이데올로기적 서사란 뜻이다. 우리는 이 말을 통해 현대 사회에서 스타(Star)가 차지하는 위상과 역할, 기능에 대해 깨달을 수 있다.

신화를 뜻하는 미토스(mythos)란 말은 본래 고대 그리스어에서 온 용어인데 이 말은 ‘서사(敍事)’를 뜻한다. 서사란 작은 의미에서의 ‘이야기(story)’가 아니라 보다 큰 개념으로 언어적인 것들뿐만 아니라 연극, 음악, 춤, 이미지 등 인간이 만들어낸 온갖 기호적 장치들을 통해 구현된 이야기 체계를 의미한다. 신화, 역시 좁은 의미에서는 고대인들의 상상 속에 등장하는 온갖 신들의 이야기를 지칭하는 것이지만 신화의 의미를 확장해 보면 현대인의 삶이 작동한 일상의 어디에나 있는 것이 신화이다.

본래 언어학에서 출발한 기호학(semiology)이 오늘날 현대사회를 해석하는 중요한 학문으로 자리 잡을 수 있게 된 것은 언어를 기호(sign)로 파악했던 소쉬르의 개념을 현대 세계의 신화를 해석하는 도구로 원용하면서부터였다. 프랑스의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는 고대인들이 자신들이 이해하고, 인식하고 있던 세계의 의미를 재현하고 재구성하기 위해 신화를 만들어냈던 것처럼 현대 세계도 이와 같은 목적으로 신화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보았다. 그는 이와 같은 현대의 신화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해석하는 것이 바로 기호학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인간이 달나라에 가는 현대 세계의 어디에 신화가 존재한단 말인가?’란 의문을 품을 수 있을 것이다.

스타가 만들어낸 상징과 메시지

간단한 사례로 한국에 등장한 가장 최근의 신화는 광저우 아시안게임 수영3관왕으로 새로운 ‘신화창조’에 성공한 ‘마린보이 박태환’이 있고, 빙상스포츠의 불모지였던 대한민국 피겨스케이팅의 역사를 새롭게 쓴 ‘빙판의 여신, 김연아’가 있다. 조금 더 멀리 가자면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룩한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들이 있고, 이들을 4강까지 이끈 히딩크 감독 역시 그와 같은 신화의 주인공들이다. 박태환과 김연아, 히딩크 감독의 공통점은 이들이 스포츠 스타란 것이지만 동시에 이들이 우리 사회가 감동할 만한 메시지를 주었고, 그 메시지에 우리가 열렬히 호응했다는 것이다.

기호학에선 기호(신화)의 겉모습을 시니피앙(signifiant, 記表)이라 하고, 기호 안에 담긴 의미(메시지)를 시니피에(signifié, 記意)라 부른다. 시니피앙과 시니피에의 결합을 통해 겉으로 드러나는 일차적인 의미화 과정을 다시 디노테이션(외연, denotation)이라 하고, 이것이 인간의 감정이나 평가에 의해 더해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차적 의미화 과정을 코노테이션(내포 connotation)이라고 한다. 용어들을 접하면 다소 복잡하게 느껴지지만 실상은 매우 간단해서 기호학을 응용하면 박태환, 김연아, 히딩크는 물론 이와 같은 스타들을 통해 현대의 대중들이 무엇에 그토록 열광하고 있으며 대중이 바라고, 희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엿볼 수 있다.

기표의 측면에서 박태환 이전의 한국 수영은 최윤희가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낸 적이 있을 뿐 세계무대에선 존재감을 느낄 수 없는 종목이었다. 어느 날 솜털도 채 가시지 않은 박태환이 올림픽에 출전해 그것도 경쟁이 가장 치열하다는 남자 자유형 종목에서 당당히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미국과 동구권 스타들의 독무대로 여겨졌던 피겨스케이팅 분야에서 한국의 어린 소녀가 만점에 가까운 연기를 선보이며 세계인들을 매료시켰다. 아시아에선 호랑이였지만 세계무대만 나가면 한없이 작아지던 한국 축구 역시 세계적인 스타 한 명 없었지만 세계적인 축구강호들을 잇달아 연파하며 당당히 세계 4강에 올랐다.

이들의 성공은 스포츠 승부의 세계가 주는 드라마틱한 서사로 재구성되면서 한국의 대표적인 신화가 되었다. 아마도 이것이 이들이 신화가 주고 있는 기표이자 외연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신화에 내포된 기의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나아가는 대한민국의 당당함, 세계화 이래 늘 선진강국들 앞에만 서면 왠지 모르게 주눅 들고, 자신이 없었던 우리들에게 이제 우리도 선진국의 반열에 곧 들어설 수 있으며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것이란 자부심을 선사한 것이다. 특히 박태환과 김연아의 경우 주목해야 할 점은 이들이 성공에 이를 때까지 정부나 국가보다 그들 개개인의 노력과 가족의 희생으로 뒷받침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태환과 김연아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아들, 딸이 되고, 백발의 네덜란드인 감독 히딩크는 대한민국 특별시민 희동구가 된다.

우리 시대의 가장 강력한 신화, 스타

대중문화가 지배하는 사회의 가장 강력한 신화는 대중 미디어를 통해 널리 알려지고, 그로 인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스타다. 스타는 그 시대가 동경하는 서사 이데올로기를 몸소 현현(顯現)한 신적 존재이다. 스타와 영웅은 여러 면에서 흡사한데, 둘 사이의 공통점은 시대를 잘 타고 나야 한다는 것이지만 이 말은 사실 스타에겐 시대가 동경할 만한 그 무엇, 실력뿐만 아니라 대중을 감동시킬 서사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그것을 스타성 혹은 스타덤(stardom)이라 부른다. 스타덤이란 스타들이 살아가는 방식(일상뿐만 아니라 성장과정, 사랑과 결혼, 섹스까지 포함하는 삶의 방식)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를 뜻한다. 스타덤은 팬들에 의해 생산되고, 유지되는 데 이와 같은 현상을 팬덤(fandom)이라 부른다. 팬덤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특정한 인물이나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 또는 그러한 문화현상’이다. 팬덤과 스타덤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팬덤을 이해하지 못하면 스타를 이해할 수 없으며 스타를 만들어낼 수 없다.

과거엔 스타와 팬의 구분이 명확했다. 스타가 스타인 이유는 말 그대로 일반인들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잡을 수 없는 하늘의 별이기 때문이었지만 최근엔 이런 구분이 급격하게 무너지고 있다. 일반인은 스타가 되고 싶어 하고, 스타는 일반인이 되고 싶어 한다. 스타와 대중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기호학적 맥락에서 살펴보면 스타의 생산시스템, 이른바 스타시스템에 커다란 변화가 도래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몇 해 전부터 큰 인기를 누리며 TV를 장악하고 있는 것이 이른바 스타들의 ‘쌩얼’을 보여준다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란 것을 잘 알고 있다.




과거 아날로그 미디어 시대의 스타들이 기획사의 스타시스템(star system)에 의해 만들어졌다면 멀티미디어 시대인 오늘날엔 ‘적극적인 팬덤’에 의해 스타가 만들어진다. 적극적인 팬덤이란 사실 마케팅 영역의 프로슈머(prosumer)와 다를 바 없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얼마 전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슈퍼스타K>를 들 수 있다. 이제 대중은 기획사의 스타시스템에 의해 생산된 스타에 만족하지 않고, 그들 스스로가 ‘신화 훔쳐오기’를 통해 새로운 스타와 신화를 생산하는 존재로 변모해가고 있다. 이것은 대중의 변화된 욕망을 반영하고 있는 것인데, 과거 스타는 신적 존재이며, 관객은 스타의 신도들이었지만 이젠 대중들 스스로 신이 되려는 강한 열망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My Prime Club:동양증권 사보, 2011,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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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크리스마스(Christmas)에 대해 알고 싶은 서너 가지



한 해를 마감하는 연말 무렵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크리스마스는 어린 시절 한 번쯤 산타클로스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보게 만드는 명절 아닌 명절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에선 우리나라에 국교가 있는 것도 아니고 기독교라는 특정 종교의 종교적 행사를 어째서 국가공휴일로 지정(?)했는지 시비 거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기독교 신자들 중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라는 성스러운 사건을 기념하는 날이 어째서 상업적인 행사인 양 떠들썩하게 치러져야 하는지 불만을 품고 크리스마스, 본래의 정신으로 되돌아가자고 주장하기도 하지요.

예수 탄생 이후 300년간 박해받았던 기독교
성탄절을 의미하는 크리스마스(Christmas)는 본래 ‘그리스도의 미사(Christes maesse)’에서 유래한 말로 그리스도교의 축일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지만 누구나 알고 있듯 예수가 12월 25일에 탄생했다는 근거는 성서를 비롯한 어디에도 없습니다. 신학자들은 물론 역사학자들도 이 날이 그리스도교의 축일은커녕 로마의 이교(異敎) 축제에서 비롯된 것이라 보고 있는데요. 로마의 역서(曆書)에 따르면 그리스도교의 크리스마스 축제는 336년경 로마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기독교 초기의 박해사에 대해서는 할리우드에서 제작된 영화들을 비롯해 여러 매체들을 통해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예수 탄생 이후 거의 300여 년간 박해받았던 기독교가 공인된 것은 313년 2월 콘스탄티누스 1세가 반포한 밀라노칙령을 통해서였습니다.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50년간 18명의 황제가 교체되었던 극심한 혼란을 끝내기 위해 방대한 로마제국을 네 명의 황제들에게 분할하여 통치하도록 했던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뒤를 이어 황제에 오른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어머니였던 헬레나는 독실한 기독교도였기 때문에 콘스탄티누스 황제 자신은 기독교도가 아니었지만 기독교에 대해 관용의 마음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임 황제였던 디오클레티아누스는 과거 로마의 영광을 복원하기 위해 로마의 전통적인 다신교를 숭배했고, 기독교를 박해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이미 제국의 하층민들뿐만 아니라 귀족, 학자, 군인 등 지배층에까지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었습니다. 제국의 혼란을 막기 위해 제국을 분할해 네 명의 황제가 통치하게 했던 디오클레티아누스가 퇴위하자 로마제국은 서로 황제가 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일어났습니다.

콘스탄티누스의 가장 강력한 숙적 중 한 명이었던 막센티우스와의 결전을 앞둔 312년 10월 28일, 콘스탄티누스는 “정오의 태양 위에 빛나는 십자가가 나타나고, 그 십자가에는 ‘이것으로 이겨라’는 글자가 쓰여 있는” 환영을 보았다고 전해집니다. 물론 이것이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었는지 아니면 후세에 만들어진 전설인지에 대해선 누구도 알 수 없지만 이 이야기 속에 담긴 의미는 명확합니다.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 세력의 지지를 얻어 막센티우스의 군대를 물리쳤고, 서로마 전체를 지배하는 황제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는 것이죠. 황제는 즉위 직후 밀라노 칙령을 내려 로마제국 내에서 종교의 자유를 승인했고, 그 덕분에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중지될 수 있었습니다. 역사학자 존 노리치는 『비잔티움 연대기』에서 “역사상 그 어느 지배자도, 알렉산드로스도, 앨프레드도, 샤를마뉴도, 예카테리나도, 프리드리히도, 그레고리우스도, 콘스탄티누스만큼 ‘대제’라는 칭호에 완벽하게 어울리는 인물은 없다.”고 평했는데 그 이유는 그가 탁월한 정복전쟁을 했거나 뛰어난 통치술을 발휘했기 때문이 아니라 기독교를 최초로 공인했다는 업적을 높이 평가한 것이었습니다.


▶ 기독교 순교자의 마지막 기도(The Christian Martyr's Last Prayer) 장-레온 제롬(Jean-Leon Gerome)


이교에 대한 승리를 기념하는 날에서 출발한 크리스마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예수 탄생 이후 300여 년간 로마제국의 지배 아래에서 기독교 신자들은 십자가형에 처해지거나 산채로 불에 태워지고, 사잣밥으로 던져지는 등 모진 박해와 수난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전통적으로 다신교를 숭배하던 로마의 사제들은 그리스도교 박해에 앞장섰는데 콘스탄티누스에 의해 기독교가 공인되자 이번엔 그 반대의 일들이 벌어지게 됩니다.

초대 기독교 시대에는 어떤 이유나 목적에 관계없이 전쟁은 원칙적으로 죄악(Evil Sin)이라 하여 전쟁에 반대했습니다.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가 죽음이로 보여준 비폭력, 무저항, 사랑, 희생의 정신으로 상징되는 종교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콘스탄티누스가 로마제국에서 기독교를 공인한 후부터 전쟁에 관한 교리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서로마제국 교회에서는 상당 기간 전쟁을 악으로 간주해 왔었는데, 성 아우구스티누스 시대에 이르면 ‘정당한 전쟁’이 있을 수 있다고 인정하고 병사들의 전쟁 참여와 살상을 수용하도록 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후 그레고리 1세 대교황 시대 서로마에서는 신앙심이 없는 사람들이나 이단자들을 합법적으로 기독교도로 강제 개종시켜도 된다는 이론을 채택합니다. 전쟁에 대한 기독교 교리의 변화가 교회 내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된 것과 무관하게 기독교가 공인된 직후부터 전통적인 로마 다신교 신전과 사제들이 기독교 사제들과 기독교 신자들에 의해 공격받았고, 점차 세가 위축되면서 사라지게 됩니다.

◀ 프란치스코 고야(Francisco de Goya), 자기 자식을 잡아먹는 사트루누스(Saturn), 1820-23, Oil on plaster, Prado Museum, Madrid

당시 로마에서는 농경사회 대부분이 그러하듯 추수가 끝난 뒤인 12월 24일부터 다음해 1월 6일까지 ‘정복당하지 않는 태양의 탄생일(natalis solis invicti)'이라 하여 낮이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고 태양이 하늘 높이 떠오르기 시작하는 ‘동지’를 기념하는 축제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스칸디나비아 반도 등 겨울이 유난히 길고 혹독한 지역에서는 동지를 전후해 커다란 축제가 연이어 벌어지기도 하는데 당시 로마의 ‘동지제(冬至祭)’ 축제 역시 범국가적인 행사로 거대하게 치러지는 행사였습니다. 동지는 낮 동안 해가 하늘에 머무는 시간이 가장 짧은 날로 이 날을 기점으로 점차 해가 길어집니다. 그런 까닭에 이 날을 태양의 탄생일이자 빛의 날로 기념하고 기나긴 겨울이 끝나고 곧 봄이 올 것을 알리는 기쁜 날이었기 때문에 농경의 신 사투르누스(Saturn)에게 경배하는 날이었습니다.

한 편 기독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의 빛(요 1:9)’이라 하였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곧 세상의 빛이 탄생한 것이었기 때문에 로마의 이교도들이 12월 25일 ‘태양의 탄생일’로 정한 것처럼 12월 25일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과 일치시켰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교도들의 축제를 자신들의 축제로 전환시킴으로써 선교를 좀더 쉽게 하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다른 한 편으로 초대 교회의 사도들은 기독교가 이교도들을 정복했다는 의미에서 이교도들의 축제일인 이 날을 기념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때만 하더라도 12월 25일은 단지 이교도들에 대한 기독교의 승리를 기념하는 날이었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정착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로마제국의 동방 지역에서는 12월 25일보다 1월 6일을 하느님이 예수의 탄생과 세례 때 나타난 날로 기념했고, 예루살렘에서는 탄생만 기념했습니다. 그러나 4세기경에 이르면 동방교회의 대부분이 점차 12월 25일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함께 기념하기 시작했고, 오랫동안 크리스마스를 반대하던 예루살렘 교회 역시 결국 크리스마스를 예수의 탄생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르메니아 교회는 12월 25일 대신 1월 6일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기념했습니다. 로마가 동서로 분열되었던 것처럼 기독교 역시 동서로 분열되어 각각의 입장과 교리에 따라 예수 탄생일을 기념했는데 동방교회는 12월 25일을 예수 탄생일로 지키게 된 뒤부터 1월 6일을 예수의 세례를 기념하는 주의공현대축일(주현절[主顯節], Epiphany)로 지켰으나 서방교회에서 주의공현대축일은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를 찾아온 날을 기념하는 축일이었습니다.

크리스마스를 상징하는 트리와 카드, X-MAS 그리고 캐럴과 산타클로스

크리스마스의 상징물 중 가장 대표적인 크리스마스트리 관습 역시 기독교 본래의 것은 아니었습니다. 로마력 설날에 로마 사람들은 자기 집 안팎을 푸른 나무와 등불로 장식하는 관습이 있었고, 자녀들과 주변 이웃들에게 선물을 나눠주는 관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나무를 신성하게 여기는 관습은 이집트를 비롯해 여러 지역에서 나타나고 있는데 특히 게르만족들은 신성하다고 여기는 떡갈나무에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관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8세기 경 게르만족들에게 선교를 위해 파견된 선교사들이 떡갈나무를 신성하게 여기고,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관습을 타파하기 위해 이들의 관습을 역으로 이용해 전나무를 가지고 돌아가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라고 설교하기 시작한 것에서 크리스마스트리의 전통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전 세계에서 크리스마스트리로 가장 많이 쓰이고 있는 나무는 전나무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구상나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분들은 많지 않습니다. 물론 그 구상나무가 완전히 한국산 토종은 아니고, 한국산 토종의 종자를 가져간 미국과 유럽의 종자회사들에서 종자개량을 통해 생육조건을 변화시켜 전 세계에 팔아먹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로열티 한 푼 받을 수 없으며 크리스마스 무렵이 되면 우리나라로 역수입되어 로열티를 지불해야만 하는 실정이긴 하지요.

크리스마스 무렵이면 가까운 친지와 이웃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는 풍습이 있습니다. 크리스마스의 다른 풍습들이 유례가 불분명한 것들이 많지만 카드만큼은 유례가 명확한 편인데요. 1843년 런던의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에 새로 관장으로 부임한 헨리 콜경은 너무 바빠서 크리스마스 편지를 쓸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편지 대신에 짤막한 메시지를 담은 카드를 만들게 되었는데 자신이 카드 속지에 쓸 편지를 쓰는 동안 미술가인 존 호슬리에게 크리스마스의 풍경들을 묘사한 그림을 그려달라고 의뢰했습니다(사실 그럴 여유가 있었다면 편지를 쓰는 편이 훨씬 더 간소했을 텐데요). 이렇게 만들어진 카드를 복사해서 보냈는데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3년 뒤 미국에 무료 우편제도다 신설된 뒤 독일에서 이민 온 루이스 프랑이 미국의 크리스마스 카드 산업을 일으켰는데, 그는 바이에른에서 채석한 석회석을 사용하는 사치스러운 인쇄공정을 채택했는데 그 덕분에 그림 한 장에 17가지 색을 입힐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의 사업은 대단히 성공적이었고, 오늘날에도 크리스마스 카드는 가장 화려한 인쇄물 중 하나가 되었죠.




거리 곳곳에 크리스마스를 알리는 장식물들이 있는데 그 중에는 ‘Christmas'라고 쓴 것도 있지만 좀 짧게 'X-MAS'라고 쓴 것도 있을 겁니다. 크리스마스가 ’그리스도의 미사‘란 뜻이란 것은 앞서 말씀드렸지만 ’X-MAS‘는 'X'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지 못하고 그냥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 말하는 ’X‘자는 영어 알파벳의 X가 아니라 고대 그리스어인 헬라어의 '그리스도'라는 단어의 첫 자인 '크스'자로 이 뒤에 미사를 뜻하는 MAS를 붙인 겁니다. 그래서 표기는 ’X-MAS‘로 하더라도 읽을 때는 '크리스마스'라고 해야 맞습니다.

또 크리스마스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습 중 하나가 캐럴(carol)인데 캐럴이란 말의 기원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대표적입니다. 하나는 우리나라의 아리랑처럼 사람들이 모여 둥글게 원 형태로 춤을 추는 프랑스의 전통적인 원무(圓舞)를 지칭하는 말 캐럴(carole)에서 유래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중세 후기 영국의 전통적인 노래 형식을 지칭하는 말에서 유래되었다는 겁니다. 본래 영국의 캐럴은 절(V)이 하나의 후렴(B)과 교대하는 형식을 갖고 있었는데, 오늘날의 캐럴은 모두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노래들을 통칭하여 부르는 것이지만 14세기 무렵 영국에서 만들어진 캐럴들은 민중들이 만들고 부르는 종교적인 노래인 것은 맞지만 그 내용이 반드시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것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크리스마스캐럴을 지칭하는 말도 나라마다 조금씩 다른데 독일에선 크리스마스이브의 노래란 뜻에서 바이나흐트 리트(Weihnacht lied) 라 하고, 프랑스에서는 노엘(Noël)이라고 합니다. 오랫동안 종교적인 노래로 불리어지다가 종교개혁 이후부터는 민중적 종교 음악이었던 캐럴이 사라지고 교회에서 정식으로 작곡된 찬송가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17세기에 영국과 스코틀랜드 등의 청교도들은 엄격한 교리 원칙에 따라 모든 종교적인 축제를 부정했고, 크리스마스 축하행사 역시 금지시켰었는데, 지나치게 엄격한 탓이었는지 몰라도 청교도 세력이 약해지면서 크리스마스 축제가 다시 부활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코틀랜드 지역의 장로교회에서는 크리스마스를 지내지 않는 대신 1월 1일을 가장 큰 축제로 삼았는데,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신년예배를 드리는 것 역시 이런 영향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미국만큼 크리스마스를 떠들썩하게 보내는 나라도 없지만 청교도들이 나라를 처음 세웠을 무렵엔 오늘날과 같은 크리스마스는커녕 크리스마스 자체를 기념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크리스마스 캐럴도 없었지요. 그러나 1857년경 미국의 J.H. 흡킨스(Hopkins) 목사가 크리스마스 캐럴을 작곡하면서부터 서서히 캐럴의 전통이 복원되기 시작했습니다.


▶ 1942년에 만들어졌던 영화 <홀리데이인(Holiday Inn)>의 삽입곡 'White Christmas'가 크리스마스 캐럴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자 1954년 빙 크로스비, 로즈마리 클루니가 함께 주연을 맡아 영화 <White Christmas>로 제작되기도 했다.

오늘날 캐럴은 교회에서 부를 수 있는 캐럴과 거리에서 들을 수 있는 캐럴로 구분되는데 거리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상업적 캐럴의 대부분은 1942년 할리우드 음악영화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홀리데이인(Holiday Inn)>이 성공하면서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들입니다. 아카데미 영화주제가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이 영화 속엔 우리가 잘 아는 빙 크로스비의 <White Christmas>가 수록되어 있었지요. 이때부터 1950년대까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Santa Claus coming to town>, <Let it snow! Let it snow! Let it snow! > 등 캐럴의 대부분이 만들어지는 캐럴의 홍수가 일어나게 되지요. 오늘날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수많은 대중가수들이 캐럴을 만들어 부르지만 교회에선 이 노래들을 상업적인 캐럴이라 하여 부르지 않는데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오늘날 만들어지는 상업적인 캐럴이 도리어 과거 민중적인 캐럴의 전통과 맥을 잇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산타클로스의 유래에 대해선 이미 많이 알려져 있지만 어째서 빈민구제에 앞장섰던 성 니콜라우스가 빨간 옷의 뚱뚱보 할아버지로 이미지 변신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선 여전히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모양입니다.

산타클로스의 탄생과 키즈 마케팅(Kids Marketing)

마케팅 전문가들은 로버트 우드러프가 청소년들이 미래의 새로운 소비자이며 , 이들에게 접근하기 위해 환상적인 이미지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았다는 점을 매우 높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코카콜라의 경영자였던 로버트 우드러프는 광고담당자들에게 코카콜라가 뭔가 긍정적인 에너지를 제공하며, 코카콜라를 통해 이상적인 세계에 접근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도록 만들라고 다그쳤는데, 그의 관점에서 보자면 코카콜라는 단순한 탄산음료가 아니라 꿈과 환상의 아이디어를 파는 드림 웨어(dream ware)여야만 했습니다. 그 결과 등장한 것이 가장 미국적이며 세계적인 이미지로서의 산타클로스였지요. 1931년 코카콜라가 붉은 색 산타복장을 한 뚱뚱한 산타클로스의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전까지 산타클로스는 구세주의 탄생을 기념하는 크리스마스를 상징하는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산타클로스의 기원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대체로 3세기 경 소아시아에서 출생한 니콜라스(St. Nicholas) 성인에서 유래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정설인데요. 현재 터키 지역의 주교를 지낸 그는 특히 어린이들을 사랑하여 어린이들 모르게 선물을 주었다고 하는데, 이를 기리기 위해 유럽의 일부 지역에서는 성 니콜라스의 축일인 12월 5일에 즈음해서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코카콜라는 상업용 일러스트 전문 화가였던 하든 선드블롬(Haddon Sundblom)에게 코카콜라를 위한 산타클로스를 그려달라고 의뢰했고, 그 결과 탄생한 것이 오늘날 성탄절의 대명사가 된 산타클로스였습니다. 이처럼 코카콜라에 의해 재탄생한 산타클로스는 ‘코카콜라 레드(Coca-Cola Red)' 빛깔인 붉은 색 외투에 흰색 털을 단 옷을 입었고, 종교적인 인상 대신에 풍성한 흰 수염에 얼굴 가득 홍조를 띤 인자한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탈바꿈되었습니다. 선드블롬이 탄생시킨 산타는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준 뒤 휴식을 위해 코카콜라를 마셨고, 착한 어린이들은 산타가 선물을 넣어주는 양말 속에 감사한 마음으로 코카콜라를 담아두었습니다. 전통적으로 탄산음료의 비수기인 겨울철 매출 증진을 위해 구상된 코카콜라의 판촉 전략은 전 세계의 크리스마스 문화와 풍경을 변화시켰습니다. 어린이들은 종종 뚱뚱한 산타가 어떻게 굴뚝을 타고 내려와 자신들에게 선물을 줄 수 있는지 궁금하게 여기는데, 사실 뚱뚱한 산타가 어떻게 굴뚝을 통과해서 내려와 선물을 주고 갈 수 있는지 그 비법에 대해선 아무도 모르지만 그가 왜 그렇게 뚱뚱해졌는지는 누구나 알 수 있을 겁니다. 바로 코카콜라를 많이 마셨기 때문이지요.




자, 크리스마스에 대해 궁금한 몇 가지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님이 실제로 12월 25일에 세상에 오셨든, 아니든 그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우리는 오늘 그 분이 세상의 빛이 되기 위해 가난하고 헐벗은 이웃을 사랑하라고 가르쳤고 스스로 우리들의 죄를 짊어지고 가장 고통스러운 형벌인 십자가를 짊어졌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그 분의 삶을 올바르게 따르는 길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Merry Christm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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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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