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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10.12 박영근 - 길 (1)
  2. 2011.09.22 윤제림 - 길
2011.10.12 10:38




- 박영근



장지문 앞 댓돌 위에서 먹고무신 한 켤레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동지도 지났는데 시커먼 그을음뿐
흙부뚜막엔 불 땐 흔적 한 점 없고,
이제 가마솥에서는 물이 끓지 않는다

뒷산을 지키던 누렁개도 나뭇짐을 타고 피어나던 나팔꽃도 없다

산그림자는 자꾸만 내려와 어두운 곳으로 잔설을 치우고
나는 그 장지문을 열기가 두렵다

거기 먼저 와
나를 보고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저 눈 벌판도 덮지 못한
내가 끌고 온 길들


*

"나는 그 장지문을 열기가 두렵다"

시인의 시가 가슴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사실 이런 일이 좋은 건 아니다.
그건 내가 몹시 지쳤거나 다쳤거나 힘겹다는 증거다.

거기 먼저 와
나를 보고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저 눈 벌판도 덮지 못한
내가 끌고 온 길들

시인의 마지막 연이 나를 또 왈칵왈칵하게 만들어 버린다.
잘 쉬고 계시냐고 시인에게 안부를 묻고 싶다.
그곳에선 부디 편안하시라고...
삶이 그토록 쓸쓸했던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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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2011.09.22 10:10




- 윤제림



   꽃 피우려고 온 몸에 힘을 쓰는 벚나무들, 작전도로 신작로 길로 살 하나 툭 불거진 양산을 쓰고 손으로 짰지 싶은 헐렁한 스웨터를 입고 곰인형 가방을 멘 계집애 손을 붙들고 아낙 하나가 길을 간다 멀리 군인트럭 하나 달려가는 걸 보고, 흙먼지 피해 일찍 피어난 개나리 꽃 뒤에 가 숨는다 흠칫 속도를 죽이는 트럭, 슬슬 비켜가는 짐 칸 호로 속에서 병사 하나 목을 빼고 외치듯이 묻는다 "아지매요, 알라 뱄지요?" 한 손으로 부른 배를 안고, 한 손으로 입을 가린 아낙이 수줍게 웃는다 금방이라도 꽃이 피어날 것 같은 길이다.


*

"아지매요, 알라 뱄지요?"

내가 아주 어렸을 적 동네 어귀에서 부른 배를 뒤뚱거리며 걷는 아줌마를 본 적이 있다. 한동안 우두커니 서서 아줌마 저 배에 들어있는 게 뭔지 몰라 저 아줌마는 뭘 먹었기에 저리 배가 나왔을까 했다. 그때는 그 뱃속에 끝없이 이어진 기나긴 탯줄의 길, 가도가도 끝을 알 수 없는 거대한 바다, 숨막히는 미로를 뚫고 나올 꽃 같은 우주를 품고 있다는 걸 미처 몰랐다.

길 위의 인생들이 만나 새로운 길을 만들고 있는 중이란 걸 미처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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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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