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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1.07 김명인 - 베트남1
  2. 2010.09.15 김명인 - 앵무새의 혀

베트남 1

- 김명인


먼지를 일으키며 차가 떠났다, 로이
너는 달려오다 엎어지고
두고두고 포성에 뒤짚이던 산천도 끝없이
따라오며 먼지 속에 파묻혔다 오오래
떨칠 수 없는 나라의 여자, 로이
너는 거기까지 따라와 벌거벗던 내 누이

로이, 월남군 포병 대위의 제3부인
남편은 출정 중이고 전쟁은
죽은 전남편이 선생이었던 국민학교에까지 밀어닥쳐
그 마당에 천막을 치고 레이션 박스
속에서도 가랭이 벌여 놓으면
주신 몸은 팔고 팔아도 하나님 차지는 남는다고 웃던

로이, 너는 잘 먹지도 입지도 못하였지만
깡마른 네 몸뚱아리 어디에 꿈꾸는 살을 숨겨
찢어진 천막 틈새로 꺽인 깃대 끝으로
다친 손가락 가만히 들어올려 올라가 걸리는 푸른 하늘을
가리키기도 하였다 행복한가고
네가 물어서
생각하면 나도 행복했을 시절이 있었던 것 같았다

잊어야 할 것들 정작 잊히지 않는 땅 끝으로 끌려가며
나는 예사로운 일에조차 앞날 흐려 어두운데
뻑뻑한 눈 비비고 또 볼수록, 로이
적실 것 없는 세상 너는 부질없어도 비 되어 내리는지
우리가 함께 맨살인데 몸 섞지 않고서야 그 무슨
우연으로 널 다시 만날 수 있겠느냐
로이, 만난대서 널 껴안을 수 있겠느냐


*

김명인의 이 시를 읽을 때 나는 어떤 무력감 같은 것을 공유한다. 마지막 4연에서 시인은 이렇게 뇌까린다.

"우연으로 널 다시 만날 수 있겠느냐/ 로이, 만난대서 널 껴안을 수 있겠느냐"

나는 사랑에서 가장 큰 적은 대개 다음과 같은 것들이라고 생각해 왔다. 무의미감(sense of meaninglessness) - 자신의 삶이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느끼는 것, 무력감(sense of powerlessness) - 자신의 처지에서 더 이상 어떻게 해볼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느끼는 것, 사회적 고립감(sense of social isolation) - 자신의 불운한 처지를 이해하고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느낌들. 이때 사랑은 부재 중이다.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고, 자신의 처지에서 도와줄 수 없고(이 말은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 없다는 말이다, 타인 혹은 사랑하는 상대에 대해), 고립되어 있다고 느낄 때(소외감이라고 해도 좋겠다) 사랑은 실제한다고 해도 실존적으로는 부재 중이다.

나는 시인 김명인이 베트남전 참전 경험이 있는 시인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그의 약력에 대해 비교적 소상하게 소개되어 있는 그의 홈페이지(
http://www.seaofapoet.org)에도 그가 월남전에 갔다 왔다는 이야기는 없다. 그러므로 이 시는 일종의 상상에 의해 쓰여진 모양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물론, 진정성의 문제를 논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짚어두고 싶었다.

주된 인물로 등장하고 있는 "로이"란 인물은 여성으로, 그의 현재 남편은 남베트남군의 포병대위로, 로이는 세 번째 부인이다. 우리는 시인이 풍문처럼 전해주는 베트남 여성 로이의 이야기를 다만 듣는다. 이때 중요한 것은 우리가 보고 있지 못하고 듣는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필경 로이도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을 것 같다. 시인 김명인은 그도 마치 풍문처럼 말해주는데 그것은 죽은 전 남편이 국민학교 선생이었다는 대목이다. 그러나 로이의 현재는 과연 행복한가?

 

 

 

"그 마당에 천막을 치고 레이션 박스/ 속에서도 가랭이 벌여 놓으면/ 주신 몸은 팔고 팔아도 하나님 차지는 남는다고 웃던" 대목을 보면 로이는 바보스러우리만치 낙관적이기는 하나 우리는 함께 웃어줄 수 없다. 이 때 우리는 무력하다. 로이의 고통을 해결해줄 방법이 우리에겐 도무지 없는 것이다. 때로 슬픔이나 고통을 함께 한다는 말은 사랑의 표현이면서 동시에 사치이기도 하다. 타인의 고통, 타인의 죽음에 동참해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기쁨과 축제에는 동참할 수 있으나 우리는 타인의 슬픔, 고통, 죽음에 대해서는 웬지 함께 할 수 없다. 거기엔 자의식의 결계가 둘러쳐져 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나는 행복하고, 누군가는 죽었으나 장례식에 한껏 울어준 뒤에도 나는 아구억척으로 국밥을 잔뜩 입 안에 처넣을 것이고, 일상은 버젓하게 잘 굴러갈 것이란 사실을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로이는 결코 동정의 대상이 아니다. 그는 도리어 작중의 화자를 위로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친 손가락 가만히 들어올려 올라가 걸리는 푸른 하늘을/ 가리키기도 하였다 행복한가고/ 네가 물어서/ 생각하면 나도 행복했을 시절이 있었던 것 같았다"

 

현실적인 상황으로 보았을 때 로이의 상황은 비참하고, 이를 관찰하는 나는 상대적으로 편안한 위치에 있음을 알 수 있으나 로이 앞에서 시적 화자는 도리어 "나도 행복했을 시절이 있었던 것 같았다", "나는 예사로운 일에조차 앞날 흐려 어두운데"라고 말한다.

한국은 단군 이래 최초의 파병(이 말은 얼마나 틀린 말인가? 우리는 조선 시대에도 이미 명의 요청에 따라, 청의 요청에 따라 만주 인근에 출병한 적이 있다)을 통해 베트남에 우리 군대를 보냈다. 우리와 너무나 흡사한 조건에 처해 있던 베트남은 단순히 이역만리의 타국이 아니라 같은 운명 아래 놓여야 했던 동질감으로 인해 더욱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베트남 전쟁에서 레이션 박스 위에서 가랭이를 벌리던 여인, 로이는 한국 전쟁에서 쇼리 킴의 손에 이끄려 가랭이를 벌리던 여인 순이가 아닌가? 우리도 베트남과 유사한, 흡사한, 똑같은 고통을 겪었다. 그렇다고 우리가 베트남의 고통과 슬픔에 대해 같이 아프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시인이 다시 로이를 만난다 한들, 만난대서 널 껴안을 수 있겠느냐고 말하는 의미는 아마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우리가 어느 때, 누군가의 감정을 차마 안다고 말할 수 없다고 느낄 때가 있는 것처럼... 그 기분, 그 느낌 너무 잘 알듯 하여 그렇기에 더욱더 차마 나도 안다고 선뜻 나설 수 없을 때가 있다. 슬프니까, 그 슬픔을 아니까.... 헤아릴 수 있으므로... 더욱더 아프구나 라고 말할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래서 차마 안을 수 없을 때도 있다. 알아도 위로해줄 수 없고, 알아도 무언가 해줄 수 없을 때 불행히도 사랑은 부재하므로 실존한다.이 멀고먼 협곡 사이에 놓일 다리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

베트남! 미안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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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앵무새의 혀

- 김명인

앵무새 부리 속에 혓바닥을 보았느냐?
누가 길들이면 따라 하는 목소리
그 목소리 아닌 말을 단 한 번 하고 싶은
분홍빛 조봇한 작은 혀를 보았느냐?


*

가끔 시를 읽고 나름대로 해석을 하려들거나 이해를 하려고 들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든다. 아, 내가 시의 속살을, 그 깊은 속내를 얼마나 파고들 수 있을까? 김명인 시인의 이 시를 읽으면서 문득 나 어릴 적의 국어선생님들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나는 유별나게 국어 선생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그리고 결국엔 친구 녀석 하나를 꼬드겨 국어선생님을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 말을 파먹고 산다. 그런데 혹시 아시는지 우리는 한동안 우리말을 우리 국어라고 가르치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일제 시대에는 일본어가 국어였다. 그리고 전세계에서 자신의 말을 국어(國語)라고 표기하는 나라는 단 두 곳. 그것이 일본과 한국임을 아시는지. 국어시간, 국사시간은 없어져야 한다.

그 말들의 어원을 굳이 따지고 들자면 일본이 메이지 유신을 통해 자국민의 통치수단으로 삼고자 하는 의식의 발로였다. 우리가 궁(?)민학교를 초등학교로 명칭 변경을 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이제 국문학은 한국문학이란 이름으로, 국사는 한국사로 그 명칭을 바꾸어야 할 시점에 다다른 것 같다. 세계 속에 우리의 위치를 바로 보는 일. 그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단지 과목의 이름을 바꾸는 것이 뭐 대수냐고 생각하지 마시길...그렇다면 공자는 뭐 할 일 없어서 '정명론'을 주장했겠는가? 이름이 바로 선다는 것은 만사의 기본이다. 자, 따라해보자.

철수야, 가자.
영이야, 가자.
바둑이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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