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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1.30 김민기 - 김창남, 한울(한울아카데미), 2004.
  2. 2010.10.26 김지하 - 새벽 두시 (2)
  3. 2010.09.15 김지하 - 빈산


『김민기』 - 김창남, 한울(한울아카데미), 2004.


영화에는 오마주(hommage)란 말이 있다. 창작자인 감독이 자신의 특별한 존경을 담아 다른 작품의 주요 장면이나 대사를 인용하는 것을 일컫는 말인 오마주는 불어로 존경과 경의를 뜻한다. 나는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보일 수 있는 최고의 오마주를 굳이 말로 표현하자면 영화를 통해 드러내는 오마주의 방식인 "나는 당신의 인생을 닮고 싶습니다."라고 생각한다. "닮지 않았다"는 말을 한자로 쓰면 "불초(不肖)"가 된다. '불초'란 말은 "맹자(孟子) 만장편(萬章篇)"에 나오는 말로 "丹舟之不肖 舜之子亦不肖 舜之相堯 禹之相舜也 歷年多 施澤於民久 요(堯) 임금의 아들 단주는 불초하고, 순(舜) 임금의 아들 역시 불초하며, 순 임금이 요 임금을 도운 것과 우 임금이 순 임금을 도운 것은 오래되었으며, 요와 순 임금이 백성들에게 오랫동안 은혜를 베푸셨다"에서 나온 말이다.

 

중국의 역대 최고 성왕으로 꼽히는 요순 두 임금은 그 자식들의 부족함을 알아 그들에게 왕위를 물려주지 않았다. 그 자식들은 부모를 닮지 못했기에 왕위를 물려받을 수 없었고, 요순임금이 친자식들에게 왕위를 물려주지 않아 그 덕으로 백성들은 편했다는 뜻이다. 자식이 부모를 닮지 않은 것은 불효이므로 우리는 부모님께 나아가 자신을 이를 때 불초자, 혹은 불토소생이라 한다. 이 책 "김민기"는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가수이자, 뛰어난 작사,작곡가, 그리고 엄혹했던 유신 시대 우리 가슴을 덥혀주었던 한 음악가의 작업들을 한 눈에 일목요연하게 살필 수 있다는 실용적인 미덕과 우리가, 김민기와 동시대를 살았던, 살고 있는 선배, 동기, 후배들이 수많은 시련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아름다운 노래들과 작업들을 멈추지 않고 해준 김민기에게 보내는 마음의 헌사, 즉 오마주라는 것이다.

 

한울출판사에선 동명의 책 "김민기"를 이전에도 출판(1986년 판)한 적이 있지만, 이 책은 지금까지 현역으로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김민기의 최근 행적과 민주화의 더딘 진전에 따라 이전엔 담을 수 없었던 내용을 보강한 책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결정판이자, 앞으로도 보강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책이기도 하다. "김민기"는 모두 7장(록 뮤지컬 지하철 1호선, 노래일기 연이의 일기, 노래굿 공장의 불빛, 소리굿 아구, 디스코프래피, 노래 일지와 악보, 비평)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4부의 구조를 갖고 있다. 우선 여는 글로 김창남(성공회대 교수), 김지하(시인, 소설가)의 글을 담고, 김민기의 작업들(지하철 1호선을 비롯한)을 살필 수 있는 악보와 대본, 그리고 김민기의 디스코그래피(노래일지와 악보, 연보를 포함해서), 김민기와의 대담 및 그에 대한 리뷰들을 담고 있다. 김민기의 세계적인 활약상을 보여주듯 이 책에는 김지하, 김창남을 비롯해 지하철1호선의 원작자인 폴커 루드비히, 중국의 쾅신니엔(청화대 교수), 미국의 카터 J. 에커트(하버드대 교수), 일본의 카라 쥬로(극작가, 배우) 등이 총망라되고 있다.

 

지난 연말(2004년)에 나는 지인에게서 록뮤지컬 "지하철1호선" 공연 티켓 2장을 선물 받았다. 이전부터 "지하철1호선"의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막상 움직이는데 둔한 편이라 공연을 직접 본다는 건 생각도 못했다가 지인의 후의로 학전소극장에서 "지하철 1호선"을 볼 수 있었다. 공연에 대해 문외한 입장에서 공연의 질을 따질 수는 없을 것이지만, 이 뮤지컬을 통해 그간 배출된 배우들의 면면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그 공연이 어떤 것일지는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이다. 설경구, 이미옥, 방은진, 나윤선, 오지혜, 황정민, 장현성 등이 이 공연을 통해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고, 그 시도 자체가 우리 뮤지컬 연극 공연사의 신기원으로 인식되고 있다. 지난 1994년 5월 초연 이후 10년여가 지난 오늘까지 끊임없이 우리 사회의 모습을 풍자와 해학, 애환을 담아 50여만 명의 관객이 관람했다.

 

68혁명을 거친 뒤 "밥 딜런"이 포크 기타를 버리고 일렉트릭 기타로 무대에 올라섰을 때, 대중들은 밥 딜런에게 야유를 보냈다. 그러나 70년대에 접어들면서 순수의 시대는 종말을 고하고, 서구는 일제히 우향우하며 보수화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밥 딜런은 오랫동안 잊혀졌고, 그 와중에 청춘의 광폭한 질주를 노래했던 지미 헨드릭스, 짐 모리슨, 제니스 조플린은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한국엔 김민기가 나타난다. 김민기란 이름 석자는 70년대 우리 사회의 청춘문화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의 청춘은 오래지 않아 창살 아래 갇혀버리고 만다. 그는 갇혔지만 그의 노래들은 자유를 노래했고, 그 어느 때보다 자유를 갈구했던 시대의 요청 속에 노래를 널리 퍼졌다.

 

어두운 공기 속에서 노래는 널리 퍼졌고, 우리는 교과서를 배우듯 "아침이슬"에서 "상록수"로 "늙은 군인의 노래"에서 운동가로 넘어갔다. 운동가로 넘어간 사람들은 김민기의 노래들이 선명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김민기는 그렇게 잊혀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김민기는 1979년 노래극 "공장의 불빛"을 통해 다시 돌아온다. 그러나 80년의 봄은 김민기의 봄이 아니었다. 그는 다시 오랫동안 잊혀졌다. 광주 학살로 등극한 정권은 정권대로, 그리고 이에 대항하기 위해 더욱 날카로운 무기를 갈고 다듬어야 했던 이들은 이들대로 김민기를 불러낼 수 없었다. 그리고 90년대 김민기의 투명한 불투명을 지탄했던 이들은 다시 김민기로 돌아왔다. "길은 다시 다른 봉우리로 ... 봉우리란 그저 넘어가는 고갯마루"였을 뿐이란 걸 우리들은 그제사 알 수 있었다.

 

재일 작가 김중명은 김민기의 작업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절규가 아니라 속삭임이다. 도취가 아니라 생명에 대한 자비에 넘친 슬기인 것이다. 사랑스런 사람의 살갗의 온기가 느껴지고, 심장의 고동이 들려오고 머리카락의 향내가 풍겨오는 그 알맞은 거리에서 들을 수 있는 노래야말로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김민기의 노래는 그러한 노래의 하나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실, 김민기의 노래는 무엇이라 정의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의 노래들은 가두 시위 장소에서, 운동장에서, 예배당에서, 불시에 세상을 떠난 친구의 마지막길을 애도하는 장례식 장에서 불렸다. 그가 애초에 이 노래들을 어떤 장소에서 어떻게 쓰이길 바라고 만든 노래들이 아님에도, 아니, 아니었기 때문에 그의 노래들은 그 어떤 장소에서도 불릴 수 있었다. 김민기는 사랑이란 낱말 이전에 사랑이란 감정이 존재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말은 그 뒤에 등장한 표현기구일 뿐이라고 말한다. 김민기에게 사랑은 구체적인 느낌이자 실천이지, 표현의 문제가 아니었다. 구태여 입 밖으로 사랑이란 낱말을 뱉아내야만 사랑의 실체를 느낄 수 있다는 믿음은 어쩌면 진정으로 사랑을 신뢰할 수 없는 이들의 궁핍한 변명이다.

 

김민기는 여전히 많은 실험들을 하고 있으며, 그의 실험들 하나하나가 우리 문화사의 중요한 씨앗들이 되고 있다. 어쩌면 그 실험들은 자본과 기술의 우월을 앞세워 들이닥치고 있는 서구의 상업 뮤지컬들에 맞선 다윗의 고독한 돌팔매질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거의 3만원에 가까운 책값이지만 판형이나 지질, 안에 담고 있는 내용들은 그 값어치를 충분히 하고 있다. 김민기 전집은 네 장짜리 CD로 나와 있으니 기왕지사 이 책을 사서 읽고 싶은 이들은 그 CD들과 함께 차분하게 가라앉은 청명한 밤공기 속으로 성큼성큼 걸어들어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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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새벽 두시

- 김지하


새벽 두시는 어중간한 시간
잠들 수도 얼굴에 찬 물질을 할 수도
책을 읽을 수도 없다
공상을 하기는 너무 지치고
일어나 서성거리기엔 너무 겸연쩍다

무엇을 먹기엔 이웃이 미안하고
무엇을 중얼거리기엔 내 스스로에게
너무 부끄럽다. 가만 있을 수도 없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새벽 두시다
어중간한 시간
이 시대다


*

나에게는 한 권의 오래된 시집이 있다. 조태일의 국토라는 시집이다. 1975년 5월 20일 인쇄, 1975년 5월 25일 발행이라는 판권에 적힌 세월만큼 낡고 시들해진 시집이다. 책값은 600원. 거기에 적힌 창작과 비평사의 전화번호는 국번이 두 자리다. 장난삼아 조태일이라는 시인의 고명한 이름을 "좆털"이라 불렀던...아, 이젠 고인이 된 시인의 시를 보면서...그의 시 후기에 실린 시인의 말을 읽으며....난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리고
시인과 시대에 대해 문득 생각해보게 되는 순간이 있었다.

그리고 다시 김지하.
솔직히 나는 김지하를 용서하지 않았지만, 그의 시를 읽으며 한 인간이 한 시대에 제몫을 하며 산다는 것의 어려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된다. 그건 <역사는 변하고 만다>는 역사학자 강만길 교수의 근작을 읽으며 그 서문에 적힌 그의 심경의 일단을 되새김질하며 증폭된다.

어떤 이는 살아가면서 평생 역사라는 말을 가슴이던, 머릿속이던 새겨둘 일이 없을 지도 모른다. 그런 삶이라고 무시할 수 있는 삶도 아니다. 그런데 나는 가끔 이곳을 통해 무수한 말들을 뱉아내면서도 내가 과연 역사의 맥락에서 옳다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을 말하는가 두려워질 때가 있다. 따지고 보면 이곳에서 내가 혼잣말처럼 지껄여대는 것에 무슨 부담을 느낄 필요가 있을까 싶다가도 하 세월 지나 돌이켜 보며 부끄러워질 생각을 하면 아무 말도 예사로이 지껄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김지하가 누구냐.

그는 70년대를 그야말로 일세를 풍미한 시인이 아닌가. 김수영의 풍자는 옳았다 그러나 그에게 민중은 스쳐가는 바람에 눕는 풀이 아니었던가. 김지하에 이르러 우리는『黃土』에 배인 비명을 읽게 되었다. 남도를 가보라! 거기 어디엔들 붉은 땅이 없는가? 한 때 살아있는 불온문서였던 김지하. 수화기를 타고 전해오던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칼칼하건만....그의 목소리엔 여전히 힘이 실려 있건만.....난 그의 초기 시에서 느꼈던 그런 붉은 맥박을 더이상 느끼지 못하였더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새벽 두시다/ 어중간한 시간/ 이 시대다

그런데 왜 난 남들 모두 잠든 새벽 두시에 문득 이 시를 읽다가 왜 왈칵 눈물이 쏟아지는 거냐. 왜 이리 서러운 거냐. 새벽 두시에.... 과연 우리는 여전히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거냐. 때로는 오래 산다는 것도 욕이 되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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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빈 산

- 김지하

빈 산
아무도 더는
오르지 않는 빈 산

해와 바람이
부딪쳐 우는 외로운 벌거숭이 산
아아 빈 산
이제는 우리가 죽어
없어져도 상여로도 떠나지 못할 저 아득한 산
빈 산

너무 길어라
대낮 몸부림이 너무 고달퍼라
지금은 숨어
깊고 깊은 저 흙 속에 저 침묵한 산맥 속에
숨어 타는 숯이야 내일은 아무도
불꽃일 줄도 몰라라

한 줌 흙을 쥐고 울부짖는 사람아
네가 죽을 저 산에 죽어
끝없이 죽어
산에
저 빈 산에 아아

불꽃일 줄도 몰라라
내일은 한 그루 새푸른
솔일 줄도 몰라라.

*

김지하 시인에 대해서 아무 말 하지 않기로 했다. 매일 끊이지 않고, 하루에 시 한 편을 올리기로 마음먹은 것은 지나치게 게으른 친구. 하제누리에게 본을 보이기 위해서도 아니었고(그가 <망명소식> 필자로 시 읽기를 전담해주기로 했었음), 그냥 나 자신이 시 읽기를 게을리 한지가 얼마동안이었는지 새삼 놀라서 다시 읽어보기를 시작한다는 의미에서였다.

여러분들은 잘 모르겠지만 이 홈피의 컨텐츠들 태반은 사실 나 자신의 공부를 위한 것들이기도 하다. 요새 나는 조금씩 이사 준비를 하고 있다. 우선 서버를 이전할 것이고, 그에 걸맞는 컨텐츠들을 갖추기 위해서 여러분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도를 닦고 있는 셈이다.

원래 보이지 않는 곳의 공부란 '주화입마'에 빠지기 쉽다. 김지하 시인에 대한 나의 생각도 그렇다. 그가 주화입마에 빠졌다는 뜻은 아닐지라도 언제나 주목받는 생 속에 갇혀있는 시인이란 것은 대개 둘 중 하나가 되기 싶다.

하나는 랭보처럼 무기상인이 되어 떨치고 떠나거나 폴 클로델(이 사람은 로댕의 연인이자 여성조각가 까미유 클로델의 동생이자 시인이다.) 처럼 식민지 전쟁을 찬동하는 반동적인 우를 범하기 쉽다. 사람들이 김지하 시인을 받들었던 이유는 김지하란 한 인물이 뛰어난 탓도 있지만 그가 필요한 시기에 옳은 말을 했기 때문이었지, 그가 하는 말마다 옳았고 예언자로 활동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러나 하는 말마다 매번 옳다보면 이런 착각을 하게 된다.

"내가 하는 말이 옳다"라고...

그래서 아무 말이나 하다보면 틀린 말임에도 번복할 기회를 얻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가 "죽음의 굿판을 때려 치우라"고 한 말은 그래서 그에게 뼈아픈 상처가 되고 말았다. 나는 그의 육성이 그의 시처럼 낭랑하지 못하다는 것을 안다. 그의 육신이 얼마나 가벼워 보이는지도 안다. 그리고 가슴 아픈 것은 시대는 간혹 한 인간에게 너무나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한다.

우리가 김지하를 버릴 수 없는 이유가 있다면 그 까닭은 그의 시가 너무나 탁월하다는 이유보다는 그가 짊어졌던 시대의 짐이 너무 무거웠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대한 시인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시인 김지하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그래서 가슴아프고, 슬프다. "내일은 한 그루 새푸른 솔일줄 몰라라"라고 노래하는 시인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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