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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2.29 왕가위 - 중경삼림(重慶森林) (2)

중경삼림(重慶森林)
- 감독 : 왕가위  출연 : 임청하, 양조위, 왕정문, 금성무 등


'해가 뜨면 사랑이 끝난다'라는 노래가 있다.

내 심정이 지금 그렇다
어떻게 메이를 잊지?
난 혼자 약속을 했다
바에 제일 처음으로 들어오는 여자를 사랑하기로 했다.


<키노(KINO)>란 잡지가 정확하게 언제 창간되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키노>에 내가 몰입하게 된 것은 실연과 함께였다. 7년을 사귀던 여자와 헤어졌을 때 나는 미친듯이 영화를 보았다. <중경삼림>엔 이런 대사가 있다.
"실연당한 후 달리기를 시작했다. 한참 정신없이 달리다 보면 땀이 흐른다. 수분이 다 빠져 나가버리면 눈물이 나오지 않을거라 믿기 때문이다." 연애를 해 본 사람들은 안다. 실연당했을 때 가장 견딜 수 없는 건 남아도는 시간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는 거다. 그래서 나는 영화를 보며 미친듯이 남아도는 시간을 소모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알포인트>란 영화로 오랫동안 꿈꿔오던 감독으로 입봉한 공수창 선생 밑에서 영화 시나리오 공부를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의 일이었다. 지금 그나마 영화에 대해 조금이라도 잡스러운 지식을 가지게 된 것은 아마 그 무렵의 남아돌았던 시간이 내게 베풀어준 혜택이라고 해두자. 마음 둘 것 없어 정붙인 것이 영화였고, 그 무렵 날 가장 아프게 했던 것들 역시 영화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그녀와 헤어질 무렵 가장 각광받던 시네아스트는 바로 '왕가위'였으니까.


왕가위의 영화들 '중경삼림, 동사서독, 타락천사'로 이어지는 동안 내겐 나만의 여자가 없었다. 오랫동안 한 여자를 사랑해오다가 누구의 것도 아닌 남자가 된 것이 오랜만에 찾아온 자유였는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그 시간들 동안 그닥 행복하지 않았으며 자유를 느낄 만한 기분도 아니었다. 부유하는 먼지처럼 .... 세상 모든 것이 하찮았다. 페이왕(왕정문)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한량없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왕가위의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는 건 참 재미없는 일이다. 이 영화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이들이 수없이 많은 수다들을 늘어놓았으니 말이다. 수다에 수다를 더한다는 건 재미없다. 그의 영화들은 모두 기억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의 영화가 청춘남녀들에게 그토록 가슴저리게 기억되는 이유는 그들모두가 한때 기억에 기대어 살아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한 번도 실연당해본 적 없는 사람은 이 영화를 제대로 볼 수 없다.



왕가위의 영화에 등장하는 이들은 모두 그들만의 나르시시즘에 젖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 모두는 실연 당한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어째서 자신만 슬픈 척하느냐고 묻는 것은 과도한 비판이다. 그런 까닭에 그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보이는 광각렌즈의 일그러진 왜곡과 엿보는 자의 관음증이 어색하지 않다. 비틀거리고 닫힌 영혼들이 흔들리는 사각의 화면 속에서 금붕어처럼 유영한다. 세상 모든 만물에는 유통기한이 없지만, 유독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것에는 유통기한이 있다. 사랑에 대한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동안 당신의 유통기한은 아직 연장되고 있다.


"..언제든지, 어떻게 하든지, 물건들에겐 유통기한이 돌아오기 마련이다. 정어리도... 빵도... 랩마저도 기한이 있다. 세상에 유통기한이 없는 물건은 없는 것인가?"


왕가위 자신은 영화 속 등장인물들과 다르다고 단언한다. 그는 고독하고 불안정하고 사랑에 버림받은 현대 도시의 젊은이들을 많이 그려왔지만 자신은 쾌활하고 유머감각이 뛰어나며 선글라스 뒤에 가려진 두 눈은 호기심으로 반짝거린다. 영화의 주인공들은 언제나 외롭지만... 그는 "나는 외로운 사람은 아니며 단지 재미없는 사람일 뿐이다. 그래서 영화를 만든다"고 말한다. 19살때 만나 오랫동안 연애한 여자와 7년전 결혼, 아들 하나를 두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그는 인생에서 외로웠을 때가 두번 정도 있었다고 한다.



첫 외로움의 경험은 5살때 홍콩으로 이주하면서 겪은 낯선 도시의 삶이었다. 상해에서 태어난 그는 부모가 자신만을 데리고 홍콩으로 온 후 문화혁명 때문에 국경이 막혀 형과 누나와 헤어져 살았다. 광동어를 모르던 그는 낯선 홍콩에서 외로움을 느꼈으며 당시 BBC 라디오방송에서 흘러나오는 시그널뮤직을 벗삼아 외로움을 달랠 수있었다고 회고한다. 그다음 외로웠다고 느낀 적은 "중경삼림"과 "타락천사"를 촬영할 때. 아내가 아이 때문에 미국에 가있어 혼자 호텔생활을 했다.


세계는 점점 좁아져서 모든 도시가 비슷해지고 있다. 어딜 가나 맥도널드 햄버거 가게가 있고 편의점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홍콩이야기라도 그건 홍콩 젊은이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시절을 살아가던 우리들의 이야기로 느낄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하기사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실연당한 젊은이들의 비탄이야 다 거기서 거기가 아닐까. 따지고 보면 우리네 인생살이란 건 하나도 극적이지 않다. 영화에서처럼 인생에 배경음악이 깔리는 법도 없고, 지하철 안에서 총격전을 벌일 일도 없으며, 서점에서 우연히 옛사랑과 마주치는 요행도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그저 풍문처럼 옛사랑이 딸 둘을 낳고, 남편이랑 그럭저럭 잘 살고 있으며, 올가을엔 새로 운동을 시작해볼까 궁리하며 두둑해지는 뱃살을 두 손가락으로 만져보며 늙는다. 그러므로 극적인 반전과 사건들을, 그런 삶을 기대하는 것은 얼마나 흐뭇한 상상이던가.


"우리 서로가 매일..어깨를 스치며 살아가지만, 서로를 알지도 못하고 지나친다. 하지만 언젠가는 친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가장 가까이 스쳤던 순간에는 서로의 거리가 0.01cm밖에 안되었다. 57시간 후, 나는 이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



요행히도, 요행히도 인생에 뭔가 극적인 순간이 찾아와서, 그것이 사랑이라고 해도 좋을 그런 순간이 찾아와서 극적인 고백을 통해 사랑을 얻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한들, 메마르고 척박하며 기대했던 일들조차 아니, 노력하고 공들여 오던 일조차 너무나 쉽사리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는 세상에 우리는 있다. 우리는 아침이면 해가 뜨고 저녁이면 해가 지는 사막에 살고 있다. 이 세상은 사막보다 아름답지 않고, 때로 아무리 헤매어도 발견할 수 없는 오아시스가 있을 뿐이다. 왕가위의 사각거울에 비친 영상을 보면서 한때 사랑했으나 이제 더이상 사랑받을 수 없게 된 옛 연인의 얼굴이 떠오른다.


나는 <
중경삼림>처럼 끝이 허무한 영화가 좋다.

주인공들 모두가 격렬한 총격전 끝에 죽어버려도 좋다. 아무리 달려가도 영원히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세상의 이쪽 끝과 저쪽 끝에서 살아가고 있을 뿐이므로... 그 뒤에 어떻게 되었네? 하며 그들의 안부를, 미래를 묻지 않아도 좋다. 그들의 이야기는 모두 종결되었으므로... 사랑하는 것과 살아가는 것은 언제나 같은 말이다. 우리가 미처 깨닫고 있지 못할 뿐... 또 혹시 아는가? 어느날 갑자기 걸려온 전화를 받고 소갈머리없이 그렇게 눈물을 뚝뚝 흘리는 날이 오게 될지... 그래서 황지우는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나에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라고 노래하는 것은 아닌지.... 중경삼림(重慶森林)의 어디에도 삼림(森林)은 등장하지 않는다. 거기에 등장하는 삼림이란 따지고 보면 도시의 정글에서 자라난 사람들... 우리가 스쳐가던 시골길의 어디멘가에서 무심히 스쳐가던 바로 그 나무들처럼 자라난 바로 우리들이니까.



이해한다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별개이다

사람은 변하기 마련이고
오늘은 파인애플을 좋아하던 사람이
내일은 다른 것을 좋아하게 될 테니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
중경삼림>의 등장인물들은 계속해서 서로를 주시하지만 끝끝내 마주서지 않는, 그리하여 결코 서로 만나본 적이 없는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지만 나는 당신에 대해 결코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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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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