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연구(하룻밤의지식여행12) - 지아우딘사르다르 | 이영아 옮김 | 김영사(2002)


나는 이런 식의 도서에 익숙한 편이다. 그러니까 80년대 말엽에서 90년대 초엽 사이 나름대로 인기를 끌었던 리우스의 만화책들을 말하는 것이다. 당시엔 사회과학 서적을 중심으로 출판하던 "오월"에서 "리우스"(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멕시코의 좌파 만화가)가 이런 식의 작업들을 통해 일련의 만화 책들을 시리즈로 간행했다. 사회과학 이론의 빡빡함에 미리부터 질려버린 까닭으로, 혹은 좀더 쉽게 입문하기 위한 방편에서 이 책을 선택했던 이들에겐 상당한 도움을 준 책이다. 리우스는 "쿠바혁명과 카스트로", "레닌", "체 게바라" 등 혁명가들의 생애와 사상, 그들의 이론을 나름대로 잘 요약해주었다.

김영사에서 펴내고 있는
"하룻밤의 지식여행" 시리즈 중 한 권을 읽었다. 지아우딘 사르다르의 "문화연구(cultural studies)"가 그것인데, 얼마전 누군가가 이 책은 아니고 이 책의 한 시리즈 중 노암 촘스키 편에 대해 썼던 리뷰도 있었지만, 이 책 혹은 이 시리즈 중 어느 책이든 선택하는 사람이라면 머리 속에서 "하룻밤"이란 글자를 빨리 삭제해야 한다. 다시 말해 "하룻밤"만에 이 시리즈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을 다 알게 된다거나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란 말이다. 이 시리즈가 다루고 있는 면면을 살펴보면 더 빨리 이해될 수 있다.

1권에서
"노암 촘스키", 그리고 연이어 "양자론, 수학, 진화심리학, 철학, 사회학, 심리학, 플라톤, 포스트페미니즘(헉, 페미니즘도 어려운데 거기에 붙였다 하면 뭐든 세 배는 더 어렵게 만드는 "포스트"까지 붙어 있다. 나는 "포스트"자가 붙은 건 심지어 시리얼 메이커까지도 싫어지더라구.), 이슬람, 문화연구, 기호학, 프로이트, 라캉, 융, 호킹, 정신분석, 데리다" 그리고 앞으로 "푸코" 도 낸다고 한다. 앞서 포스트페미니즘에 대해 엄살 아닌 엄살을 부리긴 했지만, 한 가지 개념도 이해하기 어려운데 그 앞에 접두사가 붙는 학문은 더욱 어렵다. 예를 들어 아동문학이 그냥 문학보다 어려운 까닭은 그 앞에 아동이 붙기 때문이다. 아동을 알아야 하고, 문학을 알아야 하는 것이니 허투루하면 모를까, 진짜 아동문학을 잘 하기란 성인을 대상으로 한 글쓰기보다 배는 어렵다고 보아야 한다. 

하기사 무엇이든 제대로 하기란 참 어려운 법이다. 그런데 그것을
"하룻밤의 지식여행"이란 기획으로 정말 하룻밤만에 끝낼 수 있을까? 이런 걸 뭐라고 해야 하나? 사기라고 해야 할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제대로만 해준다면 그래서 그 여러 개념들이 대관절 어떤 맥락에서 다루어지고 있는지만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면, 나름의 성과를 거두는 기획이라 할 수 있다. 즉, 하룻밤이란 말만 지워버리고 시작한다면 나름대로 도움이 된다는 뜻이다. 결론삼아 말하자면 지아우딘 샤르다르의 "문화연구"는 그런 점에서 나름대로 도움이 된 책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문화""영화"만큼이나 대중적인 화두이다. 문화에 대해 한 두 마디쯤 할 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시인이 어느날 갑자기 문화평론가로 등장해서 TV에서 그럴듯한 해설을 읊조리는 광경이 더이상 낯설지 않다. 문화는 방금나온 따끈한 빵처럼 말랑거려서 누구라도 손쉽게 조물딱거리면 만들어 낼 수 있는 학문 분야처럼 보인다. 

거기에 대중문화란 말이 붙으면 더 쉽게 느껴진다.
"대중문화 = 저급문화, 상업문화"란 등식이 존재하다보니 누구나 쉽게 즐기고, 누구나 쉽게 빠져들 수 있으니 그걸 공부하는 일도 쉬우리라 생각하게 된다. 문화연구의 함정이 거기에 있다. 문화는 도처에 있고, 누구나 즐기는 것이기에 어디에도 없고, 누구도 해석하기 어렵다(반대로 누구나 해석할 수 있기도 하다). 누구나 잘 아는 듯 여기지만 막상 말로 그것을 정의하고, 그 안에 숨겨진 여러 함의들을 찾아 해석해내고, 연구하는 범주 안으로 들어가면 미노타우르스의 미로처럼 얽히고 섥?것이 (대중)문화란 것을 금방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문화연구의 이론(가)들을 살펴보자.

맨처음 등장하는 이름은 미국의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 여사, 그리고 문화연구의 창시자로 손 꼽히는 레이먼드 윌리엄스, 사회학자 클리포드 기어츠다. 문화연구는 사회과학, 인문학, 예술의 여러 분야에서 이론과 방법론들을 빌려와서 제 것처럼 사용하고 있다. 즉, 대충 몰라도 넘어갈 수 있는가하면 제대로 걸리면
(혹은 제대로 하려면 이 모든 것들을 손대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는 거다) 금방 밑천이 드러나게 되어 있다. 소쉬르, 로만 야곱슨, 롤랑 바르트로 이어지는 기호학, 키플링, 포스터와 같은 문학, E.P.톰슨 같은 역사, 마르크스와 프로이트와 같은 20세기 메타 이론에서 다시 이들을 뿌리로 하여 등장하는 알튀세르, 그람시, 리오타르, 부르디외에서 스피박에 이르는 그 이름을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CPU과열현상을 빚는 인물들이 즐비하다.

그러니 이 책을 하룻밤만에 읽고 끝낸다는 건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앞서도 말한 것처럼 이 책도 나름대로 유의미한 측면이 있다. 그것은 짤막한 요점 정리를 통해 문화연구의 다종다양한 분야의 개념들과 연구자들, 그들이 문화연구란 거대한 테마 속에서 어떤 역할과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를 파악하는데는 아주 괜찮은 지도책이란 사실이다. 지도에는 온갖 기호들로 거리와 위치, 통과해야할 도로의 번호들이 명시되어 있다. 물론 지도책 없이 헤매면서 찾아가도 목적지에 도달한다는 목적은 이룰 수 있다. 미로를 헤매는 과정에서 더많은 것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테세우스가 미로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은 아리아드네의 가느다란 실 한 가닥이었듯, 비록 이 책이 건네주는 실오라기는 가늘고, 언제라도 끊어질 수 있는 것이지만 이용하기에 따라서는 문화연구의 미로를 헤매는데 꽤 믿을 만한 나침반 아니, 그 지도 상에 아로 새겨진 기호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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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비인간화 -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 미진사(1988)


"나는 단순히 난파자(難破者)의 사상을 믿는다. 나는 난파한 극적인 밑바닥에서 태어난 사상을 믿는다."

-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15~16년 전의 나는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가 어떤 인간인지 알지 못했다. 다만, 그가 "대중의 반역"이라는 중요한 고전을 토해낸 스페인 출신의 학자라는 사실 정도만 알고 있었고, 당시엔 민중의 개념(정치적으로는 평등을 좀더 중요한 개념으로 생각하는)이 머리 속에 제법 확고하게 들어있었으므로 가세트의 이 책들도 그와 관련된 무슨 책들이 아닐까 싶어 구입한 것이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코미디에 가까운 구입동기이다.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대표적인 반대중주의, 반민중주의의 기수격인 사람으로 엘리트주의 문화이론가다. 그런 사람의 책을 그저 민중예술론을 펼친 사람이려니(그것도 제목만 보고서) 하고 구입했으니 말이다. 멋지지 않은가? "예술의 비인간화"라니 ... "대중의 반역"을 구입할 무렵에야 그가 어떤 종류의 인간인지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그에게서 나는 묘한 매력을 느꼈다.

 

어쨌든 이 책이 아직 절판되지 않고, 여전히 나오고, 게다가 대학 교재로 쓰이고 있는 걸 보니 반갑다고 해야할지 우울하다고 해야할지 모르겠으나 그가 이 책에서 주장하고 있는 바의 상당 부분은 현재까지 유효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역자 서문에도 밝혀져 있듯 이 책은 원래부터 단일한 기원을 가지고 있는 책이 아니다. "예술에 있어서의 관점(points of view)에 대하여", "예술의 비인간화", "소설 노우트" 라는 각각 다른 세 편의 예술 에세이를 하나로 엮은 "The Dehumanization of Art and Other Writings on Atrs and Culture"를 저본으로 삼아 우리 말로 옮긴 책이다. 이 책에는 그의 사상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개념들 - "대중의 반역"이나 "원근법주의", "예술의 비통속성" 등 오늘의 관점으로 보아도 유의미한 여러 개념들이 잘 소개되고 있다. 내가 가진 재주로 그걸 좀더 알기 쉽게 풀어낼 능력이 없으므로 대신 다른 이야기를 좀 해보겠다. 

 

개인적으로 나는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삶과 그의 학문 사이엔 커다란 괴리가 존재한다고 여겨왔는데, 그 이유는 그가 학문적으로 주장한 바와 삶의 내용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국내 학자들의 경우와는 그 괴리가 정반대로 일어났다는 점이다. 가세트는 1883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출생하여 마드리드 대학을 나와, 독일의 라이프찌히, 베를린, 마르부르크 등 독일의 주요 대학에서 수학하였다. 이 과정에서 그는 독일 형이상학과 훗설의 현상학 등에 영향을 받았다. 그는 스페인으로 귀국하여 마드리드 대학에서 형이상학 교수로 취임하여 철학, 문학에 관한 수종의 잡지를 편집하면서 현대 스페인의 중요한 작가들을 서구 문단(당시만 하더라도 피레네 산맥 이남 지역은 유럽이 아니란 식의 관념이  살아있던 시절이다)에 소개했다.

 

이 부분까지 그의 학문적 지향점과 삶의 내력이 크게 달라진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문제는 그가 스페인시민전쟁 시기를 살았던 학자라는 점이다. 스페인시민전쟁이 발발하자 가세트는 인민전선의 공화국 정부를 지지하다가 결국 국외로 되하여 프랑스, 아르헨티나 등에서 망명 생활을 했다. 인민전선 정부가 붕괴시키고 들어선 프랑코 정부는 가세트를 스페인 국가공인 철학자로 추대하고자 했으나 그는 이를 거절하고 1945년 귀국할 때까지 남미에서 망명생활을 보낸다. 귀국한 뒤에도 그가 프랑코 정부와 밀접한 관련을 맺었다는 이야기는 아직까지 듣지 못했는데, 그는 귀국 후에도 독일 등 유럽의 여러 지역을 다니며 강연 활동을 펼치는 등 스페인을 떠나서 생활하는 기간이 많았고, 1955년 세상을 떠난다.

 

오늘날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사상은 대중사회에 반하는 엘리트주의 문화론으로 비판받는다. 가세트는 "대중"이라는 무자격자의 정치적인 지배를 맹렬히 반대해왔는데, 그는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과 열광은 물론 미국의 실증주의(전문기술주의) 풍조에 대해서도 신랄한 비판을 가하는 인물이었다. 그와 비슷한 시기에 F. 니체의 엘리트주의와 오르테가의 엘리트주의는 종종 동일한 것으로 평가되어 동시에 비난의 대상이 되곤 하지만, 이 둘 사이엔 차이가 있다. 가세트의 입장 "다수를 차지하는 열등한 자가 보다 우수한 자에게 반역하고 있다""대중의 반역"에서 그가 염려한 것은 무자격자인 "대중의 지배" 이긴 했으나 이때 그가 말하는 대중이란 단순히 "노동자,농민 계급"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란 것이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가 형이상학자이란 사실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정신의 문제이지, 계급의 문제가 아니었다. 다시 말해 오르테가 이 가세트에게 있어 문화적 엘리트란 것은 정치적 엘리트이기 보다는 문화적으로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할 수 있는, 그로 인해 철저한 고독에 처하더라도 물러서지 않는 그런 귀족성을 의미한다.

 

나는 스페인의 뜨거움, 열정이 만들어낸 허구의 인물 "돈키호테" "오르테가 이 가세트"와 같은 허구적인(?),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비현실적인 역사 인물이 출현할 수 있는 토양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그렇게 생각해야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사상이 비로소 눈에 들어오게 되기 때문이다. 이 책과는 그닥 관련이 없는 이야기일 수 있겠으나 그는 1929년 마드리드 대학 학생 연맹이 지도한 반독재 학생 운동에 동참하여 대학 당국에 사표를 제출하고 반년간이나 강의를 거부한 인물이었다. 그는 이 학생 연맹의 요청에 따라 "대학의 사명"이란 주제로 강연도 하고, 대학이 황태자의 어용을 위한 울타리가 되어선 안 되며 생의 긴박과 정열의 한 가운데에서 열광에 대해서는 냉정을, 경박과 불손한 우열에 대해서는 정신의 진지한 예리함을 유지하여 자신을 변혁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마디로 말해 그의 사상은 정신적 고귀함을 추구하도록 대중을 일깨우는 것에 있었지, 전제왕정이나 귀족정치를 지지하는데 있지 않았다. "나는 단순히 난파자의 사상을 믿는다. 나는 난파한 극적인 밑바닥에서 태어난 사상을 믿는다." 어떤 맥락에서 읽노라면 오르테가 이 가세트야말로 진정한 아나키스트가 아니냔 생각이 들 만큼(물론 이런 고루한 엘리트주의자가 아나키스트일 수는 없겠지만) 그의 사상은 철두철미하게 고립되어 지고(至高)의 미와 덕을 추구했다. 그의 이론이나 사상이 무엇이었든 간에 나에게 그의 삶이 준 감명은 어느 한 인간이 자신의 신념(엘리트주의)을 극한으로 추구한 결과, 독재정권으로부터 망명하는 방식으로 나타났다는 그 형이상학적 귀족정신의 일단과 그 신념을 추구하는 양심이다.

 

그러니 그의 이론에 전반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어도, 그란 한 인간에겐 고개가 숙여지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사회의 지식인들이 그 반대로 걸어간 수없이 많은 사례들을 살펴보면 더욱더 그렇다. 그의 학문적 주장과 사상에 동의할 수 있는가 없는가와는 별개로 그의 학문과 삶의 내력을 비교하면 진정으로 일치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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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손님 : 보통시민오씨의 548일 북한체류기 -상.하』 | 오영진 | 이미지프레임(길찾기) | 2004


작가 오영진은 요샛말로 하자면  "투잡(two job)"이다. 그는 만화가이면서 동시에 한전 직원이다. "남쪽손님", "빗장열기"는 남북한이 분단된 것처럼 두 권으로 분책되어 있으나 사실상 하나의 책이다. "보통 시민 오씨의 548일 북한 체류기"란 부제를 지니고 있지만 오씨가 보통시민이라는 건 자평이지, 독자들이 모두 공감할 수 있고, 공감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작가 황석영이 "보통 시민 황씨의 북한 체류기"란 책을 냈다고 치자. 누구도 황석영을 보통 사람이라고 여기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오영진의 보통 시민이란 말이 모두 진실은 아니다.

 

대신, 이렇게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보통 시민의 관점으로 본 북한 체류기"일 수는 있겠다. 알라딘에서 소개하고 있는 이 책의 지은이 소개에 따르면 그는 "지난 2000년 경수로 건설을 위해 북한에 파견되어 1년 6개월 동안 신포에서 근무했다. 정치인이 아닌, 일반인이 함께 생활하며 느낀 북한 사람의 이미지와 실제 생활상이 진솔하게 담겨져 있"다고 한다. 이것 역시 진실이 아니다. 남한 사람이 북한에 가서 장장 548일을 살다 오는 일이 과연 보통의 경험일 수 있을까? 그 자체가 특별한 사건이므로 우리는 이 책을 흥미있게 살피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북한 사람의 이미지와 실제 생활을 진솔하게 살필 수 있는가? 아마 그것도 진실은 아닐 것이다.

 

어느 나라든 외국에 설치된 재외공관은 그 나라 영토로 간주된다. 공해상을 순항하고 있는 군함 역시 떠다니는 그 나라 영토로 간주된다. 작가 오 씨가 북한 신포에 머물면서 관찰한 경험이 소중하지 않다거나 진실되지 못하다는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너무 늦게 혹은 너무 뻔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휴전선으로 갈린 남북 분단의 역사 속에서 서로 이질적인 체제를 구축하여 살아온 우리 민족이 있다. 그런 우리가 북한 영토 안에  또다른 작은 장벽을 치고, 그 안에 작은 남한을 건설하고, 북한 주민 가운데 일부분을 접촉하여 만들어 낸 책은 작가 자신의 역량이 문제가 아니라 처한 환경 탓에 또다른 스테레오 타입을 양산해낸다. 이 책의 소개글에서 다루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남한 사람 오 씨의 눈에 투영된 북한 사람의 삶을 본다. 그것도 극히 일부만을...



 
이렇게 글을 적고 있다고 해서 내가 북한을 잘 알고 있는가? 당신은 북한을 잘 알고 있는가? 나는 오영진의 이 만화를 읽는 내내 그런 갈급증에 시달렸다. 서울 가서 남대문을 보고 왔는지, 동대문을 보고 왔는지 가보지 않았으니 다녀온 사람의 말을 들으며 유추해봐야 한다. 남대문에 남대문이 아니라 숭례문이라고 써 있다고 그가 말해주면 그렇다고 믿을 것이고, 숭례문이 아니라 남대문이라 써 있다라고 하면 또 그리 믿을 수밖에 달리 어찌 해 볼 재간이 없다. 남한은 오랫동안 북한을 감시해왔음에도, 지금 북한 잠수함이 동해안을 넘나든다고 하는데, 그것을 우리 해군이 감지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 제공해주는 정보를 통해 알게 되었다 해서 그것이 사건이 되고 문제가 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북한은 국가적으로는 미국이 제공해주는 정보에 의존하고, 개인적으로는 국가가 제공해주거나 국가체제(언론도 포함해서)가 걸러주는 정보에 의존한다는 한계를 지닌다.

 

우리들 중 누가 과연 북한을 잘 알고 있는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고 온 김대중 전 대통령인가? 아니면 오랜 기간 북한을 연구하고, 관찰해온 남한의 북한전문가들인가? 북한에 대해 이야기하고, 북한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마치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듯 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 북한에 대한 남한의 시각은 크게 두 가지, 좀더 세분화해봐야 서너 가지 정도로 압축될 수 있다. 그것은 북한을 경쟁상대, 주적으로 바라볼 것인가? 아니면 장차 하나의 민족으로 공동의 운명을 짊어질 대상으로 바라볼 것인가?로 양분할 수 있을 것이다. 남한측, 우리의 시선은 그렇게 고정되어 있다.

 

오영진의 책은 아무래도 후자에 가까운 듯 보인다. 마치 "아, 거기에도 우리랑 같은 사람이 살고 있었네" 타입의 이 만화 책은 북한이란 우리에게 국가도, 괴뢰도 무엇으로도 정의하기 곤란한, 해체할 수도, 폭발시킬 수도 없는 처리곤란한 불발탄에 대해 갑작스레 보통 사람의 시선으로 본다고 주장하고 나선다. 북한을 주적으로 보는 사람들에게도, 북한을 공동운명체로 인식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도 이 책은 뭔가 결여되어 있다. 그건 뭔가? 글쎄, 과연 뭘까? 나는 이 책이 북한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제공하고 있다고 보지 않는다. 대신에 우리들의 고정된 시선을 새삼스레 확인시켜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들에게 북한 체제와 상관없이 북한 사람들은 과거 분단 이전부터 고착화된 이미지들과 분단 이후 조금씩이나마 그네들의 삶에 대해여 소개되면서 알게 된 몇 가지 전형들을 확인시킨다.

 



북한 사람들은 사회주의 체제 살다보니 아무래도 자본주의 체제에 사는 우리들 보다 덜 영악하다. 북한 사람들은 토론을 많이 하다보니 남한 사람들이 자칫 말을 잘못했다가는 논리적으로 밀린다. 가난하지만 자존심은 강하다. 생활력이 강하다. 남남북녀라더니 북한 여자들 예쁘다. 이런 말들을 어디서 보았더라. 그러고 보니 남북한 관계에 조금씩 햇살이 비추면서 우리 언론이 만들어주고, 널리 유포시킨 북한 사람들의 이미지들이다. 서구의 동양에 대한 고정된 시선을 "오리엔탈리즘"이라고 했을 때, 이 책은 만화라는 매체를 통해 제공된 북한에 대한 남한의 오리엔탈리즘이다. 다만 이 책의 매력은 만화라는 장르가 주는 손쉬운 접근성과 문자보다는 이미지에 의존하는 매체 특성이 주는 너그러움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점들을 제외하고 이 만화가 주는 에피소드들은 이제 너무 낯익다. 내가 이 책에 대해 악평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책은 북한에 대한 학습만화라고 하기엔 이를 뒷받침해줄 서사가 부족하고, 그냥 명랑만화로 읽기엔 민족모순은 너무나 첨예하다. 작가 오영진은 역사와 오락 사이에서 우리 민족은 남북공조와 이념 사이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 박재동은 이 만화의 추천의 글에서  “이념으로 접근한 것도 아니고 역사로 접근한 것도 아닌 바로 ’사람‘으로 접근한 시선”이라고 말하지만 바로 그 사람이 여전히 문제다. 우리는 북한 사람을 너무 모르거나, 혹은 너무 잘 아는 척하고 있다. 과연 우리의 편견없음은 북에 대한 편견이 무언지조차 모르는 편견은 아닐런지...


* 지금 이 만화를 다시 보니 문득 그래도 그 시절이 그립다고 말해야겠다. 돌고 돌아 제 자리로 돌아온 머나먼 남북관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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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뮤직:멀리서 들려오는 메아리  - 서남준 | 대원사(2003)


서남준의 월드뮤직 - 멀리서 들려오는 메아리…』는 신현준의 신현준의 World Music 속으로와 거의 같은 시기에 출간된 책이다. 나는 두 책을 거의 비슷한 시기에 주문해서 읽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두 책 가운데 어느 책의 우열을 가리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만, 이 한 가지는 이야기해줄 수 있는데 신현준의 책보다는 서남준의 책이 이 방면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먼저 접하는 게 순서가 될 듯 하다. 이유는 이 책이 좀더 쉽게 저술되어 있기 때문이다.

서남준은 기독교방송 FM에서 <서남준의 월드뮤직> 진행자이기도 한데, 이 책은 각 지역의 음악이 발생하게 된 원인과 배경을, 각각의 대표적 뮤지션을 중심으로 풀어나가고 있다. 그래서 신현준의 책보다 좀더 쉽게 느껴지고, 실제의 난이도 역시 입문서 수준으로 맞춰져 있다. 이 책은 크게 2개의 구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하나는 '월드뮤직, 멀리서 들려오는 메아리' 집시 음악부터 시작해서, 요들, 파두, 플라멩꼬, 렘베티카, 칼립소, 삼바와 보사노바, 탱고에 이르는 각 지역별 음악의 출생 배경부터 현재에 이르는 과정을 다룬다. 다른 하나는 월드뮤직의 정신을 상징할 수 있는 인물들을 중심으로 한  인간은 노래로 싸울 수 있는가
편인데, <릴리 마를렌>이란 곡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시작해서, 마를레네 디트리히, 미키스 데오도라키스, 멜리나 메르꾸리, 나오미 셰메르, 미리암 마케바, 빅또르 하라, 아따우알빠 유빵끼, 메르세데스 소사 등이 그들이다.

우리가 흔히
'월드뮤직'이라고 통칭해서 부르긴 하지만 '월드뮤직'은 하나의 장르가 아니다. 월드뮤직의  개념 자체가 사실은 혼란을 부추기는 측면도 있다. 우선 월드뮤직이 만들어진 것은 하나의 마케팅 범주로서 생겨난 개념인데다가 영미권을 제외한 타지역에서 생산된 대중음악을 지칭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드뮤직이란 통칭되는 음악 갈래는 상업적 유통망에 의해 영미팝(내지는 세계화)의 하위 범주로 끊임없이 포섭되어가면서 동시에 이에 대한 저항의 진지로 평가되곤 한다. 월드뮤직이 서구 대중음악의 시선을 잡아끌기 시작한 것은 폴 사이먼 같은 이들이 <Graceland>를 통해 아프리카 음악 형태를 자신의 음악 세계 속에 삽입하면서 부터였다. 

월드뮤직을 흔히 민속음악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실제 월드뮤직이 지역색을 드러내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민속음악
(국악의 예를 상정해놓고 보았을 때) 같이 인위적으로 보존되고, 보존하려는 음악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월드뮤직을 떠올릴 때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은 이것이 대중음악이란 사실이다. 그것도 때로 영미권 팝과 서로 호응하거나 배제하면서 한 지역의 정체성을 어느 정도 반영해가며 만들어지는 대중음악이란 거다. 그런 까닭에 오늘날의 월드뮤직은 순혈의 음악이 아니라 일종의 퓨전, 하이브리드된 대중음악의 갈래라 할 수 있다. 

이것이 월드뮤직에 대한 냉정한 평가라면 서남준의
『월드뮤직 - 멀리서 들려오는 메아리…』이 이런 의견에 적극적으로 동조하고 있지는 않다. 서남준이 포인트를 맞추고 있는 것은 그것이 비록 상업적인 대중음악으로 지역적 정체성을 일부 반영하고 있는 하이브리드된 대중음악이라 할지라도, 그 자체로 이미 영미 팝이란 주류 대중음악에 저항하는 몸짓을 보이는 것이란 점이다. 저자는 폴 사이먼과 아트 가펑클의 <엘 콘도르 파사>의 예를 들어 설명한다. 우리가 흔히 듣기 편한 이지리스닝 계열의 포크 뮤직으로 분류하곤 하는 <엘 콘도르 파사>는 안데스 민요로, 스페인 침략군에 저항하던 투팍 아마루를 그리는 인디오들의 한이 담겨 있다. 서남준의 시각이 특히 돋보이는 대목은 1부보다는 2부이다.

그리스의 월드뮤직을 대변하는 두 인물 미키스 테오도라키스(Mikis Theodorakis)와 멜리나 메르꾸리의 예를 보자. 메조 소프라노 아그네스 발차의
<내 조국이 가르쳐 준 노래(Songs My Country Taught Me)>를 통해 우리들에게도 잘 알려진 <기차는 7시에 떠나네>의 작곡자 미키스 테오도라키스는 단순한 음악가가 아니었다. 영화음악을 즐겨 듣는 이들이라면 <제3의 사나이 The Third Man>(1949년)와 안소니 퀸 주연의 <그리스인 조르바>, 멜리나 메르쿠리 주연의 <죽어도 좋아(페드라)>, <형사 서피코>,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의  작품에서 흘러나오던 그의 음악을 떠올릴 수 있다. 그에 대해 이 정도만 알고 있어도 상당히 많이 알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그가 지난 2000년 노벨평화상 후보였다는 사실을 혹시 아는지 모르겠다. 1925년생인 테오도라키스는 음악가로서 뿐만 아니라 운동가로도 주목받은 인물이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일어난 그리스 내전 중에 좌파로 활동했고, 그런 이유로 결국 조국을 떠나 프랑스에 거주하면서 음악 활동을 해야만 했다.



▶ 미키스 테오도라키스(Mikis Theodorakis)

테오도라키스는 1961년 조국 그리스로 돌아와 <희랍인 조르바> 등의 음악을 작곡하지만 1967년 4월 발생한 파파도풀로스의 우익 군사 쿠데타로 인해 70년까지는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 그의 모든 음악은 그리스에서 금지곡이 되었다.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이 제작한 정치적인 영화 <
제트(1968년)>의 음악은 감옥에 갇힌 테오도라키스가 외국에서 망명생활을 하는 동안 작곡한 곡들을 이용한 것으로 그해 영국 아카데미는 감옥에 갇힌 테오도라키스에게 음악상을 안겨주기도 했다. 재미있는 건 그가 좌파라는 이유로 그리스에서 금지곡이 된 건 이해한다 손 치더라도 우리에게까지 그의 음악은 한동안 금지되었다는 사실이다. 당시 국내 라디오에서는 그의 음악들을 즐겨 방송해주었는데 그의 정치 성향이 알려지면서 어느 순간부터 그의 음악들은 금지곡이 되었고, 5공 시절에는 영화 <그리스인 조르바>의 음악이 삭제된 채 방송되는 우스꽝스러운 일도 있었다. 

80년대 중반에는 그리스 출신의 샹송 가수이자 테오도라키스와 가까운 친구 사이였던 조르주 무스타키가 방한했을 때는 자신의 앨범에서 테오도라키스가 작곡한 곡들이 모조리 삭제된 것을 알고 항의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우리에게 영화
<페드라>로 잘 알려진 멜리나 메르쿠리 역시 1967년 그리스 군사쿠데타 이후 군사독재정권과 맞선 여류정치가로도 유명하다. 군사정권에 의하여 그리스국적과 재산을 몰수당한 그녀는 임시로 스위스 국적을 얻어 프랑스에서 망명생활을 하기도 하였다. 망명생활중에 몇 번 암살당할 위협에 처하기도 하였으나, 훗날 그녀는 그리스 문화부장관을 역임하며 여러 일화들을 남기기도 했다. 국민배우니, 국민가수란 말이 남발되지만 국민가수니, 배우니 하는 말은 이런 이들을 위해 아껴둬야 할 말이다.


▶ 콘서트장에서 열창하고 있는 미리암 마케바(1978)

우리에겐
<바나나보트송>이나 <페어웰 자마이카> 등 칼립소의 황제로 잘 알려진 해리 벨라폰테가 1960년대 미국의 인권운동을 위해 거리 시위에 나선 인물이란 사실이나, 카네기홀 음반 발매 수익금 전액을 유네스코에 기부한 이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지 못하다. 또한 그는 남아공 출신의 무명 가수 미리암 마케바(Miriam Makeba, 훗날 아프리카의 디바란 칭호로 더 널리 알려짐)를 미국의 음악 시장에 소개(An Evening with Belafonte/Makeba)하면서 남아공의 인종차별 정책을 함께 강도높게 비판했다. 이외에도 피노체트의 군사쿠데타에 희생된 빅토르 하라, 아르헨티나의 메르세데스 소사 등에 대한 이야기는 월드뮤직에서 어째서 그토록 강렬한 저항의 냄새가 나는지 알려줄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를 '롬'이라 칭하면서 로마인의 후예라고 주장하는 집시 음악이 오늘날 고스란히 예전의 모습 그대로 전해지기보다는 확실한 팝의 길을 걸어가는 것처럼 주류 음악 시장에 편입되기 위한(이는 서구인의 귀에 맞추기 위한이란 말과도 같다) 이종교배 속에서 집시 음악의 전통은 날로 시들어가고 있는 현실은 우리에게 월드뮤직의 진정한 메아리가 어째서 아직도 멀리서 들려오는지 새삼 깨닫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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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퍼드 세계 영화사 - 제프리 노웰 스미스 (엮은이) | 김경식 | 이남 | 이순호 | 이영아 | 이유란 | 전찬일 | 주영상 | 허인영 (옮긴이) | 열린책들(2006)


영국의 유수한 명문대학으로 옥스포드와 케임브리지를 꼽는다. 다소 엄살을 섞어 말하자면, 요사이 이들 대학에 대해서 내가 알고 있는 정보라고는 영국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유학 생활하기가 그다지 까다롭지는 않아도, 생활비가 많이 들어 힘들다더라는 정도의 정보밖에 없긴 하다. 그럼에도 이 두 대학이 대영제국 전성기의 제국 엘리트들의 산실이며 수많은 명사들을 배출했다는 정도는 알고 있다. 그런 역사적인 사실을 떠나 내게 이 두 대학은 다음과 같은 책들로 인해 명문대학이다. 우선 케임브리지는 개마고원에서 출판하고 있는 "케임브리지 세계사 강좌" 시리즈로 인해, 옥스포드는 옥스포드 영어 사전 및 영국사 등의 저서를 출판하는 명문 대학 출판부를 가진 대학으로써 나에게 명문대학이다.

 

"제프리 노웰 스미스"가 책임편집자로 등재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 책의 저자로는 모두 80여명 가량의 세계 유수의 영화학자와 평론가들이 참여했다. 사이먼 윈체스터의 책 "교수와 광인"을 통해서 이미 잘 알려져 있듯 옥스포드 영어사전의 권위는 전세계적으로도 절대적이다.(옥스포드 영어대사전은 약 40년 동안 학자 1000여명이 동원돼 1928년 처음 완간되었는데, 사이먼 윈체스터는 이 과정에 참여한 제임스 마리의 이야기를 통해 옥스포드 영어사전이 만들어지던 무렵의 문화와 역사를 담아 책으로 엮었다.) 내가 처음 옥스포드란 고유명사와 인연을 맺은 것도 중학교 입학하면서 삼촌이 선물해준 "옥스포드 혼비 영영한 사전"을 통해서였다.

 

옥스포드 영어사전의 명성은 오늘날에도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는데, 명성이 지속될 수 있는 바탕에는 옥스포드 영어사전측이 일년에 최소 4차례에 걸쳐 인터넷 개정판을 내는 등 매해 1,500단어 이상을 추가하는 노력에 기초한다. 이렇게 온라인 사전에 추가된 단어들은 옥스포드 출판부가 발행하는 수십 종류의 활자 사전 개정판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프랑스 역시 17세기 왕립학술원을 통해 국가 차원에서 사전 작업에 착수해서 1690년대 첫번째 불어사전을 만들었고, 이후 총리 직속 기관으로 불어연구원을 두어 1960년대에는 표준불어대사전 작업에 착수하여, 1990년대 16권을 완간해냈다. 프랑스의 유명출판사인 라루스 역시 1910년 첫 불어사전을 펴낸 뒤 매년 개정판을 출판하고 있어 100회 가량의 개정판을 내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인터넷 확산과 함께 대형 포털 사이트들이 국어사전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어 온오프라인상의 모든 어휘연구작업이 사실상 중단된 상황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었을 때 부럽기 그지없는 일이다. 최근 들어 국내의 언론사들이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또한 미디어로서 온라인 매체들에 밀리는 현실이고, 상대적으로 영세한 잡지 매체들 역시 경영상 매우 곤란한 처지다. 이젠 신문, 잡지를 정기구독하는 일에 대해 세금 감면 혜택이라도 주어야 할 판이다.

 

얘기가 잠시 다른 곳으로 샜다. 앞서 말한 내용을 살펴보면 알겠지만, 이 책 "옥스퍼드 세계 영화사" 앞에 특별한 방점이 필요하다면 역시 옥스포드에 붙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국내의 영화붐을 타고 "세계영화사"란 주제로 국내에 출판된 책들은 꽤 여러 종이 되지만, 이 책은 "옥스포드 대학 출판부(Oxford University Press)"에서 출간되었단 사실 하나만으로도 공신력과 품질을 인정해줄 수 있다. 그래서인지 국내외 매스미디어들이 이 책에 대해 보인 호들갑스러운 평가가 괜한 것이라 할 수는 없다. 그야말로 "세계영화사"에 대한 주제로 쓰인 최고의 책이다.

 

이쯤하는 것으로 이 책에 대한 외견상의 평가는 일단락짓기로 하고, 소비자로, 독자로 책을 좀더 꼼꼼이 살펴보기로 하자. 우선 이 책의 만듦새는 본래 영어판이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독특하다. 정확하게 1.000쪽으로 떨어지기는 하지만, 실제 본문 내용은 판권 포함해서 997쪽으로 떨어진다. 뒤에 남는 페이지는 그냥 백지이긴 하지만, 그냥 1,000쪽이라고 해도 별무리는 없겠다. 집에 1,000쪽짜리 책 있는 사람은 어디 그리 흔하겠는가? (내가 아니고 우리 사무실에 소장된 가장 두꺼운 책은 금성출판사판 국어대사전인데 거의 3,800쪽 가량 된다.) 이렇게 두꺼운 책이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일반적인 단행본 제본으로 책 상태가 오래도록 유지될 수 없다. 그래서 이 책은 정통적인 양장본 제본 방식인 사철 제본으로 되어 있는데, 종이를 일일이 실로 꿰맨 책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겠다. 단단한 하드 커버로 마치 앨범처럼 덮개가 되어 있다.

 

속표지를 넘기면 책임편집자의 "감사의 말씀"이 수록되어 있고, 그 뒤로 이 세계영화사(사전이라 불러도 좋으리)의 기고자들 명단이 나오는데, 거기에서 이 책의 첫번째 문제이자 관점이 튀어 나온다. 기고자의 면면을 일일이 확인할 수는 없겠지만, 그들의 국적을 살펴보면 이 책이 의도적이든 아니든 영미적 관점에 의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폴란드, 라트비아, 인디아, 홍콩, 일본, 러시아 필자 등이  각 1인이고, 이상하게 네덜란드 필자가 2인, 그리고 뜻밖에 프랑스 필자가 1인밖에 참가하지 않고 있다. 국적이 영화사를 특별히 편협하게 기술하는 요인이 되진 않겠지만, 아무래도 자국 영화는 자국의 필자가 가장 잘 안다고 했을 때, 프랑스 국적을 지닌 필자가 80여 명이나 되는 중에서 1인에 불과하다는 것은 다소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다.(참고로 호주 영화인은 2명 참가하고 있다) 나머지는 모두 영미권 인사들이다. 그런 까닭에 프랑스 무성영화에 대한 기술은 미국의 리처드 에이블이 담당하고 있다.

 

두 번째 문제는 이 책을 재미있게 읽기 어렵다는 거다. 물론, 나의 개인적인 취향을 탓할 수도 있고, 책이 재미없는 것과 유익함은 별개의 문제라고 인정한다. 앞서 이미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지만, 이 책의 유익함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다만, 책의 재미와 관련해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 책의 무미건조함이다. 대개 여러 명의 필자가 참가하는 기획서들의 일반적인 문제는 필자간의 의견 차와 책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한데 조율하기 어렵다는 점인데, 이 책에선 그런 단점을 찾아보기 어렵다. 옥스포드 대학 출판부와 이 책의 번역자들이 공들인 덕이겠지만 이 책은 마치 한 명의 저자가 담당해서 만들었다고 해도 좋을 만큼 일관된 톤을 지닌다. 그런데 그 일관된 톤이 사전적인 무미건조함이란 사실이다. 따라서 영화사도 일종의 예술사라는 역사라고 할 때 사관이 드러나 보여야 하는 대목이 거의 없는 덤덤함을 지속하고 있다는 점은 이 책의 장점이자 역시 재미를 추구하는 독서란 점에선 지적해 둘 대목이다(개인적으로 영화사의 기술에서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비평사 -혹은 비평사조- 부분이 이 책에서도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는 점은 다소 아쉽다).

 

이 책이 무려 1,000쪽에 달한다고는 하지만 구조 자체는 매우 간단한 편이다. 모두 3장의 구성(897쪽부터 시작되는 용어설명, 참고문헌, 인명색인, 영화색인은 별도로 하고)으로 되어 있는데, 1장 "무성영화 1895 - 1930", 2장 "유성영화 1930-1960", 그리고 3장 "현대영화 1960-1995"까지의 실제로는 영화 100년사라고 할 수 있다. 각각의 장들은 다시 동일한 구조를 가지고 반복되는데, 서론으로 각 시대의 영화사적인 특징과 얼개를 소개하고 그런 뒤에 그 시대의 특징적인 영화사적 사건에 대한 개론을 소개한다.

 

1장에서는 당연히 영화의 탄생과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의 부장을 집중적으로 다루며, 이 시기에 분화되기 시작한 애니메이션, 코미디, 다큐멘터리, 아방가르드 영화 등 영화 장르를 개별적으로 다룬다. 그 뒤에 다시 각국의 영화 스타일을 각각의 필자들이 맡아서 다룬다. 1장과 2장의 영화를 구분하는 가장 큰 구분점은 소리의 문제이다. 2장에서는 본격적인 유성영화 시대를 맡이한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의 성공과 이 무렵 영화에 불어닥친 검열의 문제, 기술혁신의 문제를 특징적으로 소개한다. 그런 뒤 유성영화 시대 더욱 극적으로 분화된 영화의 장르들(뮤지컬, 서부영화, 범죄영화, 판타지 등)을 개별적으로 소개한다. 혁명의 시대이기도 했던 이 무렵 이데올로기가 영화에 끼친 영향을 소개하고, 각국의 영화 스타일과 발전상을 소개하는 것으로 마무리 짓는다(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영화를 포함해서).

 

3장 현대영화편에서 가장 주목해볼 기술적 혁신과 영화사적 사건은 그간 유일한 동영상 매체로서 영화가 누려왔던 영광에 치명적인 위협이 된 TV매체의 출현을 꼽는다. 서론 이후 곧바로 '텔레비전 시대의 영화' 라는 별도의 구성을 통해 텔레비전이 영화산업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분석하는 것에 할애하고 있는데,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이후의 구성인 '미국영화'편까지 이어진다고 할 수 있다. 최소한 미국영화가 매체로서 TV와 경쟁할 자원으로 삼은 것은 섹스와 선정성, 그리고 블록버스터였으니까 말이다. 이후 유럽의 예술 영화들, 미국의 독립영화가 TV출현에 대한 영화예술적 모색이란 점을 고려해 아방가르드 영화들, 시네마 베리테 등 예술영화운동을 살펴본다. 그 뒤 각국의 영화 발전을 살핀다.

 

이미 여러 리뷰들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이 책은 여러 나라의 영화 발전을 다루고 있다. 영미권 영화(실제로는 미국 영화)는 당연히 그 중심에 있고, 그 주변부 영화로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동유럽, 독일, 러시아, 터키, 아랍, 아프리카, 이란, 인도, 인도네시아, 중국, 홍콩, 대만, 일본,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라틴 아메리카 등을 총망라하고 있지만, 한국 영화는 별도로 다뤄지지 않았다(이렇게 역사적인 맥락에서만 영화사가 기술되면 상대적으로 예술의 주체인 창작자들이 소외되기 마련이다. 아마도 편저자들 역시 그 점을 고민한 듯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알랭 들롱과 같이 유명 영화 감독과 배우를 포함해서 미술감독, 촬영감독에 이르는 각각의 영화 종사자들을 모두 132명 소개하는 것으로 보충하고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나로서도 처음 듣는 인물들이 많았다).

 

지금 한국영화가 누리고 있는 영광을 생각해보면 당연히 아쉬운 부분이긴 하지만, 이 책이 출간된 것이 1996년의 일이란 점(과 1995년까지만 다룬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크게 무리는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다. 최소한 서구인들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우리 영화의 출현은 21세기적 사건이지, 20세기의 사건은 아닐 테니 말이다. 

* 본래 하드커버로 먼저 출판되었는데 보급본으로 새로 나와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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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기』 - 김창남, 한울(한울아카데미), 2004.


영화에는 오마주(hommage)란 말이 있다. 창작자인 감독이 자신의 특별한 존경을 담아 다른 작품의 주요 장면이나 대사를 인용하는 것을 일컫는 말인 오마주는 불어로 존경과 경의를 뜻한다. 나는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보일 수 있는 최고의 오마주를 굳이 말로 표현하자면 영화를 통해 드러내는 오마주의 방식인 "나는 당신의 인생을 닮고 싶습니다."라고 생각한다. "닮지 않았다"는 말을 한자로 쓰면 "불초(不肖)"가 된다. '불초'란 말은 "맹자(孟子) 만장편(萬章篇)"에 나오는 말로 "丹舟之不肖 舜之子亦不肖 舜之相堯 禹之相舜也 歷年多 施澤於民久 요(堯) 임금의 아들 단주는 불초하고, 순(舜) 임금의 아들 역시 불초하며, 순 임금이 요 임금을 도운 것과 우 임금이 순 임금을 도운 것은 오래되었으며, 요와 순 임금이 백성들에게 오랫동안 은혜를 베푸셨다"에서 나온 말이다.

 

중국의 역대 최고 성왕으로 꼽히는 요순 두 임금은 그 자식들의 부족함을 알아 그들에게 왕위를 물려주지 않았다. 그 자식들은 부모를 닮지 못했기에 왕위를 물려받을 수 없었고, 요순임금이 친자식들에게 왕위를 물려주지 않아 그 덕으로 백성들은 편했다는 뜻이다. 자식이 부모를 닮지 않은 것은 불효이므로 우리는 부모님께 나아가 자신을 이를 때 불초자, 혹은 불토소생이라 한다. 이 책 "김민기"는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가수이자, 뛰어난 작사,작곡가, 그리고 엄혹했던 유신 시대 우리 가슴을 덥혀주었던 한 음악가의 작업들을 한 눈에 일목요연하게 살필 수 있다는 실용적인 미덕과 우리가, 김민기와 동시대를 살았던, 살고 있는 선배, 동기, 후배들이 수많은 시련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아름다운 노래들과 작업들을 멈추지 않고 해준 김민기에게 보내는 마음의 헌사, 즉 오마주라는 것이다.

 

한울출판사에선 동명의 책 "김민기"를 이전에도 출판(1986년 판)한 적이 있지만, 이 책은 지금까지 현역으로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김민기의 최근 행적과 민주화의 더딘 진전에 따라 이전엔 담을 수 없었던 내용을 보강한 책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결정판이자, 앞으로도 보강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책이기도 하다. "김민기"는 모두 7장(록 뮤지컬 지하철 1호선, 노래일기 연이의 일기, 노래굿 공장의 불빛, 소리굿 아구, 디스코프래피, 노래 일지와 악보, 비평)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4부의 구조를 갖고 있다. 우선 여는 글로 김창남(성공회대 교수), 김지하(시인, 소설가)의 글을 담고, 김민기의 작업들(지하철 1호선을 비롯한)을 살필 수 있는 악보와 대본, 그리고 김민기의 디스코그래피(노래일지와 악보, 연보를 포함해서), 김민기와의 대담 및 그에 대한 리뷰들을 담고 있다. 김민기의 세계적인 활약상을 보여주듯 이 책에는 김지하, 김창남을 비롯해 지하철1호선의 원작자인 폴커 루드비히, 중국의 쾅신니엔(청화대 교수), 미국의 카터 J. 에커트(하버드대 교수), 일본의 카라 쥬로(극작가, 배우) 등이 총망라되고 있다.

 

지난 연말(2004년)에 나는 지인에게서 록뮤지컬 "지하철1호선" 공연 티켓 2장을 선물 받았다. 이전부터 "지하철1호선"의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막상 움직이는데 둔한 편이라 공연을 직접 본다는 건 생각도 못했다가 지인의 후의로 학전소극장에서 "지하철 1호선"을 볼 수 있었다. 공연에 대해 문외한 입장에서 공연의 질을 따질 수는 없을 것이지만, 이 뮤지컬을 통해 그간 배출된 배우들의 면면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그 공연이 어떤 것일지는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이다. 설경구, 이미옥, 방은진, 나윤선, 오지혜, 황정민, 장현성 등이 이 공연을 통해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고, 그 시도 자체가 우리 뮤지컬 연극 공연사의 신기원으로 인식되고 있다. 지난 1994년 5월 초연 이후 10년여가 지난 오늘까지 끊임없이 우리 사회의 모습을 풍자와 해학, 애환을 담아 50여만 명의 관객이 관람했다.

 

68혁명을 거친 뒤 "밥 딜런"이 포크 기타를 버리고 일렉트릭 기타로 무대에 올라섰을 때, 대중들은 밥 딜런에게 야유를 보냈다. 그러나 70년대에 접어들면서 순수의 시대는 종말을 고하고, 서구는 일제히 우향우하며 보수화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밥 딜런은 오랫동안 잊혀졌고, 그 와중에 청춘의 광폭한 질주를 노래했던 지미 헨드릭스, 짐 모리슨, 제니스 조플린은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한국엔 김민기가 나타난다. 김민기란 이름 석자는 70년대 우리 사회의 청춘문화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의 청춘은 오래지 않아 창살 아래 갇혀버리고 만다. 그는 갇혔지만 그의 노래들은 자유를 노래했고, 그 어느 때보다 자유를 갈구했던 시대의 요청 속에 노래를 널리 퍼졌다.

 

어두운 공기 속에서 노래는 널리 퍼졌고, 우리는 교과서를 배우듯 "아침이슬"에서 "상록수"로 "늙은 군인의 노래"에서 운동가로 넘어갔다. 운동가로 넘어간 사람들은 김민기의 노래들이 선명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김민기는 그렇게 잊혀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김민기는 1979년 노래극 "공장의 불빛"을 통해 다시 돌아온다. 그러나 80년의 봄은 김민기의 봄이 아니었다. 그는 다시 오랫동안 잊혀졌다. 광주 학살로 등극한 정권은 정권대로, 그리고 이에 대항하기 위해 더욱 날카로운 무기를 갈고 다듬어야 했던 이들은 이들대로 김민기를 불러낼 수 없었다. 그리고 90년대 김민기의 투명한 불투명을 지탄했던 이들은 다시 김민기로 돌아왔다. "길은 다시 다른 봉우리로 ... 봉우리란 그저 넘어가는 고갯마루"였을 뿐이란 걸 우리들은 그제사 알 수 있었다.

 

재일 작가 김중명은 김민기의 작업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절규가 아니라 속삭임이다. 도취가 아니라 생명에 대한 자비에 넘친 슬기인 것이다. 사랑스런 사람의 살갗의 온기가 느껴지고, 심장의 고동이 들려오고 머리카락의 향내가 풍겨오는 그 알맞은 거리에서 들을 수 있는 노래야말로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김민기의 노래는 그러한 노래의 하나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실, 김민기의 노래는 무엇이라 정의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의 노래들은 가두 시위 장소에서, 운동장에서, 예배당에서, 불시에 세상을 떠난 친구의 마지막길을 애도하는 장례식 장에서 불렸다. 그가 애초에 이 노래들을 어떤 장소에서 어떻게 쓰이길 바라고 만든 노래들이 아님에도, 아니, 아니었기 때문에 그의 노래들은 그 어떤 장소에서도 불릴 수 있었다. 김민기는 사랑이란 낱말 이전에 사랑이란 감정이 존재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말은 그 뒤에 등장한 표현기구일 뿐이라고 말한다. 김민기에게 사랑은 구체적인 느낌이자 실천이지, 표현의 문제가 아니었다. 구태여 입 밖으로 사랑이란 낱말을 뱉아내야만 사랑의 실체를 느낄 수 있다는 믿음은 어쩌면 진정으로 사랑을 신뢰할 수 없는 이들의 궁핍한 변명이다.

 

김민기는 여전히 많은 실험들을 하고 있으며, 그의 실험들 하나하나가 우리 문화사의 중요한 씨앗들이 되고 있다. 어쩌면 그 실험들은 자본과 기술의 우월을 앞세워 들이닥치고 있는 서구의 상업 뮤지컬들에 맞선 다윗의 고독한 돌팔매질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거의 3만원에 가까운 책값이지만 판형이나 지질, 안에 담고 있는 내용들은 그 값어치를 충분히 하고 있다. 김민기 전집은 네 장짜리 CD로 나와 있으니 기왕지사 이 책을 사서 읽고 싶은 이들은 그 CD들과 함께 차분하게 가라앉은 청명한 밤공기 속으로 성큼성큼 걸어들어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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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바도르 (Salvador)
감독 : 올리버 스톤
출연 : 제임스 우즈
제작 : 1986 영국, 미국, 122분

올리버 스톤의 실질적 감독 데뷔작 <살바도르>

올리버 스톤의 감독 데뷔작은 1981년의 공포영화 <악마의 손(The Hand)>이었지만, 그를 할리우드의 이단아, 숨겨진 뇌관으로 만든 데뷔작은 <살바도르>였다. 이 영화가 중요한 것은 그가 앞으로 펼쳐나갈 작업들과 그의 생각들을 엿볼 수 있는 문제작이었기 때문이다. 올리버 스톤은 미국 역사에서 가장 드러내고 싶지 않은 부분들을 조망함으로써 가장 미국적인 감독이자, 미국적이지 않은 감독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올리버 스톤은 미국 현대사의 명암을 정공법으로 파고드는 감독으로 정평이 나 있지만, 그가 처음부터 그런 감독은 아니었다. 그의 데뷔작인 <악마의 손>은 컬트적인 구성이 돋보이긴 했으나 소수의 마니아들에게나 인정  받는 작품이었고, 그는 일찍 감독 데뷔를 했으나 이후엔 감독보다는 시나리오 작가로 더 명성을 얻었다. 그는 감독상을 받기 전에 <미드나잇 익스프레스(1978)>로 먼저 각본상을 받았다.


이후 브라이언 드 팔마와 <스카페이스>, 마이클 치미노와 <이어 오브 드라곤> 등을 촬영하며 전형적인 장르영화에 충실한 각본을 썼다. 이 무렵 그리고 이후에 다소 약화되기는 하지만 그의 작품들은 인종차별적인 묘사와 지나친 폭력으로 많은 비판을 받아 왔고, <미드나잇 익스프레스>는 한 때 한국에서도 영화를 볼 수 있었던 이들에게 한국적 인권 상황을 생각하게 해 많은 인기를 얻었으나 지금은 인종적 편견을 드러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올리버 스톤 자신도
“난 인종차별주의자였고 국수주의자였으며 총을 숭배했다”며 당시 자신의 문제점을 시인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그의 새로운 감독 데뷔작(?)이 된 <살바도르>는 그런 과도기적 상황에 놓인 자신의 처지를 종군 기자 리처드 보일(제임스 우즈)에 투사해내고 있는 작품인지도 모르겠다. 보일은 한때는 그나마 잘 나가던 카메라 기자였고, 영화 <킬링필드>의 주인공이기도 한 시드니 쉔버그와 함께 캄보디아 취재 기자로 나선 적도 있었다. 그러나 타고난 냉소와 좌충우돌하는 기질 때문에 그를 고용해주는 통신사 하나 없이 시시껄렁한 생활을 해나가고 있다. 아내는 넌덜머리나는 결혼 생활을 끝장내버리고, 그는 밀린 아파트 월세에 쪼들리다 못해 통신사에 전화를 해대며 취재거리를 달라고 애걸복걸한다.


엘살바도르 - 바나나공화국에서 벌어진 대량
학살

결국 리처드 보일은 카메라 한 대를 달랑 들고 내전이 한창인 엘살바도르에 간다. 이 영화는 엘살바도르 내전(1980-81년) 당시의 종군 기자였던 보일의 자서전적 기록을 재구성한 영화다. DVD에는 그의 실제 회고 일부가 담겨 있지만 아쉽게도 자막이 없다. 영화 초반의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주된 배경이 되는 엘살바도르는 어떤 나라인가.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엘살바도르는 1856년 독립하지만, 시몬 볼리바르가 꿈꾸었던 라틴아메리카 연방공화국의 꿈은 미국과 같은 새로운 강대국의 출현을 염려한 영국과 미국, 그리고 나머지 유럽 제국들의 방해, 내부적으로는 이미 기득권을 확보하고 있던 지주계급의 반대로 무산되고 만다. 특히 미국은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미국의 우선권을 주장하며 라틴 아메리카 지역에 대한 경제적, 정치적 종속을 강화해나간다.


라틴아메리카의 여러 약소국들을 일컬어 '
바나나공화국'이란 말로 부르는 것은 유나이티드 프루츠와 같은 미국계 다국적 기업이 한 나라의 경제와 사회를 좌우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냉소 섞인 풍자이다. 미국과 이해를 같이하는 소수 지주계급은 부를 축적하여 전국토의 56%를 14개 문벌에서 차지할 정도로 엘살바도르의 빈부 차는 극심했다. 결국 1932년 농민을 이끌고 파라분도 마르티는 반란을 일으키지만 결과는 농민군 3만 명의 참살로 끝나고 만다. 오늘날 라틴 아메리카의 게릴라 집단의 명칭은 대개 그 지역 출신으로 과거 반란을 주모했던 혁명가들의 이름에서 유래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들의 저항, 아니 이들의 고통이 얼마나 오랜 역사적 연원을 지니는지 알 수 있다.


-> FMLN(Frente Farabundo Marti de Liberación Nacional)  파라분도 마르티 민족 해방 전선은 1980년 8월에 4개의 게릴라가 모여 결성한 무장 혁명 조직으로 1980년부터 1992년까지 미국의 지원을 등에 업은 우익 쿠데타세력에 맞섰던 게릴라 저항조직이다. UN의 중재로 평화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엘살바도르 내전은 18만명의 희생자를 냈다. 지난 2009년 FMLN은 항쟁 20년만에 엘살바도르 대선에서 승리하여 평화적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라틴아메리카 민중들 전체에 커다란 자극을 준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난다. 쿠바가 소모사 정권을 전복시키는 혁명에 성공했고, 베트남이 거대한 코끼리인 미국의 밑창에 구멍을 내는 승리를 거두었고, 이란에서는 팔레비 정권이 강력한 비밀경찰과 미국의 지원을 물리치고, 호메이니의 이슬람 혁명을 성공시킨다. 이런 연이은 혁명의 성공은 라틴아메리카 민중들에게 큰 자극이 되었고, 1970년대부터 엘살바도르 안에서도 군부독재에 대한 좌익 게릴라 조직의 저항이 시작된다. 그리고 1980년 분열되어 있던 게릴라 조직은 파라분도 마르티 민족해방전선(FMLN)으로 통합되기에 이르렀다. 같은 해 3월 로메로 대주교 암살사건으로 촉발된 엘살바도르 내전은 더욱 극렬한 상황으로 치닫는다. FMLN은 1983년에 이르러서는 엘살바도르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거대 세력으로 거듭나지만 그 와중에 엘살바도르 군부는 '
죽음의 군단'이란 퇴역군인과 치안경찰 등 우익 민병대를 조직해 무수한 민간인들을 학살한다.




기자 정신과 보여주
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미국 언론

영화는 그런 시대 배경 속에 있으며, 그중에서도 FMLN의 결성과 로메로 주교의 암살, 새로운 람보 - 레이건의 등장이란 극적인 순간의 엘살바도르를 다룬다. 영화 속에서 제임스 우즈는 그의 연기사상 거의 최고의 연기 솜씨를 보여주는데, 그 자신이 리처드 보일이 아닐까 싶을 만큼 대단했다. 영화는 미국의 라틴아메리카의 소국 엘살바도르를 어떻게 실질적으로 지배하는가를 할리우드 영화치고는 대단하단 생각이 들만큼 잘 지적해내고 있다. 비판의 화살은 단지 정치인들에게만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거기엔 한때 우리 사회에서 대통령을 하야시킬 만큼 대담한 비판정신과 공정성으로 찬탄의 대상이 되었던 미국의 언론이 어떤 방식으로 교묘하게 자본의 검열을 받는가를 살필 수 있다.


미국은 베트남전의 패배를 군사적 패배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베트남전의 패배를 내부의 전쟁에서 패한 것, 언론과의 전쟁에서 패한 것, 고도의 정치전, 심리전에서 패배한 것으로 생각한다. 베트남에서의 패배를 군사적인 패배로 생각지 않는 까닭은 미국이 세계 도처의 전쟁에 참전한 이래 거듭되는 그들만의 산술방식에서 비롯되는 것인데, 기실 이런 전통은 인디언 헤드 헌터식 산술법이란 지극히 미국적인 산술법에 의한 것이다. 예를 들어 서부영화에 등장하는 인디언 헤드헌터들의 방식, 인디언 머리 가죽을 벗겨오면 가죽 당 얼마씩 달러를 지불하는 것 말이다. 베트남전에서 베트콩의 귀를 잘라 수집하는 것도 어쩌면 이런 전통에서 유래한 것이다. 미국은 전사자의 시체 수로 전투의 승리를 가늠한다. 미군 전사자보다 많은 베트콩을 죽인 전투라면 그 전투는 승리한 것이고, 이런 식의 전투에서 미국은 단 한 차례도 패배한 적이 없었다.


보일은 엘살바도르의 진실을 파헤치고자 하지만, 베트남전 이후 새로운 보도 정책과 검열 방식을 채택한 미국에서는 취재는 가능할지 모르나 이를 보도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 되었다. 종군기자들의 사망이 부지기수로 늘어나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의 일이다. 이제 미군을 수행하는 종군기자들은 전쟁에서 가장 먼저 타깃이 되거나 에어컨디셔너에 의해 기온이 조절되는 안락한 브리핑 룸에서 미군 보도통제관이 전해주는 뉴스만을 앵무새처럼 되뇌는 존재가 되었다. 그 결과 미국의 시청자들은 안방에서 편안하게 매번 최고의 민간인 학살 수치를 갱신하는 미군의 전투 수행 방식을 역사상 가장 깨끗하고, 과학적인 첨단 전쟁으로 인식하게 된다. 미군은 그네들이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줌으로써 남북전쟁 당시 브로디의 사진처럼 전쟁은 일어났지만 단 한 명의 전사자 시신도 발견할 수 없는 화면을 본다. 영화 속에서 보일은 미 대사관에서 벌어지는 파티 석상에서 이런 기자들을 한껏 조롱한다. 그러나 보일 자신도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며 우익 지도자에게 밉보여 자신의 친구인 수녀일행이 강간당하고, 살해당하는 일을 겪는다.


엘살바도르와 광주, 1980년

나는 이 영화를 지난 1988년에 보았다. 87년의 후폭풍을 겪고, 88올림픽을 앞둔 노태우 정권은 민주화된 상징으로 코스타가브라스(Constantin Costa-Gavras)의 영화 <Z>와 올리버 스톤의 <살바도르>를 극장에서 개봉할 수 있게 해주었다. 1980년 5.18 광주로부터 8년 뒤에 다시 보는 1980년 엘살바도르의 상황은 광주라는 고립된 공간에서 최후의, 최후까지 저항했던 사람들을 떠올리게 해주었다. 나는 극장의 어두운 공간에서 엘살바도르가 아니라 광주를 보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죽은 수녀들의 시체가 어둠 속에서, 흙 속에서 발굴되어 나오는 장면을 보며, 나는 욕지기를 느꼈고, 광주 인근의 어느 이름 없는 둔덕 속에 묻혀있을 시신들이 떠올랐었다. 레이건의 등장이 전혀 다른 새로운 미국의 출현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트루먼 대통령 이래 지속되어 온 미국의 대외정책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진 일이었고, 1980년의 봄은 그런 미국의 저강도전쟁이란 정책의 변화 속에서 이루어진 소리 없는(?) 학살들이었다. 레이건의 등장과 함께 전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전쟁이 일어났다. 그러나 그런 사실들은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한 전쟁이고, 학살이었으며, 단지 그 나라 독재정권이 한 짓들이었다. 미국은 베트남전 이래 직접 개입하는 방식 대신 그들의 하수인을 부리는 방식을 택했다.


리처드 보일은 엘살바도르에서 한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그녀와 결혼하여 살바도르를 빠져나오게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미국에 도달한 직후 국경감시대에 의해 그 여인은 다시 엘살바도르로 되돌려 보내진다. 그녀를 실고 떠나는 국경감시대 차량을 향해 보일은 외친다.
“너희들은 되돌려 보낸다는 게 뭘 의미하는지 모른다.”고 말이다. 이 영화 역시 올리버 스톤의 작품들에 대해 쏟아지는 일반적인(인종 편견적이라거나, 미국 비판이지만 그것은 또 다른 이미지의 미국, 인권국가, 자유로운 미국에 대한 이미지를 증대시키는데 이바지한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하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고 있는 우리 영화인들 혹은 감상자들에게 되묻고 싶은 것이 있다. 그래, 우리는 이 영화보다 조금 더 나은 영화를 만들었는가? 만들고 있는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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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1987년 그의 노래들이 해금된 이후였다. 그러나 한국에서 한대수는 여전히 가수라기 보다는 기인적인 풍모, 사회의 아웃사이더로 일반인의 정서에 부합하는 가수는 아니었다. 아마도 그런 까닭에 가수로서 활동한지 30년이 지난 2001년 10월에서야 비로소 자신의 두 번째 콘서트를 열 수 있었으리라. 머리에 꽃을 꽂은 청년이 초로의 중년이 될 때까지 한국에서 머리에 꽃을 꽂은 사람은 그저 미치광이였을 뿐이다. LP시절 만났던 그의 첫 앨범을 CD로 다시 만났다. 청년 한대수의 노래를 당신에게 권해본다.


물 좀 주소 물 좀 주소 목 마르요 물 좀 주소
물은 사랑이여 나의 목을 간질여 놀리면서 밖에 보내네
난 가겠소 나는 가겠소 저 언덕 위로 넘어가겠소
여행 도중에 처녀 만나 본다면 난 살겠소 같이 살겠소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물 좀 주소 물 좀 주소 목 마르요 물 좀 주소
그 비만 온다면 나는 다시 일어나리 아 그러나 비는 안오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어렸을 적 대학 다니던 삼촌이 사들였던 LP중에는 한대수가 가방을 어깨에 짊어매고 초가집이 있는 시골 밭두렁길을 걸어가는 사진으로 장식된 그의 1집 앨범 <멀고먼-길>이 있었다. 구닥다리 턴테이블이었지만 LP음반을 통해 처음 접했던 한대수의 음악은 어린 마음에도 충격이었다. 그 무렵 나는 송창식의 최대히트곡 중 하나인 <피리부는 사나이>를 콧노래로 흥얼거리며 뛰노는 어린아이였는데, 어느날 갑자기 송창식이 향군법 위반 혐의로 끌려가면서
(그때의 충격으로 나는 민방위비상소집도 열심히 나간다) 뭐 다른 노래 들을 만한 것이 없나 삼촌의 LP창고를 뒤적이다 발견한 것이 한대수의 <멀고먼-길>이었다.


출처: 월간사진 http://www.monthlyphoto.com

개인적으로 한국 포크음악사에서 가장 중요한 뮤지션 세 사람을 꼽으라면 나는 송창식, 한대수, 김민기라고 생각하는데, 언급한 순서는 사실 내가 그들을 처음 만난 순서이기도 하다. 시인에 빗대어 하는 비유가 적절할지는 모르겠지만 송창식이 서정주에 가깝다면, 한대수는 김수영, 김민기는 신동엽의 흐름과 근사치를 이룬다고 생각한다. 송창식은 번안곡으로 시작해 트로트와 국악을 그의 음악에 접맥했다면, 한대수는 밥 딜런류의 사실적인 포크에 한국적인 정서를 가미했고, 김민기는 서구적 포크의 전통을 한국적 현실에 맞춰 계승한 인물들이다. 이들 세 사람은 포크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인 싱어송라이터의 개념에 부합하는 인물들이기도 했다.


어쨌든 송창식에서 한대수로 처음 넘어갔을 때 한대수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뭐, 이렇게 노래 못하는 가수가 다 있냐?'였다.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한대수의 보컬은 가수로서의 본격적인 트레이닝으로 다듬어진 목소리가 아닌 '날것'이었기 때문에 그동안(1977년 무렵까지, 무려 내 나이 8살 때까지) 내가 접해왔던 가수들의 목소리와는 완전히 다른 부류의 것이었다. 아마도 그의 목소리가 언더그라운드로 묻히게 된 까닭 중 하나는 정치적인 금지조치 이외에도 당시 대중적으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그의 보컬에도 영향이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한대수'란 가수는 2집 앨범 <고무신> 마저 반체제적이란 이유로 금지되면서 더이상 노래를 계속하기 어려워진다. 그의 2집 앨범이 반체제적이란 지적을 받은 이유는 앨범 재킷 사진이 문제가 되었는데 높은 벽돌담 위 가시철조망에 놓인 고무신이 반체제적이라는 지적을 받았기 때문이다. 포크음악에 대한 체제의 감시와 억압이 심해지자 결국 그는 노래를 접고, 모신문사의 사진기자로 일하다가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박광현 감독의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서 배우 강혜정은 약간 모자라지만 때묻지 않은 동막골의 순수를 머리에 꽂은 꽃으로 표현한다. 동막골은 민족이 서로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눈 한국전쟁의 이념도, 정치도 사라진 가상의 비무장지대(DMZ)를 넘어 유토피아로 상징된다. 그런 '동막골'에 불쑥 난입하게 된 전사들은 서서히 이들의 순수에 감화된다. 인민군 하사관 장영희(임하룡)의 명대사 "내레 꽃 꽂았습니다"는 이념과 정치, 증오와 분노를 넘어 사랑과 평화, 자연과 신비로의 전이를 의미한다. 정치적으로 적녹색맹인 수구보수세력들은 <웰컴 투 동막골>에서 친북의 색채를 읽었지만 이 영화는 서구의 1960년대 히피문화를 연상케하는 매우 복고적인 영화였다.



1960년대말 미국은 '꽃을 든 아이들(flower children)'이란 히피들을 중심을 기존의 제도정치와 문화에 도전하는 청년문화가 출현했고, 그 한 가운데 있었던 것이 포크음악과 사이키델릭 록음악이었다. 미국의 문화적 영향력 속에 갇혀있던 한국사회에도 자연스럽게 이들의 문화가 흘러들기 시작했다. 명분없는 베트남전쟁에 반대했던 당시의 청년들은 '반전, 평화, 사랑'을 구호로 1969년 8월 우드스탁 페스티벌을 열었고, 3일간 치러진 이 행사에는 50만명의 청년들이 모여 자유롭게 사랑을 나누고, 마리화나를 피웠다. 우드스탁 페스티벌에는 조니 미첼, 크로스비. 스틸. 내시&영, 지미 헨드릭스, 제퍼슨 에어플레인, 산타나 등 당대 최고의 포크와 록 뮤지션들이 무대에 올랐다.



미국으로부터 유입된 포크문화는 1968년 <트윈폴리오>에 의해 번안곡 형태로 반영되었다. 본래 <트윈폴리오>는 송창식, 윤형주, 이익근 트리오로 구성되었으나 이익근이 군에 입대해야 하는 바람에 송창식, 윤형주만의 '트윈'으로 출발했다.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은 한국 포크의 트로이카를 이루었지만, 이들이 노래했던 포크 음악가 히트곡들은 주로 번안곡 위주로 구성되었다는 한계가 있었다. 단 한 장의 데뷔음반을 끝으로 해산한 <트윈폴리오>에서 이후 솔로로 독립하여 본격적인 포크음악을 시작한 송창식과 함께 한국에서 본격적인 포크음악의 출발, 한국적인 포크음악을 시작한 사람이 누구냐라고 물을 때 우리가 먼저 떠올려야 할 사람은 '한대수'다.




한대수는 선교사였던 할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갔지만 미국인 새어머니와 함께 살던 십대 시절엔 불량써클에도 가입하는 등 말썽장이이기도 했다. 사진가를 꿈꾸었던 그는 뉴욕의 사진학교에서 사진을 공부하면서 밥 딜런, 도노반 등의 포크 음악에 깊이 매료되었다. 귀국 후에는 한국 청년문화의 산실이라 할 수 있는 서린동의 음악감상실 '세시봉'에서 노래를 했는데 이것이 인연이 되어 TBC의 <쇼쇼쇼>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었다. 장발의 히피 청년이었다. <트윈폴리오>의 부드러운 포크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한대수의 노래는 쉽게 이해받기 어려웠다. 그러나 그의 노래에 감동한 두 명의 여성 팬이 자청해 한대수의 콘서트를 열어주었는데 1969년 9월 남산드라마센터에서 열린 그의 공연은 한국 포크 음악의 진정한 시작을 알렸다.



그의 뒤를 이어 서유석, 양병집, 김민기 등이 출현했다. 그러나 파격적인 한대수의 풍모와 행동, 세태 풍자적인 노래들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못했고, 히피문화와 포크를 미국의 저질문화로 생각한 일부 사람들은 한대수에게 미국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한대수의 1집에 실린 그의 대표곡 중 하나인 <물 좀 주소>는 물고문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되었다. 군사정권은 '물'이라는 말이 상징하는 바가 의미심장하다고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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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의 시대 - 김성진/ 황소자리(2004)


세계의 분쟁지역에 대한 괜찮은 브리핑

"야만의 시대 - 영화로 읽는 세계 속 분쟁"에는 칭찬할 점과 비판할 점이 공존하고 있다. 우선 이 책의 제목 "야만의 시대"는 좀 손쉽게 붙은 제목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내용이 분명 전쟁을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야만의 시대"라는 거창한 제목에 부응할 만한 심도를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선 오히려 부제 '영화로 읽는 세계 속 분쟁'이 제목에 좀 더 어울린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대개 "세계의 분쟁"이라고 하지 않나? 세계 속 분쟁이라고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그것이 이 책을 받아든 순간 들었던 첫번째 의문이다. 저자인 김성진, 동덕여대 교수인 그는 연합통신 외신부 기자를 거쳐 시사저널, 중앙일보의 외교전문기자를 했다고 하는데, 약력 소개와는 달리 글에서는 현장 체험이 별로 묻어나지 않았다. 자세한 내용이야 알 수 없지만 작년(2004년)에 읽었던 전선기자 정문태의 "전쟁취재 16년의 기록(한겨레신문사)"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먼저 이 책의 장점 몇 가지를 이야기해본다면, 동서냉전 해체 이후 벌어지고 있는 세계의 여러 분쟁들에 대한 비교적 최신 브리핑(briefing) 자료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브리핑이란 건 간결하게 요약된 보고를 의미하는 것처럼 이 책은 기본적인 한계가 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분쟁들은 사실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동서냉전 시기엔 이데올로기에 묻혀버렸던 민족분쟁들을 다룬다. 우선 최근 자이툰 부대가 주둔하게 되면서 우리들에게도 익숙해진 쿠르드족, 러시아의 골칫거리인 체첸, 중국의 두 얼굴을 보여주는 티베트, 유럽의 영원한 불씨인 발칸, 현재까지 계속되는 열전의 현장 이라크, 마약왕국의 대명사 콜롬비아, 동서교통의 중심지라는 지정학적 위치로 고통받는 아프가니스탄, 오랜 분쟁의 현장 북아일랜드, 그리고 전세계의 화약고 팔레스타인이다.

 

기획은 돋보이지만 어딘가 미진한...

이 지역들은 종종 외신을 타고 흘러나오는 뉴스들은 있으나 우리들 자신과 직접적 연관이 없다는 생각에서 혹은 외신 자체도 그다지 집중 보도를 하지 않는 탓에 쉽게 알기 어려운 지역들이다. 나 역시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된 몇몇 사실들이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많은 참고자료가 될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황소자리" 출판사는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와 같이 과거에 출판(아마도 정신세계사에서 나왔던가)되었던 책을 재출간하면서 최근에 등장한 출판사다. 그러고보니 류비셰프를 포함해, "위대한 남자도 자식 때문에 울었다" 그리고 이 책까지 이 출판사에서 나온 책을 3권 읽었다. 사실 모리시타 겐지의 "위대한 남자도 자식 때문에 울었다" 를 읽으며 들었던 아쉬움이 이 책에도 거의 고스란히 적용된다. 모리시타 겐지의 책도 적당히 재미있었고, 적당히 정보를 얻었다고 할 수 있지만 뭔가 아쉽고 심도가 얕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책 역시 그렇다.

 

즉, 이 분야에 대해 거의 처음 접하게 되는 일반인에겐 좋을 지 몰라도 그렇지 않은 이들, 이 분야에 관심이 좀 있는 이들이 읽기엔 좀 엷은 향과 맛이다. 그런 점은 신생 출판사로서 상업적인 고려를 해야한다는 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왜 느닷없이 그런 출판사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이 책에서 가장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 중 하나가 출판사의 기획력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저자의 프롤로그에 보면 2003년 열린사이버대학교에 개설했던 강좌를 들은 수강생 중 한 명이 출판기획자로 변신한 뒤 출판을 제의해서 책으로 엮게 되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즉, 이 책은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교양서 중 하나로 기획된 것이다.

 

대개, 출판에서 편집자가 큰 역할을 하며 저자와 '함께' 책을 만든다는 보람을 느낄 수 있는 분야가 바로 이런 류의 책이다. 시집이나 소설의 경우엔 창작자의 몫이 편집자보다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에 편집자가 관여할 몫이 그만큼 적은 편인데 비해 이런 류의 책은 편집자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커진다. 독자의 입장에서 그런 편집자의 노력이 엿보이는 대목이 군데군데 보인다. 예를 들어 이 책의 여러 곳에 삽입되어 있는 각각의 개념 설명과 뒷부분에 부록으로 포함된 분쟁일지 같은 것들이 그렇다. 이런 부분들은 이 책의 장점이라 할 수 있다.

 

영화로 읽는 분쟁? 분쟁으로 읽는 영화?

하룻밤 침대에 누워 재미있게 읽으면서 나는 이 책의 몇몇 단점들이 걸렸다. 우선 국제정치를 전공한 이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국제정세를 지나치게 파워게임의 측면에서 읽으려는 측면이 있는데, 이 책에서도 그런 부분들이 제법 도드라져 보인다. 거기에 기자 출신 필자들의 문장이 지니는 건조한 문체가 책의 재미를 좀 덜하게 만든다. 물론 문장 자체야 흠잡을 데 없지만 재미는 정확한 문장을 구사하는 것과는 별개의 것이다. 또 한 가지는 "영화로 읽는" 이라고 하는 이 책의 컨셉 부분인데, 분쟁이라는 국제정치, 역사적 맥락에서 읽어야 할 부분을 영화라는 소재를 채용해 드러내보인다는 컨셉 자체야 이를 데 없이 훌륭한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 vs. 분쟁이라고 보았을 때 사실상 영화는 분쟁에 종속되어 있는 편이다. 물론 저자가 언급하고 있는 영화 가운데 상당수는 아직 보지 못한 것들이고, 대개의 독자들 또한 그러하리란 점을 고려해보면 이 양자 사이에서 주로 이야기될 수밖에 없는 것은 분쟁일 것이다. 다시 말해 영화적인 부분에 관심을 가지고 접근하는 이라면 그다지 재미없는 책일 수 있겠다.

 

예를 들어 이 책에서 발칸분쟁의 한 측면을 보여주는 영화 "세이비어" (국내에선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지만 영화 자체는 무척 잘 만들어졌다)는 영화의 내용만 따라가더라도 발칸분쟁의 한 단면을 드러내는데 어려움이 없다. 그런데 이 책에선 그 줄거리가 과감하게 생략되었기 때문에 혹시라도 비디오나 DVD로 이 영화를 따로 구해보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분쟁은 이해해도 책 내용은 실감나지 않게 된다. 책의 완성도를 상대적으로 떨어뜨리게 하는 것이다. 다른 한 가지는 이 책이 세계의 분쟁을 많이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아프리카 지역과 동남아시아 지역은 전혀 다루지 않는다는 점 역시 지적해둘 만하다. 이런 부분에 대한 지적들이 이 책의 커다란 흠결이 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책의 완성도란 점에서 다소 미진하게 여겨진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야만의 시대를 계획한 배후는 누구인가?

가장 마음에 걸리는 부분은 저자의 시각이다. 그것은 이 책의 제목이 "야만의 시대"라 하는 거창한 주제에 걸맞지 않는, 혹은 프롤로그 부분에서도 언급되고 있는 저자의 문제의식이 안이해보이거나 분쟁의 원인을 분석하는 부분에서 일면적이거나 미국의 책임을 분명히 언급해야 하는 부분이 누락되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괄호 안의 글은 내가 딴지를 거는 부분들이다."

 

미국의 이라크 점령(어째서 점령이란 단어를 썼을까? 침공과 점령은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를 보인다. )은 미국에 비판적인 자세를 견지해온 시리아와 이란에게 언제라도 초라한 후세인의 몰골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암시임에 분명하다. 더욱이 세계 2위의 산유국인 이라크를 점령하는 것은 자원민족주의의 관점에서도 정말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이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아프가니스탄에 이어 이라크로 이어지는 새로운 친미벨트의 형성은 21세기의 새로운 강국 중국을 압박하는 효율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사실도 고려했음 직하다.


노골적인 이해관계에 매달리다보니 목적이 수단을 합리화해 나갔다. 미군에 잡힌 이라크 포로들은 이슬람교도로서는(그건 비단 이슬람교도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런 성적 학대는 종교와 관련없이 그 누구에게나 죽음보다 더한 것이다) 죽음보다 더한 성적 학대를 감내해야 했다. 세계의 경찰국가로, 매년 세계 각국의 인권 상황을 감시해 발표하는(책에서도 언급하고 있는 영화 "착한 쿠르드 나쁜 쿠르드"에서 알 수 있듯 미국의 인권은 그들이 친미적이냐, 반미적이냐, 미국의 이익에 보탬이 되는가로 구분될 뿐인 인권이다) 인권의 최후 보루로 자임해온 국가의 군대가 상부의 지시에 따라 조직적으로 자행한 포로 학대여서 그 충격은 더하다(솔직히 이 분야에 대한 전문가라는 사람이 충격이라고 말하는 것이 나로서는 도리어 충격이다. 역설적인 표현이 아니라면 미국은 늘 그래왔지 않나?). ...<중략>.... 이 시대 최고의 문명국가임을 자임해온 미국이 이럴진대 과연 인류의 역사가 정말 발전해온 것인지에 근본적인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본문 10-11쪽>

 

세계의 분쟁지역을 살펴보면 전부는 아니라고 할지라도 거의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곳들이 미국과 과거 유럽의 식민지배 혹은 그들의 식민지배 질서의 영향이 분쟁의 원인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발칸 지역의 분쟁의 한 원인은 물론 대세르비아주의임에 틀림없지만 그 안엔 가까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크로아티아 지역에서 나치를 등에 업은 민족주의자들인 우스타시의 대세르비아 학살, 인종청소(이 책에 따르면 35만명을 학살)가 보다 자세하게 언급될 필요가 있다. 거기에 덧붙여져서 티토의 사망 이후 서유럽이 종교적, 인종적으로 자신들에게 가까운 몇몇 나라들의 독립을 부추겨 유고의 해체를 촉진한 사실도 언급되어야 하는데 이 책엔 그런 부분은 누락되었다.

 

판쉬르의 사자, 마수드의 암살 배후가 오사마 빈 라덴
- 그런데 왜 미국이 좋아하는 거지...



마찬가지로 판쉬르의 사자. 마수드의 암살과 그 배후에 대해 저자는 철저하게 미국의 관점에서만 접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수드를 직접 인터뷰한 바 있는 정문태는 "전쟁취재 16년의 기록"에서 마수드의 암살 배후에 미국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요지의 글을 쓴바 있는데, 이 책의 저자 김성진은 미국을 비롯한 서구 일부의 주장인 오사마 빈 라덴과 탈리반 암살설을 거의 정설로 취급한다. 살인 사건이 일어났을 때 불특정다수를 향한 목적없는 살해를 제외하고는 대개 사건의 배후를 지목할 때, 그가 죽음으로써 가장 이득을 얻는 집단, 개인이 누구인가를 추측하는 것에서 초등수사가 시작되기 마련이다. 물론 마수드를 암살하기 위한 시도는 구소련의 침공 당시부터 수도 없이 있었던 일이며, 마수드의 명성만큼이나 그의 죽음을 원하는 집단도 많았다. 그런 이유에서 마수드 자신도 암살의 위협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보안과 검색에 철저함을 기했다.

 

탈리반도 그들과 대립하는 북부동맹의 마수드가 눈엣가시였음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구태여 그의 죽음을 자신들이 한 것이 아니라고 부인할 까닭도 없다. 그만큼 오랜 적이었으니까 부인할 까닭이 없다. 그런데도 그들은 마수드 암살에 책임이 없음을 밝혔다. 그렇다면 마수드의 죽음으로 가장 큰 이득을 보는 이들은 누구였을까? 정문태는 그로 인해 이득을 본 것은 미국이라는 것이다. 마수드의 암살은 탈리반이 축출된 후 가장 큰 정치지도자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가장 확실한 지도자의 제거를 의미한다. 이 땅의 해방 정국에서 김구, 여운형, 김규식 등이 비명에 간 것, 그들의 암살 배후에 누가 있는가를 생각해본다면 쉽게 추측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저자는 너무나 손쉽게 오사마 빈 라덴을 배후로 지목한다. 그것은 바미안 석굴의 파괴 과정에서 정문태가 지적하고 있는 부분, 탈리반 지도자인 물라 오마르는 오랫동안 출처를 알 수 없는 자금을 사용했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의 언론들은 이 자금이 오사마 빈 라덴의 지원이라고 손쉽게 규정하지만 오랫동안 탈리반을 무자헤딘으로 칭송하며 이들에게 자금을 댄 것이 미국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기도 하다. 바미안 석굴의 파괴과정 역시 정문태는 탈리반 지도자인 오마르는 오랫동안 바미안 석불을 볼모 삼아 미국과의 거래를 원했으나 결국 이 과정에서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대한 명분 쌓기를 위해 바미안 석불은 구원받지 못했다고 말한다. 이 책 "야만의 시대"는 분명 우리들에게 세계 전역의 무수한 분쟁들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배후에 무엇이 있는가? 그 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해선 명확한 진실을 보여주지 않거나 애써 외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이 책에 별 셋 이상을 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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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최종병기 그녀



다카하시 신을 아는 만화 매니아들이 많을 텐데, 거기에 대해 뭐라고 말을 덧붙이는 것은 약간 우스운 일이 될까? 가끔 남성성, 여성성을 논하는 자리에서 남성성은 이렇다, 여성성은 이렇다고 거칠게 규정하거나 규정당할 때 약간 마음이 아파질 때도 있다. 가령, 내가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것이 아니듯, 내가 남성으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어느 순간 왕따 당하는 느낌을 즐기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럼 점에서 페미니즘 역시 선택적 사고라는 것은 일견 불행하면서 다행한 일이다. 가령, 난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선뜻 말하지 못하지만 그 대의에 너무나 동의한다. 그런데 그런 문제는 넘겨두고라도 남성성, 여성성이란 과연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글쎄, 최소한 만화책을 고르는 취향에서만큼 이런 남성성과 여성성의 취향 분화가 확실히 되는 분야가 있을까? 물론 그 장벽이 남성과 여성의 양성 평등에 기초하여 변화해간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만화계의 장벽은 브리티쉬 오픈에서 여성 골프 선수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만큼이나 높다. 어제와 그제 머리맡에 놓고 읽은 두 권의 만화책은 나에게 남성을 위한 순정만화도 존재하는구나 하는 편견 아닌 편견, 스테레오 타입적인 깨달음을 얻은 것이 있다. 그것은 『최종병기 그녀』의 작가 ‘다카하시 신’의 초기 단편집 『좋아하게 될 사람』과 『안녕, 파파』 두 권이었다. 『최종병기 그녀』의 첫 장을 넘겼을 때 나는 다카하시 신이란 작가가 분명 여자일 거라 생각했다. 그러다 잠시 후 남자일 거라고 생각을 수정했다(실제로도 '남자'였다). 그런 착각을 했던 까닭은 다카하시 신의 독특한 그림체에서 비롯된 것이다. 만약 남성적 문체가 존재한다 할지라도, 분명 만화에 존재하는 남성적 그림체보다 명확하진 않을 것이다. 그만큼 만화에 있어서 남성적 그림체와 여성적 그림체는 확연히 구분될 만큼 달랐다.

그 차이는 고우영 『삼국지』의 그림체와 이가라시 유미코의 『캔디캔디』의 그림체가 다른 것처럼 확연한 것이다. 물론 국내의 일부 여성 작가들(『테르미도르』의 김혜린 같이)이 프랑스 혁명 과정을 다루는 만화를 그리거나, 이케다 리요코의 『베르사이유의 장미』와 같이 그간 남성적 주제로 알려져 왔던 역사 속의 권력 투쟁, 혁명을 다룬다 하더라도 그림체에 있어서만큼 전형적인 그림체를 유지하는 편이다. 가령 얼굴 전체의 절반을 차지하는 눈동자, 치렁치렁하는 머리카락, 기형적으로 긴 팔다리 등등 말이다. 물론 다카하시 신의 그림체는 기존의 여성 순정만화체 그림과는 또 다르다. 어딘가 비어 있는 듯 남아있는 여백, 아마추어적인 느낌이 물씬 나는 흑백 모노톤과 끝까지 이어지지 않을 것처럼 가늘게 이어지는 선, 스크린 톤은 거의 생략하는 등 적게 표현하여 오히려 상큼하고 신선한 느낌이 인상적인, 어딘가에서 본 듯한 정겨움이 묻어난다. 마치 수업 시간에 담임선생의 눈길을 피해 공책에 몰래 그린 만화의 캐릭터 같은 느낌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만화의 그림체가 남성적인 느낌은 아니다. 물론 등장하는 여성의 팔다리가 기형적으로 길게 늘어나있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남성의 근육은 사라지고, 여성적인 선은 남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왜 이 작가가 금방 남성이라고 짐작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캐릭터 표현에 있어서 숨길 수 없는 남성적 시선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다카하시 신의 대표작 『최종병기 그녀』를 보자. 제목부터 참 과감하다. "최종병기 + 그녀"라니, 대한민국에서 자라난 평범한(?) 남자 아이들은 엄마에게서 받은 혹은 엄마 몰래 숨겨둔 용돈을 챙겨 가장 먼저 군것질을 하고 조금 지나서는 건프라를 사거나 마크로스, 밀리터리 플라모델들을 조립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흘러 그 아이는 중학생이 되고, 형, 누나, 혹은 친구네 집에서 일본 애니메이션 과월호를 읽거나 거기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를 발견하여 그에 대한 설정자료집을 사거나, 복사하고 인터넷으로 이미지들을 수집한다. 이때의 최종병기란 무릇 거대로봇군단이거나 그도 아니면 뛰어난 능력을 지닌 뉴타입 정도는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녀라니 게다가 그녀는 이런 말이나 지껄여대는 소녀다.

"왜 나는 당신에게 상처만 입히는 걸까.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여자라서 미안해"

주인공 소녀는 가냘픈 몸에 어울리지 않게 커다란 유방을 달고 다니며 유사시엔 앞가슴을 미사일처럼 발사하는 아프로다인이나 비너스적인 캐릭터는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만화가 다른 작품들에 비해 여성주의적인 것은 절대로 아니다. 아름답고, 소박하게 그려지는 만화체에 비해 여성의 신체를 절단하고, 개조하여 병기화해가는 과정 자체는 여성의 신체에 대한 결정권을 여성 자신이 소유하지 못하고 소외당한다는 점에서 별반 다르지 않다. 어쨌든 금방이라도 교실 뒤에 웅크리고 있다가 다가와서 쪽지 한 장을 놓고 수줍게 교실 뒤로 달려 나갈 것 같은 소녀다. 누군가 알려주지 않으면 쟤랑 나랑 같은 반이었어? 하고 되묻고 싶을 만큼 조용하고 눈에 띄지 않는 소녀다. 요새 경제 이야기하면서 다들 성장 동력, 성장 동력하는데, 우리 삶에 있어서의 성장 동력은 과연 무엇일까?


"우리도 한 때는 뭐뭐 했다"는 식의 대사나 후일담을 늘어놓는 나이가 되어간다. 어떤 사람은 군대 시절 이야기를, 어떤 이는 대학 시절의 이야기를, 그리고 그보다 더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그리고 나의 선배 뻘 되는 386 세대들(엄밀히 말하면 나도 그 끄트머리쯤 있는지도 모른다. 70년생, 89학번, 30대)이 이제는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다니는 지금, 나의 유년 시절은 어디쯤에 머물고 있을까? 나는 요새도 밤마다 누군가에 쫓기는 꿈을 꾼다. 대개 이런 꿈의 할머니 식 해몽은 '키 크느라 그런다'는 것이다. 자, 그대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라. 정말 즐거웠는가? 아니면 고통스러웠는가? 누구나 자기보다 어린 나이의 친구들에게는 내 과거는 이랬었지, 이렇게 화려했거나 이렇게 고통스러웠거나 상관없이 과장하게 된다. 말할 때는 금방 과거의 자신을 잊어버리지만 돌아서고 나면 누구보다 자신의 과거를 잘 기억할 수밖에 없다.

과연 아름다운 유년만이 존재했을까? 『최종병기 그녀』의 두 남녀 주인공(슈이치와 치세)이 만난 세계는 도대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전쟁에 휘말려 있고, 결국 치세는 최종병기로 개조된다. 과연 그녀는 나는 아직도 치세 그대로인가를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 다카하시 신은 전쟁에 대해 이야기하고, SF적인 요소들을 차용하는 듯 보이지만 이에 대해서는 거의 전혀라 할 만큼 설명하지 않는다. 치세가 어떻게 최종병기가 되었는지 실제로 그녀가 최종병기의 위력을 지녔는지도 알 수 없다. 그런 부분은 죄다 건너뛰고 있기 때문이다. 『최종병기 그녀』에서 <에반게리온>이나 기타 SF물들의 디스토피아적 전망을 보고자 하는 사람들은 크게 실망할 수밖에 없다. 종종 이런 부류의 SF물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작가가 만들어 논 가상세계에 깊이 빠져들어 이것이 과학적으로 가능한가? 혹은 그 설정들을 달달 외우는 것을 취미로 한다. 하지만 『최종병기 그녀』는 그런 류의 만화가 아니다. 이 작품은 남성들을 위한 순정만화이기 때문이다.



엄밀하게 말해서 이 만화의 여주인공 치세는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작품 『롤리타』와 크게 다르지 않으며, 다카하시 신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대개의 여성 캐릭터들은 종종 남성들보다 강인하지만(특히, 성적 접촉을 두려워하는 남자들에게는 유달리 강한 면모를 보인다는 자극적이라는 측면에서) 그 외의 경우엔 무척이나 순종적이고, 다소곳하다. 물론 이 부분에 남성 성 판타지를 자극한다고 한 마디 해놓으면 아주 편하지만, 그건 또 너무 쉬운 접근법이다. 다카하시 신의 작품 세계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요소들 중 하나는 분명 성(sex)의 문제이다. 따지고 보면 "어린이"와 "어른"을 가르는 구분 근거는 섹스다. 어른이란 말의 어원이 되는 '어르다'란 말 자체에 이미 '섹스하다, 남녀가 교합하다'는 뜻이 있다. 결혼, 즉 공인된 섹스는 성인식의 최종 단계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어린이가 어른이 되는 성장 동력 혹은 넘어서야 할 고개들 중 하나는 분명 '섹스'다. 『최종병기 그녀』는 일종의 성장소설적인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이 작품에서 성이 전면에 등장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런 요소들은 군데군데 적절히 깔려 있다. 아무리 십대 청소년들이 까질 대로 까졌다 한들 벌건 대낮에 러브호텔을 당당하게 들락거리는 어른들의 성과 같을 수는 없지 않은가. 입으로는 숱한 성경험을 자랑하는 녀석들의 태반이 실제로 여자 아이들 앞에서는 얼굴이 붉어지고 호흡이 가빠져서 말도 제대로 못하는 것을 본 경험들 역시 남성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다. 그것은 친구들과 '오줌멀리 누기' 경쟁에서조차 지고 싶지 않은 남성들의 괜한 경쟁 심리가 만들어낸 우스운 결과다. 



난 정말 어렸을 때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고, 어른이 되었다고 느꼈을 땐 뒤돌아보고 싶지 않았으며 그 뒤론 줄곧 어서 시간이 흘러 자연사하게 되길 바라고 있는 중이다. 어른들의 세계, 그곳에 어떠한 희망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른들의 세계는 모든 것이 부정해보였고, 부조리했다. 학교도 전쟁터였지만 사회는 그보다 더욱 악랄하고 끈질긴 전쟁터라는 것을 경험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언제 누가 시작했는지, 언제 어떻게 끝날지도 모르는 비밀스러운 전장에서 소리 소문 없이 사람들이 낙오하고 죽어갔다. 이런 남자 아이에게 최종병기는 누구였을까? 그네들이 매달릴 수 있었던 최종적인 지지대는 누구였을까? 친구들과의 우정 아니면 사랑이다. 우리들에게 사랑은 언제나 지독하고 치명적이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정당한 혼란일 수밖에 없다. 치세와 슈이치가 왜 어른이 되어감에 따라 주변의 사람들이 죽어 가는가? 왜 치세의 전투경험이 축적되어갈 수록 그녀의 자아는 붕괴되고, 인간성이 상실되어 가는가? 왜 그녀가 사회에 익숙해질수록 자신의 인간성이 파괴된다고 느낄까? 불행하게도 그것이 성장이기 때문이다. 흔히 영화비평가들이 지난 1980년대의 호러 무비 혹은 슬로터 무비들을 평할 때 십대의 성적 방종에 대한 기성세대의 두려움을 표현한 것이라고 말한다. 영화 <스크림>에 등장하는 호러 무비의 원칙처럼
"첫경험을 한 여자는 반드시 죽는다." 혹은 반드시 죽어야만 한다. 


사랑하고 싶다는 지극히 당연한 갈망 때문에 죽어야 한다는 것은 비참한 결과이지만, 마치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서부전선 이상 없다』의 마지막 장면처럼 우리는 매우 정직하고 솔직하게 이야기하지만, 이야기하는 척하지만 참호(우리의 성격갑옷) 밖으로 방심하여 고개를 내밀면 순식간에 저격당하고 만다. 자신의 욕망, 자신의 이상을 효과적으로 억누르지 못하는 사람은 평생을 가도 바보취급 밖에 받지 못한다. 겉으로 드러난 상황이 전쟁이란 것을 무시해버린다 하더라도 실제 고교생의 생활이 절박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우리들 중 누가 있는가? 그들의 상황이 혼란스럽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이들이 누가 있는가? 몸은 이미 성장했지만 이들의 사랑은 공공연하게 인정받을 수 없는 것이다.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지만 사회의 눈초리는 차갑기만 하다. 사랑하면 상처를 주게 된다. 그들에겐 이 세계 자체가 혼란이고, 혼돈이다. 관계를 맺는 일에도 연습이 필요한 법이고,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아의 무게를 견뎌낼 수 있어야 한다. 스스로의 자아를 견뎌낼 수 없는 사람이 타인을 사랑한다는 것은 분명 매우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불완전한 자아로서 결핍된 상태에서 만나 사랑한다. 관계를 형성할 수는 있으나 이런 관계가 오래도록 지속되기란 매우 어렵다. 이들의 사랑이 혼돈스럽고, 때로 자기 파괴적일 수밖에 없는 까닭은 거기에 있다. 나는 이 만화책을 도서대여점에서 읽었는데, 실제로 고등학생이 빌려가는 것을 거의 보지 못했다. 대개는 첫사랑의 열병이 지나갔을 법한 나이의 사람들이 도리어 열광하는 것을 익히 보아왔다. 그들에겐 이들의 관계를 제법 객관적으로 바라볼 여유가 생긴 것일까?


그러나 어쩌겠는가? 우리는 이미 '길 위의 인생(life on the road)'인 것을, 어차피 길을 가야하는 사람에겐 터널도, 길의 일부이일 수밖에 없다. 괴테는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에서 이렇게 말한다. "오류는 오로지 방황을 통해서만 치유된다." 좋은 성장 소설의 공통점은 어린 시절이 아름다웠다고 섣부르게 회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쨌든 끝내 백조가 될 수 없는 미운 오리 새끼들도 있기 때문에…. 슬프게도 어른이 된다는 건, 백조가 아니란 사실을 자각하고, 인정하는 고통스러운 통과의례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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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게도 원래 이 리뷰는 다카하시 신의 단편집 『안녕, 파파』와 『좋아하게 될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고 했던 것인데... 방향을 잘못 잡아 버렸다. 결과적으로 그냥 『최종병기 그녀』를 중심으로 쓴 다카하시 신의 작품론처럼 되어 버렸다. 어쩜 좋냐? 흐흐, 여러모로 우습게 되었다. ^^ 그럭저럭 수준작은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긴 하지만 <최종병기그녀>는 나에게 대단한 감동을 준 만화가 아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만화"도 전권 다 가지게 되었고, OVA 애니메이션 DVD도 소장하고 있는데다가 작가인 다카하시 신의 초기단편집들까지 소장하게 되었다. 어쩌면 이것이 인연일지 모르겠다. 치세!(흐흐, 게다가 지금 트위터의 아이콘으로 사용하는 것이 <최종병기 그녀>의 상대역이자 나레이터인 '슈'다. 치세의 사랑을 한껏 받은 덕분에 결국 지구멸망의 날까지 살아남은 그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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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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