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빛낸 정상의 앨범 - 임진모/ 창공사(1996)


내 나름대로는 정리할 건 정리하고 넘어가자는 차원에서 오래전부터 빚진 책들에 대해 빚을 갚는다는 생각에서 나름의 정리작업으로 하고 있다. 이 책 그러니까, 임진모의 "시대를 빛낸 정상의 앨범"은 오랫동안 내 책꽂이에 늘 꽂혀있던 몇 권의 책 가운데 하나다. 세광음악출판사에서 나온 "팝아티스트대사전" 옆자리에 늘 함께 한 책인데, 내가 늘 아쉬워하는 것은 이런 류의 책들이 쌓아올린 작업들은 나름대로 한 시대를 정리하는 중요한 지적, 학문적 작업일 수 있는데, 어째서 수정증보판이 나오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시대를 빛낸 정상의 앨범"은 일종의 문화사, 서구 대중음악사를 시대별로 정리하는 작업이다. 이 책의 부제 "음반으로 보는 팝과 록의 역사"는 이 책의 내용을 정의하면서 동시에 이 작업이 대중음악사의 한 부분을 연구하는 기초적인 자료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책이 지난 1994년에 출간되었으니 아무리 가깝게 잡아도 이미 10년 전의 음악사밖에 수록할 수가 없다. 즉,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음반으로 보는 팝과 록의 역사 가운데 가장 최근사인 90년대 중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이르는 시기는 공백으로 남아있게 된다는 뜻이다. 물론 대중음악을 다루는 웹진들이 존재하고, 그런 작업들을 통해서도 이런 작업들은 진행되고, 축적되고 있겠지만, 책으로 엮는 것과 인터넷상으로 둥둥 떠나니는 작업과는 일정한 차이를 갖는다.

 

"시대를 빛낸 정상의 앨범"이 담고 있는 콘텐츠는 1950년대 발원해서 1990년대 초반에 이르는 서구 대중음악의 역사를 100장의 앨범들을 통해 시대사와 연관시켜 가며 살펴본다는 점에서 다소 과정을 섞어 말하자면 아르놀트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대중음악의 사회사"로 치환한 작업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 책이 하우저의 작업에 비견되기 위해서는 좀더 복잡한 학문적 검증 절차와 심도 있는 비평 작업이 필요한 것이지만 말이다. 임진모는 서문에서 "대중음악은 시대를 반영한다. 또한 대중음악은 음반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그 형식과 내용을 구체화한다. 따라서 음반에는 단순히 한 아티스트나 그들의 음악뿐 아니라 그가 몸담고 있는 시대와 대중의 정서가 담겨 있다. 음반만큼 그 시대상황과 직결되어 있는 수단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런 관점이 중시되다 보니 소위 음악적(이 말은 미학적이란 말이기도 하다) 관점에서 보았을 때 당연히 명반의 범주에 들어야 할 음반들보다는 그 시대의 표상 내지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는 음반을 위주로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임진모는 마빈 게이(Marvin Gaye)의 앨범 "What's Going on"을 이야기하면서 단지 이 앨범의 음악적 가치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당신 말야. 오늘 신문 봤어? 켄트 주립대학에서 죽은 학생들에 대한 기사 읽었지? 켄트 사태는 정말 어처구니가 없어. 잠도 못자고 계속 울기만 했다니까. 이제 달이라든지 유월 어쩌구하는 3분짜리 노래를 부른 건 싫어."

 

마빈 게이는 모타운 레코드사의 작곡가인 알 클리블랜드와 레날도 벤슨이 "What's Going on"을 써 왔을 때 예전처럼 신변잡기식 노래는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마빈 게이는 본래 흑인 프랭크 시내트라를 꿈꾸었던 가수였다. 당시 모타운은 물론 대개의 음반사들은 작곡가나 기획자들이 음반 제작의 주도권을 쥐고 있었으므로 자의식을 가진 아티스트를 원치 않았다. 마빈 게이는 이들과도 투쟁해 자신의 앨범을 세상에 내보냈고, 이 음반은 800만장의 판매고를 올렸다. 젊은 날 흑인 프랭크 시내트라를 꿈꿨던 마빈 게이는 고통을 노래하고, 기존 질서에 저항하는 흑인 소울로 되돌아와 성공했다. 이후 70년대 중반까지 계속 인기를 얻다가 70년대 후반부터 약물 문제와 우울증으로 괴로움을 겪었다. 이후 그는 모타운에서 20년 동안 활동한 뒤 컬럼비아로 옮겨 앨범 "Midnight Love"(1982)를 발표하며 재기에 어느 정도 성공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빈 게이는 아버지와 다투다 총에 맞아 사망했다.

 

임진모의 책은 좀더 깊이 들어가길 원하는 독자에겐 다소 얕고, 그저 음악만 즐기고자 하는 이에겐 너무 깊은 이야기를 다룬다. 마빈 게이가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야? What's Going on?"라고 반문했던 건 잠시였다. 유럽의 68혁명은 잠시 폭풍으로 지나갔고, 미국의 반전운동은 히피들의 마리화나와 섹스 속에서 일시적인 일탈에 그쳤다. 마빈 게이 역시 다시 개인의 고통과 에로티시즘으로 침잠해들어갔다. 시대는 대중문화가 진보적이거나 저항적인 메시지를 담는 걸 별로 원치 않는 것으로 보이는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임진모의 "시대를 빛낸 정상의 앨범"은 대중문화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이 이제 막 고조되던 초기의 성과물이다. 그러므로 지금의 관점에서 보자면 많이 뒤처지거나 얕게 여겨지는 부분이 있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이 나름의 역할을 충실히 했다고 생각한다.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고 대중음악과 사회의 연관성에 대해 새삼 생각해보게 만들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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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월드뮤직:멀리서 들려오는 메아리  - 서남준 | 대원사(2003)


서남준의 월드뮤직 - 멀리서 들려오는 메아리…』는 신현준의 신현준의 World Music 속으로와 거의 같은 시기에 출간된 책이다. 나는 두 책을 거의 비슷한 시기에 주문해서 읽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두 책 가운데 어느 책의 우열을 가리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만, 이 한 가지는 이야기해줄 수 있는데 신현준의 책보다는 서남준의 책이 이 방면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먼저 접하는 게 순서가 될 듯 하다. 이유는 이 책이 좀더 쉽게 저술되어 있기 때문이다.

서남준은 기독교방송 FM에서 <서남준의 월드뮤직> 진행자이기도 한데, 이 책은 각 지역의 음악이 발생하게 된 원인과 배경을, 각각의 대표적 뮤지션을 중심으로 풀어나가고 있다. 그래서 신현준의 책보다 좀더 쉽게 느껴지고, 실제의 난이도 역시 입문서 수준으로 맞춰져 있다. 이 책은 크게 2개의 구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하나는 '월드뮤직, 멀리서 들려오는 메아리' 집시 음악부터 시작해서, 요들, 파두, 플라멩꼬, 렘베티카, 칼립소, 삼바와 보사노바, 탱고에 이르는 각 지역별 음악의 출생 배경부터 현재에 이르는 과정을 다룬다. 다른 하나는 월드뮤직의 정신을 상징할 수 있는 인물들을 중심으로 한  인간은 노래로 싸울 수 있는가
편인데, <릴리 마를렌>이란 곡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시작해서, 마를레네 디트리히, 미키스 데오도라키스, 멜리나 메르꾸리, 나오미 셰메르, 미리암 마케바, 빅또르 하라, 아따우알빠 유빵끼, 메르세데스 소사 등이 그들이다.

우리가 흔히
'월드뮤직'이라고 통칭해서 부르긴 하지만 '월드뮤직'은 하나의 장르가 아니다. 월드뮤직의  개념 자체가 사실은 혼란을 부추기는 측면도 있다. 우선 월드뮤직이 만들어진 것은 하나의 마케팅 범주로서 생겨난 개념인데다가 영미권을 제외한 타지역에서 생산된 대중음악을 지칭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드뮤직이란 통칭되는 음악 갈래는 상업적 유통망에 의해 영미팝(내지는 세계화)의 하위 범주로 끊임없이 포섭되어가면서 동시에 이에 대한 저항의 진지로 평가되곤 한다. 월드뮤직이 서구 대중음악의 시선을 잡아끌기 시작한 것은 폴 사이먼 같은 이들이 <Graceland>를 통해 아프리카 음악 형태를 자신의 음악 세계 속에 삽입하면서 부터였다. 

월드뮤직을 흔히 민속음악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실제 월드뮤직이 지역색을 드러내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민속음악
(국악의 예를 상정해놓고 보았을 때) 같이 인위적으로 보존되고, 보존하려는 음악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월드뮤직을 떠올릴 때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은 이것이 대중음악이란 사실이다. 그것도 때로 영미권 팝과 서로 호응하거나 배제하면서 한 지역의 정체성을 어느 정도 반영해가며 만들어지는 대중음악이란 거다. 그런 까닭에 오늘날의 월드뮤직은 순혈의 음악이 아니라 일종의 퓨전, 하이브리드된 대중음악의 갈래라 할 수 있다. 

이것이 월드뮤직에 대한 냉정한 평가라면 서남준의
『월드뮤직 - 멀리서 들려오는 메아리…』이 이런 의견에 적극적으로 동조하고 있지는 않다. 서남준이 포인트를 맞추고 있는 것은 그것이 비록 상업적인 대중음악으로 지역적 정체성을 일부 반영하고 있는 하이브리드된 대중음악이라 할지라도, 그 자체로 이미 영미 팝이란 주류 대중음악에 저항하는 몸짓을 보이는 것이란 점이다. 저자는 폴 사이먼과 아트 가펑클의 <엘 콘도르 파사>의 예를 들어 설명한다. 우리가 흔히 듣기 편한 이지리스닝 계열의 포크 뮤직으로 분류하곤 하는 <엘 콘도르 파사>는 안데스 민요로, 스페인 침략군에 저항하던 투팍 아마루를 그리는 인디오들의 한이 담겨 있다. 서남준의 시각이 특히 돋보이는 대목은 1부보다는 2부이다.

그리스의 월드뮤직을 대변하는 두 인물 미키스 테오도라키스(Mikis Theodorakis)와 멜리나 메르꾸리의 예를 보자. 메조 소프라노 아그네스 발차의
<내 조국이 가르쳐 준 노래(Songs My Country Taught Me)>를 통해 우리들에게도 잘 알려진 <기차는 7시에 떠나네>의 작곡자 미키스 테오도라키스는 단순한 음악가가 아니었다. 영화음악을 즐겨 듣는 이들이라면 <제3의 사나이 The Third Man>(1949년)와 안소니 퀸 주연의 <그리스인 조르바>, 멜리나 메르쿠리 주연의 <죽어도 좋아(페드라)>, <형사 서피코>,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의  작품에서 흘러나오던 그의 음악을 떠올릴 수 있다. 그에 대해 이 정도만 알고 있어도 상당히 많이 알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그가 지난 2000년 노벨평화상 후보였다는 사실을 혹시 아는지 모르겠다. 1925년생인 테오도라키스는 음악가로서 뿐만 아니라 운동가로도 주목받은 인물이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일어난 그리스 내전 중에 좌파로 활동했고, 그런 이유로 결국 조국을 떠나 프랑스에 거주하면서 음악 활동을 해야만 했다.



▶ 미키스 테오도라키스(Mikis Theodorakis)

테오도라키스는 1961년 조국 그리스로 돌아와 <희랍인 조르바> 등의 음악을 작곡하지만 1967년 4월 발생한 파파도풀로스의 우익 군사 쿠데타로 인해 70년까지는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 그의 모든 음악은 그리스에서 금지곡이 되었다.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이 제작한 정치적인 영화 <
제트(1968년)>의 음악은 감옥에 갇힌 테오도라키스가 외국에서 망명생활을 하는 동안 작곡한 곡들을 이용한 것으로 그해 영국 아카데미는 감옥에 갇힌 테오도라키스에게 음악상을 안겨주기도 했다. 재미있는 건 그가 좌파라는 이유로 그리스에서 금지곡이 된 건 이해한다 손 치더라도 우리에게까지 그의 음악은 한동안 금지되었다는 사실이다. 당시 국내 라디오에서는 그의 음악들을 즐겨 방송해주었는데 그의 정치 성향이 알려지면서 어느 순간부터 그의 음악들은 금지곡이 되었고, 5공 시절에는 영화 <그리스인 조르바>의 음악이 삭제된 채 방송되는 우스꽝스러운 일도 있었다. 

80년대 중반에는 그리스 출신의 샹송 가수이자 테오도라키스와 가까운 친구 사이였던 조르주 무스타키가 방한했을 때는 자신의 앨범에서 테오도라키스가 작곡한 곡들이 모조리 삭제된 것을 알고 항의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우리에게 영화
<페드라>로 잘 알려진 멜리나 메르쿠리 역시 1967년 그리스 군사쿠데타 이후 군사독재정권과 맞선 여류정치가로도 유명하다. 군사정권에 의하여 그리스국적과 재산을 몰수당한 그녀는 임시로 스위스 국적을 얻어 프랑스에서 망명생활을 하기도 하였다. 망명생활중에 몇 번 암살당할 위협에 처하기도 하였으나, 훗날 그녀는 그리스 문화부장관을 역임하며 여러 일화들을 남기기도 했다. 국민배우니, 국민가수란 말이 남발되지만 국민가수니, 배우니 하는 말은 이런 이들을 위해 아껴둬야 할 말이다.


▶ 콘서트장에서 열창하고 있는 미리암 마케바(1978)

우리에겐
<바나나보트송>이나 <페어웰 자마이카> 등 칼립소의 황제로 잘 알려진 해리 벨라폰테가 1960년대 미국의 인권운동을 위해 거리 시위에 나선 인물이란 사실이나, 카네기홀 음반 발매 수익금 전액을 유네스코에 기부한 이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지 못하다. 또한 그는 남아공 출신의 무명 가수 미리암 마케바(Miriam Makeba, 훗날 아프리카의 디바란 칭호로 더 널리 알려짐)를 미국의 음악 시장에 소개(An Evening with Belafonte/Makeba)하면서 남아공의 인종차별 정책을 함께 강도높게 비판했다. 이외에도 피노체트의 군사쿠데타에 희생된 빅토르 하라, 아르헨티나의 메르세데스 소사 등에 대한 이야기는 월드뮤직에서 어째서 그토록 강렬한 저항의 냄새가 나는지 알려줄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를 '롬'이라 칭하면서 로마인의 후예라고 주장하는 집시 음악이 오늘날 고스란히 예전의 모습 그대로 전해지기보다는 확실한 팝의 길을 걸어가는 것처럼 주류 음악 시장에 편입되기 위한(이는 서구인의 귀에 맞추기 위한이란 말과도 같다) 이종교배 속에서 집시 음악의 전통은 날로 시들어가고 있는 현실은 우리에게 월드뮤직의 진정한 메아리가 어째서 아직도 멀리서 들려오는지 새삼 깨닫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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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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