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서양 20세기사 -
박무성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2년


세기말이었던 지난 2000년 무렵 나는 혼자서 이런저런 궁리 끝에 내나름으로 지난 20세기 세계사적으로 의미가 있었던 혹은 세계를 움직인 10대 사건을 정리해보기로 결심했었다. 생각외로 이런 궁리는 재미있다. 오늘 하루 내게 일어난 일 가운데 재미있었던 혹은 재미와 상관없이 기억할만한 일 3가지를 정리해보는 일, 한달 동안, 아니면 1년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10대 사건을 언론사에서 정리하는 것처럼 혼자 해보라. 그렇게 해서 막상 정리된 사건들을 보면 정말 이 한 해동안 이렇게 많은 일이 있었던가? 싶기도 하고, 저 일이 올해 있었던가? 싶기도 하다.

내가 궁리 끝에 정리해낸 "20세기, 세계를 움직인 10대 사건"은 다음과 같았다.

1.유럽중심의 세계통합과 그 유산들
2.제1차 세계대전과 유럽 제국주의의 몰락(새로운 패권국가로서 미국의 등장)
3.사회주의 혁명과 전체주의의 등장
4. 대량생산·소비 사회의 도래와 경제 대공황
5. 제2차 세계대전과 핵시대의 도래
6. 팍스 아메리카나와 유럽의 재건
7. 제3세계와 청년운동
8. 환경파괴와 여성해방운동
9.대중사회의 도래와 정보기술혁명
10. 현실사회주의 몰락과 세계화
 
한 세기를 움직인 사건을 정리해보니 소위 '역사의 맥락' 이 잡히는 것 같기도 했다. 이를 다시 주제별로 분류하고, 이와 관련해 읽어볼만한 책 10권씩을 선정하고, 이것을 스터디한 뒤에 내나름의 생각을 원고지 100매 내외로 정리해보려는 야무진 계획을 세웠었다. 물론 2001년이 시작되기 전에 이 모든 것(내가 나에게 내어준 숙제)을 마무리하리라 마음 먹었지만, 모든 면에서 역부족이란 분루를 삼키며 물러났었다.

박무성 단국대 명예교수의 이 책 "격동의 서양 20세기사"는 그런 점에서 나에게 중요한 참고서적 중 하나였다. 역사를 기술하는 방식에서 역사가의 몫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 역할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는 역사학계의 오랜 화두 가운데 하나이다. 물론 역사서를 읽는 독자들의 입장에서도 에세이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많이 녹인 책을 읽을 것인지, 아니면 랑케식으로 실증에 치중해서 단순히 역사적 사실관계를 추적한 책을 읽을 것인지... 그렇다면 이 둘 가운데 어느 것이 옳은 방식일지, 어느 것이 보다 유익할지, 어느 것이 보다 재미있을 것인지는 고민해볼 만하다.

내 체험에 의거해 이야기해보자면 둘 다 읽는 것이 가장 좋다. 예를 들어 부부 혹은 애인 사이에 다툼이 있는데, 나는 이들 양자와 친분이 있다고 하자. 이쪽의 이야기와 저쪽의 이야기를 번갈아 들어보면 다들 나름의 입장이 있기 마련이다. 이유없는 무덤 없다는 격언이 증명하듯 모든 행위에는 그 이면에 도사린 원인이 있다. 이럴 경우 어느 일방의 이야기만 듣노라면 입체적인 모습은 그려지지 않는다. 만약 영국이 도발한 어느 전쟁에 대해 알고 싶다면 영국 이야기만 듣는 것으로는 부족하단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았을 때 미국인들이 저술한 미국의 범죄 혹은 파렴치한 역사 이야기를 미국인 저널리스트들의 기술로 읽는 것은 일정한 한계를 노정하기 마련이다. 이런 한계를 보정하기 위해서는 굳이 국적에 의하지 않더라도 다양한 관점을 알기 위해서라도 여러 종의 책을 읽는 것은 필요한 일이 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박무성 교수의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유익하고, 일정한 한계를 지닌다.
물리적인 시간으로서의 20세기는 분명 1901년에 시작해서 2000년에 종료되었지만, 역사적으로 20세기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를 놓고는 아직도 많은 이견들이 있다. 어떤 이는 대영제국의 마감을 알리는 빅토리아 여왕의 죽음 이후를, 어떤 이는 그로부터 훨씬 뒤인 제1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하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러시아 10월 혁명을 기점으로 잡기도 한다. 이는 역사를 기술하는 이의 관점을 어디에 두고 있는가를 묻는 일이기도 하다. 박무성 교수는 이 책의 시발점을 제1차 세계대전으로 놓고 있는데, 이는 저자가 독자들에게 은연중에 보내는 일종의 메시지일 수 있다. 다시 말해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이야기할 20세기의 역사는 서양을 중심으로 한 정치학적인 접근이 될 것이며, 현실 정치가 서로의 세력 균형을 어떻게 잡아가는가? 균형의 파괴가 역사적으로는 어떻게 드러나는가? 를 중심으로 기술할 예정이란 뜻이 된다.

그것은 전체 29장으로 되어 있는 이 책의 소제목들만 살펴보더라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인류사를 격변시킨 제1차 세계대전, 유익한 베르사유 체제의 성립과 붕괴, 비운의 바이마르 공화국,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 ...(중략)... 동유럽의 자유화운동과 공산체제의 붕괴, 독일의 통일과 그후, 북유럽 및 남유럽 국가들의 민주화, 세기말엽 영국의 변혁, 1990년대의 미국, 유럽의 변혁, 20세기의 서양문화, 서양 20세기사의 장을 닫으며"
서양의 20세기를 문화적인 관점에서 다룬 부분은 실질적으로는 맨마지막에 해당하는 28장에 배치해두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을 통해 서양의 문화나 예술을 이해하기 위한 필요로 접근하는 이에겐 그다지 도움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이 지닌 미덕은 그런 부분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분야를 한정시킨 덕에 이 책은 몇 가지 장점을 지닌다. 우선 지리학적으로 그 대상을 서양(미국과 유럽)으로 국한시켰다는 점, 주로 다룰 분야를 정치적인 부분으로 한정했다는 점이다. 그 결과 이 책에서는 그간 우리가 쉽게 접하기 어려웠거나 정리하기 어려웠던 가까운 근과거의 유럽과 미국을 발견할 수 있고, 미국과 유럽이 주고 받는 체스게임의 관전자로 동참할 수 있게 되었다.

전체 29장을 다시 구분해보면 1장부터 9장에 이르는 부분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부터 시작된 유럽의 몰락과정을 추적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을 실제로는 동일한 목적과 원인으로 시작된 하나의 전쟁으로 파악하고 있다. 동일한 목적이란 유럽의 통합 - 물론 그 안에는 기존(식민지 시장을 이미 확보한) 공업국가인 영국과 프랑스, 신흥 공업국가인 독일의 대립이라는 경제적 요인들, 신흥강국으로 부상하는 미국을 견제하며 세계적 패권국가로서 유럽을 지속시킬 - 필요성을 느낀 유럽 제국들이 힘의 균형이 아닌 통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벌어진 전쟁이란 것이고, 원인이란 이런 요인들이 민족주의와 결합하면서 서로 그것을 주도 혹은 견제하고자 했던 것을 말한다. 영국과 프랑스는 균형과 견제를, 독일은 통합을 주장한 셈인데, 여기에 러시아 혁명 이후 등장한 사회주의 세력에 대한 서구 자본주의 세력의 통일 역시 중요한 몫을 한다. 히틀러가 마지막까지 구원의 희망을 찾고자 했던 부분도 여기에 있다.

제10장부터 제19장까지는 크게 보아 서구의 냉전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진정한 의미에서 제2차 세계대전은 1939년 9월 1일 독일의 폴란드 침공에서 시작하여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으로 끝난 전쟁이 아니라 1947년 3월 트루먼 독트린 이후 시작되어 1991년 8월 19일 소련의 보수강경파에 의한 군부 쿠데타 실패로 끝난다. 이 시기에 서유럽 일부 지역을 제외한 세계 각처에서는 전쟁, 무력분쟁, 군부 쿠데타, 민간인 학살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웠으나 궁극적으로는 전쟁 상황일 수밖에 없는 충돌이 지속되었고, 나는 이것을 명칭은 어찌되었든 또 하나의 세계대전으로 보고 있다. 제20장부터 제27장까지는 소련의 해체 이후 미.소의 양극체제에서 미국에 의한 일극체제로 변모해가는 과정과 동서냉전 시기의 막바지에 유럽이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다룬다.

앞서 말한 이 책의 장점은 20세기사에 대한 기술이 주로 미국과 소련의 냉전에 치중된 나머지 소홀해지기 쉬운 유럽에 대해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제11장 '영국의 변혁' 편에서 우리는 노동당과 보수당의 양당 체제가 확립된 영국과 대영제국의 붕괴 과정을 살필 수 있다. 제12장 '프랑스의 변혁' 편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의 패배자에서 나치 제3제국의 협력국, 그리고 다시 제2차 세계대전의 전승국으로 극적인 변환을 거친 프랑스가 어떻게 강력한 대통령 중심제 국가, 드골이즘의 '위대한 프랑스'가 되어가는가를 볼 수 있으며, 제13장 '독일.오스트리아.이탈리아의 대변혁'에서는 세계대전의 패자였던 이들 나라들이 마셜 플랜과 미국의 후원으로 소위 자유진영의 일원이 되는가를 살필 수 있다. 이외에도 제21장 '동유럽의 자유화운동과 공산체제의 붕괴', 제22장 '독일의 통일과 그후', 제23장 '북유럽 및 남유럽국가들의 민주화' 등은 우리가 쉽게 접하기 어려웠던 나라들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여기에서 한 가지 언급해둘 필요성을 느끼는 부분은 우리가 서양이라 하면 쉽게 느끼게 되는 지리적 인상과 상관없이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서양에서 '라틴아메리카'는 완전히 제외되었다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우리가 이 한 권의 책을 통해 20세기 서양정치사를 통달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책은 20세기 서양정치사를 이해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역사적 사실들을 충실하게 다루는 중요한 텍스트 구실은 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는 가까운 근과거를 다루기엔 여러가지 문제를 지닌다. 과거의 여러 사건들 가운데 당시로서는 하찮은 사건에 불과한 것이 결과적으로 중대한 사건으로 재해석할 필요가 생기기도 하고, 당대에는 중요한 사건이었음에도 후세의 평가에 따라서는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저자는 "역사는 새롭게 쓰여지는 것"이란 역사학의 중요한 화두를 다시 끄집어낸다. 물론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며 다소간의 불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관점이란 측면에서 서구와 비교해 동구 진영에 대해서는 보다 냉정한 시선을 유지한다는 점은 그에 대해 다소 동정적인 입장을 지닌 독자의 입장에서는 보다 객관적일 수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을 남긴다.

나는 제1차 세계대전+제2차 세계대전을 포함해 하나의 전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말을 했고, 진정한 의미에서 제2차 세계대전은 트루먼 독트린 이후 소련의 붕괴 사이에 있었던 냉전을 다른 의미에서 세계대전으로 보았다. 그렇다면 제3차 세계대전은 언제, 누구에 의해 시작할 것인가? 라는 의문을 품을 수도 있겠다. 그에 대한 나의 답변은 이렇다. 제3차 세계대전은 지난 2001년 9월 11일 이미 시작되었다. 물리적 시간으로의 21세기가 시작되었을 때 세계 인류는 이제야말로 인류가 번영과 평화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20세기 인류가 남긴 죄악의 유산들은 여전히 인류가 짊어질 형벌로 남았다.

* 참고로 한 말씀 드리자면 2000년 현재 프랑스의 국방비 총예산은 343억불이다. 미국은 프랑스의 국방비 총예산보다 많은 금액을 단지 무기개발연구비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미국을 제외한 세계 모든 나라의 국방비 총예산을 합친 금액은 미국의 국방비 총예산인 2,947억불 보다 적다. 여기에 더 추가해서 말하자면 우리가 자주국방의 상징처럼 숭앙해 마지 않는 이스라엘이 한해 사용하는 국방비는 94억불이고, 우리가 사용하는 국방비는 128억불이다. 물론 국민 1인당으로는 우리가 더 적다. 전세계 국방비의 1%를 감축할 수 있고, 그 비용을 기아구제로 돌릴 수만 있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상에서 굶주리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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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프리다 칼로 & 디에고 리베라 - 르 클레지오 지음 | 신성림 옮김 | 다빈치(2008)




"이 출발이 기쁜 것이 되기를,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를."
 - 프리다 칼로

 

발터 벤야민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에서 "석기 시대의 인간이 동굴의 벽에 그렸던 고라니 동물은 하나의 마법의 도구이다. 이것은 그 당시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무엇보다도 신령들(Geister)에게 바쳐진 것이다."라고 말했다. 벤야민의 이 말을 프리다 칼로에게 대입시켜 보면 그녀가 그렸던 스스로의 모습들은 고대 제의(Liturgia)의 주술들에 해당한다. 물론 이 작품들이 누구에게 바쳐진 것인가를 해독하는 건 우스운 일이며, 그 대상을 한정 짓는 행위 자체가 비난 받을 일일지도 모르겠다. 특히, 그 대상을 "디에고 리베라"라고 말한다면 말이다.
 
1925년 9월 17일 오후. 작은 체구에 짙은 눈썹을 지닌 한 소녀가 타고 가던 버스가 전차와 부딪히는 충돌사고가 있었다. 그녀는 수업을 마치고 남자친구 알레한드로(그는 프리다 칼로와 같은 학교를 다니던 오빠뻘 되는 친구로 프리다는 그에게 열렬히 빠져있는 상태로 스스로 그의 약혼녀 혹은 정부로 자임할 정도였다)와 함께 집에 돌아가던 중이었다.

 

버스가 전차와 부딪히는 사고는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지만 그 후유증은 평생을 두고 그녀의 삶을 짓이겨 놓았다. 가슴 속에 뜨거운 열기를 품었고, 놀라운 예술적 재능을 지닌 아리따운 소녀의 몸은 승객용 손잡이들이 달려 있던 쇠파이프에 몸 한복판을 관통 당했다. 파이프는 옆가슴을 뚫고 들어와 골반을 통해 이어진 질을 뚫고 허벅지로 나왔고, 의사들은 세 군데의 요추 골절과 쇄골 골절, 제3, 제4 늑골 골절, 세 군데의 골반 골절, 어깨뼈의 탈구, 그리고 오른쪽 다리의 열두 군데 골절과 비틀리고 짓이겨진 오른발을 발견했다. 한 달 동안 그녀는 석고 틀 속에 꼼짝없이 갇혀 지내야 했고, 퇴원 뒤에도 학교에 간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이 때부터였다.

 

침대에 누운 채 머리맡에 붙여놓은 거울을 들여다보며 그녀는 자신의 자화상을 그렸다. "나는 병이 난 것이 아니라 부서졌다. 그러나 그림을 그리는 동안만은 행복하다"고 훗날 술회했던대로, 몰핀으로도 달래지지 않는 고통을 달래는 작업이었다.

 

내가 프리다 칼로를 처음 알게 된 건 그리 오래지 않은 일이다. 그러니까 10년 안쪽의 일로 친구가 말해주기 전엔 알지 못했다. 나에게 멕시코 화가는 디에고 리베라를 비롯한 당시 멕시코 벽화운동가들이 전부였고, 디에고 리베라와 관련해 그의 부인으로 일자 눈썹을 한 여자 '프리다 칼로'란 사람이 있었다 정도였지, 특별히 이 여성 작가의 작품이라곤 감상해볼 기회도 없었다. 아마도 대개의 사람들이 나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다. 셀마 헤이악이 동명의 타이틀롤을 맡은 영화 "프리다"가 국내에 개봉되기 전까지는, 그 덕분에 갑자기 프리다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어 당시 우리 말로 인터넷에 올려진 거의 유일한 사이트였던 내 홈페이지에 프리다 칼로를 검색하다 찾아든 낯선 네티즌들 숫자가 상당했었던 기억이 난다.

 

이 책 "프리다 칼로 & 디에고 리베라"의 저자 " J.M.G. 르 클레지오"는 우리에게도 "조서(調書)"란 작품으로 상당히 알려져 있는 프랑스의 소설가다. 르 클레지오가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를 접하게 된 것은 그가 1970년대 멕시코의 대학에서 불문학을 가르치면서다. 그는 이곳에서 '비둘기와 식인귀(食人鬼)의 만남' 이라고 그 스스로가 표현한 대로 특별한 열정과 사랑, 증오로 똘똘 뭉쳐져 있던 이들 부부에 대해 관심갖게 된다. 르 클레지오는 프리다에게서 멕시코의 신화적 세계를 발견했다. "프리다는 고대의 멕시코였다. 그녀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창조적 영혼 그 자체였다. 신화의 피를 뒤집어 쓰고 지칠 줄 모르는 기억의 파도에 흔들리는 그녀의 영혼은 서구 세계에서 무언가를 배워오는 것이 아니라, 마치 자기 살 속에서 뽑아내기라도 하듯 스스로의 내부에서 아주 옛날부터 존재해 온 정신의 편린을 길어 올렸다."

 

책 제목이 명시하고 있는 것처럼 이 책은 "프리다 칼로""디에고 리베라"지, 디에고 리베라의 부인 프리다 칼로도, 프리다 칼로의 남편 디에고 리베라도 아니다. 비록 르 클레지오가 어느 한 쪽은 비둘기로, 다른 한 쪽은 식인귀로 말하긴 했지만 이들 부부의 어느 한 쪽의 부도덕함을 지탄하기 위해 이 평전을 쓴 것은 아니란 뜻이다. 예술사적으로 보았을 때, 부부 모두가 예술가일 때 비교적 행복한 결말을 맞이했다고 볼 수 있는 경우는 재즈나 블루스 가수들이 마약이나 빈곤, 차별로 인해 요절하지 않은 사례를 찾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예술가들의 이미지에 주술적인 이미지를 덧칠해 신비화시키고 싶지는 않지만, 최소한 내가 접해온 실제 예술가들의 삶 혹은 그네들의 정신 세계를 엿본 경험에 따르면 기본적으로 '부부'라는 일종의 계약 관계에 충실할 수 없는 정신의 소유자들이었다.

 

어떤 의미에서건 그들은 아르테미스의 알몸을 훔쳐 본 죄로 사슴으로 변해 사냥개의 습격을 받고 온몸을 갈갈이 찢기운 악타이온의 화신이자, 자연과 미풍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아내의 오해를 받아 실수로 아내를 죽이고 만 케팔로스 같은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타인을 자신에게 종속시키거나 소유할 수는 있어도, 타인에게 종속되거나 소유되긴 어려운 인물들이란 말이다. 그런 정신의 소유자들끼리 만난 경우, 거기에 같은 장르에 종사한다고 했을 때 그 관계가 쉽지 않을 거란 사실은 눈앞에 불을 보듯 뻔한 사실이다. 실비아 플라스와 테드 휴즈, 로댕과 까미유의 관계를 아는 이들이라면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와 반대의 경우도 적지 않아서 조지아 오키프와 알프레드 스티글리츠, 운보 김기창과 우향 박래현의 사례들도 있기는 하지만, 확실한 건 예술사에 이름을 남긴 수많은 사례들이 이런 경우를 더욱 돋보이게 할뿐이란 거다.

 

어린 프리다가 그를 최초로 만난 것은 1923년 디에고가 멕시코 시티 국립 예비학교에서 교육부가 주문한 프레스코 벽화 작업을 하고 있을 무렵의 일이었다. 디에고는 벌써 꽤 이름난 화가였고, 이미 복잡한 여자관계를 맺고 있었다. 이 당시 그의 연인인은 루프 마린이었는데 그녀는 디에고의 주변 여자 관계에 대해 매우 날카롭게 대응하고 있었다. 디에고가 벽화 작업을 하고 있는 동안 루프 마린은 그 주변에서 수를 놓고 있었는데, 그때 작업장이 주변이 소란스러워지면서 한 어린 소녀가 떠밀리다시피 해서 작업장 안으로 들어왔다. 이 날의 순간을 디에고는 이렇게 회상하고 있다. "그녀는 보기 드문  품위를 지녔고, 확신에 찬 모습이었다. 눈에는 기묘한 불길이 타오르고, 가슴은 봉긋 솟아오르기 시작하여 마치 아이 같지 않은 매력을 갖추고 있었다."

 

이 때 볼리바르 강당의 작업대 위에서 '인간의 창조'를 주제로 프레스코 벽화 초안을 잡고 있던 디에고는 자신을 지켜보던 소녀를 마주 보았고, 작고 어린 소녀 프리다는 이 거인에게 '그가 일하는 모습을 좀더 지켜보고 싶으니 작업을 계속하라'고 당당히 요구했다. 소설가 르 클레지오는『프리다 칼로&디에고 리베라』를 통해 디에고 리베라가 그녀와의 만남을 매우 신비로운 것이며 운명적인 사건으로 규정하려는 느낌을 받은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 이유를 어떻게 해석하든 두 사람의 만남은 결국 필연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프리다 칼로는 여인의 삶과 살을 탐닉하던(디에고 리베라에게 식인귀란 별명이 붙은 것은 그 자신이 스스로 퍼뜨린 이야기. 의대에서 해부학 수업 중 죽은 여인의 인육을 먹었다는 것에 기인하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여성 편력 탓이 더욱 크다), 산을 뽑아 옮길 수 있건 없건 간에 거인으로 디에고 리베라를 만났고, 그에게 자신의 인생과 영혼을 송두리째 바칠 각오를 했기 때문이다.

 

한 남자를 사랑하기 위해서 화가가 되었다고 한다면 그것이 과연 프리다 칼로에게 잘 어울리는 말일 수 있을까? 1970년대 페미니즘이 기세를 떨치기 전까지 프리다 칼로의 이름은 없었다. 그녀는 단지 프리섹스주의자, 양성애자, 스탈린주의자 그외 디에고 리베라의 세번째 부인 등등으로 불렸다. 철학자 비트켄슈타인은 "내 언어의 한계가 내 세계의 한계"라고 말한다. 이 말을 프리다 칼로에게 들이대면 그녀가 맞닥뜨렸던 여성으로서의 한계가 20세기 여성들이 맞닥뜨린 세계의 한계였다고 풀이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여성은 과연 자신의 육신과 정신으로 홀로 설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대해서 프리다 칼로가 보여준 대답은 반드시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전에는 보잘것없는 평가에 그쳐야 했던 프리다 칼로를 되살려 낸 것은 여성주의 비평가들에 의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그녀를 온전히 이해했다고는 여겨지지 않는다. 나에게 있어 프리다 칼로는 때로 <쥴 앤 짐>의 '잔 모로'나 '바람같은 베티' 같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녀의 삶은 온전히 그녀의 것이어야 한다. 그것은 프리다 칼로에게 드리워진 디에고 리베라의 거대한 그림자를 인정하는 일이며 동시에 디에고 리베라 없이도 얼마든지 훌륭한 화가로서, 인간으로서 홀로 설 수 있었던 프리다 칼로를 인정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다. 프리다 칼로는 결코 비둘기가 아니었다. 그녀는 코요아칸의 하늘 위로 유유히 떠 있는, 아름답고 매서운 한 마리 매였다. 그녀에게 가장 행복하고 불행한 사실은 그 매서운 눈초리가 바라본 것이 언제나 디에고 리베라였다는 것이다.

 

"일생 동안 나는 두 번의 심각한 사고를 당했습니다. 하나는 18살 때 나를 부스러뜨린 전차입니다. 부서진 척추는 20년 동안 움직일 수가 없었죠. 두번째 사고는 바로 디에고와의 만남입니다."라고 말하고 있듯이 디에고는 평생을 두고 프리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미국에서 돌아온 디에고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여전한 멕시코와 라틴 아메리카의 현실이었고, 유산으로 갈갈이 찢어진 몸으로 돌아온 프리다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어머니의 죽음이었다. 그리고 이즈음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일은 치매에 걸린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일이었으며 어린 시절 서로에게 가장 애증의 관계로 엮였던 동생 크리스티나가 자신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는 디에고와 매우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었다.

 

그녀는 이 때의 고통을 한 장의 그림으로 남겼다. 배신자 디에고에게 보내는 한 장의 편지와도 같은 이 그림에서 프리다는 그가 배반의 칼날로 자신을 후벼 판 사실에 대해서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침대 앞에 서 있는 남자는 자신의 저고리를 피로 물들인 채 말한다.  "그냥 몇 번 칼로 살짝 찔렀을 뿐입니다. 판사님. 스무 번도 안 된다구요." 사실 디에고가 자신과 결혼한 여인의 여동생이나 가장 친한 친구와 바람을 핀 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러나 디에고는 프리다가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하고 사랑하는 여인이란 사실을 망각했다. 디에고와 헤어져서 몇 달을 보낸 프리다는 다시 디에고의 곁으로 돌아갔지만 디에고는 이 일을 자랑삼아 떠버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의 사랑이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었다. 1937년 프리다는 더 이상 디에고에게 얽매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프랑스 파리의 피에르 콜르 화랑에서 열린 멕시코전에 초청을 받아 디에고의 곁을 떠난다.

 

1941년 초 디에고는 더 이상 프리다가 없는 삶을 견딜 수가 없었고, 그것은 프리다도 마찬가지였다. 디에고는 프리다를 샌프란시스코로 불러 두 번째 청혼을 했다. 1949년 디에고 리베라의 창작활동 50주년을 기념하여 국립미술학교에서 개최된 성대한 전시회에서 프리다는 처음으로 디에고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는 글을 발표했다.

 

"나는 내 남편 디에고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것은 우스운 일이게 되겠지요. 디에고가 한 여자의 남편이었던 적은 한번도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애인으로서의 그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는 성의 한계를 훨씬 넘어서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내가 그를 아들처럼 다루며 이야기한다면 그건 디에고에 대해 묘사한다기 보다 내 자신의 감정을 묘사하거나 그리는 일이 될 것입니다. 결국 그것은 나 자신에 대해 묘사하는 일일 뿐입니다."

 

푸른 집(코요아칸의 집을 이렇게 불렀고, 프리다 기념관이 되었다)과 철제 코르셋(척추의 부상으로)의 견고한 이중 감옥에 갇힌 프리다가 디에고에게 바친 사랑은 마치 종교와도 같다. 신이 인간을 창조하고 그에게 경배를 보내든, 인간이 신을 창조하고 그에게 경배를 보내든 결국 경배를 보낼 나란 존재가 없다면 신의 존재가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디에고에게 프리다는 하늘로부터 쏟아지는 광명의 빛이었으며 메마른 대지로부터 솟아오르는 한줄기 감로수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디에고는 어머니의 사랑을 받는 아들이 어머니의 마지막 적금 통장을 털어 달아나듯, 신과 자연과 생명의 넘쳐나는 사랑을 인간이 미처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디에고 역시 프리다 곁을 떠나고자 했다.

 

디에고가 프리다의 곁을 진정으로 떠나고자 했던 것(바람을 피웠다거나 외도가 잦았다는 것은 프리다에게도, 디에고에게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일이었음을 전제하고)은 그의 평생동안 단 한 차례의 일이었고, 그 한 번이 프리다에게는 치명적이었다. 물론 이들 부부의 재결합 이후에도 디에고는 여전했다. 그는 계속해서 놀라운 창작열을 보였고, 다른 여자들을 침대로 끌어들였다. 남자들의 혁명은 죽음을 부르는 권력이었고, 그것은 여성들과는 무관한 일이었다. 그러나 여성의 혁명은 그들 스스로에게 삶의 고통과 사랑을 책임으로 짊어지웠다.



프리다는 일기에 이렇게 썼다.

 

"디에고, 탄생/ 디에고, 건설가/ 디에고, 나의 아이/ 디에고, 나의 약혼자/ 디에고, 화가/ 디에고, 나의 연인/ 디에고, 나의 남편/ 디에고, 나의 친구/ 디에고, 나의 어머니/ 디에고, 나의 아버지/ 디에고, 나의 아들/ 디에고, 나/ 디에고, 우주/ 디에고, 통일 속의 다양함/ 그런데 왜 나는 '나의 디에고'라고 말하는가? 그는 결코 내 것이 아닌데. 그는 오직 그 자신의 것일 뿐이다."

 

그녀는 의도적으로 디에고로부터 떨어져 나와 그녀의 푸른 집과 철제 코르셋에 스며들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그녀는 생명과 죽음, 사랑과 증오, 우주와 인간 사이를 이어주는 그림들을 그렸다.

 

오른발의 회저병이 도져 결국 오른발을 잘라낼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프리다는 "내게 날아다닐 날개가 있는데 왜 다리가 필요하겠는가?"라고 말했다. 수술이 끝난 후 프리다는 "한쪽 다리를 잘라냈다. 이렇게 아픈 적이 없었다. 내게 남은 건 정신적 충격과 형액순환마저 바꿔놓은 불균형이다. 수술한지 일곱달이 지났는데 나는 여전히 누워있고, 그 어느 때보다 더 디에고를 사랑한다. 그에게 도움이 되고 싶고, 그림도 계속해서 그리고 싶다. 디에고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만에 하나 디에고가 죽는다면 나 역시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뒤를 따르리라. 우리는 함께 묻힐 것이다. 디에고가 죽은 뒤에도 내가 살아있으리라고는 기대할 수 없다. 디에고 없이는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내게 그는 아들이자 어머니이며, 배우자이고, 그리고 내 전부이다."

 

프리다는 세상에 온지 정확히 47년 7일을 살고, 6월 13일 세상을 떠났다. 그녀가 죽은 다음날 폭우가 쏟아졌다. 디에고는 프리다가 죽은 뒤 일년이 채 못된 1955년 6월 29일 오랜 조력자 중 하나였던 엠마 우르타도와 조용한 결혼식을 치뤘다. 디에고 리베라의 누이었던 마리아 델 필라의 회고에 따르면 이들의 결혼은 죽기 직전의 프리다가 엠마에게 부탁한 일이었다고 한다. 그녀는 엠마에게 자신이 죽은 뒤, 디에고와 결혼하여 그를 보살펴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엠마와 디에고의 결혼생활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프리다가 세상을 떠난 지 3년 4개월 뒤 디에고도 이승을 등졌기 때문이다. 디에고는 유언으로 자신이 이 세상에서 그 무엇보다 사랑했던 여인과 영원히 합쳐질 수 있도록 자신을 화장해달라고 했지만 사람들은 그를 돌로레스 시민묘지의 유명인사 구역에 매장했다.

 

종종 어떤 예술가들의 평전은 반드시 다른 예술가에 의해 정리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일수록, 학자나 학문적 연구자 혹은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접근하는 저널리스트 보다는 차라리 다른 예술가의 편협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될 때가 있는데, 이 두 사람의 삶을 다룬 르 클레지오의 이 평전이 그렇다. 정제된 문체로 정리된 두 사람이자 하나의 영혼으로 연결된 이들 부부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감동받는 부분이 한 두 군데가 아니다. 물론, 그 감동의 대부분은 프리다에게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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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 아메리카의 문학과 사회 - 서성철, 김창민 | 까치(2001)


"라틴 아메리카"란 말은 지리적인 구역설정이 아니라 문화적인 설정에 해당한다. 이때의 "라틴"이란 당연히 스페인, 포르투갈 문화권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라틴 아메리카"란 말이 던지는 뉘앙스는 부정부패, 군부독재, 빈곤, 미국의 안마당 등 좋지 않은 이미지들인 것도 사실이다. 만약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이유로 라틴 아메리카를 단정지어 버린다면 우리나라를 남들이 뭐라 폄하하더라도 별로 할 말이 없어진다. 부정부패, 군부독재, 빈곤, 미국의 영향력은 우리에게도 똑같이 혹은 그에 못지 않은 정도의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면에서 우리가 현재 라틴 아메리카보다 조금 나은 조건에 있다고 해서 나름대로 자부심을 갖고 있는 이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문화적인 방면으로 접근해 들어가자면 세계적으로 우리보다 더 많은 인정을 받고 있는 지역이 라틴 아메리카다.

 

외국에서 나온 역사, 지리, 사회 등 교과서를 통해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 3국이 어느 정도의 비율로 다뤄지고 있는지를 살펴 본 적이 있는 이라면 세계에서 대한민국, Korea란 국가 브랜드의 이미지의 현수준을 알 수 있다. 세계사를 다루는 전체 400쪽짜리 책이라면 중국이 30쪽, 일본이 10쪽이라면 한국은 2쪽 정도이고, 그나마도 중국과 일본의 이야기를 하면서 함께 다루는 정도 수준이다. 그에 비해 태국은 우리보다 나은 편이라 4-5쪽 정도는 된다. 자학으로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냉정하게 살폈을 때 그렇다는 것이다. 그에 비해 라틴 아메리카 문화가 지닌 영향력과 파급력을 생각해보면 우리가 이 지역을 눈아래 깔고 본다는 건 그네들 입장에서 보자면 우습기짝이 없는 노릇이 된다. 물론, 문화의 우열을 매기는 것이 바보같은 짓이긴 하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더라도 마찬가지지만, 문화적으로 보았을 때도 라틴 아메리카는 결코 우습게 볼 수 없는 상대란 거다. 단적인 예로 최근 국내에서 붐을 일으키고 있는 외국 작가들 - 파울로 코엘료(브라질), 루이스 세풀베다, 아리엘 도르프만(칠레),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페루) -의 면면을 살펴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라틴 아메리카의 문학과 사회"는 그런 라틴 아메리카가 배출한 걸출한 작가와 시인들의 세계를 일목요연하게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라틴 문화 전문가인 김창민, 서성철 선생이 엮고 많은 라틴 아메리카 문학 전문가들이 참여한 이 책은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세계를 작가 중심으로 풀이하고 있다. 이 책이 작품론 대신 작가론의 형태를 취할 수밖에 없는 것은 라틴 아메리카 문학 전반에 대한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의 이해를 돕기 위한 하나의 방편을 택한 것이지만, 최근에서야 라틴 아메리카 문학 작품들이 국내에 번역 출간되고 있는 현실 탓에 어쩔 수 없이 택한 고육지책이기도 하다. 이 책은 모두 10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국가별 구성 - 멕시코, 과테말라, 쿠바,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페루, 칠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브라질의 순서 -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를 이해하기 위한 1차적인 자료가 작품이란 점을 고려했을 때 "후안 룰포(멕시코), 미겔 앙헬 아스투리아스(과테말라), 알레호 카르펜티에르, 기예르모 카브레라, 호세 레사마 리마(이상 쿠바), 로물로 가예고스(베네수엘라), 호세 마리아 아르게다스(페루), 에우클리데스 다 쿠냐(브라질)" 등의 작가와 시인들은 국내에 거의 소개된 바가 없는 이들이다.

 

하지만 "옥타비오 파스, 카를로스 푸엔테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파블로 네루다, 이사벨 아옌데, 보르헤스, 에르네스토 사바포, 마누엘 푸익" 등은 국내에 출간된 번역서가 있고, 옥타비오 파스, 마르케스, 보르헤스, 네루다 등과 같이 국내에도 많은 팬들을 거느리고 있는 문인들도 있다. 이 책이 지닌 미덕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라틴 아메리카의 작가들에 대해 새롭게 알게 해주는 것에도 있지만, 단순히 라틴 아메리카의 문학 분야만이 아닌 그들이 처한 사회와 정치적 상황과 연관지어 함께 다루어 입체적인 이해가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같은 까치 출판사에서 나온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와 사상"과 함께 읽는다면 훨씬 좋은 독서 체험을 가능하게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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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된 세상의 학교 -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 조숙영 옮김 | 르네상스(2004)



전후 일본인들에게 용기를 준 인물로 최근 영화화된 역도산이 있다고 한다. 정확히 알 수야 없는 일이지만 그런 역할을 한 또 하나의 존재가 있는데 일본 프로야구의 상징인 요미우리 자이언츠, '교징(巨人)'이다. 일본 야구팬들의 성향 자체가 '교징'과 '안티교징'으로 상징된다 할 수 있는데, 안티교징의 대표 격인 팀이 한신 타이거즈다. 자이언츠가 도쿄(관동) 지역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일본 만화를 애독한 분들은 잘 알겠지만 타이거즈가 위치한 오사카 등 간사이(관서) 지역 사람들은 독특한 지역색으로 도쿄에는 지고 싶지 않다는 정서가 있다. 타이거즈는 이런 지역 정서를 기반으로 매년 '교징을 누르자'는 타도 교징의 구호를 앞세웠지만 성적은 매번 변변치 않았다. 그런 한신 타이거즈의 감독으로 '타격의 신', '일본 야구 사상 최고의 포수', '일본에서 가장 이상적인 상사'로 꼽혔던 노무라 가쓰야(野村克也) 감독이 영입되면서 우리에게 '히딩크 열풍'이 있었던 것처럼 일본에서도 '노무라 열풍'이 불었었다. 변변한 스타가 없는 만년 꼴찌팀들을 강팀으로 변모시키는 그의 독특한 리더십(ID야구, 데이터야구)이 불황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던 일본에 새로운 활력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그런 노무라 열풍 뒤엔 아내 사치요(沙知代)가 있었다. 노무라 열풍에 힘입은 탓인지, 사치요 자신의 재능 탓이었는지 모르지만 몇 차례의 방송을 통해 사치요의 거침없는 독설, 명장 노무라 감독을 절절 매게 하는 그녀의 입담은 매사 자기 의견을 표현하는데 조심스러운 일본인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여러 방송사에서 '사치요 모시기'에 나선 것도 그런 사치요의 인기 덕이었다. 그녀는 고민 상담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아이 문제로 상담해온 이에게 "당신이 그렇게 사니까. 아이가 문제아가 되는 거야"라는 직설적인 표현으로 충격을 주곤 했다. 그런데 노무라 감독은 지난 2001년 12월 아내 사치요 때문에 한신 타이거즈의 감독직을 불명예 퇴임했다. 그의 아내 사치요가 탈세혐의로 구속되었기 때문이다. 사치요는 자신과 남편의 수입을 관리하는 회사를 설립한 뒤 3년간 2억엔의 법인세 및 소득세를 탈세한 혐의로 구속되었고, 재기 넘치는 입담과 직설적인 화법, 거침없는 독설로 무장했던 사치요는 자신의 학력을 속였다는 혐의로 방송가에서도 퇴출당하고 만다.

나는 에두아르도 갈레아노의 "거꾸로 된 세상의 학교"를 읽으며 독설(毒舌)의 힘, 미학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를 잠시 궁리해 보았다. 앞서 사치요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 독설은 다음 세 가지 덕목에 기댈 때만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그 세 가지 덕목은 "첫째는 진실, 둘째는 애정, 셋째는 풍자"다.

갈레아노는 우루과이 출신의 저널리스트로 1971년 "수탈된 대지(범우사)"로 처음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는 지난 월드컵 시즌 무렵 발간된 "축구, 그 빛과 그림자(예림기획)"로 잠시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거꾸로 된 세상의 학교"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상황들을 보여준다.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 항해를 마치고 귀국한 1493년 무렵부터 유럽에서 매독이 번지기 시작하고, 이것이 중국에 옮겨진 것은 1505년경의 일이었고, 일본은 1512년, 조선은 1515년경에 유입되어 창병(瘡病)이란 뜻에서 당창(唐瘡)또는 광동창이라 불렀다. 매독이 유럽에서 아시아까지 번지는데 12년, 다시 조선까지 번지는데 22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당시의 세계화는 이렇게 느린 속도로 움직였다. 에이즈가 미국 뉴욕에서 처음 발병 사례가 보고된 뒤 국내에서 나타나기까지는 5년이 걸렸다. 그렇다면 새로운 괴질로 등장하고 있는 조류 독감과 사스는 아마 그보다는 훨씬 빨리 전파될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 책을 읽고 몇몇 지명과 인명을 제외하면 우리의 상황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 하는데, 어찌 보면 그네들 상황과 우리 상황으로 구분해서 볼 일이 아닌 거다. 세계화는 이라크 전쟁이 남의 일이 아닌 것처럼 우리의 일이기 때문이다.

갈레아노는 이렇듯 빠른 시간 축을 가지고 움직이는 세계화, 신자유주의 질서를 보다 효과적으로 공격하고, 일반 독자들에게 그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지닌 해악은 무엇인지 빨리 알려주려는 마음에 이 책을 저술한 것으로 보인다. "20년 혹은 30년 전만 하더라도 가난은 불의의 산물이었다. 좌파는 그것을 고발했고, 중도파는 인정했으며, 우파는 아주 드물게 부정했다. 세월은 너무도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지금 가난은 무능력에 대한 정당한 벌이다. 가난한 자에겐 연민이 일어나지만 더 이상 가난이 의분을 유발하지 않는다. 운명의 손길이나 기회가 오지 않아 가난한 사람들도 있다. 그렇다고 폭력이 불의의 자식인 것도 아니다. 지배 언어, 그 대량 생산된 이미지와 단아는 거의 언제나 당근과 채찍의 체제를 위해 소임을 다한다."(본문 43쪽) 그래서 이 책의 구성은 학교의 교과서와 흡사한 면모를 보인다. 물론 내용은 절대 고리타분하지 않다. 목차는 교과과정이란 말로 대신하고, 초급과정에서 '거꾸로 된 세상의 학교, 공포에 관한 강의, 윤리학 세미나'를 진행하고 상급과정에선 '불처벌, 고독의 교육학, 대항학교'를 가르친다. 갈레아노의 이 책이 지닌 힘은 독설의 미학, 그 가운데서도 진실에 기대고 있다. 우선 그는 세계화의 진실을 가르친다.

냉전 종식 이후 몇 년간 내리막길을 걸었지만, 무기 판매는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세계 무기 시장은 1996년 총 판매액이 400억 달러에 이르러 8% 성장을 기록했다. 무기 수입국의 선두 주자는 사우디아라비아로 총 90억 달러를 퍼부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아주 오래 전부터 인권 유린 국가의 선두 자리도 고수하고 있다. 1996년 국제사면위원회는 "구금자를 고문하고 학대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계속 받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법원은 최소한 27명에게 120대에서 200대의 태형을 선고했다. 그들 중에는 24명의 필리핀인이 포함되어 있는데 보고서에 따르면 동성애 행위를 문제 삼아 이 같은 처벌을 내렸다. 최소한 69명이 사형을 선고 받아 처형되었다." 그뿐이 아니다. "파드 국왕이 이끄는 정부는 정당과 노조 설립을 계속 금지해왔다. 언론 검열도 지속적으로 매우 삼엄하게 이루어졌다."<본문 132쪽>

사우디아라비아의 인권 상황은 갈레아노의 말대로 지난 수십 년간 서방 인권 단체의 공격 대상이었다. 한해 평균 60-70명가량이 고문 등에 의한 강압적인 수사 과정을 거쳐 사형당하고 이들 중 상당수는 이슬람 율법에도 존재하지 않는 참수형이다. 여성은 사회 진출은 물론 운전도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미국을 비롯한 서방선진국들 가운데 누구도 사우디아라비아의 인권 상황을 문제 삼지 않는다. 최대의 무기 수입국 가운데 하나이자 중동 지역 최고의 미 동맹국이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여성의 사회 진출이 허용되고 있는 이란의 인권 상황은 늘 도마 위에 오른다. 세계화는 이런 인권문제와 마찬가지로 모든 국가와 민족에게 보편적 선과 부를 가져다주지 않는다.

우리나라엔 수많은 욕쟁이 할머니들이 있다. 그들은 식당에서 "술 좀 더 주세요"라고 말하는 손님에게 "니가 갖다 처먹어"라고 말한다. 어지간히 취기가 오른 손님의 주문엔 "술 좀 작작 처먹어"라며 응하지 않기 일쑤다. 손님들은 푸대접 받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이런 욕쟁이 할머니가 있는 가게는 언제나 문전성시를 이룬다. 이들 욕쟁이 할머니들의 욕설이 상대를 비하하거나 욕보이기 위한 방식이 아니라 장사수완이기 보다는 상대의 건강을 염려하는 가족 같은 느낌을 전하기 때문이다. 갈레아노의 독설엔 애정이 담겨 있다.

자기 자신의 과거를 지우기 위해 갖은 애를 쓰면서 희망에서 내리는 사람들도 많다. 희망이 무슨 지친 말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세기말, 천년의 끝. 세상도 끝인가? 오염되지 않은 공기가 얼마나 우리에게 남아있는가? 휩쓸려가지 않은 땅과 살아 숨쉬는 물은? 병들지 않은 영혼은 얼마나 남아 있는가? '아프다(enfermo)'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계획이 없는'을 의미한다. 이것은 우리 시대의 갖가지 심한 유행병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병이다. 그러나 또 어떤 누군가는 보고타의 어느 담벼락을 지나다가 이런 글을 남겨 두었다. "더 좋은 날들을 위해 염세주의는 내버려 둡시다."
우리가 희망을 갖는다고 하고 싶을 때, 에스파냐어로는 희망을 품는다고 한다. 아름다운 표현이자, 아름다움 도전이다. 흘러가는 이 시대의 무자비한 바깥 공기를 쐬며 노천에서 얼어죽지 않게 희망을 품는다. <본문 334쪽>


독설은 강자에 대한 약자의 조롱이란 점에서 욕설과 흡사한 면을 지닌다. 어떤 이는 욕설은 "민중의 시(詩)"라고 말한 적도 있지만, 욕설은 직접적인 언술이란 점에서 독설과 분리된다. 독설은 강장에 대한 조롱이자, 풍자이며 지배이데올로기에 대한 전복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자선은 사람들을 위로해 주지만 현실을 문제 삼지는 않는다. "내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면, 그들은 나를 성인이라고 부릅니다." 브라질의 주교 엘데르 카마가 말했다. "그런데 왜 먹을 게 없느냐고 물어보면, 날 빨갱이라고 해요." <본문 326쪽>

해마다 연말이면 시민단체에 후원을, 사회복지를, 자선냄비에 몇 푼의 돈을 집어넣으면서 스스로를 위안한다. 사회에 뭔가 좋은 일을 했다고 위로하면서 이때의 자신은 시혜자의 위치에 올라선다. 지역감정 타파를 주장하면서 철따라 돌아오는 선거에서는 지연, 학연, 혈연에 따라 투표한다. 권력관계를 변화시키지 못하는 개혁은 위장일 뿐임에도 포장된 개혁의 이면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체념과 포기에 이른다. "어쩌다 정의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저 높은 하늘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체념하는 동안 "여기 지상에서는 불의는 불의인 채 여전히 그대로"이다.

“법이 지켜지지 않는 곳에서는 부정부패가 유일한 법이다. 부정부패가 이 나라를 좀먹고 있다. 미덕과 명예와 법은 우리의 삶에서 증발해 버렸다”고 말한 사람은 역설적이게도 악명 높은 갱단 두목 알 카포네였다. 저널리스트 에두아르도 갈레아노는 알 카포네가 세상의 도덕을 개탄하는 뒤집혀진 언술, 『거꾸로 된 세상의 학교』를 통해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 세계화를 극소수의 승자와 패배하기 위해 태어난 대다수의 패자들이 벌이는 무자비한 경주에 비유한다. 지난 11월 수능시험에서 많은 학생들이 부정행위를 저질렀다고 떠들썩하다. 방법보단 결과를 앞세우는 교육 환경, 가장 비교육적인 교육이 보란 듯이 행해지는 입시지옥에서 학생들에게 죄의식을 가지라고 요구하는 것은 과연 정당한 일일까. 갈레아노의 표현을 빌자면 학교가 거꾸로 된 것이 아니라 세상이 거꾸로 된 것이다. 아니면 거꾸로 된 세상의 학교에서 학교만 뒤집어지길 바라는 게 이상한 것일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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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지구화의 위기와 녹색희망 


『지구화, 되돌아보기와 넘어서기』, 조명래 지음, 환경과생명, 2009





위기의 진화((鎭火)? 더 큰 위기로의 진화(進化) 

1929년 미국의 증시 폭락으로 시작된 경제대공황은 인류에게 두 가지 교훈을 남겼다. 첫째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시장 균형이 유지할 것이라는 자유방임적 자본주의는 정부(공동체)가 경계를 정해 확실히 통제하지 않는다면 스스로의 탐욕으로 인해 무력화되고 자기 파괴적인 존재가 될 것이라는 점이고, 둘째는 경제대공황 같은 세계적인 위기가 닥쳤을 때 초국가적인 대책이 아닌 개별 국가단위의 생존자구책은 도리어 위기를 고조시킬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경제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세계는 전승국을 중심으로 국가가 시장에 개입한다는 수정자본주의(케인스주의)를 정책을 선택했고, 전 지구적 경제를 위한 새로운 규범으로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IMF)’,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을 맺는다.


신자유주의는 영국의 대처 총리와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 시절부터 시작되었다. 무한한 부의 축적을 열망하는 자본의 동학은 케인스주의 국가들의 성장이 둔화되고, 개발도상국들의 국가주도 계획주의가 성장의 한계에 봉착하면서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신자유주의는 자본의 효과적 증식과 성장을 위한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기 시작했고, 성장의 한계, 경제위기는 모두 정부의 잘못된 정책, 불필요한 간섭과 규제, 과도한 사회복지가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1980년대 말 현실사회주의가 붕괴되자 마거릿 대처는 신자유주의 이외에 더 이상 “대안은 없다(There is no alternaitive)”며 신자유주의의 전면적인 승리를 선언했다. 그 사이 대공황이 남겨주었던 교훈은 저 멀리 사라져버렸다.


또 다시 미국발 금융위기로 시작된 경제위기는 세계를 하나로 연결한 초고속 인터넷망에 번진 바이러스처럼 순식간에 세계의 경제위기로 번졌다. 냉전체제 해체 이후 꾸준히 추진되어왔던 신자유주의 지구화의 결과였다. 금융경제를 넘어 세계 각국의 실물경제를 파탄 상황에 몰아넣은 위기의 원인을 두고, 한국 사회의 진보진영은 신자유주의 체제의 실패로, 보수 진영은 정치제도의 실패로 규정하고 있다. 과연 현재의 위기는 진화(鎭火)될 것인가? 아니면 더욱더 큰 위기로 진화(進化)해나갈 것인가? 지금의 위기를 불러들인 근본적인 위기는 무엇인가?


발전국가, 사회국가, 경쟁국가

조명래 교수는 지구화의 한국적 방식이거나 호명이라 할 만한 ‘세계화’가 이제 막 시작될 무렵이었던 1994년부터 지구화의 문제에 천착해왔다. 『지구화, 되돌아보기와 넘어서기』는 지구화의 전개 과정에서 드러난 다양한 현상들, 특히 사회과학도로서 계몽주의 이래 지속되어온 근대적 현상인 ‘국민국가’ 중심 체제가 전복되면서 삶의 원초적 불안정성이 극대화되는 신자유주의적 현실에 주목한 결과물이다.


제1부 「지구화 시대의 공간과 환경」에서는 전 지구적 공간과 환경을 매개로 전개되는 지구화의 다양한 양상들을 살피고, 제2부 「지구화와 한국 사회의 현주소」에서는 지구화의 영향으로 한국 사회가 경험하고 있는 변화의 구체적인 양상과 결과에 주목하고 있다. 마지막 제3부 「지구화 시대를 넘어서기」에서는 또 다시 우리 앞에 닥친 세계 경제 위기의 원인인 신자유주의 지구화를 넘어설 수 있는 대안과 삶의 가능성을 짚어보고 있다. 그는 공동체와 생태계의 생존을 위협하고, 끊임없이 불안정하게 만드는 신자유주의 지구화라는 병증의 현상에만 집착하지 않고, 그 이면에 드리워진 근대적 삶의 양식까지 파헤치는 근원적인 해부를 마치 내과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처럼 치밀하게 파고들었다.


그는 우선 신자유주의 지구화라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공간과 환경의 구체적인 장으로서 국민국가의 변화양상에 주목한다. 근대적 패러다임의 산물인 국민국가모델, 발전국가와 사회국가라는 기존의 모델에서 신자유주의 지구화에 따른 국가 재조직화의 결과물로 출현한 경쟁국가 체제의 등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매뉴얼 월러스타인(Immanual Wallerstein)은 “자본주의는 시작부터 세계경제적인 사건이었으며 민족국가적인 사건이 아니었다. 자본은 자신의 열망이 민족의 경계로 한정되도록 방관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자본주의의 출현은 처음부터 세계질서의 근본적인 변화를 예고하고 있었으며 국가들과 사회들 사이에서 처음으로 진정한 전 지구적인 상호연결을 시도한 세계체제의 등장이라는 것이다. 새로운 세계경제 체계는 무한한 부의 축적 과정에 기반하고 있었기 때문에 세계경제는 주어진 어떠한 정치구조의 경계도 초월하는 경제 단위였다.


서구의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이 자본과 노동의 계급적 합의를 바탕으로 시장에 대한 국가의 전면적인 개입을 통해 국민들의 사회적 삶(복지)을 책임지는 사회국가(social state)의 형태였다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여러 국가들은 국가가 정책적으로 주도하는 저임금 노동집약형 산업을 통한 발전국가(developmental state)였다. 오일달러를 통한 북반부의 차관이 아프리카와 라틴 아메리카 같은 저개발 국가들에서 권력자 개인의 착복 수단으로 망실된 반면 비교적 건전한 국가엘리트들이 주도한 아시아의 개발도상국들은 ‘수출주의 축적체제’를 구축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국가가 조정 역할을 확대하고 시민사회의 조건을 결정하는데 깊숙이 개입할수록 국가는 자본과 노동 사이에서 더욱 격렬한 투쟁의 장이 되었다. 국가는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면서 서서히 시민사회의 이해관계와 반목하기 시작했다. 국가지배자와 국가요원들은 자신이 선택한 정책을 추구하고 집행하기 위해 자금을 조달해야 했다. 신흥독립국이자 개발도상국들의 국가형성기 동안엔 유력한 정치집단과 경제집단 사이에 이해관계의 동맹이 성립했지만, 그 동맹은 내부적 갈등을 미봉한 체제였다. 새로운 자본가계급은 정치적 간섭으로부터 경제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 봉건적 특권의 잔재에 대해 대항했을 뿐만 아니라 국가와 경제를 점진적으로 분리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신흥 계급은 국가가 조정 역할을 확대하고 경제에 대해 간섭함으로써 생기는 위험부담, 무역이나 사업에 대한 규제에 대한 저항으로 자본주의 사회의 신흥 계급은 국가의 방향설정에 개입하여 국가의 재구조화를 시도했다. 지구화로 인해 생산 활동이 초국가적으로 전개되고, 금융거래의 지구적 통합이 가속화되면서 국민국가는 국민경제의 통합적 조절자로서 거시 경제 조절 기능이 무력화되었다. 국가주도의 경제성장을 추구해온 아시아 각국들은 외환위기라는 자본의 지구화 앞에 무력했고, 외환위기는 새로운 세계 경제 질서로의 편입을 순조롭게 하기 위한 수단이 되었다. 외환위기 이후 제시된 IMF의 정책들은 국가역할의 재조직화를 의미했다.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발전국가 모델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었고, 기업과 시장을 통제할 수단을 잃은 사회는 조절력을 상실한 채 지구적 자본의 운동에 따라 끌려 다닐 수밖에 없게 되었다.


지구화 시대 국가들은 생산 및 유통의 모든 부문에서 자국 경제의 지구적인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자신의 역할을 집중시킴에 따라 대부분 ‘경쟁국가(competition state)’로 전환하고 있다. 다시 말해 지구적 경쟁력의 동학을 중심으로 국가의 역할이 설정되고 특화되는 ‘경쟁국가’는 지구화 시대 국가 역할의 새로운 모델이 되고 있다. 전통적인 국민국가가 국민적 합의나 명분을 바탕으로 국민경제의 안정적 성장과 발전을 도모함과 더불어 국민적 헤게모니 하에서 국민 대중을 통합하는 것을 자신의 역할로 설정했다면, 경쟁 국가는 국민경제의 국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국제화․세계화되는 자본 운동 논리에 국가 경영의 방향을 맞춘다. 따라서 경쟁 국가 하에서 조절은 고용증대, 수요 관리, 분배 등과 같은 국민경제의 재생산 부문보다 신기술․신상품․신생산 체제 개발, 해외 직접 투자, 금융 거래 자유화 등과 같은 부분을 우선한다. <본문 40쪽>



지구화 시대를 넘어선 초록정치의 가능성

조명래 교수는 현재의 위기를 초래한 ‘고삐 풀린 자본주의’의 표면은 지구화이지만 내부는 신자유주의가 채우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현재의 위기를 불러온 신자유주의 지구화의 누적효과는 “전략적인 결정의 장에서 사회의 공익성이나 시민성을 보장하는 국가의 역량을 잠식”하는 데서 절정을 이룬다고 지적한다. 근대적 국민국가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한 진보진영은 신자유주의 지구화가 국민국가의 약화, 기능을 마비시키는 형태로 나타났기에 국민국가의 기력을 다시 회복시키고 강화해야 한다는 반동적인 딜레마에 빠졌다.


그러나 조명래 교수는 ‘국민국가의 덫’에 빠져서는 “초국민화 ․ 탈국가화를 수반하는 지구화의 힘에 효과적으로 대항”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것은 신자유주의 지구화의 근본 원인에 대한 적절한 진단, 다시 말해 발전국가 ․ 사회국가 모델의 경제적 토대를 이루었던 포드주의 성장체제, 산업자본주의가 처한 위기를 반복하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무한한 축적 과정을 추구하는 자본의 근본적인 추동력과 자본주의 체제가 만들어낸 소비중심의 근대적 삶의 패러다임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 없이는 어떠한 대안도 만들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근대 국민국가 체제를 해체하고 재구조화하면서 진행되었던 현재의 신자유주의 지구화가 촉발시킨 위기는 결국 특정한 성장체제의 종말이다. 문제는 이것이 다시 임금과 연동되는 포드주의 성장체제로의 회귀, 국민국가의 기능회복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의 위기는 지구 생태계와 인류공동체가 더 이상 자본주의적 경제발전을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기 때문이다.


생태적 위기는 단순히 국토 환경의 파괴로 치부할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생명을 포함한 사회 전반의 지속가능성에 관한 문제를 포괄하는 ‘진보의 근본 위기’이다. … 생태 위기는 사회의 존립과 지속 가능성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민주․성장․평등․참여 등 인간 중심의 전통적인 진보로는 이러한 상황을 결코 돌파할 수 없다. <본문 333쪽>


현재 우리 앞에 놓인 경제 위기의 실체, “공동체적 ․ 민주적 삶의 양식”이 해체되는 현실은 신자유주의 지구화의 산물인 동시에 근대 인간중심주의 진보의 산물이기도 하다. “더 많이 갖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다투며 약자를 차별화하고 배제하는 ‘경쟁적이고 불평등한 삶’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데서 연유한다. 결국 현재의 위기는 바로 우리 안의 경쟁적이고 불평등한 삶의 추구가 외적으로 표출된 결과이다. 진정한 진보는 사람과 사람의 평등만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의 호혜로운 관계설정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어야 하고, 사람 중심의 사회적 진보와 사람과 자연의 공존 속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형평성을 재구축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명래 교수의 신자유주의 지구화라는 병증에 대한 원인 진단이 정확하고 그에 대한 대안 역시 적절하다 할지라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그가 초록정치의 희망을 보았던 지난 2007년 촛불시위에 대한 해석을 유보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민주화 20년 뒤에 맞닥뜨린 대한민국은 사회국가로 발전하기는커녕 여전히 발전국가의 망령에 사로잡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공존에 의한 진보를 근원적으로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적 다중으로 포섭된 시민들이 초록정치의 주체로 세계체제의 바깥을 상상할 수 있게 되기까지 우리는 얼마나 오랜 시간을 암흑 속에서 헤매야 할까.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땅 위의 길과 같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라고 했던 루쉰 선생의 말씀에 한 가닥 희망을 걸어본다.

 


* <환경과생명>2009년 봄호(통권 59호)에 청탁 받아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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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미국의 엔진, 전쟁과 시장 - 김동춘 | 창비(2004)



현재 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김동춘 교수는 그간 우리 사회의 굵직한 이슈마다 중요한 이론적 잣대를 제공해온 지식인 가운데 한 명이다. 이제는 우리 사회의 대표적 시민단체로 자리 잡은 "참여연대"의 창립(1994)과 "한국전쟁전후민간인학살진상규명위원회" 창립 등 그는 단순히 학문적 차원이 아닌 행동하는 진보적 지식인의 면모를 보여 왔다. 이 책은 그가 숨 가쁘게 지내온 뒤 찾아온 2003년 연구안식년을 맞이해 미국 UCLA대학의 박사후 연수를 마친 산물로 저술된 것이다.

 

미국이 세계 제1의 강대국이란 사실에 대해 의문을 품는 것은 물론 미국을 패권국가라고 부르는 인식에는 정치적 좌우를 막론하고 공통된 인식이다. 다만, 미국을 과거 대영제국과 서구 선진국의 식민지 경영을 일컫는 말 “제국”으로 인식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아직 일부 사람들에겐 다른 문제인 듯싶다. 이라크 전쟁이 시작되고 열흘 정도가 지날 무렵 알자지라 방송은 럼스펠드를 인터뷰하며 미국이 “제국 건설(empire building)을 하고 있는가?”라고 묻자 럼스펠드는 “우리는 제국을 추구하지 않는다. 우리는 제국적이지 않다. 그리고 과거에도 그런 적이 없다”고 화를 내며 말했다. 나는 우리가 배우는 세계사에서 미국에 대한 기본적 오해의 출발은 ‘고립주의’라고 배운 “먼로 독트린”부터라고 생각해왔다. 엄밀히 말해 먼로독트린은 미국의 고립주의가 아니라 유럽에 대해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배타적 권리가 미국에 있음을 주장한 선언이다. 즉, 먼로 독트린은 미국이 국제정치에 참가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독점적 권리가 미국에 있음을 유럽에 알린 것이다. 그것을 우리는 오랫동안 스페인의 식민지로 있던 라틴 아메리카의 독립을 지원하기 위한 미국의 정책으로 오해해 왔다.

 

미국의 엔진, 전쟁과 시장의 네 가지 주제

김동춘 교수가 책머리에 밝히고 있듯 2003년 3월 이라크 전쟁이 시작될 무렵 그는 미국에 있었다. 그는 TV토론 프로그램의 "한 백인 시청자가 전화를 해서 전쟁을 지지하지 않는 자국내 흑인들은 '반역자'라고 공격"하는 에피소드를 통해 미국의 분위기를 전한다. '자유와 관용의 땅' 이라 생각해온 미국에서 듣는 '반역'이란 언사가 주는 문제의식은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흐름이다. 김동춘 교수는 국제관계학이나 정치학자가 아닌 사회학자이다. 미국 유학파가 아닌 국내에서 학위를 받은 그가 자신의 전공과 상관없어 보이는 미국에 대한 연구와 책을 낸 것은 그간 우리 사회에 미국은 전방위적으로 존재해왔지만, 우리 사회에서 바라보는 미국은 친미와 반미라는 두 가지 잣대만이 존재해왔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는 가장 냉정한 현실론자임을 자부하는 이들로부터 미국에 반대하는 이상론자들이 주장하는 양극단의 스펙트럼 사이에 놓인 일반인들을 헤매고 만든다. 이런 극단의 논리 속에서 미국은 점점 장님 코끼리 만지기식이 되어 왔다.

 

"미국의 엔진, 전쟁과 시장"은 그런 양극단의 논리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롭게 기술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그간 김동춘 교수가 보여 온 면모를 살핀다면 이 책에도 그의 관점은 분명히 녹아있고, 그가 지향하는 가치와 세계가 현실론자들의 그것과는 분명히 다른 것임은 충분히 알 수 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저자는 양극단의 논리 속에서 미국의 현실, 미국을 상대해야 하는 세계의 현실, 무엇보다 미국과 밀접한 관계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의 현실을 고민하고 있다. 이 책은 주와 참고문헌을 포함해 모두 368쪽, 7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주제 혹은 목적은 다음 네 가지로 압축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첫 번째 주제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그간 "한국 사회가 생각해 온 미국이란 국가에 대한 오해를 불식하는 것"이다. 김동춘 교수는 책머리에서 "이 책은 주로 미국의 좋은 점만 알고 있는 대다수의 한국인들에게 미국의 또 다른 면을 보여주기 위해 쓴 것이지만, 미국에 대해 막연한 거부감과 반감을 갖고 있다가 미국에 직접 가서 보고 겪고 나서는 그 엄청난 힘에 완전히 압도당하고 기가 질려버리는 사람들에게 미국의 실체와 문제점을 함께 생각해보자는 뜻"도 가진다고 밝히고 있다.

 

두 번째는 제목 "미국의 엔진, 전쟁과 시장"이 암시하듯, 미국의 시스템 혹은 국가 동력이 무엇인가를 규명하는 것이다. 첫 번째 주제가 미국의 탄생으로부터 팽창, 제국에 이르는 역사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부분이라면 두 번째 주제에 해당하는 부분은 미국을 기존의 국제정치, 국제역학관계로 바라보는 방식을 배제하고, 사회학적 틀을 이용해 미국 사회에 대한 그간의 연구 성과와 그가 미국에 체류하면서 경험하고, 미국 현지의 자료들을 직접 접하면서 분석한 결과에 해당한다. 이때 그가 발견한 미국의 주요 동력원은 "전쟁" 혹은 전쟁을 통해 보장받고, 확대될 수 있는 시장이다.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그것이 가능하도록 만든 배경을 찾는다.

 

앞서 말한 “전쟁과 시장”이란 미국의 주요 동력원의 문화적 구성 방식과 역사를 밝히는 것이 이 책의 세 번째 주제에 해당한다. 한국 사회에 존재하고 있듯, 미국에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아니 우리 사회보다도 더 선진화된 시민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미국 사회가 어째서 철저하게 시장의 논리로만 움직이는 보수 우익의 메커니즘에 종속되어 있는가? 혹시 "전쟁과 시장"의 맥락 이면에 실재하는 미국의 보수 우익의 메커니즘은 미국 시민들로 하여금 세계 시민이 아닌 제국 시민으로 살아가도록 강요하거나 이에 자발적으로 동조하도록 부추기고 있지 않은가?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미국 사회의 내부를 보다 면밀하게 파고든다. 다시 말해 이 책은 국제정치질서 속에서 미국을 분석한 것이 아니라 미국 사회의 내부를 사회학적 시각으로 고찰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 네 번째는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자 패권국가로서의 면모를 숨기지 않는 현재 미국과 앞으로의 미래를 예견해 보고, 우리의 선택을 고민하게 만드는 일이다. 과거 또는 현재의 상황을 바탕으로 미래사회의 모습을 예측하고, 그 모델을 제공하는 학문의 역할은 사회학의 몫이 아니라 미래학(futurology)의 몫이다. 더구나 현재 유일강대국으로 부상한 미국의 역할을 감안할 때 미국의 붕괴 혹은 제국으로서의 미국의 역할이 해체되는 상황을 예견해보는 것은 미래에 대한 예측이 아니라 신성불가침의 영역을 넘겨다보는 것처럼 불온 혹은 불경해보이기까지 한다.

 

친미, 반미적 관점을 떠난 냉정한 관찰

오늘날 가장 많은 교포, 이민이 거주하고 있는 것은 물론 가장 많은 유학생들, 가장 많은 박사 학위가 미국으로부터 비롯되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과연 우리는 미국을 잘 알고 있을까. 김동춘 교수가 고백하고 있듯 미국에 대한 특집, 기획 등을 준비하노라면 뜻밖에 미국에 대한 전문가가 태부족이란 사실을 절감해야 할 때가 있다. 미국 전문가를 자임하는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미국과의 현실, 혈맹 관계를 강조하다 보니 우리의 입장 보다는 미국의 시각이 앞서는 이 혹은 논리적 근거보다는 감정적인 부분이 앞서 냉정하게 접근해야 할 부분에 주장이 앞서 버리는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미국에 대한 바른 이해를 위해서 우리는 친미적 관점, 반미적 관점과도 적절한 거리를 두어야 한다.

 

지난 20세기 미국이 세계 문명을 주도하게 된 것, 그 문명의 혜택을 우리 한국을 비롯한 세계 모든 사람들이 누려왔던 현실을 모두 부인하거나 부정해 버리고 출발하는 것도, 미국이 실제 자국의 이익에 충실하여 전쟁을 벌이고, 시장을 개척하는 차원에서 원조했던 사실을 망각하고 이를 마치 구원자의 손길로 인식하는 것도 현실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게 만든다.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파시즘에 맞서 유럽을 구원한 것은 사실이고, 한국전쟁을 비롯한 수많은 고비마다 중요한 역할을 한 것 역시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미국에 대한 객관적 시선을 얻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사실도 함께 알고 있어야 한다.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까닭 가운데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측면이 없다고는 할 수 없겠으나 미국이 철저한 반파시즘 노선을 걸었기 때문은 아니다. 미국은 프랑코의 파시스트 독재를 용인했고, 독일에서 히틀러, 나치의 등장과 집권에 대해 비판적이지 않았다. 당시 월스트리트의 자본가들은 히틀러의 나치당을 지원했고, 헨리 포드는 그들이 반유대적이란 점을 들어 히틀러와 협력했다. 전후 미국은 뉘른베르크와 동경의 전범 재판에서 구파시즘 세력을 선별하여 미국 이주를 허용하고, 트루먼의 냉전 전략은 전세계 특히 한국과 그리스에서 구파시즘 세력을 파트너 삼아 이들을 다시 부활시켰다.

 

김동춘 교수는 "미국 내부의 비판적 지식인들조차 이라크 선제공격이 마치 미국 역사상 최초의 일인 것처럼 보는 경향"이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말한다. 가까운 과거인 1961년 쿠바 피그만 침공 작전, 1983년 레이건 정부 당시 그라나다 침공,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직후 파나마 무력 침공 등 미국은 수많은 전쟁을 선전포고 없이 단지 ‘경찰 행동’ 차원에서 해 왔다. 그라나다 침략의 명분은 그곳에 거주하는 미군이 위협에 처했다는 것이었지만, 실제 그라나다의 미군은 위협받은 적이 없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분석이었고, 파나마 침공 역시 독재자 “노리에가”의 제거가 명분이었으나 누가 보더라도 파나마 운하에 대한 통제권을 미국이 장악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선제공격전략(예방공격)은 냉전이 미국의 공세적 소련 봉쇄 전략의 일환으로 시작된 것처럼, 냉전 기간 내내 미국의 가장 중요한 전쟁전략이었다.

 

"미국이 전쟁을 먼저 벌이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미국이 공식적으로 전쟁을 선포한 예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미국 헌법에는 오직 의회만이 전쟁을 선포할 권리가 있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1950년 북한의 남침에 맞서 미국이 의회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채 '전화 한 통으로' 개입했고 이는 이런 방식의 가장 대표적인 예로 자주 거론된다. 이것은 전쟁이 국민의 동의에 기초하기보다 대통령의 자의적인 결정에 의해서, 그리고 은밀하게 추진되었다는 뜻일 게다. 공식적으로 선전포고한 것만 전쟁이라 한다면 한국전쟁도 미국의 주장했듯이 전쟁이 아니라 '경찰행동'이고, 베트남 전쟁도 전쟁이 아니다." <본문 82쪽>

 

1950년 당시 한국전 파병을 앞두고 미 국회에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은 19세기 이후 제2차 세계대전까지 85차례나 전세계 각 지역에 파병했고, 전쟁을 벌여왔다.

 

미국이 주장하는 평화를 위한 전쟁

미국의 건국은 자유와 민주주의의 증대란 세계사적 의미를 지닌다. 미국은 물론 미국 시민들은 프랑스인들이 프랑스 대혁명에 대해 느끼는 것 못지않은 자부심을 가질 권리가 있다. 미국은 이런 선조들의 역사를 배경으로 전세계를 향해 자유와 인권의 수호국을 자부한다. 우리가 미국을 연상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자유의 여신상과 세계 최고의 인권국가임을 상기해볼 때 어쩌면 미국은 그런 주장을 할 수 있는 입장이다.

 

미국이 처음 이라크를 침공할 당시의 이유는 대량살상무기(WMD)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지난 걸프전 이래 12년간 미국의 경제봉쇄로 사실상 전쟁 상태에 있던 이라크는 대량살상무기도, 대량살상무기를 만들 재정도, 대량살상무기를 만들 의지도 없었다. UN조사단 역시 이라크에서 아무런 증거를 찾아낼 수 없었다. 그러자 미국은 전쟁의 이유를 다시 이라크 국민들의 인권과 자유, 민주화로 돌렸다. 후세인이 쿠르드 난민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했던 독가스는 미국제품이었다. 죄 없는 민간인들이 처참하게 학살당할 무렵 이라크를 방문해 후세인을 격려한 인물이 바로 현재의 국방장관 럼스펠드였다. 이라크에 가장 많은 무기를 수출한 핼리 버튼의 총수가 현재 미국 부통령인 딕 체니였다. 핼리 버튼이 총수로 재직할 당시 다른 어떤 회사보다도 가장 많은 무기를 이라크에 수출했다. 미국은 한 때 무자헤딘이라 부르며 무기를 지원한 탈레반 정권을 붕괴시킨 뒤 자신들이 이슬람의 율법에 갇힌 아프간 여성들을 해방시켰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미국의 인권은 여성에 대해 가장 강력한 이슬람 율법을 강제하는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미국이 악의 축으로 지목하고 있는 이란에서 여성들은 차도르를 쓰기는 하지만 사무실에서 남성들과 함께 근무한다.

 

미국은 냉전 해체 이전까지는 직접적인 무력개입을 자제해왔다. 국제 정세가 미국의 직접 개입을 용인하지 않은 탓에 미국은 현지에 수립한 정권과 CIA의 공작을 통한 '작은 전쟁(저강도 전쟁)' 전략을 구사해 왔다. 그 결과 인도네시아 수하르토 군부는 쿠데타를 일으켜 50여만 명에 달하는 인도네시아 민간인들을 살해했다. 1973년 칠레의 피노체트 쿠데타, 1970년대 후반의 니카라과 콘트라 반군의 민간인 학살, 멀리 갈 것이 아니라 1980년의 광주를 상기했을 때 미국이 주장하는 인권과 민주주의, 자유는 선별된 대상에 의한 것이고, 설령 그것이 세상 더할 것 없는 독재라 하더라도 미국의 이익에 부합된다면 그것이 민주주의였다. 미국이 주장하는 평화 역시 미국의 팽창 전략에 장애가 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이 중동지역의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지원하는 이스라엘의 예를 보자. 최근 MBC에서 방송한 5부작 다큐멘터리 “중동”에서 네탄야후 전 총리를 비롯한 이스라엘 정착민들은 중동에 평화가 오지 않는 이유를 하나같이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지역을 불법 점령했기 때문이 아니라 바로 자기 땅에서 쫓겨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지배에 복종하지 않고, 계속 저항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루살렘 지역은 “6일 전쟁”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유대인, 팔레스타인인, 기독교도, 이슬람교도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지역이었다. 예루살렘을 무력으로 점령한 이스라엘은 이 지역에서 철수할 것은 요구한 UN결의를 무시한 채 팔레스타인인들을 쫓아내며 유대인 지역을 넓혀가고 있는 현실이다. 이런 이스라엘의 전략은 바로 미국의 전략을 고스란히 추종한 것이다. 미국이 주장하는 평화란 미국의 원하는 것을 다른 민족이나 국가가 따르는 것이다. 미국의 평화 전략에 따르면 상대에게 보다 빠른 항복을 받아내기 위해 핵을 사용하거나 무차별 융단 폭격을 실시하는 것도 평화를 위한 길이 되고, 이런 전쟁조차 평화를 위한 전쟁이 된다. 그것이 지금까지 미국이 벌이고 치른 전쟁 가운데 ‘평화를 위한 전쟁’ 이 아닌 것이 단 하나도 없는 까닭이다.

 

미국 최고의 대박사업은? 전쟁!

미국의 많은 이들이 매달 이라크에서 사용하고 있는 40억 달러면 전세계 빈곤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에릭 홉스 봄은 "극단의 시대"에서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미 육군은 5억 1,900만 켤레 이상의 양말과 2억 1,900만 벌 이상의 바지를 주문했고, 독일군은 1943년 한 해만 440만 개의 가위와 620만 개의 군대용 스탬프를 주문"했다고 말한다. 전쟁은 돈이 많이 드는 사업이고, 애초에 미국은 이라크 전비와 재건 비용을 세계 매장량의 11%를 차지하고 있는 이라크의 석유를 팔아 충당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미국이 이토록 많은 돈을 이라크에 퍼붓고 있는 이유는 과연 이라크인들의 해방을 위한 것이었을까. 미국은 어째서 이런 막대한 비용을 들여 전쟁에 나서는 것일까. 그것은 미국을 움직이는 엔진이 “전쟁과 시장”이기 때문이다.

 

1993년 소말리아에서 미군 18명이 전사(영화 "블랙 호크 다운"은 이 사건을 배경으로 한 것)하자 미국에는 외국에 미군을 파견하지 말라는 여론이 일어났다. 당시 클린턴 대통령은 "국익에 결정적이지 않은 전쟁에는 한 명의 미국인도 목숨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이 말은 명분이 인권, 세계 평화와 직접 관련이 있는 것이라 할지라도 인도적인 이유만으로는 개입하지 않겠다는 것이고, 다시 말해 그것이 미국의 국익에 관련된 것이라면 언제라도 무력 개입하겠다는 뜻이다. 미국이 전쟁을 국가의 성장 동력으로 인식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미국 역사상 가장 큰 대박을 터뜨린 전쟁사업은 2차 대전 참전과 전후 복구를 위한 마샬플랜 그리고 냉전전략일 것이다. 2차 대전으로 미국은 세계 총생산의 반을 차지하는 경제적 초강대국이 되었다. 흔히 뉴딜이 미국자본주의를 공황에서 구해냈다고 말하지만,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2차대전이 미국 경제를 살렸다. 전쟁은 자본 이득을 증가시켰으며 투자 기회를 확대했다. 고용문제나 경제난이 전쟁으로 한방에 해결됐다. 더구나 자기 영토에서 전쟁을 벌이지 않았으니 인명손실을 제외하고는 별로 손해본 것이 없었다. 2차대전 개입 후 미국은 전쟁 호황에 스스로도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였다. 이 전쟁으로 미국 사람들은 전쟁이 경제문제를 해결하는 매우 좋은 수단이 된다는 것을 알아챘다. 더구나 파시즘을 멸망시켰다는 명분도 얻었으니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었다."<본문 124쪽>
 
이후 미국의 전쟁은 명분은 무엇이 되었든 실제로는 시장개척을 위한 전쟁(프론티어)가 되었고, 고조되는 무력분쟁 위기는 미국의 무기 수출을 위한 좋은 호재였다. 지난 2002년 미국의 무기 판매고는 133억 달러로 전년도 121억 달러에 비해 크게 늘어났고, 2위 국가인 러시아(50억 달러)의 두 배가 넘는다. 이는 세계 전체 무기 판매고의 45.5%에 해당한다. 그중 86억 달러는 중동 국가들에게, 36억 달러는 미국의 잠재적인 적대국으로 평가받는 중국이 수입했다. 단일 국가 규모로는 중국이 1위, 한국이 2위(19억 달러)이다. 미국이 아시아의 평화체제 구축, 남북 화해 협력 분위기 조성에 적대적인 까닭도 거기에 있다.

 

미국의 세계지배전략 - 지배 엘리트 육성

지난 대선 후보 시절의 노무현 대통령이 인정한 것처럼 우리 대한민국은 건국 과정부터 미국에 자유로울 수 없었다. 정부 수립과정, 제헌 과정, 정치, 경제, 문화, 교육, 국방 등 우리 사회의 어느 한 분야도 "미국의,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대한민국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2004년 12월 1일자 프레시안 기사에서 노희찬 의원은 한 달 전 관저로 초청 받아 만난 모 주한유럽대사로부터 "한국은 미국의 식민지라 생각"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하는데, 엄밀하게 말하면 그들도 미국으로부터 썩 자유로운 입장은 아니다. 걸프전이 끝난 이후 현재까지 13년 동안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등 중동 국가에 미군을 주둔시키고 있으며 소련 붕괴 이후엔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루마니아, 불가리아, 폴란드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다. 미국은 냉전 종식 이후 현재까지 전세계 35개 국가에 700여 개 이상의 군사기지를 구축하고 있다. 만약 이것을 로마제국식으로 한정해 말하자면 로마의 시선이 닿는 곳 어디나 로마화가 진행된 것처럼, 미국의 시선이 닿는 곳 어디나, 미국이 필요로 하는 곳은 어디나 팍스 아메리카나의 제국이 건설된 것이다.

 

미국에 대한 우리들의 짝사랑 이야기는 고종 황제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야 하지만, 그 핵심은 광복 직후 단정 수립을 지지했던 미군정청 경무부장 조병옥의 말 "일본과 달리 미국은 땅이 크고 자원이 풍부한 나라이므로 우리의 영토 따위에는 관심이 없고, 따라서 우리를 도와줄지언정 침략은 하지 않을 것"과 같다. 그러나 조병옥은 틀렸다. 그가 미국에 유학해 있던 1930년대 이미 미국은 많은 식민지를 거느리고 있었다. 쿠바, 푸에르토리코, 하와이, 아이티, 니카라과, 필리핀, 파나마 등이 그들의 식민지였다. 미국은 로마 제국과 흡사하면서도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오랫동안 동아시아의 질서를 구축했던 중화 제국과도 흡사한 측면을 가지고 있는데, 단 이들과의 차이는 보다 타산적이고, 냉혹한 실리 계산에 따르되 표면적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 시스템을 통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통치전략은 군사력을 동원해 이들 나라를 직접통치하는 방식이 아니라 자유와 민주주의란 관념을 통한 것이었다. 미국은 직접통치 방식을 대신해 "나라만들기(state-builing)", 즉 법, 제도, 엘리트 이식작업을 통해 치고 빠지는 방식으로 통치한다. 그래도 못 미더운 나라들은 미군을 반식민지화한 중국의 상해처럼 치외법권화된 지역에 주둔시키는 방식으로 압력을 행사한다. 나라만들기의 시작은 보통선거를 통한 대표자 선출인데, 미국의 사전정지작업을 통해 그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세력은 과감히 제거한다. 해방 직후의 남한과 현재 이라크 상황을 비교해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이다.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성립된 신생 정부는 내용이야 어찌되었든 합법성을 인정받게 되고, 그런 뒤 현지의 지배엘리트들 가운데 선발해 미국 유학의 형태로 미국의 대학에서 장학금을 지급하며 교육시킨다.

 

이들이 귀국한 뒤엔 미국식 교육제도를 도입하고, 미국식 이데올로기를 전파한다. 과거 로마 제국이 그러했듯 점령지역의 세력가들을 포섭하여 그들의 파트너로 육성하는 것이다. 과거 영국이 식민지 경영을 위해 자국의 관리들, 군인, 기업인들을 훈련시켜 보냈다면 미국은 현지 관리, 군인, 기업인을 육성하여 그들로 하여금 미국식 가치관과 세계관으로 무장시켜 그들로 하여금 지배엘리트가 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오늘날 미국은 전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대학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미국의 대학이 다른 선진국의 대학들보다 우수해서가 아니라 미국에 전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들이 유학가기 때문이다. 미국은 오랫동안 제3세계의 군부엘리트들을 그들의 군사학교에서 육성해 왔는데, 앞서 말한 파나마의 노리에가는 물론 한국의 전두환, 노태우 등도 모두 미국의 군부엘리트 학교 졸업생들이었다.

 

미국을 제국으로 파악할 것인가에 대한 이견은 존재해왔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방식이 아닌 그 본질로 파악했을 때의 제국주의(imperialism)를 한 국가의 정치, 경제적 지배권을 다른 민족, 국가의 영토로 확대시키려는 국가의 충동이나 정책이라 했을 때 미국의 본질은 제국에 가깝다.

 

우파국제주의자들의 발전전략 "영구전쟁론"

미국에도 내부 비판자들, 시민사회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지속적으로 제국의 길을 걸어갈 수 있었는가. 김동춘 교수는 미국이 실질적으로는 이념적으로는 일당독재국가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레이건 집권 8년 동안 미국 정치사회에서 중도좌파는 완전히 제거되고, 중도파가 좌파로 간주되고, 민주당의 정책 역시 지속적으로 우경화되는 정치 지형의 변화가 있었다. 그 결과 "화씨 9/11"의 감독 마이클 무어 같은 이는 민주당을 향해 "위선의 가면을 벗고 차라리 공화당과 합당하라"고 비판한다. 현재 미국을 주도하는 정치세력의 면면을 살펴보면 과거 좌파 국제주의의 정확히 반대 측면에 서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미국의 주류는 우파 국제주의(세계화)에 해당한다. 과거 좌파 국제주의가 ‘영구혁명론’을 주장했다면 그들은 미국의 패권을 지속시키기 위한 일종의 ‘영구전쟁론’을 추진한다. 냉전 시대를 거치며 미국 우파는 유럽과 달리 집요하게 애국주의 담론, 반공 담론의 장에 민주당과 좌파들을 끌어낸다. 그 결과 미국의 정치집단은 스스로 국가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애국게임에 휘말리게 되어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과도한 충성심을 보여야만 살아남을 수 있게 되었다. 이번 대선에서 부시가 승리했지만 캐리가 당선되었다고 해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는 것이다.

 

미국이 이라크에 대한 공격을 선포하기 직전인 2003년 2월 미국 언론에는 경건하게 기도하고 있는 부시와 파월, 럼스펠트 등 각료 사진이 크게 실렸다. 부시가 개신교도 가운데 가장 보수적인 교파에 속해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공적인 자리인 각료회의 자리에서 다 함께 기도드리는 광경은 자유주의 국가 미국을 연상하는 이들에게는 낯선 모습이다. 미국인들은 유대인들 못지않게 스스로를 신에 의해 선택된 국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을 지닌 국가라고 생각한다. 트루먼 대통령은 "나는 신이 우리 미국인들을 만들었으며, 어떤 위대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우리에게 이처럼 힘을 주었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한다. 중동에서의 이슬람 근본주의 못지않게 미국의 정치 지형 속에서 기독교 근본주의(복음주의 프로테스탄트)는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들은 1960년대 베트남전을 경험하면서 미국의 가톨릭 우익, 유대교 우익과 합세하면서 "도덕적 다수, 기독교 연합" 등 적극적인 정치 세력화에 나섰고, 종교와 정치를 같은 맥락에서 보고 있다. 미국이 전쟁에서 패배하지 않는 까닭은 그들이 신이 보기에 합당한 전쟁을 치르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미국 사회를 "기독교 파시즘"이라고 부르는 것 역시 이런 현상을 두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워드 진”이나 “노암 촘스키” 같은 미국의 비판적 지식인들의 목소리를 통해 미국 사회의 지식인들 가운데 상당수가 비판적 지식인들로 구성되어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1960년대 미국의 반전운동세대들은 우경화의 흐름 속에서 스스로를 아카데미 가둬두거나 전문가주의로 퇴보하면서 더 이상의 비판을 멈추고 있다. 어쩌다 나오는 이들의 비판적 발언조차 하워드 진에게 어느 어린 여학생이 "그렇다면 왜 미국을 떠나지 않는가"라며 비판한 것처럼 반애국적인 행위로 단정된다.

 

모든 제국은 팽창한다, 고로 제국은 붕괴한다

우리는 지난 역사 속의 제국들을 통해 한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모든 제국은 팽창한다. 한 번 팽창하기 시작한 제국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팽창을 멈출 수 없다. 최대한 팽창한 제국은 내부로부터 붕괴한다는 것이다. 로마제국은 하드리아누스 장벽을 건설한 뒤로부터 몰락하기 시작했고, 중화제국의 최대 판도는 청조 시대의 일이었으나 이후 중국은 급격한 몰락을 경험한다(물론 현재 중화인민공화국은 청나라보다도 넓은 판도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은 현재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며 전 세계 가솔린 소비량의 40%를 차지하는 나라다. 팍스 아메리카나 시대는 세계적으로 두 번의 미국화(Americanised)를 불러왔다. 한 번은 냉전을 통해, 다른 한 번은 세계화를 통한 것이었다. 이제 미국의 패권은 현재 절대적이다 못해 초월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김동춘 교수는 바로 지금이 '제국의 위기' 라고 진단한다. 그 부분을 말하는 것은 이 책에 대한 악독한 스포일러가 될지도 모르겠으나 핵심적인 부분은 미국은 바로 그들이 주장하고 전파한 "인권과 평화, 자유와 민주주의"로 인해 내부로부터 붕괴하게 될 것이란 예측이다. 미국이 주도한 세계적 불평등(세계화 혹은 자유무역)은 국가 단위를 해체하는 듯 보이지만 미국만큼은 철저하게 국가의 경계를 유지한다. 미국이 세계 최고의 강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힘은 구대륙의 차별받던 시민들을 받아들여 국가의 동력으로 삼은 덕이다. 그러나 미국의 보편주의는 점차 약해지고 있다. 제국의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보다 엄격한 절차를 따라야 한다. 미국은 자국에 비판적인 지식인들을 입국조차 할 수 없도록 통제하고 있다. 이처럼 미국은 노쇠한 제국이 빠지는 딜레마에 똑같이 빠져들고 있다.

 

미국이 자랑하는 최첨단 무기가 공화국 수비대를 한 달도 못되는 기간에 붕괴시킬 수는 있지만 종전 선언 1주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이라크에서 총성을 멈추게 할 수는 없는 것처럼,  미국이 자유와 민주주의 이념으로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다면 그들이 지닌 돈과 힘에만 의존하는 국제질서는 위험하고, 위태로운 것이다. 이매뉴얼 월러스틴은 미국은 자본축적의 한계 혹은 자본주의 붕괴 시나리오에 의해 붕괴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붕괴”란 말은 너무 엄청난 느낌을 주기 때문에 마치 로마 제국이 게르만 용병대장의 손에 의해 약탈되는 것을 연상하게 된다. 하지만 로마 제국의 붕괴가 이미 그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왔던 것처럼 미국의 붕괴 역시, 대영제국의 붕괴가 디즈레일리, 글래드스턴 시절에 시작된 것처럼 그렇게 시작될 것임을 예측할 수 있다. 미국의 붕괴는 당연히 소련의 붕괴가 가져온 충격파보다도 더한 충격을 가져올 것이다. 미국을 제외한 전세계 국방비를 합쳐도 미국보다 적은 현실, 그런 상황에서 미국에 대해 비판적으로 말하는 것은 참으로 맥 빠지는 일이며, 보수우파가 주장하는 것처럼 그런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책으로 보이기도 한다. 로마 제국의 붕괴가 중세의 어둠을 불러왔다고 믿는 이들에게 미국의 붕괴는 이보다 더한 고통을 불러올 수 있다는 예견 또한 가능하겠지만, 대영제국의 붕괴 과정처럼 조용히 올 수도 있다. 그것이 어떤 형태의 것이든 우리가 미국의 패권을 막을 수 없는 것처럼, 그들의 붕괴 또한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세계 초강대국, 절대적 패권국가인 미국의 붕괴는 미국이 영원한 패권국가로 존재할 것이라는 믿음이 부질없는 것만큼이나 부질없는 것이다. 그것은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로마가 그렇게 붕괴할 것이라고는 누구도 믿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이 책에 대해 몇 가지 아쉬운 점 가운데 하나는 이 책이 좀더 일찍 나왔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까닭은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 중 상당수는 이미 국내에 출간된 상당수의 미국 비판 서적들과 중첩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이 책에 대한 조선일보의 서평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우리 사회의 보수우익이 미국에 대한 일방적인 짝사랑을 그만두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전자는 "미국의 엔진, 전쟁과 시장"이 가장 최근의 미국 사회를 보여주고 있으며, 사회학적으로 내부를 고찰하고 있다는 장점과 대중적으로 읽기 쉽고, 이해하기 쉽게 구성되어 있다는 점으로 상쇄되고, 후자의 경우엔 미국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것이 국제 사회에서 대한민국이 살아남는 아니면 그들이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는 이들에겐 어차피 무슨 이야기를 해도 소용없을 것이란 점에서 상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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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곱하기 둘


- 아리엘 도르프만(Ariel Dorfman)

동지여, 감방에서
그 방까지
몇 걸음 걸리는지 우리 모두 알고 있다오.

스무 걸음이라면
화장실로 그대를 데려가는 게 아니라오.
마흔다섯 걸음이라면
운동하라고
그대를 데리고 나가는 건 절대 아니라오.

여든 걸음을 세고 나서
장님처럼 고꾸라지듯이
층계를 오르기
시작하면
오, 여든 걸음이 넘는다면
오직 한 군데가 있을 뿐이오
그들이 그대를 끌고 갈 수 있는 곳은.
오직 한 군데가 있을 뿐이오
오직 한 군데가 있을 뿐이오
그들이 그대를 끌고 갈 수 있는 곳은
이제는 오직 한 군데밖에 없다오


출처 : 아리엘 도르프만, 이종숙 옮김, 『싼띠아고에서의 마지막 왈츠』, 창작과비평사, 1998.

*

내 주변엔 감옥에 다녀온 사람들이 꽤 많다. 그러다보니 주변 사람들에게서 감옥살이 이야기 듣는 것이 친구들에게서 군대 이야기 듣는 것처럼 익숙하다. 4.19세대로 5.16군사법정에 섰던 한 사람은 비록 정치깡패이긴 했지만 당당했던 이정재가 사형을 언도받은 뒤 사형대에 설 때까지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리엘 도르프만의 시처럼 그 역시 ‘여든 걸음’ 너머의 세계로 끌려갔다. 서대문형무소에는 면회소 가는 길과 사형대 가는 길이 서로 이어져 있었으므로….

반공주의와 북진통일 이외에 모든 것은 친북좌파이던 시절 당당하게 평화통일론을 펼쳤던 죽산 조봉암은"법이 그런 모양이니 별수가 있느냐. 길가던 사람도 차에 치어 죽고 침실에서 자는 듯이 죽는 사람도 있는데 60이 넘은 나를 처형해야만 되겠다니 이제 별수가 있겠느냐, 판결은 잘됐다. 무죄가 안될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것이 났다. 정치란 다 그런 것이다. 나는 만사람이 살자는 이념이었고 이 박사는 한 사람이 잘 살자는 이념이었다. 이념이 다른 사람이 서로 대립할 때에는 한쪽이 없어져야만 승리가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중간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 편안하게 되는 것이다. 정치를 하자면 그만한 각오는 해야한다."라고 했다. 그는 사형언도를 받은 직후 곧바로 사형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 인혁당 등 수많은 사람들이 법으로 이름으로 죽음을 맞이했다. 이른바 법살(法殺)이었다. 엊그제(2008. 9. 26) 60주년을 맞이한 사법부의 수장 이용훈 대법원장이 과거 사법부의 잘못에 대해 사과했다.

이제 세월을 지내놓고 보니 내가 감옥은커녕 유치장에도 가보지 못했던 것은 좋은 시대를 살았던 덕분이 아니다. 다만 운이 남들에 비해 조금 더 좋았을 뿐이었다. “스무 걸음, 마흔 다섯 걸음, 여든 걸음이 내 앞에도 여전히 놓여있다. 나는 다만 다른 이들에 비해 조금 운이 좋았을 뿐이다.

죽산은 교수대 앞에서 목사에게 마지막으로 성경의 <누가복음> 23장 22,23절을 읽어달라고 부탁했다. 그 내용은 이러하다.

"재판장인 빌라도가 말한다. 나는 그의 죄를 찾지 못하겠다. 그러나 처형을 외치는 군중의 소리가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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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바도르 (Salvador)
감독 : 올리버 스톤
출연 : 제임스 우즈
제작 : 1986 영국, 미국, 122분

올리버 스톤의 실질적 감독 데뷔작 <살바도르>

올리버 스톤의 감독 데뷔작은 1981년의 공포영화 <악마의 손(The Hand)>이었지만, 그를 할리우드의 이단아, 숨겨진 뇌관으로 만든 데뷔작은 <살바도르>였다. 이 영화가 중요한 것은 그가 앞으로 펼쳐나갈 작업들과 그의 생각들을 엿볼 수 있는 문제작이었기 때문이다. 올리버 스톤은 미국 역사에서 가장 드러내고 싶지 않은 부분들을 조망함으로써 가장 미국적인 감독이자, 미국적이지 않은 감독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올리버 스톤은 미국 현대사의 명암을 정공법으로 파고드는 감독으로 정평이 나 있지만, 그가 처음부터 그런 감독은 아니었다. 그의 데뷔작인 <악마의 손>은 컬트적인 구성이 돋보이긴 했으나 소수의 마니아들에게나 인정  받는 작품이었고, 그는 일찍 감독 데뷔를 했으나 이후엔 감독보다는 시나리오 작가로 더 명성을 얻었다. 그는 감독상을 받기 전에 <미드나잇 익스프레스(1978)>로 먼저 각본상을 받았다.


이후 브라이언 드 팔마와 <스카페이스>, 마이클 치미노와 <이어 오브 드라곤> 등을 촬영하며 전형적인 장르영화에 충실한 각본을 썼다. 이 무렵 그리고 이후에 다소 약화되기는 하지만 그의 작품들은 인종차별적인 묘사와 지나친 폭력으로 많은 비판을 받아 왔고, <미드나잇 익스프레스>는 한 때 한국에서도 영화를 볼 수 있었던 이들에게 한국적 인권 상황을 생각하게 해 많은 인기를 얻었으나 지금은 인종적 편견을 드러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올리버 스톤 자신도
“난 인종차별주의자였고 국수주의자였으며 총을 숭배했다”며 당시 자신의 문제점을 시인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그의 새로운 감독 데뷔작(?)이 된 <살바도르>는 그런 과도기적 상황에 놓인 자신의 처지를 종군 기자 리처드 보일(제임스 우즈)에 투사해내고 있는 작품인지도 모르겠다. 보일은 한때는 그나마 잘 나가던 카메라 기자였고, 영화 <킬링필드>의 주인공이기도 한 시드니 쉔버그와 함께 캄보디아 취재 기자로 나선 적도 있었다. 그러나 타고난 냉소와 좌충우돌하는 기질 때문에 그를 고용해주는 통신사 하나 없이 시시껄렁한 생활을 해나가고 있다. 아내는 넌덜머리나는 결혼 생활을 끝장내버리고, 그는 밀린 아파트 월세에 쪼들리다 못해 통신사에 전화를 해대며 취재거리를 달라고 애걸복걸한다.


엘살바도르 - 바나나공화국에서 벌어진 대량
학살

결국 리처드 보일은 카메라 한 대를 달랑 들고 내전이 한창인 엘살바도르에 간다. 이 영화는 엘살바도르 내전(1980-81년) 당시의 종군 기자였던 보일의 자서전적 기록을 재구성한 영화다. DVD에는 그의 실제 회고 일부가 담겨 있지만 아쉽게도 자막이 없다. 영화 초반의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주된 배경이 되는 엘살바도르는 어떤 나라인가.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엘살바도르는 1856년 독립하지만, 시몬 볼리바르가 꿈꾸었던 라틴아메리카 연방공화국의 꿈은 미국과 같은 새로운 강대국의 출현을 염려한 영국과 미국, 그리고 나머지 유럽 제국들의 방해, 내부적으로는 이미 기득권을 확보하고 있던 지주계급의 반대로 무산되고 만다. 특히 미국은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미국의 우선권을 주장하며 라틴 아메리카 지역에 대한 경제적, 정치적 종속을 강화해나간다.


라틴아메리카의 여러 약소국들을 일컬어 '
바나나공화국'이란 말로 부르는 것은 유나이티드 프루츠와 같은 미국계 다국적 기업이 한 나라의 경제와 사회를 좌우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냉소 섞인 풍자이다. 미국과 이해를 같이하는 소수 지주계급은 부를 축적하여 전국토의 56%를 14개 문벌에서 차지할 정도로 엘살바도르의 빈부 차는 극심했다. 결국 1932년 농민을 이끌고 파라분도 마르티는 반란을 일으키지만 결과는 농민군 3만 명의 참살로 끝나고 만다. 오늘날 라틴 아메리카의 게릴라 집단의 명칭은 대개 그 지역 출신으로 과거 반란을 주모했던 혁명가들의 이름에서 유래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들의 저항, 아니 이들의 고통이 얼마나 오랜 역사적 연원을 지니는지 알 수 있다.


-> FMLN(Frente Farabundo Marti de Liberación Nacional)  파라분도 마르티 민족 해방 전선은 1980년 8월에 4개의 게릴라가 모여 결성한 무장 혁명 조직으로 1980년부터 1992년까지 미국의 지원을 등에 업은 우익 쿠데타세력에 맞섰던 게릴라 저항조직이다. UN의 중재로 평화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엘살바도르 내전은 18만명의 희생자를 냈다. 지난 2009년 FMLN은 항쟁 20년만에 엘살바도르 대선에서 승리하여 평화적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라틴아메리카 민중들 전체에 커다란 자극을 준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난다. 쿠바가 소모사 정권을 전복시키는 혁명에 성공했고, 베트남이 거대한 코끼리인 미국의 밑창에 구멍을 내는 승리를 거두었고, 이란에서는 팔레비 정권이 강력한 비밀경찰과 미국의 지원을 물리치고, 호메이니의 이슬람 혁명을 성공시킨다. 이런 연이은 혁명의 성공은 라틴아메리카 민중들에게 큰 자극이 되었고, 1970년대부터 엘살바도르 안에서도 군부독재에 대한 좌익 게릴라 조직의 저항이 시작된다. 그리고 1980년 분열되어 있던 게릴라 조직은 파라분도 마르티 민족해방전선(FMLN)으로 통합되기에 이르렀다. 같은 해 3월 로메로 대주교 암살사건으로 촉발된 엘살바도르 내전은 더욱 극렬한 상황으로 치닫는다. FMLN은 1983년에 이르러서는 엘살바도르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거대 세력으로 거듭나지만 그 와중에 엘살바도르 군부는 '
죽음의 군단'이란 퇴역군인과 치안경찰 등 우익 민병대를 조직해 무수한 민간인들을 학살한다.




기자 정신과 보여주
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미국 언론

영화는 그런 시대 배경 속에 있으며, 그중에서도 FMLN의 결성과 로메로 주교의 암살, 새로운 람보 - 레이건의 등장이란 극적인 순간의 엘살바도르를 다룬다. 영화 속에서 제임스 우즈는 그의 연기사상 거의 최고의 연기 솜씨를 보여주는데, 그 자신이 리처드 보일이 아닐까 싶을 만큼 대단했다. 영화는 미국의 라틴아메리카의 소국 엘살바도르를 어떻게 실질적으로 지배하는가를 할리우드 영화치고는 대단하단 생각이 들만큼 잘 지적해내고 있다. 비판의 화살은 단지 정치인들에게만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거기엔 한때 우리 사회에서 대통령을 하야시킬 만큼 대담한 비판정신과 공정성으로 찬탄의 대상이 되었던 미국의 언론이 어떤 방식으로 교묘하게 자본의 검열을 받는가를 살필 수 있다.


미국은 베트남전의 패배를 군사적 패배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베트남전의 패배를 내부의 전쟁에서 패한 것, 언론과의 전쟁에서 패한 것, 고도의 정치전, 심리전에서 패배한 것으로 생각한다. 베트남에서의 패배를 군사적인 패배로 생각지 않는 까닭은 미국이 세계 도처의 전쟁에 참전한 이래 거듭되는 그들만의 산술방식에서 비롯되는 것인데, 기실 이런 전통은 인디언 헤드 헌터식 산술법이란 지극히 미국적인 산술법에 의한 것이다. 예를 들어 서부영화에 등장하는 인디언 헤드헌터들의 방식, 인디언 머리 가죽을 벗겨오면 가죽 당 얼마씩 달러를 지불하는 것 말이다. 베트남전에서 베트콩의 귀를 잘라 수집하는 것도 어쩌면 이런 전통에서 유래한 것이다. 미국은 전사자의 시체 수로 전투의 승리를 가늠한다. 미군 전사자보다 많은 베트콩을 죽인 전투라면 그 전투는 승리한 것이고, 이런 식의 전투에서 미국은 단 한 차례도 패배한 적이 없었다.


보일은 엘살바도르의 진실을 파헤치고자 하지만, 베트남전 이후 새로운 보도 정책과 검열 방식을 채택한 미국에서는 취재는 가능할지 모르나 이를 보도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 되었다. 종군기자들의 사망이 부지기수로 늘어나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의 일이다. 이제 미군을 수행하는 종군기자들은 전쟁에서 가장 먼저 타깃이 되거나 에어컨디셔너에 의해 기온이 조절되는 안락한 브리핑 룸에서 미군 보도통제관이 전해주는 뉴스만을 앵무새처럼 되뇌는 존재가 되었다. 그 결과 미국의 시청자들은 안방에서 편안하게 매번 최고의 민간인 학살 수치를 갱신하는 미군의 전투 수행 방식을 역사상 가장 깨끗하고, 과학적인 첨단 전쟁으로 인식하게 된다. 미군은 그네들이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줌으로써 남북전쟁 당시 브로디의 사진처럼 전쟁은 일어났지만 단 한 명의 전사자 시신도 발견할 수 없는 화면을 본다. 영화 속에서 보일은 미 대사관에서 벌어지는 파티 석상에서 이런 기자들을 한껏 조롱한다. 그러나 보일 자신도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며 우익 지도자에게 밉보여 자신의 친구인 수녀일행이 강간당하고, 살해당하는 일을 겪는다.


엘살바도르와 광주, 1980년

나는 이 영화를 지난 1988년에 보았다. 87년의 후폭풍을 겪고, 88올림픽을 앞둔 노태우 정권은 민주화된 상징으로 코스타가브라스(Constantin Costa-Gavras)의 영화 <Z>와 올리버 스톤의 <살바도르>를 극장에서 개봉할 수 있게 해주었다. 1980년 5.18 광주로부터 8년 뒤에 다시 보는 1980년 엘살바도르의 상황은 광주라는 고립된 공간에서 최후의, 최후까지 저항했던 사람들을 떠올리게 해주었다. 나는 극장의 어두운 공간에서 엘살바도르가 아니라 광주를 보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죽은 수녀들의 시체가 어둠 속에서, 흙 속에서 발굴되어 나오는 장면을 보며, 나는 욕지기를 느꼈고, 광주 인근의 어느 이름 없는 둔덕 속에 묻혀있을 시신들이 떠올랐었다. 레이건의 등장이 전혀 다른 새로운 미국의 출현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트루먼 대통령 이래 지속되어 온 미국의 대외정책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진 일이었고, 1980년의 봄은 그런 미국의 저강도전쟁이란 정책의 변화 속에서 이루어진 소리 없는(?) 학살들이었다. 레이건의 등장과 함께 전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전쟁이 일어났다. 그러나 그런 사실들은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한 전쟁이고, 학살이었으며, 단지 그 나라 독재정권이 한 짓들이었다. 미국은 베트남전 이래 직접 개입하는 방식 대신 그들의 하수인을 부리는 방식을 택했다.


리처드 보일은 엘살바도르에서 한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그녀와 결혼하여 살바도르를 빠져나오게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미국에 도달한 직후 국경감시대에 의해 그 여인은 다시 엘살바도르로 되돌려 보내진다. 그녀를 실고 떠나는 국경감시대 차량을 향해 보일은 외친다.
“너희들은 되돌려 보낸다는 게 뭘 의미하는지 모른다.”고 말이다. 이 영화 역시 올리버 스톤의 작품들에 대해 쏟아지는 일반적인(인종 편견적이라거나, 미국 비판이지만 그것은 또 다른 이미지의 미국, 인권국가, 자유로운 미국에 대한 이미지를 증대시키는데 이바지한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하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고 있는 우리 영화인들 혹은 감상자들에게 되묻고 싶은 것이 있다. 그래, 우리는 이 영화보다 조금 더 나은 영화를 만들었는가? 만들고 있는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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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20세기의 역사 - 마이클하워드. 로저루이스 외 | 차하순 옮김 | 이산(2000)


이 책은 지난 1998년 영국 옥스포드 대학 출판부에서  <20세기의 역사 "The Oxford History of the Twentieth Century">를 번역한 책이다.  


이런 류의 책들에 대한 독후감을 하기 위해서는 무척 많은 역량을 필요로 한다. 이유는 일단 책 자체가 다루고 있는 하중이 만만치 않은 데다가 분량 역시 만만치 않은 탓이 크다. 일단 그 묵직함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가장 좋은 방법은 목차를 보여주는 것이다. 목차는 책을 읽기 위해 필요한 일종의 로드맵이자, 그 책의 구조를 보여주는 가장 합리적인 설계도인 셈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중복 출판의 악명이 높은 곳이라면 목차의 중요성은 더욱더 커진다. 만약 같은 책이 중복 출판되었는데 그 중에서 좀더 좋은 책을 고르고 싶다면 우선적으로 목차를 자세히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목차가 상세하게 되어있고, 찾아보기가 잘 되어 있는 책일수록 번역의 질이 전반적으로 높은 책일 확률이 비약적으로 높아진다. 잡소리가 길었는데, 굳이 그런 이야기를 서두에서 장황하게 늘어놓고 있는 이유는 이 책이 그런 점에서 질적으로 매우 뛰어나기 때문이다.



이 책은 크게 5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1장 '20세기의 구조'에서는 20세기를 규정할 수 있는 성격들을 모두 7개 단락으로 나누어 풀고 있다. 물론 그 면면이 20세기의 구조를 밝히는데는 과부족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무엇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다음의 세 가지이다. 하나는 이 책이 기술된 시점이 20세기 말엽의 현실사회주의권 몰락의 역사적 결과를 바라보며 기획되어서 나토의 유고공습 시점에 집필되었다는 것이고, 둘째는 이 책의 주요기술자들이 영미권 역사학자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셋째는 이들의 시각이 실증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으나 주된 관점은 영미적인 시각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먼저 그런 세가지 사안들을 유념해서 보아야 한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20세기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또 한 권의 주목할 만한 책인 에릭 홉스봄의 "극단의 시대"와는 극명한 차이를 가지고 있다.

대표 저자인 마이클 하워드 (Michael Howard)는 1922년 영국 출생으로 제 2차 시계대전에 참전하였고, 1946년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하여 이듬해인 1947년부터 1963년까지 런던대학 킹스 칼리지에서, 1963년부터 1968년에는 전쟁사 석좌교수로 재직하였다(마이클 하워드의 책 중 국내에 번역된 것은 이외에도 "평화의 발명" 등이 있다). 그외에도 로저 루이스, 윌리엄 맥닐, 1979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스티븐 와인버그, 우리에게도 중국사 전문가로 널리 알려진 조너선 스펜스(그의 책은 국내에 번역 출판된 것이 많은 편이다.), 아키라 이리에, 사회학자 랠프 다렌도르프 등이다. 이 책은 단지 저자들이 유명한 것으로만 이야기할 수는 없다. 그것을 번역해낸 연구자들 역시 국내의 저명한 학자군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 우선 대표 번역자로 서강대 명예교수인 차하순 선생을 비롯해서 경제쪽의 인하대 경제학과의 김진방, 중동분야의 권위자인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이희수 선생 등등 그들이다. 이외에도 라틴 아메리카 부분을 번역한 서성철 선생 등도 모두 해당 분야의 최고 전문가 그룹이다.

그렇다면 그 내용도 과연 최고인가?를 물을 수 있을 것이다.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은 앞서 말했던 이 책의 세 가지 특징을 염두에 두라는 것이다. 이 책은 이념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실증적인 관점을 유지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영미적 시각을 고수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즉, 이 책에서 구소련과 중국, 공산주의는 전체주의와 다르나 아주 다르지는 않다는 식으로 다뤄진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세기에 대해 쓰여진 현존하는 역사서 중에서 '아직까지는' 이 책을 열 손가락 안에 꼽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저자들을 비롯해서 근현대사를 연구한 많은 학자들이 우리들이 흔히 생각하듯 물리적인 시간으로서의 20세기는 기왕에 종료되었으나 지난 세기인 19세기가 역사적으로는 과연 언제 종료되었는가를 규정짓는데 여러 의견이 있는 것처럼 물리적인 21세기는 시작되었으나 역사적인 맥락에서의 20세기는 아직 종료되지 않았다고 볼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 책이 말하고 있는 20세기는 먼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과거의 관점과는 다른 새로운 관점에 의한 해석의 통로들을 열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빌헬름 뢴트겐이 X선을 발견한 것은, 사건 자체로는 그다지 대단한 것이 아니었으나 그것을 통해 19세기의 물리학자들이 더이상의 과학 발견은 없다고 믿었던 자연상의 발견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제공해주었고, 그로부터 새로운 20세기의 물리학이 시작되었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우리는 20세기와 아직까지는 너무나 밀접한 삶을 살고 있으므로 20세기를 역사적으로 규정짓고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종료된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이 책은 서구 제국주의의 팽창으로부터 양차 세계대전, 스페인, 러시아 혁명과 대공황, 냉전에서 공산주의의 붕괴 그리고 홍콩의 중국 반환과 동티모르 사태 등 정치적인 사건의 맥락에서 혹은 양자역학과 상대성 이론에서 DNA  복제 문제에 이르는 다종다양한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세계화에 대해 비교적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아마도 이 책이 2000년에 나왔다면 틀림없이 1999년의 세계화에 대한 전세계 민중들의 뜨거운 반대 함성을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1999년 시애틀 전투 말이다. 어떤 맥락에서도 21세기가 20세기보다 희망적일 것이라는 증거는 없으며 그것은 앞으로 우리들의 삶으로 체현되는 역사이기 때문이다.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당신에게 20세기는 이미 지난 과거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20세기는 당신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여전히 현재 지속형으로서 존재하며 당신과 나, 우리 지역사회와 대한민국, 그리고 나아가 한반도와 동아시아, 세계 문제에 계속되는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당신의 20세기를 찾아가는 지적인 여행을 펼치는 것은 어떠한가?
이 책의 작은 재미 중 하나는 본문 사이사이에 배치된 120컷에 달하는 컬러와 흑백화보다. 또, 70쪽에 이르는 20세기 연표는 지난 100년의 흐름을 각 분야별로 일목요연하게 살펴볼 수 있도록 편집되어 있는데, 바람구두연방의 문화망명지에서 제공하고 있는 연표를 만들 때도 참고하였다. 물론 전적으로 참고하지는 않았다.

끝으로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고, 그와 더불어 번역에는 제법 문제가 많지만 에릭 홉스봄의 "극단의 시대"도 함께 읽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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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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