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서양 20세기사 -
박무성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2년


세기말이었던 지난 2000년 무렵 나는 혼자서 이런저런 궁리 끝에 내나름으로 지난 20세기 세계사적으로 의미가 있었던 혹은 세계를 움직인 10대 사건을 정리해보기로 결심했었다. 생각외로 이런 궁리는 재미있다. 오늘 하루 내게 일어난 일 가운데 재미있었던 혹은 재미와 상관없이 기억할만한 일 3가지를 정리해보는 일, 한달 동안, 아니면 1년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10대 사건을 언론사에서 정리하는 것처럼 혼자 해보라. 그렇게 해서 막상 정리된 사건들을 보면 정말 이 한 해동안 이렇게 많은 일이 있었던가? 싶기도 하고, 저 일이 올해 있었던가? 싶기도 하다.

내가 궁리 끝에 정리해낸 "20세기, 세계를 움직인 10대 사건"은 다음과 같았다.

1.유럽중심의 세계통합과 그 유산들
2.제1차 세계대전과 유럽 제국주의의 몰락(새로운 패권국가로서 미국의 등장)
3.사회주의 혁명과 전체주의의 등장
4. 대량생산·소비 사회의 도래와 경제 대공황
5. 제2차 세계대전과 핵시대의 도래
6. 팍스 아메리카나와 유럽의 재건
7. 제3세계와 청년운동
8. 환경파괴와 여성해방운동
9.대중사회의 도래와 정보기술혁명
10. 현실사회주의 몰락과 세계화
 
한 세기를 움직인 사건을 정리해보니 소위 '역사의 맥락' 이 잡히는 것 같기도 했다. 이를 다시 주제별로 분류하고, 이와 관련해 읽어볼만한 책 10권씩을 선정하고, 이것을 스터디한 뒤에 내나름의 생각을 원고지 100매 내외로 정리해보려는 야무진 계획을 세웠었다. 물론 2001년이 시작되기 전에 이 모든 것(내가 나에게 내어준 숙제)을 마무리하리라 마음 먹었지만, 모든 면에서 역부족이란 분루를 삼키며 물러났었다.

박무성 단국대 명예교수의 이 책 "격동의 서양 20세기사"는 그런 점에서 나에게 중요한 참고서적 중 하나였다. 역사를 기술하는 방식에서 역사가의 몫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 역할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는 역사학계의 오랜 화두 가운데 하나이다. 물론 역사서를 읽는 독자들의 입장에서도 에세이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많이 녹인 책을 읽을 것인지, 아니면 랑케식으로 실증에 치중해서 단순히 역사적 사실관계를 추적한 책을 읽을 것인지... 그렇다면 이 둘 가운데 어느 것이 옳은 방식일지, 어느 것이 보다 유익할지, 어느 것이 보다 재미있을 것인지는 고민해볼 만하다.

내 체험에 의거해 이야기해보자면 둘 다 읽는 것이 가장 좋다. 예를 들어 부부 혹은 애인 사이에 다툼이 있는데, 나는 이들 양자와 친분이 있다고 하자. 이쪽의 이야기와 저쪽의 이야기를 번갈아 들어보면 다들 나름의 입장이 있기 마련이다. 이유없는 무덤 없다는 격언이 증명하듯 모든 행위에는 그 이면에 도사린 원인이 있다. 이럴 경우 어느 일방의 이야기만 듣노라면 입체적인 모습은 그려지지 않는다. 만약 영국이 도발한 어느 전쟁에 대해 알고 싶다면 영국 이야기만 듣는 것으로는 부족하단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았을 때 미국인들이 저술한 미국의 범죄 혹은 파렴치한 역사 이야기를 미국인 저널리스트들의 기술로 읽는 것은 일정한 한계를 노정하기 마련이다. 이런 한계를 보정하기 위해서는 굳이 국적에 의하지 않더라도 다양한 관점을 알기 위해서라도 여러 종의 책을 읽는 것은 필요한 일이 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박무성 교수의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유익하고, 일정한 한계를 지닌다.
물리적인 시간으로서의 20세기는 분명 1901년에 시작해서 2000년에 종료되었지만, 역사적으로 20세기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를 놓고는 아직도 많은 이견들이 있다. 어떤 이는 대영제국의 마감을 알리는 빅토리아 여왕의 죽음 이후를, 어떤 이는 그로부터 훨씬 뒤인 제1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하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러시아 10월 혁명을 기점으로 잡기도 한다. 이는 역사를 기술하는 이의 관점을 어디에 두고 있는가를 묻는 일이기도 하다. 박무성 교수는 이 책의 시발점을 제1차 세계대전으로 놓고 있는데, 이는 저자가 독자들에게 은연중에 보내는 일종의 메시지일 수 있다. 다시 말해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이야기할 20세기의 역사는 서양을 중심으로 한 정치학적인 접근이 될 것이며, 현실 정치가 서로의 세력 균형을 어떻게 잡아가는가? 균형의 파괴가 역사적으로는 어떻게 드러나는가? 를 중심으로 기술할 예정이란 뜻이 된다.

그것은 전체 29장으로 되어 있는 이 책의 소제목들만 살펴보더라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인류사를 격변시킨 제1차 세계대전, 유익한 베르사유 체제의 성립과 붕괴, 비운의 바이마르 공화국,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 ...(중략)... 동유럽의 자유화운동과 공산체제의 붕괴, 독일의 통일과 그후, 북유럽 및 남유럽 국가들의 민주화, 세기말엽 영국의 변혁, 1990년대의 미국, 유럽의 변혁, 20세기의 서양문화, 서양 20세기사의 장을 닫으며"
서양의 20세기를 문화적인 관점에서 다룬 부분은 실질적으로는 맨마지막에 해당하는 28장에 배치해두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을 통해 서양의 문화나 예술을 이해하기 위한 필요로 접근하는 이에겐 그다지 도움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이 지닌 미덕은 그런 부분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분야를 한정시킨 덕에 이 책은 몇 가지 장점을 지닌다. 우선 지리학적으로 그 대상을 서양(미국과 유럽)으로 국한시켰다는 점, 주로 다룰 분야를 정치적인 부분으로 한정했다는 점이다. 그 결과 이 책에서는 그간 우리가 쉽게 접하기 어려웠거나 정리하기 어려웠던 가까운 근과거의 유럽과 미국을 발견할 수 있고, 미국과 유럽이 주고 받는 체스게임의 관전자로 동참할 수 있게 되었다.

전체 29장을 다시 구분해보면 1장부터 9장에 이르는 부분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부터 시작된 유럽의 몰락과정을 추적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을 실제로는 동일한 목적과 원인으로 시작된 하나의 전쟁으로 파악하고 있다. 동일한 목적이란 유럽의 통합 - 물론 그 안에는 기존(식민지 시장을 이미 확보한) 공업국가인 영국과 프랑스, 신흥 공업국가인 독일의 대립이라는 경제적 요인들, 신흥강국으로 부상하는 미국을 견제하며 세계적 패권국가로서 유럽을 지속시킬 - 필요성을 느낀 유럽 제국들이 힘의 균형이 아닌 통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벌어진 전쟁이란 것이고, 원인이란 이런 요인들이 민족주의와 결합하면서 서로 그것을 주도 혹은 견제하고자 했던 것을 말한다. 영국과 프랑스는 균형과 견제를, 독일은 통합을 주장한 셈인데, 여기에 러시아 혁명 이후 등장한 사회주의 세력에 대한 서구 자본주의 세력의 통일 역시 중요한 몫을 한다. 히틀러가 마지막까지 구원의 희망을 찾고자 했던 부분도 여기에 있다.

제10장부터 제19장까지는 크게 보아 서구의 냉전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진정한 의미에서 제2차 세계대전은 1939년 9월 1일 독일의 폴란드 침공에서 시작하여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으로 끝난 전쟁이 아니라 1947년 3월 트루먼 독트린 이후 시작되어 1991년 8월 19일 소련의 보수강경파에 의한 군부 쿠데타 실패로 끝난다. 이 시기에 서유럽 일부 지역을 제외한 세계 각처에서는 전쟁, 무력분쟁, 군부 쿠데타, 민간인 학살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웠으나 궁극적으로는 전쟁 상황일 수밖에 없는 충돌이 지속되었고, 나는 이것을 명칭은 어찌되었든 또 하나의 세계대전으로 보고 있다. 제20장부터 제27장까지는 소련의 해체 이후 미.소의 양극체제에서 미국에 의한 일극체제로 변모해가는 과정과 동서냉전 시기의 막바지에 유럽이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다룬다.

앞서 말한 이 책의 장점은 20세기사에 대한 기술이 주로 미국과 소련의 냉전에 치중된 나머지 소홀해지기 쉬운 유럽에 대해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제11장 '영국의 변혁' 편에서 우리는 노동당과 보수당의 양당 체제가 확립된 영국과 대영제국의 붕괴 과정을 살필 수 있다. 제12장 '프랑스의 변혁' 편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의 패배자에서 나치 제3제국의 협력국, 그리고 다시 제2차 세계대전의 전승국으로 극적인 변환을 거친 프랑스가 어떻게 강력한 대통령 중심제 국가, 드골이즘의 '위대한 프랑스'가 되어가는가를 볼 수 있으며, 제13장 '독일.오스트리아.이탈리아의 대변혁'에서는 세계대전의 패자였던 이들 나라들이 마셜 플랜과 미국의 후원으로 소위 자유진영의 일원이 되는가를 살필 수 있다. 이외에도 제21장 '동유럽의 자유화운동과 공산체제의 붕괴', 제22장 '독일의 통일과 그후', 제23장 '북유럽 및 남유럽국가들의 민주화' 등은 우리가 쉽게 접하기 어려웠던 나라들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여기에서 한 가지 언급해둘 필요성을 느끼는 부분은 우리가 서양이라 하면 쉽게 느끼게 되는 지리적 인상과 상관없이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서양에서 '라틴아메리카'는 완전히 제외되었다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우리가 이 한 권의 책을 통해 20세기 서양정치사를 통달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책은 20세기 서양정치사를 이해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역사적 사실들을 충실하게 다루는 중요한 텍스트 구실은 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는 가까운 근과거를 다루기엔 여러가지 문제를 지닌다. 과거의 여러 사건들 가운데 당시로서는 하찮은 사건에 불과한 것이 결과적으로 중대한 사건으로 재해석할 필요가 생기기도 하고, 당대에는 중요한 사건이었음에도 후세의 평가에 따라서는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저자는 "역사는 새롭게 쓰여지는 것"이란 역사학의 중요한 화두를 다시 끄집어낸다. 물론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며 다소간의 불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관점이란 측면에서 서구와 비교해 동구 진영에 대해서는 보다 냉정한 시선을 유지한다는 점은 그에 대해 다소 동정적인 입장을 지닌 독자의 입장에서는 보다 객관적일 수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을 남긴다.

나는 제1차 세계대전+제2차 세계대전을 포함해 하나의 전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말을 했고, 진정한 의미에서 제2차 세계대전은 트루먼 독트린 이후 소련의 붕괴 사이에 있었던 냉전을 다른 의미에서 세계대전으로 보았다. 그렇다면 제3차 세계대전은 언제, 누구에 의해 시작할 것인가? 라는 의문을 품을 수도 있겠다. 그에 대한 나의 답변은 이렇다. 제3차 세계대전은 지난 2001년 9월 11일 이미 시작되었다. 물리적 시간으로의 21세기가 시작되었을 때 세계 인류는 이제야말로 인류가 번영과 평화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20세기 인류가 남긴 죄악의 유산들은 여전히 인류가 짊어질 형벌로 남았다.

* 참고로 한 말씀 드리자면 2000년 현재 프랑스의 국방비 총예산은 343억불이다. 미국은 프랑스의 국방비 총예산보다 많은 금액을 단지 무기개발연구비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미국을 제외한 세계 모든 나라의 국방비 총예산을 합친 금액은 미국의 국방비 총예산인 2,947억불 보다 적다. 여기에 더 추가해서 말하자면 우리가 자주국방의 상징처럼 숭앙해 마지 않는 이스라엘이 한해 사용하는 국방비는 94억불이고, 우리가 사용하는 국방비는 128억불이다. 물론 국민 1인당으로는 우리가 더 적다. 전세계 국방비의 1%를 감축할 수 있고, 그 비용을 기아구제로 돌릴 수만 있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상에서 굶주리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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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 샤갈 ㅣ Taschen 베이직 아트 (마로니에북스) 1
인고 발터 지음, 최성욱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5년 6월


 


독일의 유명한 미술전문 출판사 Taschen의 <베이직 아트 시리즈> 중 한 권인 『마르크 샤갈』의 책날개에는 샤갈의 진면목을 살펴볼 만한 샤갈의 말이 있다. “선한 사람이 나쁜 예술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위대한 사람이라도 선하지 않다면 진정한 예술가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선한 사람이란 말은 나쁜 예술가란 말의 개념만큼이나 모호하지만, 선하지 않다면 진정한 예술가가 될 수는 없다는 말은 더욱 모호하다. 어쨌든 우리는 이 말을 통해 샤갈이 생각하는 진정한 예술가란 위대함보다는 선함이란 덕목을 갖춰야 하는 존재란 것을 눈치 챌 수 있다.


마르크 샤갈이란 이름에서 우리는 그의 작품들이 지닌 몽환적인 이미지 못지않게 그 자신에게서도 몽상가의 이미지를 쉽게 연상할 수 있다. 샤갈의 작품에서 특정한 유파를 떠올리기란 쉽지 않으며, 샤갈 이후에도 샤갈처럼 그리는 작가를 보지 못했다는 점에서 내게 그는 전무후무한 예술가다. 저자 인고 발터는 그를 “긴 생애 동안 주변인으로, 예술적인 기인으로 살았다. 샤갈은 다양한 세계를 연결하는 중개자였다, 유대인이었지만 우상을 금하는 관습을 당당히 무시했고, 러시아인이었지만 자기만족에 익숙한 나라를 뛰쳐나왔고, 가난한 부모 밑에서 성장했지만 프랑스 미술계의 세련된 세계로 도약했다.”고 평한다.


러시아 지역을 포함한 중동부 유럽의 유대인들을 아슈케나지라 부르는데, 이들은 스페인계 유대인인 셰파르디와 더불어 유대인을 구성하는 최대 집단이다. 한때 이슬람이 지배했던 스페인의 레콩키스타(Reconquista)가 완료된 1492년 이후 스페인에서 이슬람 세력을 포함한 대규모 유대인 박해가 있었던 것처럼 18세기 이후 20세기 초엽까지 동유럽(특히, 러시아)에서도 포그롬(pogrom)이라는 대규모 유대인 박해가 있었다. 마르크 샤갈은 이런 시대(1887년 7월 7일 출생)에 러시아에서 태어나 성장한 유대계 러시아인이었지만 그의 부모는 아슈케나지의 공동체 언어였던 이디쉬어 보다는 러시아어를 사용하도록 했다. 박해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양친의 현실적인 선택이었는지 몰라도, 러시아와 유대계 혈통이란 이종교배의 덕분으로 그는 유대공동체 문화와 러시아 문화를 결합시킨 독특한 그만의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었으리라.


인고 발터와 라이너 메츠거의 공저인 『마르크 샤갈』은 여러 가지 면에서 균형 잡힌 미술 서적의 면모를 보인다. 작가의 생애를 중심으로 작품세계의 변모를 살피는데, 문자 텍스트와 도판을 적절하게 안배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이 책의 구성은 러시아에서 보낸 소년시절을 통해 샤갈이란 독특하고 모호한 세계관의 형성과정을 독자로 하여금 짐작해볼 수 있도록 한다. 그는 러시아에서 보낸 어린 시절을 통해 정교에 바탕을 둔 러시아의 민속/민중(folk)문화와 유대교적 전통이라는 모순을 자신의 작품 속에서 평화롭게 해결한다. 파리 생활을 통해 그는 유럽의 변방인에서 중심으로 진출하게 되고, 고향을 떠난 샤갈의 향수는 파리의 세련된 문화와 만나 한층 더 고양된다. 하지만 전쟁과 러시아 혁명은 파리의 이방인이자, 세계의 이방인이었던 샤갈에게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킨다.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이기도 하지만 샤갈은 러시아 혁명의 초창기 동안 혁명을 지지하는 예술가의 일원으로 짧지만 혁명 과정에 참여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의 예술적 성향은 정치와 예술을 병행할 수도, 예술을 종속시킬 수도 없었다. 그는 다시 파리로 돌아왔고, 그곳에서 이방인으로서 자신의 위치를 찾았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으로 나치에 위협받게 되었을 때 어쩔 수 없이 파리를 떠나긴 했지만 전후 그는 프랑스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의 자유로운 영혼이 파리 시민이란 위치에 안주했던 것은 아닌 듯싶다. 그가 즐겨 그렸던 “서커스단”은 샤갈의 영혼 속에 깃들어있을 모티프(motif)들을 엿볼 수 있게 해주는데, 샤갈 자신은 “내게 서커스는 마술적인 쇼다. 태어나고 다시 사라지는 세상과 유사하다.”고 말한다.


그에게 세상은 생기 넘치는 카니발의 소란스러움, 흥겨운 음악과 놀라운 마술, 기이한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는 낯설음으로 가득한 곳이었다. 서커스 무대에서는 세상의 법칙이나 규율은 간단히 무시되고, 그 어떤 신기한 일이 벌어져도 이상할 것이 없는 곳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바라보는 이들에게 모종의 변화가 일어나길 바랐다. 그는 그런 변화의 근원이 마음과 영혼에서 비롯된다고 믿었고, 마음과 영혼에서 일어나는 변화만이 사회구조나 예술의 변화를 촉진하는 삶의 열쇠가 된다고 생각했다. 유대인의 박해와 유대민족을 구성하게 되는 거대한 에피소드인 구약성서의 「출애굽기」를 그린 샤갈의 작품, 정중앙에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모습이 커다랗게 묘사되고 있다. 십계를 들고 있는 모세와 수탉, 거꾸로 유영하는 사람들, 불타는 마을, 아기(예수)를 안고 있는 여인(마리아)과 염소. 샤갈의 「출애굽기」를 보면서 마치 불교미술의 만다라를 보는 듯한 마음이 든 것은 아마도 샤갈의 작품 세계가 이렇듯 절묘하게 모순이 균형을 이룬 세상을 창조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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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마르크스 그의 생애와 시대 - 이사야 벌린 | 안규남 옮김 | 미다스북스 | 2001


"모든 것을 의심해 보라(De omnibus dubitandum)."


이 말은 칼 마르크스가 가장 좋아했던 좌우명이라고 한다. 모든 것을 의심해보고 이를 다시 재정립했던 사상가 칼 마르크스. 이와 같은 인물에 대해 일대기도 아니고, 평전을 쓴다는 일을 그것도 불과 28세의 나이로 해냈다면, 더군다나 그 책이 60여년이 흐르는 동안 여전히 마르크스에 대한 가장 중요한 평전의 지위를 잃지 않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을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그러나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미덕이자 피할 수 없는 난제는 마르크스에 대한 입문자용으로 읽기에는 다소 녹록치 않은 난이도를 지녔다는 점이다.

 

같은 해(2001)에 출간된 프랜시스 원의 『마르크스 평전(푸른숲)』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보다 나은 선택일 수 있다. 물론 누군가 내게 마르크스에 대한 입문서 내지 그의 평전을 추천해달라면 나는 별 고민 없이 우선적으로 이사야 벌린(Isaiah Berlin)의 이 책과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알렉스 캘리니코스가 쓴 마르크스의 사상(북막스, 2000)』 - 이 책은 책갈피 출판사에서 나온 『마르크스의 혁명적 사상』과 동일한 책이다 - 을 추천하겠다. 물론 캘리니코스의 책은 전체적으로 보자면 마르크스의 생애는 부분적으로 다루는 대신 그의 사상을 개관하는데 치중하는 편이고, 프랜시스 원의 경우엔 마르크스의 생애사에 집중한 편이므로 나름대로 일장일단이 있다고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명확한 구분 없이 혼용되는 편이긴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건 평전은 연대기와 전기와 명확하게 구분될 필요가 있다. 평전과 전기, 혹은 연대기를 구분해야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가장 큰 차이점은 평전은 그 용어 자체가 잘 설명해주듯 작가의 비평(批評)적 관점이 삽입된다는 것에 있다. 그렇기에 당대의 뛰어난 평전 작가들은 이미 그들 자신이 뛰어난 비평가이자 역사가이고 저술가였다. 예를 들어 트로츠키와 스탈린의 평전을 저술했던 아이작 도이처, 마리 앙트와네트와 프랑스 대혁명에 대한 뛰어난 글을 남겼던(그 외에도 많지만) 슈테판 츠바이크, 바쿠닌에 대한 평전을 저술했던 E.H. 카 등은 이미 그들 자신이 뛰어난 문장가이자 사상가, 역사가들이었다. 우리는 이들의 평전을 통해 당대의 사회와 시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위인들의 대화를 엿들을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이사야 벌린의 마르크스 평전을 읽음으로써 위대한 두 사상가의 대화에 관찰자이자, 적극적인 독해자로서 참가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이 책은 사상사가(思想史家)라는 저자 이사야 벌린의 위치가 잘 드러나고 있다. 그런 까닭에 마르크스의 사상과 이론에 대해 사전 지식이 있는 사람이거나 혹은 이사야 벌린은 마르크스를 어떻게 해석하고 있을까를 견주고, 궁리해가며 읽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그쪽이 훨씬 더 유익하고 재미있는 독서 체험이 될 것이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대중적'이라는 평가가 지탄받을 무엇이 아니듯, 정당한 까닭으로 보다 ’지적인' 수준을 요구하는 독서가 지탄받을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마치 칼 마르크스가 노동자를 위한 투쟁을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그 자신은 부르주아적 취향을 지녔다고 공격당하는 것과 흡사해 보이는데, 어떤 의미에서건 마르크스는 당대의 교양을 두루 습득한 인물이었던 것에는 틀림없지만, 이것을 당대의 속물적 과시에 연연해하는(이는 또한 마르크스가 평생을 두고 혐오했던 것이기도 하다) 부르주아적 취향과 혼돈할 필요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다시 말해 교양을 부르주아만의 전유물로 생각하는 경향은 그때나 지금이나 냉소적인(좌파 혹은 노동자는 우아하게 살고 싶어하지 않는다거나 교양을 경시한다는) 착시 현상이다.

 

물론 그럼에도 이 책이 좀 더 대중적인 난이도를 지니지 못한 점, 좀 더 풍성한 내용으로 꾸며지지 못한 점은 다소 아쉬움으로 남는다. 벌린을 위해 약간의 변명을 하자면 이 평전은 그가 28세 때 집필한 것이고, 애초에 그가 집필했던 원고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원고의 분량 보다 많았다.(물론 그렇다고 해서 현재의 평전보다 쉬운 글이 나왔을 것 같지는 않지만) 이 책의 말미에 실린 앨런 라이언은 이사야 벌린의 책이 처음 출간될 당시 “영어권에서는 이런 종류의 주제에 관한 진지한 학문적 연구가 거의 없었다.”고 말한다. 위와 같은 고백을 논외로 하더라도 마르크스에 대한 그간의 연구는 그가 사망했을 무렵, 영어권에서는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으며, 그의 사후 러시아혁명을 통해 수립된 이른바 공식적 마르크스주의에서 바라보는 마르크스, 세계대전과 헝가리 사태를 겪으며 재발견되기 시작한 인간적(청년) 마르크스, 다시 루이 알튀세르에 의한 구조적 마르크스에 이르는 여러 연구 방향과 해석에 따라 각기 다른 얼굴의 마르크스가 출현해 왔음을 알 수 있다.

 

그와 같은 해석과 관점의 차이, 시대의 변천에도 불구하고 이사야 벌린의 마르크스의 평전이 여전히 생명력을 잃지 않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는 분명 마르크스의 사상 그 자체에서 발견되어야 하겠지만, 또 하나의 중요한 요인은 이사야 벌린의 뛰어난 지적 통찰과 한 인물의 사상과 지적인 흐름을 더 이상 요약하기 어려울 만큼 생생하게 살려내고 있다는 점에 있다. 이사야 벌린은 마르크스를 계몽주의 산물이자 계몽주의에 대한 낭만주의적 반동의 산물로 해석하면서 제1장 서론에서 "모든 것을 의심해 보라(De omnibus dubitandum)."던 마르크스의 모토에 지극히 합당한 인물평을 적고 있다.

 

마르크스는 선천적으로 강하고 능동적이며 실제적인 정신의 소유자였다. 그는 불의에 대한 감각이 남달랐으며 쉽게 상처를 받거나 감상에 빠지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는 부르주아지의 우둔함은 물론 지식인들의 자기만족적인 미사여구와 주정주의도 혐오했다. 그는 부르주아지를 위선적인 데다가 자기 기만적이며 부와 사회적 지위를 얻는 데 골몰해서 당대의 특징적인 사회적 현실을 전혀 보지 못하는 사람들로 평가했고, 지식인은 현실과 동떨어진데다가 진위 여부에 관계없이 하나같이 사람들을 자극하는 데 불과한 잡담이나 일삼는 사람들로 판단했다. <본문 20-21쪽>

 

이사야 벌린의 문장을 읽노라면 그 자신이 마르크스 못지않게 불친절한 사람이면서, 그가 마르크스에 대해 묘사하고 있듯 천재적인 발상에 비해 더딘 문장에 대해 조급해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만든다.

 

생존을 위한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내부의 혼란과 궁극적 붕괴를 향해 막다른 골목으로 치닫는 사회는 반동적이다. 물론 어떤 사회 체제라도 붕괴에 직면하면 구성원들에게 비합리적으로 현체제의 궁극적 안정에 대한 믿음을 심어줌으로써 자신의 실상을 보여주는 징후들을 스스로 감추려 들게 마련이다. 그러나 어떤 사회체제라도 일단 역사의 판결을 받으면 필연적으로 사라질 수밖에 없다.
어떤 것이 구원될 수 없는 데도 구원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우주의 합리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인류는 바로 이러한 고통스러운 투쟁을 거쳐, 그리고 이러한 고통스러운 투쟁에 의해 자신의 힘을 완전히 실현하고자 분투하고 있다. <본문 32-33쪽>

 

위의 문장을 읽으며 이사야 벌린이 바라보는 마르크스의 얼굴이 입체적으로 잡히기 시작했다. 그는 마르크스 못지않게 신랄하고, 핵심으로 곧장 진입해가는(물론 두 사람 모두 불친절하다는 공통점을 지녔으나) 문장을 지녔다. 그렇기에 그는 마르크스의 학설에 대해 "(마르크스의)학설은 적이 보유하고 있는 모든 기지의 무기에 대처할 수단을 갖추고 있어서 직접적인 공격으로는 함락할 수 없는 일종의 거대한 구조물"과도 같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이사야 벌린이 쓴 글 가운데 우리에게도 비교적 널리 알려진 이야기는 우화를 바탕으로 세상 사람들을 고슴도치와 여우로 비교한 글이다. 그는 「고슴도치와 여우」란 에세이에서 "여우는 많은 것을 알지만, 고슴도치는 한 가지 큰 것을 안다."고 말한다. 여우는 영리하고, 교활한 짐승이기에 고슴도치를 기습할 많은 전략들을 무수히 짜낸다. 그리고 고슴도치를 습격할 수 있는 적절한 타이밍을 노려 고슴도치를 덮친다. 그에 비해 고슴도치는 단지 송곳처럼 날카로운 가시를 방패삼아 숲 속 한적한 오솔길을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닐 뿐이다. 기회를 틈타 여우는 잽싸게 고슴도치를 덮친다. 그러나 위험을 느낀 고슴도치는 제 몸을 잔뜩 웅크리고 송곳 같은 가시를 곤두세운다. 여우는 고슴도치의 날카로운 가시를 어찌하지 못해 결국 다음 기회를 노리며 물러나 어떻게 하면 고슴도치를 공략할 수 있을까 새로운 전략 세우기에 골몰한다. 여우와 고슴도치의 지혜를 따질 때, 우리는 당연히 여우의 지혜가 뛰어날 것으로 생각하지만 번번이 싸움에서 이기는 건 고슴도치다.

 

이사야 벌린은 이 우화를 통해 사람들을 두 가지 그룹, 여우와 고슴도치로 나누었는데, 여우는 여러 가지 목적을 동시에 추구하며 세상의 그 복잡한 면면들을 두루 살피고, 그런 까닭에 자신의 생각을 하나의 종합적인 개념이나 통일된 비전으로 통합해내기 보다는 모순도 한데 아우르는 편이다. 그에 비해 고슴도치는 세상이 아무리 복잡해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구상으로 종합해내고 통합해낸다. 그에 따르면 이 고슴도치들이 바로 프로이트(무의식), 다윈(자연도태), 마크르스(계급투쟁) 등이다. 그렇다고 이사야 벌린이 절대적으로 고슴도치들의 손을 들어주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벌린이 여우에 속하는 인물로 거론하는 이(아리스토텔레스, 몽테뉴, 셰익스피어, 몰리에르, 괴테, 발자크 등)들의 면면이 또한 그렇게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책을 읽을 때, 특히나 어떤 인물에 대한 평전을 읽을 때 다뤄지는 인물 못지않게 그를 다루고 있는 인물(저자)에 대해서도 주목해야 한다. '이사야'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사야 벌린은 유대계로 구소련 영토였던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에서 부유한 목재상의 아들로 태어나 제1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이 리가에 진군하자 부모를 따라 러시아로 이주, 그곳에서 볼셰비키 혁명을 경험하고, 11세 무렵 영국으로 망명한다. 유대인에겐 특히나 격동의 시대였을 20세기 초엽의 유럽, 라트비아라는 슬라브 문화의 영향 아래 놓인 지역 출신의 인물이 냉전 시대 영국에서 주로 활동했다는 것, 물론 당시 독일의 박해를 피해 영국으로 망명한 유대계 지식인들과 미국인으로 망명한 유대계 지식인들 사이에는 일정한 차이가 있지만 당시 유대계 출신 지식인들의 일반적인 성향(탈민족주의적 세계주의)을 그 역시 어느 정도 공유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전쟁 기간 중 영국 정보부에서 근무하며 모스크바에서 수개월간 머물며 당대의 소련 지식인들과 교유했고(그 가운데 안나 아흐마또바와는 연인 관계였다고 한다), 전후에는 사상사 연구에 집중하면서 그는 자유주의자로서의 면모뿐만 아니라 러시아 문화에 대한 애정과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 그 자신의 삶의 역정이 한 시대의 다양한 면모를 반영하고 있는 이사야 벌린, 그 자신은 마르크스주의자라거나 정치적 좌파로 구분될 수 없음에도 (만약 그런 분류가 가능하다면 우리는 그를 우리 사회에 산재해있는 속류 우파들과 다른 진정한 의미의 ‘리버테리언’이었다고 생각한다), 칼 마르크스에 대한 균형감각과 사상사적 통찰을 통해 우리에게 마르크스와의 격조 있는 지적 대화에 동참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 이사야 벌린의 이 책은 1982년 신복룡 선생의 번역으로 평민사에서 출간된 적이 있다. 다만 이 책을 선택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두 가지를 고민해봐야 한다. 첫째는 이 책이 마르크스와 그의 사상에 대한 약간의 사전 지식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오탈자가 종종 눈에 띄고, 요사이 유행하는 작은 판형(이 책은 110X190)이다 보니 펼쳐놓고 밑줄 쳐가며 읽는 습관이 있거나, 좀 오랫동안 생각하며 읽기에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일부러 오탈자에 신경 쓰며 읽는 편은 아니지만 이왕 눈에 띈 오탈자가 몇 개 있어 이야기해보면  57쪽 "유대인 출신인 시인하이네"에서 시인과 하이네는 띄어 써야 하고, 276쪽의 "마르스크"는 "마르크스"로, 451쪽의 사진 캡션에 들어간 "리프크네이트"는 "리프크네히트"의 오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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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붉은 별(상.하)』 - 에드가 스노우 | 홍수원 옮김 | 두레(1995)


"에드가 스노우 vs 존 리드, 아그네스 스메들리 vs 님 웨일즈" 이렇게 구도를 만들어 놓고 보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에드가 스노는 『중국의 붉은 별』, 존 리드는 『세계를 뒤흔든 10일』, 아그네스 스메들리는 『위대한 길 : 한알의 불씨가 광야를 불사르다』, 님 웨일즈는 『아리랑』을 쓴 작가들이자 저널리스트들이다. 만약 그렇게 살 수만 있었다면 이들을 위한 길 앞잡이 노릇을 하다 만주 벌판 어딘가에서 비적(匪賊)의 납탄을 맞고 죽었어도 나로서는 별로 억울하지 않을 것 같다. 위와 같은 대비 말고 또 다른 대비를 시도해보자. '어니스트 헤밍웨이 vs 서머셋 몸, 앙드레 말로 vs 마르크 블로크, 잭 런던 vs 조지 오웰'의 대비를 살펴보면 이 또한 역시 상당히 재미있는 대비임을 알 수 있다. 우선 헤밍웨이와 몸은 아마추어 스파이 활동 경험이 있는 작가란 공통점이 있고, 앙드레 말로와 역사학자 블로크는 레지스탕스 활동의 공통점을, 잭 런던과 조지 오웰은 각각 르뽀 작가로 활동했었다는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잭 런던은 러일전쟁을 취재하기 위해 조선에 온 적도 있었고(비록 조선에 대해서는 비관적이었지만), 조지 오웰과 앙드레 말로, 헤밍웨이는 각각 스페인 시민전쟁에 의용군으로 참전한 경력도 있다. 서머셋 몸은 스파이 시절을 회고하며 중요한 임무를 수행했다고 주장하지만 혁명기에 러시아에 머물던 그의 스파이 활동은 스파이라기보다는 산보객에 가까웠다고 한다. 어쨌든 이들 모두를 한데 아우르는 가장 중요한 공통점은 그들이 역사의 현장에 있었다는 점이다.

 

우리는 지식인이 갖춰야 할 미덕으로 문사철(文史哲)을 강조하면서도 실제로는 이 셋을 따로 구분하여 각각의 영역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역사학자는 역사만을, 철학자는 철학만으로, 문학하는 이는 문학만을 자기 영역으로 생각하고, 간혹 이를 초월해버리는 사람을 능멸하는 경향까지 있다. 우리 사회의 이런 지식 풍토 속에서 서구식 작가(writer, author)의 개념은 작가(novelist)로 한정되고 만다.

 

게다가 우리는 작가들의 지위나 권위에 대해 픽션이 지닌 권위의 절반만큼도 인정해주지 않는다. 예를 들어 순수하게 작품 활동만 하는 화가보다는 모 대학의 교수로 재직하면서 화가인 사람, 순수하게 음악활동만 하는 성악가보다는 모 대학의 교수로 재직하는 성악가 같은 이들이 사회적으로 더 존경받는 경향과 마찬가지다. 가르치는 일과 직접 창조하는 일이 동일한 성질의 일이라면 애써 세분할 필요는 없을 거다. 하지만 이런 경향은 우리나라와 동양의 몇몇 나라에 한정된 경향일 뿐이다.


▶ 옌안에서 마오와 함께 한 에드
가 스노우
 

텍스트의 권위가 텍스트 자체에서 발생하기 보다는 텍스트 생산자의 사회적 권위에 의존하는 사회의 텍스트들은 처량맞다. 픽션과 넌픽션을 구분하는 행위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런 명확한 금긋기 행위가 사실은 비문학적 행위라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문학평론가들은 문학만 말하고, 영화평론가는 영화만 말하는 건, 좋게 생각하면 전문성을 좀더 강화시키는 행위로 보이지만, 이는 암암리에 지식인 사회의 밥그릇 챙기기에 불과할지도 모른다.(참고로 보들레르는 미술비평을, 아도르노는 음악비평을 했으며, 발터 벤야민이 계속 살아남았다면 영화비평을 했을 거다.)

 

나는 에드가 스노의 『중국의 붉은 별』을 거의 십여 번 이상 읽었다. 중국혁명사를 공부하기 위해? 마오주의자라서?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천만에 말씀이다. 무엇보다 이 책은 마오쩌뚱이 즐겨 읽었다는 수호지만큼이나 호방한 재미가 있고, 미문(美文)의 틀에 갇힌 모호함 대신 살아 날뛰는 현장의 소리가 들려오며, <아라비아의 로렌스>보다 감동적이다. 이런 감동이 주는 힘은 무엇보다 허구가 아닌 진실의 힘이다. 우리는 한 인간의 눈으로 대신 역사의 현장에서 진실을 전달받고 있다. 비록 그것이 과거의 어느날이었을지라도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함께 지구상에 살았으며 그네들이 이상과 희망에 따라 상처받았고, 굶주렸고, 슬퍼했으며 때로 절망으로 의지를 잃었음을 알고 있다. 그들이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음을 안다. 그것이 진실이 주는 힘이다. 우리와 함께 살았다는 사실 말이다.

 

가끔 역사 드라마를 보면 역사를 소재로 한다는 어쩔 수 없는 한계를 실감하게 될 때가 있다. 이순신이 노량해전에서 전사한다는 사실을 아는 이라면 그가 설령 일본 자객에게 치명적인 위협을 받더라도 죽지 않을 거란 사실을 안다. 물론 이 책에 등장하는 중국 혁명 지도부의 삶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대장정이란 최악의 위기 상황을 겪지만 막대한 희생에도 불구하고 기사회생의 전기를 마련한다. 그런 사실은 이제 역사가 되었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데도 너무나 감동적이다.

 


▶ ‘장정’이란 1934년 10월 중국공산당의 ‘공농홍군’(工農紅軍, 노동자 농민의 붉은 군대)이 국민당 정부의 포위 토벌공격을 피해 장시(江西)성 루이진(瑞金) 근거지를 버리고 10여개 성을 지나 1936년 10월 중국 서북 산베이(陝北) 옌안(延安)에 근거지를 마련하기까지 2만5000㎞를 행군한 일을 말한다. 이 기나긴 고난의 행군 동안 홍군은 가는 곳마다 농민들의 뜨거운 환영을 받았으며, 홍군에 자원입대하려는 농민들이 장사진을 이뤘다고 중국공산당은 설명한다. 홍군은 비록 패주했지만 가는 곳마다 공산주의 이념을 선전하고 농민으로부터 군사력을 보충 받아 결국 국민당과 내전에서 승리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 지금까지 중국공산당이 주장하는 역사이다. 그러나 장정은 오늘날 새롭게 대장정을 바라보고자 하는 연구자들로부터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나는 러시아 혁명을 다룬 책들, 예를 들어 존 리드의
『세계를 뒤흔든 10일』보다 개인적으론 중국의 혁명과정을 다룬 책들이 훨씬 재미있고 감동적이다. 그런 점에선 아그네스 스메들리가 홍군 총사령관 주덕(朱德)의 일대기를 구술 정리한 『위대한 길』도 마찬가지 재미를 준다. 왜 그럴까? 글쎄, 그 차이는 러시아와 중국의 차이, 같은 동양인으로서 느끼는 차이, 혹은 중국 혁명 과정에 식민지 조선인으로 동참했던 우리 선각자들의 발자취가 느껴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유 없이 혹은 다소간의 이유가 있더라도 1980년대의 운동권 분위기가 공연히 싫은 이들에겐 그 시기의 너무나 유명한 고전이란 점에서 이 책이 지루하고 재미없을 거란 선입견이 있을 수도 있겠다. 게다가 이 책은 중국공산혁명의 실체를 서방세계에 최초로 전한 책이란 점에서 미리 색안경을 끼고 볼 일종의 선전물처럼 비춰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책을 읽은 뒤에 걱정할 일은 그것이라기 보단 다른 종류의 것이 될 거다.

 

에드거 스노우(Edgar Parks Snow)는 1905년 미국의 미주리주(Missouri)의 캔사스시(Kansas City)에서 태어나 1926년 미주리 대학을 졸업하고 컬럼비아 대학 신문학과에서 공부를 마쳤다. 1927년(우리처럼 군대를 안 가니 23살 한창 펄펄 날 때)에 언론계에 투신하여 1928년에 중국 상해(上海)로 건너간다. 그는 중국의 최대 격변기에 현장에 머물면서 북경 연경대학 교수로도 활동했는데, 1936년 6월 손문의 부인 송경령의 소개장 하나를 들고 중국의 머나먼 서북 지역 홍구로 떠난다. 이 때 그의 나이 불과 30세였다. 그 자신이 청년이었으므로 노회한 저널리스트이기보다는 저널리스트의 사명감으로 불타는 피끓는 청년의 심정으로 그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사실 에드가 스노우는 저널리스트이기 이전에 평범한 청년이었고, 모험가였다. 그의 직업은 물론 기자였으나 처음부터 기자가 되려 했던 것은 아니었다.

 

22세의 청년 스노우는 증권투자로 벌어들인 돈을 챙겨 한 1년 정도 전세계를 돌며 재미난 생활을 즐길 마음이었다. 애초에 그가 중국으로 건너간 것도 그런 이유였다. 그는 지금 우리들처럼 서른 살이 되기 전에 크게 한 몫 벌어서 한가롭게 여생을 보내고 싶었다. 그러나 그가 맞닥뜨린 시대, 중국 그리고 인도차이나, 버마, 인도 그리고 훗날 방문하게 되는 스탈린 치하의 소련에서 그의 피는 한가롭게 여생을 즐기며 유유자적하기엔 너무 뜨겁다는 걸 알게 되었다. 스노우는 4개월간 서방세계 누구에게도 알려져 있지 않았던 이들과 함께 사선을 넘나들며 아직 성공하지 못한 혁명가 마오쩌뚱과 그의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기록할 수 있었다. 당시 홍비(紅匪) 두목 마오의 목에는 현상금이 걸려 있었다.

 

그는 중국 혁명 지도부 인물들 - 주은래, 주덕, 팽덕회 등만 만난 것이 아니라 홍군 병사들과도 함께 어울리며 그네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에 남겼다. 농민들은 홍군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있었고, 그런 지지를 밑바탕으로 자신들이 하는 일에 확고한 믿음을 가졌던, 중국 혁명의 성공과 정당성을 확신했던 자원자들의 사기는 높았고, 군기는 엄정했다. 그들은 봉건 잔재를 털어버리고 새로운 세계를 만들겠다는 이상으로 불탔고, 그들 안에서 이런 연대 의식은 새로운 공동체를 탄생시켰다. 어느 인간도 살아가면서 경험할 수 없는 확신의 순간들을 그들은 살아갔다.

 

그들의 이런 넘치는 자신감은 국민당군이 투항을 권고하기 위해 뿌린 선전삐라의 뒷면을 사상 학습을 위한 노트로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경정부의 국민당군이 연일 진격해들어오는 일본군과 맞서 싸우기 보다는 마오와 홍군을 궤멸시키기 위해 치밀한 계획과 병참을 동원해 홍군을 압박해오는 시기 국민당군의 포위망을 뚫고 장장 1년여에 걸쳐 6천여 마일을 관통해 서북지역으로 이동해가는 대장정은 패배의 행군이었을지 모르나 그들의 생존은 그 자체로 승리의 행군이었다. 대장정을 통해 살아남은 홍군은 최후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굶주림과 소수 민족의 습격을 받아 가며 홍군은 도리어 그들의 이념을 전파하는 계기로 삼았다. 수백만의 굶주린 빈민들이 홍군의 태도를 몸소 경험했고, 그들의 도움을 받았으며 결국 마음으로 이들을 지지했고, 적극적으로 일원이 되고자 했다. 반대로 국민당군은 포위망이 뚫렸고, 그 과정에 만주, 상해, 열하, 하북 등을 차례로 일본군에 빼앗겼다.



 

어떤 이들은 제2차 국공합작을 하지 않았다면 최후의 순간까지 홍군을 밀어부쳤다면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라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국민당군이 할 수 있지만 참은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이 외적 일본에 맞서 싸울 힘조차 갖지 못한 상황이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제2차 국공합작은 도리어 국민당 정부를 더 일찌감치 붕괴시킬 수 있는 상황을 저지해준 것이다. 한동안 『중국의 붉은 별』은 금서였다. 1985년 출간하자마자 금서가 되었고, 이 책을 소지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옥살이를 해야 했다. 그래도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었다. 모든 혁명이 그러하듯, 마오의 붉은 혁명이 남긴 흔적이 『중국의 붉은 별』이 기록한 흥분되고, 순수하며, 열정으로 가득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마오는 혁명에 성공했고, 그 역시 숙청과정을 겪었고, 변덕으로 일을 그르치기도 했고, 잘못된 판단으로 커다란 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발걸음이 중국 역사상 최초의 민중혁명을 성공시켰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거기에 얼마나 많은 인민의 발걸음이 함께 했는지, 그 역사를... 나는 당신이 꼭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 당신의 오늘이 과거 그 순간의 뜨겁고 격렬한 역사의 현장은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오늘도 역사는 당신과 함께 변화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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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2008. 1.17.) 망명지를 살펴보니 1,634,035명의 사람들이 다녀갔다고 카운터에 기록되어 있더군요. 처음 홈페이지를 만든 이래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과 하루도 빠짐없이 대화를 나누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또 제 이야기를 하며 살았습니다. 인터넷 공간에 작으나마 사람들과 소통할 공간을 만들기로 결심하고 실행에 옮겼던 건 지난 2000년 8월 1일의 일이었으니까, 햇수로는 올해가 9년, 다가오는 8월이면 만 8주년이 됩니다. 홈페이지 이름이 왜 하필이면 ‘망명지’일까? 때로는 스스로에게 반문합니다.


뭔가 대단한 고민이 있었다기 보다 점점 새로운 해몽을 저의 꿈에 덧대어갔던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이를테면 꿈보다 해몽이었던 거죠. 아니면 최인훈 선생이 어디선가 들려주었던 말이 오래도록 제 뇌리에 남았던 탓인지도 모릅니다. 오래전 일이라 어쩌면 저 혼자만의 기억이 최인훈 선생을 들먹이게 만든 건지도 모르겠는데 ‘한국의 지식인들은 유럽의 지식인들과 달리 망명을 할 수가 없어서 불행하다’는 말이 저는 이 땅의 숨막히는 현실, 분단의 현실, 상상의 한계를 미리 규정지어 버리게 만든 답답한 현실을 드러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발 그만해둬. 나는 너의 인형은 아니잖아!

말은 삼천리 화려강산이라지만 반 토막 난 땅에 살다보니 어딜 가나 늘 고추장, 된장에 쌀밥, 김치를 먹고, 다 같은 모국어를 사용하는 탓에 몇몇 사투리의 단어 뜻을 몰라서 그렇지 서로 못 알아 듣는 말이 없고, 통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근대화 이후 일일생활권이 된 덕분으로 전국 어디든 하루면 왕복할 수 있는 땅에 살고 있습니다. 망명은커녕 숨어서 못된 짓 한 번 하기도 어려운 곳이 우리가 살고 있는 조국입니다. 그런 탓인지 가끔 민족애(民族愛)의 발로와 전혀 상관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휴전선이 답답하고, 갑갑해지곤 합니다.

기차를 타고, 자전거를 타고 밑도 끝도 없이 먼 이역으로 달려가고 싶은 충동, 살다보면 실제로 하기는 어려워도 계획조차,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현실, 휴전선은 땅만 분단시킨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상상 속에도 이미 깊숙하게 자리하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숨이 막혀오곤 합니다. 조국을 떠나기 위해 우리는 섬나라 사람들처럼 배 아니면 비행기를 이용해야만 하기 때문이죠. 가도 가도 첩첩산중인 개마고원의 깊은 품에서 쌓인 눈을 견디지 못하고 부러지는 잔가지 소리를 들으며 하룻밤을 하얗게 지새워 보고 싶지만 이미 마음으로부터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가족, 학교, 사회에 이르기까지, 단일민족의 신화는 구성원들의 실제 혈연적 구성이나 유전적인 측면에선 사실이 아니라도 문화적으로는 매우 강력한 중심축으로 작동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다보니 가족은 때때로 남이 보지만 않는다면 가져다 버리고 싶은 족쇄가 되기도 하고, 한 번의 입시로 결정되는 학교라는 이력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어 평생 동안 발목을 잡는 굴레가 됩니다.

혈연, 지연, 학연은 네트워크를 형성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만 동시에 사회라는 거대한 매트릭스(네트워크)의 하부 구조 중 하나로 ‘나’라는 존재의 위치를 옴짝달싹할 수 없도록 규정짓는 틀이 되곤 합니다. ‘나’는 문화라는 거대한 매트릭스 속에서 한 번도 나 아닌 다른 존재, 아니 진짜 내가 서 있는 자리가 어디인지 고민해볼 틈도 없이 족보에 기록되고, 학적부에 기록되고, 주민등록부에 기록된 자로 살아가게 됩니다.

문화망명지라는 거창한 이름, 문화와 망명의 개념을 결합시키면서 나는 타락하지 않겠노라. 이곳에서 나의 깃발을 올리고 타협하지 않는 마음으로 홀로 비장하게 싸우다 장렬하게 산화하겠다는 결심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바람구두'라는 익명의 페르소나 뒤에 숨지 않으면 안될 만큼 나약한 한 인간이 세상에 홀로 남은 것 같은 쓸쓸함과 변해버린 사람들과 세상에 대한 씁쓸함을 담아 누군가 나와 같이 세상으로부터 고립된 이들에게 보내던 유리병편지 같은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인터넷 공간에 띄어 보냈던 무수한 유리병편지들은 때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응답을 받았고, 때로 차라리 만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법한 인연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 공간은 그 자체로 생명을 가진 것처럼 제 멋대로 무수한 인연의 가지들을 만들어냈습니다. 세상의 근원을 더듬어가며 우주의 끝으로 갔던 우주비행사가 마지막에 만난 것은 그저 심심하다는 이유로 우주를 만들어냈던 컴퓨터와 대면하게 되는 SF만화의 허무한 엔딩 장면처럼 어쩌면 “문화망명지”의 끝은 허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됩니다. 나 스스로가 허무한 걸지도...

20년 전 그날, 20년 후 오늘

당신이 먼 이역으로 떠난다 하니 무심결에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군요. 망명지를 만들게 된 것은 물론 제 자신을 위해서였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망명지는 네덜란드의 작은 이층집 다락에 아지트를 만들었던 안네 프랑크의 사랑스런 일기장 ‘키티’처럼 제게도 그런 공간 하나가 필요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탓입니다. 그런 마음을 먹기까지 저는 마치 살아있는 좀비처럼 온몸이 썩어가는 듯 불쾌한 느낌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87년 고등학생이었던 제가 어떤 인연으로 당시 운동과 결합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건 너무 구구한 사연이 될 듯합니다. 다만, 1987년 12월 명동성당이란 시대의 막간극 무대에 저도 잠시 편승했던 적이 있었다는 정도를 밝혀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우리 역사의 향방을 바꿀 수 있는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50여개 학교, 200여 명의 고등학생들이 명동성당에 모여 ‘공정한 대통령 선거와 교육민주화’를 외쳤습니다. 그것이 세상 사람들 중 일부만이 기억하는 ‘서고련’의 명동성당 시위였습니다.

일제 치하부터 해방 이후 면면히 이어지던 고등학생 운동은 4.19혁명을 기점으로 역사의 물꼬를 트는 주요한 흐름 중 하나였으나 유신과 전두환 독재 시대에 이르러 사실상 그 맥이 완전히 끊겨 있었습니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에 이르는 치열한 입시교육과정 속에서 학생들은 대학 진학과 입신양명을 위한 입시기계로 전락해버렸던 시대였지요. 올해는 1987년 민주화운동으로부터 만 20년이 되는 시점이라 여러 매체들이 당시 운동에 참여했던 많은 사람들을 취재하고 기사화했습니다. 저도 몇몇 언론을 통해 그 당사자가 되기도 했지요.

조세희 선생은 1987년 12월 대선의 그 날을 ‘악이 드러내놓고 선을 가장하고, 선이 악에게 패배한 날’로 불렀습니다. 우리가 염원했던 민주화 20년의 역사는 처음부터 그렇게 잘못 시작되었습니다. 만 17살의 어린 학생이었던 당시의 저는 그 날의 충격과 비참함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비록 국민의 다수는 독재 권력의 하수인이자 후계자였던 노태우를 지지하지 않았지만 당시의 정치인들, 운동세력은 독재의 문민화를 전복시키는데 실패했습니다. 독재의 문민화 전략이 먹혀들고, 현실사회주의가 몰락하면서 명망 높았던 운동가들은 속속 전향 선언을 발표하기 시작했습니다.

민주화를 위한 투쟁경력은 제도권에서 자신의 입지를 쌓는 업적으로 변신되었습니다. 지역주의가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의 기준이 되자 그들 가운데 일부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과거 독재 권력에 뿌리를 둔 정당에 투신해 새로운 지배 권력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민주화 20년의 역사는 동시에 전향의 역사이고, 패배의 역사였습니다. 어린 나이였던 제게 그 같은 일련의 흐름들은 대단한 충격이었고, 저 자신의 삶마저도 굴절시킬 만큼의 치욕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저는 그로부터 거의 10여 년 간 냉소와 자기비하를 최선의 방책으로 삼았습니다.

20년 전, 그 날의 나는

당시 고등학생 운동 혹은 대학생 운동세력으로 하여금 출세와 성공이라는 일반적인 삶의 궤도를 이탈하게 만든 중요한 역사적 사건은 ‘5.18광주’였습니다. 국가가 국민에게 테러를 가했던 ‘5.18광주’는 우리로 하여금 이 나라 대한민국의 본질과 우리 앞에 민주주의의 얼굴로 미소 짓고 있던 미국이란 나라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기회가 되었고, ‘5.18광주’의 진실을 접했던 우리들은 시대와 양심의 부름에 호응하는 것이 청년의 의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20년 전 명동성당 시위를 마무리 짓는 비참한 현장에서 저는 두 가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첫째. 진실을 깨우치게 된다고 해서 누구나 자신의 삶과 안위를 떨치고 일어나 진실을 바로 세우는 일에 동참하게 되는 것은 아니란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세상은 보이는 것과 다른 이면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에게 직접적인 해가 되거나 이득이 되는 일이 아닐 때 사람들은 그것을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로부터 제가 평생을 두고 공부하고 싸워나가야 할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둘째. 이 싸움은 내가 평생을 전력투구한다 할지라도 도달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 목표를 향한 투쟁이 될 것이란 깨우침이었습니다. 저는 진보란 축적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진보란 당대의 현실을 고민하고,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투쟁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진보는 언제나 현실을 토대로 미래를 상상하는 겁니다. 마르크스주의가 지녔던 가장 강한 매력은 계급착취가 없고, 인간이 인간 그 자체로 대접받고, 존재하는 인간해방의 평등세상이란 구체적인 유토피아를 상정했습니다. 그것도 마치 역사의 법칙처럼 부르주아자본주의 생산력이 최고조에 달한 뒤 공산주의 세상이 도래한다는 엄밀한 사적 유물론에 입각한 것이었지요.

진실이 지닌 거의 유일한 딜레마는 진실이 진실로 존재할 때, 나머지 것들은 어쩔 수 없이 진실이 아닌 것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겁니다. 현실사회주의의 몰락이라는 진실 앞에서 종종 저는 그 같은 딜레마를 경험합니다. 현실사회주의의 몰락과 그 원인은 진실이지만 그 진실이 진실로 존재하기 위해 자본주의 체제만이 유일한 대안으로 존재한다고 믿어지는 것 말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에게 20세기는 러시아혁명이라는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체제를 실험하고, 결과적으로 그 실험이 실패함으로써 끝났습니다.

그 이후 현재까지 우리 인류는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모두가 공감하면서 이를 극복할 만한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자본의 신자유주의 세계질서에 떠밀려가고 있는 형국입니다.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과 반대는 가능하지만, 그 대안이 사회주의 혹은 좌파적 사유 밖에 없느냔 질문에 우리들은 아직까지 적절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담론의 위기’입니다.

그 대안을 마련하기까지 우리는 매우 오랜 세월, 어쩌면 20세기 자본주의의 성장 동력이었던 석유가 완전히 고갈될 때까지 지옥 같은 고통을 맛보아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대한민국이란 국가는 건국 당시부터 미국이 심어놓은 DNA에 따라 미국이 만들어낸 세계체제에 편승해 지금까지 먹고 살았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미국을 애지중지하며 살아가는 이유가 단순히 과거의 혈맹이기 때문이라는 ‘의리론’에 입각해 생각한다면 큰 착각입니다.

우리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체제에 협조하면서 이득을 얻는 작은 제후국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고민은 때때로 국경을 넘어서는 것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작게는 대한민국의 보수우경화를 걱정해야 하지만 크게는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미래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우려까지가 오늘날 진보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품어야 할 고민은 근본적입니다. 너무 거창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현실이 그렇습니다.

좌절이라면 좌절이었을 법한 그 경험 이후 97년까지 10년여를 방황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장에 갔었고, 다시 막노동판을 전전하며 3년여를 보내다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그 무렵의 제가 스스로 대단히 불행하다거나 불운하다고 느끼지는 않았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작은 광고회사에 취직했고, 연애도 했으니까요. 그러나 세상에 대해 받았던 느낌은 오래도록 민감한 상처로 남았습니다. 버림받은 느낌, 상실감, 배신감에 저는 세상을 향해 실천 없는 냉소만을 보냈습니다.

작업장 마당에서 바라 본 작은 하늘

작년 12월 대통령 선거가 있던 날, 저는 그날처럼 비참하지는 않았습니다. 20년 전의 고등학생 무렵 여드름이 송송 맺혔던 시절 만났던 친구들을 20년 만에 만났기 때문일지도 모르죠. 20년 전 ‘서울지역고등학생연합’이란 결사체를 만들어 함께 활동하고, 거리를 뛰어다니고, 명동성당에서 농성을 함께 했던 마지막 날, 농성해산을 결정하면서 들었던 비참함이 워낙 컸던 탓인지 우리들은 2007년의 대통령 선거를 자못 침착하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의 제 삶이 이전과 같을 수 없다고 할 만큼 ‘그날의 기억'들은 현재까지도 제 삶의 중요한 자양분이자 아물지 않는 상처가 되고 있는 탓이었겠지요.

80년대 초반 어느 운동권 학생은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처음 들었던 순간의 감동은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저는 이 말이 지극히 오만한 표현일 수도 있겠단 생각을 합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비정규직 법안 때문에 강제 해직당한 뒤 삼성 본관 앞에서 시위를 하던 삼성 비정규직 여성노동자가 썼다는 편지글을 접했기 때문입니다.

그 편지의 내용은 이랬습니다. 고등학교 졸업식 날 학교 운동장에 대기하고 있던 삼성 버스를 타고 공장기숙사로 직행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사회에 내딛은 첫 걸음은 그대로 학교의 연장이었습니다. 비정규직 보호 법안이 통과되고 법률이 실제로 적용되면서  강제 해직당한 이 분은 고교를 졸업한 18살 때부터 지금까지 하루 12시간 맞교대로 일하면서 회사와 집, 집과 회사를 오가는 다람쥐 쳇바퀴 돌듯 살았다고 말합니다. 김진숙 선생의 『소금꽃나무』란 책에도 나오는 이야기인데, 당신이 일했던 시절엔 숙련공이 아니어도 고등학교를 나왔다는 이유로 완장 하나 채워주고 관리자 보조로 다른 노동자를 감독하는 일을 시키면서 노동자 사이에도 벽이 만들어지도록 했다고 합니다.

막 학교를 졸업하고 공장에 들어선 노동자들은 노동자를 길러내는 학교에서 다른 학교로 진학한 셈입니다. 관리자들은 종종 부모인 양, 교사인 양 마치 학생들 다루듯 이들을 훈육했다고 합니다. 볼 일이 있어도 잔업 때문에, 할당량 때문에 쉴 수가 없었고, 자기 맘대로 하루 쉬었다고 해서 하루 종일 손바닥만 한 유리창을 닦도록 하거나 일을 시키지 않고 남들 일하는 기계 앞에서 하루 종일 세워두는 것처럼 부당한 처우와 인격모독을 당할 때도 이들은 스스로 항의해볼 생각을 못했다고 고백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학교에서부터 늘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원래 세상이 다 그런 것 아니냐고 체념 속에 살았다고 합니다. 우리들이 실제 직장 속에서 경험하듯 말입니다. 세상은 원래 그런 것 아니냐고요.

이 분을 무시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이 분의 편지를 읽고 난 뒤 저는 돌아가신 제 할머니가 생각났습니다. 7남매 중 맏딸로 태어나 학교 문 앞에도 가보지 못했던 할머니는 나중에 간신히 한글을 떼셨지만 평생 동안 학교에 보내주지 않았던 외증조부, 당신의 부모님을 원망하셨습니다.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가끔 저는 할머니의 하늘이 꼭 저만 하겠단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우물 속 하늘을 보고 있을 테지요. 아마도 18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내내 공장에서 살아야 했던 그 분에겐 공장 마당에서 올려다 본 하늘이 당신이 알 수 있는 하늘의 전부였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할머니가 그러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제 할머니에게 조국이란 과연 슬퍼할 만한 대상이었을까, 조국을 위해 노여워해야 할 무엇이었을까? 조국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지탄을 받아야 하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되묻게 됩니다.

되돌릴 수 없는 민주주의, 그러나 소외된 민주주의

저는 노동자의 노동자 정체성 문제는 나중으로 하고, 민주화 20년 동안 진행된 민주주의로부터도 그들이 얼마나 멀리 소외된 채 살아가고 있는가를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제가 언제나 과로 체제에 시달리며 먹고 사는 문제에 시달리고 쫓기는 이들이라서 이들이 바보 멍청이라고 이야기하려는 게 아닙니다. 다만, 그것이 80년대 이후 우리 사회가 누린 민주화, 민주주의의 진실한 결과였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겁니다. 슬프게도 지난 80년대로부터 시작된 민주화는 아직까지 일상의 차원, 문화의 차원까지 뿌리내리지 못했습니다.

물론 좀더 많은 사람들이 민주화의 과실을 얻어냈고, 우리들 역시 그 수혜자들입니다. 그러나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해외펀드에 투자하고, 융자를 끼고 아파트를 구입했고, CMA통장에 월급을 넣어놓고 어떻게 하면 주식 재테크에 성공하여 보다 나은 중산층적인 삶을 살아갈 것인가 고민합니다. 모든 투쟁은 그 당사자들이 주체가 되어야 하고, 누구도 대신 싸워줄 수 없습니다. 지금 당장은 내가 아니지만, 청년 세대들이 우리를 대신하여 그 잔을 받고 있지만, 지금의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 패러다임은 결국 우리 앞에도 쓴 잔을 내려놓을 겁니다.

선거가 있던 날, 친구들을 만나러 가면서 택시를 탔는데, 기사 분이 투표를 했느냐고 묻더군요. 그 분이 하시는 말씀의 개별적인 사안은 구구절절이 진보적인 대안을 찾고, 진보적인 성향의 문제의식을 가졌지만 결론은 이명박에게 투표했단 것이었습니다. 여론조사를 해보면 우리 국민의 절반 이상이 스스로를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성향을 지녔다고 응답합니다. 그러나 투표결과는 그와 정반대로 나타나고 있지요. 지금 대한민국이 맞닥뜨리고 있는 이 결과, 누군가에게는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은 듯 미소 짓고 있는 이 결과는 결국 좀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던 사람들, 좀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이미 예전에 했던 소리를 내가 이 나이 먹고도 또 해야 하나?

작년에 왔던 각설이도 아니고, 앵벌이도 아닌데 사람들에게 이 체제가 어떤 것인지 무엇인지 말하기도 귀찮고, 현재의 내 삶이 그럭저럭 살만하고, 길거리에 나앉을 정도가 아닌데 뭐? 다시 말해 이 일이 내 일이 아닌 걸 하며 안주해온 결과란 말입니다. 더 많은 걸 누릴 기회를 얻었던, 이 말은 위만 올려다보지 말고, 밑도 한 번 내려다보란 말입니다. 민주주의를 일상의 차원, 문화의 차원으로까지 만들어서 모두가 자신이 처한 위치를 알 수 있도록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다고 생각되는 단계까지 만들어가는 일, 그것이 현재의 우리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말

지금으로부터 7년 전 아마 그 해 여름도 올해만큼 더웠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처음 “바람구두연방의 문화망명지”를 인터넷이란 망망대해에 띄울 때, 아마도 제가 만든 홈페이지는 익명의 바다에 떠 있는 작은 모래톱 정도도 되지 못했을 겁니다. 이제 나름의 시간이 흘러 태풍과 홍수, 범람과 가뭄의 7년 세월을 보내며 “문화망명지”는 익명의 바다에서 모여든 작은 산호와 모래알과 물고기와 이름 모를 2,500여 씨앗들이 날아와 섬이 되었습니다.

처음 홈페이지를 시작할 무렵의 저는 이제 막 결혼을 했고, 갓 서른이 된 이십대의 젊음과 십대 시절을 통과하며 온몸에 맺혔던 고통의 기억들이 생생한 사람이었습니다. 이곳에서조차 저는 종종 사막 한 복판에서 홀로 모래바람에 맞서는 것처럼 외롭고 쓸쓸했다는 걸 고백하렵니다. 사람으로 나서 사람처럼 살고 싶다는 믿음을 배신하도록 하는 건 언제나 사람이니까, 나 자신도 그런 사람의 부류에서 크게 달라질 수 없다는 거 너무 잘 아니까. 힘이 드는 것이겠지요.

어쩌면 이런 저의 쓸쓸함은 인간은 서로 연대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 신념이 소년의 신기루처럼 허망한 유토피아였다는 깨달음, 80년대의 해방적 기획들 속에서 잠시 형성되었던 공동체의 따뜻함조차 알고 보면 거품처럼 얄팍한 것이었다는 서글픈 기억들로부터 비롯되었는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그 안에서의 나는 너무나 자유로웠고, 행복했으며 무엇보다 따뜻했었다는 일종의 향수병 같은 것에서 연유한 것일지도…. 하지만 그 시절이 아무리 좋았다한들 삶은 좋았던 한 시절의 기억만으로는 살 수 없습니다. 또한 그 시절의 기억이 과연 깊어가는 겨울밤 어린 아이들에게 군밤을 구워주며 그때는 모두의 인심이 넉넉하고 자유로웠던 태평성대였다고 회고할 수도 없었겠지요.

새로운 절망 없이 새로운 희망을 꿈꿀 수 없다고 짐짓 자신 있게 말하면서도 누군가와 술 한 잔을 나눌 때, 나는 내 말을 잘 믿지 못합니다. 나쁜 현재 없이는 보다 나은 미래에 대한 낙관과 희망도 존재할 수 없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그 미래가 정말 나은 미래일지 누가 알 수 있겠습니까.

제가 만든 홈페이지의 이름이 “문화망명지”인 까닭은 근대 이후, 신(神)이 없어진 시대 이후,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낸 이성의 신, 과학의 신, 역사의 신조차 믿을 수 없게 된 오늘날 우리들을 둘러싸고 있는 이 현실의 내부와 외부의 구분이 무의미해진 현재의 체제를 극복해보자는 의도를 담고 있습니다. 말은 거창하지만 거기에 도달할 방도가 저라고 해서 있는 건 아닙니다. 다만 지금 다른 세상을 상상해보는 일 이외에 무엇을 또 할 수 있을까? 희망도 없이, 말도 없이 사랑하는 일이 분명 허무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와 같이 내부와 외부를 구분할 수 없었던 시대가 지금이 처음은 아니란 겁니다. 같은 의미에서 서구의 중세 기독교 사회야말로 내부와 외부, 인간의 삶과 죽음까지 모두를 기독교라는 거대한 문명체계가 장악했던 시대입니다. 중세의 인간들은 탄생부터 삶과 죽음 그리고 이후의 세계까지 모두를 기독교라는 거대한 문화체계 속에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문화 속에서도 인간은 다른 세상을 상상했고, 중세시대의 이단자들은 그와 같은 문화망명을 단행했던 이들이겠죠.

만약 제게 어떤 창조성이 숨겨져 있다면 그것은 서로 소통을 희망하는 공간을 만들어내고, 그 공간을 7년 동안 한결같이 지속해온 성실성일 겁니다. 하지만 제게 숨겨진 가장 큰 힘은 아마도 누군가와 더불어 세상과 자연, 우주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고, 기뻐하고 싶다는 결핍의 감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 모든 이에게 절망하면서도 다시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것은 결국 희망을 건다는 의미이겠지요. 그것이 아마도 모든 창조자의 힘이리라 생각합니다.

사람의 발목을 잡는 것은 절망이 아니라 체념, 사람을 앞으로 가게 만드는 것은 희망이 아니라 의지라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 저에겐 꽤나 오랜 시간이 필요했었습니다. 오늘도 저는 희망도, 기대도 없이 사랑하고 있습니다. 이 짓을 왜 하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사랑하는 일마저 멈춘다면 도대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 되묻고 싶습니다.

그때 그때 최선을 다하고 시시한 후회 따위는 하지 않는 것, 어차피 사람은 그 정도 일밖에 할 수 없는 것이라고. 사랑하라! 희망도 없이, 말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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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20세기의 역사 - 마이클하워드. 로저루이스 외 | 차하순 옮김 | 이산(2000)


이 책은 지난 1998년 영국 옥스포드 대학 출판부에서  <20세기의 역사 "The Oxford History of the Twentieth Century">를 번역한 책이다.  


이런 류의 책들에 대한 독후감을 하기 위해서는 무척 많은 역량을 필요로 한다. 이유는 일단 책 자체가 다루고 있는 하중이 만만치 않은 데다가 분량 역시 만만치 않은 탓이 크다. 일단 그 묵직함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가장 좋은 방법은 목차를 보여주는 것이다. 목차는 책을 읽기 위해 필요한 일종의 로드맵이자, 그 책의 구조를 보여주는 가장 합리적인 설계도인 셈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중복 출판의 악명이 높은 곳이라면 목차의 중요성은 더욱더 커진다. 만약 같은 책이 중복 출판되었는데 그 중에서 좀더 좋은 책을 고르고 싶다면 우선적으로 목차를 자세히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목차가 상세하게 되어있고, 찾아보기가 잘 되어 있는 책일수록 번역의 질이 전반적으로 높은 책일 확률이 비약적으로 높아진다. 잡소리가 길었는데, 굳이 그런 이야기를 서두에서 장황하게 늘어놓고 있는 이유는 이 책이 그런 점에서 질적으로 매우 뛰어나기 때문이다.



이 책은 크게 5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1장 '20세기의 구조'에서는 20세기를 규정할 수 있는 성격들을 모두 7개 단락으로 나누어 풀고 있다. 물론 그 면면이 20세기의 구조를 밝히는데는 과부족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무엇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다음의 세 가지이다. 하나는 이 책이 기술된 시점이 20세기 말엽의 현실사회주의권 몰락의 역사적 결과를 바라보며 기획되어서 나토의 유고공습 시점에 집필되었다는 것이고, 둘째는 이 책의 주요기술자들이 영미권 역사학자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셋째는 이들의 시각이 실증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으나 주된 관점은 영미적인 시각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먼저 그런 세가지 사안들을 유념해서 보아야 한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20세기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또 한 권의 주목할 만한 책인 에릭 홉스봄의 "극단의 시대"와는 극명한 차이를 가지고 있다.

대표 저자인 마이클 하워드 (Michael Howard)는 1922년 영국 출생으로 제 2차 시계대전에 참전하였고, 1946년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하여 이듬해인 1947년부터 1963년까지 런던대학 킹스 칼리지에서, 1963년부터 1968년에는 전쟁사 석좌교수로 재직하였다(마이클 하워드의 책 중 국내에 번역된 것은 이외에도 "평화의 발명" 등이 있다). 그외에도 로저 루이스, 윌리엄 맥닐, 1979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스티븐 와인버그, 우리에게도 중국사 전문가로 널리 알려진 조너선 스펜스(그의 책은 국내에 번역 출판된 것이 많은 편이다.), 아키라 이리에, 사회학자 랠프 다렌도르프 등이다. 이 책은 단지 저자들이 유명한 것으로만 이야기할 수는 없다. 그것을 번역해낸 연구자들 역시 국내의 저명한 학자군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 우선 대표 번역자로 서강대 명예교수인 차하순 선생을 비롯해서 경제쪽의 인하대 경제학과의 김진방, 중동분야의 권위자인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이희수 선생 등등 그들이다. 이외에도 라틴 아메리카 부분을 번역한 서성철 선생 등도 모두 해당 분야의 최고 전문가 그룹이다.

그렇다면 그 내용도 과연 최고인가?를 물을 수 있을 것이다.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은 앞서 말했던 이 책의 세 가지 특징을 염두에 두라는 것이다. 이 책은 이념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실증적인 관점을 유지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영미적 시각을 고수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즉, 이 책에서 구소련과 중국, 공산주의는 전체주의와 다르나 아주 다르지는 않다는 식으로 다뤄진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세기에 대해 쓰여진 현존하는 역사서 중에서 '아직까지는' 이 책을 열 손가락 안에 꼽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저자들을 비롯해서 근현대사를 연구한 많은 학자들이 우리들이 흔히 생각하듯 물리적인 시간으로서의 20세기는 기왕에 종료되었으나 지난 세기인 19세기가 역사적으로는 과연 언제 종료되었는가를 규정짓는데 여러 의견이 있는 것처럼 물리적인 21세기는 시작되었으나 역사적인 맥락에서의 20세기는 아직 종료되지 않았다고 볼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 책이 말하고 있는 20세기는 먼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과거의 관점과는 다른 새로운 관점에 의한 해석의 통로들을 열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빌헬름 뢴트겐이 X선을 발견한 것은, 사건 자체로는 그다지 대단한 것이 아니었으나 그것을 통해 19세기의 물리학자들이 더이상의 과학 발견은 없다고 믿었던 자연상의 발견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제공해주었고, 그로부터 새로운 20세기의 물리학이 시작되었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우리는 20세기와 아직까지는 너무나 밀접한 삶을 살고 있으므로 20세기를 역사적으로 규정짓고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종료된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이 책은 서구 제국주의의 팽창으로부터 양차 세계대전, 스페인, 러시아 혁명과 대공황, 냉전에서 공산주의의 붕괴 그리고 홍콩의 중국 반환과 동티모르 사태 등 정치적인 사건의 맥락에서 혹은 양자역학과 상대성 이론에서 DNA  복제 문제에 이르는 다종다양한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세계화에 대해 비교적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아마도 이 책이 2000년에 나왔다면 틀림없이 1999년의 세계화에 대한 전세계 민중들의 뜨거운 반대 함성을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1999년 시애틀 전투 말이다. 어떤 맥락에서도 21세기가 20세기보다 희망적일 것이라는 증거는 없으며 그것은 앞으로 우리들의 삶으로 체현되는 역사이기 때문이다.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당신에게 20세기는 이미 지난 과거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20세기는 당신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여전히 현재 지속형으로서 존재하며 당신과 나, 우리 지역사회와 대한민국, 그리고 나아가 한반도와 동아시아, 세계 문제에 계속되는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당신의 20세기를 찾아가는 지적인 여행을 펼치는 것은 어떠한가?
이 책의 작은 재미 중 하나는 본문 사이사이에 배치된 120컷에 달하는 컬러와 흑백화보다. 또, 70쪽에 이르는 20세기 연표는 지난 100년의 흐름을 각 분야별로 일목요연하게 살펴볼 수 있도록 편집되어 있는데, 바람구두연방의 문화망명지에서 제공하고 있는 연표를 만들 때도 참고하였다. 물론 전적으로 참고하지는 않았다.

끝으로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고, 그와 더불어 번역에는 제법 문제가 많지만 에릭 홉스봄의 "극단의 시대"도 함께 읽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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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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