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징가Z'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1.03.05 슈퍼 로봇의 혼 - 선정우, 시공사(2002)
  2. 2010.12.09 시로 마사무네 - 『애플시드』

슈퍼 로봇의 혼 - 선정우, 시공사(2002)


나는 지금도 종종 프라모델숍 앞을 지날 때면 가던 걸음을 멈추고 유리창 안을 멍청하게 들여다 보는 버릇이 있다. 왜냐하면 그곳엔 어린 시절의 내가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저녁 먹는 것도 잊어먹을 만큼 열광했던 TV 만화영화들 가운데서도 단연 첫손에 꼽을 수밖에 없는 원형질적인 작품을 들라하면 "마징가Z"일 것이다. 우리나라 TV에서 만화영화를 최초로 방영한 것은 1964년 8월의 일이다. 이때 처음 방영된 만화영화는 물론 외국 것으로 "개구장이 데니스"였고,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장편 만화영화가 만들어져 극장에 내걸린 건 신동헌 감독의 "홍길동"으로 1967년 1월의 일이었다.

우리나라 TV에서 일본 만화영화가 방영되기 시작한 것은 1968년 10월 "요괴인간"이 방영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는데, 이후 일본 만화영화가 공중파 방송을 통해 방송되기 시작한다. 이후로도 여러 편의 일본 만화영화들이 방송되었지만, TV에서 방영된 일본 만화영화의 대명사는 아직까지 누가 뭐래도 "마징가Z" "캔디"였다. 선정우의 "슈퍼 로봇의 혼"은 바로 이때의 세대들이 성장하여 그 무렵 보았던 일본 만화 영화 그 가운데서도 "슈퍼 로봇" 계열 애니메이션 작품들에 대한 재발견을 담고 있는 책이다. "캔디"가 소녀들을 위한 순정만화영화, 멜러 드라마의 대명사라면, "마징가Z"는 소년들을 위한 일종의 액션 로망이라 할 수 있다.

선정우 씨는 PC통신 시절부터 이 방면의 고수로 활동해 온 바 있다. 우리는 지난 90년대 초반 서태지의 등장을 하나의 문화적 코드로 인식한다. 그 바탕엔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를 스스로 공부하여 개척해낸 사람의 의미도 있을 것이다. 기존의 시스템 속에선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좋아한 까닭에 깊이있게 파고 들어 그 방면에 전문가가 되는 것 말이다. 선정우와 같은 역할을 하는 이를 어떤 의미에선 우리 문화의 파이어니어로 보아도 좋지 않을까?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이들은 우리에게 일본만화를 소개하는 것이 우리 문화의 개척자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하며 반문할지도 모르지만,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한류란 일방적인 흐름이 아니라 우리가 일본을 아는 만큼 상대적으로 더욱 강화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 실례로 이젠 만화에도 한류 바람은 서서히 시작(미국 만화 시장의 5%를 한국만화가 차지)되고 있으며, 선정우 씨 역시 그 가운데 서 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그렇다면 슈퍼로봇이란 무엇인가? 로봇(robot)이란 말이 1920년 체코슬로바키아의 작가 K.차페크가 희곡
"로섬의 인조인간(Rossum’s Universal Robots)"에서 유래되었단 사실은 더이상 새로울 것이 없는 내용이다. 이를 예술작품에 응용하여 가장 크게 성공한 장르는 아마도 만화영화일 것이다. 만화영화, 특히 일본의 아니메 작품들은 성과 액션이란 대중문화의 양대 엔터테인먼트적 요소를 자유자재로 이용한다. 그 가운데 액션이란 측면에서 로봇은 가장 중요한 소재로 사용되었다. 그런 로봇물 가운데 슈퍼 로봇이란 명칭은 건담류의 작품이 출현하면서 이에 대한 상대적인 개념으로 쓰인 듯 싶다. 왜냐하면 건담이란 리얼 로봇이란 컨셉으로 인기를 얻으며 이전의 거대로봇물들을 "슈퍼 로봇"이라고 통칭한다.


선정우는 부천만화정보센터에서 큐레이터로 근무했던 이력을 갖고 있긴 하지만 그보다는 자생적 만화 매니아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저자가 그간 여러 잡지와 PC통신 게시판을 통해 발표했던 글들 가운데 '슈퍼 로봇'에 관련된 글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것인데,
"슈퍼 로봇"이란 명칭 자체가 로봇의 슈퍼파워보다는 슈퍼 덩치에 의한 것이므로 "아톰"과 같이 우리에게 낯익은 캐릭터는 빠져 있다. 이 책은 소년의 원초적 로망이랄 수 있는 '마징가 Z' 로부터 시작해서 70년대말 어린이잡지에 연재되다 중도에 사라져 많은 아쉬움을 남겼던 '겟타 로보', 소년이 조종기로 거대로봇을 조종한다는 컨셉으로 인기를 끌었던 "철인28호"와 같은 컨셉의 '자이언트 로보', 안노 히데아키 그룹의 재패니메이션 리바이벌 모음집이랄 수 있는 '톱을 노려라!'를 중심으로 일본 아니메의 한 조류라 할 수 있는 거대로봇들을 소개하고 분석한다. 

그 가운데에는 그간 우리가 잘 알지 못했거나 흘려넘긴 부분들 예를 들어 '마징가 Z'에 등장한 악당 캐릭터 가운데 지금까지 우리의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아수라 백작이 사실은 백작이 아니라 남작이었으며 그녀 혹은 그놈
(반남반녀의 캐릭터였음)이 죽은 뒤 헬 박사가 백작으로 승격시켜준 것이라는 내용들이 그것이다. 이외에도 재미난 부분들로는 거대로봇물이 어떻게 아동용 완구 메이커인 반다이와 결합하여 합체변형로봇으로 변화되는가? 어째서 거대로봇물 영화들은 어린이들의 방학 기간과 때맞춰 극장에서 개봉되는지 등을 다룬다. 이 책의 분석 가운데 가장 재미있는 내용은 마징가Z가 여성형 로봇(가슴에서 미사일이 발사된다) 아프로다이 에이스와는 물론 때론 미네르바 X와도 데이트를 즐겼다는 내용이다.

 


이 가운데 저자가 가장 힘주어 주장하는 바는 리얼로봇 매니아들의 주장처럼 '슈퍼 로봇' 혹은 '거대로봇'이 비과학적이고, 비상식적인 작품들이 아니라 나름대로 진지하게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에는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파격적인 상징들도 내포되어 있었음을 밝히는 것이다.
"마징가Z" "그랜다이저"에 동성애 코드가 숨겨져 있다는 분석은 참신하면서도 그 분석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우리는 지난 해 욘사마와 지우히메 열풍에 휩싸여 일본 내 한류 바람을 다소 민족주의적 흥분으로 바라보았다. 따지고 보면 한류와 일류, 그리고 중류라 할 수 있는 동아시아 삼국(이 경우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등은 배제되긴 하지만)의 교류 역사는 반만년의 역사라 할 수 있는 것이지, 어느날 갑자기 어느 한 국가에 의해 좌우되거나 지배하고, 지배당하는 문화가 아닐 것이다. 이런 교류의 역사를 근대만의 것으로 한정해서 바라볼 때 우리의 문화관은 협소하고 편협한 민족주의적 감정에 휩싸일 수밖에 없고, 진정한 한류, 진정한 문화교류는 점점 더 멀어지게 될 것이다. 언젠가 일본에서 바라본 한국 문화 그리고 만화에 대한 이렇듯 진지하고 재미난 탐구 서적들이 역으로 수출되는 일들이 벌어지는 것도 과히 나쁘지 않은 일이라고 감히 생각해본다. 

* 참고로 이 책은 올칼라다. 물론 일본 만화 영화, 거기에 거대로봇물에 별로 흥미가 없는 이들이 본다면 그다지 재미없는 책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책이 다루고 있는 아니메들과 함께 본다면(DVD로 출시된 것들이 상당수 된다) 재미는 배가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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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시로 마사무네 - 『애플시드』

 

사람들이 ‘오시이 마모루’와 그의 <공각기동대>에 열광할 때, 비애를 느꼈다면....
이상한 사람 취급받을까?


영화.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 vs 만화. 시로 마사무네의 <공각기동대>


이미 눈치 채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나는 일본 아니메의 열광적인 매니아이다. 그렇다고 일본 아니메의 작가 연보를 줄줄이 외우는 오타쿠적인 매니아는 아니고, 감상하길 즐기고, 기회가 닿는 대로(이 말은 "닥치는 대로"에 비해 얼마나 우아한가?) 수집하는 정도에 그친다. 일본 아니메에 열광하게 된 계기는 아무래도 작품 자체보다는 플라모델 조립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부터 건담 시리즈를 조립하면서 그 리얼한 작동에 경악했다. 그것은 건담 이전의 로봇들이 일종의 슈퍼 거대 로봇물이라 어린 내 눈에도 뭔가 어설퍼 보였기 때문이다. 철인28호, 마징가Z, 그랜다이저 류의 로봇들을 폄하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 매사 새로운 것이 나올 때는 이전의 것들의 반동으로 나올 수밖에 없기에 하는 이야기다. 이런 슈퍼 로봇 류 장난감들은 조립하거나, 완제품 완구라 할지라도 워낙 처음의 설정 자체가 있었기에 건담과 같은 리얼 로봇 류의 움직임을 따라갈 수 없었다. 예를 들어 건담의 경우엔 방아쇠를 당길 수 있도록 검지 부분이 움직이고, 무릎 관절을 비롯한 각각의 관절이 좀더 인간적인 움직임에 맞도록 되어 있었다(지금 인터넷을 떠도는 구체관절인형의 원조가 건담이기보다는 일본의 전통적인 공예 가운데 일부가 완구 형태로 발전해왔다고도 할 수 있겠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건담 정도의 움직임과 설정을 두고 슈퍼 로봇물 애호가들과 리얼 로봇물 애호가들 사이에 열띤 논쟁도 늘상 있지만, 결국 로봇물의 설정에서 <장갑기병 보톰즈>의 팬들에겐 건담 역시 비과학적이고, 궁색하기는 매일반이다(장갑기병 보톰즈는 내년 2월 무렵 일본에서 TV 시리즈와 OVA시리즈를 합쳐 DVD세트로 발매될 예정이라고 하는데 일본 현지 가격으로 100만 원 정도 할 것 같다고 한다). 하지만 좀더 사실성에 근접한 혹은 극사실성을 궁극으로 추구한 오시이 마모루와 <공각기동대>에 이르는 SF에 이르면 이걸 단순히 로봇물이라고 해야 할지 고민되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에는 시로 마사무네의 원작 <공각기동대(1989)>가 있다. 사실 일본 내에서 그의 명성에 비해 우리나라엔 시로 마사무네가 널리 알려진 편은 아니다. 그 까닭은 그의 작품들이 주로 해적판 형태로 먼저 소개되었고, 시로 마사무네 자신이 외부 노출을 굉장히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공식매체에 결코 얼굴을 드러내지 않기로 유명하고, 시로 마사무네란 이름 역시 가명이다. 내가 처음 시로 마사무네를 알게 된 것은 그의 데뷔작인 <애플시드(1985)>의 해적판 만화를 통해서였다. 그 이후로 나는 시로 마사무네의 열렬한 팬이 되었다.


오시이 마모루의 대표작이자, 그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해준 <공각기동대>는 원작자인 시로 마사무네의 <공각기동대>와는 몇몇 설정을 제외하고는 거의 다른 작품에 가깝다. 오시이 마모루가 <패트레이버2>를 만들고 난 뒤 차기작으로 <인랑>을 제작하려고 했지만, 반다이 측에서 이를 거부하고 그보다는 <공각기동대>의 애니메이션화를 제의한다. 오시이 마모루는 급작스런 제안이지만 워낙 시로 마사무네의 작품 세계를 좋아했기에(두 사람의 작품세계는 서로 교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흔쾌히 이를 승낙했다고 한다. 대신 오시이 마모루는 한 가지 조건을 제시하는데, 원작과 상관없이 자기 마음대로 만들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우리들 자신이 익히 경험으로 알고 있는 것처럼 원작의 작품성과 흥행성과 상관없이 이를 다른 장르로 옮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오시이 마모루는 원작의 아우라를 고스란히 옮기는 대신, 원작에서 설정과 내용의 일부만 차용해 자신만의 <공각기동대>를 만들기로 한다. 시로 마사무네는 이를 흔쾌히 승낙한다. ‘원작자는 신경쓰지 말고, 자유롭게 만들라’며 오시이 마모루의 제안을 지지해주었다.

- '시로 마사무네' 특유의 섹스 어필한 포즈들은(그야말로 펑크한 장난처럼 보이지만) 이처럼 메카닉 탑승 자세에도 드러난다.


오시이 마모루 판 <공각기동대>와 시로 마사무네 판 <공각기동대>의 가장 큰 차이는 캐릭터와 분위기의 변화였다. 시로 마사무네의 <애플시드> 역시 결코 경쾌한 분위기는 아니지만, 만화적인 재미란 측면을 고려한 듯 사고뭉치 전차인 ‘후치코마’ 캐릭터 등이 무거운 분위기를 반전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그런 재미를 위해 시로 마사무네는 시종일관 지속되는 극화체의 흐름 중간에 만화체를 삽입하기도 하는데, 오시이 마모루는 극한의 극사실주의 묘사로 일관한다. 코믹한 요소들을 대거 거둬낸 대신, 시로 마사무네 판의 굵직굵직한 대사들은 그대로 살리고 있다. 그러나 기본적인 전개와 문제의식이란 측면에서 반다이측이 시로 마사무네의 작품 <공각기동대>의 애니메이션화를 오시이 마모루에게 맡긴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 '시로 마사무네'는 "애플시드"에서 버추얼 스페이스를 창조한 것뿐만 아니라 버추얼 역사를 만들었다.


미야자키 하야오와 시로 마사무네


미야자키 하야오와 시로 마사무네의 작품 세계는 이 두 사람의 작화 스타일의 차이만큼이나 다르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이랄 수 있는 부분과 차이를 비교해보는 건, 시로 마사무네의 스타일을 이해하는데 보탬이 될 듯싶다. 편의상 미야자키 하야오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와 시로 마사무네의 <공각기동대>를 비교해보자(두 편 모두 애니메이션 작품이 아닌 만화로 한정한다). 우선 두 작가의 공통점은 여성. ‘나우시카’와 ‘쿠사나기’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다는 점인데, 나우시카의 재능은 선천적인 것에 비해, 쿠사나기의 재능은 다분히 후천적인 것이란 차이가 있다(신체의 일부를 안드로이드화한 것을 두고 선천적 재능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또다른 공통점은 두 사람 모두 인간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탐구와 인간들이 꿈꾸는 유토피아에 대한 이상을 철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다.


두 작가가 극명하게 갈리는 부분이기도 한 유토피아의 세계에서 미야자키 하야오의 유토피아가 자연회귀(自然回歸)적이라면, 시로 마사무네의 유토피아는 사이버펑크적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지향 사이에 놓인 현실세계와 미래, 물질문명에 대한 시선은 부정적이며, 비판적이란 공통점을 지닌다. 더 나아가 두 작가의 유토피아는 인간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도달할 수 없는 곳이란 점에서 중요한 공통점을 지닌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생명공학에 대한 혐오와 두려움을 드러내고 있는데, ‘불의 7일간’은 창세기를 역전시킨 개념이다. 신이 세상과 인간을 창조한 7일간에 빗대어 아마겟돈의 7일간을 의미하는 것이 ‘불의 7일간’인데,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 과정에서 과거의 인간들이 첨단생명공학을 이용해 부해를 만들어 환경공해물질을 제거하도록 한다는 설정을 삽입하고 있다. 즉, 과거의 인간들은 부해를 통해 자신들이 만들어낸 공해물질과 독소들을 제거한 뒤 과거의 잘못을 되밟지 않을 신인류를 만들어내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과거 ‘불의 7일간’으로부터 생존해 부해와 공존의 삶을 살고 있는 인류를 전멸할 수도 있다. 이렇듯 생명공학을 이용해 인류를 개조하려 드는 과거의 인간들은 신(神)적 존재라는 외피를 쓰고 있다. 비록 나우시카가 과거로부터 계승되어온 신화적 존재라 할지라도 나우시카 혼자의 힘으론 인류를 유토피아라는 이상향으로 이끌고 갈 수 없다. 이 때 나우시카가 기대고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존재들은 부해와 거대화된 곤충, 그 중에서도 ‘오무’이다. 인간은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 없으며, 이때 도움을 얻을 대상은 자연이다.

- 시로 마사무네의 오리지널 작화 '애플 시드'에 등장하는 인물들, 개인적으로 시로 마사무네의 작화가 더 마음에 든다.


시로 마사무네는 <공각기동대>를 통해 세기말의 권태스러움을 그야말로 펑크적인 반항으로 가볍게 처리한다. 이때의 가볍다는 의미는 미야자키 하야오에 비해 시쳇말로 Cool하다는 것이지, 무게 자체의 가벼움을 의미하진 않는다. 시로 마사무네는 <공각기동대>의 전작이랄 수 있는 『애플 시드』를 통해 마치 미야자키 하야오의 ‘불의 7일간’을 만들어냈을 법한 인류 사회를 그리고 있다. 인류는 제3차 세계대전을 경험하면서 인구수가 급감하게 되고, 사회 구성원을 확보하기 위해 유전자 조작을 통해 태어난 바이오로이드들로 채워지고, 기존의 국가와 민족이란 개념이 없는 인공의 도시 ‘올림푸스’이다. <공각기동대>의 시간 개념은 『애플 시드』의 시간보다 앞선 시대이지만, 그가 추구하는 바는 『애플 시드』의 세계관보다 진일보하고, 보다 정교하게 다듬어진다. 시로 마사무네가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중요한 질문인 "나는 인간인가, 인간은 무엇인가"란 질문은 이미 『애플 시드』로부터 시작되는 것이지만, 이를 좀더 정교하게 다듬고, 주제를 밀도있게 다루고 있는 것은 <공각기동대>이다. 오시이 마모루는 이런 시로 마사무네의 <공각기동대>가 추구한 주제의식을 고스란히 따르고 있다.

올림푸스 시티로부터 쿠사나기 소령이 살아가는 근미래의 시대로 역순한다 하더라도 시로 마사무네가 작품을 통해 주장하는 유토피아 속의 세계는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 구축할 수 있는 유토피아가 아니다. 시로 마사무네의 유토피아는 미야자키 하야오와 마찬가지로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유토피아이지만 자연의 힘을 비는 대신, 생물학적으로 조작된 바이오로이드, 즉, 기계의 힘을 통해 이룩할 수 있는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현생 인류가 과거의 인류에 의해 전멸당할 처지에 놓여 있다면, 시로 마사무네의 인류는 그 근본 패러다임부터 변화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다.

- "애플 시드"의 매력적인 히로인 '듀난 뉴트'


애플시드, 공각기동대 - 시로 마사무네

얼핏 들은 이야기인데, 시로 마사무네의 그림체는 누군가에게 사사 받은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의 독학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한다. 그 자신이 누구누구하면 알 수 있는 대가를 스승으로 둔 것이 아니라 혼자만의 연습을 통해 도달한 경지라고 들었는데, 정확하지는 않다. 시로 마사무네에게는 그만이 지닌 특징들이 있다. 첫 번째는 그저 평범한 재미를 찾아 만화책을 펼친 보통의 독자들에겐 골머리가 아플 만큼 복잡하고, 거대한 철학적 테마들이다. 사실 인형 혹은 로봇이 인간인가? 하는 질문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피노키오, 인어공주가 그렇고, 프랑켄슈타인 역시 이런 질문들의 연속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을 인간이라 할 수 있게 만드는 요건은 무엇인가?


많은 이들이 기억의 문제를 이야기하지만 <블레이드 런너(Blade Runner, 1982)>와 원작 『안드로이드는 전기 양을 꿈꾸는가?(Androids Dream of Electric Sheep?, 1968)』의 작가인 필립 K. 딕(Philip K. Dick)만큼 인간과 기억의 상관관계에 천착해 들어간 작가도 드물다. 어떤 의미에서 시로 마사무네는 만화와 애니메이션 세계의 ‘필립 K. 딕’이다. 그러나 시로 마사무네를 필립 K. 딕과 구분하게 해주는 결정적인 차이는 필립 K. 딕의 작품 세계가 다분히 디스토피아적인 반면에 시로 마사무네의 작품 세계는 사이버 펑크적인 요소들, 좀더 나아가 그것을 일단 긍정하고 수긍하는 방식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로봇(robot)이란 말이 1920년 체코슬로바키아의 작가 K.차페크가 희곡 『로섬의 인조인간(Rossum’s Universal Robots)』에서 유래되었단 사실 만큼이나 사이버(Cyber)란 말이 윌리엄 깁슨의 『뉴로맨서(1984)』에서 유래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필립 K. 딕이 정통 SF의 무거운 주제의식을 가진 작가라면 이후 등장하는 작가들은 ‘사이버’와 ‘펑크’를 조합해낸 ‘사이버펑크’적인 요소들을 가미하기 시작한다.


펑크 자체는 반체제적이란 점에서 사회에 위협적이긴 하지만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저항이란 점에서 사회 내부의 일탈자로 치부되고 있다. 사이버와 결합된 펑크를 한 마디로 정의할 수는 없지만 사이버펑크족은 사이버스페이스를 개인의 자율적인 권리가 보존되는 영역으로 구성하고자 한다.  이들은 기존의 사회제도를 조롱하기는 하지만 이를 전적으로 부인하려는 의도라기보다는 사회의 획일성, 진부함에 대한 비판정신의 표출로 볼 수 있다. 시로 마사무네의 작품들이 지닌 펑크 정신은 ‘나는 인간인가, 인간은 무엇인가’란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질문을 경쾌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SF작가들, 심지어 그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 오시이 마모루 스타일과도 다르다. 그의 이런 펑크 정신은 그가 독학으로 익힌 그림체와 캐릭터들에서도 드러난다. 이것이 그를 다른 작가들과 구분하게 만들어주는 두 번째 특징이다.


그의 메카닉 디자인과 설정은 리얼함이 뚝뚝 떨어지는 대단한 것들로 일단 시각적인 쾌감이 대단하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OVA나 애니메이션이 아닌 만화책을 출판하면서 설정자료집을 별도로 출간한 것은 시로 마사무네가 최초의 일이라고 한다. 시로 마사무네의 그림 스타일과 그가 담고 있는 주제 의식 사이엔 괴리가 발생하는데, 이것이 그의 펑크성을 역으로 드러내주고 있다. 구미에서 제작된 정통 SF물들의 일반적인 특징은 캐릭터와 그림체가 매우 어둡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철학적 테마라는 묵직한 주제의식의 반영이랄 수 있는 이런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대체로 극화체에 가깝고, 그리스 정통 비극에 등장함직한 성격을 지닌다. 이에 비해 시로 마사무네의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주인공 쿠사나기 소령조차 마치 미소녀물에 등장하는 글래머러스한 몸매로 묘사된다. 시로 마사무네는 작품에 드러내놓고 경쾌한 섹스 코드를 삽입하여 자칫 진지해지기 쉬운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메카닉이나 사회 구성 시스템 등에 대해서는 극사실주의를 추구하면서도 극 속에 종종 등장하는 미소녀 안드로이드들은 갈 길 바쁜 독자들의 발길을 사로잡아 버린다.


사이버펑크의 정신 자체가 이미 마이너리티성을 지닌다고 했을 때, 시로 마사무네는 그 자신이 이런 마이너리티성을 대변하는 작가라 할 수 있다. 어쩌면 이것이 국내에 시로 마사무네가 덜 알려진 원인일지도 모르겠다. 어찌되었든 미래는 아직 결정되지 않은 거니까....


* 『공각기동대』와 『애플 시드』는 몹시 소장하고 싶은 책들이긴 한데, 『공각기동대』"는 이렇듯 절판되었고, 『애플 시드』는 어느 출판사가 판권을 소유하고 있는지 아직까지 구하기 힘든 해적판을 제외하곤 출판 소식을 듣지 못했다. 개인적으론 『애플 시드』를 좀더 보고 싶은데, 음, 음, 그 이유는? 이 만화책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들이 보다 섹시하기 때문?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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