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일본 만화다 - 프레드릭 L.쇼트 | 김장호 외 옮김 | 다섯수레 (1999)


프레드릭 L. 쇼트는 "한국어판을 내면서"란 글을 통해 "만화는 한 세기 전에 미국에서 시작하여 오늘날 전세계적인 현상이 되었고, 한국의 만화 산업도 예외 없이 매우 세련되고 높은 경지에 다다랐다. 그러나 아직도 일본 만큼 만화가 대중 속에 파고든 나라는 없다."고 말한다. 이 문장에서 우선적으로 지적되어야 할 부분이 한 가지 있다. 예술로서의 만화는 한 세기 전 미국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만약 모던한 장르로서 만화의 출발을 이야기해야 한다면 프랑스 내지는 영국을 기원으로 삼아야 할 것이고, 그렇지 않고 장르의 기원만 놓고 치자면 더욱더 미국이 그 기원이라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세계 각국이 만화에 대해서만큼 서로 자신이 그 기원이라 해도 좋을 만한 역사들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만큼 만화가 대중 속에 파고든 나라는 없다는 그의 지적, 그리고 만화를 예술 보다는 문화 산업으로 보았을 때 한 세기 전 미국을 그 기원으로 삼는 것엔 별다른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프레드릭 L. 쇼트는 미국인이다. 동시에 그는 일본 만화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는 이미 지난 1983년에 "망가! 망가! 일본만화의 세계"라는 제목의 책을 냈고, "이것이 일본만화다"는 그 후속작인 셈이다.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망가"는 만화의 일본어 발음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도 당연히 일본 아니메가 아닌 인쇄 매체를 통한 일본 만화다. 프레드릭 L. 쇼트는 일본의 만화 가운데 스토리 구조를 갖춘 만화 전반에 대해 잘 정리해주고 있는데, 크게 네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다. 우선, "일본인과 일본 만화", "새천년을 맞는 현대의 일본 만화"는 망가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개괄적인 내용들을 담고, "일본의 만화잡지"에서는 일본 만화 산업의 기폭제, 일본 만화 산업의 안정적인 기반 역할을 하고 있는 일본의 여러 만화 잡지들을 잡지별 특색과 함께 다룬다.

 

세번째 "주요작가와 작품"에서는 망가의 여러 장르에서 다양한 작품 활동을 선보이고 있는 일본 만화가들과 그들의 작품세계를 소개하고 있는데, "침묵의 함대", "지팡구" 등의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가와구치 가이지, "도라에몽"의 후지코 F. 후지오 등을 비롯해 최근 일본 우경화와 더불어 문제가 되고 있는 고바야시 요시노리, 그리고 지난 95년 일본을 떠들석하게 만들었던 옴진리교 만화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네번째는 일본 만화의 신이란 찬사를 받고 있는 데즈카 오사무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프레드릭 L. 쇼트와도 개인적인 친분관계를 맺고 있었던 오사무가 지난 89년 타개하면서 그 자신이 바치고 싶었던 헌사를 풀어내고 있다. 그러나 쇼트가 데즈카 오사무를 이야기하는 배경엔 개인적인 친분 관계도 있지만 그 보다는 다음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듯 하다. "만화를 넘어서"에서 주로 다뤄지는 내용은 '망가의 미래'에 대한 것이다.

 

프레드릭 L. 쇼트는 이 책을 통해 가라타니 고진이 문학에 내린 비관적 전망을 현실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는 듯 보인다. 가라타니 고진은 [문학동네]2004 겨울호 '근대문학의 종말' 이란 글을 통해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도 문학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고 단언한 바 있다. 프레드릭 L. 쇼트는 "일본의 가장 힘있는 출판사들 사이에서도 팔리지 않는 문학작품보다는 만화 관련 책에 더 주력하고 있다는 것이 공공연한 사실"이라고 말한다. 물론 진지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현대 일본의 작가들이 자신들이 과거 만화가 지망생이었거나 실패한 만화가였다는 사실을 드러내고자 하지는 않지만, 쇼트는 이들을 추적해 명단을 공개한다. 1973년 "일본 침몰"이란 유명한 공상과학소설을 썼던 고마쓰 사코, 일본 최고의 다작을 한 것으로 알려진 아라마타 히로시, 우리에게도 "풍장의 교실", "120% COOL" 등으로 잘 알려진 야마다 에이미 등이 한 때 만화가였다는 것이다.

 

반대로 이미 잘 알려진 만화가들이 만화를 포기하고 글 쓰는 일로 전환한 경우들도 있다. 야마가미 다쓰히코는 본래 만화가였으나 이를 포기하고 소설로 돌아섰으나 이전 만화가 시절의 명성은 얻지 못했다. 두 가지 일을 병행하는 이들도 있다. 국내에도 번역출간된 "개같은 내 아버지(Father Fucker)"의 작가 우치다 순기쿠는 지난 1994년 "분카무라 드 마고" 문학상을 수상했는데, 이때 그는 소설가가 아니라 만화가로 상을 받았다. 이외에도 세키가와 나쓰오, 역사물 작가 이노세 나오키 등이 있다. 만화가는 아니었지만 열렬한 만화광이었던 소설가들도 있는데, 군국주의를 적극 찬양하다 결국 할복해버린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는 사무라이 만화를 주로 그린 히로타 히로시의 추종자라고 공언했고, 요시모토 바나나는 순정만화의 세계를 순수 문학의 세계로 변질시킨 작가라는 평을 듣기도 했다(요시모토 바나나는 순정만화가 오시마 유키고의 영향을 받아 작품활동을 한다는 비판을 들었다). 순수문학이 아닌 대중문학 분야에서 이런 현상은 더욱 극적으로 발휘돼 오늘날 출판 대국 일본의 많은 책들은 만화와 문학의 경계 사이에 있는 책들을 만들어 낸다.

 

퓨전(fusion)은 동서양 음식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라 만화와 문학이란 다소 이질적일 수 있는 장르 사이에도 일어나고 있다. 쇼트는 일본의 만화 산업을 치밀하게 분석한다. 하지만 결코 어렵지는 않다. 일본에서는 지난 1995년 한 해 동안 모두 23억 권의 만화책과 잡지가 만들어졌고, 그 가운데 19억권이 실제로 팔렸다고 한다. 오늘날 일본에서 만화는 가장 거대한 판타지 제조 시스템으로 작동하고 있으며 모든 미디어 가운데 가장 커다란 힘을 지니고 있다. 물론 미국의 만화 산업 역시 규모면에서 일본의 만화 산업과 비교해 크게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미국에서 일본 만화 제작을 대행하는 토렌 스미스의 "많은 미국 만화 출판사들은 기형적인 조폐팡이 되어 버렸다"는 지적처럼 미국의 만화잡지들은 수집가들의 애장품으로 기능하는 반면 일본의 만화는 확실한 소비 매체로 자리잡고 있다(미국의 만화잡지 애호가들 가운데 상당수는 비닐 포장 그대로 수집하는데 열광한다).

 

일본 망가의 성공엔 미국과 유럽의 채색 만화가 주는 예술성의 희생 대신 대량 생산이란 문제가 자리하고 있지만 약간의 질을 희생시킨 대신 그들은 이야기 구조와 캐릭터 구성이란 측면에서 미국이나 유럽 만화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는다. 일본 만화가들은 작품에 영화적인 스타일을 도입하여 스토리를 더욱 발전시키고, 캐릭터의 심리를 좀더 복잡하게 만들어낸다. 이에 대해 쇼트는 미국 만화가 브라이언 스텔프리즈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미국의 만화는 일종의 웃기는 그림이 되어 버렸습니다. 터무니없는 인간들이 터무니없는 짓을 벌이고 있지요. 그것이 미국 만화입니다. 그러나 일본 만화는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일들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기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

 

물론 쇼트는 망가의 세계에 대해 비판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만화의 표현과 폭력과 성범죄 문제에 대해 그는 일방적으로 망가의 편을 들지도, 그 반대의 해석을 내리지도 않는다. 데즈카 오사무의 인종 차별적인 표현에 대해 그는 한 편으론 이해를 보내면서도 다른 한 편으론 역시 비판을 가한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이해의 범위가 더 폭 넓기는 하지만 말이다. 쇼트는 일본 만화의 미래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대신 부정적인 측면들을 보여준다. 일본 만화 산업의 성장이 급격히 둔화되고 있는 현실적 원인을 분석하면서 그는 지나치게 상업화된 일본 만화 산업이 본래의 창조력을 잃고, 산업화되어 상품으로 전락하고 있으며, 비디오를 비롯해 게임 시장 등이 거대화되면서 만화 독자들 가운데 상당수를 잃고 있다는 점, 그리고 인기를 얻은 작가들이 너무 많은 매체에 작품을 게재하면서 문하생들을 동원해 일종의 만화공장을 돌리는 것이 일본 만화의 창조력을 고갈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만화가 미국 만화 시장의 5% 가량을 점유하고 있다고 들었다. 일본 만화와 비교하자면 아직까지는 미미할지도 모르겠으나 미국 시장에 진출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꽤나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였다. 만화 시장은 해적판들로 인해 오래전에 사실상 완전 개방되었는데, 많은 비판 여론에도 불구하고 일본 문화 개방이 결과적으로 우리 만화에 경쟁력을 부여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우리 사회에 제대로된 만화 시장이 형성되었다고 볼 수는 없으며, 우리 만화의 국내 시장 점유율(단행본 만화 구매를 중심으로)은 형편없는 수준이긴 하지만 앞으로 점차 개선될 것이라 믿는다. 쇼트의 이 책을 읽으며 부러웠던 것은 일본 문화의 연륜이 외국의 학자들에게까지 그들의 문화를 연구할 수 있도록 켜켜이 쌓여있다는 점이다. 망가의 세계를 좀더 잘 알고 싶은 분이라면 한번쯤 일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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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18禁의 세계
김봉석, 김의찬 지음 / 씨엔씨미디어 / 2000년 3월



이 책에 대해 리뷰를 한 번 써보리라 마음 먹은 건 상당히 오래전 일인데, 생각보다 책 구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이 책의 제목을 "13금의 세계"로 잘못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 어제 저녁에도 다시 붙잡고 읽었었는데도 불구하고, 오늘 아침에도 이 책을 검색할 때 "13금의 세계"로 했으니 쉽사리 찾아질리가 없다. 어쩌면 은연 중에 나는 "18금"을 좀더 낮춰 13금만 존재하는 세계에 살고 싶은 건 아닐까?

TV를 시청하다보면 종종 나이제한 표시들을 볼 수 있다. 세계 어느 나라든 시청대상이나 관람대상을 제한하는 방식의 나이별 등급이 있는데, 자라나는 청소년들을 보호하려는 이유에서라고들 한다. 이 책은 그러니까 보호되는 청소년들이 넘보지 말았으면 하는 측의 시선이 쌓아올린 그 벽 너머의 세계를 말하고자 하는 책이다. 그 세계가 담고 있는 주된 내용은 이 책의 부제인 "일본의 에로 만화와 애니메이션, 그리고 게임"이다. 하지만 저자인 김봉석, 김의찬은 단순히 국적의 차원에서 일본의 에로 만화와 애니, 게임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한국의 소위 성인문화와 일본의 성인문화를 비교/분석함으로써 분명히 존재하지만 금지된 우리 사회의 성과 문화에 대한 이중적인 자세를 비판한다.

이것이 내가 읽고 파악한 이 책의 주된 내용과 지향점인데, 다른 이들의 평을 보니 설득에 성공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18禁의 세계"는 대중문화론으로 분류되는데, 뭉뚱그려 대중문화라고 하지만 영어권에서는 이 단어를 다음과 같이 구분하여 사용한다. 그것은 mass culture와 popular culture인데, 이 둘은 모두 대중문화를 지칭하는 말이지만 전자는 대중문화를 부정적인 관점에서 말하는 것이고, 후자는 긍정적인 측면까진 아니라도 최소한 중립적인 개념으로 파악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후자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즉, 대중문화의 역할, 그것도 금지된 성인문화의 역할에 대해 긍정적인 관점, - 최소한 그 효용성을 인정하고- 이미 존재하고 있고, 앞으로도 존재할 이 문화의 역할을 살펴보고자 한다는 거이다.

우리 말로 성인을 가리키는 단어인 "어른"은 "어르다"란 옛말에 어원을 두고 있다. "어르다"란 말은 "혼인하다, 교합하다"란 말인데, 즉 성교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성인, 어른이 된다는 것은 성교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여기서 "할 수 있는"을 생물학적으로 "임신이 가능한, 수태를 시킬 수 있는"으로 본다면 간단하지만, 이를 사회학적으로 바라보면 여러 양태들이 나타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성교(sex)에 대한 의식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으로 묵시적인 제약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르다"란 말을 사전적으로 정의하고 있는 첫 구절이 다름아닌 "혼인하다"란 말로 규정된 것과 같다. 이 말은 다시 말해 혼인하지 않은 성인은 섹스를 할 수 없으며, 혼인이란 정식절차에 의하지 않은 모든 성 관계는 부도덕한 것으로 규정당한다.


그런 점에서 성인문화는 성인이되 별도의 성인인증을 필요로 한다. 예를 들어 처녀총각이 성인문화를 즐기는 것은 어딘가 부도덕한 것이지만, 혼인한 부부가 부부관계의 자극을 더하기 위해 성인문화를 즐기는 것(간단히 이 때의 성인문화를 포르노 무비 혹은 에로티시즘을 담은 핑크무비라고 해두자)은 묵인된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문화적 화두는 누가 뭐래도 성(性)이다. 그것이 섹스, 젠더, 섹슈얼리티 가운데 무엇이든 말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자체를 금기시하고, 성에 대한 발화자체가 곧 남성의 성적 욕망에 고스란히 연결되는 맹점을 지닌다. 성인 문화는 그 긍정성을 아무리 높이 평가하더라도 그 자체로 남성적인 문화가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그것은 책으로써의 "18禁의 세계"가 지닌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함께 해결해가야 할 문제이며, 성인문화만의 문제는 역시 아니다. 하지만 이 부분을 지적하고 넘어가지 않는다면 한국이든, 일본이든 성인문화엔 미래가 없다.

흔히 성인문화라고 하면 성과 폭력을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성인문화의 핵심은 누가뭐래도 성일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는 폭력에 대해 특히 관대한 편이고, 심지어 이것을 남성성의 핵심으로 부추기는 측면마저 있다. 이런 태도는 비단 우리 사회만의 문제는 아니다. 폭력적인 장면보다 더 많은 검열과정을 거치게 되어있는 것이 바로 성적인 암시, 관능성, 에로티시즘이기 때문이다. 에로티시즘의 역사적 연원을 거슬러 오르면 신화, 관습, 종교에 도달하게 된다. 이는 에로티시즘이 인간의 본원적 욕망에 자리하고 있음을 입증해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중세를 거치며 수그러들었다가 인간의 본성을 강조하는 르네상스 시대에 접어들면서 에로티시즘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당연하다. 프랑스 혁명 이후 에로티시즘은 점차 종교적 속박에서 벗어나 개인의 자유를 표현하는 부르주아 혁명과 어깨를 나란히 했고, 예술 사조상 낭만주의와도 함께 했다. 그러나 지금의 관점에서도 에로티시즘은 포르노그라피와 구분하기 어렵다는 문제를 지닌다. 어디부터 어디까지를 에로티시즘으로 볼 것인지, 포르노그라피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는 결국 우리 사회의 "18禁의 세계"가 지닌 한계치이기도 하다.

그런 한계치의 문제를 한 권의 책이 모두 해결할 수 있다면 오죽이나 좋겠냐만 시대의 금서들이 걸어온 길을 생각해본다면 그것이 결코 단순한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대신에 저자들은 성인문화의 가능성을 성인만화의 가능성에 찾고자 한다. 과연 성인만화가 우리 사회의 18금 문화에 대한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그건 나도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저자들은 너무 쉽게 단언하는 경향이 있다. "18禁의 세계"는 크게 두 장으로 구분되는데 "1장 18금이란 무엇인가"에서 저자들은 성인만화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사실 한국의 성인은 불쌍하다. 흔히 천민자본주의라고 하지만, 그 천민성에 억눌려 스스로 타락해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측은한 생각까지 든다."<본문20쪽> 이렇게 단언하고는 있지만 이 부분의 마지막에 가면 대체 성인문화란 무엇이고, 왜 필요한가? 산업적으로는 왜 중요한가? 란 식의 질문만 던져놓고, 바로 이어지는 글에서 "지금 한국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인문화를 만드는 것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며 움츠러들고 만다.


앞서 큼지막하게 주장한 이야기가 서글퍼질 결말이다. 성인문화가 필요한 이유 중 하나로 제시된 건 진짜 성인문화가 존재한다면 청소년 보호도 오히려 쉬울 거란 말이다. 그렇게 간단한 이유라면 앞서의 천민자본주의와 그 천민성에 억눌린 채 타락해가는 성인들까지 들먹일 이유는 없어 보인다. 사실 이 책의 저자들이 추구하고, 주장하는 바가 무엇일지 짐작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바로 그 부분을 독자의 한 사람으로 듣고 싶은 것이다. 성인문화의 존재 필요성을 역설하지만 정작 이 책에서 강조된 부분은 일본의 헨타이 만화를 비롯한 여러 성인 매체와 장르들에 무게 중심이 실려 있다. 그렇기에 독자들은 이 책을 읽으며 저자들이 일본 성인 만화의 애독자이고, 전문가란 사실은 확인할 수 있지만 성인문화가 우리에게 왜 필요한지, 그 통로가 어째서 성인만화를 시작으로 해야하는지에 대해선 알 수 없는 것이다.

끝의 대안으로 주장되고 있는 "한국 성인 만화의 가능성" 부분이 그 내용의 가치판단을 떠나 맥없고, 공허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하지만 책의 부분부분들에서 보이는 내용들은 무척 재미있고, 동의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로도 종종 다시 읽어보곤 한다. 에로와 포르노의 차이를 말하는 것만큼 미묘한 문제가 또 어디에 있겠나? 그건 정상과 변태의 차이만큼이나 복잡해지는 문제가 아닌가.

* 참고로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우로츠키 도지(우로츠키 동자)"는 지금껏 내가 본 일본 아니메 중 가장 뛰어난 것들 속에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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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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