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발 없는 자들의 고독한 촛불을 넘어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시위와 집회가 다시 출현하리란 예상은 누구나 했지만 100일도 안 된 시점에서 이처럼 거대한 촛불의 물결이 만들어지리라고는 누구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난 두 달여 동안 서울 시청으로 향하는 지하철 안에서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살수차가 뿜어대는 최루액에 범벅이 되어 도망치게 될지도 모른다는, 전경 방패에 내리 찍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을까. 아니면 “헌법 제1조”를 노래하고 컨테이너 장벽을 ‘명박산성’이라 조소하지만 만리장성 같은 장벽, 체제권력을 넘지 못하고 돌아서는 무기력을 반복하는 두려움이었을까. 촛불의 의미는, 촛불 그 이후엔 무엇이 있을까.

대중지성, 촛불시위는 웹2.0의 돌연한 사건인가
“위대한 피플 파워”란 국제앰네스티 조사관의 말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촛불시위에 대한 찬사는 특히 진보적 지식인들 사이에서 두드러진다. 촛불시위 이후 대중은 다중, 대중지성 등 수많은 방식으로 호명된다. 촛불시위가 최고조에 달할 무렵 여러 매체들은 진보적 지식인들을 앞세워 ‘촛불정국’을 분석하며 “이제 한국 사회의 시대 구분은 촛불 시위 이전과 이후로 나눠 봐야 한다”거나 “현재의 큰 흐름에 동참하고 있는 대중들조차 엄청난 역사적 변화를 만들고 있다는 인식을 하지 못하지만, 분명한 것은 쇠고기 사태 이전으로 돌아가기 어렵다”고 말한다. 인터넷 공간의 웹2.0 민주화 세대란 뉴미디어 담론과 중․고등학생들의 시위참여에 주목해 또 하나의 신세대 담론이 등장한다. 이른바 새로운 주체의 출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들이 간과하는 것이 있다.

현재의 촛불 시위를 과거와 다른 무엇으로 규정하는 것은 본의 아니게 과거와의 단절을 시도한다. 그것은 이명박 정부를 이전의 정부와는 다른 정부, 6․10항쟁 이후 지속되어온 87년 체제와 다른 정부로 본다는 점에서 보수세력이 지난 10년을 ‘잃어버린 10년’으로 규정하는 것과 동일한 효과, 이른바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는 환상을 대중에게 심어준다. 실제로 달라진 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처럼 손쉬운 단절을 통해 촛불시위 이후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환상 속에서 다시 5년을 보내게 될 것이다.

중고등학생들이 시위에 나선 것, 인터넷을 통해 시위가 조직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광화문 네거리에 쌓인 컨테이너 장벽 역시 지난 2005년 노무현 정부 시절 APEC 정상회의 장소였던 부산 벡스코 회의장 앞에 어청수 당시 부산경찰청장이 설치했던 전례가 있었다. 또한 경찰의 강경진압을 넘어 군대까지 동원되었던 평택 사태가 이미 있었다. 심지어 브레히트의 시를 빌어 “차라리 정부가 인민을 해체하고 다른 인민을 선출하라”라는 언론의 비판1)까지도, 지난 정권에 대해 이미 나왔던 비판2)의 반복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부터 한미FTA에 이르는 MB노믹스는 새로울 게 없다. 우리가 ‘세계화’라는 말을 듣기 전부터 정권을 바꿔가며 줄기차게 추진되었던 정책들이기 때문이다. 대중의 입장에서 보자면 ‘잃어버린 10년’이 아니라 ‘잃어버린 20년’이었던 셈이다. 87년 6월 항쟁은 결과적으로 체제의 근본을 흔들지 못한 불완전한 타협의 소산이었다. 이것은 당시 한국사회의 지배계급이 “자신들의 사회적 권력이 아무 탈 없이 보존”되고, “다른 계급들을 계속 착취할 수 있고 소유”를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를 “정치적 무권리 상태”에 빠뜨린 결과다. 다시 말해 우리 사회의 보수화 흐름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처음 시작된 것이 아니라 87년 이후 계속된 현상이다. 87년 이후 대중이 보수와 개량에 동의했건, 그렇지 않든 시민권력이 회복해 국가권력에 위임했던 민주주의는 끊임없이 위축되었다. 노무현 정부에 와서는 모든 권력이 시장에 넘어갔다고 대통령이 고백해야할 만큼 “정치적 무권리 상태”3)가 극도로 심화되었다. 이 같은 인식 없이 촛불시위대를 갑작스럽게 출현한 새로운 시민으로 규정하는 것은 ‘기억 속의 민주화’에만 집착하면서 퇴행의 길을 밟아온 지식인, 시민사회, 그리고 우리 자신에 대한 성찰 없이 정권이 교체되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빚어졌다고 오도할 가능성이 있다.

‘순수한’ 시민을 넘어 ‘정치적’ 시민으로
이번 촛불시위의 긍정적인 특징은 이른바 ‘깃발 없는 자’들, ‘아무 것도 아닌 자’들이라 할 만한 다양한 시위주체들의 자율성과 문화적 이벤트, 자유로운 토론이라는 카니발적 속성에 있었다. 지배 권력과 보수언론들은 촛불시위의 정치적 배후설을 주장하다가 시민들의 분노에 직면한 뒤부터는 도리어 시민들의 순수성을 강조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보수언론들의 이런 규정과 달리 촛불시위는 애초부터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정치적인 시민들의 시위였다. 그것이 애초부터 국가권력에 대한 시민권력의 환수 요구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탈정치적인 시위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배권력과 보수언론은 ‘순수한 시민’을 끝없이 강조함으로써 시위 주체들의 정치적 지향과 언어를 이간했고, 궁극적으로는 자기조직화를 통해 사회공동체와 연대할 수 있는 가능성을 크게 훼손시켰다. 시민직접행동이란 가장 정치적인 행위의 한 가운데에서 촛불을 든 시민들은 ‘순수한’ 시민이란 거대한 강박에 사지가 묶여버렸다.

사회운동은 유동적인 사회현상이다. 그래서 지속적인 움직임을 보이기 어렵고 동원국면이 지나면 와해된다. 사회운동은 특수한 과제가 있는 조직으로 바뀌거나 기존 정당에 흡수된다. 그럴 경우, 뒤를 잇는 조직이나 정당이 원래 운동의 가치와 목표에서 나온 선택되고 변화된 자극을 넘겨받을 경우에만 ‘효과’가 나타난다. 사회운동은 조직으로 가는 문지방을 넘어서지 않으면, 복잡하게 얽힌 소집단이나 하부문화적인 생활 방식 혹은 특수한 세대의 기억공동체 속으로 용해된다.4)


어떤 이들은 촛불시위를 서구의 68혁명에 비유한다. 일부에서 대통령 탄핵 같은 구호가 등장하긴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검역주권 수호를 통한 국익사수, 경찰에 대한 시민보호, 행정고시 절차 준수 같은 법질서, 기존 패러다임의 준수를 요구한 측면이 더욱 강했다. 세계화라는 국가를 초월한 패러다임 전환의 충격에 장기간 노출되었던 대중은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변화된 패러다임은 국가권력이 초국가적 자본 앞에 얼마나 무력한지 보여주었다. 초국가적 자본의 공세에 직면한 시민사회와 진보진영은 국가권력과 재벌이라는 국내자본의 위기 혹은 호응을 바라보며 혼미를 거듭했다. 거듭되는 혼돈 속에서 신자유주의가 펼쳐놓은 사적 욕망의 회오리는 민주화운동기를 통해 구축되었던 개인의 사회적 연대망을 파괴했고, 시민들 스스로를 자가 발전하는 펀드매니저로 재사회화(resocialization)해 나갔다. ‘금모으기 운동’ 이후 대중이 자발 혹은 동원의 형태로 등장한 사건들 - 월드컵, 한류, 황우석 사태, <디워> 논란 등 - 은 외환위기를 통해 확인된 국가(권력)의 취약함에 대한 반동이었다.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드러난 것은 ‘지식정보사회강국’이든, ‘동북아중심국가’이든 초국가적 자본의 상위를 점하는 선진국 대열에 합류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대중의 위기의식이었다. 중산층의 씨가 마르는 상황에서 이른바 ‘대박’, ‘부자되기’를 통해 삶의 수준을 유지하고 싶은 중산층 서민들의 욕망이 그 배후에 있다.

신자유주의 체제는 정치적 발언의 자유를 부분적으로 허용하는 대신 대중을 사적 욕망의 실현이라는 개별화된 그물망에 가둔다. 신자유주의의 변화된 패러다임은 자본이 노동을 강요하지 않는 대신 사적 욕망의 실현을 위해 스스로에게 부과한 노동을 수행하지 않으면 도태될 것이라는 강박을 심어준다. 신자유주의 체제는 대중으로 하여금 극도의 긴장 속에서 소비적 욕망의 추구를 자아실현 욕구로, 자본이 강요하는 업무능력강화를 자기계발로 착각하면서 자신과 무한경쟁하게 만드는 시스템이다. 이처럼 더욱 촘촘하고 정교해진 사회적 그물망은 시청 앞 광장을 카니발 광장으로 허용하면서도 동시에 거대한 가두리 양식장으로 만든다.

“캄캄한 산중턱에 홀로 앉아서 시가지를 가득 메운 촛불의 행렬을 보면서, 국민들을 편안하게 모시지 못한 제 자신을 자책”했다던 대통령이 초등학생까지 닭장차에 가둬버릴 만큼 소통두절 상황이란 사실이 확인되면서 인터넷에는 촛불시위에 대한 비관적 예측들이 나돌기 시작했다. 발언의 자유를 허용하는 대신, 국가권력은 시민들이 체제의 패러다임을 감히 전환시킬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것으로 촛불은 끝난 것일까. 사제단이 승리를 선언한 뒤, 광우병대책회의가 주최하는 촛불문화제 현장에는 이제 문화제는 그만하고, 새로운 투쟁에 나서자며 격앙된 목소리로 항의하는 시민들의 모습이 자주 보였다. 비록 촛불시위에 참여하는 대중의 숫자는 크게 줄었지만 이것으로 촛불이 꺼진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고립이 아닌 소통과 연대의 촛불
촛불시위의 승리와 패배를 논하기에 앞서 우리는 해결해야만 하는 과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촛불시위는 다소간의 역기능이 있다 할지라도 인터넷이란 소통의 광장이 대중에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러나 정부수립 60주년이 되는 오늘, 대의민주주의와 자유언론이란 시스템 안에서 국가권력과 시민권력 사이에 소통할 수 있는 정치적 광장들이 존재하는지, 제 기능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커다란 의문을 남겼다. 시민들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거대한 촛불의 행렬을 만들어냈고, 시위가 계속될수록 민주화 이후 20년의 민주주의가 만들어낸 제도정치의 한계가 노출되었다. 국가권력과 제도정치의 실상이 대중의 투쟁에 의해 적나라하게 발가벗겨지고, 대중의 통찰이 놀라운 모습으로 표출되면서 시민의 축제, 새로운 문화로 찬미되었던 촛불시위는 갖가지 방식으로 규탄 받는다. 그사이 정치는 국회의사당 안으로 슬그머니 환수되었다.

지배계급은 대중이 보수적일 때 그들의 우둔함을 두려워하고, 대중이 혁명적일 때는 그들이 보여주는 통찰력을 두려워한다. 시민대중은 거리에서 직접행동을 통해 현존하는 민주주의의 지평을 넓히고, 경계를 넘어 확장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지배질서가 교묘히 직조해둔 ‘욕망의 배치’ 구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대중 역시 체제의 외부를 상상할 수 있는 통찰에 도달할 수 있어야 한다. 한나 아렌트는 “현실정치는 우리가 무엇을 정치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가에 따라 달리 형성될 수 있다”고 말한다. 정치적으로 ‘순수한’ 시민이란 허구 속에 갇혀있는 한 민주주의는 하나의 정치적 제도에 머무를 뿐 그 이상의 것이 될 수 없다.

지금 우리는 스스로를 위해 촛불을 들었지만, 그 촛불은 나만의 것이 아닌 우리 모두의 것, 사회적인 개인의 것, 고립이 아닌 소통과 연대의 촛불이다. 깃발 없는 자들의 고독한 촛불을 넘어 지금 우리는 새로운 깃발을 만들어 나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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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형철, 「브레히트가 대통령에게」, <한겨레21>, 2008.06.12.(제714호)
http://h21.hani.co.kr/section-021158000/2008/06/021158000200806120714039.html

2) 강양구, 「유시민 의원, 차라리 국민을 '새로' 뽑지 그래! 」, <프레시안>, (2007. 07. 13)
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30070713155430&s_menu=정치

3) 그들 자신의 이해가 자신들에게 자기 통치라는 위험에서 벗어나라고 명령하고 있다는 것, 국내에 안녕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신들의 부르주아 의회가 조용해져야 한다는 것, 자신들의 사회적 권력이 아무 탈 없이 보존되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정치적 권력이 파괴되어야 한다는 것; 부르주아 개개인은, 자기 계급이 다른 계급들과 나란히 매한가지의 정치적 무권리 상태에 빠져 있어야만 다른 계급들을 계속 착취할 수 있고 소유와 가족과 종교와 질서를 별 탈 없이 계속 만끽할 수 있다는 것; 자신들의 머리에서 왕관이 벗겨져야만, 또 자신들을 지켜줄 칼이 동시에 다모클레스의 칼이 되어 자신들 자신의 머리 위에 있어야만 자신들의 돈주머니가 구출될 수 있다는 것을 고백하였다. - 칼 마르크스, 김태호 옮김(2002). 「루이 보나빠르뜨의 브뤼메르 18일」, 『칼 마르크스 엥겔스 선집2』, 332쪽.

4) 잉그리트 길혀 홀타이, 정대성 옮김(2006), 『68운동』, 들녘, 175-176쪽


출처 : <실천문학> 2008년 가을호(통권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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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가진 자들만의 민주주의를 끝내야 한다

 

『승자독식사회』, 로버트 프랭크․필립 쿡 지음, 권영경․김양미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08
『부자들이 지구를 어떻게 망쳤나』, 에르베 캄프 지음, 진민정 옮김, 에코리브르, 2008

어떻게 시민들에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광화문 시청 앞 광장에서 이명박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여 벌이는 촛불 시위가 30여 일이 넘게 지속되고 있다. 촛불 시위에 참가하는 사람들의 숫자도 나날이 늘어가고 있고, 시위는 서울 지역을 넘어 전국으로 확산되어가고 있다.
일각에서는 제2의 6월 항쟁이 되는 것이 아니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그에 비해 시민 사회의 목소리에 맞서는 정부의 자세에는 조금의 변화도 없다. 아니 정부의 자세는 더욱 강경해지고 있다. 여대생이 전경의 군홧발에 머리를 짓밟히고, 시위대에게는 가차 없이 물대포 세례가 가해진다. 대테러진압용이라던 경찰특공대까지 동원되는 모습은 살인적인 진압으로 악명 높았던 5공 치하의 백골단을 연상시킨다.

경찰의 강경진압을 경험한 시민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어떻게 시민들에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라고 말한다. 과연 국가가, 정부가 어떻게 시민들에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역사는 말한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이승만 정권은 시민 대다수가 남아있는 수도 서울에서 비밀리에 철수하며 한강철교를 폭파해버렸다. 전두환 정권은 1980년 광주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던 시민들에게 특수부대까지 동원해 총기를 난사했다. 1987년 정부기관원들이 대학생을 물 고문하다가 살해했다. 지난 2006년 노무현 정권은 미군기지 이전에 반대하는 평택 주민들을 군대를 동원해 철조망을 둘러친 제2의 게토에 가두고 강제진압했다. 어떻게 시민들에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시위대에 뿜어져 나오는 물대포의 극적인 이미지를 목격한 사람들은 그런 의문을 품는다. 하지만 서서히 데워져가는 솥단지 안의 개구리처럼 1997년 IMF외환위기 이후 승자가 모든 것을 차지하는 사회로 자연스럽게 혹은 고통스럽게 변모해간 우리 사회의 모습에 대해서는 아무도 의문을 품지 않는다. 먹고 살기 너무 힘들다고, 시장에 가기 두렵다고 말하면서도, 석유에 기초한 문명의 문제, 욕망의 질주를 강요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에 대해서는 눈을 감는다. 그것이 현실이니 어쩌겠느냐고 말한다. 그러나 이들이 말하는 ‘현실주의’엔 눈앞에 빤히 보이는 ‘현실’은 없고, ‘주의’만 남아있다. 그동안 우리가 석유와 제3세계를 불태우는 대가로 누려왔던 값싼 농산물의 시대, 녹색혁명의 시대가 저물어 가고 있다는 현실엔 눈감고 있기 때문이다.

“예쁜 사람 다 죽으면 젤 이뽀~.”
삼성 이건희 회장은 “21세기는 탁월한 한 명의 천재가 천 명, 만 명을 먹여 살리는 인재 경쟁의 시대”라고 말한다. 외환위기 이후 ‘국가경쟁력’과 ‘시장경쟁력’ 강화라는 주문 앞에서 한껏 움츠러든 우리들은 이 모든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렇다면 한 명의 천재가 만 명 분의 월급을 가져가고, 나머지는 그 사람이 소비하는 부스러기를 받아 생활하는 것이 과연 우리들이 추구해야 하는 선진사회의 진정한 모습일까? 로버트 프랭크 ․ 필립 쿡이 말하는 승자독식사회란 어떤 것일까?

『승자독식사회』는 무한대의 자유경쟁을 통해 최대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얻는 것을 최고의 덕목으로 요구하는 미국식 자본주의(신자유주의)가 어떻게 미국 사회 내부의 사회적 양극화(승자독식)현상을 가속화시키고 있는지를 냉정하게 살피고 있다. 이들은 현재의 승자독식현상은 디지털기술을 기반으로 한 정보혁명, 글로벌 네트워크의 확대와 관세축소 등 규제 없는 시장의 세계화가 서로 시너지 효과를 통해 가속화되고 있다고 말한다.

1992년 슈테피 그라프는 상금으로 160만 달러가 넘는 돈을 받았다. 그녀가 선수보증광고와 시범경기로 벌어들인 돈을 합하면 이 액수의 몇 배였다. 그러나 그녀의 수입은 당시 최고의 라이벌인 모니카 셀레스의 수입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1993년 4월 셀레스가 관중에게 칼로 찔려 활동을 중단하게 되었다. 그 후 몇 달 동안 그라프는 절대적 수준에서 볼 때 경기력이 거의 변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1992년에 비해 거의 두 배나 많은 상금을 거머쥐게 되었다. <『승자독식사회』, 본문 43쪽>

정말 우리들은 능력 있는 일등 인재들에 의존하여 살아가고 있으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일까? 두 사람의 경제학자는 앞서 두 테니스 선수의 경우처럼 이런 주장은 허구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승자독식사회가 지닌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일까? 우리가 동네놀이터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놀이기구 중에 시소가 있다. 시소게임이란 놀이상대끼리 서로 균형을 이루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즐기는 게임이다. 만약 어느 한 편이 다소 몸무게가 나가더라도 그만큼 앞으로 당겨 앉거나 몸무게가 적게 나가는 쪽에 다른 사람이 더 앉도록 한다면 함께 게임을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승자독식사회는 삶의 즐거움 혹은 지속을 위한 균형을 맞추는 시스템이 붕괴된 사회다.

예전에 아이들이 즐겨 찾던 군것질거리 중에 “젤리뽀”라는 것이 있었는데, 아이들은 상품명을 이용해 노래가사를 바꿔 부르곤 했다. 무척이나 살벌했던 그 노래 가사는 이랬다. “예쁜 사람 다 죽으면 젤 이뽀~.” 자본주의 시장에서 최후의 승자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이들이 바꿔 불렀던 노래가사는 잘 보여주고 있다. 대박과 쪽박 사이의 갈림길에서 개인이나 기업, 심지어 국가조차도 과거 냉전 시대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 저마다 핵군비 경쟁에 나섰던 것처럼 승자가 되기 위한 무한경쟁을 치른다. 두 사람의 경제학자는 무한대로 펼쳐질 것 같았던 핵무기 경쟁도 군비축소조약을 통해 결국 제약이 가해진 것처럼 시장이 모든 결정권을 행사하는 무한경쟁에도 일정한 규제가 가해져야만 현재의 승자독식 제로섬게임을 멈출 수 있다고 말한다.

게임의 규칙을 변화시키지 않는 한 파국은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파국은 석유자원의 고갈과 함께 좀더 극적인 방식으로 찾아올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친기업적(Business Friendly)인 자유시장 옹호론자들은 여전히 이 모든 것들을 시장에 맡겨두는 것이 사회적으로도 이익이 되는 최적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과연 이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겨놓으면 모든 일이 다 잘 되어갈 것인가?

끝장난 지속 가능한 발전과 새로운 군비경쟁의 시대
『부자들이 지구를 어떻게 망쳤나』의 에르베 캄프는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기는 일은 너무나 위험한 일이며, 현재의 민주주의의 시스템으로는 그것을 통제하는 일조차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동안 생태적이라고 여겨왔던 ‘지속 가능한 발전’도 이미 너무 늦은 일이 되었으며, 도리어 이 용어가 현재의 심각한 위기를 은폐한다고 주장한다.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용어는 ‘생태학’이라는 비속어를 없애버리기 위한 의미론적인 무기다. 그러나 프랑스, 독일, 미국을 더욱더 발전시켜야 할 필요가 있을까? 제발 지속 가능한 발전의 미덕을 믿는 모든 신실한 사람들은 한 번쯤 자문해보기 바란다. 그들은 정녕 산림벌채, 온실효과를 만들어내는 가스 배출, 시골길의 아스팔트화, 전 지구를 자동차로 뒤덮는 것, 수질 오염 등 이 모든 것이 점점 도를 더해간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일까? 몇 가지 반가운 소식 - 교토 의정서 체결, 몇몇 야생 생물종의 건채, 친환경 농업의 도약 등 - 은 작은 투쟁의 성과와 상황 변화를 기대하는 많은 사람들의 바람을 보여준다. 그러나 주된 물줄기는 잘못된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그들은 우리가 지금 1938년에 살고 있고,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고 노래하고 있다. <『부자들이 지구를 어떻게 망쳤나』, 41쪽>

‘지속 가능한 발전’이란 구호 아래 수많은 사람들이 온갖 노력을 기울여 왔고, 작지만 소중한 성과도 거두었다. 그러나 왜? 매일 더욱 많은 숲들이 사라지고, 온실효과를 유발하는 가스 배출은 나날이 늘어나며, 어째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최소한의 삶의 질도 누리지 못하게 되어가고 있나?

세계경제 전체의 관점에서 볼 때에는 과잉투자지만, 개별 국가의 관점에서 볼 때에는 반드시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인류 전체의 복지 향상을 위해서는 고화질 텔레비전(HDTV)의 선명도를 높이기 위해 투자하는 것보다는 식량과 보건에 투자를 하는 편이 훨씬 바람직하다. 그러나 다른 나라보다 고화질 텔레비전 제작기술이 뛰어난 국가라면 사정이 다르다. 고화질 텔레비전으로 세계시장을 장악하면, 거기에 들인 연구개발비를 뽑고도 남기 때문이다. … 경쟁에서 이길 확률이 높은 개별 국가는 군비축소의 필요성을 거의 느끼지 못하는 법이다. <『승자독식사회』, 본문 191쪽>

20세기 후반부터 자신들이 경쟁력을 갖고 있는 분야에 투자하며 환상적인 발전을 거듭한 중국과 인도는 2004년 한 해 동안에만 각각 47억 700만 톤과 11억 1,300만 톤의 탄소가스를 배출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 분야에서 단연 으뜸은 미국으로 같은 해 59억 1,200만 톤의 탄소가스를 배출했다. 세계는 파국적인 상황을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해 2005년 교토의정서를 발효시켰지만,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28%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은 자국의 산업보호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2001년 3월 탈퇴해 버렸다. 세계화에 의한 국가 간 승자독식경쟁은 과거 냉전시대의 군비경쟁을 대신하여 새로운 형태의 무한경쟁을 촉발시키고 있다.

작게는 일국적 차원에서 승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과 크게는 세계적 차원에서 승자가 되기 위해 투쟁하고 있는 국가들의 투쟁이 지구의 파멸적 상황들을 극적으로 심화시키고 있다.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시장에 모든 것을 맡겨놓은 결과에 대해 염려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이 같은 상황을 반전시키지 못하는 것일까? 에르베 캄프는 그 근본적인 원인이 잘못된 민주주의에 있다고 말한다. 가진 자들만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도록 왜곡된 민주주의의 과두정치체제가 그 원인이라는 것이다.

1970년대 이후 세계경제는 사실상 장기적인 침체 국면에 들어섰고, 제조업 분야의 이윤율 하락을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시작된 것 - 경쟁력을 상실한 고비용 저이윤의 제조업의 과잉설비와 과잉생산을 해소 - 이 신자유주의의 시작이다. 다시 말해 신자유주의는 세계경제위기의 원인이 아니라 그 결과로 출현한 것이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의 기술 차이는 미미해졌기 때문에 가격경쟁력에서 뒤처진 선진국들은 제조업을 포기하는 대신 지식서비스산업(금융 등)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신자유주의가 본격화된 90년대 중반 이후 한국사회 역시 미래의 성장 동력은 지식 경제 산업에 달렸다는 명분 아래 IT, BT, CT의 순서로 산업구조를 변화하려고 노력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자본과 자본의 투쟁이라는 투기화된 금융자본주의의 대결 속에서 한 차례 경제위기를 경험한 기존의 사회권력은 재벌권력 앞에 무릎을 꿇었다. 승자독식시장의 과잉경쟁을 개인이 막을 수 없는 것처럼 세계화된 시장 앞에서 개별 국가의 정부들 역시 무력하기만 하다.

가진 자들의, 가진 자들에 의한, 가진 자들을 위한 민주주의를 끝장내자!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광화문 네거리에는 촛불을 든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 그들 중 상당수는 지난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현직 대통령에게 투표를 했거나 투표를 포기한 사람들이다. 어째서 지난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는 역대 최저의 투표율을 기록했을까? 어떤 이들은 지난 국회의원 선거의 결과를 놓고 ‘황금분할’이니 ‘절묘한 선택’이라고 말하지만 유권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정치인 ․ 관료들은 평범한 유권자들과는 거리가 먼 계급일 뿐이다. 미국의 ‘투표와 민주주의 센터'가 미국의 의회 선거를 분석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선거에서 정책 경쟁이 치열할수록, 다시 말해 후보자나 정당 간에 정책이나 이념, 철학적 차이가 큰 선거일수록 투표 참여율이 증가한다고 한다. 만약 정치인들 사이에 시장경제에 대한 운영방식, 민영화, 소비와 조세 감면, 탈규제, 부유한 투자자들에 대한 정책에 별다른 차이가 없다면 현대의 수많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유권자들이 투표 참여를 귀찮은 의무로 생각하는 것이 별로 놀라울 것도 없다는 말이다. 정부 출범 직후부터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곤두박질치더라도 이것이 상대 정당의 지지율과 연결되지 않는 까닭도 거기에 있다 (어차피 그 놈이 그 놈이니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현재의 민주주의(democracy)가 ‘demo(인민)’+‘kratos(지배)’, ‘인민에 의한 지배’를 의미한다고 믿는다. 플라톤 이래로 서구의 민주주의는 무지한 대중의 잘못된 선택으로 사회가 그릇된 방향으로 나가는 것을 경계해왔다. 그러나 현재의 민주주의 체제는 인민의 선택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현재 인민에 의한 지배를 방해하는 최대의 적은 무지한 인민대중이 아니라 바로 직업적인 정치인 계급에 의한 과두정치, 즉 정치인들이 입을 모아 사수하자고 외쳐대는 ‘자․유․민․주․주․의’다. 이라크 파병부터 시작해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한미FTA까지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정책조차 강행하는 것이 현재의 자유민주주의다. 이럴 바엔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도 재판의 배심원처럼 인민대중 가운데 추첨으로 선출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본질에 더 가까운 정치체제일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되어 국민의 건강이 위협받는 상황이라지만 청와대엔 특급 한우가 공급된다. 가진 자들은 비싼 돈을 주고도 유기농 한우만을 먹을 충분한 재력과 의지가 있다. 이처럼 소수의 승자들에 의해 장악된 국가권력 체제는 실제 대중의 삶과 괴리되어 있다.

선거 때마다 정치인들은 당선을 위해 유권자 대다수의 이익을 위해 헌신할 것을 약속하지만, 선거가 끝나면 늘 반대의 행동을 취한다. 가진 자들의 소유인 언론과 미디어는 이것을 정치인들 개개인의 전형적인 위선이라 공격한다. 그러나 거대기업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곧 정치라는 것을 뼛속 깊숙이 체득한 것이 바로 그들 자신이다. 정치인과 정당, 정부의 기만행위에 대한 대중의 혐오와 적대감을 이용해 보수언론들은 ‘부패’ 혹은 ‘무능한’ 정부 대신 ‘정직’하고 ‘효율’적인 시장을 칭송한다. 가진 자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세워 보상해주는 정부라도 권력을 획득하기 위해선 반정부적 수사까지 동원하는데 능숙한 그들은 선거가 끝나자마자 사회적 회전문 시스템을 이용해 권력과 다시 한 몸이 된다. “경쟁에서 이길 확률이 높은 개별 국가는 군비축소의 필요성을 거의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가진 자들 역시 보통 사람들이 제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잡을 수 없는 승자독식경쟁을 멈출 의사가 전혀 없다.

홀로세의 공룡으로 사라지지 않으려면
20세기의 문명을 후세의 역사가들이 어떻게 평가할지도 점점 자명해지고 있다. 아마도 그들은 20세기를 ‘화석연료의 시대’, 우리들을 ‘홀로세(Holocene)의 공룡’으로 부르게 될 것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올해(2008)의 연간 에너지 전망에서 2030년 전 세계 원유의 하루 평균 생산량을 종전 1억1600만 배럴에서 1억 배럴로 하향 조정할 전망이다. 그동안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산업문명의 위기, 욕망의 질주를 강요하는 자본주의 체제에 의한 생태 위기를 지적했던 수많은 이들의 염려처럼 산유국의 석유 생산은 이제 정점에 도달했다. 석유 생산량이 감소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오일피크론은 더 이상 우려나 기우가 아니다.

20세기가 끝날 무렵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는 더 이상의 역사발전은 없다고 할 만큼 자신만만했었는데 어째서 오늘의 우리는 이토록 커다란 불안과 위기에 휩싸이게 되었을까? 『승자독식사회』와 『부자들이 지구를 어떻게 망쳤나』는 각기 다른 출발점에서 출발하고 있지만 흡사한 결론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는 승자독식의 원리는 현재의 시스템을 바로잡지 못하는 한 앞으로도 꾸준히 강화되어갈 것이다. 정부의 결단력 있는 정책들이 소득불평등을 바로 잡아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넌센스다. 왜냐하면 세계화 시대의 승자들은 언제라도 어느 한 나라의 세율이 높아지면 조세피난처를 찾아 떠날 것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무한경쟁에 재갈을 물리자는 새로운 군비축소운동에 세계적인 시민 연대가 요구되는 이유다. 이처럼 두 권의 책 속에 그려지는 우리들의 현실과 미래는 너무나 암담하지만 저자들은 너무 낙담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결정적인 파국의 도래가 오기 전에 우리들이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거리를 가득 메운 촛불 행렬이 그 시작을 알리는 일이길 바란다.

출처 : 환경과생명.2008.여름호(통권 5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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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문화운동의 새로운 프레임은 가능한가
- 이명박 시대의 문화운동, 어디로 가는가

저는 지역에서 발간되지만 전국적으로 소통되는 계간지 편집장으로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계간지는 월간지나 주간지처럼 특종을 쫓는 것처럼 시대의 이슈를 쫓아가기 보다는 담론의 생산과 매개, 비평에 주력하는 편입니다. 계간지의 책무는 시대를 읽어내고, 그 안에 은폐되어있는 구조를 밝히고 드러내어 지식사회로부터 파급되는 학문적 . 담론적 이슈를 생산하고 매개하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계간지는 지식과 담론의 최전선일 수 있고, 또 다른 의미에서 오늘 저는 이 자리에 참석하신 분들 가운데 비교적 자유로운 입장에 서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까닭은 오늘 제가 말씀드리려는 내용이 다분히 원론적이고, 어떤 의미에서든 이미 많이 나왔던 이야기들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는 변명이기도 합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만약 지배계급이 합의를 상실하여, 즉 더 이상 ‘지도’하지 못하고 오로지 억압만을 행사함으로써 ‘지배’한다면, 이것은 틀림없이 위대한 대중들이 그들의 전통적인 이데올로기로부터 분리되고 과거에 믿었던 것들을 더 이상 믿지 않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위기는 바로 오래된 것은 죽어가고 있으나 새로운 것은 아직 탄생하지 못한 시기이다. 이러한 공백기에 대단히 다양한 병적 증상들이 나타난다. - 그람시, 『옥중수고』 중에서

체제에 대한 고민 없는 문화담론은 정책 판타지

그람시의 말에서 지배계급을 진보 혹은 좌파로 살짝 비꼬아놓으면 현 단계 우리 문화운동 진영이 처한 현실과 흡사합니다. 민주화 이후 문화운동의 현재는 최근 들어 정치적 투쟁에서 패배했을 뿐 아니라 문화투쟁, 즉 ‘정서와 의식’을 얻기 위한 싸움에서도 패배했습니다. 민주화 이후 대부분의 기간 동안 문화운동은 사회를 이끌어가는 아방가르드가 되어본 적도 없고, 과거 1980년대 운동적 관성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도 못했습니다. 그 사이 변화된 현실 속에서 대중의 삶과 일상은 주변적인 것으로만 남았습니다. 경제위기 이후 새로운 문화투쟁이 대중의 경제적인 토대를 사이에 두고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는 것조차 깨우치지 못했습니다.

1970년대 이후 세계경제는 사실상 장기적인 침체 국면에 들어섰고, 제조업 분야의 이윤율 하락을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시작된 것 - 경쟁력을 상실한 고비용 저이윤의 제조업의 과잉설비와 과잉생산을 해소 - 이 신자유주의의 시작입니다. 다시 말해 신자유주의는 세계경제위기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신자유주의가 본격화된 90년대 중후반 한국사회는 미래의 성장 동력은 지식 경제 산업에 달렸다는 명분 아래 IT, BT, CT의 순으로 매달렸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자본과 자본의 투쟁이라는 금융자본주의의 대결 속에서 한 차례 경제위기를 경험한 뒤 사회권력은 재벌권력 앞에 무릎을 꿇었고, 자본주의 체제의 대안 운동으로 출현했던 노동계급운동은 조합투쟁으로, 계급 위주의 단선적인 운동 방식을 비판하며 출현한 생태운동, 여성운동, 소수자, 문화운동 등은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운동이면서 동시에 체제의 내성을 강화하는 운동으로 변질되거나 대안담론을 창안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효관 전남대 문화전문대학원 교수, 고명철 문학평론가, 박승옥 시민발전 대표

요즘 우리 사회에 유행하는 담론의 출처는 대부분 소비자본주의의 마케팅 이론(아마도 현존하는 모든 학문 중에서 가장 유능하고, 유효하며 급진적이고, 심지어 너무나 반혁명적이라 혁명적이기까지 한)에서 비롯되고 있으며 문화담론 역시 이윤 중심의 마케팅 이데올로기에 심각하게 오염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80년대 기동전의 시대는 끝났고, 이제 자본과의 대결은 진지전의 시대가 되었다고 주장하며 새로운 문화운동의 담론이 만들어냈던 진지는 더 이상 진지가 아니라 적과 동침하는 곳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문화운동의 새로운 프레임을 구축한다는 것은 지난하고 괴로운 투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그림자와 싸워야 하는 피터팬처럼 우리는 자신의 그림자와 싸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종종 담론의 위기를 염려하는 것은 당장의 끼니를 잇는 일에 비해 덜 중요한 일로 간주되지만 당장의 끼니를 잇는 일과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하는 일은 동시에 시급한 일이며, 이 둘 가운데 어느 하나도 무시되거나 과소평가될 수 없습니다. 지금의 위기는 새로운 위기가 아니라 아직 새로운 것이 탄생하지 못했기 때문에 닥친 위기이기 때문입니다.

담론의 위기 - 이명박 정부의 출현이 위기인가? 민주화 이후 20년의 위기인가?

롤랑 바르트는 “거짓말보다 신화가 더 많은 것을 속인다”고 이야기했는데, 정권을 재탈환한 측이나 정권을 빼앗겼다는 측이나 ‘잃어버린 10년’이란 표현은 생각 보다 더 많은 것들을 은폐하고 있습니다. 진보대중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잃어버린 10년’은 정권교체가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이었음을 전제하기 때문입니다. 1987년 이후 전반기 10년이 영남 지역주의에 기초한 노태우 ․ 김영삼의 연속 정권이었다면 1987년 이후 후반기 10년은 호남과 비영남 지역주의 연합에 따른 김대중 ․ 노무현의 연속 정권이었습니다. 전반기 10년과 후반기 10년을 ‘민주 대 반민주’, ‘진보와 보수’, ‘통일 대 반통일’의 패러다임만으로 규정한다면 현실의 일부 양태만을 확대해석하는 겁니다.

현재 담론의 위기는 1980년대 말 현실사회주의의 붕괴와 정치 / 사회 / 문화의 전 영역에서 일어난 세계자본주의체제의 혁신과 변화의 속도에 성찰과 사유의 속도가 뒤따르지 못하면서 체제의 바깥을 상상해내지 못한 데 원인이 있습니다. 현재의 위기는 표면적으로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에 따른 경제의 위기, 민주주의의 위기로 나타나고 있지만 이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은 궁극적으로 현재와 다른 것을 상상할 수 없는 담론의 위기이기도 합니다. 몇 해 전부터 1987년 체제의 종말, 진보담론의 위기를 말하지만 우리는 스스로의 현실에 착근한 담론을 만들어 내지 못했습니다. 1980년대 사회구성체 논쟁이 있었지만 그 당시 논쟁과 요즘 민주노동당 내부에서 평등파와 자주파 논쟁 사이에 질적인 비약은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80년대 문화운동을 일컬어 문화연구 없는 문화운동의 시대였고, 1990년대 후반은 문화운동 없는 문화연구의 시대라고들 하지만, 1980년대 문화운동의 내부에는 사회주의적 대안 담론과 민족주의적 대안 담론이 나름대로 각축을 벌였고, 이 둘을 봉합해온 것이 민주화 담론이었습니다. 절차적 민주화 이후 새로운 담론은 생산되지 못했거나 과정 중에 있고, 1990년대 이후 문화운동은 국가의 문화정책에 비판적으로 개입하여 국가의 문화권력과 시장자본주의의 문화적 독점에 반대하는 등의 제도적 개입(다시 말해 문화정책의 비판, 기획, 실천)으로 방향을 선회해왔습니다. 1990년대 이후 2000년대 중반에 이르는 현재의 문화운동은 운동 없는(문화정책운동이 아니라) 정책문화운동이 되었고, 장기적 전망 없는 운동이었다고 부를 수 있을 겁니다.

또 한 가지는 현재까지 연결되는 문제인데 1980년대와 1990년대 문화운동에 공통적으로 내포된 문제 중 하나는 대중과 일상에 대한 중요성은 인식하면서도 운동 자체의 측면에선 여전히 대중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다는 겁니다. 전자가 운동적 관점에서 예술가들의 예술적 형상화 작업을 통해 대중의 계급적 각성을 이끌어 내려는 문예운동이었다면, 후자는 비판적 현실개입을 통해 정책화하려는 과정에서 문화기획자들의 지식인 운동(시민운동, 청원권 운동)으로 변질되면서 대중을 참여로부터 소외시켜왔습니다. 2000년대 내내 지역과 대중을 이야기했지만 민주주의와 마찬가지로 이것이 대중 속에 깊이 착근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문화운동의 위기는 이명박 정부의 출범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민주화 이후 20년 동안 배태되어 온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문화운동만이라도 다른 세상을 꿈꿔보라!

‘노동사회’로 표상되는 1980년대 문화운동 내부의 반체제적 지향과 변혁적 과제들은 1990년대 이후 문화민주주의, 문화적 권리 확대를 위한 투쟁으로 전화되어 가는데, 이 같은 방향 전환의 지향점은 국가의 문화정책에 참여함으로써 문화적 공공영역을 확대하는, 장기적으로 ‘노동사회’에서 ‘문화사회’로의 이행이었습니다. 문화사회란 자본의 발전된 생산력을 기초로 노동시간을 감축하고 자유 시간을 증대하여 자유시간의 자기조직화를 통한 문화 활동의 증대가 삶의 중심적인 활동이 되는 사회로의 이행을 의미합니다. 문화사회로의 이행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문화적 권리 확대 투쟁이 필요하다는 의미 또한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문화운동은 자체적으로 정치적 변화와 노동운동 및 시민사회운동과의 적극적 연대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문화사회’론은 과연 우리 현실에 적합한 것인지,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흐름에 저항할 수 있는 담론이었는지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문화사회’론은 시민혁명 이후 시민사회가 성숙했다는 유럽식 민주주의, 세계자본주의 체제의 상부를 점유하고 있는 유럽의 경제적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20대 80 사회’로 표상되는 사회양극화에 노출된 한국사회의 현실에 부합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고, 자본주의 혹은 체제가 타협에 나설 것이라는 전제가 밑바탕에 깔려있다는 점에서 현실 자본주의에 대한 지나친 낙관에 의존합니다. 과거의 제3세계 담론에 비추어보았을 때, 문화사회론의 밑바탕에는 대한민국 사회를 기본적으로 제1세계 혹은 그 연장선상으로 규정하고, 다른 여타 지역에 대한 배려가 없는 담론이기도 합니다. 유럽식 민주주의, 유럽식 문화에 대한 동경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는 점에선 또 다른 문화적 제국주의로 흐를 수 있는 위험이 있습니다.


이 같은 낙관은 민주화 후반기 10년,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의 문화운동 전체를 관류하는 흐름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문화운동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문화정책에 개입하고, 한정된 재원 속에서 분배와 권리보장의 시민권 운동이 되었다는 것은 체제내부로의 포섭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과연 이명박 정부의 출범이란 현재의 정치적 상황에 대해 대중이 느끼는 체감온도와 문화운동과 문화권력이 느끼는 체감온도는 비슷할까요?


전성원 황해문화 편집장, 우기동 경희대 철학과 교수, 최준영 문화연대 문화개혁센터 팀장

문화운동의 시민운동화 흐름은 대중의 시각에서 보았을 때 이미 문화적 시민권을 확보한,  이해관계에 따른 주류운동이 되었습니다. 비록 사회의 다른 영역과 비교했을 때 여전히 열악한 조건에 놓인 입장이므로 억울하겠지만 ‘잃어버린 10년’ 동안 문화운동이 좀더 마이너한 입장의 사람들(대중)과 얼마나 연대했었는지 반추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단적인 예로 1988년 UIP영화직배 이후 20년, 1998년 IMF외환위기 이후 한미투자협정을 기점으로 10년 간 지속된 스크린쿼터사수투쟁은 신자유주의 반대운동과 결합되면서 문화운동의 중요한 아젠다로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반대투쟁에 대한 비판 역시 만만치 않았습니다. 비판의 주된 요지는 스크린쿼터사수투쟁이 국산 영화를 “21세기 복합영상산업의 핵심 고리”이고 “미래경제의 핵심성장엔진”이라 규정하는 것 자체가 문화예술을 산업으로 파악하고 있으면서도 다른 한 편으론 영화산업 내부구조의 민주화, 영화제작에 참여하는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는 외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과연 스크린쿼터사수투쟁이 농민들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투쟁보다 더 큰 공감대를 얻었는지 의심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문화운동의 새로운 프레임은 일상의 정치적 상상력에 달렸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현재의 문화운동은 문화정책적 차원에서 문화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하부구조로 포섭되었고, 자본주의 국가의 우파정치와 조우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문화운동의 공공성은 지배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속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시민사회 내부의 냉소를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냉소는 다시 사회적 ‘재봉건화’의 위험으로 나타났습니다. 문화운동의 미래는 문화운동과 담론이 애초에 출현할 당시에 품었던 비판 의식 - 사회의 제 분야에 널리 분포하여 존재하는 권력의 다양한 형태를 폭로하고, 논쟁적인 비판 - 을 회복하는 데 있으며 문화운동에게 주어진 새로운 임무는 문화민주주의를 보다 급진적이고 다원적인 민주주의로 심화시키고 확장해나가는 데 있습니다. 현 단계 문화운동의 새로운 프레임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운동의 중심, 운동의 주체, 운동의 대상에 대한 새로운 문제제기와 성찰이 필요합니다.

현재의 문화운동 프레임은 단순히 개혁정당의 구조화와 정책의 부재로 인해 실패한 것이 아니라 대중의 실제 생활 근거라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정치적인 영역에서 실패한 결과입니다. 문제는 이 실패의 내용을 좀더 차분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좀더 나은 공동체사회를 만들어가는 방법 중 하나는 올바른 국가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것에 있긴 하지만, 시민사회가 국가정책에 지나치게 목을 매는 현재의 방식으로는 국가권력에 너무 많은 권력을 위임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고, 이는 국가권력이 약화되는 세계화 시대의 현실에서 궁극적으로 재벌권력에 목을 매는 상황이 됩니다. 책임질 수 없는 구호를 남발하는 것과 실질적인 물적 토대(실천력)를 구축하는 일 사이에서 이제 문화운동은 일상의 생활공간에서 모든 정치적인 것들의 귀환을 위하여 싸워야 할 때이고, 문화운동의 새로운 프레임을 구축하는 일은 장기적 전망, 다시 말해 담론과 철학을 귀환시키는 일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 위의 글은 민예총이 지난 1월 24일 주최한 신년토론회 <이명박시대의 문화운동, 문화정책 ⓛ - 오늘의 문화운동, 어디로 가는가>에서 토론자로 발표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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