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범죄자도 감옥에 보낼 수 있는 증빙자료, 회계장부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이 1987년에 감독한 영화 <언터쳐블(The Untouchables)>는 미국 역사상 가장 부패했던 시대였던 금주법 시대를 배경으로 경찰도, 검찰도 감히 손대지 못하던 갱단 두목 알 카포네(Al Capone)가 엘리오트 네스(Eliot Ness)라는 한 풋내기 열혈수사관에 의해 세금 포탈 혐의로 수감시키기까지의 과정을 다룬다. 알 카포네는 1920년대 당시 시카고의 라이벌 갱단 두목이었던 조지 벅스 모렌을 암살하기 위해 경찰관 복장을 한 부하들을 시켜 상대편 조직원 7명을 기관단총으로 살해할 만큼 잔인무도하기로 악명 높은 인물이었다. 경찰과 언론은 물론 시카고의 삼척동자도 이 범죄가 알 카포네의 짓이란 것을 알고 있었지만 무능한 경찰은 범죄의 증거를 찾아내지 못해 도리어 알 카포네의 명성만 높여주게 된다.


시카고 시민들은 알 카포네의 갱단의 횡포는 물론 암흑가 조직과 결탁해 있는 시카고 경찰과 시 당국에 대해 실망하고 있었지만 감히 분노를 드러내지 못한다. 이럴 때 나타난 인물이 시카고 대학을 졸업하고 불과 26세의 나이에 미국 법무성(U.S. Department of Justice)의 금주국(Prohibition bureau) 특별수사관으로 임용된 엘리오트 네스였다. 그는 범죄 집단과 깊이 결탁된 경찰을 배제하기 위해 20대의 열혈 청년들로 수사진을 편성했는데 언론은 이들을 ‘언터처블(Untouchables)’이라 불렀다. 그의 업적은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에 의해 영화로 재조명되었는데 무자비한 갱단의 두목이었던 알 카포네를 감옥에 보낸 죄명은 다름 아닌 탈세였다. 영화에서 네스와 사법기관이 알 카포네를 감옥에 집어넣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비밀장부를 정리한 회계사와 장부를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는 10월 26일에 있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와 박원순 범야권단일후보는 지난 10일 밤 SBS방송의 ‘나경원 VS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토론’에 출연해 서울시 부채 규모를 놓고 때 아닌 ‘부기논쟁’을 벌였는데 나 후보와 박 후보가 서울시 부채 규모를 놓고 각각 단식부기와 복식부기에 의한 회계처리기준을 제시하며 상이한 수치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박원순 후보가 “서울시 부채가 25조 5000억 원에 이른다”며 “오세훈 前 시장의 전시성·낭비성 예산”에 대해 비판하자 나경원 후보는 “25조는 복식부기에 의한 것이고 단식부기에 따르면 19조 가량 된다”고 이에 맞섰다. 서울시의 부채 문제는 워낙 중요한 사안이었기 때문에 두 사람간의 설전은 토론 종반까지 이어졌는데 박원순 후보는 “나 후보가 부채계산 방식을 단식부기로 하는데 복식부기로 할 경우와 6조 차이”라며 “정부와 공기업·공공기관에는 다 복식부기로 쓰고 있는데 (서울시만)단식부기를 쓰는 이유를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자 나 후보는 “정부회계 기준은 단식부기”라며 “잘 모르시나 본데 서울시는 단식부기로 쓰는 것이 원칙”이라고 맞서며 말끝마다 국민의 혈세 운운하는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과연 아직까지도 일반 가정에서나 쓰는 가계부 같은 단식부기를 쓰고 있다는 것인지, 복식부기를 쓴다면 는 어떤 이점이 있으며 이것이 부채를 줄이는데 과연 도움이 될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인류의 경제활동과 함께 시작된 부기의 역사
부기(簿記)란 장부기입(帳簿記入)의 약자로 정부·가계·기업과 같은 경제주체에서 경영활동을 통해 발생되는 재산의 증감과 자본의 증감(손익의 발생)을 계정이라는 계산형식을 이용해 화폐가치에 의해 계속적으로 기록, 계산, 정리하여 그 원인과 결과를 명백히 하는 방법을 말한다. 나일강 삼각주를 통해 수학과 천문학이 발달했던 이집트, 수메르 문명은 물론 아시리아, 중국, 그리스, 로마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부기의 역사는 인류가 고대국가를 형성한 이래 세입을 통해 국가재정을 충당했던 모든 문명권에서 조세징수나 간단한 거래에 관한 기록들이 발굴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인류 경제활동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 역사가 오래된 것이다.


특히 부기는 경제활동 가운데에서 상업의 발달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데 해양민족으로 지중해 상권을 장악했던 고대 페니키아인들과 그리스인들도 상업 활동과 거래에 대한 보고를 위해 기록을 남겼고, 노예가 재산을 관리·운영하던 로마에서는 노예들이 주인에게 보고하기 위해 부기가 발달했다. 아직 자본주의가 발달하기 이전이었던 고대와 중세시대의 부기는 단순히 거래 당사자 간의 분쟁의 소지가 있는 채권·채무 관계의 기록, 재산을 관리하고 보전하기 위한 단순한 형태의 단식부기가 일반적이었고, 손익을 계산해 이를 분배하는 데까지는 발달하지 못했었다.


르네상스 회계의 거장 루카 파치올리와 대항해시대
인류의 문명은 특정분야만 갑자기 발달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 전반이 고르게 발달하고 그것을 밑바탕으로 해 그 문명의 꽃이라 할 수 있는 거장들이 탄생하는 것인데 우리는 흔히 서구문명의 문예부흥이라고 하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거장으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같은 예술계의 거장들만을 기억하지만 이들과 동시대에 활동했던 인물 가운데 오늘날 전 세계가 사용하는 복식부기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루카 파치올리(Luca Pacioli)가 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천재이긴 하지만 인류 역사에 끼친 영향만 놓고 보자면 일반 대중에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루카 파치올리가 끼친 영향이 결코 작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프란체스코회 수도사이자 저명한 수학자였던 파치올리는 1494년 『산술집성(Samma de Arithmetica, Geometria, Proporcioni e Preporrcionalita)』이란 저서를 통해 베니스에서 사용하고 있는 회계시스템이 장점이 많기 때문에 소개한다며 당시 베니스를 비롯한 이탈리아의 상인들이 손에서 손으로 이어져오던 복식부기를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파치올리를 통해 정리되고 체계화된 복식부기의 구조는 그로부터 50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거의 변함없이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인류의 역사에서 특히 수학 발전에 크게 기여한 나라 인도에서 탄생한 복식부기는 바그다드의 상인들을 거쳐 이탈리아의 제노바로 들어왔고, 프란체스코회 수도사이자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교분이 있었던 수학자 루카 파치올리에 의해 유럽에 전파되었다.


그는 공놀이에서 승리할 가능성이라는 문제를 놓고 게임이론적 접근을 시도한다. 이러한 접근방식은 나중에 확률과 연결되어 존 내쉬 같은 경제학자에 의해 더욱 발전된다. 루카 파치올리는 그의 저서 『산술집성』에서 당대의 수학적 지식을 집대성했다. 이 책에서 그는 상인들과 학자들이 지켜야 할 복식부기 규정을 정리했다. 초기 르네상스 시대의 ‘복식부기 보편화’는 ‘자본주의 탄생의 순간’으로 꼽힌다. 역사 서술에 있어 ‘만약에’라는 말은 없다지만 파치올리의 복식부기가 없었다면 서구의 신대륙 발견과 그로부터 시작된 신대륙으로부터 막대한 은의 유입과 이를 토대로 한 서양의 발흥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파치올리의 복식부기가 없었더라면 ‘대항해시대’는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은 이렇다.


잘 알려진 대로 대항해시대의 개막은 애초부터 서구가 의도했던 것이 아니라 이슬람세력에 의해 가로막힌 인도와의 향료 무역을 위해 신항로를 개척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이었다. 당시 탐험을 빙자로 한 사기가 워낙 극성이었기 때문에 돈을 떼일까 염려하던 투자자들에게 콜럼버스는 자신은 탐험에 사용될 비용을 복식부기를 통해 정리할 것이기 때문에 자금의 사용내역을 속일 수 없다고 설득해 경비를 마련했다고 한다.

 


<그림>야코포 데 바르바리의 ‘루카 파치올리의 초상’(1495년), 이탈리아 나폴리 국립 미술관 소장.


세계에서 가장 정교한 부기로 알려진 사개송도치부법(四介松都治簿法)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복식부기를 통한 회계의 투명성이 서구사회와 비서구사회를 나누는 기준이 된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1997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G7회담에서 당시 미국의 부통령이었던 고어가 “금속활자는 한국이 세계 최초로 발명하고 사용했지만, 인류 문화사에 영향력을 미친 것은 독일의 금속활자”라고 말했던 것처럼 우리 민족은 서양에서 복식부기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으로 생각되는 13~14세기 보다 약 200여년 정도 앞선 고려시대 때부터 우리만의 방식으로 세계에서 가장 정교한 부기법로 알려진 사개송도치부법(四介松都治簿法)을 사용해 왔다.


KBS <역사스페셜>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다뤄지기도 했는데, 사실 그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는데 고증 가능한 기록이 많지 않아 명확히 어느 것이 옳다고 답하긴 어렵다고 한다. 회계학계의 원로학자인 조익순 교수는 사개송도치부법이 외국에선 전래된 것이기 보다는 우리 고유의 복식부기법으로 조선시대에 생성되었을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는데, 조 교수의 견해에 따르면 사개송도치부법의 ‘사개’는 우리 고유의 말인 ‘사개를 물리다’에서 온 표현으로, 그 뜻은 ‘박거나 잇는 나무가 서로 꼭 물리도록 하기 위하여 나무의 끝을 들쭉날쭉 어긋나게 파낸 짜임새’를 말한다. 따라서 ‘사개’는 말이나 사리의 앞뒤 관계가 빈틈없이 딱 들어맞는 경우를 뜻하는 것으로 사개송도치부법의 셈법 역시 이처럼 딱 맞아 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고유의 복식부기법인 사개송도치부법이 어느 시대에 출현했는지 그 기원에 대해서는 이처럼 명확치는 않지만 사개송도치부법은 갑오개혁 이후 우리나라에서 은행이 설립되고 회사가 만들어진 뒤에 꾸준히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1897년에 설립된 조선은행과 한성은행, 1899년에 설립된 대한천일은행 등은 모두가 우리의 전통 부기인 사개송도치부법을 사용했다. 그러나 1903년 한성은행이, 1905년 대한천일은행 등이 서양식 부기를 도입하면서, 우리 전통부기는 점차 실무 현장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어쨌든 개성상인들이 사용했던 ‘사개송도치부법’은 복식주기의 이중성에 자본주의 관계까지 명확하게 나타냄으로써 서양부기보다 훨씬 우수한 측면이 있었다고 한다.


단식부기냐? 복식부기냐?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단식부기와 복식부기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단식부기는 법칙에 얽매이지 않고 기본적인 사항만으로 장부를 기입하는 단순한 장부 기입법으로 계정 없이 재산구성부분의 변동만을 기록하는 방식으로 손익계산의 상세한 내용을 표시하지 못한다. 그래서 소규모 기업이나 손익산출의 필요성이 없는 관공서 등에서 주로 사용해왔는데 2009년 1월 1일부터 정부부문에서는 새롭게 발생주의·복식부기 회계제도를 도입해 사용하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지난 10일에 있었던 토론에서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가 “잘 모르시나 본데 서울시는 단식부기로 쓰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했던 것은 분명히 틀렸고, 사실이 아니다.


국가회계법 - 제11조(국가회계기준) ① 국가의 재정활동에서 발생하는 경제적 거래 등을 발생 사실에 따라 복식부기 방식으로 회계처리하는 데에 필요한 기준(이하 "국가회계기준"이라 한다)은 기획재정부령으로 정한다.<개정 2008.12.31>


지방재정법 - 제53조(재무회계의 결산) ①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그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상태 및 운용결과를 명백히 하기 위하여 발생주의와 복식부기 회계원리를 기초로 하여 행정안전부장관이 정하는 회계기준에 따라 거래 사실과 경제적 실질을 반영하여 회계처리하고 재무보고서를 작성하여야 한다.


포탈사이트 네이버 지식IN에는 위 사항에 대해 2011년 2월 25일 방송통신위원회가 다음과 같이 답변한 내용이 있다.


o 도입배경
- 예산집행의 자율성 확대, 재정수요의 급증 등 재정여건의 급속한 변화에 따라 선진 재정운용체계 구축 필요
- 국가재정의 종합적·체계적 관리 및 효율적인 재정성과 관리를 위하여 발생주의· 복식부기 회계제도 도입을 추진


o 발생주의·복식부기 특징
- 발생주의는 경제적·재무적 자원의 변동이 발생하는 시점에서 거래로 인식하고 회계처리
- 복식부기는 경제적 거래나 사건이 발생할 때 자산·부채, 수익˙비용의 변동을 서로 연계시켜 동시에 기록·관리


o 도입효과
- 국가 재정의 상태와 운영성과 및 향후 재정전망 등을 종합적으로 파악하여 재정에 관한 유용한 정보를 생산· 제공할 수 있음
- 사업별 투입원가정보를 산출하여 성과 중심의 재정운영 체계를 통해 불필요한 사업을 통제할 수 있음
- 일정 시점에서 실질적인 채권·채무 산출이 가능하여 재정위험 및 재정 건전성 관리·유지가 실질적으로 가능


정부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의 답변을 풀어보면 단식부기와 복식부기의 장단점, 그리고 정부가 어째서 복식부기를 도입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는데 지금까지 관공서와 지방정부 등에서 사용해온 단식부기는 일정한 원리, 원칙 없이 현금의 유입과 유출이 있을 때마다 장부에 기록하는 것이고, 복식부기는 재산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거래를 파악함으로써 재산이 변화한 원인과 그에 따른 결과를 동시에 기록한다는 차이가 있다.


단식부기의 대표적 사례인 가계부엔 일반적으로 일자, 적요, 지출이나 수입금액, 계, 잔액 같은 항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은 돈이 나가면 무조건 지출, 돈이 들어오면 수입으로 처리해서 가계부의 잔액과 보유하고 있는 현금을 맞추도록 되어 있는데 이 방식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매우 단순해서 현금의 수입, 지출과 현금잔액 정도뿐이다. 단식부기는 채권, 채무, 재산, 물품관리가 복식부기방법에 의한 것처럼 하나의 표로 연계 집합되지 못하기 때문에 재정 상태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실사방법을 동원할 수밖에 없는 불편한 제도로 한 마디로 이야기해서 지방정부나 관공서가 단식부기 같이 주먹구구 방식으로는 채무상태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는 말이다. 이에 비해, 복식부기에서는 현금의 지출과 함께 지출원인이 즉, 재산변동의 원인과 결과가 모두 나타나도록 되어 있다. 복식부기는 거래형태를 표현하는 계정과목을 설정하도록 되어 있는데 모든 거래는 자산, 부채, 자본, 수익, 비용이라는 5개의 계정과목을 이용하여 차변과 대변에 기입하고, 이렇게 해서 기록된 계정과목별 차·대변거래를 집계함으로써 대차대조표와 손익계산서가 작성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 말도 어렵다면 한 마디로 말해 복식부기제도는 오랜 세월을 거쳐 인정된 자본주의 경제사회의 회계관리수단으로 지난 15세기에 출현한 이래 동서양을 막론하고 복식부기가 불변토록 사용되어 온 까닭은 복식부기가 지닌 ‘자기검증기능’ 때문이다.


복식이냐, 단식이냐는 핵심이 아닐지도 모른다
국가회계에 복식부기가 도입된 까닭은 IMF 외한위기라는 초유의 경제난을 맞이하며 출범한 국민의 정부가 당시 최대 현안이었던 경제문제의 해결차원에서 민간기업 부문에서는 경영의 투명성과 경쟁력 강화를, 국가재정관리 부문에서는 부정부패와 비능률의 추방을 위해 복식부기 도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결과다. 사실 정부와 공공기관에 복식부기를 도입하려는 시도는 이전에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식부기가 쉽게 정착되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복식부기에 대한 담당 공무원들의 인식 부족 때문이었다. 복식부기 도입을 꺼려한 정부 내 공무원들의 논리는 ‘정부부문은 영리를 추구하는 사기업과 달라서 대차대조표와 손익계산서가 필요 없으며, 정부와 자치단체의 회계실무진에 복식부기 전문가가 없기에 이들을 재교육하고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드는 비용이 엄청나서 도입의 실익이 적다’는 이유로 그동안 거부해오던 것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당시 정부의 판단으로 도입된 것이었다.


복식부기 도입 당시의 효과에 대해서는 앞서의 답변에도 나와 있지만 “국가재정에 관한 업무를 능률적으로 수행하고, 재정의 투명성을 확보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민주적인 헌법이었다던 독일 바이마르헌법이 히틀러의 출현을 제지할 수 없었던 것처럼 복식부기를 도입한다고 해서 저절로 국가재정에 관한 업무들이 능률적으로 수행되고, 재정의 투명성이 확보되는 것 또한 아니란 것이다. 복식부기는 회계정보를 산출하는 하나의 방법, 즉 수단에 불과할 뿐이지 이것이 곧 회계나 회계정보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복식부기를 도입한 까닭은 정부회계에서 사용하는 단식부기로는 제대로 된 회계정보가 나올 수 없고, 회계투명성을 보장받을 수 없기 때문에 이것을 개선하자는 것이지 단순히 복식부기를 도입하는 것만으로 이런 목적들이 저절로 성취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음의 사례를 보자. 사실 서울시 부채 문제가 논란의 원인이 되었던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지난 2010년 서울시의회 김정태 의원은 시정 질의에 앞서 보도자료를 내고 “작년 말 현재 서울시와 투자기관 부채 규모는 서울시가 발표한 19조5천333억 원이 아닌 25조754억 원”이라며 서울시가 5조5천421억 원을 의도적으로 축소·조작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적이 있는데 그때도 서울시는 해명자료를 배포하면서 “우리는 단식부기 방식으로 산정한 부채 규모를 발표했고, 김 의원이 인용한 것은 복식부기 방식으로 작성한 재무보고서여서 다른 숫자가 나온 것”이라며 반박했다. 서울시는 “단식부기는 채무 불이행이 재정 위험으로 이어지는 외부 차입금만을 부채로 계상하는데 비해 복식부기는 임대보증금과 퇴직급여 충당금 등 재정위험이 없는 비차입금이 포함된 더 넓은 개념”이라고 설명했고 “단식부기에 의한 부채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 재무위험 관리에서 실효성이 크다”며 “지방재정법 시행령 제108조에서도 채무관리 범위를 지방채 등 외부차입금만으로 규정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행정안전부 관계자 역시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위험을 따질 때는 직접적 지급과 관련된 개념인 단식부기상 채무를 기준으로 하는 게 적합하다”며 서울시의 편을 들어줬다.


그렇다면 지방재정법 시행령 제108조를 보자.


제108조(채무관리사무의 범위) 법 제87조 제3항의 규정에 의하여 관리하여야 할 지방자치단체의 채무의 범위는 다음 각 호와 같다.
1. 지방채증권
2. 차입금
3. 채무부담행위
4. 보증채무부담행위


시행령 제108조는 지방재정법 제87조에서 정한 방법으로 지방자치단체가 관리해야 할 채무의 범위를 규정하고 있는데, 다시 말해 복식부기로 만들어진 회계상 서울시 부채는 25조원이 맞지만 서울시가 시행령에 따라 관리해야 할 채무는 19조원이 맞는 셈이다(법률 용어에 따르면 서울시 부채는 24조 9,943억 원이고, 서울시의 채무는 19조 5,318억 원). 문제는 서울시가 시행령에 따라 관리하는 채무의 범위가 이것일 뿐이지 이것이 단식부기에 의한 건 아니란 말이다.


서울시는 처음부터 복식부기냐 단식부기냐는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인데, 서울시의 이 같은 답변은 마치 서울시가 단식부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오해 아닌 오해를 하도록 나경원 후보를 부추긴 셈이 되었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단식부기는 다만 현금의 수입과 지출, 그리고 현재 잔고가 얼마인지 정도의 정보만을 제공해주는 것일 뿐 부채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는 것인데 서울시는 어째서 이런 이상한 변명을 들고 나왔을까? 그리고 이를 받아서 보도한 언론사들은 단순히 행정안전부 관계자의 법률 해석만을 놓고 누가 누구의 손을 들어주었다는 식으로만 보도해 버린 것인지 잘 이해할 수 없다.


처음 저 사단이 일어났을 때 언론사들은 자신들이 심정적으로 지지하는 후보가 누구냐와 상관없이 이런 맥을 정확히 짚어 보도했더라면 나경원·박원순의 복식부기 논쟁 같이 우스꽝스럽고 본질에서 벗어난 논쟁은 애초에 빚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덧붙이자면 나경원 후보는 법률가(판사) 출신이긴 하지만 정치인으로서 서울시장직을 수행하겠다고 나선 후보로서 지금 시민이 원하는 서울 시장은 법률적 해석을 내리는 법률가가 아니라 시장으로서 서울시의 건전한 재정 운영을 통해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여줄 사람을 찾고 있다는 점을 유념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그러나 그 사이 언론이 정신을 차렸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어 보인다. 이 문제의 정확한 맥을 정확히 짚어준 것은 언론이 아니라 도리어 이 문제에 관심이 많은 일반 네티즌들이었다.


진짜 문제는 단식부기냐, 복식부기냐가 아닌 우리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들의 재정상황을 아직도 낙관적으로 인식하는 공무원들과 정부, 집권여당의 태도에 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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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살육과 문명 : 서구의 세계 제패에 기여한 9개의 전투 - 빅터 데이비스 핸슨 | 남경태 옮김 | 푸른숲(2002)


▶ 1975년 베트남 패망으로 사이공이 함락되면서 미 대사관을 통해 국외로 탈출하는 모습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썩 좋은 책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나름대로 독창적이고 재미난 식견을 보여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 "빅터 데이비스 핸슨"의 책 "살육과 문명 - 서구의 세계 제패에 기여한 9개의 전투"을 읽는 건 그 자체론 조금도 위협적이지 않으며, 이 책을 누군가에게 집어던져 운 나쁘게 정수리를 찍히거나 혹시 급소에 일침(一鍼)이라고 잘못 맞지 않는한 약간의 상처는 남겠지만 죽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거다(책이 두꺼운 관계로 살인무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혹여라도 이것을 18-19세기식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아니면 20-21세기에 이르러 미국인들이 생각하는 식으로 해석하는 이가 있다면, 그 결과는 아마 참혹할지도 모르겠다.

 

어째서 그런가? 찰스 다윈의 진화론이 지향했던 바가 인간 사회에 기계적인 적용이 아니었지만 일부 사회학자들은 이를 사회과학에 접목시켜 사회진화론이란 약육강식의 논리로 발전시켰고, 자유주의자들은 대중민주주의의 출현을 중우정치와 연관시켜 생각해 대중사회의 도래를 염려했다. 반드시 그 결과라고 할 수는 없으나 이런 사회 분위기는 대중민주주의의 한계를 타개할 새로운 정치 이념의 출현을 모색하게 만들었는데, 그렇게 해서 서구 사회가 출현시킨 이념은 파시즘이었다. 이 책의 한국어 제목이 "살육과 문명"이긴 하지만 원제는 "Carnage and Culture"다. "Carnage" 전쟁터 등에 즐비한 시체, 송장을 의미하는 말이고, 거기에 일반적으로 말하면 문화로 번역되기 마련인 "컬춰"가 붙었지만, 사려깊은 번역자를 만난 덕에 문명이란 말로 번역되었다.

 

저자는 전쟁을 연구하며 스스로 일종의 우월감에 빠졌나보다. 마치 실제 전장에 참여했다가 돌아온 참전병사들이 되뇌이는 것처럼 "너희들이 전쟁을 알아?"라고 말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전쟁이란 궁극적으로 이런 것이다, 라고 저자는 단정짓듯 말한다.

 

"전투에는 내재적인 진실이 있다. 전장에서의 평결은 위장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이를테면 전사자가 발생한 이유를 발뺌하거나, 비참한 패배를 승리라고 강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전쟁이란 전투의 합계이며, 전투란 결국 죽은 사람들의 합계에 불과하다. ...<중략>... 궁극적으로는 기관총탄이 어느 청년의 이마를 뚫고 들어갔다든가, 칼날이 어느 이름 모를 갈리아인의 배를 찔러 동맥이나 장기를 베었다든가 하는 서술을 가리킨다. 다른 식으로 전쟁을 이야기하면 오히려 부도덕한 냄새가 풍긴다. 그 경우에는 적의 공격을 받은 병사들이 사지가 찢어져 죽었는데도 그냥 평화로이 숨진 것이 되고, 장군들이 열아홉살짜리 청년들을 포연이 가득하고 납총탄이 날아다니는 전장으로 내몰았는데도 마치 비인격적인 부대나 로봇들을 전장의 열기 속으로 뛰어들라고 명령한 것처럼 되며, 악취 풍기는 시신이 과학이나 문화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듯 보이게 되는 것이다." <본문 29-30쪽>


 
▶ 빅터 데이비스 핸슨은 세계전쟁사 중에서 7개의 전투에서 서구의 우월한 문명이 궁극적인 승리를 가져왔다고 주장한다. 그 중 한 가지 전투인 제2차 세계대전 중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군에게 공격당한 미 항공모함 요크다운 함상의 모습이다.

일견, 저자는 학문적인 입장에서만, 혹은 가치중립적인 관점을 유지하는 듯 보인다. 아니, 위의 어느 문장들만 읽노라면 도리어 전쟁의 부도덕한 속성을 꾸짖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저자의 관점은 그리 녹록치 않다. 그 뒤이어 같은 페이지에 나오는 다음 단락을 살펴보자.

 

"우리는 죽은 자를 위해서라도 어떻게 정치, 과학, 법, 종교가 한데 어우러져 전장에서 수천 명의 운명을 결정하는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지를 설명할 필요가 있다. 걸프 전쟁 때 미국의 스마트 폭탄을 발명한 사람, 그 제조 공장을 세운 사람, 그것을 명령하고 접수하고 비축하고 폭격기에 탑재한 사람, 이 모두가 적대국인 이라크와는 다른 방식으로 가능했으며, 그런 탓에 사담 후세인의 군대에 징집된 무고한 젊은이들은 공격을 피할 기회도 거의 갖지 못한 채 죽거나, 영웅적인 항전을 벌이다가 전사하거나, 자신을 죽인 비행기 조종사를 죽이고자 했다. 이라크 젊은이들이 왜 미국 헬리콥터에 장착된 불빛이 번쩍이는 멋진 비디오 계기판의 목표물이 되었는지, 그리고 왜 그 반대는 아닌지, 혹은 추운 미네소타 출신의 GI가 왜 무더운 바그다드 인근에서 징집된 병사들보다 사막 전투에 더 능했는지는 주로 문화적 유산의 결과일 뿐 군사적 용기의 차이는 아니며, 지리나 유전자 때문에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은 더더욱 아니다. 전쟁은 궁극적으로 학살이다. 역사가들이 죽은 자를 무시한다면 전쟁 이야기는 무의미해지게 된다."<본문 30-31쪽>

 

여기서 저자의 전쟁에 대한 궁극적인 정의가 윤곽을 드러낸다. 그것은 단 한 마디 "전쟁은 학살"이란 말이다. 그가 앞서부터 내리 줄곧 주장하는 관점은 오직 한 가지다. 전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승리이고,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선 칼날이 갈리아인의 배를 푹 찌르던, 헬리콥터가 무기를 버리고 달아나는 이라크 공화국 수비대원들을 등 뒤로부터 갈겨대던 상관없이 적을 쏘아 죽이고, 찔러 죽이고, 폭파시켜 죽여서 궁극적으로 전쟁의 본질인 학살을 효과적으로 수행하여 승리를 거두는 것이다. 그는 스스로 이런 관점에서 전쟁을 살펴볼 것이라고 말한다. 거기엔 어떤 인종적 편견도 없음을 누차 강조한다. 그의 관심은 인종적, 신체적 차이에 의해 전쟁의 승패가 가늠하는 것이 아니라 군사 체제를 산출시킨 정치 체제와 그런 정치 체제를 배태한 그 사회의 문화와 사상, 정신을 아우르는 하나의 문명 체계를 고찰해본 뒤 이를 서구와 전쟁했던 다른 세계, 다른 문명과 비교해서 과연 어느 문명이 전쟁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는데 우수한 문명체계인가를 드러내 보이겠다는 것이다. 그것도 순수하게 학문적인 관심사로써...

 

저자의 의도는 프롤로그 제목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서구는 왜 승리했는가?" 이런 제목을 읽노라니 이와 비슷한 관심에서 출발한 다른 책, "제레드 다이아몬드""총, 균, 쇠"가 있는데, (지정학적인 관점이란 다소의 비판은 가능하겠지만)품격이란 측면에선 서로 비교할 수 없다. "전쟁"을 통해 문명사의 변천 혹은 "전쟁"이 문명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쳐는지란 측면에서 보자면 이 책의 저자인 "빅터 데이비스 핸슨"보다 대선배격인 "스티븐 앰브로즈" "만약에 1 - 군사 역사편"이 있다. "빅터 데이비스 핸슨""살육과 문명"을 통해 서구의 세계 제패에 기여한 9개의 전투를 조목조목 따지고 있다면 "스티븐 앰브로즈"는 서구의 전쟁 17개를 통해 만약 이 전쟁(투)의 승패가 엇갈렸다면 세계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를 묻고 있다.

 

우리는 우선 저자의 사관에 몇 가지 비판을 가할 수 있다. 그의 사관이 철저히 승자의 관점에서만 고찰되고 있다는 점이고, 둘째는 전쟁이 아닌 전투라는, 총체적인 관점이 아닌 소규모 단위로 한정짓고 있다는 점, 셋째는 전쟁과 문명의 연관성을 파헤치는 것은 좋으나 전쟁에서의 승리를 상대 문명에 대한 우월로 인식하는 점이다. 특히 세 번째 비판은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관점과 상당히 배치되는 것으로 전투기술적으로 우월한문명의 열등한 문명에 대한 지배를 정당화하는 측면이 있다. 나 역시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의 전체주의가 서구의 민주주의보다 전쟁력을 동원하는 측면에서 자발적인 면, 창의적인 면, 책임지는 자세 등에서 뒤떨어졌고, 그 결과 전쟁에서 패했다는 관점에는 동의할 수 있다. 그런데 그 표본이 반드시 서구와 비서구 지역의 전쟁에서만 찾을 일은 아니다. 단적인 예를 들어 그런 전쟁은 전략전술에 있어 평범하지만 성실한 학생(몽고메리)에 비견되는 영국군과 기발한 발상과 천재적인 전술(롬멜)을 보여준 독일군과의 전투 혹은 전쟁에서도 찾을 수 있다.

 

만약 저자의 진술대로라면 제2차 세계대전의 동부전선에서 소련군이 독일군을 물리친 것은 우파 전체주의에 대한 좌파 전체주의의 탁월한 문명적 승리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저자는 세계 역사 속에 벌어진 무수한 전투 가운데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 쉬운 몇몇 전투만을 예시로 들고 있으며, 그 가운데 일부 전투는 분명히 서구의 문명적 우월함을 증명하는데 적절해보이지 않거나, 서구의 문명이란 결국 그렇게 잔혹한 것에 불과하다는 결론밖에 도출할 수가 없다. 저자는 자신의 논리를 주장하기 위해 주변의 그런 인식엔 신경쓰지 않겠다는 투로 밀고 나간다. 빅터 데이비스 핸슨은 베트남전의 "테트 공세"도 궁극적인 승리는 미국에 있었던 것처럼 주장하는 더할 수 없는 아전인수를 보여준다.



 

"일방적이고 편향적인 보도를 본국에 보낸 언론인들의 의도가 미국의 정치적, 군사적 명령 체계의 모순을 지적하려는 데 있는 것은 아니었겠지만, 그 결과는 마찬가지가 되어버렸다. 자유언론과 자기 비판을 허용하는 오랜 서구적 전통은 결국 베트남에서 미국의 체면을 구겨버렸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자체를 구겨버리지는 않았다. 공산주의자들은 전쟁에서 이겼지만 평화를 누리는 대신 국민들을 학살하고 국가경제를 파괴했다. 폐쇄적이고 검열을 위주로 하는 사회의 필연적인 귀결이었다. 반면에 미국은 자기 비하적인 성향에도 불구하고 전쟁에서는 졌으나 평화를 얻었다. 그 결과 미국식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전에 없이 많은 지지자들을 얻었고, 개혁 군대도 더욱 힘을 얻게 되어 시련을 겪은 뒤 더욱 강해졌다."
<본문 708쪽-709쪽>

 

저자는 다시 에필로그에서 자신의 주장대로 베트남전 패배의 후유증을 극복한 미국이 치른 이라크 전쟁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라크 병사들은 규율과 조직이 형편없었을 뿐 아니라 정확한 의미에서 자유로운 개인이 아니었다. 서구 군대를 상대한 이라크의 공화군은 일찍이 크세르크세스가 거느렸던 불사의 군대와 비슷했다. 미군이 제트기에 의해 사살된 병사들 중 아무도 쿠웨이트를 침공하거나 미국과 싸우는데 투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사담의 군사 작전은 그 자신 이외에 다른 누구의 검토도 받지 않았고, 그의 경제는 가내공업의 연장이었다." <본문 729쪽>

 

저자의 저와 같은 주장을 읽으며 무슨 생각이 들었느냐 하면, 미국식 민주주의란 것이 결국 저와 같이 침략전쟁을 정당화하는 수단에 불과하다면 애써 미국식 민주주의를 수용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것이다. 게다가 미국의 부시 대통령도 이라크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 국민들에게 투표로 의사를 물은 적이 없었다. 그 자신조차 고어 후보와의 표대결에서 꼭 승리했다고 말할 수 없다는 걸 세계인들은 누구나 알고 있지 않은가. 미국은 저자의 말대로 가내공업 수준밖에 안되는 이라크가 (미국이 생난리를 친 끝에도 결국 찾아내지 못한)대량살상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혐의를 붙여 선전포고 없는 경제봉쇄조처를 통해 전쟁 발발 이전부터 이미 100만 명 이상의 이라크인을 죽였고, 그 잘난 미국식 민주주의란 것이 전쟁수행을 위해 자국국민과 우방국 국민들에게 허위로 가공된 정보를 제공하고, 위협을 통한 공포를 부추겨 결국 전쟁을 일으키고 마는 그런 것이란 사실을 과연 이 잘난 저자는 얼마나 알고 있는 건지 궁금하다. 빅터 데이비스 핸슨은 학문의 외피를 뒤집어 쓴 또 하나의 명백한 운명론자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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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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