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키즘 국가권력을 넘어서 - 로버트 폴 볼프 지음/ 임홍순 옮김/ 책세상(1998년)



내가 어렸을 때 영화는 흑백영화였고, FBI요원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은 신임을 받았으며 좋은 사람으로 묘사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영화나 텔레비전에서 그리는 FBI요원은 대부분 악당의 모습이다. 예를 들어 대도시의 경찰 지휘본부에 모습을 드러낼 때의 그는 좀더 높은 차원의 내밀한 수사를 한다는 이유로 명백한 정의를 왜곡시키는 방해꾼으로 간주된다.


경찰 역시 악역으로 나온다. 예를 들어 매우 노골적인 영화 람보 시리즈를 생각해보자. 첫 번째 람보 영화인 「퍼스트 블러드First Blood」를 보면, 베트남 전쟁에서 훈장을 받은 참전 용사 존 람보는 조그마한 시골 마을을 걷다가 지방 보안관 브라이언 데니히에게 체포된다. 영화 속의 모든 것이 람보 편을 들고 있으며 보안관은 편협하고 어리석은 가학자로 그려지고 있다. 그런데 사실 보안관이 옳았던 것이 아닌가! 보안관은 람보가 골칫거리라고 생각했는데, 그의 생각이 옳았음을 입증이라도 하듯, 영화가 끝나기 전에 보안관 조수들 중 여러 명이 죽게 되고 그 마을은 도살장이 되어버린다.


람보 시리즈의 두 번째 영화는 더욱 노골적이다. 람보는 베트남에서 포로를 구하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CIA에게 차출되어 출옥하게 된다. 그러나 그 임무의 실제 목적은 람보가 실패하는 데 있었기에 생존하는 포로들에 대한 소문은 전혀 들을 수가 없다. 온갖 난관을 이기고 람보가 마침내 포로 몇 명을 찾아내어 그들을 탈출시키려고 할 때 CIA요원들은 그들을 내버려두라고 명령한다. 이 영화에서 실질적인 적은 람보를 죽이려는 북쪽 베트남인이 아니라 바로 CIA 요원이다.


(중략)


70년대에 국가의 권위를 불신했던 것은 좌익이었다. 그런데 오늘날은 소총과 중화기로 무장한 시민군인 극우파들이다. 그러나 정당한 권위에 대한 전적인 불신은 정치적인 노선과 관계없이 대중문화의 한 가지 특징이었다. 내가 언급한 영화와 그 외에 대중들에게 친숙한 대중문화에서도 권위에 대한 불신이 하나의 특징으로 드러나고 있다.


<로보트 폴 볼프 지음, 임홍순 옮김, 아나키즘 국가권력을 넘어서, 1998년판 서문, 14-17쪽>에 나오는 말이다.

나는 이 글을 모 잡지에 발표하는 글에서 인용한 적이 있는데, 이 책의 원제명이 "In Defense of Anarchism"이란 것을 생각해볼 때 볼프의 서문은 책의 본문에서 나올 이야기들을 압축적으로 설명해준다. 이때 볼프가 말하는 '좌익'이란 자본주의 체제를 완전부인하기 보다는 자본주의를 인간의 얼굴을 한 체제로 연착륙시킬 수 있다고 믿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을 포함한 말일 것이다. 최소한 미국의 사례에 비춰보았을 때 국가는 정치적 좌파들에 의해 공격받기 보다는 1995년 4월 19일 오전 9시 5분, 미국 중부 오클라호마주의 주도 오클라호마시티 중심가에 있는 알프레드 머라 빌딩에서 일어났던 폭탄 테러 사건처럼 극우파에 의한 것이다. 당시 범인으로 잡힌 티모시 맥베이는 연방정부에 반대하는 극우파 단체 출신이었다.


사람들은 1990년대 초반의 동구에서 발생한 현실사회주의권 국가들의 몰락을 흔히들 좌파의 패배로 규정하려는 경향이 있지만, 이는 자본주의적 편견에 사로잡힌 단견이다. 실제로 좌파는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모든 국가에서 승리했다. 확실히 초창기의 야만적 체제였던 자본주의 체제를 국가의 경제체제로 채택한 국가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부강한 선진국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런 점에만 주목하여 보자면 자본주의 체제가 사회주의 체제를 압도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실상을 들여다보면 자본주의의 발원지라 할 수 있는 영국만 하더라도 모든 의료체계를 사회가 담당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고, 그외에 우리가 선진국이라 생각하는 거의 대부분의 자본주의 선진국들이 과거 사회주의가 처음 태동할 당시의 주장들을 '사회복지 시스템'이란 이름으로 채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비록 국가단위의 사회주의는 패배한 것으로 보이나 정신으로서의 사회주의는 애초에 소망했던 대부분을 획득했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사회주의는 패배한 것이 아니라 승리하고 있다. 문제는 야만적 자본주의를 대상으로 투쟁했던 혁명적 사회주의가 그 이후의 사회주의로, 새로운 세상으로 전진해나갈 수 있는 정신적 동력과 대안을 마련하는데 실패했다는 것인데, 그것은 비단 사회주의만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날 모든 정치 이념이 봉착하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 책은 '서문, 본문, 해설, 찾아보기'의 형태로 되어있지만 전체 페이지가 200쪽이 안 되는 얇은 책이다. 한 권의 작은 논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얄팍한 본문에도 불구하고 옮긴이인 임홍순 선생의 해설이 40쪽 정도 할애되어 별도로 따라 붙는다. 200쪽이 안되는 책에 40여쪽의 해설이 붙는다는 것은 이 책이 읽어내기에 그리 만만치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볼프의 이 책이 읽기 어렵고, 난해한 개념들로 가득하다는 뜻은 아니다. 임홍순 선생은 우리 사회에서 쉽게 이해되지 못하고, 극좌적 환상에 불과하다는 편견으로 규정된 "무정부주의"를 "아나키즘"으로 제대로 이해받도록 하고 싶다는 뜻에서 해설을 단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볼프의 저술이 다루고 있는 부분을 잘 요약하여 해설해주고 있으므로 볼프가 다루고 있는 내용이 다소 어렵다면 해설을 참고하는 것도 이 책을 이해하는 좋은 방편이 될 수 있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 이래 "아나키즘"은 하나의 '이상주의'로 폄하되기 일쑤였다. 물론 이 글을 적고 있는 나 역시도 실제 정치적 현실로서의 아나키즘을 대안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을 품고 있다. 그러나 1880년대 이래 "8시간 노동제"가 환상에 사로잡힌 일부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의 환상에 불과하다고 치부되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당연시(?)하는 8시간 노동제는 결코 실현되지 못했을 것이다. 나 개인적으로는 "아나키즘"에 대해 일종의 도덕적, 정치적 근본주의(fundamentalism)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소로우가 월든 호숫가에서 은둔생활을 하고, 평생 '전분'만을 섭취하며 살다가 세상을 등진 것처럼(헬렌 니어링은 소로우가 전분만 섭취하지 않고, 다른 과일이나 곡물도 섭취했더라면 좀 더 오래 살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한탄했다) 때로 아나키즘은 우리 사회의 여러 단면들에 이미 상당수 녹아들어 있다.


소로우가 그러했던 것처럼 마크 트웨인이 국가를 상대로 벌였던 전쟁에 반대하는 행위,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문제가 되는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는 행위들 모두 직접적인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아나키즘"의 영향권 안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환경적인 분야에서 이런 아나키즘의 영향은 부인할 수 없을 만큼 강하다. 우리는 "아나키즘"에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의해 규정된 사회체제에 반대하는 극렬 테러리스트들의 폭탄 세례를 자동연상하지만, 그런 식으로 치자면 "자본주의"는 "아나키즘"이 사제폭발물을 만들 때 공장에서 수없이 많은 아동노동자들을 지속적으로 살해했다는 오명을 오늘날까지 뒤집어 써야 한다. 오늘날의 자본주의가 18세기, 19세기의 자본주의와 본질적으로는 다를 바 없다고 하더라도 이전의 자본주의와는 달라진 것 이상 오늘날의 "아나키즘"은 환경분야, 정치분야, 철학적인 분야에서 각기 다른 형태를 띄고 있다.


볼프는 이 책에서 정치철학적인 측면에서 "국가"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는 국가의 본질을 가장 강력한 통치권력으로 규정하고, 국가 권력에 의한 지배와 복종의 관계가 곧 권력의 문제임을 지적한다. 문제는 국가의 형태가 민주공화정제를 표방한다 하더라도 이런 지배와 복종의 권력이 소수에게 집중된다는 측면에서는 전제왕정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이다. 정치철학적인 측면에서 국가를 문제삼는 것은 이렇듯 최고의 권력을 갖는 국가 권위가 정당성을 지녔는가 하는 것이다. 이때 어떤 형태의 국가도 존재해야만 하는 정당성을 지니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것이 바로 아나키즘이다. 볼프 역시 어떤 국가의 권위도 정당화될 수 없고, 유일하게 정당한 정치적 신념은 아나키즘이라고 주장한다. 이때 문제는 논리 이전에 현실적으로 이미 최고의 권력으로 존재하는 국가의 권위를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가 남는다.


볼프는 그 문제의 핵심으로 국가가 정당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에게 복종을 요구할 수 있는 도덕적 의무를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한 개인이 갖는 최고의 의무는 '자율'에 대한 의무이며, '자율'이란 자신이 하는 행위에 대해 스스로 최종적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시시각각으로 자율과 복종은 충돌하게 된다. 이 책은 그런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짧은 독후감으로 그 모든 걸 정리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될 것이다. 그것은 이 책의 저자인 볼프가 바라는 바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볼프의 이런 견해는 때때로 국가의 권위를 도덕적 권위와 동일시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스스로를 '아나키스트'라고 여기는 사람은 많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들의 작은 일상에도 국가의 권위는 알게 모르게 작용하고 있으며 우리는 영원히 그 틀을 벗어날 수 없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잠시만 다시 생각해보면 우리들 모두는 크든 작든 자율적인 개인이란 측면에서 어느 정도는 아나키스트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실망하기엔 아직 이르다. 이 책이 쉽다고는 말하지 않겠지만 한 번쯤 읽어보는 것은 분명 유익한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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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미국의 엔진, 전쟁과 시장 - 김동춘 | 창비(2004)



현재 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김동춘 교수는 그간 우리 사회의 굵직한 이슈마다 중요한 이론적 잣대를 제공해온 지식인 가운데 한 명이다. 이제는 우리 사회의 대표적 시민단체로 자리 잡은 "참여연대"의 창립(1994)과 "한국전쟁전후민간인학살진상규명위원회" 창립 등 그는 단순히 학문적 차원이 아닌 행동하는 진보적 지식인의 면모를 보여 왔다. 이 책은 그가 숨 가쁘게 지내온 뒤 찾아온 2003년 연구안식년을 맞이해 미국 UCLA대학의 박사후 연수를 마친 산물로 저술된 것이다.

 

미국이 세계 제1의 강대국이란 사실에 대해 의문을 품는 것은 물론 미국을 패권국가라고 부르는 인식에는 정치적 좌우를 막론하고 공통된 인식이다. 다만, 미국을 과거 대영제국과 서구 선진국의 식민지 경영을 일컫는 말 “제국”으로 인식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아직 일부 사람들에겐 다른 문제인 듯싶다. 이라크 전쟁이 시작되고 열흘 정도가 지날 무렵 알자지라 방송은 럼스펠드를 인터뷰하며 미국이 “제국 건설(empire building)을 하고 있는가?”라고 묻자 럼스펠드는 “우리는 제국을 추구하지 않는다. 우리는 제국적이지 않다. 그리고 과거에도 그런 적이 없다”고 화를 내며 말했다. 나는 우리가 배우는 세계사에서 미국에 대한 기본적 오해의 출발은 ‘고립주의’라고 배운 “먼로 독트린”부터라고 생각해왔다. 엄밀히 말해 먼로독트린은 미국의 고립주의가 아니라 유럽에 대해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배타적 권리가 미국에 있음을 주장한 선언이다. 즉, 먼로 독트린은 미국이 국제정치에 참가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독점적 권리가 미국에 있음을 유럽에 알린 것이다. 그것을 우리는 오랫동안 스페인의 식민지로 있던 라틴 아메리카의 독립을 지원하기 위한 미국의 정책으로 오해해 왔다.

 

미국의 엔진, 전쟁과 시장의 네 가지 주제

김동춘 교수가 책머리에 밝히고 있듯 2003년 3월 이라크 전쟁이 시작될 무렵 그는 미국에 있었다. 그는 TV토론 프로그램의 "한 백인 시청자가 전화를 해서 전쟁을 지지하지 않는 자국내 흑인들은 '반역자'라고 공격"하는 에피소드를 통해 미국의 분위기를 전한다. '자유와 관용의 땅' 이라 생각해온 미국에서 듣는 '반역'이란 언사가 주는 문제의식은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흐름이다. 김동춘 교수는 국제관계학이나 정치학자가 아닌 사회학자이다. 미국 유학파가 아닌 국내에서 학위를 받은 그가 자신의 전공과 상관없어 보이는 미국에 대한 연구와 책을 낸 것은 그간 우리 사회에 미국은 전방위적으로 존재해왔지만, 우리 사회에서 바라보는 미국은 친미와 반미라는 두 가지 잣대만이 존재해왔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는 가장 냉정한 현실론자임을 자부하는 이들로부터 미국에 반대하는 이상론자들이 주장하는 양극단의 스펙트럼 사이에 놓인 일반인들을 헤매고 만든다. 이런 극단의 논리 속에서 미국은 점점 장님 코끼리 만지기식이 되어 왔다.

 

"미국의 엔진, 전쟁과 시장"은 그런 양극단의 논리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롭게 기술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그간 김동춘 교수가 보여 온 면모를 살핀다면 이 책에도 그의 관점은 분명히 녹아있고, 그가 지향하는 가치와 세계가 현실론자들의 그것과는 분명히 다른 것임은 충분히 알 수 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저자는 양극단의 논리 속에서 미국의 현실, 미국을 상대해야 하는 세계의 현실, 무엇보다 미국과 밀접한 관계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의 현실을 고민하고 있다. 이 책은 주와 참고문헌을 포함해 모두 368쪽, 7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주제 혹은 목적은 다음 네 가지로 압축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첫 번째 주제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그간 "한국 사회가 생각해 온 미국이란 국가에 대한 오해를 불식하는 것"이다. 김동춘 교수는 책머리에서 "이 책은 주로 미국의 좋은 점만 알고 있는 대다수의 한국인들에게 미국의 또 다른 면을 보여주기 위해 쓴 것이지만, 미국에 대해 막연한 거부감과 반감을 갖고 있다가 미국에 직접 가서 보고 겪고 나서는 그 엄청난 힘에 완전히 압도당하고 기가 질려버리는 사람들에게 미국의 실체와 문제점을 함께 생각해보자는 뜻"도 가진다고 밝히고 있다.

 

두 번째는 제목 "미국의 엔진, 전쟁과 시장"이 암시하듯, 미국의 시스템 혹은 국가 동력이 무엇인가를 규명하는 것이다. 첫 번째 주제가 미국의 탄생으로부터 팽창, 제국에 이르는 역사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부분이라면 두 번째 주제에 해당하는 부분은 미국을 기존의 국제정치, 국제역학관계로 바라보는 방식을 배제하고, 사회학적 틀을 이용해 미국 사회에 대한 그간의 연구 성과와 그가 미국에 체류하면서 경험하고, 미국 현지의 자료들을 직접 접하면서 분석한 결과에 해당한다. 이때 그가 발견한 미국의 주요 동력원은 "전쟁" 혹은 전쟁을 통해 보장받고, 확대될 수 있는 시장이다.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그것이 가능하도록 만든 배경을 찾는다.

 

앞서 말한 “전쟁과 시장”이란 미국의 주요 동력원의 문화적 구성 방식과 역사를 밝히는 것이 이 책의 세 번째 주제에 해당한다. 한국 사회에 존재하고 있듯, 미국에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아니 우리 사회보다도 더 선진화된 시민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미국 사회가 어째서 철저하게 시장의 논리로만 움직이는 보수 우익의 메커니즘에 종속되어 있는가? 혹시 "전쟁과 시장"의 맥락 이면에 실재하는 미국의 보수 우익의 메커니즘은 미국 시민들로 하여금 세계 시민이 아닌 제국 시민으로 살아가도록 강요하거나 이에 자발적으로 동조하도록 부추기고 있지 않은가?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미국 사회의 내부를 보다 면밀하게 파고든다. 다시 말해 이 책은 국제정치질서 속에서 미국을 분석한 것이 아니라 미국 사회의 내부를 사회학적 시각으로 고찰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 네 번째는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자 패권국가로서의 면모를 숨기지 않는 현재 미국과 앞으로의 미래를 예견해 보고, 우리의 선택을 고민하게 만드는 일이다. 과거 또는 현재의 상황을 바탕으로 미래사회의 모습을 예측하고, 그 모델을 제공하는 학문의 역할은 사회학의 몫이 아니라 미래학(futurology)의 몫이다. 더구나 현재 유일강대국으로 부상한 미국의 역할을 감안할 때 미국의 붕괴 혹은 제국으로서의 미국의 역할이 해체되는 상황을 예견해보는 것은 미래에 대한 예측이 아니라 신성불가침의 영역을 넘겨다보는 것처럼 불온 혹은 불경해보이기까지 한다.

 

친미, 반미적 관점을 떠난 냉정한 관찰

오늘날 가장 많은 교포, 이민이 거주하고 있는 것은 물론 가장 많은 유학생들, 가장 많은 박사 학위가 미국으로부터 비롯되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과연 우리는 미국을 잘 알고 있을까. 김동춘 교수가 고백하고 있듯 미국에 대한 특집, 기획 등을 준비하노라면 뜻밖에 미국에 대한 전문가가 태부족이란 사실을 절감해야 할 때가 있다. 미국 전문가를 자임하는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미국과의 현실, 혈맹 관계를 강조하다 보니 우리의 입장 보다는 미국의 시각이 앞서는 이 혹은 논리적 근거보다는 감정적인 부분이 앞서 냉정하게 접근해야 할 부분에 주장이 앞서 버리는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미국에 대한 바른 이해를 위해서 우리는 친미적 관점, 반미적 관점과도 적절한 거리를 두어야 한다.

 

지난 20세기 미국이 세계 문명을 주도하게 된 것, 그 문명의 혜택을 우리 한국을 비롯한 세계 모든 사람들이 누려왔던 현실을 모두 부인하거나 부정해 버리고 출발하는 것도, 미국이 실제 자국의 이익에 충실하여 전쟁을 벌이고, 시장을 개척하는 차원에서 원조했던 사실을 망각하고 이를 마치 구원자의 손길로 인식하는 것도 현실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게 만든다.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파시즘에 맞서 유럽을 구원한 것은 사실이고, 한국전쟁을 비롯한 수많은 고비마다 중요한 역할을 한 것 역시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미국에 대한 객관적 시선을 얻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사실도 함께 알고 있어야 한다.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까닭 가운데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측면이 없다고는 할 수 없겠으나 미국이 철저한 반파시즘 노선을 걸었기 때문은 아니다. 미국은 프랑코의 파시스트 독재를 용인했고, 독일에서 히틀러, 나치의 등장과 집권에 대해 비판적이지 않았다. 당시 월스트리트의 자본가들은 히틀러의 나치당을 지원했고, 헨리 포드는 그들이 반유대적이란 점을 들어 히틀러와 협력했다. 전후 미국은 뉘른베르크와 동경의 전범 재판에서 구파시즘 세력을 선별하여 미국 이주를 허용하고, 트루먼의 냉전 전략은 전세계 특히 한국과 그리스에서 구파시즘 세력을 파트너 삼아 이들을 다시 부활시켰다.

 

김동춘 교수는 "미국 내부의 비판적 지식인들조차 이라크 선제공격이 마치 미국 역사상 최초의 일인 것처럼 보는 경향"이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말한다. 가까운 과거인 1961년 쿠바 피그만 침공 작전, 1983년 레이건 정부 당시 그라나다 침공,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직후 파나마 무력 침공 등 미국은 수많은 전쟁을 선전포고 없이 단지 ‘경찰 행동’ 차원에서 해 왔다. 그라나다 침략의 명분은 그곳에 거주하는 미군이 위협에 처했다는 것이었지만, 실제 그라나다의 미군은 위협받은 적이 없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분석이었고, 파나마 침공 역시 독재자 “노리에가”의 제거가 명분이었으나 누가 보더라도 파나마 운하에 대한 통제권을 미국이 장악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선제공격전략(예방공격)은 냉전이 미국의 공세적 소련 봉쇄 전략의 일환으로 시작된 것처럼, 냉전 기간 내내 미국의 가장 중요한 전쟁전략이었다.

 

"미국이 전쟁을 먼저 벌이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미국이 공식적으로 전쟁을 선포한 예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미국 헌법에는 오직 의회만이 전쟁을 선포할 권리가 있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1950년 북한의 남침에 맞서 미국이 의회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채 '전화 한 통으로' 개입했고 이는 이런 방식의 가장 대표적인 예로 자주 거론된다. 이것은 전쟁이 국민의 동의에 기초하기보다 대통령의 자의적인 결정에 의해서, 그리고 은밀하게 추진되었다는 뜻일 게다. 공식적으로 선전포고한 것만 전쟁이라 한다면 한국전쟁도 미국의 주장했듯이 전쟁이 아니라 '경찰행동'이고, 베트남 전쟁도 전쟁이 아니다." <본문 82쪽>

 

1950년 당시 한국전 파병을 앞두고 미 국회에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은 19세기 이후 제2차 세계대전까지 85차례나 전세계 각 지역에 파병했고, 전쟁을 벌여왔다.

 

미국이 주장하는 평화를 위한 전쟁

미국의 건국은 자유와 민주주의의 증대란 세계사적 의미를 지닌다. 미국은 물론 미국 시민들은 프랑스인들이 프랑스 대혁명에 대해 느끼는 것 못지않은 자부심을 가질 권리가 있다. 미국은 이런 선조들의 역사를 배경으로 전세계를 향해 자유와 인권의 수호국을 자부한다. 우리가 미국을 연상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자유의 여신상과 세계 최고의 인권국가임을 상기해볼 때 어쩌면 미국은 그런 주장을 할 수 있는 입장이다.

 

미국이 처음 이라크를 침공할 당시의 이유는 대량살상무기(WMD)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지난 걸프전 이래 12년간 미국의 경제봉쇄로 사실상 전쟁 상태에 있던 이라크는 대량살상무기도, 대량살상무기를 만들 재정도, 대량살상무기를 만들 의지도 없었다. UN조사단 역시 이라크에서 아무런 증거를 찾아낼 수 없었다. 그러자 미국은 전쟁의 이유를 다시 이라크 국민들의 인권과 자유, 민주화로 돌렸다. 후세인이 쿠르드 난민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했던 독가스는 미국제품이었다. 죄 없는 민간인들이 처참하게 학살당할 무렵 이라크를 방문해 후세인을 격려한 인물이 바로 현재의 국방장관 럼스펠드였다. 이라크에 가장 많은 무기를 수출한 핼리 버튼의 총수가 현재 미국 부통령인 딕 체니였다. 핼리 버튼이 총수로 재직할 당시 다른 어떤 회사보다도 가장 많은 무기를 이라크에 수출했다. 미국은 한 때 무자헤딘이라 부르며 무기를 지원한 탈레반 정권을 붕괴시킨 뒤 자신들이 이슬람의 율법에 갇힌 아프간 여성들을 해방시켰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미국의 인권은 여성에 대해 가장 강력한 이슬람 율법을 강제하는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미국이 악의 축으로 지목하고 있는 이란에서 여성들은 차도르를 쓰기는 하지만 사무실에서 남성들과 함께 근무한다.

 

미국은 냉전 해체 이전까지는 직접적인 무력개입을 자제해왔다. 국제 정세가 미국의 직접 개입을 용인하지 않은 탓에 미국은 현지에 수립한 정권과 CIA의 공작을 통한 '작은 전쟁(저강도 전쟁)' 전략을 구사해 왔다. 그 결과 인도네시아 수하르토 군부는 쿠데타를 일으켜 50여만 명에 달하는 인도네시아 민간인들을 살해했다. 1973년 칠레의 피노체트 쿠데타, 1970년대 후반의 니카라과 콘트라 반군의 민간인 학살, 멀리 갈 것이 아니라 1980년의 광주를 상기했을 때 미국이 주장하는 인권과 민주주의, 자유는 선별된 대상에 의한 것이고, 설령 그것이 세상 더할 것 없는 독재라 하더라도 미국의 이익에 부합된다면 그것이 민주주의였다. 미국이 주장하는 평화 역시 미국의 팽창 전략에 장애가 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이 중동지역의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지원하는 이스라엘의 예를 보자. 최근 MBC에서 방송한 5부작 다큐멘터리 “중동”에서 네탄야후 전 총리를 비롯한 이스라엘 정착민들은 중동에 평화가 오지 않는 이유를 하나같이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지역을 불법 점령했기 때문이 아니라 바로 자기 땅에서 쫓겨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지배에 복종하지 않고, 계속 저항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루살렘 지역은 “6일 전쟁”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유대인, 팔레스타인인, 기독교도, 이슬람교도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지역이었다. 예루살렘을 무력으로 점령한 이스라엘은 이 지역에서 철수할 것은 요구한 UN결의를 무시한 채 팔레스타인인들을 쫓아내며 유대인 지역을 넓혀가고 있는 현실이다. 이런 이스라엘의 전략은 바로 미국의 전략을 고스란히 추종한 것이다. 미국이 주장하는 평화란 미국의 원하는 것을 다른 민족이나 국가가 따르는 것이다. 미국의 평화 전략에 따르면 상대에게 보다 빠른 항복을 받아내기 위해 핵을 사용하거나 무차별 융단 폭격을 실시하는 것도 평화를 위한 길이 되고, 이런 전쟁조차 평화를 위한 전쟁이 된다. 그것이 지금까지 미국이 벌이고 치른 전쟁 가운데 ‘평화를 위한 전쟁’ 이 아닌 것이 단 하나도 없는 까닭이다.

 

미국 최고의 대박사업은? 전쟁!

미국의 많은 이들이 매달 이라크에서 사용하고 있는 40억 달러면 전세계 빈곤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에릭 홉스 봄은 "극단의 시대"에서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미 육군은 5억 1,900만 켤레 이상의 양말과 2억 1,900만 벌 이상의 바지를 주문했고, 독일군은 1943년 한 해만 440만 개의 가위와 620만 개의 군대용 스탬프를 주문"했다고 말한다. 전쟁은 돈이 많이 드는 사업이고, 애초에 미국은 이라크 전비와 재건 비용을 세계 매장량의 11%를 차지하고 있는 이라크의 석유를 팔아 충당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미국이 이토록 많은 돈을 이라크에 퍼붓고 있는 이유는 과연 이라크인들의 해방을 위한 것이었을까. 미국은 어째서 이런 막대한 비용을 들여 전쟁에 나서는 것일까. 그것은 미국을 움직이는 엔진이 “전쟁과 시장”이기 때문이다.

 

1993년 소말리아에서 미군 18명이 전사(영화 "블랙 호크 다운"은 이 사건을 배경으로 한 것)하자 미국에는 외국에 미군을 파견하지 말라는 여론이 일어났다. 당시 클린턴 대통령은 "국익에 결정적이지 않은 전쟁에는 한 명의 미국인도 목숨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이 말은 명분이 인권, 세계 평화와 직접 관련이 있는 것이라 할지라도 인도적인 이유만으로는 개입하지 않겠다는 것이고, 다시 말해 그것이 미국의 국익에 관련된 것이라면 언제라도 무력 개입하겠다는 뜻이다. 미국이 전쟁을 국가의 성장 동력으로 인식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미국 역사상 가장 큰 대박을 터뜨린 전쟁사업은 2차 대전 참전과 전후 복구를 위한 마샬플랜 그리고 냉전전략일 것이다. 2차 대전으로 미국은 세계 총생산의 반을 차지하는 경제적 초강대국이 되었다. 흔히 뉴딜이 미국자본주의를 공황에서 구해냈다고 말하지만,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2차대전이 미국 경제를 살렸다. 전쟁은 자본 이득을 증가시켰으며 투자 기회를 확대했다. 고용문제나 경제난이 전쟁으로 한방에 해결됐다. 더구나 자기 영토에서 전쟁을 벌이지 않았으니 인명손실을 제외하고는 별로 손해본 것이 없었다. 2차대전 개입 후 미국은 전쟁 호황에 스스로도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였다. 이 전쟁으로 미국 사람들은 전쟁이 경제문제를 해결하는 매우 좋은 수단이 된다는 것을 알아챘다. 더구나 파시즘을 멸망시켰다는 명분도 얻었으니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었다."<본문 124쪽>
 
이후 미국의 전쟁은 명분은 무엇이 되었든 실제로는 시장개척을 위한 전쟁(프론티어)가 되었고, 고조되는 무력분쟁 위기는 미국의 무기 수출을 위한 좋은 호재였다. 지난 2002년 미국의 무기 판매고는 133억 달러로 전년도 121억 달러에 비해 크게 늘어났고, 2위 국가인 러시아(50억 달러)의 두 배가 넘는다. 이는 세계 전체 무기 판매고의 45.5%에 해당한다. 그중 86억 달러는 중동 국가들에게, 36억 달러는 미국의 잠재적인 적대국으로 평가받는 중국이 수입했다. 단일 국가 규모로는 중국이 1위, 한국이 2위(19억 달러)이다. 미국이 아시아의 평화체제 구축, 남북 화해 협력 분위기 조성에 적대적인 까닭도 거기에 있다.

 

미국의 세계지배전략 - 지배 엘리트 육성

지난 대선 후보 시절의 노무현 대통령이 인정한 것처럼 우리 대한민국은 건국 과정부터 미국에 자유로울 수 없었다. 정부 수립과정, 제헌 과정, 정치, 경제, 문화, 교육, 국방 등 우리 사회의 어느 한 분야도 "미국의,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대한민국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2004년 12월 1일자 프레시안 기사에서 노희찬 의원은 한 달 전 관저로 초청 받아 만난 모 주한유럽대사로부터 "한국은 미국의 식민지라 생각"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하는데, 엄밀하게 말하면 그들도 미국으로부터 썩 자유로운 입장은 아니다. 걸프전이 끝난 이후 현재까지 13년 동안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등 중동 국가에 미군을 주둔시키고 있으며 소련 붕괴 이후엔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루마니아, 불가리아, 폴란드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다. 미국은 냉전 종식 이후 현재까지 전세계 35개 국가에 700여 개 이상의 군사기지를 구축하고 있다. 만약 이것을 로마제국식으로 한정해 말하자면 로마의 시선이 닿는 곳 어디나 로마화가 진행된 것처럼, 미국의 시선이 닿는 곳 어디나, 미국이 필요로 하는 곳은 어디나 팍스 아메리카나의 제국이 건설된 것이다.

 

미국에 대한 우리들의 짝사랑 이야기는 고종 황제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야 하지만, 그 핵심은 광복 직후 단정 수립을 지지했던 미군정청 경무부장 조병옥의 말 "일본과 달리 미국은 땅이 크고 자원이 풍부한 나라이므로 우리의 영토 따위에는 관심이 없고, 따라서 우리를 도와줄지언정 침략은 하지 않을 것"과 같다. 그러나 조병옥은 틀렸다. 그가 미국에 유학해 있던 1930년대 이미 미국은 많은 식민지를 거느리고 있었다. 쿠바, 푸에르토리코, 하와이, 아이티, 니카라과, 필리핀, 파나마 등이 그들의 식민지였다. 미국은 로마 제국과 흡사하면서도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오랫동안 동아시아의 질서를 구축했던 중화 제국과도 흡사한 측면을 가지고 있는데, 단 이들과의 차이는 보다 타산적이고, 냉혹한 실리 계산에 따르되 표면적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 시스템을 통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통치전략은 군사력을 동원해 이들 나라를 직접통치하는 방식이 아니라 자유와 민주주의란 관념을 통한 것이었다. 미국은 직접통치 방식을 대신해 "나라만들기(state-builing)", 즉 법, 제도, 엘리트 이식작업을 통해 치고 빠지는 방식으로 통치한다. 그래도 못 미더운 나라들은 미군을 반식민지화한 중국의 상해처럼 치외법권화된 지역에 주둔시키는 방식으로 압력을 행사한다. 나라만들기의 시작은 보통선거를 통한 대표자 선출인데, 미국의 사전정지작업을 통해 그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세력은 과감히 제거한다. 해방 직후의 남한과 현재 이라크 상황을 비교해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이다.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성립된 신생 정부는 내용이야 어찌되었든 합법성을 인정받게 되고, 그런 뒤 현지의 지배엘리트들 가운데 선발해 미국 유학의 형태로 미국의 대학에서 장학금을 지급하며 교육시킨다.

 

이들이 귀국한 뒤엔 미국식 교육제도를 도입하고, 미국식 이데올로기를 전파한다. 과거 로마 제국이 그러했듯 점령지역의 세력가들을 포섭하여 그들의 파트너로 육성하는 것이다. 과거 영국이 식민지 경영을 위해 자국의 관리들, 군인, 기업인들을 훈련시켜 보냈다면 미국은 현지 관리, 군인, 기업인을 육성하여 그들로 하여금 미국식 가치관과 세계관으로 무장시켜 그들로 하여금 지배엘리트가 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오늘날 미국은 전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대학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미국의 대학이 다른 선진국의 대학들보다 우수해서가 아니라 미국에 전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들이 유학가기 때문이다. 미국은 오랫동안 제3세계의 군부엘리트들을 그들의 군사학교에서 육성해 왔는데, 앞서 말한 파나마의 노리에가는 물론 한국의 전두환, 노태우 등도 모두 미국의 군부엘리트 학교 졸업생들이었다.

 

미국을 제국으로 파악할 것인가에 대한 이견은 존재해왔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방식이 아닌 그 본질로 파악했을 때의 제국주의(imperialism)를 한 국가의 정치, 경제적 지배권을 다른 민족, 국가의 영토로 확대시키려는 국가의 충동이나 정책이라 했을 때 미국의 본질은 제국에 가깝다.

 

우파국제주의자들의 발전전략 "영구전쟁론"

미국에도 내부 비판자들, 시민사회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지속적으로 제국의 길을 걸어갈 수 있었는가. 김동춘 교수는 미국이 실질적으로는 이념적으로는 일당독재국가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레이건 집권 8년 동안 미국 정치사회에서 중도좌파는 완전히 제거되고, 중도파가 좌파로 간주되고, 민주당의 정책 역시 지속적으로 우경화되는 정치 지형의 변화가 있었다. 그 결과 "화씨 9/11"의 감독 마이클 무어 같은 이는 민주당을 향해 "위선의 가면을 벗고 차라리 공화당과 합당하라"고 비판한다. 현재 미국을 주도하는 정치세력의 면면을 살펴보면 과거 좌파 국제주의의 정확히 반대 측면에 서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미국의 주류는 우파 국제주의(세계화)에 해당한다. 과거 좌파 국제주의가 ‘영구혁명론’을 주장했다면 그들은 미국의 패권을 지속시키기 위한 일종의 ‘영구전쟁론’을 추진한다. 냉전 시대를 거치며 미국 우파는 유럽과 달리 집요하게 애국주의 담론, 반공 담론의 장에 민주당과 좌파들을 끌어낸다. 그 결과 미국의 정치집단은 스스로 국가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애국게임에 휘말리게 되어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과도한 충성심을 보여야만 살아남을 수 있게 되었다. 이번 대선에서 부시가 승리했지만 캐리가 당선되었다고 해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는 것이다.

 

미국이 이라크에 대한 공격을 선포하기 직전인 2003년 2월 미국 언론에는 경건하게 기도하고 있는 부시와 파월, 럼스펠트 등 각료 사진이 크게 실렸다. 부시가 개신교도 가운데 가장 보수적인 교파에 속해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공적인 자리인 각료회의 자리에서 다 함께 기도드리는 광경은 자유주의 국가 미국을 연상하는 이들에게는 낯선 모습이다. 미국인들은 유대인들 못지않게 스스로를 신에 의해 선택된 국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을 지닌 국가라고 생각한다. 트루먼 대통령은 "나는 신이 우리 미국인들을 만들었으며, 어떤 위대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우리에게 이처럼 힘을 주었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한다. 중동에서의 이슬람 근본주의 못지않게 미국의 정치 지형 속에서 기독교 근본주의(복음주의 프로테스탄트)는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들은 1960년대 베트남전을 경험하면서 미국의 가톨릭 우익, 유대교 우익과 합세하면서 "도덕적 다수, 기독교 연합" 등 적극적인 정치 세력화에 나섰고, 종교와 정치를 같은 맥락에서 보고 있다. 미국이 전쟁에서 패배하지 않는 까닭은 그들이 신이 보기에 합당한 전쟁을 치르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미국 사회를 "기독교 파시즘"이라고 부르는 것 역시 이런 현상을 두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워드 진”이나 “노암 촘스키” 같은 미국의 비판적 지식인들의 목소리를 통해 미국 사회의 지식인들 가운데 상당수가 비판적 지식인들로 구성되어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1960년대 미국의 반전운동세대들은 우경화의 흐름 속에서 스스로를 아카데미 가둬두거나 전문가주의로 퇴보하면서 더 이상의 비판을 멈추고 있다. 어쩌다 나오는 이들의 비판적 발언조차 하워드 진에게 어느 어린 여학생이 "그렇다면 왜 미국을 떠나지 않는가"라며 비판한 것처럼 반애국적인 행위로 단정된다.

 

모든 제국은 팽창한다, 고로 제국은 붕괴한다

우리는 지난 역사 속의 제국들을 통해 한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모든 제국은 팽창한다. 한 번 팽창하기 시작한 제국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팽창을 멈출 수 없다. 최대한 팽창한 제국은 내부로부터 붕괴한다는 것이다. 로마제국은 하드리아누스 장벽을 건설한 뒤로부터 몰락하기 시작했고, 중화제국의 최대 판도는 청조 시대의 일이었으나 이후 중국은 급격한 몰락을 경험한다(물론 현재 중화인민공화국은 청나라보다도 넓은 판도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은 현재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며 전 세계 가솔린 소비량의 40%를 차지하는 나라다. 팍스 아메리카나 시대는 세계적으로 두 번의 미국화(Americanised)를 불러왔다. 한 번은 냉전을 통해, 다른 한 번은 세계화를 통한 것이었다. 이제 미국의 패권은 현재 절대적이다 못해 초월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김동춘 교수는 바로 지금이 '제국의 위기' 라고 진단한다. 그 부분을 말하는 것은 이 책에 대한 악독한 스포일러가 될지도 모르겠으나 핵심적인 부분은 미국은 바로 그들이 주장하고 전파한 "인권과 평화, 자유와 민주주의"로 인해 내부로부터 붕괴하게 될 것이란 예측이다. 미국이 주도한 세계적 불평등(세계화 혹은 자유무역)은 국가 단위를 해체하는 듯 보이지만 미국만큼은 철저하게 국가의 경계를 유지한다. 미국이 세계 최고의 강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힘은 구대륙의 차별받던 시민들을 받아들여 국가의 동력으로 삼은 덕이다. 그러나 미국의 보편주의는 점차 약해지고 있다. 제국의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보다 엄격한 절차를 따라야 한다. 미국은 자국에 비판적인 지식인들을 입국조차 할 수 없도록 통제하고 있다. 이처럼 미국은 노쇠한 제국이 빠지는 딜레마에 똑같이 빠져들고 있다.

 

미국이 자랑하는 최첨단 무기가 공화국 수비대를 한 달도 못되는 기간에 붕괴시킬 수는 있지만 종전 선언 1주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이라크에서 총성을 멈추게 할 수는 없는 것처럼,  미국이 자유와 민주주의 이념으로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다면 그들이 지닌 돈과 힘에만 의존하는 국제질서는 위험하고, 위태로운 것이다. 이매뉴얼 월러스틴은 미국은 자본축적의 한계 혹은 자본주의 붕괴 시나리오에 의해 붕괴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붕괴”란 말은 너무 엄청난 느낌을 주기 때문에 마치 로마 제국이 게르만 용병대장의 손에 의해 약탈되는 것을 연상하게 된다. 하지만 로마 제국의 붕괴가 이미 그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왔던 것처럼 미국의 붕괴 역시, 대영제국의 붕괴가 디즈레일리, 글래드스턴 시절에 시작된 것처럼 그렇게 시작될 것임을 예측할 수 있다. 미국의 붕괴는 당연히 소련의 붕괴가 가져온 충격파보다도 더한 충격을 가져올 것이다. 미국을 제외한 전세계 국방비를 합쳐도 미국보다 적은 현실, 그런 상황에서 미국에 대해 비판적으로 말하는 것은 참으로 맥 빠지는 일이며, 보수우파가 주장하는 것처럼 그런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책으로 보이기도 한다. 로마 제국의 붕괴가 중세의 어둠을 불러왔다고 믿는 이들에게 미국의 붕괴는 이보다 더한 고통을 불러올 수 있다는 예견 또한 가능하겠지만, 대영제국의 붕괴 과정처럼 조용히 올 수도 있다. 그것이 어떤 형태의 것이든 우리가 미국의 패권을 막을 수 없는 것처럼, 그들의 붕괴 또한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세계 초강대국, 절대적 패권국가인 미국의 붕괴는 미국이 영원한 패권국가로 존재할 것이라는 믿음이 부질없는 것만큼이나 부질없는 것이다. 그것은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로마가 그렇게 붕괴할 것이라고는 누구도 믿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이 책에 대해 몇 가지 아쉬운 점 가운데 하나는 이 책이 좀더 일찍 나왔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까닭은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 중 상당수는 이미 국내에 출간된 상당수의 미국 비판 서적들과 중첩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이 책에 대한 조선일보의 서평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우리 사회의 보수우익이 미국에 대한 일방적인 짝사랑을 그만두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전자는 "미국의 엔진, 전쟁과 시장"이 가장 최근의 미국 사회를 보여주고 있으며, 사회학적으로 내부를 고찰하고 있다는 장점과 대중적으로 읽기 쉽고, 이해하기 쉽게 구성되어 있다는 점으로 상쇄되고, 후자의 경우엔 미국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것이 국제 사회에서 대한민국이 살아남는 아니면 그들이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는 이들에겐 어차피 무슨 이야기를 해도 소용없을 것이란 점에서 상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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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전쟁의 탄생 - 누가 국가를 전쟁으로 이끄는가, KODEF 안보 총서 15 - 존 G. 스토신저(John G. Stoessinger) | 임윤갑 (옮긴이) | 플래닛미디어(2009)

전쟁 종전일이 아닌 전쟁 발발일을 기념하는 기묘한 국가,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지만 한동안 전쟁을 먼 나라, 남의 이야기처럼 여겨왔던 오만의 결과일까. 한국전쟁 60주년을 맞이했던 2010년 한 해 동안 전쟁의 기운이 검은 안개처럼 한반도에 스며드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


누가 왜 국가를 전쟁으로 이끄는가?

국제정치학 분야에서 오랫동안 학자로 연구에 전념해왔고, <포린 어페어(Foreign Affairs)>의 편집자로 국제연합(UN)에서 정치국 국장으로 활동하며 현장 경험도 풍부하게 쌓았던 존 G. 스토신저(John G. Stoessinger)의 『전쟁의 탄생 - 누가 국가를 전쟁으로 이끄는가(Why Nations Go To War)』를 읽었다. 2009년엔 『전쟁의 탄생』 말고도, 갈라파고스 출판사에서 다케나카 치하루가 쓴 『왜 세계는 전쟁을 멈추지 않는가?』도 출간되었는데, 전쟁 발발의 근본원인에 대한 사회학적인 분석이란 점에서 이 두 권의 책은 이전(2007, 아카넷)에 나온 케네스 월츠(Kenneth Waltz)의 『인간 국가 전쟁(Man, the State and War)』과 함께 비교해가며 읽어볼 만하다.


전쟁의 역사가 곧 인류의 역사였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고, 전쟁의 원인을 찾아 제거하거나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인류의 지혜 역시 끊임없이 발전해 왔다. 앞서 언급한 케네스 월츠는 ‘전쟁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인간의 본성, 사회 또는 국가의 특성 그리고 국가체제의 구조적 특성을 연구함으로써 전쟁을 인간적 수준, 국가 ․ 사회적 수준 그리고 국제체제적 수준으로 분석’했다. 존 헤르츠(John Herz)는 국가 내부의 경쟁을 조율하는 정부가 존재하는 것처럼 국가 간의 경쟁을 조율해줄 수 있는 기관이 없기 때문에 서로 경쟁하는 가운데 필요이상의 긴장이 고조되는 악순환이 반복되어 전쟁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보았고, 오르간스키(A. F. K. Organski)는 2위 국가가 1위 국가(헤게몬)로 전환하려는 가운데 전쟁 발발 가능성이 증대된다고 보았지만 전쟁의 원인은 인류 역사상 벌어진 전쟁의 숫자만큼 다양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존 G. 스토신저(John G. Stoessinger)는 전쟁의 원인에 대해 지금까지의 전통적 - 전쟁이 인간 ․ 사회가 통제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어떤 상황이나 인간 본성, 체제, 경제적 요인과 같은 근본적인 요인에 의해 발생 - 인식을 대신하여 그것이 결국 인간의 문제이며 그 중에서도 사회의 지도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지도자(리더)의 역할에 주목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전쟁의 탄생 - 누가 국가를 전쟁으로 이끄는가』란 국내 제목이 『Why Nations Go To War』라는 영어 원제보다 저자가 추구하려는 진실에 좀더 근접해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물론 이 책에서 저자가 ‘누가 왜 국가를 전쟁으로 이끄는가?’라고 물을 때 ‘왜?’에 대한 답은 그때그때 경우에 달라지겠지만 ‘누가?’에 대한 답은 언제나 ‘지도자’가 될 것이다.


집단적 범죄와 지도자의 결정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대학 국제외교학과의 존 G 스토신저 교수는 『전쟁의 탄생』에 대해 지금까지 살펴본 몇몇 가지의 것만으로도 우리는 그가 미국 중심의 주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인물로 판단하기 쉽다. “전쟁을 일으키는 데는 외부 요인 못지않게 해당 결정을 내린 지도자도 중요하다”고 말한다는 점에서 그는 엘리트주의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는 인물로 비춰지기도 쉽다. 게다가 ‘스토신저’라는 그의 성(姓)을 보면 헨리 키신저(Henry Alfred Kissinger)처럼 그가 유대계 미국인이라는 것도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서장」에서 자신이 전쟁의 발발 원인으로 지도자를 중시하게 된 계기에 대해 설명하면서 자신의 가족사에 대해 간략하게 이야기한다.


그는 히틀러가 오스트리아를 병합할 무렵 그의 가족과 함께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서 살고 있었다. 스토신저의 계부는 히틀러 통치하의 오스트리아는 너무 위험하단 이유로 체코 프라하로 떠났지만 그마저도 점령당하자 어떻게 해서든 히틀러와 나치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다가 결국 중국대사관을 통해 비자를 받아냈고, 소련을 통과해 일본까지 넘어가는 극적인 여행을 경험하며 살아남을 수 있었는데, 오랫동안 유럽에서 살고 있던 스토신저 일가가 유럽의 집단적 광기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일본판 오스카 쉰들러(Oskar Schindler)나 라울 발렌베리(Raoul Wallenberg)로 평가받는 외교관 스기하라 치우네((杉原千畝)의 도움 덕분이었다.


존 G. 스토신저는 그와 같은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집단적 범죄와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어둠의 시대에도 우리의 인간성을 재확인하면서 심지어 가장 완벽한 방식으로 악마와 맞서려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심연 속에서도 도덕적인 용기는 여전히 살아 있으며 항상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고 있다”고 말한다. 아마도 그의 이와 같은 개인적 체험은 집단으로서의 인간이 아닌 개개인의 인간이 지닌 용기와 선택의 문제에 대해 주목하고 신뢰하게 되는, 다시 말해 훌륭한 인간이 지도자가 된다면 전쟁을 피할 수도 있으리라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스토신저는 정치나 경제적인 요인들이 전쟁의 ‘징후’를 몰고 올 수는 있어도 전쟁 수행의 ‘결정’을 직접 내리는 것은 결국 사람이기 때문에 그는 바로 ‘지도자’들이 전쟁을 해야겠다고 마음먹는 ‘그 순간’이 벌어지는 요인에 주목한다. 이 부분이 존 G. 스토신저를 이전의 다른 학자들과 구분되게 만드는 요인이면서 동시에 그의 학문적 엄밀성을 약화시키는 지점이기도 하다.


제1차 세계대전부터 새로운 세기의 새로운 전쟁에 이르기 까지

존 G. 스토신저는 전쟁 발발 요인을 지도자에게 주안점을 두어 분석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책임을 지도자에게만 묻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20세기와 21세기에 걸쳐 일어났던 주요 전쟁의 배경과 개별적 원인을 분석하고 그와 같은 상황들 속에서 지도자들이 전쟁을 결정하게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살피고 다시 이를 개념화하여 정리하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을 다루고 있는 1장 「철의 주사위」 편에서 그는 장차 세계대전으로 비화될 개전 선언 이전까지도 이 전쟁이 수년간에 걸쳐 장기화되리라고 예측한 사람이 소수에 불과하며 아이러니하게도 그 중 하나가 당시 독일의 참모총장 헬무트 폰 몰트케(Helmuth von Moltke)였음을 지목한다. 독일의 빌헬름 황제는 섣부르게 오스트리아를 지원하기로 결정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사촌이기도 한 러시아 황제가 섣부르게 전쟁에 참여하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니콜라이 2세는 그의 이런 기대와 달리 세르비아를 지원하기 위해 전쟁에 참가한다.


한 국가가 다른 국가를 적으로 인식하고 그러한 인식이 충분히 강력하고 길게 이어지면, 그 인식은 결국 사실이 된다.

위기상황에서 힘에 대한 인식은 특히 중요하다. 초기 단계에서 지도자들은 자국의 힘은 과장하고 적국은 실제보다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오스트리아에 대한 빌헬름의 서약은 러시아 군사력에 대한 근본적인 경멸과 러시아 지도부에 대한 그의 영향력을 과도하게 신뢰했다는 방증이다. 마찬가지로 오스트리아도 러시아의 군사력에 대해서 실제보다 허약하고 성가신 존재로 인식하고 멸시했다. <본문 63-64쪽>


이와 같은 인식을 토대로 상대국의 전쟁수행능력이나 의지를 낮게 평가하면서 실제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오스트리아의 요제프 황제는 “우리는 지금 물러설 수 없다”라고 호언하는 것이 세르비아의 애국자들에게는 적나라한 침략으로 비출 것이란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고, 러시아 지도부에겐 그와 같은 공언들이 참을 수 없는 모욕으로 받아들여져 전쟁 이외에 다른 대안을 강구할 수 없도록 몰아가게 될 것이란 사실을 인정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한 전쟁 계획을 입안한 군부의 고위 인사들 역시 평화를 유지하기 이전에 자아의 보존을 좀더 중시하는 경향, 다시 말해 군부와 군부의 이해관계에 귀속되어 있는 자신들의 입장과 처지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경향으로 인해 전쟁이 발발할 경우 피할 수 없게 될 막대한 희생에 대해 침묵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독가스 공격으로 눈을 부상당한 영국군 병사들이 줄지어 이동하는 모습


2장 「바르바로사 - 히틀러의 소련 공격」은 가장 의심이 많고 교활하며 사악한 인간인 스탈린이 가장 비이성적인 히틀러의 이성적 행동에 대해 기대하고 신뢰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묻고 있다. 다시 말해 그 나쁜 악마가 같은 놈은 어쩌다 더 나쁜 악마에게 속았을까? 쯤 되는 물음을 던진다. 게다가 이 악마는 처음부터 슬라브족을 노예로 만들고 소련을 그들의 레벤스라움(Lebensraum)에 포함시키겠노라 공언까지 하고 있었지 않았던가. 잇따라 전해지는 독일의 침공 예보(침공 직전 1년 동안 84번의 경고가 소련에 전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스탈린은 ‘붉은 군대’ 장교의 10분의 1을 숙청했고, 그 결과 전쟁이 벌어지기 직전까지 예하부대 지휘관의 5분의 1이 공백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존 G. 스토신저는 이처럼 어려운 시기를 앞두고 소련 전투력의 중추를 꺾어버리는 숙청을 단행한 까닭으로 스탈린 자신이 소련 내부에서 차지해야 하는 권력의 안전을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지켜내야 할 국가의 안전보다 우선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1939년 맺은 독 ․ 소 조약은 소련에게 독소처럼 작용했지만 침공 직후였던 1940년 7월 스탈린은 소련 인민들에게 전쟁을 독려하는 첫 방송에서조차 독 ․ 소 조약은 옳은 선택이었다고 강변했다. 그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저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탈린이 히틀러보다는 더 나은 지도자였다고 주장한다.


히틀러는 전쟁의 행운이 그를 배반하고 소련으로 가고 있을 때에도 그의 잘못을 깨닫지 못했다. 그는 패배가 확실해졌을 때에도 몇 번이고 군대를 증원했다. 반면 스탈린은 그의 초기 실책을 깨달았고 그리하여 최후의 승리를 얻을 수 있었다. <본문 104쪽>


완전히 새로운 전쟁, 완전한 승리에 대한 유혹 - 한국전쟁

『전쟁의 탄생』은 여러 전쟁을 다루고 있지만 무엇보다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주는 것은 3장 「승리의 유혹 - 한국전쟁」편이다. 2009년에 번역된 『전쟁의 탄생』은 열 번째 판으로 저자인 존 G. 스토신저는 판을 거듭할 때마다 새롭게 추가된 사실들을 책의 내용에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이 책에 수록된 한국전쟁에 대한 내용 역시 전쟁 발발 이후 현재의 핵 위기 상황까지 일부 반영하고 있다. 그는 한국전쟁이란 역사적 사건에 있어 가장 중요한 국면 중 하나로 유엔군의 38선 돌파를 손꼽는다. 유엔군이 38선을 넘어서면서 한국전쟁은 완전히 새로운 전쟁이 되었다.



유엔군이 38선에 접근했을 때 그것을 넘어야 하느냐의 문제는 유엔군을 진퇴양난에 빠지게 했다. 유엔군이 38선을 넘지 않으면 완전한 승리를 거둘 수 없었다. 일각에서는 북한의 무력 침략은 38선을 파괴한 행위로 볼 수 있고 따라서 침략자에 대한 ‘맹추격’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만약 유엔군의 임무가 단순히 ‘무력침략을 격퇴’하는 데 있다면 북한 침략 이전에 대한민국의 영토로 인정되지 않았던 곳으로 유엔군을 진격시켜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성립될 수도 있었다. 더구나 “유엔군이 38선을 넘느냐의 문제를 누가 결정할 것이며 만일 그렇다면 그 목적과 한계는 어디까지인가?”라는 중대한 문제도 제기될 수 있었다. 이러한 와중에 북경 주재 인도 대사 파니카(K.M.Panikkar)는 “만일 유엔군이 38선을 넘는다면 중국이 전쟁에 개입할 것이다”라고 경고를 보냈다. <본문 124쪽>


9월 하순에 개최된 유엔총회에서는 미국의 의지에 따라 38선을 넘어 한반도에 통일되고 독립된 민주정부를 수립하는 데 필요한 조치를 취할 때라고 결의한다. 10월 1일 한국군이 38선을 넘어 북으로 진격했고, 미군도 10월 7일 북진을 시작했다. 10월 2일 파니카 주중 인도대사가, 10월 10일엔 중국의 외무장관 주은래 역시 “중국은 이 침략전쟁을 방관하지 않을 것”이라 경고했지만 미국과 맥아더 장군은 이것을 중국 특유의 허풍으로 받아들였다. 트루먼 대통령은 맥아더 장군과 웨이크 아일랜드에서 만나 중국의 개입가능성에 대한 보고를 받았는데 맥아더는 중국의 개입가능성을 희박하게 평가하고 있었다. 트루먼 대통령은 한 편으론 북진을 승인하면서도 미국은 중국에 대해 적대감을 가지지 않을 것이라 선언하면서 중국 달래기에 나섰다. 맥아더는 중국을 팽창욕구는 가득하지만 실제로 그럴 능력은 없는 국가로 평가했고, 중국 인민해방군에 대해서도 경멸에 가까울 만큼 낮게 평가했다. 그는 1950년대의 중국 인민해방군을 1940년대의 장개석의 국민당 군대 정도로 생각했던 것이다. 트루먼 대통령은 맥아더의 판단을 신뢰했고, 그의 판단을 신뢰한 결과는 매우 혹독했다.


한국전쟁에서 중국의 개입은 국제문제 인식의 다양함을 실제로 보여준 좋은 예였다. 이러한 인식은 실제상황을 인식하는 데 매우 유효하다. 일단 상황이 명확하게 평가되면 특정 대안은 배제된다. 일반적으로 적대적이라고 생각하는 상대방과는 화해가 어렵기 마련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중국의 공산주의자들은 결국 한국에 개입하는 것 이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생각했다. 상대방의 힘을 무시할 정도라고 생각할 경우 위협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게 된다. 미국은 중국의 경고를 일종의 허풍으로 치부했다. 자신과 정반대의 이데올로기를 지닌 상대방과는 좀처럼 타협하기 어려운 것처럼 미국과 중국은 재앙이 될 분쟁의 문턱에서조차 상대방의 국제적 역할을 정당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것이 한반도를 또 다른 18개월 동안 파괴한 ‘완전히 새로운 전쟁’의 주된 원인이 되었다.<본문 133쪽>


트루먼이나 맥아더가 처음부터 북한 점령에 대해 생각했던 것은 아니지만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은 이런 상황을 반전시켰고, 침략자를 응징한다는 명분 아래 자신의 의지를 미국의 의지에 종속시킴으로써 유엔은 중재자에서 전쟁의 당사자가 되어 이후 남북한 혹은 양대 진영 사이에서 국제적 중재자의 역할을 포기하는 결과를 빚었다. 그 결과 전쟁은 1950년 10월 1일로부터 2년 반 동안 더욱더 치열하게 전개되었고, 미군 전사자 3만 4천 명, 남북한 130만 명, 중국이 대략 150만 명에서 200만 명 정도가 전쟁터에서 죽거나 부상당한 채 휴전했다.


남북한은 현재까지 어떤 심판자나 중재자, 완충 없이 완전무장한 채 60년간 대립하고 있는 중이다. 김일성은 1994년 사망했고, 아들 김정일이 권력을 승계해 1994년 제네바에서 북한이 핵을 동결하고 궁극적으로 2개의 경수로와 핵 발전 원자로 건설의 대가로 핵무기 개발계획을 폐기할 것을 약속하는 북 ․ 미간 ‘기본합의서’에 서명했다. 그러나 클린턴의 뒤를 이어 대통령에 당선된 부시 대통령은 북한을 악의 축에 포함시키면서 선제전쟁 전략에 대한 독트린을 발표한다. 예방전쟁, 선제공격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는 부시 독트린의 발표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침공 상황 등을 지켜보며 북한은 이것을 북한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선전포고)으로 인식했고, 2003년 NPT(핵확산금지)조약을 탈퇴하겠다고 위협했다. 2003년 4월 북한은 NPT조약 체결 32년 만에 처음으로 탈퇴한 국가가 되었다.


2003년 6월 북한과의 전쟁 위험을 감소시키기 위해 미국과 한국은 점진적으로 북한과 한국 사이 비무장지대로부터 멀리 병력을 재배치하는 데 합의했다. 1,700만 명의 인구가 거주하는 한국의 수도 서울은 군사분계선으로부터 포병의 사거리 내에 위치했었다. 미국과 한국의 입장에서 이와 같은 군사력의 재배치는 양측 100만 명 이상의 군사력으로 항상 긴장을 유지해온 전쟁의 위험 상황을 다소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됐다. 그러나 북한의 입장은 달랐
다. 이들은 거대한 규모의 재래식 군사력을 유지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 핵개발을 선택했다. <본문 137쪽>


2006년 10월 9일 북한은 지하 핵실험에 성공했다. 이전까지 부시 대통령은 북한의 김정일을 가리켜 ‘최악의 독재자’라고 지칭하며 그 같은 최악의 독재자가 다시는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스러운 무기를 가지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북한이 핵무기를 갖도록 부추긴 결과만 빚고 말았다. 미국의 샘 넌(Sam Nunn) 전 상원의원은 “우리는 악의 축의 잘못된 끝에서 출발했다”며 부시의 악의 축 정책이 잘못되었음을 시인했다.


상대 지도자(국가)의 의지에 대한 오판과 자국에 대한 오만

20세기에 가장 길었던 전쟁은 베트남전쟁으로 베트남이 독립을 쟁취하기까지 투쟁한 기간은 장장 30년에 이른다. 한 세대가 흐르고 미국의 대통령 5명이 바뀌는 동안 미국은 상대가 지닌 독립에 대한 강한 열망과 의지, 자신들과 겨루고 있는 베트남의 지도자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거의 전혀 알지 못했고, 심지어 경멸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미국의 대통령들은 물론 미국 자신은 아시아 전반에 대해 문외한이었고, 베트남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특히 존슨 대통령은 공산주의가 수없이 많은 이념적 조각들로 나누어져 있으며 이 전쟁이 지닌 기본적 특성이 공산주의 대 반공산주의의 이념적 전쟁이기 보다는 식민주의에 대항한 전쟁, 혁명과 반혁명에 대한 혁명전쟁이란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과 남베트남군은 거의 언제나 대부분의 전투에서 상대방보다 적은 사상자를 냈기 때문에 그들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있다고 간주했다. 그러나 베트남 사람들은 열악한 조건과 상황에서도 기꺼이 전투에 임했고, 죽음을 불사했다.


존슨과 미국은 호치민과 베트남을 마오쩌둥과 중국의 지시를 받는 꼭두각시로 여겼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호치민은 1920년 프랑스 공산당 창설자 중 한 명이자 옛 볼셰비키 당원으로 공산주의의 세계에서 호치민은 마오쩌둥보다 앞선 원로 공산주의자였다. 한국전쟁에 종군기자로 참전하기도 했고, 우리에겐 『콜디스트 윈터(The Coldest Winter)』로 잘 알려진 데이비드 핼버스탬(David Halberstam) 같은 이는 호치민을 가리켜 “한쪽은 간디의 모습을 또 다른 한쪽은 레닌의 모습을 가진 완전한 베트남인”이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의 주류언론은 그를 경멸적으로 묘사하여 “모스크바에서 기술을 익힌 염소수염의 선동가”라 불렀다.


오랫동안 독립을 위해 투쟁했고, 승리를 거의 쟁취할 뻔했던 나라의 독립을 방해하며 전쟁에 끼어들었던 미국은 정작 자신들이 누구와 싸우고 있는지에 대해 거의 전혀 알지 못했다. 미국은 베트남의 진구렁에서 오랫동안 싸움을 이어나갔지만 이들이 1973년 파리에서 확인한 것은 이미 1954년 제네바 협정에서 결정되었던 상태로 고스란히 되돌아갔음을 인정하는 일 뿐이었다.


미국은 인도차이나에 700만 톤 이상의 폭탄을 투하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에 투하된 폭탄의 80배나 되며 1945년 일본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300배 이상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이 폭탄들은 폭 25~50피트에 깊이가 5~20피트나 되는 폭탄 구덩이 2,000만 개를 남긴 것과 같았다. 폭격 후 베트남의 대부분은 달의 표면처럼 보였고 이후에도 상당기간 동안 아무 것도 자랄 수 없을 것으로 보였다.

미국도 전쟁이 끝난 후 후유증이 심했다. 미국의 지도부는 국민들로부터 존경심을 잃었으며 대학은 붕괴되었고 경제는 전시 통화팽창으로 부풀어 있었다. 5만 8,000명의 전사한 미군을 베트남에서 싣고 온 금속관이 전쟁의 최종적이고 유일한 의미의 상징이 되었다.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공산당의 초기 승리와 이 전쟁의 고뇌 중 어느 쪽이 희생을 덜 치르게 되었을까 하는 것이 베트남에서 해답을 찾지 못한 가장 큰 문제일 것이다. 우리는 단 한 명의 미군도 인도차이나에 파견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역사는 대안을 제시해주지 않기 때문에 선택되지 않은 길이 어느 쪽으로 인도되었을지 알 수는 없다. 아마도 베트남은 훨씬 일찍 공산화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공산주의의 형태는 모스크바와 베이징과는 다른 아마도 독립정신으로 무장한 강력한 민족주의 성격을 띤 티토주의적 공산주의가 되었을 것이다. 미국도 그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공산화의 연기의 대가로 5만 8,000명 이상의 미국인의 생명과 300만 명의 베트남 사람들의 희생, 그리고 1,500억 달러의 가치와 맞바꿀 수는 없었다. <본문 185-186쪽>


1960년대 미국의 베트남정책 입안자 중 한 명이었던 딘 러스크는 1975년 4월 남베트남의 패망으로 끝난 베트남전쟁에 대해 “개인적으로 나는 두 가지 실수를 했다. 나는 북베트남 사람들의 불굴의 의지를 과소평가했고 미국인의 인내력을 과대평가했다.”라고 말했다.


잘못된 역사와 잘못된 오해에서 비롯된 전쟁 - 유고내전

발칸반도 지역은 오랫동안 유럽의 화약고란 이름으로 불렸는데, 그 이름에 값하듯 20세기의 서막을 알리는 제1차 세계대전의 총성도, 20세기의 끝을 알리는 유고 내전도 모두 이 지역에서 벌어졌다. 키신저는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그리고 이슬람교도의 세 종교적 집단 중 어느 것도 다른 집단의 지배를 받아들인 적이 없었다. 이들은 때때로 터키나 오스트리아 또는 공산세력과 같은 외부세력에는 굴종했으나 이들 상호간에는 단 한 번도 그러한 적이 없었다.”라고 했는데, 실제로 1941년 나치가 유고슬라비아를 점령한 기간 동안 이 3개 민족은 나치에 대한 저항운동 못지않게 서로에 대한 증오 역시 맹렬하게 불태웠다. 크로아티아 민족주의자들은 악명 높은 ‘우스타쉬(Ustashes)'를 만들어 비 크로아티아인들을 학살했고,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은 '체트니크(Chetniks)'를 만들어 비 세르비아인들을 학살했다. 이들 모두와 투쟁하며 통일된 유고슬라비아를 세운 것은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의 혼혈이었던 열쇠 수리공 출신의 빨치산 지도자 요시프 브로즈 티토(Josip Broz Tito)였다. 1980년 티토가 사망할 때까지 유고슬라비아는 대외적으로 ’형제의 단결‘이라는 슬로건 속에 통합되어 있는 듯 보였다.


티토 사후 1990년대 초반에 벌어진 구 유고슬라비아에서 벌어진 내전, 처음엔 크로아티아, 그리고 이후 보스니아에 이르기까지, 인종이나 종교에 상관없이 서로 혼인하고 바로 이웃에 살며 평화롭게 살아가던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서로에게 총질을 하며 잔학행위를 일삼았던 전쟁이었다. 물론 최악의 범죄자는 세르비아였지만 그렇다고 이 전쟁에서 세르비아가 유일한 가해자도, 그렇다고 유일한 악도 아니었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전 유고슬라비아 주재 미국대사는 “그들의 가장 비극적인 실수는, 그들 자신의 역사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었다. 그들의 마음은 과거에만 가 있었으며 미래를 향하고 있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이 모든 학살의 주범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히는 슬로보단 밀로셰비치에 대해 존 G. 스토신저는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죽음과 배반의 그늘 속에서 성장했다. 그의 부모는 모두 자살했다. 그는 아내 미라와 함께 세르비아 민족주의를 위한 피난처를 찾았다”고 표현하고 있는데, 밀로셰비치의 아내 미라는 유고슬라비아를 지배했던 티토의 연인이었던 즈덴카의 조카이자 수양딸이었다.


1946년 5월 1일, 티토의 오랜 연인 즈덴카가 폐결핵으로 사망한다. 그는 즈덴카의 죽음에 가슴 아팠고, 베오그라드의 대통령궁에 조그만 기념비를 세우고, 매일 그녀의 기념비에 헌화한다. 즈덴카에게는 사촌 베라 밀레티치가 있었다. 그녀는 파르티잔과 결혼해 딸 한 명을 낳았는데, 곧이어 게슈타포에게 체포당한다. 그녀는 갖은 고문 끝에 동료들의 이름을 토설했고, 그로인해 많은 동료들이 체포되고 죽임을 당한다. 이후 그녀는 다시 파르티잔 동료들에게 체포돼 총살당한다. 티토의 연인이었던 즈덴카의 부모들은 밀레티치의 딸 미라(미랴나)를 입양한다. 그녀는 훗날 세르비아의 대통령이 된 슬로보단 밀로셰비치와 결혼하는데, 이들에게 세르비아 민족주의와 세르비아의 역사는 그들이 수호해야할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무엇보다 이들이 되찾아야 할 세르비아 역사의 성지는 코소보였다. 1389년 세르비아인들은 오스만 투르크의 진격에 맞서 코소보에서 싸웠지만 패배하고 말았다. 이후 500년간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를 받으면서 세르비아인들에게 코소보는 민족의 성지가 되었고, 이곳에 거주하고 있던 알바니아계 이슬람교도들은 같은 유고 국민이 아니라 과거의 원수들이었다.


실제로 그 장소에서 그 같은 전투가 벌어졌었는지도 명확하지 않은 과거의 역사로부터 비롯된 민족과 종교 사이의 증오에 다시 불이 붙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1914년 사라예보에서 터진 총성과 1994년 사라예보의 총성은 전혀 달랐다. 1914년 오스트리아의 페르디난트 대공의 암살사건은 유럽을 제1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로 몰아간 방아쇠가 되었지만 1994년엔 세계 열강 중 누구도 이 지역에서 벌어지는 학살과 죽임에 대해 개입하길 꺼려했다. 어느 강대국도 이 지역에 개입해야 할 이해관계가 없었던 것이다. 강대국들이 수수방관하는 동안 인종적, 종교적 증오에 휩싸인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보스니아는 서로에 대한 증오를 맘껏 불태웠다. 결국 1999년 미국과 나토가 개입하면서 잔인한 학살극은 막을 내렸다. 영국의 역사학자 노엘 맬컴은 세르비아 측이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1389년의 코소보전투에 대한 신화는 모두 거짓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어떤 한 민족이 집단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신화는 그 자체의 진위 여부로 믿음을 얻는 것이 아니란 점에서 노엘 맬컴의 주장은 아무런 힘도 갖지 못할 것이다. 기든 가틀립(Gidon Gottlieb)은 “민족주의는 여전히 강력한 힘으로 존재하고 있으며, 오직 인종적 특징이나 문화의 공유뿐 아니라 역사, 잘못 저지른 실수, 희생을 포함해 정치술의 냉혹한 고려사항을 초월하는 방법으로 국민들을 움직인 상징이나 전설적인 요소에도 근거를 둔다”고 말했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구 유고슬라비아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의 후손들은 1994년의 대학살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전쟁 - 서로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잘못된 인식이 벌인 실수

이외에도 존 G. 스토신저는 6장 「신의 전쟁」에서 인도와 파키스탄이 영국으로부터 독립 이후 현재까지 치르고 있는 오랜 분쟁의 역사를 다루고, 7장 「성지에서의 60년 전쟁」을 통해 이스라엘과 아랍의 전쟁 그리고 8장 「후세인의 전쟁 - 이라크의 이란, 쿠웨이트 침공과 걸프전쟁」을 다루고 10장 「새로운 세기의 새로운 전쟁 - 미국과 이슬람 세계」에서 21세기 초엽 9.11테러 이후 부시의 전쟁에 대해 말하고 있다. 각 장에서 다루고 있는 전쟁의 양상과 내용은 모두 다르지만 저자는 이 모든 전쟁의 양태를 두루 살피는 와중에 한 가지 결론을 도출하고 있는데, 그것은 이렇듯 서로 다른 전쟁이 결국 서로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잘못된 인식이 벌인 실수이며 전쟁은 결코 인간의 천성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학습한 결과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전쟁은 회피할 수 있다고 강변한다. 그는 무엇보다 전쟁은 지도자의 성격, 그 중에서도 ‘지도자의 잘못된 지각’이 사실상 ‘전쟁의 시작과 평화 유지’라는 정책의 향배를 결정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전쟁 발발의 원인에 대해 존 G. 스토신저 교수의 의견에 모두 동의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전쟁이 벌어지는 원인은 역사상 벌어졌던 전쟁만큼이나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세계의 모든 전쟁이 사실은 하부 구조, 다시 말해 경제적 이해관계에 기반하고 있다는 주장을 과학적 진실로 받아들이는 반면에 서로에 대한 오해와 잘못된 인식에 의해 벌어진다는 주장을 비과학적인 주장으로 판단하는 오류를 범해선 안 될 것이다. 많은 이들이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남북한 간의 군사적 긴장 고조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남북한 경제협력, 특히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이 안전판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으로 여기는데, 여기엔 한 가지 간과되기 쉬운 부분이 있다. 물론 경제적 이해관계가 서로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고, 전쟁이 양측의 이해관계를 파괴할 수 있다는 인식은 전쟁 위기를 미연에 방지하는데 좋은 전제조건이 될 수도 있지만 이것은 궁극적으로 양 측의 잘못된 오해와 인식 혹은 증오를 누그러뜨리기 위한 조건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개성공단이 아무리 잘 돌아가고, 경제적으로 밀접한 이해관계를 가진다 하더라도 증오의 물길이 파놓은 심연이 너무 깊다면 전쟁의 위기는 상존한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존 G. 스토신저의 『전쟁의 탄생 - 누가 국가를 전쟁으로 이끄는가(Why Nations Go To War)』을 통해 우리가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길 바란다.


마지막 하나의 경고는 “우리가 들어왔던 어떤 전쟁이 과연 ‘불가피’했던 것인가?”였다. 이 단어는 내가 연구를 통해 제1차 세계대전의 ‘철의 주사위’를 다루는 순간부터 수없이 떠오른 질문이었다. 십자군들은 특히 그러한 주장을 좋아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불가피했다는 주장을 찾아내기는 쉽지 않다. 역사는 역사를 만들지 않는다. 사람들이 외교정책을 결정한다. 이들은 지혜롭게 혹은 어리석게 정책을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정책을 만든다. 전쟁 이후에 역사가들은 종종 전쟁을 뒤돌아보고 운명이나 불가피성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러한 역사적 결정주의는 단순히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은유에 불과하가다. 결국 우리의 생에는 자유의지와 자기 결정이 있을 뿐이다. <본문 537쪽>


다시 말해 그는 피할 수 없는 전쟁이란 없으며, 평화란 현실을 제대로 인식했을 때 비로소 조성될 수 있다고 말한다. 전쟁이냐, 평화냐는 선택은 잘못된 인식과 현실의 갈림길에서 선택되는 것이며 전쟁을 선택하는 실수를 범한 사람은 전쟁이 수행되는 동안 천천히 그리고 아주 오랜 고통 속에서 전쟁의 맨 얼굴을 직접 대면한 뒤에야 그것을 깨닫게 된다. 그런 점에서 전쟁이 지닌 가장 큰 딜레마는 전쟁을 피할 수 있도록 해주는 가장 큰 스승이 곧 전쟁 그 자체라는데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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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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