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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2.24 윤동주 - 별 헤는 밤 (2)
별 헤는 밤

- 윤동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 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佩), 경(鏡), 옥(玉),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히 멀 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1941. 11. 5.>

출처 : 윤동주, 홍장학 엮음, 『정본 윤동주 전집』, 문학과지성사, 2004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우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 부분은 『정본 윤동주 전집』의 편자(홍장학)가 육필 초고 중 첨삭하여 삭제한 부분이다.

**
마감을 한 이틀 남겨놓고 집에 돌아와 밀린 원고를 쓸까 하다 문득 몇날 며칠을 텁텁한 논문들만 읽다보니 입안에서 군내 같은 산문 기운이 가득하다. 하여 시(詩)라도 몇 편 읽다가 자야지 생각하고 간만에 외국 시인들의 시집 속에서 골라낸 “프랑시스 잠(Francis Jammes)”의 시집 『새벽의 삼종에서 저녁의 삼종까지』를 읽었다. 읽다보니 나도 모르게 「별 헤는 밤」의 윤동주가 그리워졌다.

한국 현대시 100년의 스타 중 한 명인 윤동주. 그를 스타라 부르는 것이 불경스럽게 여겨지기는 하지만 학사모를 쓰고 있는 한 장의 사진 속에 새겨진 윤동주의 그윽한 눈빛은 그의 시에 접근하려는 독자들을 가로막는 장벽이기도 하다. 변절과 배신은 현대 정치판에서만 이루어지지 않았고, 문학과 예술의 세계에서도 치열하게, 때로는 치졸하게 이루어졌지만 영원한 청춘의 시인인 윤동주는 기형도가 출현하기 전까지는 최고의 청춘 시인이기도 했다. 비록 이제는 청소년기의 시인처럼 교과서 속에 박제되어 버리고, 민족시인, 저항시인이란 월계관이 미처 굵어지기 전인 시인의 시세계를 억누르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홍장학 선생이 엮은 『정본 윤동주 전집』을 찬찬히 읽어보는 가을밤이다. 아니 겨울밤인가? 하지만 67년 전 이 무렵의 윤동주는 11월을 가을이라 불렀다. 하여 나도 오늘밤이 영하 10도로 내려간다 해도 가을밤이라 부르련다.

북간도에 두고 온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시인 윤동주의 마음이 절절하게 묻어나는 「별 헤는 밤」에 어째서 느닷없이 프랑시스 잠이 소환되어 나왔는지 신기한 노릇이지만 프랑시스 잠의 시집들을 읽노라면 그도 ‘윤동주답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프랑시스 잠의 시세계는 일상(日常)의 아름다움에 대한 예찬으로 가득한데 그건 윤동주의 시세계와도 그리 멀지 않은 지점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두 시인은 서로 통하는 바가 있다.

1945년 2월 16일, 불과 28세의 나이로 일본 후쿠오카형무소에서 숨진 윤동주가 어떻게 프랑시스 잠을 알았을까 궁금해지기는 한다. 프랑스시 잠은 1938년 세상을 떠났고, 윤동주가 「별 헤는 밤」을 쓴 것이 1941년의 일이니 그의 시집이나 시를 접할 수는 있었을 테지만 요즘 문단이나 독서계의 풍경을 떠올려보면 도리어 이해가 어려울 수 있다. 일단 요즘 젊은 친구들은 시는 읽을지 몰라도 시집은 잘 읽지 않는다 하고, 더군다나 거의 당대에 해당하는 외국 시인의 시를 일부러 찾아서 읽을 것 같지도 않고(이건 나도 마찬가지지만 능력도 없고, 재주도 없는), 창작에 뜻을 둔 사람들은 더욱더 외국 시인의 시를 잘 읽지 않는 편이다.

시인을 꿈꾸는 문학청년들이 외국 시를 잘 읽지 않는단 점에선 그만큼 한국문학이 풍성해진 덕을 보고 있는 셈이기도 하다. 윤동주가 영문학도였다는 사실도 당시 외국 문학의 흐름에 관심을 많이 가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리라. 김수영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러나 아마도 가장 진정한 이유는 모든 것이 빈곤했던 시대, 바야흐로 문학이 극성을 맞았던 시대, 어쩌다 구한 한 권의 영미시집조차 얼마나 달콤하게 읽혔을까. 그렇게 상상해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 대구의 헌책방 골목엔 사회주의와 아나키스트들의 원전이 산더미처럼 쌓여 주인을 찾았다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어쨌거나 마지막 발길을 재촉하는 가을밤에 다시 읽는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은 감회가 새롭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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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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