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데오 모딜리아니 : 열화당미술문고 213』 - 장소현 | 열화당(2000)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잔느 에퓌테른느


굳이 우리나라와 일본만 그런 것은 아니고, 전세계적인 분위기이긴 하지만 미술 사조상 특정한 화풍에 대한 선호도로 따지자면 단연 '인상주의'풍의 그림들이 사랑받는다. 그러나 모딜리아니는 인상주의 화풍에 속하지 않음에도 인상주의 화가들 못지 않은 사랑을 받는다. 1884년 7월12일 이탈리아 토스카나지방의 리보르노에서 출생한 모딜리아니의 그림은 수없이 복제된다. 누구라도 그의 그림을 보면 자신의 벽 어딘가 액자에 담아 걸어두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그만큼 그의 작품들은 사랑스럽고, 따스하다. 

작품이 그럴진대 작가의 따스함은 오죽할까.

모딜리아니는 동료와 친구를 비롯해 사랑하는 이들의 얼굴을 많이 그린 화가로도 유명하지만, 유독 자신의 자화상을 그린 것은 단 한 점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다른 화가들의 관례처럼 자화상을 그린 것과 비교했을 때 그는 자화상을 거의 그리지 않았다. 그의 말처럼 '나는 나를 향해 마주보고 있는 살아 있는 인간을 봐야만 일을 할 수 있다.'던 이른바 '만남의 화가'여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그가 이 작품처럼 매우 조심스러운 붓 놀림으로 자화상을 그렸다는 건 후대의 사람들을 위해 다행한 일이었다. 그는 죽기 일년전에야 비로소 유일한 자화상(1919년)을 남겼다.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의 저자인 장소현은 특이한 이력을 가진 이다. 서울대 미대를 졸업하고, 일본 와세다대 대학원에서 동양미술사를 전공했으면서도 그의 직업은 극작가, 언론인, 방송진행자이다. 그는 몇 편의 희곡과 시집, 콩트집, 단편집을 발행하기도 했는데, 그런 덕분인지 책 속의 아메데오 모딜리아니는 그의 작품 속 누드 여인들이 그런 것처럼 발그레한 홍조를 띠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장소현의 『아메데오 모딜리아니』는 열화당 문고본 중 하나이므로 판형은 핸드북 정도의 크기로 작지만, 알찬 책이다. 모딜리아니에 대해 연대기순으로 따라가면서 그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함께 조망해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모딜리아니 아메데오(Modigliani, Amedeo) 1902년경

유대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모딜리아니는 어려서부터 천부적인 예술적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 그런 그의 재능에 가장 큰 위협이 된 것은 중학 시절 앓았던 늑막염이었고, 늑막염은 폐렴으로, 폐렴은 다시 폐결핵이 되면서 그의 건강을 극도로 악화시켰다. 요양을 위해 나폴리, 로마 등을 여행하던 중 마주치게 된 카마이노의 조각들은 그로 하여금 평생동안 자신의 조국 이탈리아와 예술을 사랑하게 만들었다. 그는 문학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 단테Dante, 페트라르카Petrarch, 레오파르디Leopardi, 카르두치Carduchi, 다눈치오Dannunzio 등 이탈리아의 위대한 고전 시인과 니체, 쉘리, 보들레르, 말라르메, 랭보, 로트레아몽 등의 시를 줄줄 암송하곤 했다고 한다. 그에게 이탈리아는 자신의 작품의 원천이자 영감이었던 셈이다.


1906년 22세 때 모딜리아니는 세계 문화예술의 수도 파리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그는 세잔느의 작품을 통해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게 된다. 이후 모딜리아니의 작품들에서 나타나는 단순하면서 우아한 곡선들은 세잔느의 영향력을 그나름대로 내면화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모딜리아니는 피렌체 미술학교 시절부터 회화보다는 조각가의 길을 걷고자 했다. 그는 파리에서도 브랑쿠시풍의 간결한 조형 양식을 발전시킨 독자적인 조각작품을 만들었지만, 어렸을 때 앓았던 병의 후유증으로 약해진 체력과 폐는 조각이라는 육체적 노동을 감내할 수 없었다. 결국 몽파르나스로 거처를 옮긴 모딜리아니는 에콜 드 파리의 화가들, 키슬리와 수틴 등과 사귀게 된다.

◀ 파리 시절의 모딜리아니, 1909년경


파리에서 모딜리아니는 많은 친구들의 사랑을 받았고, 잘 생긴 외모 덕에
(내가 아는 서양 화가들 가운데 최고의 미남) 여인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다. 그러나 모딜리아니는 천성이 이방인이었고, 보헤미안이었다. 고향을 떠나 파리에 정착했으나 그에게 명성은 쉽게 찾아오지 않았고, 예술적 성취에 대한 집념과 경제적 안정을 동시에 이룰 수 없었던 모딜리아니는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다. 그는 술집에서 술집으로 전전하며 삶과 건강을 소진했다. 그는 항상 가난했지만 자존심만은 팔지 않았고, 그림도 멈추지 않았다. 평생 병약한 육체와 가난에 시달리며 예술혼을 불태운 모딜리아니에게 고흐의 동생 테오와 같은 인물이 있었다면, 그는 즈보로프스키였다. 즈보로프스키는 모딜리아니를 자신의 아파트에서 작업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그의 예술에 절대적인 신뢰를 보내 주었다. 

딜리아니의 정신은 정처없이 떠도는 보헤미안이었으나 그의 심성은 연약한 식물성이었다. 그는 대상을 물리적인 시선으로 관찰하기 보다는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싶어했다. 모딜리아니 시대의 초상화, 인물화는 더이상 회화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사진의 출현으로 회화에서 인물화는 사진과 경쟁할 수 없었다. 도구로서의 렌즈는 물리적이고, 광학적인 특성을 갖는다. 하지만 그 도구를 통해 세상을 들여다보는 것도 사람이요, 그 대상도 역시 사람이다. 따라서 렌즈를 통해 본 세상 역시 한 인간의 모습을 닮고 담아내게 된다. 사진이 예술일 수 있는 근본적인 원인도 거기에 있다. 모딜리아니 역시 그런 시선으로 대상을 바라보았다. 비록 가난하고, 보잘 것 없더라도 모델의 삶과 인생을 가까이 지켜봐 온 사람으로서 자신의 작품을 통해 모델과 대화를 나눈다. 차가운 시선이 아니라 더할 나위 없이 따뜻한 마음으로….

모딜리아니의 마음이 가난과 병마 속에서도 따스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영원한 사랑 잔느 에뷔테른느 덕이었다. 모딜리아니가 33세일 때, 잔느는 19세의 미술학도였다. 잔느의 집안은 독실한 가톨릭이었으므로, 가난한 유대인인 모딜리아니와의 결혼에는 극심한 반대가 따랐다. 잔느와 모딜리아니의 사랑은 모든 장애를 뛰어넘었다. 두 사람은 결혼한 이듬해 딸을 낳는다. 모딜리아니는 딸의 이름을 사랑하는 아내의 이름을 따서 잔느라고 지었다
.(이 딸 잔느가 후일 성장하여 미술사가가 되어 모딜리아니 연구의 기초가 될 수 있는 자료들을 모아 만든 평전 『모딜리아니:인간과 신화』의 저자가 된다) 이 시기가 모딜리아니의 인생에서 짧지만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1919년 무렵 모딜리아니는 파리에서 화가로서의 명성을 얻기 시작했고, 잔느는 둘째를 임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결혼 후에도 모딜리아니의 음주벽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고, 건강은 더욱 악화되어 있었다. 그림 <잔느 에뷔테른느>(1919년작)는 이때에 그려진 것이다. 임신한 잔느의 모습은 왠지 처연하다. 그 눈동자 없는 눈은 그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담아 슬프게 바라보고 있는 듯 하다.



1920년 1월 24일 창 밖으로 삭풍이 불어오지만 가난한 이들이나 머무는 자선병원. 여러 환자들이 누워있는 병실 하나 남은 난로마저 온기를 잃고 있을 무렵, 얼음장 같이 차가운 마루에 한 남자가 피를 토한 채 쓰러져 있다. 쓰러진 남자 옆에 만삭의 몸을 한 여인이 남자의 손을 당겨 잡는다. 그녀는 남자를 조용히 내려다 본다. 이제 여인은 남자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조금전 죽음의 사신을 피해 버둥대다 침대 밖으로 떨어진 그의 침대 주변에는 몇 개의 빈 포도주 병과 반쯤 얼어버린 정어리 통조림이 뒹굴고 있다. 지저분한 침대 시트에는 남자가 토해낸 붉은 선혈로 흥건하다. 

여인은 떠나가는 남자에게 말한다.

"천국에서도 당신의 아내가 되어 줄 께요…"
남자는 잔느를 바라보며 ... 단 한 마디를 남겼다.
"그리운 이탈리아!(카라 이탈리아)"
(이때 이 두 사람 사이의 이야기를 말하는 많은 전설같은 이야기들이 남아 있는데 일설에는 모딜리아니가 자신의 아내인 잔느에게 "천국에서도 나의 모델이 되어달라"고 했다는 말도 있고, 잔느가 "천국에서도 당신의 아내가 되어 주겠다"고 말했다는 설도 있지만 확인되지 않은 것들이다. 다만 가톨릭 교육을 받고 자란 임신 9개월의 여자가 남편을 따라 투신자살한 사건은 인간도 동물인 이상 뱃속의 아기를 지켜야 한다는 모성 본능을 초월한 일대 사건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이들 부부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전설이 될 수밖에 없었으리라.)


1920년 1월 24일 20세기 서구회화상 가장 위대한 초상화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아메데오 모딜리아니가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이틀 뒤인 1월26일 그의 아내 잔느 에뷔테른느가 남편을 따라 투신자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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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천년의 그림 여행』 - 스테파노 추피 지음 | 서현주 옮김  | 예경


세계적으로 이름난 출판사란 것이 있다. 프랑스의 갈리마르, 일본의 이와나미 같이 종합출판사로 명성을 얻은 출판사가 있는가 하면 예술관련 서적을 전문적으로 출판하여 명성을 얻는 전문출판사도 존재한다. 프랑스의 라루스, 영국의 파이돈, 독일의 타쉔은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명성을 얻은 출판사들이다. 이것을 그대로 한국에 대입해보면 우리의 출판 환경이 고스란히 드러난다고 할 수 있는데, 작년 한 해 우리 사회를 대변할 만한 여러 키워드들이 있었지만, 문화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가장 두드러진 것은 누가 뭐래도 "한류(韓流)"를 꼽지 않을 수 없다.

 

"조용한 아침의 나라"란 말은 그 출처가 어디인지,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 확인하기 어려울 만큼 오랫동안 우리나라를 수식하는 말이었다(도대체 이렇게 시끄러운 나라를...그래서 최근엔 '다이나믹 코리아'를 국가이미지로 추구하는 건가) . 영국하면 신사의 나라, 프랑스하면 예술의 나라, 독일하면 철학의 나라, 오스트리아하면 왈츠와 모차르트가 연상되듯 국가에는 국가이미지란 것이 있다. 해마다 연말이면 노벨문학상의 향배를 가늠하며 한국 작가들의 수상 가능성에 대한 기사가 나오지만, 문화부 기자들이라고 그 속사정을 몰라서 한국 작가들의 수상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건 아닐 게다. 무엇이 문제인고 하면 제 집안에 황금송아지가 있어도 이를 알아주는 이가 아무도 없는 상황이 문제이다. 국내 작가들의 작품이 외국어로 번역된 것들이 태부족인 상황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1970년대부터 정부차원의 국가 이미지 홍보 사업을 벌여왔다. 명칭은 해외공보관, 해외홍보원, 해외문화원 등으로 변경되고, 분화되어 왔지만 그 목적 자체는 같은 것들이다. 대한민국을 세계에 홍보하여 괜찮은 국가의 이미지를 만들어 보자는 것이었다.

 

우리 스스로가 스스로를 폄하할 필요도, 애써 격상시킬 필요도 없이 냉정하게(이 말은 또 얼마나 냉정하지 못한가?) 바라보려는 노력 자체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번번이 민족감정에 휩쓸려 세계 속에서 제대로 된 우리의 위치를 확인하는 것은 쉽지 않다. 오랫동안 외국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시각은 아시아의 작은 경제 강국, 민주화 를 이루기 위해 애쓰는 나라로 압축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독일이 폴란드, 프랑스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나라란 사실을 안다. 칸 영화제가 어느 나라에서 개최되는지도 알고, 영국이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의 연합 왕국이란 사실도 안다. 그런데 우리가 그들에 대해 이렇게 알고 있다는 것을 그들도 알고 있을까? 아마도 그들은 잘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런 까닭에 우리나라도 국가이미지 홍보를 위한 여러가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명사들을 선정해 국가이미지 홍보대사로 삼거나 각종 문화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이미지를 개선하고, 홍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려는 것이다. 그 중 하나가 프랑크푸르트 도서전(Frankfurt Buch Messe)이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은 TIBE, 볼로냐, 미국과 함께 세계 4대 도서전시회로 손꼽히는 행사로 오는 10월에 개최되는 이 도서전에서 우리나라가 주빈국으로 선정되었다. 우리의 국가이미지, 출판수준과 문화를 알리는데 더할 나위없는 호재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우리는 이 행사 준비에 여러가지 차질을 빚고 있어 주위의 염려를 사고 있다. 우선 이강숙 조직위원장이 지난 8월 사퇴한 이후 11월까지 수개월여를 공석으로 두었고(다행히 김우창 선생이 조직위원장이 되었다), 그나마 행사 준비를 위해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지 못해(55개 사업을 48개 사업으로 축소, 예산도 265억원에서 237억원으로 축소) 애써 마련된 좋은 기회를 놓칠 위기에 처했다.

 

예경 출판사가 미술 출판이라는 외길을 28년간 걸어왔다는 것은 성과는 나중에 좀더 고민해야 할 일이긴 하지만 축하해야 마땅하다. 게다가 예경은 외국의 출판물을 번역 출간하는데만 애쓰고 있는 그런 출판사가 아니란 점에서 역시 격려받을 만하다. 예전에 서평을 올린 바 있는 박용숙 선생의 "한국 현대미술사 이야기"가 있고, 강우방의 "미의 순례", 김영나의 "20세기 한국 미술", KOREAN ART BOOK 시리즈로 "금동불"부터 "탑파"에 이르는 우리 미술의 다양한 분야를 다루고 있는 책들을 출간하고 있다. 미술 분야의 책을 내는 것은 출판의 다른 분야에서도 매한가지 고충이긴 하지만 특별히 공은 더 많이 들어가고 상대적으로 실속은 적은 편이다. 도판 하나, 사진 한 컷 이용하려 해도 저작권 문제를 일일이 해결해야 하고, 이미지를 많이 다루는 책의 특성상 일반 인쇄용지말고, 고급지를 사용해야 하며, 책의 판형도 고려해야 하고, 컬러인쇄다 보니 인쇄 감리에도 여간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우리 미술 분야에 대한 독자층이 넓은 것도 아니다 보니 책의 가격 산출에도 고심하지 않을 수 없다.

 

"천년의 그림여행"의 정가 36,000원인데, "미술출판 28년의 한 길! 예경을 한결같이 성원해주신 독자님들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특별가로 드립니다"란 명목을 달아 19,800원의 임시특별가로 판매하고 있다. 그 자세한 내막이야 출판사 관계자가 아니니 알 수 없다. 문제는 36,000원이든, 19,800원이든 이 책이 그 값을 하는 책이라면 좋은 평을 들을 만한 것이고, 아무리 값이 싸도라도 제 값을 못하면 좋은 이야기를 듣기 힘들다. 그에 대한 나의 결론은 이 책은 좋을 평을 들을 만하다는 거다. 문제는 이 책의 용도인데, 만약 서양미술사를 제대로 읽고 싶다면 그와 관련한 좋은 책들은 이미 많이 있다. 예를 들어 이 방면의 고전으로 손꼽히는 E.H.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읽거나, "생각의나무"에서 출간한 "라루스 서양미술사" 시리즈를 읽는 것도 좋다.

 

문제는 우리의 독서습관에 달려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2만원에 가까운 책값을 지불했으니 이 책을 통해 본전을 빼야겠다 생각하는 건 당연하다. 게다가 책날개에 적힌 글에 따르면 "천년의 그림여행"에 수록된 그림들을 이해하기 위해 별도의 이론서가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라 장담하고 있으니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어찌보면 더더욱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권의 책으로 서양회화 1,000년의 역사를 이해하겠다는 욕심은 그 자체로 그릇된 것이다. 제 아무리 속도가 최상의 덕목으로 칭송받는 시대라 할지라도, "하룻밤에 읽는, 한 권으로 끝장내는" 류의 선정저인 제목 뒤에 따라오는 건 중국사, 미술사, 과학사 어쩌구하는 묵직하기 이를 데 없는 분야들이기 십상이다. 그런 책을 읽고, 그 분야에 대해 '다 알았소' 할 욕심이라면 광고와 상관없이 그것이 도둑놈 심보다. "천년의 그림여행"은 이런 류의 책들이 가지고 있는 명확한 한계를 이미 노정한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런 한계 속에서 이 책이 얼마나 많은 것을 성취하고 있으며, 한계를 보충하고 있는가를 살펴야 한다.

 

우선 이 책은 1,000년이란 시간적 제약을 두고 서양 회화를 살펴본다. 서양미술의 역사가 어찌 1,000년밖에 안되겠는가? 거기에 서양미술의 여러 장르 가운데 조각과 건축, 공예 등을 제외한 회화 분야에만 치중하겠다고 말한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내용은 11세기부터 20세기까지의 서양회화의 역사다. 시간적으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통사(通史)의 구조를 택하지만, 그 안에 140개의 개별 주제와 화가들을 나눠 담고, 다시 이를 본문페이지 상단에 지역별로 다른 색상을 인쇄해 구분해볼 수 있게 한다. 지역별 구분은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저지대국가(벨기에, 네덜란드 등), 중부유럽과 스칸디나비아, 영미, 국제적인 흐름(사조)'으로 세분화하고 있다. 거기에 본문을 보조해주는 부록으로 "위도와 경도"라 해서 화가들을 지역과 시대로 구분해 입체적 위치를 파악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거기에 더해 중요한 회화에 대해서는 별도의 페이지를 구성해 좀더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각각의 본문들은 대개 펼친 페이지 형태로 구성해서 한 명의 화가를 소개함에 있어 그 작가의 시대적 위치(사회적 영향이나 예술사적 위치)와 평가, 간략한 작품세계를 알리고, 대개 메인 컷 한 두 개와 서브 컷 서너 개를 삽입하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물론, 고야와 같이 대가에 속하는 작가들에겐 더 많은 페이지를 할애한다. 예를 들어 본문 51쪽에서 소개하고 있는 "슈테판 로흐너(독일)"에 해당하는 색은 중부유럽과 스칸디나비아를 뜻하는 노란색 마크가 페이지수를 알리는 숫자 상단에 있고, 그의 작품 3컷과 작자 미상의 그림 1컷이 소개된다. 거기에 로흐너 작품의 사인처럼 사용되는 특징인 선명한 파란색이 두드러진 천사의 색채에 숨겨진 비밀을 알려준다(슈테판 로흐너는 선명한 파란색을 내기 위해 당시로선 순금보다 훨씬 비싼 청금석을 염료로 사용한 것이라 한다. 보라색이 고귀한 귀족이 입는 의복 천에 주로 사용된 까닭 역시 보라색 염료의 당시 가격이 엄청나게 비쌌던 것이 한 이유라는 사실을 알면 천사가 순금보다 비싼 물감을 사용하는 건 당연할지도). 물론 이 정도로 이 작가에 대해 모든 걸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이 분야에 대해 전문가가 되길 소망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로흐너에 대해 이 정도 상식과 교양을 갖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나는 이 책을 통해 그간 서양미술사(대개의 미술사 책에는 충분한 도판이 수록되지 않는 편이다)를 통해 이름만 접했거나 처음 이름을 접하게 된 화가들이 대다수이다. 전세계적으로 서양미술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시기는 인상주의 시대로, 이 시기를 전후한 작가와 작품들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정보의 양 자체가 빈약하다. 그런 점을 염두에 둘 때 이 책은 일반인을 위한 서양회화사 입문서 혹은 교양서로서 적당한 난이도와 풍부한 도판을 지닌 책으로 별 다섯을 충분히 줄 만하다. 물론 전체 400쪽에 근접하는 분량의 책이다보니 오탈자가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겠다(참고로 나는 이 책을 읽을 때 오탈자를 찾아보려고 시도하지는 않았으니 있다는 건지 없다는 건지에 대해선 논할 자격이 없음을 밝혀둔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 책의 부록이나 찾아보기 등에 대해서는 불만이 없으나 이 책의 목차가 좀더 성의있게 만들어졌다면 하는 것이다. 이 정도 정성을 들여 만든 책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목차가 달랑 4개의 구분 '여행에 앞서, 천년의 그림여행, 화가연표, 찾아보기'으로는 천년의 여행을 즐겁게 시작하는 초입치곤 너무 빈약하다.

 

끝으로 예경출판사의 28년 걸어온 길을 진심으로 축하하면서 앞으로도 좋은 책들을 많이 출간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우리 미술의 아름다움을 다른 나라들에도 널리 알릴 수 있는 기획을 많이 하는 훌륭한 출판사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 이 책을 잘 읽는 뾰족한 묘수가 있을리 없겠지만 가격대비 효용성이란 측면만 놓고 보자면 일단 한 권 구입해놓고 침대 머리맡에 놓고 잠들기 전 차근차근 그림 중심으로 보는 것도 좋을 것이고, 괜찮은 서양미술사랑 같이 펼쳐놓고 "천년의 그림여행"이랑 비교해가며 읽는 것도 좋은 여행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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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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