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발 없는 자들의 고독한 촛불을 넘어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시위와 집회가 다시 출현하리란 예상은 누구나 했지만 100일도 안 된 시점에서 이처럼 거대한 촛불의 물결이 만들어지리라고는 누구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난 두 달여 동안 서울 시청으로 향하는 지하철 안에서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살수차가 뿜어대는 최루액에 범벅이 되어 도망치게 될지도 모른다는, 전경 방패에 내리 찍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을까. 아니면 “헌법 제1조”를 노래하고 컨테이너 장벽을 ‘명박산성’이라 조소하지만 만리장성 같은 장벽, 체제권력을 넘지 못하고 돌아서는 무기력을 반복하는 두려움이었을까. 촛불의 의미는, 촛불 그 이후엔 무엇이 있을까.

대중지성, 촛불시위는 웹2.0의 돌연한 사건인가
“위대한 피플 파워”란 국제앰네스티 조사관의 말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촛불시위에 대한 찬사는 특히 진보적 지식인들 사이에서 두드러진다. 촛불시위 이후 대중은 다중, 대중지성 등 수많은 방식으로 호명된다. 촛불시위가 최고조에 달할 무렵 여러 매체들은 진보적 지식인들을 앞세워 ‘촛불정국’을 분석하며 “이제 한국 사회의 시대 구분은 촛불 시위 이전과 이후로 나눠 봐야 한다”거나 “현재의 큰 흐름에 동참하고 있는 대중들조차 엄청난 역사적 변화를 만들고 있다는 인식을 하지 못하지만, 분명한 것은 쇠고기 사태 이전으로 돌아가기 어렵다”고 말한다. 인터넷 공간의 웹2.0 민주화 세대란 뉴미디어 담론과 중․고등학생들의 시위참여에 주목해 또 하나의 신세대 담론이 등장한다. 이른바 새로운 주체의 출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들이 간과하는 것이 있다.

현재의 촛불 시위를 과거와 다른 무엇으로 규정하는 것은 본의 아니게 과거와의 단절을 시도한다. 그것은 이명박 정부를 이전의 정부와는 다른 정부, 6․10항쟁 이후 지속되어온 87년 체제와 다른 정부로 본다는 점에서 보수세력이 지난 10년을 ‘잃어버린 10년’으로 규정하는 것과 동일한 효과, 이른바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는 환상을 대중에게 심어준다. 실제로 달라진 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처럼 손쉬운 단절을 통해 촛불시위 이후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환상 속에서 다시 5년을 보내게 될 것이다.

중고등학생들이 시위에 나선 것, 인터넷을 통해 시위가 조직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광화문 네거리에 쌓인 컨테이너 장벽 역시 지난 2005년 노무현 정부 시절 APEC 정상회의 장소였던 부산 벡스코 회의장 앞에 어청수 당시 부산경찰청장이 설치했던 전례가 있었다. 또한 경찰의 강경진압을 넘어 군대까지 동원되었던 평택 사태가 이미 있었다. 심지어 브레히트의 시를 빌어 “차라리 정부가 인민을 해체하고 다른 인민을 선출하라”라는 언론의 비판1)까지도, 지난 정권에 대해 이미 나왔던 비판2)의 반복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부터 한미FTA에 이르는 MB노믹스는 새로울 게 없다. 우리가 ‘세계화’라는 말을 듣기 전부터 정권을 바꿔가며 줄기차게 추진되었던 정책들이기 때문이다. 대중의 입장에서 보자면 ‘잃어버린 10년’이 아니라 ‘잃어버린 20년’이었던 셈이다. 87년 6월 항쟁은 결과적으로 체제의 근본을 흔들지 못한 불완전한 타협의 소산이었다. 이것은 당시 한국사회의 지배계급이 “자신들의 사회적 권력이 아무 탈 없이 보존”되고, “다른 계급들을 계속 착취할 수 있고 소유”를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를 “정치적 무권리 상태”에 빠뜨린 결과다. 다시 말해 우리 사회의 보수화 흐름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처음 시작된 것이 아니라 87년 이후 계속된 현상이다. 87년 이후 대중이 보수와 개량에 동의했건, 그렇지 않든 시민권력이 회복해 국가권력에 위임했던 민주주의는 끊임없이 위축되었다. 노무현 정부에 와서는 모든 권력이 시장에 넘어갔다고 대통령이 고백해야할 만큼 “정치적 무권리 상태”3)가 극도로 심화되었다. 이 같은 인식 없이 촛불시위대를 갑작스럽게 출현한 새로운 시민으로 규정하는 것은 ‘기억 속의 민주화’에만 집착하면서 퇴행의 길을 밟아온 지식인, 시민사회, 그리고 우리 자신에 대한 성찰 없이 정권이 교체되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빚어졌다고 오도할 가능성이 있다.

‘순수한’ 시민을 넘어 ‘정치적’ 시민으로
이번 촛불시위의 긍정적인 특징은 이른바 ‘깃발 없는 자’들, ‘아무 것도 아닌 자’들이라 할 만한 다양한 시위주체들의 자율성과 문화적 이벤트, 자유로운 토론이라는 카니발적 속성에 있었다. 지배 권력과 보수언론들은 촛불시위의 정치적 배후설을 주장하다가 시민들의 분노에 직면한 뒤부터는 도리어 시민들의 순수성을 강조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보수언론들의 이런 규정과 달리 촛불시위는 애초부터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정치적인 시민들의 시위였다. 그것이 애초부터 국가권력에 대한 시민권력의 환수 요구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탈정치적인 시위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배권력과 보수언론은 ‘순수한 시민’을 끝없이 강조함으로써 시위 주체들의 정치적 지향과 언어를 이간했고, 궁극적으로는 자기조직화를 통해 사회공동체와 연대할 수 있는 가능성을 크게 훼손시켰다. 시민직접행동이란 가장 정치적인 행위의 한 가운데에서 촛불을 든 시민들은 ‘순수한’ 시민이란 거대한 강박에 사지가 묶여버렸다.

사회운동은 유동적인 사회현상이다. 그래서 지속적인 움직임을 보이기 어렵고 동원국면이 지나면 와해된다. 사회운동은 특수한 과제가 있는 조직으로 바뀌거나 기존 정당에 흡수된다. 그럴 경우, 뒤를 잇는 조직이나 정당이 원래 운동의 가치와 목표에서 나온 선택되고 변화된 자극을 넘겨받을 경우에만 ‘효과’가 나타난다. 사회운동은 조직으로 가는 문지방을 넘어서지 않으면, 복잡하게 얽힌 소집단이나 하부문화적인 생활 방식 혹은 특수한 세대의 기억공동체 속으로 용해된다.4)


어떤 이들은 촛불시위를 서구의 68혁명에 비유한다. 일부에서 대통령 탄핵 같은 구호가 등장하긴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검역주권 수호를 통한 국익사수, 경찰에 대한 시민보호, 행정고시 절차 준수 같은 법질서, 기존 패러다임의 준수를 요구한 측면이 더욱 강했다. 세계화라는 국가를 초월한 패러다임 전환의 충격에 장기간 노출되었던 대중은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변화된 패러다임은 국가권력이 초국가적 자본 앞에 얼마나 무력한지 보여주었다. 초국가적 자본의 공세에 직면한 시민사회와 진보진영은 국가권력과 재벌이라는 국내자본의 위기 혹은 호응을 바라보며 혼미를 거듭했다. 거듭되는 혼돈 속에서 신자유주의가 펼쳐놓은 사적 욕망의 회오리는 민주화운동기를 통해 구축되었던 개인의 사회적 연대망을 파괴했고, 시민들 스스로를 자가 발전하는 펀드매니저로 재사회화(resocialization)해 나갔다. ‘금모으기 운동’ 이후 대중이 자발 혹은 동원의 형태로 등장한 사건들 - 월드컵, 한류, 황우석 사태, <디워> 논란 등 - 은 외환위기를 통해 확인된 국가(권력)의 취약함에 대한 반동이었다.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드러난 것은 ‘지식정보사회강국’이든, ‘동북아중심국가’이든 초국가적 자본의 상위를 점하는 선진국 대열에 합류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대중의 위기의식이었다. 중산층의 씨가 마르는 상황에서 이른바 ‘대박’, ‘부자되기’를 통해 삶의 수준을 유지하고 싶은 중산층 서민들의 욕망이 그 배후에 있다.

신자유주의 체제는 정치적 발언의 자유를 부분적으로 허용하는 대신 대중을 사적 욕망의 실현이라는 개별화된 그물망에 가둔다. 신자유주의의 변화된 패러다임은 자본이 노동을 강요하지 않는 대신 사적 욕망의 실현을 위해 스스로에게 부과한 노동을 수행하지 않으면 도태될 것이라는 강박을 심어준다. 신자유주의 체제는 대중으로 하여금 극도의 긴장 속에서 소비적 욕망의 추구를 자아실현 욕구로, 자본이 강요하는 업무능력강화를 자기계발로 착각하면서 자신과 무한경쟁하게 만드는 시스템이다. 이처럼 더욱 촘촘하고 정교해진 사회적 그물망은 시청 앞 광장을 카니발 광장으로 허용하면서도 동시에 거대한 가두리 양식장으로 만든다.

“캄캄한 산중턱에 홀로 앉아서 시가지를 가득 메운 촛불의 행렬을 보면서, 국민들을 편안하게 모시지 못한 제 자신을 자책”했다던 대통령이 초등학생까지 닭장차에 가둬버릴 만큼 소통두절 상황이란 사실이 확인되면서 인터넷에는 촛불시위에 대한 비관적 예측들이 나돌기 시작했다. 발언의 자유를 허용하는 대신, 국가권력은 시민들이 체제의 패러다임을 감히 전환시킬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것으로 촛불은 끝난 것일까. 사제단이 승리를 선언한 뒤, 광우병대책회의가 주최하는 촛불문화제 현장에는 이제 문화제는 그만하고, 새로운 투쟁에 나서자며 격앙된 목소리로 항의하는 시민들의 모습이 자주 보였다. 비록 촛불시위에 참여하는 대중의 숫자는 크게 줄었지만 이것으로 촛불이 꺼진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고립이 아닌 소통과 연대의 촛불
촛불시위의 승리와 패배를 논하기에 앞서 우리는 해결해야만 하는 과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촛불시위는 다소간의 역기능이 있다 할지라도 인터넷이란 소통의 광장이 대중에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러나 정부수립 60주년이 되는 오늘, 대의민주주의와 자유언론이란 시스템 안에서 국가권력과 시민권력 사이에 소통할 수 있는 정치적 광장들이 존재하는지, 제 기능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커다란 의문을 남겼다. 시민들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거대한 촛불의 행렬을 만들어냈고, 시위가 계속될수록 민주화 이후 20년의 민주주의가 만들어낸 제도정치의 한계가 노출되었다. 국가권력과 제도정치의 실상이 대중의 투쟁에 의해 적나라하게 발가벗겨지고, 대중의 통찰이 놀라운 모습으로 표출되면서 시민의 축제, 새로운 문화로 찬미되었던 촛불시위는 갖가지 방식으로 규탄 받는다. 그사이 정치는 국회의사당 안으로 슬그머니 환수되었다.

지배계급은 대중이 보수적일 때 그들의 우둔함을 두려워하고, 대중이 혁명적일 때는 그들이 보여주는 통찰력을 두려워한다. 시민대중은 거리에서 직접행동을 통해 현존하는 민주주의의 지평을 넓히고, 경계를 넘어 확장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지배질서가 교묘히 직조해둔 ‘욕망의 배치’ 구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대중 역시 체제의 외부를 상상할 수 있는 통찰에 도달할 수 있어야 한다. 한나 아렌트는 “현실정치는 우리가 무엇을 정치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가에 따라 달리 형성될 수 있다”고 말한다. 정치적으로 ‘순수한’ 시민이란 허구 속에 갇혀있는 한 민주주의는 하나의 정치적 제도에 머무를 뿐 그 이상의 것이 될 수 없다.

지금 우리는 스스로를 위해 촛불을 들었지만, 그 촛불은 나만의 것이 아닌 우리 모두의 것, 사회적인 개인의 것, 고립이 아닌 소통과 연대의 촛불이다. 깃발 없는 자들의 고독한 촛불을 넘어 지금 우리는 새로운 깃발을 만들어 나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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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형철, 「브레히트가 대통령에게」, <한겨레21>, 2008.06.12.(제714호)
http://h21.hani.co.kr/section-021158000/2008/06/021158000200806120714039.html

2) 강양구, 「유시민 의원, 차라리 국민을 '새로' 뽑지 그래! 」, <프레시안>, (2007. 07. 13)
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30070713155430&s_menu=정치

3) 그들 자신의 이해가 자신들에게 자기 통치라는 위험에서 벗어나라고 명령하고 있다는 것, 국내에 안녕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신들의 부르주아 의회가 조용해져야 한다는 것, 자신들의 사회적 권력이 아무 탈 없이 보존되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정치적 권력이 파괴되어야 한다는 것; 부르주아 개개인은, 자기 계급이 다른 계급들과 나란히 매한가지의 정치적 무권리 상태에 빠져 있어야만 다른 계급들을 계속 착취할 수 있고 소유와 가족과 종교와 질서를 별 탈 없이 계속 만끽할 수 있다는 것; 자신들의 머리에서 왕관이 벗겨져야만, 또 자신들을 지켜줄 칼이 동시에 다모클레스의 칼이 되어 자신들 자신의 머리 위에 있어야만 자신들의 돈주머니가 구출될 수 있다는 것을 고백하였다. - 칼 마르크스, 김태호 옮김(2002). 「루이 보나빠르뜨의 브뤼메르 18일」, 『칼 마르크스 엥겔스 선집2』, 332쪽.

4) 잉그리트 길혀 홀타이, 정대성 옮김(2006), 『68운동』, 들녘, 175-176쪽


출처 : <실천문학> 2008년 가을호(통권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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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진보와 야만 사이의 내부고발자(whistle blower)

『진보와 야만』을 읽기 전에 들었던 두 가지 생각

클라이브 폰팅(Clive Ponting)의 책 『진보와 야만-20세기의 역사』를 처음 받아들었을 때 들었던 생각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진보와 야만'이란 시선으로 20세기를 바라보려는 시도가 그다지 낯설지 않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생태적 관점에서 진보의 의미를 파헤쳤던 『녹색세계사』(2003, 그물코)를 통해 인류의 환경파괴 역사를 진지하게 담아냈던 저자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아마 서유럽과 북미의 잘사는 나라들과, 오스트레일리아에 사는 교양 있는 중산층 시민들일 것”
이라고 예측한다. 뒤이어 그는 “이들과 그 가족들의 경험은 20세기에 세계 대다수 인구가 겪은 전형적인 경험들”과는 다르다고 말한다.

1900년에 가장 부유했던 나라들은 2000년에도 여전히 가장 부유했고(이 집단 안에서 일정한 변동이 있었지만), 최빈국들도 대체로 변함이 없었다. 실제로 중심부와 주변부 사이의 부의 격차는 20세기 동안 줄어들기는커녕 더욱 커졌다. 1900년에 중심부에 사는 사람들은 주변부에 사는 사람들에 비해 평균적으로 약 3배 더 부유했다. 1990년대 말에 이 격차는 7배로 커졌다. 어떤 경우에 그 격차는 개괄적인 수치가 제시하는 것보다 훨씬 더 컸다. 1990년대에 미국의 1인당 소득은 자이르보다 평균적으로 80배 더 높았다. 많은 나라에서 상황은 급속히 악화되고 있었다. 1990년대 중반에 89개국 사람들이 1980년대 보다 훨씬 더 가난해졌고, 43개국 사람들이 1970년대 보다 더 가난해졌다. 이것은 상대적인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부의 하락이었다. … <중략> … 20세기 말 세계에서 부의 격차는 막대했다. 세계 인구의 가장 가난한 20%(약 12억 명)는 세계 총소득의 채 1%도 차지하지 못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기준에서 ‘극빈층’으로 분류되는 이들은 충분한 식량과 주택, 음용수도 공급받지 못했다. 세계 어린이의 1/3이 영양결핍을 분류되었고, 그 중에서 1,200만 명의 5세 이하 어린이가 빈곤 관련 질병, 대개는 13펜스의 비용밖에 들지 않는 경구용 수액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했다. <본문 155-156쪽>

이 책을 읽는 우리들, 대한민국 사람들은 그가 상정하고 있는 서구 세계, 중심부의 교양 있는 중산층 시민들과는 또 다른 경험들 속에 놓여 있다. 우리는 1900년대 가장 가난했던 나라에서 탈출해 중심부에 근접하는 위치까지 올라섰기 때문이다. 저자는 우리 모두가 20세기 전반에 걸쳐 최소한 평균적으로는 모든 사람이 훨씬 더 부유해지는 진보를 이루었지만, 문제는 세계의 부가 불평등하게 분배되었고, 세계 인구의 20%가 전 세계 부의 80%를 향유한다는 이 사실이 20세기의 가장 큰 야만일 것이라고 지적한다. 비록 IMF 이후 우리 사회의 거의 모든 구성원들이 먹고 살기 힘들다고 난리를 치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우리는 국민소득 상위 20%에 든다.

진보와 야만 사이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

대한민국은 건국 당시(1948년) 1인당 국민소득 50달러였던 최빈국에서 2006년 현재 16,000달러에 육박하는 나라가 되었다. 물론 문제는 이 같은 통계나 외형적 수치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다른 주변부 국가들보다 잘 살고 있다는 객관적 조건들을 무시할 수는 없다. 다른 중심부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들 역시 경제위기와 실업을 완화하기 위한 노동시간 단축이란 정책은 펼쳐보지도 못했다. 우리들 모두는 좀더 많은 소비를 위해 충실한 노동중독자가 되기를 자처하고 있다. 1997년 IMF 경제 위기 이후 우리 사회는 더욱더 각박해졌고, 지금껏 피땀 흘려 누려온 모든 풍요가 일순간에 사라질 수 있다는 공포와 불안에 사로잡혔다.

우리에게 이 같은 공포와 불안이 더욱 극대화된 까닭은 우리의 성공과 풍요가 불과 최근 2~30년 사이의 일이라는 단기적인 체험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자본주의라는 착취의 먹이사슬에서 우리들 역시 하나의 정점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주변부에 속한 인류가 채 1%도 안 되는 소득으로 비탈진 삶을 살아가더라도 오늘의 우리는 풍요로운 소비를 만끽할 수만 있다면, 그것은 우리에게도, 서구의 중심부를 형성하고 있는 교양 있는 중산층 시민들에게도 여전히 진보로 받아들여진다. 이 공포와 불안의 먹이사슬이야말로 20세기의 진보와 야만을 이루는 핵심 고리이다. 우리는 『진보와 야만 - 20세기의 역사』를 통해 이 두 가지가 나란히 공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어떻게 할 것인가? 또 21세기의 세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앞서 언급했던 20세기 초 만연했던 중심부 엘리트들의 낙관주의가 그러하듯, 21세기 초반인 현재 장기적인 예측은 불가능하겠지만 이 책의 저자가 내리고 있는 비관적인 결론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 역시 매우 어렵다. 클라이브 폰팅은 “20세기 동안 세계가 진화해온 길과 세기말의 경제력과 정치력의 분포를 고려할 때, 세계는 다음 수십 년 동안에도 과거와 마찬가지로 한줌의 소수에게는 진보로, 압도적 다수에게는 야만으로 다가올 공산이 크다”고 전망한다. 이 전망은 1900년에 가장 부유했던 나라들이 20세기에 여전히 부유했던 것처럼 21세기에도 여전히 부유할 것이란 전망이기도 하다. 그러나 20세기와 21세기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1992년 미국 과학아카데미와 영국의 왕립협회의 공동보고서는 “현재의 인구성장 예측이 정확한 것으로 판명되고 지구상에서 인간 활동 패턴이 변화하지 않는다면, 과학과 기술은 세계의 상당한 부분에서 진행되고 있는 불가역적인 환경 악화나 계속되는 빈곤을 방지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다. 21세기에도 한줌의 소수는 여전히 세상이 진보하고 있다고 믿겠지만, 그 같은 방식으론 더 이상 지구의 자원과 생태계가 지속가능할 수 없기 때문이다.

1965년 미국의 국무장관 딘 러스크(Dean Rusk)는 미국의 전 지구적 권력과 세계의 모든 일에 개입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주장하면서 아래와 같이 말했다.

“지구는 매우 작은 행성이 되었다. 우리는 육지에서든 바다에서든 대기권에서든 심지어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우주에서든 지구상의 모든 것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본문327쪽>

이제 21세기의 인류, 아니 저자가 이 책을 읽을 것이라고 상정하고 있는 중심부의 교양 있는 시민들은 불안과 공포에 억눌린 풍요로운 이 체제의 내부고발자로서, 생존의 가파른 비탈에 서 있는 주변부와 “지구상의 모든 것”, 생명을 가진 것들과 그렇지 않은 모든 것들을 지속가능하게 만들기 위한 권력과 개입할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











출처 : 『환경과생명』 2007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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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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