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호학으로 본 스타시스템의 변화

현대의 일상세계에 존재하는 무수한 신화들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드가 모랭은 『스타』(문예출판사)를 통해 스타를 통해 본 대중문화를 읽고 다시 사회를 해석하고자 했다. 그에게 있어 스타란 사회를 해석하는 상징이자 기호였다. 에드가 모랭은 “스타는 확실히 하나의 신화인데, 그것은 단지 몽상(夢想)일 뿐만 아니라, 힘 있는 관념”, 다시 말해 세상을 구축하고, 뒷받침하는 이데올로기적 서사란 뜻이다. 우리는 이 말을 통해 현대 사회에서 스타(Star)가 차지하는 위상과 역할, 기능에 대해 깨달을 수 있다.

신화를 뜻하는 미토스(mythos)란 말은 본래 고대 그리스어에서 온 용어인데 이 말은 ‘서사(敍事)’를 뜻한다. 서사란 작은 의미에서의 ‘이야기(story)’가 아니라 보다 큰 개념으로 언어적인 것들뿐만 아니라 연극, 음악, 춤, 이미지 등 인간이 만들어낸 온갖 기호적 장치들을 통해 구현된 이야기 체계를 의미한다. 신화, 역시 좁은 의미에서는 고대인들의 상상 속에 등장하는 온갖 신들의 이야기를 지칭하는 것이지만 신화의 의미를 확장해 보면 현대인의 삶이 작동한 일상의 어디에나 있는 것이 신화이다.

본래 언어학에서 출발한 기호학(semiology)이 오늘날 현대사회를 해석하는 중요한 학문으로 자리 잡을 수 있게 된 것은 언어를 기호(sign)로 파악했던 소쉬르의 개념을 현대 세계의 신화를 해석하는 도구로 원용하면서부터였다. 프랑스의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는 고대인들이 자신들이 이해하고, 인식하고 있던 세계의 의미를 재현하고 재구성하기 위해 신화를 만들어냈던 것처럼 현대 세계도 이와 같은 목적으로 신화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보았다. 그는 이와 같은 현대의 신화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해석하는 것이 바로 기호학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인간이 달나라에 가는 현대 세계의 어디에 신화가 존재한단 말인가?’란 의문을 품을 수 있을 것이다.

스타가 만들어낸 상징과 메시지

간단한 사례로 한국에 등장한 가장 최근의 신화는 광저우 아시안게임 수영3관왕으로 새로운 ‘신화창조’에 성공한 ‘마린보이 박태환’이 있고, 빙상스포츠의 불모지였던 대한민국 피겨스케이팅의 역사를 새롭게 쓴 ‘빙판의 여신, 김연아’가 있다. 조금 더 멀리 가자면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룩한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들이 있고, 이들을 4강까지 이끈 히딩크 감독 역시 그와 같은 신화의 주인공들이다. 박태환과 김연아, 히딩크 감독의 공통점은 이들이 스포츠 스타란 것이지만 동시에 이들이 우리 사회가 감동할 만한 메시지를 주었고, 그 메시지에 우리가 열렬히 호응했다는 것이다.

기호학에선 기호(신화)의 겉모습을 시니피앙(signifiant, 記表)이라 하고, 기호 안에 담긴 의미(메시지)를 시니피에(signifié, 記意)라 부른다. 시니피앙과 시니피에의 결합을 통해 겉으로 드러나는 일차적인 의미화 과정을 다시 디노테이션(외연, denotation)이라 하고, 이것이 인간의 감정이나 평가에 의해 더해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차적 의미화 과정을 코노테이션(내포 connotation)이라고 한다. 용어들을 접하면 다소 복잡하게 느껴지지만 실상은 매우 간단해서 기호학을 응용하면 박태환, 김연아, 히딩크는 물론 이와 같은 스타들을 통해 현대의 대중들이 무엇에 그토록 열광하고 있으며 대중이 바라고, 희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엿볼 수 있다.

기표의 측면에서 박태환 이전의 한국 수영은 최윤희가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낸 적이 있을 뿐 세계무대에선 존재감을 느낄 수 없는 종목이었다. 어느 날 솜털도 채 가시지 않은 박태환이 올림픽에 출전해 그것도 경쟁이 가장 치열하다는 남자 자유형 종목에서 당당히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미국과 동구권 스타들의 독무대로 여겨졌던 피겨스케이팅 분야에서 한국의 어린 소녀가 만점에 가까운 연기를 선보이며 세계인들을 매료시켰다. 아시아에선 호랑이였지만 세계무대만 나가면 한없이 작아지던 한국 축구 역시 세계적인 스타 한 명 없었지만 세계적인 축구강호들을 잇달아 연파하며 당당히 세계 4강에 올랐다.

이들의 성공은 스포츠 승부의 세계가 주는 드라마틱한 서사로 재구성되면서 한국의 대표적인 신화가 되었다. 아마도 이것이 이들이 신화가 주고 있는 기표이자 외연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신화에 내포된 기의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나아가는 대한민국의 당당함, 세계화 이래 늘 선진강국들 앞에만 서면 왠지 모르게 주눅 들고, 자신이 없었던 우리들에게 이제 우리도 선진국의 반열에 곧 들어설 수 있으며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것이란 자부심을 선사한 것이다. 특히 박태환과 김연아의 경우 주목해야 할 점은 이들이 성공에 이를 때까지 정부나 국가보다 그들 개개인의 노력과 가족의 희생으로 뒷받침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태환과 김연아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아들, 딸이 되고, 백발의 네덜란드인 감독 히딩크는 대한민국 특별시민 희동구가 된다.

우리 시대의 가장 강력한 신화, 스타

대중문화가 지배하는 사회의 가장 강력한 신화는 대중 미디어를 통해 널리 알려지고, 그로 인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스타다. 스타는 그 시대가 동경하는 서사 이데올로기를 몸소 현현(顯現)한 신적 존재이다. 스타와 영웅은 여러 면에서 흡사한데, 둘 사이의 공통점은 시대를 잘 타고 나야 한다는 것이지만 이 말은 사실 스타에겐 시대가 동경할 만한 그 무엇, 실력뿐만 아니라 대중을 감동시킬 서사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그것을 스타성 혹은 스타덤(stardom)이라 부른다. 스타덤이란 스타들이 살아가는 방식(일상뿐만 아니라 성장과정, 사랑과 결혼, 섹스까지 포함하는 삶의 방식)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를 뜻한다. 스타덤은 팬들에 의해 생산되고, 유지되는 데 이와 같은 현상을 팬덤(fandom)이라 부른다. 팬덤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특정한 인물이나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 또는 그러한 문화현상’이다. 팬덤과 스타덤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팬덤을 이해하지 못하면 스타를 이해할 수 없으며 스타를 만들어낼 수 없다.

과거엔 스타와 팬의 구분이 명확했다. 스타가 스타인 이유는 말 그대로 일반인들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잡을 수 없는 하늘의 별이기 때문이었지만 최근엔 이런 구분이 급격하게 무너지고 있다. 일반인은 스타가 되고 싶어 하고, 스타는 일반인이 되고 싶어 한다. 스타와 대중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기호학적 맥락에서 살펴보면 스타의 생산시스템, 이른바 스타시스템에 커다란 변화가 도래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몇 해 전부터 큰 인기를 누리며 TV를 장악하고 있는 것이 이른바 스타들의 ‘쌩얼’을 보여준다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란 것을 잘 알고 있다.




과거 아날로그 미디어 시대의 스타들이 기획사의 스타시스템(star system)에 의해 만들어졌다면 멀티미디어 시대인 오늘날엔 ‘적극적인 팬덤’에 의해 스타가 만들어진다. 적극적인 팬덤이란 사실 마케팅 영역의 프로슈머(prosumer)와 다를 바 없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얼마 전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슈퍼스타K>를 들 수 있다. 이제 대중은 기획사의 스타시스템에 의해 생산된 스타에 만족하지 않고, 그들 스스로가 ‘신화 훔쳐오기’를 통해 새로운 스타와 신화를 생산하는 존재로 변모해가고 있다. 이것은 대중의 변화된 욕망을 반영하고 있는 것인데, 과거 스타는 신적 존재이며, 관객은 스타의 신도들이었지만 이젠 대중들 스스로 신이 되려는 강한 열망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My Prime Club:동양증권 사보, 2011,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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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연구와 문화이론 - 존 스토리 | 박이소 (옮긴이) | 현실문화연구(현문서가) | 1999


존 스토리의 "문화연구와 문화이론"은 문화이론을 개괄하는 입문서이다. 이 방면의 개론서로 이 책을 포함해 김정은의 "대중문화읽기와 비평적 글쓰기", 원용진의 "대중문화의 패러다임", 김창남의 "대중문화의 이해"를 포함해 모두 4종을 읽었고 다른 책들에 대해선 차례차례 서평한 바 있으니 문화이론 입문서 가운데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것들은 대체로 읽은 셈이다. 그러니 혹자는 그렇게 묻고 싶을 지도 모르겠다. 어느 걸 읽는 것이 가장 좋으냔 의문을 품을 법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무엇을 읽든 별상관없을 듯 싶다. 대체로 4종의 책이 각각의 장점과 단점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김정은의 "대중문화 읽기와 비평적 글쓰기"는 난이도면에선 가장 쉽지만 쉬운 만큼 간추린 부분이 많기 때문에 다른 책들의 도움을 얻어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물론,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루카치, 벤야민, 하우저 등의 다른 저작들을 읽은 분이라면 도리어 그것이 굉장한 장점일 수 있다). 원용진의 "대중문화의 패러다임"은 앞서 김정은의 책에 비해 심도 있는 접근을 꾀하고, 국내 상황을 함께 다룬다는 점이 장점이다. 그런데 문제는 번역문보다 문장이 난삽하고, 어떤 예시는 적절치 않아 보인다는 단점을 지닌다. 그에 비해 김창남의 "대중문화의 이해"는 문장이나 기타 한국적 상황들을 다룬 점에서는 원용진의 책보다 뛰어나지만, 해외이론 소개 편에서 생략된 부분이 많다는 단점을 가진다. 이에 비해 존 스토리의 "문화연구와 문화이론"은 비록 부분적으로 문장이 어색한 부분은 있지만, 원용진의 것보다 어떤 면에선 정리도 잘 되어 있고, 문장도 상대적으로 덜 난삽하다. 게다가 한국적 상황이나 예시를 고려할 까닭이 없기 때문에 순전히 서구의 문화이론을 이론적으로 접근하려는 목적으로 읽기엔 가장 좋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4종의 책을 모두 읽을 까닭은 없지만, 어느 한 종만 읽기 보다는 2종 정도를 서로 대비해가며 읽는 것이 좋으리란 생각이다.

 

이 책의 원제가  "An Introductory Guide to Cultural Theory and Popular Culture"인데 영어명이 의미하는 바는 '대중(긍정적 내지는 중립적인 의미에서의 대중)문화와 문화연구에 대한 예비(입문)단계의 가이드'이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문화연구와 문화이론에 대한 입문서'란 뜻이다. 그런 까닭에서일까 이 책의 목차는 그대로 문화연구와 문화이론을 공부하는데 가장 적절한 커리큘럼이며, 다른 입문서들도 그 순서나 내용 배치면에서 존 스토리의 "문화연구와 문화이론"의 배치와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한 번 살펴보도록 하자.

 

우선 "1장 대중문화란 무엇인가"에서는 대중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개념들을 정의하고 설명한다. 대중문화는 "대중+문화"가 합쳐진 말이다. 대중문화란 무엇인가 알기 위해선 먼저 문화가 무엇인가 알아야 한다. 저자는 "문화"를 설명하기 위해 문화비평가 레이먼드 윌리엄즈의 정의로부터 출발한다. 윌리엄즌는 문화를 넓은 의미에서 세 가지로 정의하고 있다. "1. 문화는 지적, 정신적, 심미적인 계발의 일반적인 과정, 2. 한 인간이나 시대 또는 집단의 특정 생활 방식, 3. 지적인 작품이나 실천 행위, 특히 예술적인 활동을 일컫는 용어로 사용될 수 있다고 말한다. 존 스토리는 대중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 가운데 하나로 이데올로기를 지목하고, 이데올로기의 다양한 정의와 쓰임새를 소개한다. 우리는 대중문화라는 단일한 용어로 표기하지만 영어 표기에서 대중문화는 mass와 popular로 구분된다(이에 대해선 전에 다른 서평에서 소개한 바가 있다).

 

이어 "2장 문화와 문명의 전통"에서는 우리에게도 뿌리깊이 고정되어 있는 문화 관념인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충동을 이야기한다. 19세기 이후 정치적 자유주의, 산업화와 도시화로부터 비롯된 대중의 출현은 그동안 고급문화의 생산자이자 주된 소비자였던 사회의 상층계급을 크게 긴장시킨다. 산업화와 도시화의 결과 출현한 여러 미디어들(당시엔 주로 신문, 잡지였으나 점차 대중교육의 확대, 라디오, TV의 출현 등)로 인해 소위 대중들이 즐기고 향유하는 문화가 생겨났다. 이에 대해 매튜 아놀드 등을 비롯한 당시의 지식인들은 대중문화가 문화 전반에 걸쳐 치명적인 해악을 끼친다고 보았고, 이를 분리하거나 대중들을 계몽하여 고급 문화의 향유자로 변화시킬 것을 주장한다. 이런 논쟁은 매튜 아놀드 이후 리비스주의로 넘어가면서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는 전세계로 널리 전파된다. 이를 통해 문화를 고급문화와 대중(저급)문화로 구분하는 이분법이 생겨난다. 그런데 과연 문화의 고급과 저급을 구분하는데 대중이란 잣대가 적당한 것일까?
  
이 지점에서 존 스토리는 영국 출신의 학자인 까닭일까? 우선적으로 문화연구의 여러 경향들 가운데 우선적으로 영국의 버밍엄대학 현대문화연구센터의 학자들이 일군 "문화주의"를 3장으로 끌어낸다. 마르크스주의를 먼저 끄집어낸 다른 책들과는 약간 다른 점인데, 헤게모니 이론을 마르크스주의에 포함시킨다는 점에서 보자면 그의 이런 구분은 나름대로 적당해 보인다. 문화주의는 영국 피지배계급의 역사적 경험을 정리하면서 전개된다.1950년대 말엽부터 주로 영국의 이론가들(Richard Hoggart, Edward. P. Thompson, Raymond Williams, Stuart Hall)에서 부각되기 시작한(영국의 문화 연구는 전후 영국의 특수한 상황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영국은 자본주의적 산업 생산 양식의 부활, 복지 정책의 수립, 그리고 동구 공산주의에 대항하는 서구 세력의 결집 등으로 인해 변모하는 영국적 상황의 반영이기도 하다. 전쟁 전의 영국과는 단절된 듯한 변화들, 현대화 및 미국화된 대중문화, 노동계급의 생활 조건이나 이데올로기가 중류계급과 차별성이 없어지면서) 연구 전통이다. 문화주의의 핵심적인 전통은 문화의 수동적 소비보다 능동적 생산, 즉 인간의 실천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구조주의와 대립되는 특징을 가진다.

 

사회변혁의 주체인 노동계급이 즐기는 대중문화가 노동계급 형성 및 유지에 어떤 역할을 하는 가를 논의하려 했다. 문화주의에 속하는 이들은 대중문화의 주체인 대중을 새롭게 해석하여, 대중이 수동적이고 주어진 상황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로 파악하는 것에 반대했다. 문화주의자들이 말하는 피지배계급은 단순히 계급적인 축(항상 노동계급 이상의 의미를 지님)으로만 설명될 수 없는 것이었다. 문화라는 영역은 물질적 토대에서 상대적인 독립성을 누릴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물질적 토대에 개입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문화주의는 구조보다는 인간에, 이데올로기보다는 인간의 경험에, 지배계급의 전략보다는 피지배계급의 전술에 관심을 갖는다. 문화주의는 대중이 문화적 실천을 통해 자신들의 계급적 영역을 구축해가는 능동적인 모습을 찾으려 시도한다.

 

4장에서는 "구조주의와 후기구조주의"를 함께 다루고 있다. 구조주의는 이론이면서 동시에 방법론이기도 한 학문 분야를 가리키는 말이다. 구조주의는 소쉬르의 언어학적 규칙과 개념을 기초로 다양한 문화분석에 적용되어 많은 성과를 낳았으며, 현재까지도 문화분석 툴로써 여러 비판들이 있으나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방법이다. 구조주의의 이론적 경향을 보여주는 특성은 한 마디로 ‘구조(structure)’라는 말 자체에 들어있다고 할 수 있다. 구조란 겉으로 드러나는 표피적 현상의 밑바닥에 존재하면서 그 표피적 현상을 가능하게 하는 체계라 할 수 있다. 어떤 것이든 현상적으로 드러나는 사건이나 행위에는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심층적인 원리나 체계가 존재하는데, 그것이 바로 구조이다.

 

구조주의자들은 어떤 문화적 텍스트나 행위가 그 자체로 본질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 텍스트나 행위의 내부적 혹은 외부적 요소들이 맺고 있는 관계(즉 구조)에 의해 그 의미가 생성된다고 보았다. 이를 가장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문화현상이 바로 언어다. 서로 다른 언어의 선택, 서로 다른 방식의 언어 배열은 서로 다른 현실을 만들어낸다. 이런 맥락에서 구조주의자들은 ‘언어가 현실을 구성한다’고 주장한다.(구조주의적 입장에서의 문화 분석 1) 문화적 표상이 특정 방식으로 기능하는 것을 가능케 하는 사회의 구조를 설명하고 2) 문화적 표상이 의미를 내는 방식 - 의미 체계 -를 분석하고, 3) 그것의 이데올로기적 영향, 즉 주체 형성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다.) 이 책에서는 소쉬르, 레비 스트로스와 롤랑 바르트를 소개하면서 구조주의 이론이 어떻게 미국 서부극 장르에 숨겨진 신화를 드러내는가 실례(윌 라이트)를 통해 보여준다.

 

5장 "마르크스주의"에서는 고전적 의미에서의 마르크스주의가 문화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가에 대해 설명한다. 사실 마르크스 자신은 문화론이라고 명확하게 내세운 하나의 이론 체계를 만들어내지 않았다. 그러므로정확히 말하면 마르크스주의 문화론이라는 것은 없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반대로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을 받지 않은 문화이론도 없다. 마르크스는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있는 진술을 남기고 있는데, “토대-상부구조의 문제(base and superstructure)”의 문제 - 사회를 이루는 두 요소, 즉 경제적 기초(토대)와 사회적 의식의 모든 형태들인 상부구조의 관계를 어떻게 보는가의 문제로 마르크스주의 문화론에 있어 문화에 대한 해석이 달라진다. 문제의 핵심은 토대가 상부구조를 결정(determination)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에 있다.

 

경제결정론(기계론적 결정론, 속류 마르크스주의) - 상부구조의 영역에 속하는 문화는 아무런 자율성을 지니지 못하며 단지 토대가 되는 경제구조의 단순한 반영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는 반영이론(reflection theory), 모든 문화는 그것을 생산한 사회의 경제구조의 단순한 반영일 뿐이다. 대중문화의 의미는 단지 그것을 생산한 경제구조에 의해 이미 결정되어 있다. 예술성보다 구호성을 강조했던 프롤렛쿨트(proletkult)같은 교조적인 예술론도 이런 기계적 결정론의 맥락에 있다.

 

이데올로기는 일정한 ‘허위의식’을 조장하여 현실을 왜곡하고 은폐하는 기능; 권력을 지닌 계급이 자신의 이익을 정당화하기 위해 현실을 포장하는 이념이다. 지배계급에 의해서 생산되는 대중문화의 내용은 지배계급의 지배를 용이하게 하고 대중들이 계급적 갈등과 불평을 느끼지 못하는 허위의식을 갖게 된다. 사회변동의 주체가 되어야 할 노동계급이 허위의식으로 가득 찬 대중문화를 즐기게 된다. 계급문화론, 이데올로기는 계급의식이 생겨나지 못하게 막는 역할과 지배방식을 은폐하는 역할을 한다. 문화적 텍스트(종교, 법, 도덕, 관습, 책 등)는 이데올로기의 무의식적 반영물이다.

 

여기에 루카치를 비판적으로 계승한 프랑크푸르트 학파, 알튀세르의 주요 개념들, 그리고 문화주의와 구조주의, 마르크스주의를 한 데 아우르고, 아우를 수 있는(개인적인 생각이다)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을 두루 설명하고 있다. 사실 6장에서 다루는 "페미니즘"은 구조주의 직후 내지는 7장 포스트모더니즘 이후에 나왔어야 적당할 수 있을 듯 싶다. 페미니즘의 정치학은 몰라도 페미니즘 문화학은 확실히 이들로부터 영향받은 바가 크다. 페미니즘은 대중문화 속에 숨겨진 가부장제 이데올로기 구조를 분석해낸다. 8장은 문화연구의 전체적인 부분을 다룬다. 여러 이론들엔 그 나름의 장단점이 있으며, 모든 이론이 그러하듯 완벽한 분석틀이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떤 의미에서는 대중문화를 옹호하려는 측과 대중문화를 비난하려는 측 사이에 벌어지는 오랜 논쟁의 결과인 듯 싶다. 문화이론를 어떻게 바라보든 문제는 한 가지다. 대중문화는 지배 이데올로기와 피지배 계급 사이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공방전의 장이며, 이 싸움은 계급 혹은 문화적 이질성이 존재하는 한 계속될 거란 사실이다. 누가 이길 것인가? 글쎄, 그건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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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연구(하룻밤의지식여행12) - 지아우딘사르다르 | 이영아 옮김 | 김영사(2002)


나는 이런 식의 도서에 익숙한 편이다. 그러니까 80년대 말엽에서 90년대 초엽 사이 나름대로 인기를 끌었던 리우스의 만화책들을 말하는 것이다. 당시엔 사회과학 서적을 중심으로 출판하던 "오월"에서 "리우스"(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멕시코의 좌파 만화가)가 이런 식의 작업들을 통해 일련의 만화 책들을 시리즈로 간행했다. 사회과학 이론의 빡빡함에 미리부터 질려버린 까닭으로, 혹은 좀더 쉽게 입문하기 위한 방편에서 이 책을 선택했던 이들에겐 상당한 도움을 준 책이다. 리우스는 "쿠바혁명과 카스트로", "레닌", "체 게바라" 등 혁명가들의 생애와 사상, 그들의 이론을 나름대로 잘 요약해주었다.

김영사에서 펴내고 있는
"하룻밤의 지식여행" 시리즈 중 한 권을 읽었다. 지아우딘 사르다르의 "문화연구(cultural studies)"가 그것인데, 얼마전 누군가가 이 책은 아니고 이 책의 한 시리즈 중 노암 촘스키 편에 대해 썼던 리뷰도 있었지만, 이 책 혹은 이 시리즈 중 어느 책이든 선택하는 사람이라면 머리 속에서 "하룻밤"이란 글자를 빨리 삭제해야 한다. 다시 말해 "하룻밤"만에 이 시리즈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을 다 알게 된다거나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란 말이다. 이 시리즈가 다루고 있는 면면을 살펴보면 더 빨리 이해될 수 있다.

1권에서
"노암 촘스키", 그리고 연이어 "양자론, 수학, 진화심리학, 철학, 사회학, 심리학, 플라톤, 포스트페미니즘(헉, 페미니즘도 어려운데 거기에 붙였다 하면 뭐든 세 배는 더 어렵게 만드는 "포스트"까지 붙어 있다. 나는 "포스트"자가 붙은 건 심지어 시리얼 메이커까지도 싫어지더라구.), 이슬람, 문화연구, 기호학, 프로이트, 라캉, 융, 호킹, 정신분석, 데리다" 그리고 앞으로 "푸코" 도 낸다고 한다. 앞서 포스트페미니즘에 대해 엄살 아닌 엄살을 부리긴 했지만, 한 가지 개념도 이해하기 어려운데 그 앞에 접두사가 붙는 학문은 더욱 어렵다. 예를 들어 아동문학이 그냥 문학보다 어려운 까닭은 그 앞에 아동이 붙기 때문이다. 아동을 알아야 하고, 문학을 알아야 하는 것이니 허투루하면 모를까, 진짜 아동문학을 잘 하기란 성인을 대상으로 한 글쓰기보다 배는 어렵다고 보아야 한다. 

하기사 무엇이든 제대로 하기란 참 어려운 법이다. 그런데 그것을
"하룻밤의 지식여행"이란 기획으로 정말 하룻밤만에 끝낼 수 있을까? 이런 걸 뭐라고 해야 하나? 사기라고 해야 할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제대로만 해준다면 그래서 그 여러 개념들이 대관절 어떤 맥락에서 다루어지고 있는지만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면, 나름의 성과를 거두는 기획이라 할 수 있다. 즉, 하룻밤이란 말만 지워버리고 시작한다면 나름대로 도움이 된다는 뜻이다. 결론삼아 말하자면 지아우딘 샤르다르의 "문화연구"는 그런 점에서 나름대로 도움이 된 책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문화""영화"만큼이나 대중적인 화두이다. 문화에 대해 한 두 마디쯤 할 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시인이 어느날 갑자기 문화평론가로 등장해서 TV에서 그럴듯한 해설을 읊조리는 광경이 더이상 낯설지 않다. 문화는 방금나온 따끈한 빵처럼 말랑거려서 누구라도 손쉽게 조물딱거리면 만들어 낼 수 있는 학문 분야처럼 보인다. 

거기에 대중문화란 말이 붙으면 더 쉽게 느껴진다.
"대중문화 = 저급문화, 상업문화"란 등식이 존재하다보니 누구나 쉽게 즐기고, 누구나 쉽게 빠져들 수 있으니 그걸 공부하는 일도 쉬우리라 생각하게 된다. 문화연구의 함정이 거기에 있다. 문화는 도처에 있고, 누구나 즐기는 것이기에 어디에도 없고, 누구도 해석하기 어렵다(반대로 누구나 해석할 수 있기도 하다). 누구나 잘 아는 듯 여기지만 막상 말로 그것을 정의하고, 그 안에 숨겨진 여러 함의들을 찾아 해석해내고, 연구하는 범주 안으로 들어가면 미노타우르스의 미로처럼 얽히고 섥?것이 (대중)문화란 것을 금방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문화연구의 이론(가)들을 살펴보자.

맨처음 등장하는 이름은 미국의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 여사, 그리고 문화연구의 창시자로 손 꼽히는 레이먼드 윌리엄스, 사회학자 클리포드 기어츠다. 문화연구는 사회과학, 인문학, 예술의 여러 분야에서 이론과 방법론들을 빌려와서 제 것처럼 사용하고 있다. 즉, 대충 몰라도 넘어갈 수 있는가하면 제대로 걸리면
(혹은 제대로 하려면 이 모든 것들을 손대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는 거다) 금방 밑천이 드러나게 되어 있다. 소쉬르, 로만 야곱슨, 롤랑 바르트로 이어지는 기호학, 키플링, 포스터와 같은 문학, E.P.톰슨 같은 역사, 마르크스와 프로이트와 같은 20세기 메타 이론에서 다시 이들을 뿌리로 하여 등장하는 알튀세르, 그람시, 리오타르, 부르디외에서 스피박에 이르는 그 이름을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CPU과열현상을 빚는 인물들이 즐비하다.

그러니 이 책을 하룻밤만에 읽고 끝낸다는 건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앞서도 말한 것처럼 이 책도 나름대로 유의미한 측면이 있다. 그것은 짤막한 요점 정리를 통해 문화연구의 다종다양한 분야의 개념들과 연구자들, 그들이 문화연구란 거대한 테마 속에서 어떤 역할과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를 파악하는데는 아주 괜찮은 지도책이란 사실이다. 지도에는 온갖 기호들로 거리와 위치, 통과해야할 도로의 번호들이 명시되어 있다. 물론 지도책 없이 헤매면서 찾아가도 목적지에 도달한다는 목적은 이룰 수 있다. 미로를 헤매는 과정에서 더많은 것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테세우스가 미로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은 아리아드네의 가느다란 실 한 가닥이었듯, 비록 이 책이 건네주는 실오라기는 가늘고, 언제라도 끊어질 수 있는 것이지만 이용하기에 따라서는 문화연구의 미로를 헤매는데 꽤 믿을 만한 나침반 아니, 그 지도 상에 아로 새겨진 기호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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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그리스로마 신화사전』 - M.그랜트 | 김진욱 옮김 | 범우사


“로고스와 뮈토스는 말의 양면이며, 양자 다같이 정신생활의 기본적 기능이다. 논증으로서의 로고스는 올바르고 논리에 닿을 경우는 진실이지만 뭔가 속임수가 있을 경우는 허위가 된다. 그러나 뮈토스는 오로지 뮈토스 외에 아무 목적도 없다.” - 피에르 그리말

 


▶ 그리스로마신화의 계보도

사실 신화가 우리에게 중요한 무엇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최소한 우리 국내의 문화사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극히 최근 십여년의 일이다. 80년대말 90년대 초엽까지 우리는 민주화 문제에 전념하고 있던 상황인지라 신화 이야기는 어딘가 멀고 먼 나라의 이야기쯤으로 치부될 수밖에 없었고, 그저 교양의 일부를 이루기 위해 읽어두어야 할 무엇으로 간주되었다. 내가 정확히 그 문맥을 파악하고 있는 것인지 잘 알 수는 없지만 최근 우리 사회에서 신화가 주목받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역사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것이고(이 말은 근대 이성의 시대가 저문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른 하나는 구조주의, 후기구조주의,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차원에서 신화가 중요한 개념으로 다뤄지고 있는 탓이다.

 

요 얼마동안 깜짝 독서로 신화 관련 서적들을 집중적으로 읽었는데, 국내 신화 관련 서적들을 모두 통달했다는 뜻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몇 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 한 가지는 이윤기 선생에 대한 불만이고, 다른 한 가지는 그럼에도 신화에 관한 책(혹은 기획)은 앞으로 무궁무진하겠단 생각이다. 실제로도 최근 십여년 동안 신화에 대한 출판 종수는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는 추세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그럼에도 우리의 신화 읽기는 대중의 트렌드에 그칠지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출판종수는 많지만 적절히 커리큘럼화된 신화 읽기의 틀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신화가 문화적으로 재조명 받게 된데에는 인류학과 언어학의 깊은 영향을 받은 구조주의의 출현과 관련이 있다. 문명화되지 않은 원시사회를 방문한 초기 인류학자들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데, 문명화되지 않은 원시사회가 동물, 사람, 식물 그리고 각종 사물들을 분류하는 정교한 체계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쉬르의 "시니피앙과 시니피에, 랑그와 빠롤"이 사회학자 뒤르켐이 간파한 사회문화적 생활 속에 구조화될 수 있는 광범위한 틀로써 "집단적 표상"과 결합하면서 구조주의의 근간을 이루었다. 레비스트로스는 원시사회의 신화는 '그 사회가 지니고 있는 해결되지 않는 모순을 상상적으로 해결하려 하는 이야기'를 의미한다고 했다. 신화가 의미있는 이야기가 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체제를 갖추어야 하는데, 그 체제 혹은 이야기체를 우리는 내러티브(narrtive)라 부른다.

 

신화를 분석하는 이들은 신화의 내러티브(서사) 구조를 분석함으로써 신화가 담고 있는 의미들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려 한다. 롤랑 바르트는 소쉬르의 기표/기의가 합쳐져 의미를 만들어 내는 방식을 1차적 의미화 과정으로 보고 이를 '외연'이라 불렀다. '외연'이 표상하는 것, 예로 들어 미모의 여배우 '***'라 했을 때, 이 배우의 이름을 듣거나 보면서 '참 예쁘다. 얼굴에 품위가 있어 보인다. 얼마전 재벌 2세와 이혼했다. 나이가 제법 들었는데도 여전히 젊어 보인다' 란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그것을 의미의 2차화를 '내포'라 한다. 이를 CF 광고나 영화와 같이 나름의 내러티브 구조를 갖춘 분야에 적용시켜서 그 모델이 권하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입하도록 권하는 것을 의미의 3차화 과정, 즉 사회적으로 널리 통용되는 믿음이나 가치, 태도 등을 '신화'라 불렀다. 그런 점에서 신화는 지배 이데올로기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즉, 우리는 신화를 읽고 분석함으로써 우리 안에 오랜 세월 깃들어 있던 인간의 본성과 아직 문명이 썩트기 전 우리 선조들이 살았던 시대의 정신을 이해할 수 있다.

 

흐흐, 하지만 뭐 우리야 이런 머리 복잡한 내용까지 알 필요는 없으리라. 범우사는 내 개인적으로 인연이 좀 있다. 중고생 시절 범우사의 독서회원으로 가입해서 인문학 분야의 염가 문고판 시리즈인 사루비아 문고를 비롯한 꽤 여러 종의 책들을 우편주문으로 받아보곤 했다. 특히 인문학 분야의 저서들 가운데 꼭 범우사 것이 결정판이라고 할 수는 없어도, 범우사가 앞서 출판했다고 할 수 있는 고전들은 꽤 여러 종된다. 토마스 불핀치의 "그리스 로마 신화" 도 범우사 고전선 시리즈 가운데 하나로 나 역시 가지고 있는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의 뒤에 일종의 해설로 글을 쓴 사람이 프랑스의 신화학자 "피에르 그리말"이었다. 그런 범우사에서 M. 그랜트, J.헤이즐 공저의 "그리스 로마 신화 사전"을 펴냈다. 이 역시 당시로서는 꽤 발빠르게 펴낸 책이라 할 수 있다. 양장본에 금박지에 인쇄한 겉표지를 씌운 매우 고급스러운 장정의 책이었는데, 사전이란 특색에 걸맞도록 동아대백과 전집류에 있을 법한 튼튼한 박스 포장을 별도로 만든 책이었다. 지금의 거의 4만원에 가깝지만 처음 나왔을 때만해도 정가가 3만원이었다. 

 

그런데 열린책들에서 "피에르 그리말"의 "그리스로마신화사전"을 펴냈다. 어느 사전이 더 좋은 지 말하긴 현재 내 입장에선 다소 곤란하다. 열린책들의 "그리스로마신화사전"은 아직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른 사전 같으면 최신판이 당연히 더 좋은 것이겠지만, 이 사전은 이미 오래전에 소멸되어버린 신들에 대한 사전이므로, 최신판이라고 해서 갑자기 출현한 새로운 신의 명단이 들어있을리도 없다. 이럴 경우엔 어느 사전의 표제어가 더 많은가, 설명은 얼마나 충실하게 해두었는가? 그리스.로마신화의 수많은 이설들, 동명이인들은 어떻게 분류해놓았는가가 관건이다. 일단 내가 읽은 범우사판 "그리스로마신화" 사전은 나름대로 합격점을 받을 만하다. 당시엔 사전치고 지질이 좀 떨어진단 생각을 했는데, 최신판에선 얼마나 개선했는지 모르겠다. "열린책들"의 "그리스로마신화사전"도 찾아보기만 106페이지에 이른다고 자랑하니 무엇을 보든 상관없겠다.

 

다만, 내가 재미있는 건, 범우사판 "피에르 그리말"의 해설을 나름대로 잘 읽었다는 거다. 어쨌든 피에르 그리말을 먼저 안 건 범우사일 텐데, 그의 책은 "열린책들"에서 나왔다는 게 나의 작은 독서 취미로는 상당히 재미있는 아이러니다. 아참, 신화사전을 한 권쯤 가지고 있는 게 신화 책을 읽어 나가기 위해 반드시까지는 아니어도 상당히 필요하단 말씀을 드렸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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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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