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평택이 의미하는 것



<수취인 불명>과 평택 미군기지 캠프 험프리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인 2001년 6월 김기덕 감독의 영화 <수취인불명(Address Unknown)>은 제58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공식경쟁부문에 초청되었다. 이 영화는 1980년대 말 기지촌을 배경으로 주한 미군과 ‘양공주’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 창국(양동근)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수취인불명>의 첫 장면은 미군기지 맞은편의 조용하고 아름다운 마을에 미국 국가가 울려 퍼지고, 미군 공군기지에서 이착륙하는 비행기 소음이 마을의 평온을 깨뜨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마을 입구에는 빨간 버스가 있고, 그곳 편지함에는 수취인불명 도장이 선명하게 찍힌 편지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어디에 있을지 모를 사랑을 찾아 편지를 보내지만 아무도 받아주지 않는다. 그 마을엔 아무도 받아주지 않는 사랑을 지닌 사람들이 살고 있다.

베니스영화제에 초청된 김기덕 감독은 외신기자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이탈리아 현지의 기자회견에서 “한국 영화를 국제무대에 알릴 수 있어 기쁘다.”면서 “영화 속에서 표현된 주한미군 문제 등과 같이 한국의 역사적 상황을 유럽에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런 영화를 만들게 된 배경을 묻는 외신기자들의 질문에 김기덕 감독은 “독일을 여행할 때, 뮌헨 역에서 한 남자가 당신은 ‘북한 사람이냐, 남한 사람이냐'라고 물어보길래 남한 사람이라고 대답을 하니까 '오 아메리카'라고 말하더군요. 그때 한국이란 나라가 미국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생각을 했고, 많은 유럽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답했다.

영화가 국제영화제에 초빙되어 치른 유명세에 비해 <수취인불명>의 실제 촬영지가 평택 미군기지 ‘K-6(캠프 험프리)'가 있는 평택 동창리 일대였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촬영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대추리, 도두리, 황새울 들녘이 있고, 대추리 가는 길녘 작은 능선 뒷편은 모두 미군기지로 현재 166만 평 규모의 부지를 사용하고 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곳은 현재 아파치 공격용 헬기부대와 기갑연대, 항공기동여단, 도감청부대를 비롯해 위성지구국, 미군 범죄자 구치소까지 갖추고 있다. 유사시엔 인근 평택 신항만 시설과 오산 미 공군 비행장 등을 이용할 수 있어 그 자체로도 이미 대포도시의 위용을 갖춘 정예 요새이다.

한반도 전쟁억제 주장과 선제공격전략에 기반한 전략적 유연성

정부와 국방부는 국방부 홈페이지를 통해 주한미군재배치 사업과 그에 따른 평택 미군기지 확장이전문제의 당위성을 크게 “한반도 전쟁억제”와 “국토의 균형발전”이란 두 가지로 홍보해왔다. 일부만 요약해보면 현재 서울 도심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기존의 미군 기지들을 통·폐합해 평택기지를 450만평으로 확장하고, 춘천의 캠프페이지를 비롯한 전국의 미 2사단 소속 기지를 평택 한 곳으로 집중시킨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오는 2008년까지 총16개 기지를 환수하고 춘천의 캠프 페이지 등 3개 기지의 병력과 시설을 분산 배치해 모두 7,000억 원의 비용절감 효과를 거둔다고 주장한다. 정부는 2006년 8월 시행예정인 평택지원특별법에 따라 기지이전과 평택기지 확장조성비용은 전국에 분포한 미군 기지를 매각하여 충당하므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국방부는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현재 미군기지 이전사업을 반대하고 있는 단체들도 당시에는 용산 미군기지의 이전을 적극 요구하였는데, 이제 와서 용산 미군기지의 평택이전을 반대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인 행동이며, 결국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며 볼멘소리를 한다. 지금까지 환경단체를 비롯한 여러 시민단체들이 앞장서서 전국 각지의 비어 있는 미군 기지를 반환하라고 요구해온 것은 사실이다.

어째서 이들은 평택 미군기지 확장이전에 반대하는 것일까? 그 사실을 알기 위해 우리는 정부와 국방부가 주장하는 확장이전의 당위성들을 꼼꼼하게 따져보아야 한다. 과연 평택 미군기지 확장이전은 전쟁을 억제하고, 한반도의 국토균형발전에 이바지하는가?

지금껏 어떤 항의에도 꿈쩍 않던 주한미군이 갑자기 평택으로 집결하는 까닭이 미국의 새로운 군사전략, 주한미군의 공세적 역할변화(전략적 유연성)를 추구하기 위한 것이란 사실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미 널리 인정되고 있다. 그러나 얼마 전 발표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88.8%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의 내용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금까지 미국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국의 안보를 위해 적극적인 선제공격(preventive war)을 감행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고, 그것이 전략적 유연성의 핵심적인 내용이다. 지금까지 정부는 불안해하는 국민들에게 용산 미군기지의 평택 이전이나 주한미군 재배치(GPR)가 주한미군의 역할변화(전략적 유연성)와 관계없다고 주장해왔지만, 지난 1월 반기문 장관과 미국의 라이스 장관은 워싱턴에서 공동성명을 통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주한미군은 평택기지를 확장해 전 세계 분쟁에 개입하기 위한 거점기지(HUB)로 사용할 계획이다. 미국의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지난 2003년 3월 대북방어는 한국이 부담하고, 미군이 맡고 있던 한국 내 10대 군사임무도 2008년까지 한국군에 이양된다고 밝힌 바 있다. 즉, 앞으로 주둔할 미군은 더 이상 대북전쟁 억지력이 아니라 미국의 세계전략을 추진하고 강제하는 선제공격도 가능한 군사력이다.

국토의 균형발전과 지속불가능한 환경오염

미국은 전세계 50여 개국에 725개의 기지(비밀기지를 제외하고)를 가지고 있다. 50여 개 나라들 가운데 기지를 무기한으로 임대해주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토지 소유자들에게는 기한을 정하여 임대하도록 하고, 임대비용부터 토지용도까지 공개적인 심리절차를 거쳐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실제로도 기지 내 개인 토지를 반환받아 양계장으로 사용하거나 미술관을 개설한 경우도 있었다. 지금까지 정부는 용산기지 이전은 우리가 먼저 요구하였으므로 그 비용을 우리가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미국은 우리의 요구에 앞서 이미 변화된 군사전략과 비용문제로 인해 세계 각지의 미군기지를 조정할 필요성(4개년 국방개혁검토QDR, 2001년 9월)을 제기해왔다. 정부는 반환되는 기지들을 매각해 이전비용을 마련하겠다지만, 실제로 춘천 캠프페이지의 경우 지난해 3월 폐쇄된 이후 1년이 넘도록 소유권, 부지 활용권은 고사하고 부지매입비용 산출작업조차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국방부는 이 땅을 시민들에게 되돌려주기보다는 자신들이 사용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지난 2000년 주한미군에 의한 한강 독극물(포르말린) 방류 사건은 우리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고, 미군측은 재발방지를 약속했다. 그러나 최근 주한 미군이 사용 중인 기지 22곳에서 실시한 토양조사 결과 암을 유발시키는 벤젠 등 유독성화학물질인 BTEX(벤젠, 톨루엔, 에틸벤젠, 크실렌)가 기준치의 1,830배가 검출되었다는 기사가 있었다. 그런데도 버웰 벨 주한미군사령관은 “SOFA는 미국에 토지가 미군에게 공여된 당시의 상태대로 복원하도록 요구하지도 않는다.”며 그동안 한국과 미국이 진척시켜 온 환경관련합의를 모두 깨뜨리는 발언을 했다. 더 나아가 주한미군은 이 문제가 “한미동맹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등 공개적인 입장 표명을 통해 우리 정부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 만약 미국의 의도대로 된다면 기지이전비용은 고사하고, 앞으로 반환받게 될 기지의 환경오염을 정화하는 데만도 천문학적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주한미군은 정말 450만 평의 땅이 필요한가? 가끔 여의도 면적의 몇 배라는 표현을 볼 수 있는데, 여의도 총면적 840만㎡를 평으로 환산해보면 254만 평이다. 영등포구 여의도동에는 2006년 4월말 기준으로 31,126명(11,146세대)이 거주하고 있다. 여의도는 국회의사당을 비롯해 오피스 빌딩들이 밀집해 있어 유동인구가 거주 인구보다 훨씬 많다. 그렇다면 2008년까지 평택 미군 기지에 머물게 될 주한미군의 수는 얼마일까? 2008년까지 주한미군은 24,500명으로 감축되고,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은 추가감군도 가능하다고 밝히고 있다. 고작 24,500명의 주한 미군을 위해 여의도 면적 2배의 땅이 필요한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평택 미군기지 확장은 재검토되어야 한다. 용산기지이전협정이나 한-미 연합토지관리계획(LPP)협정 개정안의 “주한미군의 시설과 구역의 소요에 현저한 변화가 발생할 경우”에 해당하므로 재협상의 정당성도 있다. 문제는 정부의 의지다.

아무도 받지 않는 편지, 아무도 받지 않는 사랑

3년이 넘는 투쟁 과정 속에서 한·미 두 나라 정부는 단 한 차례도 국민들에게 이 문제를 투명하게 공개하여 논의한 적이 없었다. 평택주민들의 정당한 요구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계엄령을 방불케 하는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고, 앞으로는 대화를 말하지만 뒤로는 김지태 대추리 이장 검거에서도 알 수 있듯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정부는 단지 특별법을 만들고, 땅을 뺏고, 농민들을 감옥에 가두고, 정부의 말을 듣지 않으면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감옥에 가두겠다고 협박하고 있을 뿐이다. 정부의 이런 태도는 우리가 과연 주권국가에 살고 있는지를 의심하게 만든다.

지금 평택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미 많은 이들이 평택 미군기지 확장 이전이 지닌 문제점을 알고 있으며 평택주민들이 벌이는 투쟁의 의미를 알고 있다. 그러나 한미동맹이란 미명아래 어쩔 수 없는 문제로 치부하고, 못 본 척 외면하거나 평택 주민들에 대해 동정을 보내지만 지역 문제에 제3자가 끼어들어 못마땅하다는 식으로 폄훼한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지금 우리들의 침묵은 스스로의 생존과 평화를 방기하고, 평택 주민들을 타자(他者)화한다. 지금 평택 주민들은 우리에게 편지를 보내고 있다. 한반도, 같은 땅에 살고 있지만 아무도 받아주지 않는 편지, 아무도 받아주지 않는 이 땅의 사랑을 담아 그들은 오늘도 편지를 띄운다. 그 편지의 겉봉에 적힌 주소는 평화를 바라는 우리들의 양심이다. 이 편지를 수취인불명으로 되돌려 보낼 것인가?



출처 : 지금 평택이 의미하는 것 - 월간 <함께 사는 길>, 2006년 7월호(통권157호)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이전버튼 1 이전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