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호학으로 본 스타시스템의 변화

현대의 일상세계에 존재하는 무수한 신화들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드가 모랭은 『스타』(문예출판사)를 통해 스타를 통해 본 대중문화를 읽고 다시 사회를 해석하고자 했다. 그에게 있어 스타란 사회를 해석하는 상징이자 기호였다. 에드가 모랭은 “스타는 확실히 하나의 신화인데, 그것은 단지 몽상(夢想)일 뿐만 아니라, 힘 있는 관념”, 다시 말해 세상을 구축하고, 뒷받침하는 이데올로기적 서사란 뜻이다. 우리는 이 말을 통해 현대 사회에서 스타(Star)가 차지하는 위상과 역할, 기능에 대해 깨달을 수 있다.

신화를 뜻하는 미토스(mythos)란 말은 본래 고대 그리스어에서 온 용어인데 이 말은 ‘서사(敍事)’를 뜻한다. 서사란 작은 의미에서의 ‘이야기(story)’가 아니라 보다 큰 개념으로 언어적인 것들뿐만 아니라 연극, 음악, 춤, 이미지 등 인간이 만들어낸 온갖 기호적 장치들을 통해 구현된 이야기 체계를 의미한다. 신화, 역시 좁은 의미에서는 고대인들의 상상 속에 등장하는 온갖 신들의 이야기를 지칭하는 것이지만 신화의 의미를 확장해 보면 현대인의 삶이 작동한 일상의 어디에나 있는 것이 신화이다.

본래 언어학에서 출발한 기호학(semiology)이 오늘날 현대사회를 해석하는 중요한 학문으로 자리 잡을 수 있게 된 것은 언어를 기호(sign)로 파악했던 소쉬르의 개념을 현대 세계의 신화를 해석하는 도구로 원용하면서부터였다. 프랑스의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는 고대인들이 자신들이 이해하고, 인식하고 있던 세계의 의미를 재현하고 재구성하기 위해 신화를 만들어냈던 것처럼 현대 세계도 이와 같은 목적으로 신화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보았다. 그는 이와 같은 현대의 신화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해석하는 것이 바로 기호학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인간이 달나라에 가는 현대 세계의 어디에 신화가 존재한단 말인가?’란 의문을 품을 수 있을 것이다.

스타가 만들어낸 상징과 메시지

간단한 사례로 한국에 등장한 가장 최근의 신화는 광저우 아시안게임 수영3관왕으로 새로운 ‘신화창조’에 성공한 ‘마린보이 박태환’이 있고, 빙상스포츠의 불모지였던 대한민국 피겨스케이팅의 역사를 새롭게 쓴 ‘빙판의 여신, 김연아’가 있다. 조금 더 멀리 가자면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룩한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들이 있고, 이들을 4강까지 이끈 히딩크 감독 역시 그와 같은 신화의 주인공들이다. 박태환과 김연아, 히딩크 감독의 공통점은 이들이 스포츠 스타란 것이지만 동시에 이들이 우리 사회가 감동할 만한 메시지를 주었고, 그 메시지에 우리가 열렬히 호응했다는 것이다.

기호학에선 기호(신화)의 겉모습을 시니피앙(signifiant, 記表)이라 하고, 기호 안에 담긴 의미(메시지)를 시니피에(signifié, 記意)라 부른다. 시니피앙과 시니피에의 결합을 통해 겉으로 드러나는 일차적인 의미화 과정을 다시 디노테이션(외연, denotation)이라 하고, 이것이 인간의 감정이나 평가에 의해 더해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차적 의미화 과정을 코노테이션(내포 connotation)이라고 한다. 용어들을 접하면 다소 복잡하게 느껴지지만 실상은 매우 간단해서 기호학을 응용하면 박태환, 김연아, 히딩크는 물론 이와 같은 스타들을 통해 현대의 대중들이 무엇에 그토록 열광하고 있으며 대중이 바라고, 희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엿볼 수 있다.

기표의 측면에서 박태환 이전의 한국 수영은 최윤희가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낸 적이 있을 뿐 세계무대에선 존재감을 느낄 수 없는 종목이었다. 어느 날 솜털도 채 가시지 않은 박태환이 올림픽에 출전해 그것도 경쟁이 가장 치열하다는 남자 자유형 종목에서 당당히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미국과 동구권 스타들의 독무대로 여겨졌던 피겨스케이팅 분야에서 한국의 어린 소녀가 만점에 가까운 연기를 선보이며 세계인들을 매료시켰다. 아시아에선 호랑이였지만 세계무대만 나가면 한없이 작아지던 한국 축구 역시 세계적인 스타 한 명 없었지만 세계적인 축구강호들을 잇달아 연파하며 당당히 세계 4강에 올랐다.

이들의 성공은 스포츠 승부의 세계가 주는 드라마틱한 서사로 재구성되면서 한국의 대표적인 신화가 되었다. 아마도 이것이 이들이 신화가 주고 있는 기표이자 외연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신화에 내포된 기의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나아가는 대한민국의 당당함, 세계화 이래 늘 선진강국들 앞에만 서면 왠지 모르게 주눅 들고, 자신이 없었던 우리들에게 이제 우리도 선진국의 반열에 곧 들어설 수 있으며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것이란 자부심을 선사한 것이다. 특히 박태환과 김연아의 경우 주목해야 할 점은 이들이 성공에 이를 때까지 정부나 국가보다 그들 개개인의 노력과 가족의 희생으로 뒷받침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태환과 김연아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아들, 딸이 되고, 백발의 네덜란드인 감독 히딩크는 대한민국 특별시민 희동구가 된다.

우리 시대의 가장 강력한 신화, 스타

대중문화가 지배하는 사회의 가장 강력한 신화는 대중 미디어를 통해 널리 알려지고, 그로 인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스타다. 스타는 그 시대가 동경하는 서사 이데올로기를 몸소 현현(顯現)한 신적 존재이다. 스타와 영웅은 여러 면에서 흡사한데, 둘 사이의 공통점은 시대를 잘 타고 나야 한다는 것이지만 이 말은 사실 스타에겐 시대가 동경할 만한 그 무엇, 실력뿐만 아니라 대중을 감동시킬 서사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그것을 스타성 혹은 스타덤(stardom)이라 부른다. 스타덤이란 스타들이 살아가는 방식(일상뿐만 아니라 성장과정, 사랑과 결혼, 섹스까지 포함하는 삶의 방식)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를 뜻한다. 스타덤은 팬들에 의해 생산되고, 유지되는 데 이와 같은 현상을 팬덤(fandom)이라 부른다. 팬덤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특정한 인물이나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 또는 그러한 문화현상’이다. 팬덤과 스타덤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팬덤을 이해하지 못하면 스타를 이해할 수 없으며 스타를 만들어낼 수 없다.

과거엔 스타와 팬의 구분이 명확했다. 스타가 스타인 이유는 말 그대로 일반인들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잡을 수 없는 하늘의 별이기 때문이었지만 최근엔 이런 구분이 급격하게 무너지고 있다. 일반인은 스타가 되고 싶어 하고, 스타는 일반인이 되고 싶어 한다. 스타와 대중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기호학적 맥락에서 살펴보면 스타의 생산시스템, 이른바 스타시스템에 커다란 변화가 도래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몇 해 전부터 큰 인기를 누리며 TV를 장악하고 있는 것이 이른바 스타들의 ‘쌩얼’을 보여준다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란 것을 잘 알고 있다.




과거 아날로그 미디어 시대의 스타들이 기획사의 스타시스템(star system)에 의해 만들어졌다면 멀티미디어 시대인 오늘날엔 ‘적극적인 팬덤’에 의해 스타가 만들어진다. 적극적인 팬덤이란 사실 마케팅 영역의 프로슈머(prosumer)와 다를 바 없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얼마 전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슈퍼스타K>를 들 수 있다. 이제 대중은 기획사의 스타시스템에 의해 생산된 스타에 만족하지 않고, 그들 스스로가 ‘신화 훔쳐오기’를 통해 새로운 스타와 신화를 생산하는 존재로 변모해가고 있다. 이것은 대중의 변화된 욕망을 반영하고 있는 것인데, 과거 스타는 신적 존재이며, 관객은 스타의 신도들이었지만 이젠 대중들 스스로 신이 되려는 강한 열망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My Prime Club:동양증권 사보, 2011,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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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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