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 오브 워 - 앤드류 니콜 감독, 니콜라스 케이지 외 출연



“전 세계적으로 5억 5천만 정 이상의 화기가 유통되고 있어. 12명 당 한명 꼴이지. 문제는, 나머지 11명을 어떻게 무장시키느냔 거야.”

영화 <로드 오브 워(Lord of War, 2005)>의 첫 장면에서 무기밀매상(Private Gunrunners) 유리 오를로프가 자조적으로 내뱉는 대사다. 그가 딛고 서 있는 아프리카의 대지에는 탄피들이 즐비하고, 007시리즈를 알리는 유명한 오프닝 장면처럼 카메라는 총구가 되어 전투의 현장들을 겨냥한다. 마침내 ‘탕’ 한 방의 총성이 울려 퍼지면서 카메라는 빠른 속도로 달려가 역시 AK-47소총을 들고 있는 아프리카 소년병의 머리를 관통해 버린다. 영화에선 명백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아마도 소년의 머리를 과녁 삼아 관통해버린 탄환은 AK소총에서 발사된 탄환일 확률이 가장 높다.

유리 오를로프는 과거의 통계로 말했는지 모르겠지만 현재 전 세계에는 대략 6억정의 소형화기들이 널리 퍼져 있고, 그 가운데 최소한 7,000만 정에서 1억정이 미하일 티모셰예비치 칼라시니코프가 발명한 AK-47과 그 다양한 바리에이션들이다. 최근에 나는 『인물과 사상』(2009년 8월호)이란 잡지에 <현대의 일상을 창조한 사람들>이란 시리즈를 기획연재물로 싣고 있는데, 그 첫 번째 인물로 선정한 사람이 칼라시니코프였다. 이 시리즈는 우리의 현대 일상을 지배하는 다양한 현상의 근원들을 어떤 한 인물이 만들어 낸 물건이나 시스템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기획되었다. 나는 AK-47소총이란 가볍고, 반동이 적으며,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신뢰할 수 있는 자동소총의 탄생이 현대의 일상에 끼친 영향과 그 배후를 함께 다루고자 했다. 영화 <로드 오브 워>는 무기밀매라는 형태로 세계 각지의 분쟁 지역에 널리 퍼진 불법무기 거래의 현장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고, 나는 이 영화와 영화에 수록된 다큐멘터리에서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오랜 내전을 치르고 있는 한국은 베트남전 이후부터 ‘자주국방(自主國防)’이라는 슬로건 아래 무기산업에 막대한 비용을 투자하고 있다. 그 결과 신흥공업국의 기술 수준으로는 생산이 불가능할 것이라 예측했던 M-16의 자체 생산에 성공한 것을 시작으로 현재 세계 1~2위를 다투는 고성능 자주포 K-9을 비롯해 기본훈련기 KT-1, 고등훈련기 T-50 등을 수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1998년부터 최근 2007년까지 한국의 무기산업 수출총액은 28억 199만 달러로 연평균 약 2억 8천만 달러 수준이었다. 그중에서 항공 34%, 탄약 23%, 함정 15% 등을 차지하고 있다. MB정부의 출범 이전부터 방위산업을 ‘신성장동력산업’으로 육성하자는 움직임은 꾸준히 있었다. 그러나 죽음의 산업이라 할 수 있는 무기 산업에 대한 시민사회의 감시나 경계는, 우리 사회의 다른 분야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대미의존도가 높은 군사 분야에서는 역으로 ‘자주국방’과 ‘안보’논리에 밀리고, 이제는 경제성장논리에 밀려나고 있는 실정이다.

뉴질랜드 출신의 앤드류 니콜(Andrew Niccol) 감독은 DNA조작에 의한 미래사회의 계급차별을 다룬 영화 <가타카(Gattaca, 1997, 미국)>의 감독이자 - 이 영화에 대해서는 내 홈페이지. 바람구두연방의 문화망명지( http://windshoes.new21.org/film-gattaca01.htm )에서 다룬 바 있다 - <트루먼쇼>의 대본을 쓴 작가로 사회성 짙은 영화예술인(cineaste)으로 주목받는 인물이다. 영화 <로드 오브 워>는 그가 대본, 연출을 모두 맡은 영화로 유리 오를로프 역을 맡은 니콜라스 케이지와 <가타카> 이후 두 번째로 호흡은 맞춘 에단 호크가 무기밀매상 오를로프를 뒤쫓는 국가기관의 요원으로 등장해 재미를 더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거래에는 흑막이 있기 마련이지만 무기거래의 내막을 살펴보겠다는 결심을 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 어려움의 근원은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도 있지만 한눈에 살펴볼 수 없을 만큼 복잡하기 때문이다.



니콜 감독 역시 그 어려움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개봉 당시 이 영화는 미국 비평계로부터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받을 만큼 문제작이었지만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흥행에서는 별로 재미를 보지 못했다. 비록 유리 오를로프의 인간적 고뇌를 담은 스토리로 ‘당의정(糖衣錠) 효과’를 얻고자 했으나 <트루먼쇼>와 같은 흡인력과 재미를 동시에 갖춘 휴먼드라마를 기대한 이들은 흡혈귀 무기밀매상에 매력을 느끼지 못했고, 한 바탕 시원한 액션 활극을 기대한 이들에게 이 영화는 너무 복잡하고 지루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영화의 런닝 타임과 동일한 시간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했다고 해도 무기 밀거래의 흑막과 배경, 원인을 살피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 텐데 니콜 감독은 참으로 무모한 도전을 한 셈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은유를 통한 사회현상의 고발이라는 드라마적 재미를 일부 포기하는 대신, 다큐멘터리라면 결코 보지 않았을 사람들에게 무기거래의 진정한 배후가 누구인지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매우 성공적인 영화가 되었고, 그것이 <로드 오브 워>가 지닌 진정한 의미이기도 하다.

1992년,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 이후 독립국가가 된 신생 우크라이나 공화국에서 무려 4조원의 재래식 무기가 사라졌다. 이 사건은 20세기 최대의 무기 실종 사건이었지만 그 누구도 기소되거나 체포되지 않았다. 미소양국은 물론 냉전 체제 아래 있던 세계 각국에 비축된 재래식 무기는 냉전 기간 동안은 물론 실제로 전쟁이 발발한다 할지라도 모두 소모될 수 없을 만큼 막대한 양이었다. 냉전 해체로 필요 없는 재고가 된 재래식 무기들은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동구 유럽의 보관비용만 늘려가고 있는 실정이었고, 관리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 틈새로 무기밀거래가 독버섯처럼 번졌고, 국가기관 역시 암암리에 개입했다. 결국 이들 국가에서 번져나간 무기들은 아프리카를 비롯한 세계의 분쟁지역으로 퍼져나갔고, 무수히 많은 민간인들이 전쟁이 아닌 내전 기간 동안 죽어야 했다. 원제명인 “Lord of War”는 그런 의미였다.




냉전 기간 중 유대인으로 신분을 속인 아버지 덕분에 미국으로 이주할 수 있었던 우크라이나 이민자 가족인 유리 오를로프는 우연히 목격한 러시아 마피아들간의 총격전 장면을 보면서 저 무기를 사용하는 사람은 죽지만 누군가는 그 무기를 팔아 이득을 본다고 생각하게 된다. 자유의 나라 미국에서 폭력은 너무나 일상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유리 자신에게도 낯선 장면은 아니었다.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는 거리에서 햄버거나 핫도그를 팔듯 그렇게 무기를 팔 것이라 생각하였으므로 무기를 판다는 죄책감은 마약을 판다는 죄책감보다 덜한 것이었다. 니콜 감독은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여러 무기밀매상들을 인터뷰하고, 널리 알려진 몇몇 사람의 생애를 유리 오를로프라는 가상의 인물에 녹여내기 위해 애썼다.  

덕분에 유리 오를로프는 상당히 입체적인 인물로 그려지는데, 또 한 편으론 어디선가 본 듯한 인물로 느껴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비록 남동생이지만 형제에 대한 집착은 알 파치노가 주연 했던 <스카페이스>, 훗날 에바 폰테인(브리짓 모나한)에 대해 유리가 어렸을 때부터 보인 집착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이 떠오르고, 성공의 정점에서 결국 소중한 가족을 잃는 모습은 얼핏 <아메리칸 갱스터>가 떠오른다. 독창적인 스토리인 듯 보이지만 이처럼 익숙한 장면들이 등장하는 까닭은 무기밀거래가 영화를 밀고 가는 전반적인 스토리라인을 형성하기 때문에 관객들로 하여금 그로 인한 혼선을 줄여주는 역할을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론 영화적 재미를 반감시키는 요인이기도 했을 것이다.

에드워드 즈윅 감독의 <블러드 다이아몬드>가 아프리카 내전의 자금원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영화라면 - 당신의 결혼반지와 휴대폰엔 아프리카의 피가 묻어 있다 - 앤드류 니콜 감독의 <로드 오브 워>는 실제 서아프리카 내전을 주동했던 다양한 인물들을 영화적으로 배치하면서 그들이 다이아몬드와 휴대폰의 필수적인 부품재료인 콜탄을 팔아 무엇을 구입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앞서 나는 칼라시니코프에 대해 글을 썼다고 했는데,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고기 다지는 기계 앞에서 칼라시니코프를 희생양 삼아 그가 이 모든 비극의 배후라고 고발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다만 이 기계가 잘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하나의 볼트나 너트였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무기밀거래상들 역시 그저 기계가 작동할 수 있도록 재료를 공급하거나 기계가 원활히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윤활유 정도의 기능을 할 뿐이다.



유리 오를로프는 아프리카의 독재자를 비롯해 무기를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 무기를 공급하고 싶어하는 모든 정부와 친밀한 거래를 주도했고, 그 결과 어릴 적부터 흠모했던 여인과의 결혼에 성공한다. 그러나 거래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아니 실제로는 이제까지 소모된 재래식 무기 보다 좀더 무기의 화력과 수준을 높이길 희망하는 무기산업자본의 노력으로 점점 더 입지가 좁아진다.

올초에 개봉한 영화 <인터내셔널>은 어떤 면에선 <로드 오브 워>의 후속편이거나 유리 오를로프를 추적하던 요원 잭(에단 호크)의 시선으로 그려진 무기 거래의 이면을 그린 영화다. 두 영화 모두 흥행에는 그다지 재미를 보지 못했지만, <인터내셔널>에선 재래식 불법무기 거래에서 첨단 무기 거래로 넘어가는 새로운 무기 산업의 양상을 보여준다. 신자유주의 이후 사회의 양극화는 물론 세계의 경제적 양극화 또한 극심해지고 있는 상황인데, 양극화의 가장 극심한 사례가 바로 무기 생산과 소비의 양극화다. 전 세계 무기 공급의 3분지 2는 미국과 러시아가 담당하고 있으며, 나머지 대부분도 인권과 민주주의를 향유하고 있는 유럽연합 국가들이 책임지고 있다. 2005년 현재 무기 생산업체의 무기 판매액은 2,680억 달러에 달하고, 이 매출액의 절반은 세계의 다국적 자본인 5개 대기업이 독식하고 있다. 물론 이들 다국적 기업들이 생산하는 것이 무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당신이 사용하고 있는 전자레인지, 세탁기를 생산하고 있기도 하다. 유리 오를로프는 말한다.

“최후의 순간에 지구를 상속받게 될 자들이 누군지 알아? 바로 무기상들이지.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은 서로를 죽이느라 너무 바쁘거든. 살아남는 비결은? 전쟁을 하지 않는 거야, 특히 자기 자신과는 절대로….”

전 세계가 미국발 금융파생상품의 파산으로 인한 경제위기를 겪고 있지만 그 배후나 원인을 찾을 수 없으며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무기 거래의 진정한 배후는 영원히 흑막 속에 가려지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을 것이다. 전쟁의 세기라는 20세기 동안 전쟁으로 인해 죽은 사람보다 제노사이드(민간인학살)로 죽은 사람의 수가 1억 7천만 명으로 더 많다. 이 모든 것이 그저 인간의 본성인양 비춰지는 동안, 어쩌면 당신이 연말 보너스처럼 수익을 기대하며 넣은 해외펀드는 군수산업을 살찌우고, 당신의 손가락에 끼고 있는 다이아몬드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양 팔을 정글도로 잘라내고 얻은 것일지 모른다. 물론 내가 쓰고 있는
삼성 휴대폰에도 아프리카 콩고산 콜탄이 필수 부품으로 사용되고 있다. 한스 바이스와 클라우스 베르너의 책 『나쁜 기업』(프로메테우스, 2008)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우리가 광석의 판매는 콩고 반군의 통제를 받고 있다는 점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런던의 삼성 경영자는 이 불순한 거래를 비밀에 부칠 것임을 보장했다. 설령 다음과 같은 상황이 오더라도 “걱정하지 마세요. 이 광물은 다시 시장에 나오지 않을 겁니다. 바로 삼성 자체 수요로 전자업 쪽에서 가공될 겁니다.”

삼성은 원료가 의심스러운 곳에서 들어오고 있다는 사실을 지금까지도 모른 체 한다. 우리가 이 무서운 불법무기 거래를 차단하고, 더이상 학살을 못 본 체 눈감지 않기 위해서는 오를로프의 말과 반대로 우리 자신과 전쟁을 벌여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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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신자유주의 지구화의 위기와 녹색희망 


『지구화, 되돌아보기와 넘어서기』, 조명래 지음, 환경과생명, 2009





위기의 진화((鎭火)? 더 큰 위기로의 진화(進化) 

1929년 미국의 증시 폭락으로 시작된 경제대공황은 인류에게 두 가지 교훈을 남겼다. 첫째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시장 균형이 유지할 것이라는 자유방임적 자본주의는 정부(공동체)가 경계를 정해 확실히 통제하지 않는다면 스스로의 탐욕으로 인해 무력화되고 자기 파괴적인 존재가 될 것이라는 점이고, 둘째는 경제대공황 같은 세계적인 위기가 닥쳤을 때 초국가적인 대책이 아닌 개별 국가단위의 생존자구책은 도리어 위기를 고조시킬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경제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세계는 전승국을 중심으로 국가가 시장에 개입한다는 수정자본주의(케인스주의)를 정책을 선택했고, 전 지구적 경제를 위한 새로운 규범으로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IMF)’,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을 맺는다.


신자유주의는 영국의 대처 총리와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 시절부터 시작되었다. 무한한 부의 축적을 열망하는 자본의 동학은 케인스주의 국가들의 성장이 둔화되고, 개발도상국들의 국가주도 계획주의가 성장의 한계에 봉착하면서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신자유주의는 자본의 효과적 증식과 성장을 위한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기 시작했고, 성장의 한계, 경제위기는 모두 정부의 잘못된 정책, 불필요한 간섭과 규제, 과도한 사회복지가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1980년대 말 현실사회주의가 붕괴되자 마거릿 대처는 신자유주의 이외에 더 이상 “대안은 없다(There is no alternaitive)”며 신자유주의의 전면적인 승리를 선언했다. 그 사이 대공황이 남겨주었던 교훈은 저 멀리 사라져버렸다.


또 다시 미국발 금융위기로 시작된 경제위기는 세계를 하나로 연결한 초고속 인터넷망에 번진 바이러스처럼 순식간에 세계의 경제위기로 번졌다. 냉전체제 해체 이후 꾸준히 추진되어왔던 신자유주의 지구화의 결과였다. 금융경제를 넘어 세계 각국의 실물경제를 파탄 상황에 몰아넣은 위기의 원인을 두고, 한국 사회의 진보진영은 신자유주의 체제의 실패로, 보수 진영은 정치제도의 실패로 규정하고 있다. 과연 현재의 위기는 진화(鎭火)될 것인가? 아니면 더욱더 큰 위기로 진화(進化)해나갈 것인가? 지금의 위기를 불러들인 근본적인 위기는 무엇인가?


발전국가, 사회국가, 경쟁국가

조명래 교수는 지구화의 한국적 방식이거나 호명이라 할 만한 ‘세계화’가 이제 막 시작될 무렵이었던 1994년부터 지구화의 문제에 천착해왔다. 『지구화, 되돌아보기와 넘어서기』는 지구화의 전개 과정에서 드러난 다양한 현상들, 특히 사회과학도로서 계몽주의 이래 지속되어온 근대적 현상인 ‘국민국가’ 중심 체제가 전복되면서 삶의 원초적 불안정성이 극대화되는 신자유주의적 현실에 주목한 결과물이다.


제1부 「지구화 시대의 공간과 환경」에서는 전 지구적 공간과 환경을 매개로 전개되는 지구화의 다양한 양상들을 살피고, 제2부 「지구화와 한국 사회의 현주소」에서는 지구화의 영향으로 한국 사회가 경험하고 있는 변화의 구체적인 양상과 결과에 주목하고 있다. 마지막 제3부 「지구화 시대를 넘어서기」에서는 또 다시 우리 앞에 닥친 세계 경제 위기의 원인인 신자유주의 지구화를 넘어설 수 있는 대안과 삶의 가능성을 짚어보고 있다. 그는 공동체와 생태계의 생존을 위협하고, 끊임없이 불안정하게 만드는 신자유주의 지구화라는 병증의 현상에만 집착하지 않고, 그 이면에 드리워진 근대적 삶의 양식까지 파헤치는 근원적인 해부를 마치 내과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처럼 치밀하게 파고들었다.


그는 우선 신자유주의 지구화라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공간과 환경의 구체적인 장으로서 국민국가의 변화양상에 주목한다. 근대적 패러다임의 산물인 국민국가모델, 발전국가와 사회국가라는 기존의 모델에서 신자유주의 지구화에 따른 국가 재조직화의 결과물로 출현한 경쟁국가 체제의 등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매뉴얼 월러스타인(Immanual Wallerstein)은 “자본주의는 시작부터 세계경제적인 사건이었으며 민족국가적인 사건이 아니었다. 자본은 자신의 열망이 민족의 경계로 한정되도록 방관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자본주의의 출현은 처음부터 세계질서의 근본적인 변화를 예고하고 있었으며 국가들과 사회들 사이에서 처음으로 진정한 전 지구적인 상호연결을 시도한 세계체제의 등장이라는 것이다. 새로운 세계경제 체계는 무한한 부의 축적 과정에 기반하고 있었기 때문에 세계경제는 주어진 어떠한 정치구조의 경계도 초월하는 경제 단위였다.


서구의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이 자본과 노동의 계급적 합의를 바탕으로 시장에 대한 국가의 전면적인 개입을 통해 국민들의 사회적 삶(복지)을 책임지는 사회국가(social state)의 형태였다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여러 국가들은 국가가 정책적으로 주도하는 저임금 노동집약형 산업을 통한 발전국가(developmental state)였다. 오일달러를 통한 북반부의 차관이 아프리카와 라틴 아메리카 같은 저개발 국가들에서 권력자 개인의 착복 수단으로 망실된 반면 비교적 건전한 국가엘리트들이 주도한 아시아의 개발도상국들은 ‘수출주의 축적체제’를 구축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국가가 조정 역할을 확대하고 시민사회의 조건을 결정하는데 깊숙이 개입할수록 국가는 자본과 노동 사이에서 더욱 격렬한 투쟁의 장이 되었다. 국가는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면서 서서히 시민사회의 이해관계와 반목하기 시작했다. 국가지배자와 국가요원들은 자신이 선택한 정책을 추구하고 집행하기 위해 자금을 조달해야 했다. 신흥독립국이자 개발도상국들의 국가형성기 동안엔 유력한 정치집단과 경제집단 사이에 이해관계의 동맹이 성립했지만, 그 동맹은 내부적 갈등을 미봉한 체제였다. 새로운 자본가계급은 정치적 간섭으로부터 경제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 봉건적 특권의 잔재에 대해 대항했을 뿐만 아니라 국가와 경제를 점진적으로 분리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신흥 계급은 국가가 조정 역할을 확대하고 경제에 대해 간섭함으로써 생기는 위험부담, 무역이나 사업에 대한 규제에 대한 저항으로 자본주의 사회의 신흥 계급은 국가의 방향설정에 개입하여 국가의 재구조화를 시도했다. 지구화로 인해 생산 활동이 초국가적으로 전개되고, 금융거래의 지구적 통합이 가속화되면서 국민국가는 국민경제의 통합적 조절자로서 거시 경제 조절 기능이 무력화되었다. 국가주도의 경제성장을 추구해온 아시아 각국들은 외환위기라는 자본의 지구화 앞에 무력했고, 외환위기는 새로운 세계 경제 질서로의 편입을 순조롭게 하기 위한 수단이 되었다. 외환위기 이후 제시된 IMF의 정책들은 국가역할의 재조직화를 의미했다.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발전국가 모델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었고, 기업과 시장을 통제할 수단을 잃은 사회는 조절력을 상실한 채 지구적 자본의 운동에 따라 끌려 다닐 수밖에 없게 되었다.


지구화 시대 국가들은 생산 및 유통의 모든 부문에서 자국 경제의 지구적인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자신의 역할을 집중시킴에 따라 대부분 ‘경쟁국가(competition state)’로 전환하고 있다. 다시 말해 지구적 경쟁력의 동학을 중심으로 국가의 역할이 설정되고 특화되는 ‘경쟁국가’는 지구화 시대 국가 역할의 새로운 모델이 되고 있다. 전통적인 국민국가가 국민적 합의나 명분을 바탕으로 국민경제의 안정적 성장과 발전을 도모함과 더불어 국민적 헤게모니 하에서 국민 대중을 통합하는 것을 자신의 역할로 설정했다면, 경쟁 국가는 국민경제의 국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국제화․세계화되는 자본 운동 논리에 국가 경영의 방향을 맞춘다. 따라서 경쟁 국가 하에서 조절은 고용증대, 수요 관리, 분배 등과 같은 국민경제의 재생산 부문보다 신기술․신상품․신생산 체제 개발, 해외 직접 투자, 금융 거래 자유화 등과 같은 부분을 우선한다. <본문 40쪽>



지구화 시대를 넘어선 초록정치의 가능성

조명래 교수는 현재의 위기를 초래한 ‘고삐 풀린 자본주의’의 표면은 지구화이지만 내부는 신자유주의가 채우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현재의 위기를 불러온 신자유주의 지구화의 누적효과는 “전략적인 결정의 장에서 사회의 공익성이나 시민성을 보장하는 국가의 역량을 잠식”하는 데서 절정을 이룬다고 지적한다. 근대적 국민국가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한 진보진영은 신자유주의 지구화가 국민국가의 약화, 기능을 마비시키는 형태로 나타났기에 국민국가의 기력을 다시 회복시키고 강화해야 한다는 반동적인 딜레마에 빠졌다.


그러나 조명래 교수는 ‘국민국가의 덫’에 빠져서는 “초국민화 ․ 탈국가화를 수반하는 지구화의 힘에 효과적으로 대항”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것은 신자유주의 지구화의 근본 원인에 대한 적절한 진단, 다시 말해 발전국가 ․ 사회국가 모델의 경제적 토대를 이루었던 포드주의 성장체제, 산업자본주의가 처한 위기를 반복하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무한한 축적 과정을 추구하는 자본의 근본적인 추동력과 자본주의 체제가 만들어낸 소비중심의 근대적 삶의 패러다임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 없이는 어떠한 대안도 만들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근대 국민국가 체제를 해체하고 재구조화하면서 진행되었던 현재의 신자유주의 지구화가 촉발시킨 위기는 결국 특정한 성장체제의 종말이다. 문제는 이것이 다시 임금과 연동되는 포드주의 성장체제로의 회귀, 국민국가의 기능회복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의 위기는 지구 생태계와 인류공동체가 더 이상 자본주의적 경제발전을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기 때문이다.


생태적 위기는 단순히 국토 환경의 파괴로 치부할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생명을 포함한 사회 전반의 지속가능성에 관한 문제를 포괄하는 ‘진보의 근본 위기’이다. … 생태 위기는 사회의 존립과 지속 가능성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민주․성장․평등․참여 등 인간 중심의 전통적인 진보로는 이러한 상황을 결코 돌파할 수 없다. <본문 333쪽>


현재 우리 앞에 놓인 경제 위기의 실체, “공동체적 ․ 민주적 삶의 양식”이 해체되는 현실은 신자유주의 지구화의 산물인 동시에 근대 인간중심주의 진보의 산물이기도 하다. “더 많이 갖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다투며 약자를 차별화하고 배제하는 ‘경쟁적이고 불평등한 삶’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데서 연유한다. 결국 현재의 위기는 바로 우리 안의 경쟁적이고 불평등한 삶의 추구가 외적으로 표출된 결과이다. 진정한 진보는 사람과 사람의 평등만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의 호혜로운 관계설정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어야 하고, 사람 중심의 사회적 진보와 사람과 자연의 공존 속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형평성을 재구축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명래 교수의 신자유주의 지구화라는 병증에 대한 원인 진단이 정확하고 그에 대한 대안 역시 적절하다 할지라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그가 초록정치의 희망을 보았던 지난 2007년 촛불시위에 대한 해석을 유보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민주화 20년 뒤에 맞닥뜨린 대한민국은 사회국가로 발전하기는커녕 여전히 발전국가의 망령에 사로잡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공존에 의한 진보를 근원적으로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적 다중으로 포섭된 시민들이 초록정치의 주체로 세계체제의 바깥을 상상할 수 있게 되기까지 우리는 얼마나 오랜 시간을 암흑 속에서 헤매야 할까.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땅 위의 길과 같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라고 했던 루쉰 선생의 말씀에 한 가닥 희망을 걸어본다.

 


* <환경과생명>2009년 봄호(통권 59호)에 청탁 받아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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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깃발 없는 자들의 고독한 촛불을 넘어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시위와 집회가 다시 출현하리란 예상은 누구나 했지만 100일도 안 된 시점에서 이처럼 거대한 촛불의 물결이 만들어지리라고는 누구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난 두 달여 동안 서울 시청으로 향하는 지하철 안에서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살수차가 뿜어대는 최루액에 범벅이 되어 도망치게 될지도 모른다는, 전경 방패에 내리 찍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을까. 아니면 “헌법 제1조”를 노래하고 컨테이너 장벽을 ‘명박산성’이라 조소하지만 만리장성 같은 장벽, 체제권력을 넘지 못하고 돌아서는 무기력을 반복하는 두려움이었을까. 촛불의 의미는, 촛불 그 이후엔 무엇이 있을까.

대중지성, 촛불시위는 웹2.0의 돌연한 사건인가
“위대한 피플 파워”란 국제앰네스티 조사관의 말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촛불시위에 대한 찬사는 특히 진보적 지식인들 사이에서 두드러진다. 촛불시위 이후 대중은 다중, 대중지성 등 수많은 방식으로 호명된다. 촛불시위가 최고조에 달할 무렵 여러 매체들은 진보적 지식인들을 앞세워 ‘촛불정국’을 분석하며 “이제 한국 사회의 시대 구분은 촛불 시위 이전과 이후로 나눠 봐야 한다”거나 “현재의 큰 흐름에 동참하고 있는 대중들조차 엄청난 역사적 변화를 만들고 있다는 인식을 하지 못하지만, 분명한 것은 쇠고기 사태 이전으로 돌아가기 어렵다”고 말한다. 인터넷 공간의 웹2.0 민주화 세대란 뉴미디어 담론과 중․고등학생들의 시위참여에 주목해 또 하나의 신세대 담론이 등장한다. 이른바 새로운 주체의 출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들이 간과하는 것이 있다.

현재의 촛불 시위를 과거와 다른 무엇으로 규정하는 것은 본의 아니게 과거와의 단절을 시도한다. 그것은 이명박 정부를 이전의 정부와는 다른 정부, 6․10항쟁 이후 지속되어온 87년 체제와 다른 정부로 본다는 점에서 보수세력이 지난 10년을 ‘잃어버린 10년’으로 규정하는 것과 동일한 효과, 이른바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는 환상을 대중에게 심어준다. 실제로 달라진 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처럼 손쉬운 단절을 통해 촛불시위 이후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환상 속에서 다시 5년을 보내게 될 것이다.

중고등학생들이 시위에 나선 것, 인터넷을 통해 시위가 조직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광화문 네거리에 쌓인 컨테이너 장벽 역시 지난 2005년 노무현 정부 시절 APEC 정상회의 장소였던 부산 벡스코 회의장 앞에 어청수 당시 부산경찰청장이 설치했던 전례가 있었다. 또한 경찰의 강경진압을 넘어 군대까지 동원되었던 평택 사태가 이미 있었다. 심지어 브레히트의 시를 빌어 “차라리 정부가 인민을 해체하고 다른 인민을 선출하라”라는 언론의 비판1)까지도, 지난 정권에 대해 이미 나왔던 비판2)의 반복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부터 한미FTA에 이르는 MB노믹스는 새로울 게 없다. 우리가 ‘세계화’라는 말을 듣기 전부터 정권을 바꿔가며 줄기차게 추진되었던 정책들이기 때문이다. 대중의 입장에서 보자면 ‘잃어버린 10년’이 아니라 ‘잃어버린 20년’이었던 셈이다. 87년 6월 항쟁은 결과적으로 체제의 근본을 흔들지 못한 불완전한 타협의 소산이었다. 이것은 당시 한국사회의 지배계급이 “자신들의 사회적 권력이 아무 탈 없이 보존”되고, “다른 계급들을 계속 착취할 수 있고 소유”를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를 “정치적 무권리 상태”에 빠뜨린 결과다. 다시 말해 우리 사회의 보수화 흐름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처음 시작된 것이 아니라 87년 이후 계속된 현상이다. 87년 이후 대중이 보수와 개량에 동의했건, 그렇지 않든 시민권력이 회복해 국가권력에 위임했던 민주주의는 끊임없이 위축되었다. 노무현 정부에 와서는 모든 권력이 시장에 넘어갔다고 대통령이 고백해야할 만큼 “정치적 무권리 상태”3)가 극도로 심화되었다. 이 같은 인식 없이 촛불시위대를 갑작스럽게 출현한 새로운 시민으로 규정하는 것은 ‘기억 속의 민주화’에만 집착하면서 퇴행의 길을 밟아온 지식인, 시민사회, 그리고 우리 자신에 대한 성찰 없이 정권이 교체되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빚어졌다고 오도할 가능성이 있다.

‘순수한’ 시민을 넘어 ‘정치적’ 시민으로
이번 촛불시위의 긍정적인 특징은 이른바 ‘깃발 없는 자’들, ‘아무 것도 아닌 자’들이라 할 만한 다양한 시위주체들의 자율성과 문화적 이벤트, 자유로운 토론이라는 카니발적 속성에 있었다. 지배 권력과 보수언론들은 촛불시위의 정치적 배후설을 주장하다가 시민들의 분노에 직면한 뒤부터는 도리어 시민들의 순수성을 강조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보수언론들의 이런 규정과 달리 촛불시위는 애초부터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정치적인 시민들의 시위였다. 그것이 애초부터 국가권력에 대한 시민권력의 환수 요구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탈정치적인 시위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배권력과 보수언론은 ‘순수한 시민’을 끝없이 강조함으로써 시위 주체들의 정치적 지향과 언어를 이간했고, 궁극적으로는 자기조직화를 통해 사회공동체와 연대할 수 있는 가능성을 크게 훼손시켰다. 시민직접행동이란 가장 정치적인 행위의 한 가운데에서 촛불을 든 시민들은 ‘순수한’ 시민이란 거대한 강박에 사지가 묶여버렸다.

사회운동은 유동적인 사회현상이다. 그래서 지속적인 움직임을 보이기 어렵고 동원국면이 지나면 와해된다. 사회운동은 특수한 과제가 있는 조직으로 바뀌거나 기존 정당에 흡수된다. 그럴 경우, 뒤를 잇는 조직이나 정당이 원래 운동의 가치와 목표에서 나온 선택되고 변화된 자극을 넘겨받을 경우에만 ‘효과’가 나타난다. 사회운동은 조직으로 가는 문지방을 넘어서지 않으면, 복잡하게 얽힌 소집단이나 하부문화적인 생활 방식 혹은 특수한 세대의 기억공동체 속으로 용해된다.4)


어떤 이들은 촛불시위를 서구의 68혁명에 비유한다. 일부에서 대통령 탄핵 같은 구호가 등장하긴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검역주권 수호를 통한 국익사수, 경찰에 대한 시민보호, 행정고시 절차 준수 같은 법질서, 기존 패러다임의 준수를 요구한 측면이 더욱 강했다. 세계화라는 국가를 초월한 패러다임 전환의 충격에 장기간 노출되었던 대중은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변화된 패러다임은 국가권력이 초국가적 자본 앞에 얼마나 무력한지 보여주었다. 초국가적 자본의 공세에 직면한 시민사회와 진보진영은 국가권력과 재벌이라는 국내자본의 위기 혹은 호응을 바라보며 혼미를 거듭했다. 거듭되는 혼돈 속에서 신자유주의가 펼쳐놓은 사적 욕망의 회오리는 민주화운동기를 통해 구축되었던 개인의 사회적 연대망을 파괴했고, 시민들 스스로를 자가 발전하는 펀드매니저로 재사회화(resocialization)해 나갔다. ‘금모으기 운동’ 이후 대중이 자발 혹은 동원의 형태로 등장한 사건들 - 월드컵, 한류, 황우석 사태, <디워> 논란 등 - 은 외환위기를 통해 확인된 국가(권력)의 취약함에 대한 반동이었다.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드러난 것은 ‘지식정보사회강국’이든, ‘동북아중심국가’이든 초국가적 자본의 상위를 점하는 선진국 대열에 합류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대중의 위기의식이었다. 중산층의 씨가 마르는 상황에서 이른바 ‘대박’, ‘부자되기’를 통해 삶의 수준을 유지하고 싶은 중산층 서민들의 욕망이 그 배후에 있다.

신자유주의 체제는 정치적 발언의 자유를 부분적으로 허용하는 대신 대중을 사적 욕망의 실현이라는 개별화된 그물망에 가둔다. 신자유주의의 변화된 패러다임은 자본이 노동을 강요하지 않는 대신 사적 욕망의 실현을 위해 스스로에게 부과한 노동을 수행하지 않으면 도태될 것이라는 강박을 심어준다. 신자유주의 체제는 대중으로 하여금 극도의 긴장 속에서 소비적 욕망의 추구를 자아실현 욕구로, 자본이 강요하는 업무능력강화를 자기계발로 착각하면서 자신과 무한경쟁하게 만드는 시스템이다. 이처럼 더욱 촘촘하고 정교해진 사회적 그물망은 시청 앞 광장을 카니발 광장으로 허용하면서도 동시에 거대한 가두리 양식장으로 만든다.

“캄캄한 산중턱에 홀로 앉아서 시가지를 가득 메운 촛불의 행렬을 보면서, 국민들을 편안하게 모시지 못한 제 자신을 자책”했다던 대통령이 초등학생까지 닭장차에 가둬버릴 만큼 소통두절 상황이란 사실이 확인되면서 인터넷에는 촛불시위에 대한 비관적 예측들이 나돌기 시작했다. 발언의 자유를 허용하는 대신, 국가권력은 시민들이 체제의 패러다임을 감히 전환시킬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것으로 촛불은 끝난 것일까. 사제단이 승리를 선언한 뒤, 광우병대책회의가 주최하는 촛불문화제 현장에는 이제 문화제는 그만하고, 새로운 투쟁에 나서자며 격앙된 목소리로 항의하는 시민들의 모습이 자주 보였다. 비록 촛불시위에 참여하는 대중의 숫자는 크게 줄었지만 이것으로 촛불이 꺼진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고립이 아닌 소통과 연대의 촛불
촛불시위의 승리와 패배를 논하기에 앞서 우리는 해결해야만 하는 과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촛불시위는 다소간의 역기능이 있다 할지라도 인터넷이란 소통의 광장이 대중에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러나 정부수립 60주년이 되는 오늘, 대의민주주의와 자유언론이란 시스템 안에서 국가권력과 시민권력 사이에 소통할 수 있는 정치적 광장들이 존재하는지, 제 기능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커다란 의문을 남겼다. 시민들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거대한 촛불의 행렬을 만들어냈고, 시위가 계속될수록 민주화 이후 20년의 민주주의가 만들어낸 제도정치의 한계가 노출되었다. 국가권력과 제도정치의 실상이 대중의 투쟁에 의해 적나라하게 발가벗겨지고, 대중의 통찰이 놀라운 모습으로 표출되면서 시민의 축제, 새로운 문화로 찬미되었던 촛불시위는 갖가지 방식으로 규탄 받는다. 그사이 정치는 국회의사당 안으로 슬그머니 환수되었다.

지배계급은 대중이 보수적일 때 그들의 우둔함을 두려워하고, 대중이 혁명적일 때는 그들이 보여주는 통찰력을 두려워한다. 시민대중은 거리에서 직접행동을 통해 현존하는 민주주의의 지평을 넓히고, 경계를 넘어 확장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지배질서가 교묘히 직조해둔 ‘욕망의 배치’ 구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대중 역시 체제의 외부를 상상할 수 있는 통찰에 도달할 수 있어야 한다. 한나 아렌트는 “현실정치는 우리가 무엇을 정치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가에 따라 달리 형성될 수 있다”고 말한다. 정치적으로 ‘순수한’ 시민이란 허구 속에 갇혀있는 한 민주주의는 하나의 정치적 제도에 머무를 뿐 그 이상의 것이 될 수 없다.

지금 우리는 스스로를 위해 촛불을 들었지만, 그 촛불은 나만의 것이 아닌 우리 모두의 것, 사회적인 개인의 것, 고립이 아닌 소통과 연대의 촛불이다. 깃발 없는 자들의 고독한 촛불을 넘어 지금 우리는 새로운 깃발을 만들어 나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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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형철, 「브레히트가 대통령에게」, <한겨레21>, 2008.06.12.(제714호)
http://h21.hani.co.kr/section-021158000/2008/06/021158000200806120714039.html

2) 강양구, 「유시민 의원, 차라리 국민을 '새로' 뽑지 그래! 」, <프레시안>, (2007. 07. 13)
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30070713155430&s_menu=정치

3) 그들 자신의 이해가 자신들에게 자기 통치라는 위험에서 벗어나라고 명령하고 있다는 것, 국내에 안녕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신들의 부르주아 의회가 조용해져야 한다는 것, 자신들의 사회적 권력이 아무 탈 없이 보존되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정치적 권력이 파괴되어야 한다는 것; 부르주아 개개인은, 자기 계급이 다른 계급들과 나란히 매한가지의 정치적 무권리 상태에 빠져 있어야만 다른 계급들을 계속 착취할 수 있고 소유와 가족과 종교와 질서를 별 탈 없이 계속 만끽할 수 있다는 것; 자신들의 머리에서 왕관이 벗겨져야만, 또 자신들을 지켜줄 칼이 동시에 다모클레스의 칼이 되어 자신들 자신의 머리 위에 있어야만 자신들의 돈주머니가 구출될 수 있다는 것을 고백하였다. - 칼 마르크스, 김태호 옮김(2002). 「루이 보나빠르뜨의 브뤼메르 18일」, 『칼 마르크스 엥겔스 선집2』, 332쪽.

4) 잉그리트 길혀 홀타이, 정대성 옮김(2006), 『68운동』, 들녘, 175-176쪽


출처 : <실천문학> 2008년 가을호(통권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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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가진 자들만의 민주주의를 끝내야 한다

 

『승자독식사회』, 로버트 프랭크․필립 쿡 지음, 권영경․김양미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08
『부자들이 지구를 어떻게 망쳤나』, 에르베 캄프 지음, 진민정 옮김, 에코리브르, 2008

어떻게 시민들에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광화문 시청 앞 광장에서 이명박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여 벌이는 촛불 시위가 30여 일이 넘게 지속되고 있다. 촛불 시위에 참가하는 사람들의 숫자도 나날이 늘어가고 있고, 시위는 서울 지역을 넘어 전국으로 확산되어가고 있다.
일각에서는 제2의 6월 항쟁이 되는 것이 아니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그에 비해 시민 사회의 목소리에 맞서는 정부의 자세에는 조금의 변화도 없다. 아니 정부의 자세는 더욱 강경해지고 있다. 여대생이 전경의 군홧발에 머리를 짓밟히고, 시위대에게는 가차 없이 물대포 세례가 가해진다. 대테러진압용이라던 경찰특공대까지 동원되는 모습은 살인적인 진압으로 악명 높았던 5공 치하의 백골단을 연상시킨다.

경찰의 강경진압을 경험한 시민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어떻게 시민들에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라고 말한다. 과연 국가가, 정부가 어떻게 시민들에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역사는 말한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이승만 정권은 시민 대다수가 남아있는 수도 서울에서 비밀리에 철수하며 한강철교를 폭파해버렸다. 전두환 정권은 1980년 광주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던 시민들에게 특수부대까지 동원해 총기를 난사했다. 1987년 정부기관원들이 대학생을 물 고문하다가 살해했다. 지난 2006년 노무현 정권은 미군기지 이전에 반대하는 평택 주민들을 군대를 동원해 철조망을 둘러친 제2의 게토에 가두고 강제진압했다. 어떻게 시민들에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시위대에 뿜어져 나오는 물대포의 극적인 이미지를 목격한 사람들은 그런 의문을 품는다. 하지만 서서히 데워져가는 솥단지 안의 개구리처럼 1997년 IMF외환위기 이후 승자가 모든 것을 차지하는 사회로 자연스럽게 혹은 고통스럽게 변모해간 우리 사회의 모습에 대해서는 아무도 의문을 품지 않는다. 먹고 살기 너무 힘들다고, 시장에 가기 두렵다고 말하면서도, 석유에 기초한 문명의 문제, 욕망의 질주를 강요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에 대해서는 눈을 감는다. 그것이 현실이니 어쩌겠느냐고 말한다. 그러나 이들이 말하는 ‘현실주의’엔 눈앞에 빤히 보이는 ‘현실’은 없고, ‘주의’만 남아있다. 그동안 우리가 석유와 제3세계를 불태우는 대가로 누려왔던 값싼 농산물의 시대, 녹색혁명의 시대가 저물어 가고 있다는 현실엔 눈감고 있기 때문이다.

“예쁜 사람 다 죽으면 젤 이뽀~.”
삼성 이건희 회장은 “21세기는 탁월한 한 명의 천재가 천 명, 만 명을 먹여 살리는 인재 경쟁의 시대”라고 말한다. 외환위기 이후 ‘국가경쟁력’과 ‘시장경쟁력’ 강화라는 주문 앞에서 한껏 움츠러든 우리들은 이 모든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렇다면 한 명의 천재가 만 명 분의 월급을 가져가고, 나머지는 그 사람이 소비하는 부스러기를 받아 생활하는 것이 과연 우리들이 추구해야 하는 선진사회의 진정한 모습일까? 로버트 프랭크 ․ 필립 쿡이 말하는 승자독식사회란 어떤 것일까?

『승자독식사회』는 무한대의 자유경쟁을 통해 최대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얻는 것을 최고의 덕목으로 요구하는 미국식 자본주의(신자유주의)가 어떻게 미국 사회 내부의 사회적 양극화(승자독식)현상을 가속화시키고 있는지를 냉정하게 살피고 있다. 이들은 현재의 승자독식현상은 디지털기술을 기반으로 한 정보혁명, 글로벌 네트워크의 확대와 관세축소 등 규제 없는 시장의 세계화가 서로 시너지 효과를 통해 가속화되고 있다고 말한다.

1992년 슈테피 그라프는 상금으로 160만 달러가 넘는 돈을 받았다. 그녀가 선수보증광고와 시범경기로 벌어들인 돈을 합하면 이 액수의 몇 배였다. 그러나 그녀의 수입은 당시 최고의 라이벌인 모니카 셀레스의 수입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1993년 4월 셀레스가 관중에게 칼로 찔려 활동을 중단하게 되었다. 그 후 몇 달 동안 그라프는 절대적 수준에서 볼 때 경기력이 거의 변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1992년에 비해 거의 두 배나 많은 상금을 거머쥐게 되었다. <『승자독식사회』, 본문 43쪽>

정말 우리들은 능력 있는 일등 인재들에 의존하여 살아가고 있으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일까? 두 사람의 경제학자는 앞서 두 테니스 선수의 경우처럼 이런 주장은 허구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승자독식사회가 지닌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일까? 우리가 동네놀이터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놀이기구 중에 시소가 있다. 시소게임이란 놀이상대끼리 서로 균형을 이루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즐기는 게임이다. 만약 어느 한 편이 다소 몸무게가 나가더라도 그만큼 앞으로 당겨 앉거나 몸무게가 적게 나가는 쪽에 다른 사람이 더 앉도록 한다면 함께 게임을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승자독식사회는 삶의 즐거움 혹은 지속을 위한 균형을 맞추는 시스템이 붕괴된 사회다.

예전에 아이들이 즐겨 찾던 군것질거리 중에 “젤리뽀”라는 것이 있었는데, 아이들은 상품명을 이용해 노래가사를 바꿔 부르곤 했다. 무척이나 살벌했던 그 노래 가사는 이랬다. “예쁜 사람 다 죽으면 젤 이뽀~.” 자본주의 시장에서 최후의 승자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이들이 바꿔 불렀던 노래가사는 잘 보여주고 있다. 대박과 쪽박 사이의 갈림길에서 개인이나 기업, 심지어 국가조차도 과거 냉전 시대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 저마다 핵군비 경쟁에 나섰던 것처럼 승자가 되기 위한 무한경쟁을 치른다. 두 사람의 경제학자는 무한대로 펼쳐질 것 같았던 핵무기 경쟁도 군비축소조약을 통해 결국 제약이 가해진 것처럼 시장이 모든 결정권을 행사하는 무한경쟁에도 일정한 규제가 가해져야만 현재의 승자독식 제로섬게임을 멈출 수 있다고 말한다.

게임의 규칙을 변화시키지 않는 한 파국은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파국은 석유자원의 고갈과 함께 좀더 극적인 방식으로 찾아올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친기업적(Business Friendly)인 자유시장 옹호론자들은 여전히 이 모든 것들을 시장에 맡겨두는 것이 사회적으로도 이익이 되는 최적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과연 이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겨놓으면 모든 일이 다 잘 되어갈 것인가?

끝장난 지속 가능한 발전과 새로운 군비경쟁의 시대
『부자들이 지구를 어떻게 망쳤나』의 에르베 캄프는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기는 일은 너무나 위험한 일이며, 현재의 민주주의의 시스템으로는 그것을 통제하는 일조차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동안 생태적이라고 여겨왔던 ‘지속 가능한 발전’도 이미 너무 늦은 일이 되었으며, 도리어 이 용어가 현재의 심각한 위기를 은폐한다고 주장한다.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용어는 ‘생태학’이라는 비속어를 없애버리기 위한 의미론적인 무기다. 그러나 프랑스, 독일, 미국을 더욱더 발전시켜야 할 필요가 있을까? 제발 지속 가능한 발전의 미덕을 믿는 모든 신실한 사람들은 한 번쯤 자문해보기 바란다. 그들은 정녕 산림벌채, 온실효과를 만들어내는 가스 배출, 시골길의 아스팔트화, 전 지구를 자동차로 뒤덮는 것, 수질 오염 등 이 모든 것이 점점 도를 더해간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일까? 몇 가지 반가운 소식 - 교토 의정서 체결, 몇몇 야생 생물종의 건채, 친환경 농업의 도약 등 - 은 작은 투쟁의 성과와 상황 변화를 기대하는 많은 사람들의 바람을 보여준다. 그러나 주된 물줄기는 잘못된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그들은 우리가 지금 1938년에 살고 있고,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고 노래하고 있다. <『부자들이 지구를 어떻게 망쳤나』, 41쪽>

‘지속 가능한 발전’이란 구호 아래 수많은 사람들이 온갖 노력을 기울여 왔고, 작지만 소중한 성과도 거두었다. 그러나 왜? 매일 더욱 많은 숲들이 사라지고, 온실효과를 유발하는 가스 배출은 나날이 늘어나며, 어째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최소한의 삶의 질도 누리지 못하게 되어가고 있나?

세계경제 전체의 관점에서 볼 때에는 과잉투자지만, 개별 국가의 관점에서 볼 때에는 반드시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인류 전체의 복지 향상을 위해서는 고화질 텔레비전(HDTV)의 선명도를 높이기 위해 투자하는 것보다는 식량과 보건에 투자를 하는 편이 훨씬 바람직하다. 그러나 다른 나라보다 고화질 텔레비전 제작기술이 뛰어난 국가라면 사정이 다르다. 고화질 텔레비전으로 세계시장을 장악하면, 거기에 들인 연구개발비를 뽑고도 남기 때문이다. … 경쟁에서 이길 확률이 높은 개별 국가는 군비축소의 필요성을 거의 느끼지 못하는 법이다. <『승자독식사회』, 본문 191쪽>

20세기 후반부터 자신들이 경쟁력을 갖고 있는 분야에 투자하며 환상적인 발전을 거듭한 중국과 인도는 2004년 한 해 동안에만 각각 47억 700만 톤과 11억 1,300만 톤의 탄소가스를 배출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 분야에서 단연 으뜸은 미국으로 같은 해 59억 1,200만 톤의 탄소가스를 배출했다. 세계는 파국적인 상황을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해 2005년 교토의정서를 발효시켰지만,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28%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은 자국의 산업보호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2001년 3월 탈퇴해 버렸다. 세계화에 의한 국가 간 승자독식경쟁은 과거 냉전시대의 군비경쟁을 대신하여 새로운 형태의 무한경쟁을 촉발시키고 있다.

작게는 일국적 차원에서 승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과 크게는 세계적 차원에서 승자가 되기 위해 투쟁하고 있는 국가들의 투쟁이 지구의 파멸적 상황들을 극적으로 심화시키고 있다.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시장에 모든 것을 맡겨놓은 결과에 대해 염려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이 같은 상황을 반전시키지 못하는 것일까? 에르베 캄프는 그 근본적인 원인이 잘못된 민주주의에 있다고 말한다. 가진 자들만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도록 왜곡된 민주주의의 과두정치체제가 그 원인이라는 것이다.

1970년대 이후 세계경제는 사실상 장기적인 침체 국면에 들어섰고, 제조업 분야의 이윤율 하락을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시작된 것 - 경쟁력을 상실한 고비용 저이윤의 제조업의 과잉설비와 과잉생산을 해소 - 이 신자유주의의 시작이다. 다시 말해 신자유주의는 세계경제위기의 원인이 아니라 그 결과로 출현한 것이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의 기술 차이는 미미해졌기 때문에 가격경쟁력에서 뒤처진 선진국들은 제조업을 포기하는 대신 지식서비스산업(금융 등)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신자유주의가 본격화된 90년대 중반 이후 한국사회 역시 미래의 성장 동력은 지식 경제 산업에 달렸다는 명분 아래 IT, BT, CT의 순서로 산업구조를 변화하려고 노력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자본과 자본의 투쟁이라는 투기화된 금융자본주의의 대결 속에서 한 차례 경제위기를 경험한 기존의 사회권력은 재벌권력 앞에 무릎을 꿇었다. 승자독식시장의 과잉경쟁을 개인이 막을 수 없는 것처럼 세계화된 시장 앞에서 개별 국가의 정부들 역시 무력하기만 하다.

가진 자들의, 가진 자들에 의한, 가진 자들을 위한 민주주의를 끝장내자!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광화문 네거리에는 촛불을 든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 그들 중 상당수는 지난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현직 대통령에게 투표를 했거나 투표를 포기한 사람들이다. 어째서 지난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는 역대 최저의 투표율을 기록했을까? 어떤 이들은 지난 국회의원 선거의 결과를 놓고 ‘황금분할’이니 ‘절묘한 선택’이라고 말하지만 유권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정치인 ․ 관료들은 평범한 유권자들과는 거리가 먼 계급일 뿐이다. 미국의 ‘투표와 민주주의 센터'가 미국의 의회 선거를 분석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선거에서 정책 경쟁이 치열할수록, 다시 말해 후보자나 정당 간에 정책이나 이념, 철학적 차이가 큰 선거일수록 투표 참여율이 증가한다고 한다. 만약 정치인들 사이에 시장경제에 대한 운영방식, 민영화, 소비와 조세 감면, 탈규제, 부유한 투자자들에 대한 정책에 별다른 차이가 없다면 현대의 수많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유권자들이 투표 참여를 귀찮은 의무로 생각하는 것이 별로 놀라울 것도 없다는 말이다. 정부 출범 직후부터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곤두박질치더라도 이것이 상대 정당의 지지율과 연결되지 않는 까닭도 거기에 있다 (어차피 그 놈이 그 놈이니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현재의 민주주의(democracy)가 ‘demo(인민)’+‘kratos(지배)’, ‘인민에 의한 지배’를 의미한다고 믿는다. 플라톤 이래로 서구의 민주주의는 무지한 대중의 잘못된 선택으로 사회가 그릇된 방향으로 나가는 것을 경계해왔다. 그러나 현재의 민주주의 체제는 인민의 선택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현재 인민에 의한 지배를 방해하는 최대의 적은 무지한 인민대중이 아니라 바로 직업적인 정치인 계급에 의한 과두정치, 즉 정치인들이 입을 모아 사수하자고 외쳐대는 ‘자․유․민․주․주․의’다. 이라크 파병부터 시작해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한미FTA까지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정책조차 강행하는 것이 현재의 자유민주주의다. 이럴 바엔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도 재판의 배심원처럼 인민대중 가운데 추첨으로 선출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본질에 더 가까운 정치체제일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되어 국민의 건강이 위협받는 상황이라지만 청와대엔 특급 한우가 공급된다. 가진 자들은 비싼 돈을 주고도 유기농 한우만을 먹을 충분한 재력과 의지가 있다. 이처럼 소수의 승자들에 의해 장악된 국가권력 체제는 실제 대중의 삶과 괴리되어 있다.

선거 때마다 정치인들은 당선을 위해 유권자 대다수의 이익을 위해 헌신할 것을 약속하지만, 선거가 끝나면 늘 반대의 행동을 취한다. 가진 자들의 소유인 언론과 미디어는 이것을 정치인들 개개인의 전형적인 위선이라 공격한다. 그러나 거대기업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곧 정치라는 것을 뼛속 깊숙이 체득한 것이 바로 그들 자신이다. 정치인과 정당, 정부의 기만행위에 대한 대중의 혐오와 적대감을 이용해 보수언론들은 ‘부패’ 혹은 ‘무능한’ 정부 대신 ‘정직’하고 ‘효율’적인 시장을 칭송한다. 가진 자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세워 보상해주는 정부라도 권력을 획득하기 위해선 반정부적 수사까지 동원하는데 능숙한 그들은 선거가 끝나자마자 사회적 회전문 시스템을 이용해 권력과 다시 한 몸이 된다. “경쟁에서 이길 확률이 높은 개별 국가는 군비축소의 필요성을 거의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가진 자들 역시 보통 사람들이 제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잡을 수 없는 승자독식경쟁을 멈출 의사가 전혀 없다.

홀로세의 공룡으로 사라지지 않으려면
20세기의 문명을 후세의 역사가들이 어떻게 평가할지도 점점 자명해지고 있다. 아마도 그들은 20세기를 ‘화석연료의 시대’, 우리들을 ‘홀로세(Holocene)의 공룡’으로 부르게 될 것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올해(2008)의 연간 에너지 전망에서 2030년 전 세계 원유의 하루 평균 생산량을 종전 1억1600만 배럴에서 1억 배럴로 하향 조정할 전망이다. 그동안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산업문명의 위기, 욕망의 질주를 강요하는 자본주의 체제에 의한 생태 위기를 지적했던 수많은 이들의 염려처럼 산유국의 석유 생산은 이제 정점에 도달했다. 석유 생산량이 감소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오일피크론은 더 이상 우려나 기우가 아니다.

20세기가 끝날 무렵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는 더 이상의 역사발전은 없다고 할 만큼 자신만만했었는데 어째서 오늘의 우리는 이토록 커다란 불안과 위기에 휩싸이게 되었을까? 『승자독식사회』와 『부자들이 지구를 어떻게 망쳤나』는 각기 다른 출발점에서 출발하고 있지만 흡사한 결론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는 승자독식의 원리는 현재의 시스템을 바로잡지 못하는 한 앞으로도 꾸준히 강화되어갈 것이다. 정부의 결단력 있는 정책들이 소득불평등을 바로 잡아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넌센스다. 왜냐하면 세계화 시대의 승자들은 언제라도 어느 한 나라의 세율이 높아지면 조세피난처를 찾아 떠날 것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무한경쟁에 재갈을 물리자는 새로운 군비축소운동에 세계적인 시민 연대가 요구되는 이유다. 이처럼 두 권의 책 속에 그려지는 우리들의 현실과 미래는 너무나 암담하지만 저자들은 너무 낙담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결정적인 파국의 도래가 오기 전에 우리들이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거리를 가득 메운 촛불 행렬이 그 시작을 알리는 일이길 바란다.

출처 : 환경과생명.2008.여름호(통권 5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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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문화운동의 새로운 프레임은 가능한가
- 이명박 시대의 문화운동, 어디로 가는가

저는 지역에서 발간되지만 전국적으로 소통되는 계간지 편집장으로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계간지는 월간지나 주간지처럼 특종을 쫓는 것처럼 시대의 이슈를 쫓아가기 보다는 담론의 생산과 매개, 비평에 주력하는 편입니다. 계간지의 책무는 시대를 읽어내고, 그 안에 은폐되어있는 구조를 밝히고 드러내어 지식사회로부터 파급되는 학문적 . 담론적 이슈를 생산하고 매개하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계간지는 지식과 담론의 최전선일 수 있고, 또 다른 의미에서 오늘 저는 이 자리에 참석하신 분들 가운데 비교적 자유로운 입장에 서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까닭은 오늘 제가 말씀드리려는 내용이 다분히 원론적이고, 어떤 의미에서든 이미 많이 나왔던 이야기들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는 변명이기도 합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만약 지배계급이 합의를 상실하여, 즉 더 이상 ‘지도’하지 못하고 오로지 억압만을 행사함으로써 ‘지배’한다면, 이것은 틀림없이 위대한 대중들이 그들의 전통적인 이데올로기로부터 분리되고 과거에 믿었던 것들을 더 이상 믿지 않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위기는 바로 오래된 것은 죽어가고 있으나 새로운 것은 아직 탄생하지 못한 시기이다. 이러한 공백기에 대단히 다양한 병적 증상들이 나타난다. - 그람시, 『옥중수고』 중에서

체제에 대한 고민 없는 문화담론은 정책 판타지

그람시의 말에서 지배계급을 진보 혹은 좌파로 살짝 비꼬아놓으면 현 단계 우리 문화운동 진영이 처한 현실과 흡사합니다. 민주화 이후 문화운동의 현재는 최근 들어 정치적 투쟁에서 패배했을 뿐 아니라 문화투쟁, 즉 ‘정서와 의식’을 얻기 위한 싸움에서도 패배했습니다. 민주화 이후 대부분의 기간 동안 문화운동은 사회를 이끌어가는 아방가르드가 되어본 적도 없고, 과거 1980년대 운동적 관성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도 못했습니다. 그 사이 변화된 현실 속에서 대중의 삶과 일상은 주변적인 것으로만 남았습니다. 경제위기 이후 새로운 문화투쟁이 대중의 경제적인 토대를 사이에 두고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는 것조차 깨우치지 못했습니다.

1970년대 이후 세계경제는 사실상 장기적인 침체 국면에 들어섰고, 제조업 분야의 이윤율 하락을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시작된 것 - 경쟁력을 상실한 고비용 저이윤의 제조업의 과잉설비와 과잉생산을 해소 - 이 신자유주의의 시작입니다. 다시 말해 신자유주의는 세계경제위기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신자유주의가 본격화된 90년대 중후반 한국사회는 미래의 성장 동력은 지식 경제 산업에 달렸다는 명분 아래 IT, BT, CT의 순으로 매달렸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자본과 자본의 투쟁이라는 금융자본주의의 대결 속에서 한 차례 경제위기를 경험한 뒤 사회권력은 재벌권력 앞에 무릎을 꿇었고, 자본주의 체제의 대안 운동으로 출현했던 노동계급운동은 조합투쟁으로, 계급 위주의 단선적인 운동 방식을 비판하며 출현한 생태운동, 여성운동, 소수자, 문화운동 등은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운동이면서 동시에 체제의 내성을 강화하는 운동으로 변질되거나 대안담론을 창안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효관 전남대 문화전문대학원 교수, 고명철 문학평론가, 박승옥 시민발전 대표

요즘 우리 사회에 유행하는 담론의 출처는 대부분 소비자본주의의 마케팅 이론(아마도 현존하는 모든 학문 중에서 가장 유능하고, 유효하며 급진적이고, 심지어 너무나 반혁명적이라 혁명적이기까지 한)에서 비롯되고 있으며 문화담론 역시 이윤 중심의 마케팅 이데올로기에 심각하게 오염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80년대 기동전의 시대는 끝났고, 이제 자본과의 대결은 진지전의 시대가 되었다고 주장하며 새로운 문화운동의 담론이 만들어냈던 진지는 더 이상 진지가 아니라 적과 동침하는 곳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문화운동의 새로운 프레임을 구축한다는 것은 지난하고 괴로운 투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그림자와 싸워야 하는 피터팬처럼 우리는 자신의 그림자와 싸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종종 담론의 위기를 염려하는 것은 당장의 끼니를 잇는 일에 비해 덜 중요한 일로 간주되지만 당장의 끼니를 잇는 일과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하는 일은 동시에 시급한 일이며, 이 둘 가운데 어느 하나도 무시되거나 과소평가될 수 없습니다. 지금의 위기는 새로운 위기가 아니라 아직 새로운 것이 탄생하지 못했기 때문에 닥친 위기이기 때문입니다.

담론의 위기 - 이명박 정부의 출현이 위기인가? 민주화 이후 20년의 위기인가?

롤랑 바르트는 “거짓말보다 신화가 더 많은 것을 속인다”고 이야기했는데, 정권을 재탈환한 측이나 정권을 빼앗겼다는 측이나 ‘잃어버린 10년’이란 표현은 생각 보다 더 많은 것들을 은폐하고 있습니다. 진보대중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잃어버린 10년’은 정권교체가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이었음을 전제하기 때문입니다. 1987년 이후 전반기 10년이 영남 지역주의에 기초한 노태우 ․ 김영삼의 연속 정권이었다면 1987년 이후 후반기 10년은 호남과 비영남 지역주의 연합에 따른 김대중 ․ 노무현의 연속 정권이었습니다. 전반기 10년과 후반기 10년을 ‘민주 대 반민주’, ‘진보와 보수’, ‘통일 대 반통일’의 패러다임만으로 규정한다면 현실의 일부 양태만을 확대해석하는 겁니다.

현재 담론의 위기는 1980년대 말 현실사회주의의 붕괴와 정치 / 사회 / 문화의 전 영역에서 일어난 세계자본주의체제의 혁신과 변화의 속도에 성찰과 사유의 속도가 뒤따르지 못하면서 체제의 바깥을 상상해내지 못한 데 원인이 있습니다. 현재의 위기는 표면적으로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에 따른 경제의 위기, 민주주의의 위기로 나타나고 있지만 이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은 궁극적으로 현재와 다른 것을 상상할 수 없는 담론의 위기이기도 합니다. 몇 해 전부터 1987년 체제의 종말, 진보담론의 위기를 말하지만 우리는 스스로의 현실에 착근한 담론을 만들어 내지 못했습니다. 1980년대 사회구성체 논쟁이 있었지만 그 당시 논쟁과 요즘 민주노동당 내부에서 평등파와 자주파 논쟁 사이에 질적인 비약은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80년대 문화운동을 일컬어 문화연구 없는 문화운동의 시대였고, 1990년대 후반은 문화운동 없는 문화연구의 시대라고들 하지만, 1980년대 문화운동의 내부에는 사회주의적 대안 담론과 민족주의적 대안 담론이 나름대로 각축을 벌였고, 이 둘을 봉합해온 것이 민주화 담론이었습니다. 절차적 민주화 이후 새로운 담론은 생산되지 못했거나 과정 중에 있고, 1990년대 이후 문화운동은 국가의 문화정책에 비판적으로 개입하여 국가의 문화권력과 시장자본주의의 문화적 독점에 반대하는 등의 제도적 개입(다시 말해 문화정책의 비판, 기획, 실천)으로 방향을 선회해왔습니다. 1990년대 이후 2000년대 중반에 이르는 현재의 문화운동은 운동 없는(문화정책운동이 아니라) 정책문화운동이 되었고, 장기적 전망 없는 운동이었다고 부를 수 있을 겁니다.

또 한 가지는 현재까지 연결되는 문제인데 1980년대와 1990년대 문화운동에 공통적으로 내포된 문제 중 하나는 대중과 일상에 대한 중요성은 인식하면서도 운동 자체의 측면에선 여전히 대중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다는 겁니다. 전자가 운동적 관점에서 예술가들의 예술적 형상화 작업을 통해 대중의 계급적 각성을 이끌어 내려는 문예운동이었다면, 후자는 비판적 현실개입을 통해 정책화하려는 과정에서 문화기획자들의 지식인 운동(시민운동, 청원권 운동)으로 변질되면서 대중을 참여로부터 소외시켜왔습니다. 2000년대 내내 지역과 대중을 이야기했지만 민주주의와 마찬가지로 이것이 대중 속에 깊이 착근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문화운동의 위기는 이명박 정부의 출범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민주화 이후 20년 동안 배태되어 온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문화운동만이라도 다른 세상을 꿈꿔보라!

‘노동사회’로 표상되는 1980년대 문화운동 내부의 반체제적 지향과 변혁적 과제들은 1990년대 이후 문화민주주의, 문화적 권리 확대를 위한 투쟁으로 전화되어 가는데, 이 같은 방향 전환의 지향점은 국가의 문화정책에 참여함으로써 문화적 공공영역을 확대하는, 장기적으로 ‘노동사회’에서 ‘문화사회’로의 이행이었습니다. 문화사회란 자본의 발전된 생산력을 기초로 노동시간을 감축하고 자유 시간을 증대하여 자유시간의 자기조직화를 통한 문화 활동의 증대가 삶의 중심적인 활동이 되는 사회로의 이행을 의미합니다. 문화사회로의 이행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문화적 권리 확대 투쟁이 필요하다는 의미 또한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문화운동은 자체적으로 정치적 변화와 노동운동 및 시민사회운동과의 적극적 연대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문화사회’론은 과연 우리 현실에 적합한 것인지,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흐름에 저항할 수 있는 담론이었는지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문화사회’론은 시민혁명 이후 시민사회가 성숙했다는 유럽식 민주주의, 세계자본주의 체제의 상부를 점유하고 있는 유럽의 경제적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20대 80 사회’로 표상되는 사회양극화에 노출된 한국사회의 현실에 부합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고, 자본주의 혹은 체제가 타협에 나설 것이라는 전제가 밑바탕에 깔려있다는 점에서 현실 자본주의에 대한 지나친 낙관에 의존합니다. 과거의 제3세계 담론에 비추어보았을 때, 문화사회론의 밑바탕에는 대한민국 사회를 기본적으로 제1세계 혹은 그 연장선상으로 규정하고, 다른 여타 지역에 대한 배려가 없는 담론이기도 합니다. 유럽식 민주주의, 유럽식 문화에 대한 동경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는 점에선 또 다른 문화적 제국주의로 흐를 수 있는 위험이 있습니다.


이 같은 낙관은 민주화 후반기 10년,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의 문화운동 전체를 관류하는 흐름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문화운동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문화정책에 개입하고, 한정된 재원 속에서 분배와 권리보장의 시민권 운동이 되었다는 것은 체제내부로의 포섭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과연 이명박 정부의 출범이란 현재의 정치적 상황에 대해 대중이 느끼는 체감온도와 문화운동과 문화권력이 느끼는 체감온도는 비슷할까요?


전성원 황해문화 편집장, 우기동 경희대 철학과 교수, 최준영 문화연대 문화개혁센터 팀장

문화운동의 시민운동화 흐름은 대중의 시각에서 보았을 때 이미 문화적 시민권을 확보한,  이해관계에 따른 주류운동이 되었습니다. 비록 사회의 다른 영역과 비교했을 때 여전히 열악한 조건에 놓인 입장이므로 억울하겠지만 ‘잃어버린 10년’ 동안 문화운동이 좀더 마이너한 입장의 사람들(대중)과 얼마나 연대했었는지 반추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단적인 예로 1988년 UIP영화직배 이후 20년, 1998년 IMF외환위기 이후 한미투자협정을 기점으로 10년 간 지속된 스크린쿼터사수투쟁은 신자유주의 반대운동과 결합되면서 문화운동의 중요한 아젠다로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반대투쟁에 대한 비판 역시 만만치 않았습니다. 비판의 주된 요지는 스크린쿼터사수투쟁이 국산 영화를 “21세기 복합영상산업의 핵심 고리”이고 “미래경제의 핵심성장엔진”이라 규정하는 것 자체가 문화예술을 산업으로 파악하고 있으면서도 다른 한 편으론 영화산업 내부구조의 민주화, 영화제작에 참여하는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는 외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과연 스크린쿼터사수투쟁이 농민들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투쟁보다 더 큰 공감대를 얻었는지 의심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문화운동의 새로운 프레임은 일상의 정치적 상상력에 달렸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현재의 문화운동은 문화정책적 차원에서 문화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하부구조로 포섭되었고, 자본주의 국가의 우파정치와 조우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문화운동의 공공성은 지배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속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시민사회 내부의 냉소를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냉소는 다시 사회적 ‘재봉건화’의 위험으로 나타났습니다. 문화운동의 미래는 문화운동과 담론이 애초에 출현할 당시에 품었던 비판 의식 - 사회의 제 분야에 널리 분포하여 존재하는 권력의 다양한 형태를 폭로하고, 논쟁적인 비판 - 을 회복하는 데 있으며 문화운동에게 주어진 새로운 임무는 문화민주주의를 보다 급진적이고 다원적인 민주주의로 심화시키고 확장해나가는 데 있습니다. 현 단계 문화운동의 새로운 프레임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운동의 중심, 운동의 주체, 운동의 대상에 대한 새로운 문제제기와 성찰이 필요합니다.

현재의 문화운동 프레임은 단순히 개혁정당의 구조화와 정책의 부재로 인해 실패한 것이 아니라 대중의 실제 생활 근거라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정치적인 영역에서 실패한 결과입니다. 문제는 이 실패의 내용을 좀더 차분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좀더 나은 공동체사회를 만들어가는 방법 중 하나는 올바른 국가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것에 있긴 하지만, 시민사회가 국가정책에 지나치게 목을 매는 현재의 방식으로는 국가권력에 너무 많은 권력을 위임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고, 이는 국가권력이 약화되는 세계화 시대의 현실에서 궁극적으로 재벌권력에 목을 매는 상황이 됩니다. 책임질 수 없는 구호를 남발하는 것과 실질적인 물적 토대(실천력)를 구축하는 일 사이에서 이제 문화운동은 일상의 생활공간에서 모든 정치적인 것들의 귀환을 위하여 싸워야 할 때이고, 문화운동의 새로운 프레임을 구축하는 일은 장기적 전망, 다시 말해 담론과 철학을 귀환시키는 일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 위의 글은 민예총이 지난 1월 24일 주최한 신년토론회 <이명박시대의 문화운동, 문화정책 ⓛ - 오늘의 문화운동, 어디로 가는가>에서 토론자로 발표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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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오늘(2008. 1.17.) 망명지를 살펴보니 1,634,035명의 사람들이 다녀갔다고 카운터에 기록되어 있더군요. 처음 홈페이지를 만든 이래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과 하루도 빠짐없이 대화를 나누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또 제 이야기를 하며 살았습니다. 인터넷 공간에 작으나마 사람들과 소통할 공간을 만들기로 결심하고 실행에 옮겼던 건 지난 2000년 8월 1일의 일이었으니까, 햇수로는 올해가 9년, 다가오는 8월이면 만 8주년이 됩니다. 홈페이지 이름이 왜 하필이면 ‘망명지’일까? 때로는 스스로에게 반문합니다.


뭔가 대단한 고민이 있었다기 보다 점점 새로운 해몽을 저의 꿈에 덧대어갔던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이를테면 꿈보다 해몽이었던 거죠. 아니면 최인훈 선생이 어디선가 들려주었던 말이 오래도록 제 뇌리에 남았던 탓인지도 모릅니다. 오래전 일이라 어쩌면 저 혼자만의 기억이 최인훈 선생을 들먹이게 만든 건지도 모르겠는데 ‘한국의 지식인들은 유럽의 지식인들과 달리 망명을 할 수가 없어서 불행하다’는 말이 저는 이 땅의 숨막히는 현실, 분단의 현실, 상상의 한계를 미리 규정지어 버리게 만든 답답한 현실을 드러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발 그만해둬. 나는 너의 인형은 아니잖아!

말은 삼천리 화려강산이라지만 반 토막 난 땅에 살다보니 어딜 가나 늘 고추장, 된장에 쌀밥, 김치를 먹고, 다 같은 모국어를 사용하는 탓에 몇몇 사투리의 단어 뜻을 몰라서 그렇지 서로 못 알아 듣는 말이 없고, 통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근대화 이후 일일생활권이 된 덕분으로 전국 어디든 하루면 왕복할 수 있는 땅에 살고 있습니다. 망명은커녕 숨어서 못된 짓 한 번 하기도 어려운 곳이 우리가 살고 있는 조국입니다. 그런 탓인지 가끔 민족애(民族愛)의 발로와 전혀 상관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휴전선이 답답하고, 갑갑해지곤 합니다.

기차를 타고, 자전거를 타고 밑도 끝도 없이 먼 이역으로 달려가고 싶은 충동, 살다보면 실제로 하기는 어려워도 계획조차,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현실, 휴전선은 땅만 분단시킨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상상 속에도 이미 깊숙하게 자리하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숨이 막혀오곤 합니다. 조국을 떠나기 위해 우리는 섬나라 사람들처럼 배 아니면 비행기를 이용해야만 하기 때문이죠. 가도 가도 첩첩산중인 개마고원의 깊은 품에서 쌓인 눈을 견디지 못하고 부러지는 잔가지 소리를 들으며 하룻밤을 하얗게 지새워 보고 싶지만 이미 마음으로부터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가족, 학교, 사회에 이르기까지, 단일민족의 신화는 구성원들의 실제 혈연적 구성이나 유전적인 측면에선 사실이 아니라도 문화적으로는 매우 강력한 중심축으로 작동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다보니 가족은 때때로 남이 보지만 않는다면 가져다 버리고 싶은 족쇄가 되기도 하고, 한 번의 입시로 결정되는 학교라는 이력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어 평생 동안 발목을 잡는 굴레가 됩니다.

혈연, 지연, 학연은 네트워크를 형성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만 동시에 사회라는 거대한 매트릭스(네트워크)의 하부 구조 중 하나로 ‘나’라는 존재의 위치를 옴짝달싹할 수 없도록 규정짓는 틀이 되곤 합니다. ‘나’는 문화라는 거대한 매트릭스 속에서 한 번도 나 아닌 다른 존재, 아니 진짜 내가 서 있는 자리가 어디인지 고민해볼 틈도 없이 족보에 기록되고, 학적부에 기록되고, 주민등록부에 기록된 자로 살아가게 됩니다.

문화망명지라는 거창한 이름, 문화와 망명의 개념을 결합시키면서 나는 타락하지 않겠노라. 이곳에서 나의 깃발을 올리고 타협하지 않는 마음으로 홀로 비장하게 싸우다 장렬하게 산화하겠다는 결심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바람구두'라는 익명의 페르소나 뒤에 숨지 않으면 안될 만큼 나약한 한 인간이 세상에 홀로 남은 것 같은 쓸쓸함과 변해버린 사람들과 세상에 대한 씁쓸함을 담아 누군가 나와 같이 세상으로부터 고립된 이들에게 보내던 유리병편지 같은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인터넷 공간에 띄어 보냈던 무수한 유리병편지들은 때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응답을 받았고, 때로 차라리 만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법한 인연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 공간은 그 자체로 생명을 가진 것처럼 제 멋대로 무수한 인연의 가지들을 만들어냈습니다. 세상의 근원을 더듬어가며 우주의 끝으로 갔던 우주비행사가 마지막에 만난 것은 그저 심심하다는 이유로 우주를 만들어냈던 컴퓨터와 대면하게 되는 SF만화의 허무한 엔딩 장면처럼 어쩌면 “문화망명지”의 끝은 허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됩니다. 나 스스로가 허무한 걸지도...

20년 전 그날, 20년 후 오늘

당신이 먼 이역으로 떠난다 하니 무심결에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군요. 망명지를 만들게 된 것은 물론 제 자신을 위해서였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망명지는 네덜란드의 작은 이층집 다락에 아지트를 만들었던 안네 프랑크의 사랑스런 일기장 ‘키티’처럼 제게도 그런 공간 하나가 필요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탓입니다. 그런 마음을 먹기까지 저는 마치 살아있는 좀비처럼 온몸이 썩어가는 듯 불쾌한 느낌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87년 고등학생이었던 제가 어떤 인연으로 당시 운동과 결합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건 너무 구구한 사연이 될 듯합니다. 다만, 1987년 12월 명동성당이란 시대의 막간극 무대에 저도 잠시 편승했던 적이 있었다는 정도를 밝혀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우리 역사의 향방을 바꿀 수 있는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50여개 학교, 200여 명의 고등학생들이 명동성당에 모여 ‘공정한 대통령 선거와 교육민주화’를 외쳤습니다. 그것이 세상 사람들 중 일부만이 기억하는 ‘서고련’의 명동성당 시위였습니다.

일제 치하부터 해방 이후 면면히 이어지던 고등학생 운동은 4.19혁명을 기점으로 역사의 물꼬를 트는 주요한 흐름 중 하나였으나 유신과 전두환 독재 시대에 이르러 사실상 그 맥이 완전히 끊겨 있었습니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에 이르는 치열한 입시교육과정 속에서 학생들은 대학 진학과 입신양명을 위한 입시기계로 전락해버렸던 시대였지요. 올해는 1987년 민주화운동으로부터 만 20년이 되는 시점이라 여러 매체들이 당시 운동에 참여했던 많은 사람들을 취재하고 기사화했습니다. 저도 몇몇 언론을 통해 그 당사자가 되기도 했지요.

조세희 선생은 1987년 12월 대선의 그 날을 ‘악이 드러내놓고 선을 가장하고, 선이 악에게 패배한 날’로 불렀습니다. 우리가 염원했던 민주화 20년의 역사는 처음부터 그렇게 잘못 시작되었습니다. 만 17살의 어린 학생이었던 당시의 저는 그 날의 충격과 비참함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비록 국민의 다수는 독재 권력의 하수인이자 후계자였던 노태우를 지지하지 않았지만 당시의 정치인들, 운동세력은 독재의 문민화를 전복시키는데 실패했습니다. 독재의 문민화 전략이 먹혀들고, 현실사회주의가 몰락하면서 명망 높았던 운동가들은 속속 전향 선언을 발표하기 시작했습니다.

민주화를 위한 투쟁경력은 제도권에서 자신의 입지를 쌓는 업적으로 변신되었습니다. 지역주의가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의 기준이 되자 그들 가운데 일부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과거 독재 권력에 뿌리를 둔 정당에 투신해 새로운 지배 권력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민주화 20년의 역사는 동시에 전향의 역사이고, 패배의 역사였습니다. 어린 나이였던 제게 그 같은 일련의 흐름들은 대단한 충격이었고, 저 자신의 삶마저도 굴절시킬 만큼의 치욕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저는 그로부터 거의 10여 년 간 냉소와 자기비하를 최선의 방책으로 삼았습니다.

20년 전, 그 날의 나는

당시 고등학생 운동 혹은 대학생 운동세력으로 하여금 출세와 성공이라는 일반적인 삶의 궤도를 이탈하게 만든 중요한 역사적 사건은 ‘5.18광주’였습니다. 국가가 국민에게 테러를 가했던 ‘5.18광주’는 우리로 하여금 이 나라 대한민국의 본질과 우리 앞에 민주주의의 얼굴로 미소 짓고 있던 미국이란 나라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기회가 되었고, ‘5.18광주’의 진실을 접했던 우리들은 시대와 양심의 부름에 호응하는 것이 청년의 의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20년 전 명동성당 시위를 마무리 짓는 비참한 현장에서 저는 두 가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첫째. 진실을 깨우치게 된다고 해서 누구나 자신의 삶과 안위를 떨치고 일어나 진실을 바로 세우는 일에 동참하게 되는 것은 아니란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세상은 보이는 것과 다른 이면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에게 직접적인 해가 되거나 이득이 되는 일이 아닐 때 사람들은 그것을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로부터 제가 평생을 두고 공부하고 싸워나가야 할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둘째. 이 싸움은 내가 평생을 전력투구한다 할지라도 도달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 목표를 향한 투쟁이 될 것이란 깨우침이었습니다. 저는 진보란 축적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진보란 당대의 현실을 고민하고,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투쟁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진보는 언제나 현실을 토대로 미래를 상상하는 겁니다. 마르크스주의가 지녔던 가장 강한 매력은 계급착취가 없고, 인간이 인간 그 자체로 대접받고, 존재하는 인간해방의 평등세상이란 구체적인 유토피아를 상정했습니다. 그것도 마치 역사의 법칙처럼 부르주아자본주의 생산력이 최고조에 달한 뒤 공산주의 세상이 도래한다는 엄밀한 사적 유물론에 입각한 것이었지요.

진실이 지닌 거의 유일한 딜레마는 진실이 진실로 존재할 때, 나머지 것들은 어쩔 수 없이 진실이 아닌 것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겁니다. 현실사회주의의 몰락이라는 진실 앞에서 종종 저는 그 같은 딜레마를 경험합니다. 현실사회주의의 몰락과 그 원인은 진실이지만 그 진실이 진실로 존재하기 위해 자본주의 체제만이 유일한 대안으로 존재한다고 믿어지는 것 말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에게 20세기는 러시아혁명이라는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체제를 실험하고, 결과적으로 그 실험이 실패함으로써 끝났습니다.

그 이후 현재까지 우리 인류는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모두가 공감하면서 이를 극복할 만한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자본의 신자유주의 세계질서에 떠밀려가고 있는 형국입니다.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과 반대는 가능하지만, 그 대안이 사회주의 혹은 좌파적 사유 밖에 없느냔 질문에 우리들은 아직까지 적절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담론의 위기’입니다.

그 대안을 마련하기까지 우리는 매우 오랜 세월, 어쩌면 20세기 자본주의의 성장 동력이었던 석유가 완전히 고갈될 때까지 지옥 같은 고통을 맛보아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대한민국이란 국가는 건국 당시부터 미국이 심어놓은 DNA에 따라 미국이 만들어낸 세계체제에 편승해 지금까지 먹고 살았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미국을 애지중지하며 살아가는 이유가 단순히 과거의 혈맹이기 때문이라는 ‘의리론’에 입각해 생각한다면 큰 착각입니다.

우리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체제에 협조하면서 이득을 얻는 작은 제후국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고민은 때때로 국경을 넘어서는 것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작게는 대한민국의 보수우경화를 걱정해야 하지만 크게는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미래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우려까지가 오늘날 진보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품어야 할 고민은 근본적입니다. 너무 거창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현실이 그렇습니다.

좌절이라면 좌절이었을 법한 그 경험 이후 97년까지 10년여를 방황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장에 갔었고, 다시 막노동판을 전전하며 3년여를 보내다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그 무렵의 제가 스스로 대단히 불행하다거나 불운하다고 느끼지는 않았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작은 광고회사에 취직했고, 연애도 했으니까요. 그러나 세상에 대해 받았던 느낌은 오래도록 민감한 상처로 남았습니다. 버림받은 느낌, 상실감, 배신감에 저는 세상을 향해 실천 없는 냉소만을 보냈습니다.

작업장 마당에서 바라 본 작은 하늘

작년 12월 대통령 선거가 있던 날, 저는 그날처럼 비참하지는 않았습니다. 20년 전의 고등학생 무렵 여드름이 송송 맺혔던 시절 만났던 친구들을 20년 만에 만났기 때문일지도 모르죠. 20년 전 ‘서울지역고등학생연합’이란 결사체를 만들어 함께 활동하고, 거리를 뛰어다니고, 명동성당에서 농성을 함께 했던 마지막 날, 농성해산을 결정하면서 들었던 비참함이 워낙 컸던 탓인지 우리들은 2007년의 대통령 선거를 자못 침착하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의 제 삶이 이전과 같을 수 없다고 할 만큼 ‘그날의 기억'들은 현재까지도 제 삶의 중요한 자양분이자 아물지 않는 상처가 되고 있는 탓이었겠지요.

80년대 초반 어느 운동권 학생은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처음 들었던 순간의 감동은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저는 이 말이 지극히 오만한 표현일 수도 있겠단 생각을 합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비정규직 법안 때문에 강제 해직당한 뒤 삼성 본관 앞에서 시위를 하던 삼성 비정규직 여성노동자가 썼다는 편지글을 접했기 때문입니다.

그 편지의 내용은 이랬습니다. 고등학교 졸업식 날 학교 운동장에 대기하고 있던 삼성 버스를 타고 공장기숙사로 직행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사회에 내딛은 첫 걸음은 그대로 학교의 연장이었습니다. 비정규직 보호 법안이 통과되고 법률이 실제로 적용되면서  강제 해직당한 이 분은 고교를 졸업한 18살 때부터 지금까지 하루 12시간 맞교대로 일하면서 회사와 집, 집과 회사를 오가는 다람쥐 쳇바퀴 돌듯 살았다고 말합니다. 김진숙 선생의 『소금꽃나무』란 책에도 나오는 이야기인데, 당신이 일했던 시절엔 숙련공이 아니어도 고등학교를 나왔다는 이유로 완장 하나 채워주고 관리자 보조로 다른 노동자를 감독하는 일을 시키면서 노동자 사이에도 벽이 만들어지도록 했다고 합니다.

막 학교를 졸업하고 공장에 들어선 노동자들은 노동자를 길러내는 학교에서 다른 학교로 진학한 셈입니다. 관리자들은 종종 부모인 양, 교사인 양 마치 학생들 다루듯 이들을 훈육했다고 합니다. 볼 일이 있어도 잔업 때문에, 할당량 때문에 쉴 수가 없었고, 자기 맘대로 하루 쉬었다고 해서 하루 종일 손바닥만 한 유리창을 닦도록 하거나 일을 시키지 않고 남들 일하는 기계 앞에서 하루 종일 세워두는 것처럼 부당한 처우와 인격모독을 당할 때도 이들은 스스로 항의해볼 생각을 못했다고 고백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학교에서부터 늘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원래 세상이 다 그런 것 아니냐고 체념 속에 살았다고 합니다. 우리들이 실제 직장 속에서 경험하듯 말입니다. 세상은 원래 그런 것 아니냐고요.

이 분을 무시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이 분의 편지를 읽고 난 뒤 저는 돌아가신 제 할머니가 생각났습니다. 7남매 중 맏딸로 태어나 학교 문 앞에도 가보지 못했던 할머니는 나중에 간신히 한글을 떼셨지만 평생 동안 학교에 보내주지 않았던 외증조부, 당신의 부모님을 원망하셨습니다.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가끔 저는 할머니의 하늘이 꼭 저만 하겠단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우물 속 하늘을 보고 있을 테지요. 아마도 18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내내 공장에서 살아야 했던 그 분에겐 공장 마당에서 올려다 본 하늘이 당신이 알 수 있는 하늘의 전부였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할머니가 그러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제 할머니에게 조국이란 과연 슬퍼할 만한 대상이었을까, 조국을 위해 노여워해야 할 무엇이었을까? 조국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지탄을 받아야 하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되묻게 됩니다.

되돌릴 수 없는 민주주의, 그러나 소외된 민주주의

저는 노동자의 노동자 정체성 문제는 나중으로 하고, 민주화 20년 동안 진행된 민주주의로부터도 그들이 얼마나 멀리 소외된 채 살아가고 있는가를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제가 언제나 과로 체제에 시달리며 먹고 사는 문제에 시달리고 쫓기는 이들이라서 이들이 바보 멍청이라고 이야기하려는 게 아닙니다. 다만, 그것이 80년대 이후 우리 사회가 누린 민주화, 민주주의의 진실한 결과였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겁니다. 슬프게도 지난 80년대로부터 시작된 민주화는 아직까지 일상의 차원, 문화의 차원까지 뿌리내리지 못했습니다.

물론 좀더 많은 사람들이 민주화의 과실을 얻어냈고, 우리들 역시 그 수혜자들입니다. 그러나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해외펀드에 투자하고, 융자를 끼고 아파트를 구입했고, CMA통장에 월급을 넣어놓고 어떻게 하면 주식 재테크에 성공하여 보다 나은 중산층적인 삶을 살아갈 것인가 고민합니다. 모든 투쟁은 그 당사자들이 주체가 되어야 하고, 누구도 대신 싸워줄 수 없습니다. 지금 당장은 내가 아니지만, 청년 세대들이 우리를 대신하여 그 잔을 받고 있지만, 지금의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 패러다임은 결국 우리 앞에도 쓴 잔을 내려놓을 겁니다.

선거가 있던 날, 친구들을 만나러 가면서 택시를 탔는데, 기사 분이 투표를 했느냐고 묻더군요. 그 분이 하시는 말씀의 개별적인 사안은 구구절절이 진보적인 대안을 찾고, 진보적인 성향의 문제의식을 가졌지만 결론은 이명박에게 투표했단 것이었습니다. 여론조사를 해보면 우리 국민의 절반 이상이 스스로를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성향을 지녔다고 응답합니다. 그러나 투표결과는 그와 정반대로 나타나고 있지요. 지금 대한민국이 맞닥뜨리고 있는 이 결과, 누군가에게는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은 듯 미소 짓고 있는 이 결과는 결국 좀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던 사람들, 좀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이미 예전에 했던 소리를 내가 이 나이 먹고도 또 해야 하나?

작년에 왔던 각설이도 아니고, 앵벌이도 아닌데 사람들에게 이 체제가 어떤 것인지 무엇인지 말하기도 귀찮고, 현재의 내 삶이 그럭저럭 살만하고, 길거리에 나앉을 정도가 아닌데 뭐? 다시 말해 이 일이 내 일이 아닌 걸 하며 안주해온 결과란 말입니다. 더 많은 걸 누릴 기회를 얻었던, 이 말은 위만 올려다보지 말고, 밑도 한 번 내려다보란 말입니다. 민주주의를 일상의 차원, 문화의 차원으로까지 만들어서 모두가 자신이 처한 위치를 알 수 있도록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다고 생각되는 단계까지 만들어가는 일, 그것이 현재의 우리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말

지금으로부터 7년 전 아마 그 해 여름도 올해만큼 더웠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처음 “바람구두연방의 문화망명지”를 인터넷이란 망망대해에 띄울 때, 아마도 제가 만든 홈페이지는 익명의 바다에 떠 있는 작은 모래톱 정도도 되지 못했을 겁니다. 이제 나름의 시간이 흘러 태풍과 홍수, 범람과 가뭄의 7년 세월을 보내며 “문화망명지”는 익명의 바다에서 모여든 작은 산호와 모래알과 물고기와 이름 모를 2,500여 씨앗들이 날아와 섬이 되었습니다.

처음 홈페이지를 시작할 무렵의 저는 이제 막 결혼을 했고, 갓 서른이 된 이십대의 젊음과 십대 시절을 통과하며 온몸에 맺혔던 고통의 기억들이 생생한 사람이었습니다. 이곳에서조차 저는 종종 사막 한 복판에서 홀로 모래바람에 맞서는 것처럼 외롭고 쓸쓸했다는 걸 고백하렵니다. 사람으로 나서 사람처럼 살고 싶다는 믿음을 배신하도록 하는 건 언제나 사람이니까, 나 자신도 그런 사람의 부류에서 크게 달라질 수 없다는 거 너무 잘 아니까. 힘이 드는 것이겠지요.

어쩌면 이런 저의 쓸쓸함은 인간은 서로 연대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 신념이 소년의 신기루처럼 허망한 유토피아였다는 깨달음, 80년대의 해방적 기획들 속에서 잠시 형성되었던 공동체의 따뜻함조차 알고 보면 거품처럼 얄팍한 것이었다는 서글픈 기억들로부터 비롯되었는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그 안에서의 나는 너무나 자유로웠고, 행복했으며 무엇보다 따뜻했었다는 일종의 향수병 같은 것에서 연유한 것일지도…. 하지만 그 시절이 아무리 좋았다한들 삶은 좋았던 한 시절의 기억만으로는 살 수 없습니다. 또한 그 시절의 기억이 과연 깊어가는 겨울밤 어린 아이들에게 군밤을 구워주며 그때는 모두의 인심이 넉넉하고 자유로웠던 태평성대였다고 회고할 수도 없었겠지요.

새로운 절망 없이 새로운 희망을 꿈꿀 수 없다고 짐짓 자신 있게 말하면서도 누군가와 술 한 잔을 나눌 때, 나는 내 말을 잘 믿지 못합니다. 나쁜 현재 없이는 보다 나은 미래에 대한 낙관과 희망도 존재할 수 없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그 미래가 정말 나은 미래일지 누가 알 수 있겠습니까.

제가 만든 홈페이지의 이름이 “문화망명지”인 까닭은 근대 이후, 신(神)이 없어진 시대 이후,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낸 이성의 신, 과학의 신, 역사의 신조차 믿을 수 없게 된 오늘날 우리들을 둘러싸고 있는 이 현실의 내부와 외부의 구분이 무의미해진 현재의 체제를 극복해보자는 의도를 담고 있습니다. 말은 거창하지만 거기에 도달할 방도가 저라고 해서 있는 건 아닙니다. 다만 지금 다른 세상을 상상해보는 일 이외에 무엇을 또 할 수 있을까? 희망도 없이, 말도 없이 사랑하는 일이 분명 허무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와 같이 내부와 외부를 구분할 수 없었던 시대가 지금이 처음은 아니란 겁니다. 같은 의미에서 서구의 중세 기독교 사회야말로 내부와 외부, 인간의 삶과 죽음까지 모두를 기독교라는 거대한 문명체계가 장악했던 시대입니다. 중세의 인간들은 탄생부터 삶과 죽음 그리고 이후의 세계까지 모두를 기독교라는 거대한 문화체계 속에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문화 속에서도 인간은 다른 세상을 상상했고, 중세시대의 이단자들은 그와 같은 문화망명을 단행했던 이들이겠죠.

만약 제게 어떤 창조성이 숨겨져 있다면 그것은 서로 소통을 희망하는 공간을 만들어내고, 그 공간을 7년 동안 한결같이 지속해온 성실성일 겁니다. 하지만 제게 숨겨진 가장 큰 힘은 아마도 누군가와 더불어 세상과 자연, 우주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고, 기뻐하고 싶다는 결핍의 감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 모든 이에게 절망하면서도 다시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것은 결국 희망을 건다는 의미이겠지요. 그것이 아마도 모든 창조자의 힘이리라 생각합니다.

사람의 발목을 잡는 것은 절망이 아니라 체념, 사람을 앞으로 가게 만드는 것은 희망이 아니라 의지라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 저에겐 꽤나 오랜 시간이 필요했었습니다. 오늘도 저는 희망도, 기대도 없이 사랑하고 있습니다. 이 짓을 왜 하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사랑하는 일마저 멈춘다면 도대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 되묻고 싶습니다.

그때 그때 최선을 다하고 시시한 후회 따위는 하지 않는 것, 어차피 사람은 그 정도 일밖에 할 수 없는 것이라고. 사랑하라! 희망도 없이, 말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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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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