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터 키튼 세트(1~18) - 우라사와 나오키 그림 | 가쓰시카 호쿠세이 스토리 | 대원씨아이(2004)




"우라사와 나오키"란 이름은 90년대 중후반부터 우리에게 익숙해지기 시작한 일본의 만화작가이다. 내가 우라사와 나오키를 처음 알게 된 것은 "파인애플 아미(Pineapple Army, 1986)"를 통해서 였다. 이 작품에서 "파인애플"의 의미가 무엇인지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확실한 건, 파인애플이란 미국식 그레네이드(수류탄)의 별명이란 거다. 이 작품을 보면서 처음에 굉장히 낯설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그 무렵 소개되던 일본 만화의 거의 태반이 아동만화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들인데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그림체 또한 당시 만화선들보다 다소 굵고, 거칠고 인물 캐릭터 묘사도 예쁘다기보다는 평범한 느낌이어서 도리어 그런 부분들이 매우 낯설게 여겨졌다. 다만 우라사와 나오키가가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신선한 느낌인 사실적인 무기 묘사, 전문가 수준의 서바이벌 파이팅 기술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었다(서바이벌 게임 말고, 서바이벌이란 극한 상황과 지역에서 생존하는 기술을 의미한다).

 

"마스터 키튼"은 내 개인적으로는 약간 특기할 만한 작품이다. 우선 다시 만화를 읽기 시작하면서 내 평생 처음 사들인 만화책이기 때문이다(이후 우라사와 나오키의 "몬스터, 20세기 소년", 요시다 아키미의 "바나나 피쉬" 등을 사들였다). 만화책에 대해 특별한 폄하는 없었지만 이전까지는 돈을 들여 사놓고 집에 보관하면서 읽는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만큼 "마스터 키튼"의 사실적인 묘사와 탄탄한 구성력, 지적이면서 인간적인 재미는 나를 사로잡았다. "마스터 키튼"의 무엇이 그렇게 재미있었을까? 이 작품이 주는 재미의 원천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본다.

 

▶ 세계 모든 특수부대의 아버지라 불리는 영국의 SAS 휘장: Who Dares Wins

아동용 그림책의 일러스트를 문학 장르에 비유하면 시(詩)에 비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아동용 그림책은 대개 24쪽 내외로 한장한장의 그림에 상징과 함축된 의미를 담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만화는 내러티브와 화면 구성 등을 살펴보면 쉽게 영화에 비유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만화를 대체로 구분없이 사용하지만 크게 카툰과 코믹스로 분류할 수 있고, 코믹스 내에서도 극화체와 만화체의 구분을 둔다. 대개의 일본 만화들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극화체 중간중간에 코믹한 요소들은 만화체를 사용하는 방식을 오간다. "마스터 키튼"에선 이런 코믹한 만화체 사용은 전무하다. 그런 점에서 "마스터 키튼"은 완전한 성인용 만화라고 할 수 있다. 성인용 만화라고 하면 대개 섹스와 폭력이 끈적끈적하게 묻어나는 것을 연상할 수 있지만, "마스터 키튼"은 아무리 점잖은 자리에 가더라도 펼쳐놓고 읽는데 전혀 거리낄 것이 없다. 도리어 신문에서 알려주지 않는 내용, 외신의 행간을 잘 짚어봐야 해석가능한 사건들을 일러주는 교양이 녹아 있다.

 

"마스터 키튼"이 주는 첫번째 재미는 이것이 성인용 만화라는데 있다. 예를 들어 "마스터 키튼" 6권 '위선의 유니온 잭'에는 영국SAS와 아일랜드 IRA 사이의 일상화된 테러 이야기를 주요 에피소드로 삼고, 8권 "표범 우리"에서는 영국이 참전했던 걸프전쟁을 배경으로 한 에피소드를 담는다. 경우에 따라 "마스터 키튼"이 보여주는 균형잡힌 정의는 진실한 정의에 해당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작품이 보여주는 내용은 동의할 만한 수준의 것들이다. 다이치 키튼 자신은 이혼당하여 딸 하나를 둔 시간 강사다. 그는 도나우강 문명이란 고고학 분야의 소수의견를 주장하는, 그래서 학문적으로는 높이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지식인이자 전직 SAS 서바이벌 교관, 현재는 로이드 보험사의 직원이다. 그의 직업이나 생활이 성인이라서 이 작품이 성인용은 아니다. 우라사와 나오키는 스토리 작가 가쓰시카 호쿠세이와 더불어 인문학적인 교양이 녹아든 지적 재미를 만끽하게 해준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은 성인용이 된다.

 

▶ "마스터 키튼"의 주인공 '다이치 키튼'. 겉보기에 사람 좋게 웃고 있는 보험조사원이지만 영국특수부대(SAS) 출신의 서바이벌 마스터이자 고고학자로 '스펙'만 놓고 보자면 007의 제임스 본드 쯤 되려나~

 

"마스터 키튼"이 주는 두번째 재미는 주인공 "다이치 키튼"이 보여주는 균형잡힌 시선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자면 키튼의 캐릭터가 선사하는 재미라고 할 것이다. 키튼은 일본인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다. 동양과 서양의 혼합이 반드시 이 양자 사의 절묘한 배합을 이뤄낸다고 할 수는 없지만, 키튼의 경우에 한정해보자면 이 양자가 적절한 정도로 배합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서구의 합리성과 동양의 인간미를 한 몸에 녹아들이고 있다. 그는 양측의 세계에 모두 속해있지만, 동시에 약측의 세계로부터 일정하게 거리를 둔 인물이다. 그는 어느 부류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소외의 대상이지만, 스스로 자초한 고립이라는 점에서 또한 강자이다. 이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개인주의와도 일맥상통한다. 많은 이들이 조직에 소속되길 원치 않지만, 실력있는 자로 대접받고 싶어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마스터 키튼"은 이런 시선을 통해 소수자에 대한 다수의 폭력을 보여주는데, 네오 나치들에 의한 터키인 차별을 다룬 "검은 숲"에서 잘 드러난다.

 

세번째 재미는 "마스터 키튼"의 사실성이다.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소설들 "다빈치 코드"와 같은 것들은 전문적인 지식이 없어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만, 전문적인 지식을 쌓으면 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이런류의 소설을 사실(fact)와 소설(fiction)을 합성해서 팩션(faction)이라고 한다는데,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읽노라면 저절로 중세 교회와 수도원의 모습, 종교재판, 당시 사람들의 심리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스터 키튼의 사실성은 우선 그림의 배경이 되는 유럽 곳곳의 풍광 묘사가 매우 사실적이라는데 있다. 키튼이 행동하는 지역이 상당히 여러 곳이란 점을 고려해보면  이런 사실적인 묘사는 충분한 사전조사 없이는 불가능해 보인다(그는 이런 조사를 바탕으로 "몬스터"에서는 더한층 깊어진 묘사력을 보여준다). 그러나 "마스터 키튼"의 사실성이 단순히 배경 묘사 정도에 머무는 것은 아니다.

 

우선, 마스터 키튼 자신이 지닌 놀라운(?) 서바이벌 능력과 인문학적 지식에 바탕한 그럴듯한 이야기들이 지닌 사실성은 매력을 더해준다. 우선 키튼이 SAS(Special Air Service)의 서바이벌 교관 출신이고, 포클랜드 전쟁에 참전했던 베테랑이란 설정은 미국 중심에 익숙해 있는 이들에겐 참신하면서 매우 적절한 설정으로 보인다. SAS를 우리말로 직역해보면 공군특수부대 혹은 공정부대 정도가 될 텐데, SAS는 그렇게 간단하게 설명될 수 있는 부대가 아니다. 오늘날 세계에는 수많은 특수부대가 존재하는데 그 종류가 가장 다양한 나라는 물론 미국이지만, 모든 특수부대의 아버지라고 일컬을 만한 존재는 영국의 SAS이다. 제2차 세계대전 초기 덩케르크에서 치욕적인 철수를 할 수밖에 없었던 영국은 국민의 사기를 높이고 추축국에 타격을 가하기 위해 특수부대를 계획한다.

 

이때 생겨난 부대가 오늘날 특수부대란 보통명사로 사용되는 "코만도"인데, 이들 가운데 현존하는 것이 영국의 SAS와 SBS이다. 이 가운데 "돌진하는 자가 승리한다(who dares win)"는 모토를 지닌 SAS가 가장 유명하다. 특히 이들의 명성을 높이게 된 사건은 지난 1980년 5월 런던 주재 이란대사관 인질 구출 작전을 통해서였다. SAS는 헬기를 통해 대사관 지붕으로 내려와 대사관 내부로 잠입한 뒤 테러범 6명 중 5명을 사살하고, 진입 전에 살해당한 1명을 제외한 19명의 인질 모두를 무사히 구출해낸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엔 미군 레인저부대가 SAS에 의해 교육받았고, 전후엔 독일 GSG-9 등을 교육했다. SAS는 대테러작전에 필요한 전술교리는 물론 이때 필요한 무기들을 개발하여 세계의 대테러부대에 보급하기도 했다. 이들은 대테러작전에만 임하는 것이 아니라 본래 임무인 군 작전에도 참여하였는데, 1980년 아프가니스탄에선 무자헤딘을 교육시켰고, 1982년 포클랜드 전쟁, 1991년 걸프전 등에 참전했다.

 

사실, 우라사와 나오키의 "마스터 키튼"이 지닌 사실성은 그 자신의 관심과 전문지식도 중요했지만, 그의 작업을 도와주는 여러 전문가 그룹이 존재하는 덕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모든 재미의 요소들도 "마스터 키튼" 자신이 지닌 매력에는 비교할 수 없다. "마스터 키튼"은 한 권 당 서너 개의 독립된 에피소드로 구성된 옴니버스 방식의 작품이다. 그 탓만은 아니겠지만 특정 장르로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에피소드들은 그 특성에 따라 여러 장르로 분화될 수 있는데, 작품을 읽다보면 마치 종합선물세트를 풀었을 때 느낌 같다.  추리, 미스테리, 액션, 휴먼 드라마 등 온갖 장르들이 뒤섞여 있다. 이렇듯 온갖 장르의 혼합이 가능한 것은 "다이치 키튼"이란 캐릭터가 지닌 독특한 성격과 개방성에서 유래한다. 혹자는 "마스터 키튼"을 '셜록 홈즈' '맥가이버' '인디아나 존스'를 한데 버무린 듯한 이라고 묘사하는데, 물론 이 말들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지만 "마스터 키튼"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들을 고려했을 때 이 사람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유감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그는 바로 이제는 고인이 된 "피터 포크"가 열연했던 "형사 콜롬보"다.

 

"마스터 키튼"의 주인공 캐릭터의 개방성은 고고학 박사, 지식인, SAS특수부대원, 일본과 영국의 혼혈, 로이드 보험조사원 등 어느 것을 해도 어울리지만, 동시에 어느 것도 어울리지 않는다는 그만의 캐릭터를 구성해낸다. 그는 고고학박사지만 난 척하지 않고, 전직 특수부대원 출신이지만 우락부락한 근육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의 국적 역시 작중 인물들조차 헷갈려 할 만큼 모호하다. 이런 모호함은 특히 겉보기에 어수룩해 보이고, 그가 결코 이길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억센 인물들과 겨루어야 하는 위기 상황에서 더 큰 빛을 발휘한다. 어디선가 많이 본듯한 포즈다 싶었는데, 형사 콜롬보와 매우 흡사하다. 털털이 시보레를 손수 운전하고 다니는 형사 콜롬보, 어깨는 축 처져 있고, 두 눈은 졸음에 찌들었다. 누런 트렌치코트 어깨 위엔 비듬이 수두룩할 것 같은 졸린 눈의 이 형사는 늘상 자신보다 뛰어난 지능과 지위, 권력과 부를 지닌 이들과 겨루어야 한다. 범인들은 그의 외모를 바라보며 마음 속으로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그런데 결과는 콜롬보의 승리다. 마스터 키튼의 승리는 이런 어리숙함, 선량함에 의해 더욱 빛이 난다. 이는 또한 키튼의 인간미를 더해주어 "마스터 키튼"의 전체 이야기구조를 강화시켜주는 미덕을 지닌다.

 

◀ 마스터 키튼의 주요 등장인물들

 

이외에도 자칫 단조로와지기 쉬운 옴니버스 방식의 이야기들에 재미를 더해주는 적절한 조역들이 등장한다. 같이 보험조사원 일을 하고 있는 다니엘,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지만 실제로는 매우 신사적인 아버지 히라가. 아버지보다는 어머니를 닮아 명석한 키튼의 외동딸 유리코, 키튼의 어린 시절 친구이자 마치 영화 "그랑 블루"에서 장 르노가 연기했던 엔조(Enzo)를 연상케하는 캐릭터인 찰리 등이 이야기의 재미를 더한다.

 

그렇다고 "마스터 키튼"에 장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우선 그의 균형잡힌 시선이 때로 강박처럼 여겨질 때가 있는데, 균형이란 말만큼 정치적으로 위태로운 감각도 드물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예를 들어 정치적으로 민감할 수 있는 사안을 취급할 때 마스터 키튼은 선택을 한다기 보다는 그 양자 사이에 그냥 놓여진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이것은 균형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방관일 수 있다. 그의 이런 방관적인 자세는 "마스터 키튼"의 휴먼드라마가 얕은 성찰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한계로 작용한다. 실제로 다이치 키튼은 영국도 일본도 아닌 코스모폴리탄처럼 그려지지만 작품의 내용은 주로 근현대사 속에서 영국이 저지른 실책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그 과정에서 키튼의 일본인 아버지 히라가는 적절한 조언자 역할을 담당한다. 하지만 전체 18권이 진행되는 동안 단 하나의 에피소드도 일본의 실책을 다룬 것이 없으며, 일본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도 느낄 수 없다. 또 한 가지는 이야기가 18권에 이르는 동안 이야기 패턴이 익숙해져 버리는 바람에 극적인 긴장감이 떨어지는 부분이다.

 

이런 점들을 고려한다 하더라도 대중만화에서 쉽게 다루기 어려운 인종차별, 전쟁, 역사 등을 작품 속에 적절히 녹여 지적인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솜씨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이 작품만의 뛰어난 매력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아직 읽어보지 못한 분들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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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1916년 부활절』 -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지음, 황동규 옮김 / 솔출판사(1995)



예이츠는 1865년 더블린 외곽 샌디먼트라는 곳에서 영국계 부모 밑에서 태어났으나 평생을 아일랜드의 시인으로 살았기 때문이다. 그의 부모가 영국계라고는 하나 그의 집안은 200년 이상 아일랜드에서 살았다. 그의 가계는 대대로 성직자 집안이었으나 부친 J.B 예이츠는 법률공부를 했다. 그러나 법률가가 되는 것을 포기하고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가 되었다. 부친이 화가였다고는 하나 생활을 꾸려나가는 것은 쉽지 않았고, 예이츠 역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화가를 포기하고 시업에만 전념했다.


내가 예이츠를 재인식하게 된 것은 지난 1991년 아직 대학생이지 못하던 시절 어느 후미진 극장에서 보았던 영화 <멤피스벨(Memphis Belle)> 때문이었다. 그 무렵의 나는 아직 대학생이 아니었고, 그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사람이었다.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그 순간의 자기 자신이 얼마나 초라하게 느껴지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개봉 당시 그다지 인기를 얻지 못했는지 관객도 별로 없는 극장의 어둠 속에서 나는 무엇을 응시하고 있었을까? 우리에게 예이츠는 그의 명성을 드높이면서 동시에 그에 대해 괜히 잘 아는 척하게 되는 작품 「호수 섬 이니스프리(The Lake Isle of Innisfree)」로 기억된다. "나 이제 일어나 가리, 이니스프리로"란 인상적인 첫 구절이 주는 낭만과 처음부터 끝까지 호수의 잔잔한 이미지가 연상되는 싯구를 따라 예이츠의 이미지도 거기에 종속되어 버린다.


예이츠를 어떤 시인이라고 규정하는 다소의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굳이 그의 시적인 세계를 이야기해본다면, "아일랜드 민족주의"와 "신비주의"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시집의 번역자이자 시인인 황동규 선생의  해설에도 드러나고 있지만 "20세기의 시인들 가운데 예이츠처럼 명성의 오르내림 없이 사랑을 받는 시인"은 드물다. 그 이유 가장 큰 이유야 역시 그의 시가 지닌 탁월한 성취에 기인하지만, 다른 이유를 꼽자면 그 중 하나는 20세기에 출몰한 특별한 문예사조들 어디에도 그의 시가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상징주의에도 모더니즘에도 해당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시인이었고, 그것에만 충실한 삶을 살았다.


예이츠의 시에서 드러나는 신비주의는 아마도 에드바르트 뭉크의 화풍에 가계가 성직자 집안이었던 영향이 녹아드는 것처럼 성직자 집안으로 몇 대에 걸쳤던 영향력 아래 있는 것일 게다. 예이츠의 부친은 신학을 포기하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비종교적인 인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예이츠 역시 기질상 기독교적인 전통을 신봉하는 신자는 아니었으나 그것을 대체할만한 종교적 비의를 찾아 일생을 추구했다(따지고 보면 아일랜드는 켈트족 본래의 종교인 드루이드(Druides)의 전통이 강한 곳이 아닌가). 예이츠의 시세계가 변천해가는 과정은 몇 개의 중요한 시기들로 구분된다. 초기 런던의 시인들(셸리와 같은)에게서 영향을 받던 낭만적인 시기의 시들에서는 어머니의 고향 슬라이고의 지명과 민담 등을 시적인 소재로 사용하고 있다. 앞서 이야기했던 '호수 섬 이니스프리' 역시 이런 시기의 경향을 대표하고 있는 시이다.


▶ 아일랜드 민족주의자들이 일으킨 1916년 부활절 봉기 당시 모습

그는 종종 발표할 당시의 시를 다시 시집으로 묶으면서 새로운 시어로 교체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주로 자기도취적인 낭만주의적 경향의 시어들을 제거하는데 치중되곤 했다. 그는 좀더 목소리를 낮춰 자신이 독자들에게 보여주고자 했던 이미지들을 보편적인 것으로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그의 시는 좀더 구체적인 이미지들을 추구해 나간다. 그 자신은 이때의 경향에 대해 "비인격적인 아름다움을 포기하고 정상적이고, 정열적이며 분별력이 있는 자아"를 지니고자 했다고 말한다. 그런 시기에 나온 시들이 이 시집에도 수록되어 있는 '물 속의 자신을 찬미하는 늙은이들'이다.


나는 들었다, 저 늙고 늙은 늙은이들이 말하는 걸,

"아름다운 모든 것은 떠내려 간다
물처럼."
I heard the old, old men say,
'All that;s beautiful drifts away
Like the waters.'


이 시기에 그는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만남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여인 "모드 곤(Maud Gonne)"을 만난다. 예이츠는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내 인생의 고뇌는 시작됐다"고 고백할 만큼 아름답고 아일랜드 독립에 대한 신념에 가득 찬 독립운동가였다. 그러나 모드 곤은 자신을 열렬히 사랑했던 예이츠의 청혼을 거절하고 다른 독립운동가와 결혼했던 그녀의 남편이 1916년 부활절 봉기 때 처형당하자 예이츠는 또다시 청혼한다. 모드 곤은 예이츠의 청혼을 다시 거절했고, 결국 예이츠는 다른 여자와 결혼하며 그녀를 기억속에 접었다. 훗날 예이츠는 그녀가 자신을 받아들였다면 자신은 그저 평범한 시인에 그쳤을 것이라고 회상하기도 했다. 예이츠는 수년간 그녀에게 필사적인 구애를 펼쳤으나 열렬한 아일랜드 민족주의자였던 모드 곤은 그의 구혼을 완강하게 뿌리치고 만다. 이때 그는 '두 번째 트로이는 없다 No Second Troy'에서 그녀를 트로이의 헬렌에 비유했다.


모드 곤의 사랑을 얻는데 실패한 예이츠는 아일랜드 문학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그레고리 부인을 만나 사귀게 되면서 마음의 안정도 찾게 된다. 그는 자신의 혼란에 질서를 부여하고 싶었고, 그의 이런 시도들은 매우 복합적인 형태로 작용한다. 그는 중산층의 속물의식을 혐오했으며 종종 걸인이나 농부들과 같은 계급 혹은 그 이상의 계급인 귀족적인 아름다움에서 이상적인 인물을 발견해낸다.



▶ 이니스프리의 호수 섬

그의 명성도 점점 더 높아져 더 이상 시인으로서만 머물 수 없게 되어, 그는 1922년엔 갓 건국한 아일랜드 공화국의 상원위원에 지명되어 1928년까지 활동한다. 이 무렵 쓰인 시 중 하나가 영화 <멤피스 벨>에도 일부 인용된 시 '아일랜드 비행사가 죽음을 내다보다 An Irish Airman Foresees His Death'이다.


나는 안다, 저 구름 속 어디에선가
내 운명과 만나게 될 것을.
내 싸우는 자들 내 미워하지 않고
내 지키는 자들 내 사랑하지 않는다.
I know that I shall meet my fate
Somewhere among the clouds above;
Those that I fight I do not hate,
Those that I guard I do not love;


시인은 이후 한층 더 원숙해진 시어들, 사실적인 언어들을 통해 신비스러운 힘을 발휘한다. 이 시집의 번역자인 황동규 시인은 그의 대표적인 시 '풍장(風葬)'을 통해 그 자신이 예이츠의 영향을 받았음을 일부 시인하고 있다.


"내 마지막 길 떠날 때/ 모든 것 버리고 가도, / 혀 끝에 남은 물기까지 말리고 가도,/ 마지막으로 양 허파에 담았던 공기는/ 그냥 지니고 가리. / 가슴 좀 갑갑하겠지만 / 그냥 담고 가리."

<황동규, 풍장 28 중에서>


"한 외로운 환희의 충동이 나를/ 이 설레이는 구름 속으로 나를 몰아넣었다./ 나는 모든 것을 재어보았다, 마음 속에 떠올려./ 이 삶, 이 죽음과 견주어 볼 때/ 앞으로 올 세월도 지나간 세월도/ 호흡의, 호흡의 낭비로 보였다."

<예이츠, 아일랜드 비행사가 죽음을 내다보다 중에서>


예이츠는 말년에 이르러 이런 말을 했다.
"모든 것을 한 마디로 요약해 본다면, 사람은 진리를 구현할 수는 있으나 그것을 알 수는 없다고 말하겠다 … 추상적인 것은 삶이 아니며 도처에서 자기모순을 드러낸다. 그대는 헤겔을 반박할 수 있지만, 성자나 6펜스의 노래(Song of Sixpence)를 반박할 수는 없다." 모든 생명이 지난 삶에 대한 반성을 통해 제 자리를 찾는다. 그것이 과학적인 개념으로 보았을 때는 진화라고 부르는 것일 게다. 우리는 우리의 삶과 죽음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더 나은 미래를 살 수 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기에…. 예이츠의 시는 합리주의에 기초한 서구철학과는 다른 방향으로 진화해 갔다. 그의 성찰이 담긴 시집 한 권을 읽어보는 것도 좋은 일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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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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