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 스타를 통해본 대중문화론 - 에드가 모랭 / 문예출판사(1992년)


 


에드가 모랭의 "스타 - 스타를 통해본 대중문화론"은 대학 다닐 때 리포트 제출 참고용 도서로 구입했었다. 책이 여직 깨끗한 것으로 보아 그 무렵 구입해 한 차례 읽고는 오랫동안 책꽂이에 꽂힌 채 다시 읽게 될 날을 기다려 왔던 모양이다. 얼마전에야 나는 이 책을 덮고 있던 오래된 비닐을 뜯어내고 새로 비닐 포장을 했다. 얼마전 원전 반대 어쩌구하면서 생태 이야기를 한참 떠들어댔는데 책을 비닐로 포장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뭐냐고 화낼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언젠가 나만의 용도로 이 책들을 재활용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서 그러하는 것이므로 널리 양해를 구한다. 에드가 모랭이 이 책을 처음 쓴 것이 1972년의 일이므로 현재의 관점에서 보자면 다소 낡은 스타들이 들먹여지는 감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 책이 오늘날까지 여전히 유의미한 까닭은 이 책에서 들먹여지는 스타들이 이미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학적인 의미에서, 대중문화적인 차원에서의 스타와 스타시스템은 여전히 온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처음엔 독설가로 널리 알려진 버나드 쇼의 "야만인은 나무와 돌로 된 우상을 숭배하고, 문명인은 살과 피로 된 우상을 숭배한다."는 글이 쓰여 있다. 이 문장은 에드가 모랭이 이 책을 통해 스타를 분석하는 두 가지 키워드를 잘 드러내고 있다. "스타 - 스타를 통해본 대중문화론"은 말 그대로 사회학적인 현상접근법을 이용해 스타의 출현과정과 배경, 스타 시스템이 대중과 대중문화에 끼치는 영향과 수용과정, 그리고 그 의미에 대해 면밀하게 살피고 있다. 물론 이 때의 면밀함이란 영미권 학자들의 그런 면밀함과는 다소 차이를 보인다. 에드가 모랭은 1921년 파리에서 태어난 그의 서술 방식이 가지고 있는 면밀함이란 사료에 입증해 조목조목 따지고 들어가는 실증적인 면밀함이라기 보다는 에세이적인, 다분히 직관적인 방식을 통하고 있다. 예를 들어 그는 "어떤 감독들은 자신의 스타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지만, 오랫동안 할리우드에서는 스타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그들에게 없었다. 스타의 탄생은 영화산업이 체험할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기쁜 사건이었다."란 식으로 스타의 탄생을 표현한다.




그런 점들이 이 책을 읽는 재미이다. 1926년 8월 23일 루돌프 발렌티노가 숨을 거둔 병원 앞에서 두 명의 여자가 자살한다. 그의 죽음은 스타 전성 시대의 절정을 알리는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할리우드가 산업적으로 부추긴 (고전적 의미에서의)스타 시스템은 마릴린 먼로를 마지막으로 종지부를 찍게 된다. 1950년대 중반에 이미 스타들은 - 말론 브랜도, 제임스 딘 등 -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들에 의한 스타 시스템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대공황기에 절정에 달했던 스타 시스템은 TV의 등장과 함께 보다 커다란 스펙타클에 자리를 내어주어야 했다. 사람들은 할리우드가 만들어낸 스타 보다는 좀더 친근한 스타를 원했다. 에드가 모랭은 할리우드와 스타시스템에 대해 정치적인 비판을 가하기 보다는 현상 자체에 주목하여 이를 분석하는 방식을 취한다. 그런 점은 이 책을 읽는 재미를 개인적으로 다소 반감시키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 책이 지닌 미덕이기도 하다.


스타는 근본적으로 착하며, 영화 속에서의 이 착함은 사생활에서도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된다. 스타는 자신의 팬들에 대해서 귀찮아해서도, 무관심해서도, 또 부주의해서도 안 된다. 스타는 항상 팬들을 도와야 한다; 스타는 그것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스타는 항상 모든 사람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스타는 권위와 용기 그리고 재치가 있다. 따라서 스타에게서 허물없고 애정어린 또 도덕적인 조언을 구하는 것이다. <본문 71쪽>


스타는 신이고, 관객은 스타를 그러한 존재로 만들어 낸다. 종종 스캔들이 발생한 스타들은 공인으로서 물의를 일으킨데 대해 죄송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어떤 평자들은 누가 그들에게 공인으로서의 지위를 허락했는가 시비를 건다.(거기엔 나 또한 포함되곤 한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그들에 반대하든, 찬성하든 그들이 논의의 중심에 놓여지는 순간 이미 그들은 공인으로서의 지위를 획득한다. 만약 그것, 공인의 지위 획득은 오로지 대의민주주의적 표결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대중사회의 속성에 대한 평자들의 몰이해를 반영하는 것일 뿐이다. 1936년의 미 합중국 대통령 선거 때, 프랭크 카프라의 "디즈 씨 시내에 가다"를 본 팬들은 영화 속에서 훌륭한 정치적 태도를 나타낸 디즈 씨(게리 쿠퍼)를 선거에 출마시키려고 시도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오늘날엔 실제로 이런 일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 아놀드 슈왈츠제네거를 보라!


스타는 신(우상)이며, 어느날 인간을 위해 제조되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들이다. 동시에 그들은 상품이다. 스타는 자본으로서의 상품이며, 그들은 희소한 가치로 인정받는 다이아몬드와 같은 존재이므로 자본이라는 개념 자체와 혼동되고, 신용화폐의 가치를 부여받는다. 신이면서 동시에 사물인 스타.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적인 관점은 이 때 매우 유효하다. 스타는 신화(물신, 현신)이지만 단지 몽상이 아니라 힘이 있는 관념이다. 그러나 대중문화란 치열한 투쟁의 현장에서 스타는 종종 압도적인 스펙타클을 앞세워 위세를 드러내고 승리하는 듯 보이나 더이상 과거의 위세를 떨칠 수 없다. 해피엔드의 도그마는 점차 부정당하고 있으며, 영화가 현실의 내러티브를 닮아가는 동안 비극적이게도 스타들은 더이상 신적인 지위를 얻을 수 없다. 그럼에도 스타는 아직 일부의 대중들에겐 여전히 신적인 우상으로 떠받들어진다. 에드가 모랭은 스타의 영향은 청춘기 이전, 남성보다는 여성, 중간 사회 계층에 더 많이 잔존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에드가 모랭은 스타시스템과 스타를 분석하지만 이에 대해 특정한 정치적 의사를 최소한 표면적으로는 반영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문장을 통해 이미 많은 문제들을 제기하고 있다.


할리우드의 영화들은 서양을 모델로 한 일종의 국제화의 방향에서, 비부르주아적이고 전(前)공업적인 많은 민족문화에 효소로 작용하는 작품을 세계에 널리 퍼뜨린다. 어떤 혼합이 이루어질까? 다른 요구에 기초한, 즉 사회주의에서 생겨난 다른 문화는 그 영향과 싸울 수 있을까? 어떤 방식으로 싸울까? 우리는 아직 아무런 예측도 할 수 없다. <본분 193쪽>


과연 현재의 우리, 2005년의 우리는 저 예측에 대해 무어라 말할 수 있을까.

* 이 책에는 70여 장에 이르는 스타들의 도판이 담겨 있는데, 개인적으로 이 책의 85면에 있는 알랭 들롱의 사진(크리스티앙 자크의 1963년 작 <검은 튤립>의 스냅 사진)은 너무나 매력적이다.


** 에드가 모랭의 이 책에 기대어

"기호학으로 본 스타시스템의 변화(http://windshoes.khan.kr/612)"란 글을 발표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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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vis Presley - Elvis 30 #1 Hits - BMG 플래티넘 콜렉션 (수입)
엘비스 프레슬리 (Elvis Presley) 노래 / SonyBMG(수입) / 2002년 12월


영화 "MIB"엔 이런 대사가 있다. "엘비스가 죽었다구? 천만에 그는 고향 별로 돌아갔어."

1935년 1월 8일 소위 미국의 딥 사우스(deep south)인 미시시피주 미시시피 주 투펠로에서 태어나 1977년 8월 16일 숨질 때까지 엘비스 프레슬리는 살아있는 신이었다. 에드가 모랭은 그의 저작 "스타"를 통해 스타됨의 미덕이랄까, 스타의 조건을 다음의 네 가지로 규정했는데, 그것은
‘미모,젊음, 착한 이미지,초인격적 행위' 이다. 스타가 반신반인(半神半人)의 존재란 것을 "MIB"의 대사는 그들을 외계인으로 묘사함으로써 역설한다. 다른 말로 하자면 그들은 인간이 아닌 존재들이란 셈이다.


굳이 에드가 모랭의 조건들을 제시하지 않더라도 엘비스 프레슬리는 스타가 지닐만한 모든 요소를 지녔다. 미모와 젊음, 착한 이미지와 초인격적 행위들은 물론 그 삶을 마감하는 비극, 가난하고 굶주렸던 어린 시절 등 그는 과거 신화 속의 영웅이 운명을 딛고 일어섰다가 다시 몰락하는 비극의 주인공과 같은 삶을 살았다. 미국의 가장 진지한 뮤지션 중 하나로 손꼽히는 브루스 스프링스틴조차 "에드 설리번쇼"에 출연한 엘비스를 본 순간 어머니에게
"나도 저 사람처럼 되고 싶어!"라고 말했다고 하지 않던가. 엘비스의 존재는 단순히 당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후대에도 꾸준하게 이어져 간다. 존 레논은 엘비스의 "헛브레이크호텔(Heartbreak Hote)"을 들은 뒤의 삶은 이전의 삶과 완전히 다른 삶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밥 딜런 역시  "That`s All Right Mama"에 완전히 매료당했다고 말한다.



이 음반 "Elvis 30 #1 Hits"은 그런 엘비스의 베스트음반이다. 음악평론가 임진모 선생은 "시대를 빛낸 정상의 앨범"에서 엘비스의 "Elvis' Golden Records(1958)"를 시대를 빛낸 정상의 앨범 가운데 하나로 손 꼽았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LP시대의 뮤지션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엘비스는 존 레논이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변화시킨 뮤지션으로 손 꼽고 있음에도 "비틀즈" 이후 세대의 사람들에겐 머리에 포마드나 바르고, 느끼하게 다리나 흔들흔들하는 엔터테이너 이상의 의미를 얻기 힘들었다. 그런 점에서 BMG에서 제작한 이 음반은 지금의 세대에게 엘비스의 매력을 다시금 발견할 수 있게 해주는 좋은 기획일 것이다. 디지털 세대의 귀를 움직일 수 있도록 리마스터링된 음반은 디지털 음반 제작기술의 장점을 잘 살려주고 있다.


엘비스는 흑인의 음악성을 백인의 목소리로 표현해주길 원하던 시대에 출현한 뛰어난 뮤지션이었다. 이 앨범에 수록된 곡들은 그의 58년 골든디스크 앨범에 수록된 곡들을 거의 전부 재수록하고 있다. 그가 군입대 이전 발표한 곡들부터 군에서 제대한 뒤 발표한 곡들까지.... 어떤 의미에서 엘비스는 그와 선배이자 경쟁자였던 프랭크 시내트라에게 패배했다. 그는 록큰롤의 신기원을 이룩했으나 이것을 좀더 밀고나가지 못하고 군 제대 이후엔 서서히 프랭크 시내트라 풍의 스탠더드 팝으로 전이해 갔기 때문이다. 엘비스는 위대했으나 선배인 플랭크 시내트라와 후배인 비틀즈 사이의 과도기 속에 놓인 다리였는지도 모른다. 엘비스는 늘 자신의 인기에 대해 불안해 했다. 그는 한 평론가와의 인터뷰에서
"대체 소녀들을 그토록 열광하게 만드는 요인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아마 그 또한 신이 주신 선물일 겁니다. 전 그렇게 믿어요.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단지 제가 두려워 하는 게 있다면, 흡사 전구에 불이 들어오듯 갑자기 들어왔다가 갑자기 꺼져 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거죠."라고 답한다. 그에겐 늘상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고압의 전류가 흘러들었다. 110V 전구에 흘러든 전류는 순간 엄청난 빛을 발하다 어느 순간 꺼져 버린다. 엘비스의 흔적은 그렇게 점차 잊혀져 갔으나 그가 세상에 보낸 빛은 광속의 속도로 여전히 날아다닌다.

* 리믹스된 보너스 트랙도 매우 재미있으니 놓치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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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학으로 본 스타시스템의 변화

현대의 일상세계에 존재하는 무수한 신화들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드가 모랭은 『스타』(문예출판사)를 통해 스타를 통해 본 대중문화를 읽고 다시 사회를 해석하고자 했다. 그에게 있어 스타란 사회를 해석하는 상징이자 기호였다. 에드가 모랭은 “스타는 확실히 하나의 신화인데, 그것은 단지 몽상(夢想)일 뿐만 아니라, 힘 있는 관념”, 다시 말해 세상을 구축하고, 뒷받침하는 이데올로기적 서사란 뜻이다. 우리는 이 말을 통해 현대 사회에서 스타(Star)가 차지하는 위상과 역할, 기능에 대해 깨달을 수 있다.

신화를 뜻하는 미토스(mythos)란 말은 본래 고대 그리스어에서 온 용어인데 이 말은 ‘서사(敍事)’를 뜻한다. 서사란 작은 의미에서의 ‘이야기(story)’가 아니라 보다 큰 개념으로 언어적인 것들뿐만 아니라 연극, 음악, 춤, 이미지 등 인간이 만들어낸 온갖 기호적 장치들을 통해 구현된 이야기 체계를 의미한다. 신화, 역시 좁은 의미에서는 고대인들의 상상 속에 등장하는 온갖 신들의 이야기를 지칭하는 것이지만 신화의 의미를 확장해 보면 현대인의 삶이 작동한 일상의 어디에나 있는 것이 신화이다.

본래 언어학에서 출발한 기호학(semiology)이 오늘날 현대사회를 해석하는 중요한 학문으로 자리 잡을 수 있게 된 것은 언어를 기호(sign)로 파악했던 소쉬르의 개념을 현대 세계의 신화를 해석하는 도구로 원용하면서부터였다. 프랑스의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는 고대인들이 자신들이 이해하고, 인식하고 있던 세계의 의미를 재현하고 재구성하기 위해 신화를 만들어냈던 것처럼 현대 세계도 이와 같은 목적으로 신화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보았다. 그는 이와 같은 현대의 신화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해석하는 것이 바로 기호학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인간이 달나라에 가는 현대 세계의 어디에 신화가 존재한단 말인가?’란 의문을 품을 수 있을 것이다.

스타가 만들어낸 상징과 메시지

간단한 사례로 한국에 등장한 가장 최근의 신화는 광저우 아시안게임 수영3관왕으로 새로운 ‘신화창조’에 성공한 ‘마린보이 박태환’이 있고, 빙상스포츠의 불모지였던 대한민국 피겨스케이팅의 역사를 새롭게 쓴 ‘빙판의 여신, 김연아’가 있다. 조금 더 멀리 가자면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룩한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들이 있고, 이들을 4강까지 이끈 히딩크 감독 역시 그와 같은 신화의 주인공들이다. 박태환과 김연아, 히딩크 감독의 공통점은 이들이 스포츠 스타란 것이지만 동시에 이들이 우리 사회가 감동할 만한 메시지를 주었고, 그 메시지에 우리가 열렬히 호응했다는 것이다.

기호학에선 기호(신화)의 겉모습을 시니피앙(signifiant, 記表)이라 하고, 기호 안에 담긴 의미(메시지)를 시니피에(signifié, 記意)라 부른다. 시니피앙과 시니피에의 결합을 통해 겉으로 드러나는 일차적인 의미화 과정을 다시 디노테이션(외연, denotation)이라 하고, 이것이 인간의 감정이나 평가에 의해 더해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차적 의미화 과정을 코노테이션(내포 connotation)이라고 한다. 용어들을 접하면 다소 복잡하게 느껴지지만 실상은 매우 간단해서 기호학을 응용하면 박태환, 김연아, 히딩크는 물론 이와 같은 스타들을 통해 현대의 대중들이 무엇에 그토록 열광하고 있으며 대중이 바라고, 희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엿볼 수 있다.

기표의 측면에서 박태환 이전의 한국 수영은 최윤희가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낸 적이 있을 뿐 세계무대에선 존재감을 느낄 수 없는 종목이었다. 어느 날 솜털도 채 가시지 않은 박태환이 올림픽에 출전해 그것도 경쟁이 가장 치열하다는 남자 자유형 종목에서 당당히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미국과 동구권 스타들의 독무대로 여겨졌던 피겨스케이팅 분야에서 한국의 어린 소녀가 만점에 가까운 연기를 선보이며 세계인들을 매료시켰다. 아시아에선 호랑이였지만 세계무대만 나가면 한없이 작아지던 한국 축구 역시 세계적인 스타 한 명 없었지만 세계적인 축구강호들을 잇달아 연파하며 당당히 세계 4강에 올랐다.

이들의 성공은 스포츠 승부의 세계가 주는 드라마틱한 서사로 재구성되면서 한국의 대표적인 신화가 되었다. 아마도 이것이 이들이 신화가 주고 있는 기표이자 외연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신화에 내포된 기의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나아가는 대한민국의 당당함, 세계화 이래 늘 선진강국들 앞에만 서면 왠지 모르게 주눅 들고, 자신이 없었던 우리들에게 이제 우리도 선진국의 반열에 곧 들어설 수 있으며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것이란 자부심을 선사한 것이다. 특히 박태환과 김연아의 경우 주목해야 할 점은 이들이 성공에 이를 때까지 정부나 국가보다 그들 개개인의 노력과 가족의 희생으로 뒷받침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태환과 김연아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아들, 딸이 되고, 백발의 네덜란드인 감독 히딩크는 대한민국 특별시민 희동구가 된다.

우리 시대의 가장 강력한 신화, 스타

대중문화가 지배하는 사회의 가장 강력한 신화는 대중 미디어를 통해 널리 알려지고, 그로 인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스타다. 스타는 그 시대가 동경하는 서사 이데올로기를 몸소 현현(顯現)한 신적 존재이다. 스타와 영웅은 여러 면에서 흡사한데, 둘 사이의 공통점은 시대를 잘 타고 나야 한다는 것이지만 이 말은 사실 스타에겐 시대가 동경할 만한 그 무엇, 실력뿐만 아니라 대중을 감동시킬 서사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그것을 스타성 혹은 스타덤(stardom)이라 부른다. 스타덤이란 스타들이 살아가는 방식(일상뿐만 아니라 성장과정, 사랑과 결혼, 섹스까지 포함하는 삶의 방식)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를 뜻한다. 스타덤은 팬들에 의해 생산되고, 유지되는 데 이와 같은 현상을 팬덤(fandom)이라 부른다. 팬덤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특정한 인물이나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 또는 그러한 문화현상’이다. 팬덤과 스타덤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팬덤을 이해하지 못하면 스타를 이해할 수 없으며 스타를 만들어낼 수 없다.

과거엔 스타와 팬의 구분이 명확했다. 스타가 스타인 이유는 말 그대로 일반인들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잡을 수 없는 하늘의 별이기 때문이었지만 최근엔 이런 구분이 급격하게 무너지고 있다. 일반인은 스타가 되고 싶어 하고, 스타는 일반인이 되고 싶어 한다. 스타와 대중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기호학적 맥락에서 살펴보면 스타의 생산시스템, 이른바 스타시스템에 커다란 변화가 도래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몇 해 전부터 큰 인기를 누리며 TV를 장악하고 있는 것이 이른바 스타들의 ‘쌩얼’을 보여준다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란 것을 잘 알고 있다.




과거 아날로그 미디어 시대의 스타들이 기획사의 스타시스템(star system)에 의해 만들어졌다면 멀티미디어 시대인 오늘날엔 ‘적극적인 팬덤’에 의해 스타가 만들어진다. 적극적인 팬덤이란 사실 마케팅 영역의 프로슈머(prosumer)와 다를 바 없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얼마 전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슈퍼스타K>를 들 수 있다. 이제 대중은 기획사의 스타시스템에 의해 생산된 스타에 만족하지 않고, 그들 스스로가 ‘신화 훔쳐오기’를 통해 새로운 스타와 신화를 생산하는 존재로 변모해가고 있다. 이것은 대중의 변화된 욕망을 반영하고 있는 것인데, 과거 스타는 신적 존재이며, 관객은 스타의 신도들이었지만 이젠 대중들 스스로 신이 되려는 강한 열망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My Prime Club:동양증권 사보, 2011,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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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항아 제임스 딘 - 도널드 스포토 | 한길아트(1999)


“사람이 진정으로 위대해지는 것은 한 가지 경우뿐이다.
만일 사람이 삶과 죽음 사이의 간극을 넘을 수 있다면,
죽은 뒤에도 살 수 있다면 그 사람을 위대한 사람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어쨌거나 빠른 속도로 살아야 한다.”- 제임스 딘

 

언제던가 나는 “바람처럼 빨리 살고, 아직 젊을 때 죽어서, 아름다운 시체를 남기고 싶다. 그것이 나의 소망이다.”라고 일기장에 그렇게 적었던 적이 있다. 그 무렵의 나는 스스로 막장(漠場)이라 이름 붙였던 연립지하 단칸방 벽에 리바이스 청바지 회사에서 나온 제임스 딘의 커다란 포스터를 붙여 놓고 살았다. 내 방을 찾는 사람들은 간혹 뜻밖의 취향에 놀라곤 했다. 그랬다. 코카콜라를 마시는 일을 무슨 대단한 뇌물이라도 받아 챙기는 양 욕하곤 하던 시절이었으므로... 할리우드가 제작해낸 젊은 청춘 스타의 대형 브로마이드, 그것도 미제 청바지 회사의 광고 사진을 방에 붙여 놓다니... 그 무렵엔 제임스 딘이 나와 비슷한 소망을 품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다만 그의 상처받은 듯 보이는 눈빛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도널드 스포토가 지은 제임스 딘 평전(한길사, 1999)을 읽다가 문득 평전에는 대개 필수적으로 딸려 있기 마련인 흔하디흔한 약력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1931년 2월 8일 태어나 1955년 9월 22일 오후 5시 59분, 하이웨이 46과 41이 합류하는 지점에서 24살의 나이에 교통사고로 사망한 젊은이에게 별도로 소개할 만한 약력 같은 건 애초부터 없었을 지도 모른다. 제임스 딘이 영화배우로 활동한 기간은 불과 2년 남짓이었고, 그가 출연한 영화는 단 3편이었다. 그나마도 그의 생전에 개봉된 영화는 단 1편 “이유 없는 반항”이었다. 그의 나머지 대표작들 “에덴의 동쪽” “자이언트”는 그가 죽은 뒤에야 개봉되었다. 에드가 모랭은 『스타』(문예출판사, 1997)에서 대개 “할리우드 스타들의 신화적인 실제 생활의 절정기는 스크린에서의 그들의 절정기와 일치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제임스 딘의 실제 절정기는 스크린의 절정기와 일치하지 않으며, 그에 대한 신화는 그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되었다.

 

1930년 그의 부모가 결혼할 때 나이는 아버지가 스물 두 살, 어머니는 불과 열아홉 살이었다. 이 두 사람이 갑작스럽게 결혼하게 된 것은 신부 밀드레드가 임신 2개월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에 의한 것이었다. 신랑 윈튼이 하룻밤 풋사랑으로 여겼을 법한 여인과의 하룻밤 섹스가 제임스 딘을 잉태시켰다. 내 거의 틀림없는 확신은 윈튼이 이 결혼을, 그리고 원치 않았던 아들을 그다지 사랑하지 않았나 보다. 요새보다는 이른 나이에 결혼하던 당시 분위기로서도 두 사람의 결혼은 이른 것이었고, 훗날 아내 밀드레드의 죽음과 함께 자식을 팽개치고 떠나버린 아버지로 인해 제임스 딘은 큰 상처를 받았고, 사람들을 믿지 않게 되었으며 마음을 쉽게 열지 못하는 고집불통의 아이가 되었다. 학교에선 어느날 멍하게 딴 생각을 하던 지미(제임스 딘의 애칭)를 선생님이 불러 야단을 쳤다. 어린 지미는 갑자기 반 아이들이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어머니가 보고 싶어요."

 

아버지 윈튼은 결혼 생활 내내 그저 의무적인 역할만 했으므로 아들 지미는 어머니와 정신적으로 깊이 연루되었다. 그러나 열 살 무렵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아버지에게 버림 받은 기억은 평생을 두고 제임스 딘에게 상처로 남았다. 제임스 딘에게 선천적으로 연기자 기질이 있었다면 그것은 아버지 윈튼 보다는 어머니의 성향을 이어받은 것이었다. 아버지 윈튼은 정기적인 수입이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는 사람이었지만, 어머니 밀드레드는 영화관에 가거나, 무용 발표회, 연극, 책 읽기를 즐겨하는 사람이었다.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계속 유지되었으나 남편은 의무에 충실한 아버지였을뿐 그다지 다정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이 유지될 수 있었던 까닭은 어쩌면 대공황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에서 잘 묘사되고 있는 것처럼 파산한 수백만의 사람들이 길거리에 나앉아 일거리를 찾아 방랑하는 상황이었지만 윌튼은 재향군인 관리국에서 고정적으로 수입을 올릴 수 있었다. 어머니 밀드레드는 무미건조한 부부생활의 즐거움을 아들 지미에게서 찾으려고 했다. 그녀는 아들에게 늘 책을 읽어주었고, 노래를 불러주었으며, 축음기로 음악을 들려주곤 했다. 훗날 제임스 딘이 즐겨 읽었던 인디애나 주 출신의 시인 제임스 휘트콤 라일리의 시도 어머니 밀드레드가 좋아했던 것들이었다. 어머니와 자식은 정신적으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나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의 목표가 무엇인지, 어떤 사람인지 이해할 수 없었죠. 아버진 내 입장이 되어보려고 노력하지 않았죠. 어린 내가 보는 대로 보려고 하지 않았어요. 나는 늘 어머니와 함께 있었고 매우 가까웠죠. <반항아 제임스 딘, 도널드 스포토 지음, 정영목 옮김, 한길아트, 1999. 30쪽>

 

지미는 자신이 누구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 있었고, 이를 적절히 활용할 줄 알았다. 그는 조숙한 어린 아이들이 가질 법한 영리함과 더불어 가족에게 버림받은 경험이  있는 상처 받은 짐승의 경계심, 간교함을 함께 터득했다. 그는 타인에게 자신이 어떤 행동을 취할 때 관심을 이끌어낼 수 있는지 알고 있었으며 그것을 적절히 활용했고, 남들이 지켜보는 상태와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정반대의 행동을 취하곤 했다. 다른 말로 하자면 그늘 늘 관객을 의식하고 있었다. 그는 칭찬 받는 일에 익숙했고, 좀더 많은 칭찬을 이끌어 내기 위해 노력한다. 그는 페어몬트 고등학교 재학 중에 아버지의 실망 - 아버지 윈튼은 미국의 아버지들이 흔히 그러하듯 아들에게 야구를 가르치며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하고자 했으나 다섯 살의 어린 지미에게 심한 근시가 있어 자신과 야구를 잘 할 수 없다는 사실에 실망했었다. - 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운동에 재능을 보였다. 그는 야구, 육상, 농구, 미식 축구 등에서 뛰어난 재질을 보였고, 농구부 주장을 맡기도 했으며, 장대 높이뛰기에서는 고교생 기록을 갱신하기도 했다. 또 모터 사이클 경주에 출전해 종종 우승하곤 했다.

 

그리고 지미는 뉴욕 액터즈 스튜디오의 최연소 단원이 되어 연기를 배웠고, 나머지는 앞서 이야기한 대로 영화 배우로서 청춘의 아이콘이 되었다. 험프리 보가트는 "제임스 딘은 제때에 죽었다. 그가 살았더라면 평새 가도 절대 이런 명성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옮긴이는 "죽어서 아쉽다"가 아니라 "제때에 죽었다"는 표현으로 저자인 도널드 스포토가 이 책을 쓰게 된 계기가 바로 그런 궁금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어째서 단 3편의 영화, 24살의 나이로 요절한 한 청년이 세대를 넘어, 시대를 넘어 계속 불멸의 존재로 남을 수 있는가. 저자인 스포토는 이 책이 단순히 24살의 젊은이에 대한 전기, 그의 양성애적 가쉽을 추적하고 밝혀내거나 성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가를 드러내는 수준낮은 전기에 그치길 원치 않았다. 그는 대신에 당시 미국 사회의 분위기와 제임스 딘이 어떻게 미국 사회에서 혹은 문화와 전통이 다른 나라들에서도 보편적인 청춘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는지에 대해 살핀다.

 

아이콘이란 상징과는 다른 의미이긴 하지만 그 사회와 시대의 정체성이 농축된다는 점에선 수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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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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