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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9.14 강은교 - 별
2010.09.14 13:41

  
- 강은교

새벽 하늘에 혼자 빛나는 별
홀로 뭍을 물고 있는 별
너의 가지들을 잘라 버려라
너의 잎을 잘라 버려라
저 섬의 등불들, 오늘도 검은 구름의 허리에 꼬옥 매달려 있구나
별 하나 지상에 내려서서 자기의 뿌리를 걷지 않는다  

*

1945년 함남 홍원 출생.연세대 영문과 졸업. 연세대 대학원 국문과 졸업. 문학 박사. 동아대 국문과 교수. 제 2회 한국 문학 작가상 수상. 1968년 '사상계'신인 문학상에 '순례자의 집'이 당선되어 등단함. 윤상규, 임정남, 정희성, 김형영 등과 '70년대' 동인으로 활동함. 주요 시집으로는 '허무집'(1971), '풀잎'(1974), '빈자 일기'(1977), '소리집'(1982), '붉은 강'(1984), '우리가 물이 되어'(1986), '바람 노래'(1987), '오늘도 너를 기다린다'(1989), '벽 속의 편지'(1992)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는 '붉은 강'(1984), '누가 풀잎으로 다시 눈뜨랴'(1984) 등이 있다.

- 대한민국에서 여자가 시인으로 산다는 것. 개인적으로 나는 강은교 시인을 좋아한다. 그 시인을 만난 적은 없지만 전화 통화를 한 번 한 적이 있는 것 같다. 이제는 그랬는지 안 그랬는지 하는 사실조차 가물가물하지만 분명히 통화를 한 것 같다. 시인과 통화를 한다는 것. 혹은 그 대상을 직접 만난다는 것은 언제나 작은 균열을 의미한다. 내가 시집이라는 것을 처음 손에 집어들었을 때가 몇 살 무렵이었는지 지금은 기억조차 가물거리지만 아마도 중학교 진학하기 전 졸업과 입학 사이의 시간차를 두고서가 아니었던가 싶다. 방학도 아니고, 그렇다고 맨투맨 영어(성문기초영문법을 따라잡은 영어교재)를 붙잡고 한 시절을 보내기엔 이제 막 시작되는 하이틴 시즌이 우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렇게 방구석에 굴러다니는 시집 몇 권을 들춰보기 시작했는데 그 첫 시집은 김남조와 김후란의 시집이었다. 그 시집들을 읽었던 내 솔직한 감흥은 누이가 일기장에 끄적여 놓은 시들과의 차이를 발견하지 못하겠더라는 것이다. 시적 기교나 긴장, 형상화 등 여러 맥락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지만 그 차이를 발견하지 못했던 것은 시를 읽어낼 만한 공부가 부족한 탓이었지만, 그 보다는 한 소녀의 일기장에 적힌 낙서 같은 시들과 두 시인의 시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여성적 정조에 대해 공감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여성 시인 중에서 여류 시인이라는 호칭을 즐겁게 받아들일 사람은 아마 별로 없을 것이다. 그만큼 여류라는 말은 어느새 '삼류' 혹은 '촌스러운 지칭'의 느낌이 배어나오는 말이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류 시인과 여성 시인의 차이를 어디에 두어야 할 것인가? 이 문제는 각자가 생각하기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지만 결국 그 기본이 되는 것은 결국 여성성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볼 것인가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여성으로서의 자의식의 문제에서 나는 한 세대 이전의 시인들로부터 한 발 더 나아가 여성시인으로의 자각으로 첫발을 내딛은 새로운 세대의 첫 시인으로 강은교 시인을 생각한다. 강은교로부터 이어지는 여성시인의 계보는 최승자, 고정희, 김혜순 등에서 다시 황인숙, 허수경 등으로 이어진다. 시인의 이름 앞에서 여류라는 호칭이 떼어지고 여성이라는 젠더의 개념이 붙기까지 우리나라에서 근 100년의 역사가 필요했다. 다시 그 앞에서 여성이라는 말이 떨어질 때까지 얼마의 시간이 더 필요할지는 시인들의 몫이기도 하다.

강은교 시인의 시를 처음 읽게 된 것은 그후 고등학교 때 무렵이었고, 강은교 시인의 시는 그동안 여성 시인들에 대해 가지고 있던 나의 편견에 균열을 일으켰고, 도리어 여성성이 표출되는 시에 주목하게 만들었다. 시인이 바라보는 별은 "새벽 하늘에 혼자 빛나는 별"이다. 당신에게 불필요한 가지와 잎을 잘라버리라한다. 그러나 그 별은 뿌리채 뽑아버리라 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에서 여자가 시인으로 산다는 것은 모든 여성들이 여성으로 산다는 것이 쉽지 않을 동안엔 결코 편안해서는 안되는 직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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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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