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에 읽는 마르크스 - 질 핸즈 | 이근영 옮김 | 중앙M&B(2003)


이런 류의 책들을 접할 때마다 늘 하는 말이지만 너무 큰 기대는 금물이다. 그러나 이 책의 경우엔 기대해도 괜찮다. 사실 이 시리즈의 제목은 맞지 않는다. "30분에 읽는 마르크스"라니 그게 가능하다면 누가 골머리를 앓겠나. 비록 이 시리즈가 150쪽 내외의 짤막한 반토막짜리 책일지라도 30분에 읽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이 부분은 필경 과장광고에 속하리라. 그보다는 이 책의 영어 원제명인 "Marx : A Beginner's Guide(마르크스: 초보자를 위한 입문서)"가 적합하다. 30분만에 읽는 건 불가능하지만 2-3시간 투자하면 간략하면서도 의미심장한  마르크스에 대한 기초 지식을 쌓을 수 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므로 자꾸 말하면 입 아픈 이야기이긴 한데, 이런 책의 성패는 짧은 분량에 얼마나 많은 지식을 우겨넣었는가가 아니다. 왜냐하면 이런 책 한 권으로 모든 것을 끝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아무리 책 읽기를 좋아하는 이라 해도 세상의 모든 사상가들을 죄다 깊이있게 읽을 수는 없지 않은가. "공부에는 왕도가 없다"는 충고대로 그런 공부를 할 사람은 이런 책을 읽은 뒤 다음 단계로 넘어가면 된다. 게다가 이 책은 다음에 뭘 읽으면 좋을지도 충실히 알려준다.

 

자, 다시 핵심으로 돌아와서 문제는 이 책의 저자가 칼 마르크스의 생애와 사상, 그리고 그가 주장한 정치경제학의 이론들 가운데 핵심 개념들을 얼마나 잘 요약했는가, 그리고 충실하게 정리했는가가 관건이다. 그 부분에 한해서 나는 별 다섯을 주고 싶다. 게다가 이 책을 번역한 이근영의 "옮긴이의 글"도 아주 매력적이며, 이 책이 지닌 미덕에 그럴 듯하게 핵심을 잘 지적하고 있다.

 

20세기 역사는 마르크스의 유산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마르크스가 죽은지 1백년도 안 되어 세계인구의 반은 마르크스주의를 내세우는 국가들의 깃발 아래 살았었다. 최근의 우리 민족사도 마르크스주의와의 관련성 밖에서는 설명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마르크스를 예수 그리스도 이후 세계사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으로 꼽는데 별 주저함이 없을 정도로 그의 영향은 깊고 그 폭도 넓다. 그리고 그 영향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본문 6쪽> 중에서

 

윗 부분이 요약본을 통해서라도 우리가 칼 마르크스를 읽어야 할 이유일 것이다. 그럼에도 칼 마르크스의 사상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그가 골치아픈 철학자이자 숫자라면 머리에 쥐가 날 경제학자를 겸하고 있다는 사실, 게다가 독일 낭만주의의 교양에, 헤겔 철학의 계승자란 점을 고려한다면 더더욱 읽어내기 난망한 사상가다. 그럼에도 이 짧은 책은 그에 대해 완전한 이해까지는 아니어도 그에 대한 이해의 첫 단계를 그럴듯하게 해치운다. 옮긴이는 "옮긴이의 말" 끝부분에 자신이 생각하는 마르크스 사상의 핵심을 살짝 드러낸다. 
 

유명한 마르크스주의 이론가 중 한 사람인 칼리니코스는 "마르크스 사상의 진리를 인정하는 사람들은 단순한 지적 개입으로만 만족해서는 안된다. 단지 세계를 관찰할 것이 아니라 마르크스가 그러했듯이 자신을 노동자계급의 삶과 투쟁 속에서 혁명 정당 건설이라는 실천적 과제 속으로 던져 넣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마르크스를 이해하고 마르크스를 읽고자 하는 노력은 결국 세계를 변화시키려는 노력이다. 마르크스의 말처럼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본문 9쪽>

 

이 책은 가이드북이 갖춰야 할 기본적인 덕목에 매우 충실하게 짜여져 있는데, 이는 이 책의 저자 "질 핸즈"가 현재 성인교육전문가로 활동한 경험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싶다. 우리에게 성인교육이라 하면 먼저 성인방송, 성인전용콘텐츠를 떠올릴지 모르겠으나 영국의 학문적 전통 아래에서 성인교육이라 함은 문화주의 문화연구 그룹의 주요 구성원들이 성인교육전문가로 먼저 활동했었음을 상기해야 한다. 이 책은 모두 7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칼 마르크스를 이해하기 위한 첫번째 코드로 그가 살았던 시대와 그의 삶을 살핀다. 마르크스가 공산주의에 대해 처음 생각해낸 것은 아니다. 다만 그는 공산주의에 대한 실제적이고 과학적인 사상을 개발했고, 이에 대해 책을 쓰고, 널리 알기 위해 애쓴 실천가였다. 마르크스는 1818년 5월 5일 당시 프로이센에 속했던 라인주에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날 무렵 유럽에서는 반유대주의 정서가 매우 강했다.(오스트리아에서는 심지어 유대인은 장남만 정식으로 혼인할 수 있는 악명높은 반유대인 법을 제정하기도 했다. 그런 까닭에 당시 태어난 많은 유대인들이 본의아니게 정식 혼인 관계에서 태어나지 못한 사생아가 되고 말았다.)

 

산업화와 근대화가 추진되면서 거대한 도시가 건설되기 시작했고, 많은 이들이 전통적인 농업과 수공업에서 도시 산업 노동자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농촌 지역 역시 실업률이 점차 높아졌고, 공동경작지를 빼앗고, 오랫동안 가난한 농부들에게 속해 있던 방목권 역시 박탈당했다. 결국 농촌 지역의 빈곤은 이들이 도시 지역의 값싼 노동력으로 흡수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들은 어떤 조건을 감수하고서라도 일자리를 얻어야만 했으므로 보건 시설이 전혀 없는 빈민가에서 살아야 했고, 안전장치도 없는 기계를 다뤄야 했다. 미성년자는 물론 아동들까지 노동에 나서야 했던 탓에 당시 노동자들의 평균 수명은 19세에 불과했다. 마르크스는 그런 시기에 대학에서 헤겔 법철학을 전공했고, 급진적인 사상을 제시한다. 그런 탓에 대학 교수가 되지 못하고, 프랑스, 벨기에, 프로이센에서 추방당하고 만다. 결국 마르크스는 1849년 런던으로 이주한다. 그는 예니와의 사이에 7명의 아이를 두었지만 이들 가운데 3명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30분에 읽는 마르크스"는 이렇듯 마르크스의 생애와 그의 사상, 이론의 주요 쟁점 및 마르크스가 지닌 의미의 현재성을 한 권의 책에 아우른다는 벅찬 주제에 감히 도전한다. 그리고 아쉬움이 없을리 없지만, 성공적으로 해내고 있다.

 

예를 들어 3장에서는 마르크스에게 영향을 끼친 사상가들을 살펴보고 있다. 마르크스 이전의 유물론 철학자들은 오랫동안 신이 존재하는가? 신의 존재를 과학적 방법으로 입증할 수 있는가에 대해 열띤 논쟁을 벌였다. 당시의 주된 과학적 발전이 주로 수학과 역학 분야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들은 사회를 불변의 과학적 법칙을 따르는 고정된 것으로 파악했다. 이런 철학의 영향을 받아 당시 사람들에게 사회 속의 위치 역시 불변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이들로부터도 많은 영향을 받았고, 이들의 개념 가운데 상당수를 받아들여 더욱 발전시켰다. 그 가운데 특히 마르크스에게 깊은 영향을 준 사람은 헤겔이었다.

 

헤겔은 인류문명이 지적, 윤리적 진보를 통해 이루어졌다고 믿었다. 그가 주장한 진보는 신성한 어떤 존재의 개입이 아닌 인간성에 내재된 합리적 정신(헤겔의 용어를 빌자면 "세계정신")에서 나온 것이다. 그는 세상의 모든 진보(발전과 변화)는 변증법적인 긴장에 의한다고 보았는데, 서로 다른 두 개의 운동(관념)이 벌이는 갈등의 결과란 것이다. 마르크스는 헤겔의 변증법적 개념을 차용해 관념이 물질적인 경제활동으로부터 발전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인간이 살고 일하는 환경이 인간의 생각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물론 오늘날의 우리가 생각하기엔 헤겔의 주장이나, 마르크스의 주장은 어찌보면 매우 상식적인 것일지도 모르겠으나 당시로선 매우 놀랄 만한 급진적 사유였다. 세상(사회)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니... 귀족과 부르주아들이 얼마나 놀랐겠는가?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체제 아래 인간을 소외시키는 것은 "신"이나 "정신"이 아니라 "돈"이라고 주장한다. '돈은 인간 노동과 삶을 소외시키는 정수이며, 인간이 돈을 숭배하면 할수록 돈이 인간을 지배하게 된다"고 말한다. 마르크스가 이런 생각을 기초로 어떻게 물질 세계가 정신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가를 연구한 것이 바로 '변증법적 유물론' 이다.


 

노동은 부자들을 위해서는 멋진 것을 만들어내지만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불행만을 만들어낸다. - K. 마르크스 『경제학-철학초고』

 

마르크스가 파악한 자본주의 사회의 특징은 돈, 자본, 상품에 대한 물신 숭배이다. 1) 돈에 대한 물신 숭배는 노동자들을 속이는 환상으로, 노동자들은 돈이 노동의 목적이라고 생각하여 자신들의 가치를 돈으로 계산하게 된다. 2) 자본에 대한 물신 숭배는 자본을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것으로, 그것을 만들어낸 노동에게는 아무것도 빚진 것이 없다는 믿음을 말한다. 3) 상품에 대한 물신 숭배는 어떤 상품이 교환가치와는 관계없이 본질적으로 다른 상품 보다 더 가치가 있다는 믿음을 말한다(베블런의 『유한계급론』을 참조하시라).

 

인간 ‘소외’의 개념은 헤겔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헤겔이 주장하는 소외란 인간이 ‘세계정신’의 일부가 되고자 하기 때문에 생겨난다고 보았다. 헤겔에게 있어 소외란 거의 종교적 개념에 가까운 것이었으나 마르크스는 이를 경제적 개념으로 규정했다. 노동자들은 자신이 만드는 상품으로부터 이득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상품으로부터 소외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산물을 ‘자신들 외부에 있는 낯선 것’으로 본다고 말한다. 노동자들은 공장시스템에 의해서 소외되고 비인간화된다. 공장시스템은 노동자들의 노동으로부터 잉여가치를 착취하는 방법이고, 시스템은 어떻게 일할 것인가에 대해 노동자들의 주체성을 빼앗아간다.

 

소외는 자본가들의 착취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나 노동자들은 자신이 착취당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다. 노동자들은 감추어진 자본주의 시스템 탓에 자신들이 생산한 잉여가치의 권리를 자본가들이 갖고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에 대해 별다른 이견이 없거나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인다(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 그람시의 헤게모니 개념과 연결됨).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소비자들에게도 자기 스스로를 노예로 만드는 욕망을 제공함으로써 그들을 속인다고 보았다. 노동자들이 생산하는 상품은 결국 노동자들도 노예로 만든다. 상품을 살 수 있는 돈을 얻기 위해 노동을 하는 악순환을 계속해야 하기 때문이다. 상품에 대한 물신숭배는 더 많이 사고, 더 많이 소비하도록 만든다. 사유재산제도 하에서 인간은 어떤 물건을 소유하고 사용할 수 있어야만 그 물건이 가치가 있다고 믿게 되기 때문이다. 사유재산, 임금노동, 잉여가치 그리고 시장의 힘 등은 사회의 구성원에 의해 만들어진 구조들이나 그것은 너무나 교묘해서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게 된다. 마르크스는 자본가들조차도 소외되지만 최소한 그들은 “소외 속에서도 행복하다”고 말한다.

 

물론 마르크스가 현재에도 여전히 유용한가?를 묻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태반은 마르크스를 전혀 읽지 않은 이들이다. 왜냐하면 마르크스를 읽는다면 여전히 유용한가 묻기 보다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먼저 하게 될 테니까. "마르크스는 사회의 경제적 토대를 바꿈으로써 사회자체도 바뀔 수 있으며 인간의 본성도 바뀐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20세기의 역사가 보여주듯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것은 생각했던 만큼 쉬운 일은 아니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마르크스의 견해는 지나치게 낙관적인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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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크리스마스(Christmas)에 대해 알고 싶은 서너 가지



한 해를 마감하는 연말 무렵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크리스마스는 어린 시절 한 번쯤 산타클로스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보게 만드는 명절 아닌 명절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에선 우리나라에 국교가 있는 것도 아니고 기독교라는 특정 종교의 종교적 행사를 어째서 국가공휴일로 지정(?)했는지 시비 거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기독교 신자들 중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라는 성스러운 사건을 기념하는 날이 어째서 상업적인 행사인 양 떠들썩하게 치러져야 하는지 불만을 품고 크리스마스, 본래의 정신으로 되돌아가자고 주장하기도 하지요.

예수 탄생 이후 300년간 박해받았던 기독교
성탄절을 의미하는 크리스마스(Christmas)는 본래 ‘그리스도의 미사(Christes maesse)’에서 유래한 말로 그리스도교의 축일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지만 누구나 알고 있듯 예수가 12월 25일에 탄생했다는 근거는 성서를 비롯한 어디에도 없습니다. 신학자들은 물론 역사학자들도 이 날이 그리스도교의 축일은커녕 로마의 이교(異敎) 축제에서 비롯된 것이라 보고 있는데요. 로마의 역서(曆書)에 따르면 그리스도교의 크리스마스 축제는 336년경 로마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기독교 초기의 박해사에 대해서는 할리우드에서 제작된 영화들을 비롯해 여러 매체들을 통해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예수 탄생 이후 거의 300여 년간 박해받았던 기독교가 공인된 것은 313년 2월 콘스탄티누스 1세가 반포한 밀라노칙령을 통해서였습니다.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50년간 18명의 황제가 교체되었던 극심한 혼란을 끝내기 위해 방대한 로마제국을 네 명의 황제들에게 분할하여 통치하도록 했던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뒤를 이어 황제에 오른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어머니였던 헬레나는 독실한 기독교도였기 때문에 콘스탄티누스 황제 자신은 기독교도가 아니었지만 기독교에 대해 관용의 마음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임 황제였던 디오클레티아누스는 과거 로마의 영광을 복원하기 위해 로마의 전통적인 다신교를 숭배했고, 기독교를 박해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이미 제국의 하층민들뿐만 아니라 귀족, 학자, 군인 등 지배층에까지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었습니다. 제국의 혼란을 막기 위해 제국을 분할해 네 명의 황제가 통치하게 했던 디오클레티아누스가 퇴위하자 로마제국은 서로 황제가 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일어났습니다.

콘스탄티누스의 가장 강력한 숙적 중 한 명이었던 막센티우스와의 결전을 앞둔 312년 10월 28일, 콘스탄티누스는 “정오의 태양 위에 빛나는 십자가가 나타나고, 그 십자가에는 ‘이것으로 이겨라’는 글자가 쓰여 있는” 환영을 보았다고 전해집니다. 물론 이것이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었는지 아니면 후세에 만들어진 전설인지에 대해선 누구도 알 수 없지만 이 이야기 속에 담긴 의미는 명확합니다.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 세력의 지지를 얻어 막센티우스의 군대를 물리쳤고, 서로마 전체를 지배하는 황제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는 것이죠. 황제는 즉위 직후 밀라노 칙령을 내려 로마제국 내에서 종교의 자유를 승인했고, 그 덕분에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중지될 수 있었습니다. 역사학자 존 노리치는 『비잔티움 연대기』에서 “역사상 그 어느 지배자도, 알렉산드로스도, 앨프레드도, 샤를마뉴도, 예카테리나도, 프리드리히도, 그레고리우스도, 콘스탄티누스만큼 ‘대제’라는 칭호에 완벽하게 어울리는 인물은 없다.”고 평했는데 그 이유는 그가 탁월한 정복전쟁을 했거나 뛰어난 통치술을 발휘했기 때문이 아니라 기독교를 최초로 공인했다는 업적을 높이 평가한 것이었습니다.


▶ 기독교 순교자의 마지막 기도(The Christian Martyr's Last Prayer) 장-레온 제롬(Jean-Leon Gerome)


이교에 대한 승리를 기념하는 날에서 출발한 크리스마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예수 탄생 이후 300여 년간 로마제국의 지배 아래에서 기독교 신자들은 십자가형에 처해지거나 산채로 불에 태워지고, 사잣밥으로 던져지는 등 모진 박해와 수난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전통적으로 다신교를 숭배하던 로마의 사제들은 그리스도교 박해에 앞장섰는데 콘스탄티누스에 의해 기독교가 공인되자 이번엔 그 반대의 일들이 벌어지게 됩니다.

초대 기독교 시대에는 어떤 이유나 목적에 관계없이 전쟁은 원칙적으로 죄악(Evil Sin)이라 하여 전쟁에 반대했습니다.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가 죽음이로 보여준 비폭력, 무저항, 사랑, 희생의 정신으로 상징되는 종교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콘스탄티누스가 로마제국에서 기독교를 공인한 후부터 전쟁에 관한 교리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서로마제국 교회에서는 상당 기간 전쟁을 악으로 간주해 왔었는데, 성 아우구스티누스 시대에 이르면 ‘정당한 전쟁’이 있을 수 있다고 인정하고 병사들의 전쟁 참여와 살상을 수용하도록 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후 그레고리 1세 대교황 시대 서로마에서는 신앙심이 없는 사람들이나 이단자들을 합법적으로 기독교도로 강제 개종시켜도 된다는 이론을 채택합니다. 전쟁에 대한 기독교 교리의 변화가 교회 내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된 것과 무관하게 기독교가 공인된 직후부터 전통적인 로마 다신교 신전과 사제들이 기독교 사제들과 기독교 신자들에 의해 공격받았고, 점차 세가 위축되면서 사라지게 됩니다.

◀ 프란치스코 고야(Francisco de Goya), 자기 자식을 잡아먹는 사트루누스(Saturn), 1820-23, Oil on plaster, Prado Museum, Madrid

당시 로마에서는 농경사회 대부분이 그러하듯 추수가 끝난 뒤인 12월 24일부터 다음해 1월 6일까지 ‘정복당하지 않는 태양의 탄생일(natalis solis invicti)'이라 하여 낮이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고 태양이 하늘 높이 떠오르기 시작하는 ‘동지’를 기념하는 축제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스칸디나비아 반도 등 겨울이 유난히 길고 혹독한 지역에서는 동지를 전후해 커다란 축제가 연이어 벌어지기도 하는데 당시 로마의 ‘동지제(冬至祭)’ 축제 역시 범국가적인 행사로 거대하게 치러지는 행사였습니다. 동지는 낮 동안 해가 하늘에 머무는 시간이 가장 짧은 날로 이 날을 기점으로 점차 해가 길어집니다. 그런 까닭에 이 날을 태양의 탄생일이자 빛의 날로 기념하고 기나긴 겨울이 끝나고 곧 봄이 올 것을 알리는 기쁜 날이었기 때문에 농경의 신 사투르누스(Saturn)에게 경배하는 날이었습니다.

한 편 기독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의 빛(요 1:9)’이라 하였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곧 세상의 빛이 탄생한 것이었기 때문에 로마의 이교도들이 12월 25일 ‘태양의 탄생일’로 정한 것처럼 12월 25일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과 일치시켰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교도들의 축제를 자신들의 축제로 전환시킴으로써 선교를 좀더 쉽게 하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다른 한 편으로 초대 교회의 사도들은 기독교가 이교도들을 정복했다는 의미에서 이교도들의 축제일인 이 날을 기념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때만 하더라도 12월 25일은 단지 이교도들에 대한 기독교의 승리를 기념하는 날이었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정착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로마제국의 동방 지역에서는 12월 25일보다 1월 6일을 하느님이 예수의 탄생과 세례 때 나타난 날로 기념했고, 예루살렘에서는 탄생만 기념했습니다. 그러나 4세기경에 이르면 동방교회의 대부분이 점차 12월 25일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함께 기념하기 시작했고, 오랫동안 크리스마스를 반대하던 예루살렘 교회 역시 결국 크리스마스를 예수의 탄생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르메니아 교회는 12월 25일 대신 1월 6일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기념했습니다. 로마가 동서로 분열되었던 것처럼 기독교 역시 동서로 분열되어 각각의 입장과 교리에 따라 예수 탄생일을 기념했는데 동방교회는 12월 25일을 예수 탄생일로 지키게 된 뒤부터 1월 6일을 예수의 세례를 기념하는 주의공현대축일(주현절[主顯節], Epiphany)로 지켰으나 서방교회에서 주의공현대축일은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를 찾아온 날을 기념하는 축일이었습니다.

크리스마스를 상징하는 트리와 카드, X-MAS 그리고 캐럴과 산타클로스

크리스마스의 상징물 중 가장 대표적인 크리스마스트리 관습 역시 기독교 본래의 것은 아니었습니다. 로마력 설날에 로마 사람들은 자기 집 안팎을 푸른 나무와 등불로 장식하는 관습이 있었고, 자녀들과 주변 이웃들에게 선물을 나눠주는 관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나무를 신성하게 여기는 관습은 이집트를 비롯해 여러 지역에서 나타나고 있는데 특히 게르만족들은 신성하다고 여기는 떡갈나무에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관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8세기 경 게르만족들에게 선교를 위해 파견된 선교사들이 떡갈나무를 신성하게 여기고,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관습을 타파하기 위해 이들의 관습을 역으로 이용해 전나무를 가지고 돌아가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라고 설교하기 시작한 것에서 크리스마스트리의 전통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전 세계에서 크리스마스트리로 가장 많이 쓰이고 있는 나무는 전나무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구상나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분들은 많지 않습니다. 물론 그 구상나무가 완전히 한국산 토종은 아니고, 한국산 토종의 종자를 가져간 미국과 유럽의 종자회사들에서 종자개량을 통해 생육조건을 변화시켜 전 세계에 팔아먹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로열티 한 푼 받을 수 없으며 크리스마스 무렵이 되면 우리나라로 역수입되어 로열티를 지불해야만 하는 실정이긴 하지요.

크리스마스 무렵이면 가까운 친지와 이웃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는 풍습이 있습니다. 크리스마스의 다른 풍습들이 유례가 불분명한 것들이 많지만 카드만큼은 유례가 명확한 편인데요. 1843년 런던의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에 새로 관장으로 부임한 헨리 콜경은 너무 바빠서 크리스마스 편지를 쓸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편지 대신에 짤막한 메시지를 담은 카드를 만들게 되었는데 자신이 카드 속지에 쓸 편지를 쓰는 동안 미술가인 존 호슬리에게 크리스마스의 풍경들을 묘사한 그림을 그려달라고 의뢰했습니다(사실 그럴 여유가 있었다면 편지를 쓰는 편이 훨씬 더 간소했을 텐데요). 이렇게 만들어진 카드를 복사해서 보냈는데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3년 뒤 미국에 무료 우편제도다 신설된 뒤 독일에서 이민 온 루이스 프랑이 미국의 크리스마스 카드 산업을 일으켰는데, 그는 바이에른에서 채석한 석회석을 사용하는 사치스러운 인쇄공정을 채택했는데 그 덕분에 그림 한 장에 17가지 색을 입힐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의 사업은 대단히 성공적이었고, 오늘날에도 크리스마스 카드는 가장 화려한 인쇄물 중 하나가 되었죠.




거리 곳곳에 크리스마스를 알리는 장식물들이 있는데 그 중에는 ‘Christmas'라고 쓴 것도 있지만 좀 짧게 'X-MAS'라고 쓴 것도 있을 겁니다. 크리스마스가 ’그리스도의 미사‘란 뜻이란 것은 앞서 말씀드렸지만 ’X-MAS‘는 'X'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지 못하고 그냥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 말하는 ’X‘자는 영어 알파벳의 X가 아니라 고대 그리스어인 헬라어의 '그리스도'라는 단어의 첫 자인 '크스'자로 이 뒤에 미사를 뜻하는 MAS를 붙인 겁니다. 그래서 표기는 ’X-MAS‘로 하더라도 읽을 때는 '크리스마스'라고 해야 맞습니다.

또 크리스마스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습 중 하나가 캐럴(carol)인데 캐럴이란 말의 기원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대표적입니다. 하나는 우리나라의 아리랑처럼 사람들이 모여 둥글게 원 형태로 춤을 추는 프랑스의 전통적인 원무(圓舞)를 지칭하는 말 캐럴(carole)에서 유래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중세 후기 영국의 전통적인 노래 형식을 지칭하는 말에서 유래되었다는 겁니다. 본래 영국의 캐럴은 절(V)이 하나의 후렴(B)과 교대하는 형식을 갖고 있었는데, 오늘날의 캐럴은 모두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노래들을 통칭하여 부르는 것이지만 14세기 무렵 영국에서 만들어진 캐럴들은 민중들이 만들고 부르는 종교적인 노래인 것은 맞지만 그 내용이 반드시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것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크리스마스캐럴을 지칭하는 말도 나라마다 조금씩 다른데 독일에선 크리스마스이브의 노래란 뜻에서 바이나흐트 리트(Weihnacht lied) 라 하고, 프랑스에서는 노엘(Noël)이라고 합니다. 오랫동안 종교적인 노래로 불리어지다가 종교개혁 이후부터는 민중적 종교 음악이었던 캐럴이 사라지고 교회에서 정식으로 작곡된 찬송가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17세기에 영국과 스코틀랜드 등의 청교도들은 엄격한 교리 원칙에 따라 모든 종교적인 축제를 부정했고, 크리스마스 축하행사 역시 금지시켰었는데, 지나치게 엄격한 탓이었는지 몰라도 청교도 세력이 약해지면서 크리스마스 축제가 다시 부활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코틀랜드 지역의 장로교회에서는 크리스마스를 지내지 않는 대신 1월 1일을 가장 큰 축제로 삼았는데,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신년예배를 드리는 것 역시 이런 영향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미국만큼 크리스마스를 떠들썩하게 보내는 나라도 없지만 청교도들이 나라를 처음 세웠을 무렵엔 오늘날과 같은 크리스마스는커녕 크리스마스 자체를 기념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크리스마스 캐럴도 없었지요. 그러나 1857년경 미국의 J.H. 흡킨스(Hopkins) 목사가 크리스마스 캐럴을 작곡하면서부터 서서히 캐럴의 전통이 복원되기 시작했습니다.


▶ 1942년에 만들어졌던 영화 <홀리데이인(Holiday Inn)>의 삽입곡 'White Christmas'가 크리스마스 캐럴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자 1954년 빙 크로스비, 로즈마리 클루니가 함께 주연을 맡아 영화 <White Christmas>로 제작되기도 했다.

오늘날 캐럴은 교회에서 부를 수 있는 캐럴과 거리에서 들을 수 있는 캐럴로 구분되는데 거리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상업적 캐럴의 대부분은 1942년 할리우드 음악영화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홀리데이인(Holiday Inn)>이 성공하면서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들입니다. 아카데미 영화주제가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이 영화 속엔 우리가 잘 아는 빙 크로스비의 <White Christmas>가 수록되어 있었지요. 이때부터 1950년대까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Santa Claus coming to town>, <Let it snow! Let it snow! Let it snow! > 등 캐럴의 대부분이 만들어지는 캐럴의 홍수가 일어나게 되지요. 오늘날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수많은 대중가수들이 캐럴을 만들어 부르지만 교회에선 이 노래들을 상업적인 캐럴이라 하여 부르지 않는데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오늘날 만들어지는 상업적인 캐럴이 도리어 과거 민중적인 캐럴의 전통과 맥을 잇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산타클로스의 유래에 대해선 이미 많이 알려져 있지만 어째서 빈민구제에 앞장섰던 성 니콜라우스가 빨간 옷의 뚱뚱보 할아버지로 이미지 변신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선 여전히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모양입니다.

산타클로스의 탄생과 키즈 마케팅(Kids Marketing)

마케팅 전문가들은 로버트 우드러프가 청소년들이 미래의 새로운 소비자이며 , 이들에게 접근하기 위해 환상적인 이미지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았다는 점을 매우 높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코카콜라의 경영자였던 로버트 우드러프는 광고담당자들에게 코카콜라가 뭔가 긍정적인 에너지를 제공하며, 코카콜라를 통해 이상적인 세계에 접근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도록 만들라고 다그쳤는데, 그의 관점에서 보자면 코카콜라는 단순한 탄산음료가 아니라 꿈과 환상의 아이디어를 파는 드림 웨어(dream ware)여야만 했습니다. 그 결과 등장한 것이 가장 미국적이며 세계적인 이미지로서의 산타클로스였지요. 1931년 코카콜라가 붉은 색 산타복장을 한 뚱뚱한 산타클로스의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전까지 산타클로스는 구세주의 탄생을 기념하는 크리스마스를 상징하는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산타클로스의 기원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대체로 3세기 경 소아시아에서 출생한 니콜라스(St. Nicholas) 성인에서 유래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정설인데요. 현재 터키 지역의 주교를 지낸 그는 특히 어린이들을 사랑하여 어린이들 모르게 선물을 주었다고 하는데, 이를 기리기 위해 유럽의 일부 지역에서는 성 니콜라스의 축일인 12월 5일에 즈음해서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코카콜라는 상업용 일러스트 전문 화가였던 하든 선드블롬(Haddon Sundblom)에게 코카콜라를 위한 산타클로스를 그려달라고 의뢰했고, 그 결과 탄생한 것이 오늘날 성탄절의 대명사가 된 산타클로스였습니다. 이처럼 코카콜라에 의해 재탄생한 산타클로스는 ‘코카콜라 레드(Coca-Cola Red)' 빛깔인 붉은 색 외투에 흰색 털을 단 옷을 입었고, 종교적인 인상 대신에 풍성한 흰 수염에 얼굴 가득 홍조를 띤 인자한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탈바꿈되었습니다. 선드블롬이 탄생시킨 산타는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준 뒤 휴식을 위해 코카콜라를 마셨고, 착한 어린이들은 산타가 선물을 넣어주는 양말 속에 감사한 마음으로 코카콜라를 담아두었습니다. 전통적으로 탄산음료의 비수기인 겨울철 매출 증진을 위해 구상된 코카콜라의 판촉 전략은 전 세계의 크리스마스 문화와 풍경을 변화시켰습니다. 어린이들은 종종 뚱뚱한 산타가 어떻게 굴뚝을 타고 내려와 자신들에게 선물을 줄 수 있는지 궁금하게 여기는데, 사실 뚱뚱한 산타가 어떻게 굴뚝을 통과해서 내려와 선물을 주고 갈 수 있는지 그 비법에 대해선 아무도 모르지만 그가 왜 그렇게 뚱뚱해졌는지는 누구나 알 수 있을 겁니다. 바로 코카콜라를 많이 마셨기 때문이지요.




자, 크리스마스에 대해 궁금한 몇 가지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님이 실제로 12월 25일에 세상에 오셨든, 아니든 그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우리는 오늘 그 분이 세상의 빛이 되기 위해 가난하고 헐벗은 이웃을 사랑하라고 가르쳤고 스스로 우리들의 죄를 짊어지고 가장 고통스러운 형벌인 십자가를 짊어졌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그 분의 삶을 올바르게 따르는 길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Merry Christm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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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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