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지 않는, 존재를 부정당한 것들의 존재증명



2009 용산참사 헌정문집 
지금 내리실 역은 용산참사역입니다 
작가선언 6·9 | 실천문학사 | 2009


2009년 12월 30일, 속보로 전해진 ‘용산참사 협상타결’ 소식을 들었을 때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먼저 느껴진 감정은 안도감이었다. 그러나 뒤이어 들었던 생각들은 후련함보다는 갑갑함, 기쁨보다는 서글픔, 그리고 노여움이었다. 장례비용과 보상 문제는 해결되었을지 몰라도 남편과 아들의 영정 사진을 들고 용산 남일당 골목에 나란히 앉아 오열하는 유가족을 바라보는 마음은 편할 수 없었다. 2009년 1월 20일부터 장장 345일이다. 가족의 안위와 생계를 짊어진 채 삶의 터를 지키겠다고 안간힘쓰던 다섯 사람과 경찰 한 사람이 생때같은 목숨을 화염 속에 잃었다. 그리고 23명이 다쳤다.


‘용산참사 협상타결’ 소식이 전해지자 정부가 관여할 일이 아니라 민간에서 알아서 해결해야 할 일이라 했던 국무총리의 ‘깊은 유감’이 전해졌다. 그는 용산참사를 “우리 시대에 결코 있어서는 안 될 불행한 일”이라고 말했다. 총리의 말대로 있어서는 안 될 불행한 일이 벌어졌지만 우리 정부는 무시했고, 이들을 진압한 경찰청 고위관계자는 어떻게 해서든 이 사건을 무마하고 은폐하려 들었고, 검찰은 이들을 기소했고, 판사는 간신히 살아남은 이들에게 중형을 선고했다. 사건 발생 1년여가 다 되어가도록 ‘용산참사’는 마치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적 없었던 것처럼 치부되었다. ‘용산참사 희생자’들은 대한민국에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차가운 냉장고 속에 방치되었다. 그래서 오도엽 시인은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용산에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대한민국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본문 141쪽>고 노래했다.

‘비참하고 끔찍한 일’을 우리는 참사(慘事)라 부른다. 용산참사로 희생당한 사람들은 그처럼 비참하고 끔찍하게 죽었다. 이들의 비참하고 끔찍한 죽음을 앞에 두고 시인, 소설가, 비평가, 만화가들은 이들의 죽음을 은폐하고, 망각하려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고발하는 릴레이 기고를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책이 『지금 내리실 역은 용산참사역입니다』이다. 이 책은 용산참사로 희생당한 고인들을 추모하기 위한 헌정문집이지만 동시에 우리 사회에서 존재를 부정당한 이들을 기억하기 위한 투쟁의 장소이기도 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잠수함 승무원 생활을 경험했고, 훗날 『25시』를 쓴 작가 게오르규(C. V. Gheorghiu)는 시인을 ‘잠수함 속의 토끼’에 비유했다. 밀폐된 공간인 잠수함의 공기가 부족해지면 토끼가 가장 먼저 괴로워하는 것처럼 사회가 혼탁해지면 예민한 감수성과 상상력을 가진 예술가들이 먼저 징후를 읽어내고 사회의 다른 이들에게 경고를 발한다는 의미에서 나온 말이다. 『지금 내리실 역은 용산참사역입니다』는 지난 1980년 5월 광주 이후 하나의 사건에 대해 가장 많은 예술가들이 모여 말하고 있는 책이다. 이들은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죽임 당한 사람들을 기억함으로써 이들을 끊임없이 소환해낸다. 우리 전통 장례 풍습에 따르자면 유족과 함께, 그들을 대신해 곡(哭)해주는 사람들인 셈이다.

우리 문학은 ‘5월 광주’에 대한 막중한 부채의식을 민주화를 통해 벗어났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빠르게 현실에서 몸을 빼내기 시작했다. 소설가 한지혜는 자신이 매일 직접 경험하던 철거 현장의 악몽을 문예창작과 재학 중 작품으로 썼지만 작품 강평 시간마다 “소설은 다 지나간 시대를 붙잡고 있다는 말을 들었고, 시는 현실을 외면한 혹은 왜곡한 감상주의라고 비판”<본문 158쪽>받았다고 고백한다. 존재하는 현실을 부정하도록 가르친 우리 문학이 1990년대 이후 위기에 직면한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문학 작품보다 현실이 더 극적인 것이 우리 사회의 오래된 진면목이라곤 하나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 속에서 현실과 직접 대면하려는 자세마저 보기 어려워진 것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6․9작가선언’에 참여한 192명의 문인들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존재를 부정당한 사람들을 대신해 울어주고, 울음 섞인 목소리를 전해줌으로써 이들의 존재를 증명한다. 또 죽음의 원인을 제공한 것이 단지 권력을 가진 자들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무관심에도 그 책임이 있음을 뼈저리게 확인시켜준다.

나는 가끔 생각해본다. 1월 19일 그날, 내가 볼일을 보러 가다 말고 남일당 건물 앞에 멈춰 섰더라면. 망루에 올라간 철거민들의 절규에 귀 기울였더라면. 그래서 나와 또 다른 나, 그리고 또 다른 나, 수많은 나의 눈과 입과 귀가 그곳에 모여 야만 정권과 폭력 경찰에게 너희의 만행을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음을 엄중히 경고했더라면. 그랬다면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까. 최소한 정부가 철거민이 옥상에 올라간 지 겨우 하루 만에 특공대를 투입하여 가혹하고 기민한 진압 작전을 펼치는 대신 그들과 대화를 해보려는 시늉이라도 하지 않았을까. 내가 그곳에 있었다면. 수많은 내가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면. 아아, 정말이지 그랬다면. <본문 189쪽>

아프리카의 스와힐리(Swahili)족들은 사사(Sasa)와 자마니(Zamani)라는 독특한 시간관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아프리카인들에겐 누군가 숨이 멎었다고 하더라도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 한 망자(亡者)는 죽은 것이 아니라 여전히 ‘사사'의 시간 속에 살아간다고 믿었다. 그 사람과 어떤 사건에 대한 기억 자체가 사라지는 순간 비로소 망자는 영원한 침묵의 시간, 즉 ‘자마니'로 떠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조금 전 용산참사역을 떠났다. 그러나 이들의 장례가 치러지더라도 이 땅에서 자본에 의한 폭력적인 개발이 지속되고, 쫓겨나는 이들이 생겨나는 한, 정당한 국민의 요구를 공권력으로 짓밟는 일이 계속되는 한, 우리가 다음에 내릴 역, 또 그 다음에 마주하게 될 역도 언제나 용산참사역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출처 : <청소년문학> 2010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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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전 <연말정산-2009년 대한민국의 자화상> - 포토텔링기획전




전시기간 : 2009년 12월 31일 - 2010년 1월 20일
참여작가 : 김성헌, 김수진, 이치열, 심현철, 이명익, 정택용, 조재무, 박선주, 한상훈
전시장소 : 사진전문갤러리카페 <포토텔링>
홈페이지 : www.phototelling.net



사진전문 갤러리 카페 포토텔링(Phototelling)은 사진을 통해 세상에 말을 건다는 모토로 만들어졌다. 이들이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준비한 기획전의 제목은 <연말정산 - 2009년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광학 원리에 의해 사물을 포착해내는 카메라 렌즈에 의해 정착된 사진은 있는 그대로 재현된 광학원리의 결과물이 아니라 카메라를 들고 바라본 이의 시선에 의해 포박된 기호(記號)이다. 사진 기호는 작가에 의해 촬영되고, 현상과 정착, 인화의 과정을 거쳐 비로소 발화(發話)한다. 사진은 타인(감상자)의 시선에 다시 포박되는 과정을 통해 수화(受話)된다. 수신된 기호는 타인의 논리와 감정의 미로를 지나 또 하나의 심상(心象)이 된다. 세상의 모든 대화(對話)는 이런 과정을 거쳐 완성된다.

사진의 놀라운 재현성은 종종 화자에 의해 언술된 기호가 모두 사실(fact)일 것이라는 강박을 준다. 그러나 언어가 그러하듯 사진 역시 왜곡될 수 있으며 세상의 진면목을 있는 그대로 모두 보여줄 수 없다. 사진의 놀라운 재현성과 현장성은 그 힘이 강력하면 할수록 그와 반대로 보이는 이 모든 것이 진실을 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라는 강력한 회의에 부딪치게 된다. 한 장의 사진은 물론이요, 우리가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모든 사건은 하나의 예외도 없이 모두 ‘구체적 보편'이다. 사회적으로 무수한 연쇄의 고리를 지니고 있는 구체적 보편의 연쇄 앞에서 한 장의 사진이 구체적 해답이나 대답을 주기엔 너무나 약소하다.




한 장의 사진은 하나의 대답이 아니라 하나의 질문이다. 눈앞에 보이는 한 장의 사진 너머 보이지 않는 더 많은 진실에 대해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고 답해야만 한다. 이들의 사진은 답을 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묻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구체적 보편의 연쇄 앞에서 구체적 해답(혹은 대답)을 준비하고 있는가, 아니 과연 지금도 우리 안의 모순들과 대면할 용기를 가지고 있는가? 또 사진 속에 담겨있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 느끼는 우리의 연민이 과연 진실한 것이라 말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의 증명사진과 존재증명

문학에서 ‘자서전’이 그러하듯 미술에서 ‘자화상’이란 단순히 자신의 얼굴을 그려 그것을 후세에 남긴다는 의미보다 자신(존재)과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상과의 투쟁을 담는다는 점에서 인간의 존재 본질을 묻는 작업이다. 자화상에서 화가는 자신의 외양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 전체의 온전한 모습을 집약하고자 노력한다. 자화상은 세계에 투사된 자아의 이미지이자, 존재의 확인이며 동시에 세상과 대결하는 자신을 노출하는 첨단(尖端)의 일부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기획전이 담아낸 우리 시대 대한민국의 자화상은 비록 성긴 모양에 그칠지라도 그 윤곽을 살피기에 결코 부족하지 않다. 그러나 이들의 시선을 - 기륭전자(비정규직), 뉴타운, 미디어 법, 세종시, 대통령 서거, 쌍용차 등 - 통해 바라본 대한민국의 자화상, 대한민국의 증명사진은 참담하다.




1997년 IMF외환위기를 전후해 우리는 ‘희망퇴직’이란 말을 즐겨 들었다. ‘희망’과 ‘퇴직’이란 어울리기 어려운 두 단어가 결합된 형용모순은 외환위기 이후 ‘정리해고’ 당한 사람들보다 좀 나은 행운을 누렸다는 의미가 되었다. 1950년대에서 1980년대 후반까지 우리는 ‘희망의 빈곤’ 시대를 살았다. “잘 살아보세. 누구나 한 번 잘 살아보세”라는 노래가 상징하듯 국가가 제시한 근대화의 아젠다는 폭압적이고 봉건적인 노동통제의 시대를 거쳐 근대 포디즘적 노동통제 시대로의 전환기 동안 ‘하면 된다’는 희망을 통해 빈곤을 인내하도록 했다. ‘희망’을 품고 있는 동안 ‘빈곤’은 그래도 견딜 만 했다. 그러나 생산 자본주의에서 소비 자본주의로의 전환은 노동통제를 곧 자율, 자기계발이란 허울 좋은 논리로 전환시키며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이 강제하는 빈곤을 자기계발하지 못한 이들의 자기 책임으로 귀결시켰다. 이제 빈곤은 단순한 절망과 박탈을 의미하지 않고, 사회적 무능력자들의 책임이 되었다.

사회가 약육강식의 정글이 되자 약자들은 자신보다 더 약한 처지의 사람들을 배제하고, 박탈하여 엄혹한 시대를 견디려 한다. 광우병 촛불시위 현장에서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를 비롯한 온갖 구호가 나왔으나 ‘비정규직 문제’로 넘어가면 모두들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들이 아니면 내가 당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 앞에 우리는 모두 잔인한 동맹의 구성원이 되었다. 국가권력, 기업권력 앞에서 모두가 시선을 외면한 채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는 동안 그들은 보이지 않는 거대한 ‘왕따’였다.




이등시민의 사회 - 박탈과 배제의 일상화

대한민국은 일제 강점기처럼 황국시민과 후레이센진(不逞鮮人)처럼 일등시민과 이등시민으로 양분되고 있다. 이런 차별은 단순히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구분만이 아니라 언제 누가 될지도 모를 모든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배제의 원리를 관철시킨다. 쌍용자동차는 거친 세계화의 구조조정을 피할 수 없는 현실을 외면한 이들의 투쟁으로, 세종시는 지역이기주의로, 미디어법은 그동안 안전한 고용의 테두리 속에서 고임금을 누려온 이들의 제 밥그릇 지키기로 폄훼된다. 5.18 광주 민주항쟁 이후 권위를 의심받았던 대한민국은 올림픽과 월드컵을 거치며 ‘오! 대한민국’으로 찬란하게 부활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국가가 앞장서서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집권여당이 2년 내 정규직으로 전환하란 법 규정을 4년으로 바꾸지 않으면 해고대란이 일어난다며 도리어 난리 치는 국가다. 우리는 빈곤하다. 물질이 아니라 정신이 빈곤하다. 한 사회가 이처럼 조직적으로 사회적 약자를 짓밟으면서도 OECD 10위 안에 드는 생산력, 경제력, 경쟁력을 누린다 한들 우리는 행복할 수 있을까?

<2009년 대한민국의 자화상>이 담고 있는 우리 시대 초상의 몇몇 구체적인 진면목을 살펴보자. 1990년 6월에 설립된 기륭전자(Kiryung electronics)는 한국의 위성방송 수신기를 제작, 생산하는 업체로 이 업체가 생산하는 제품들 - 디지털 셋톱박스, 디지털위성 라디오, 네비게이션, 지상파 DMB, HD Radio 등 - 은 대부분 외국에 수출된다. 제조업으로 분류되는 기륭전자지만 이 업체는 지난 2002년 이후 생산직 정규노동자를 한 번도 고용하지 않았다. 2005년 6월 30일 기륭전자 노동자들은 노동부에 기륭전자와 파견업체 휴먼닷컴에 대해 불법파견이라며 진정서를 냈고, 다음달 5일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기륭전자는 생산 물량을 중국의 외주업체로 빼돌린 뒤 물량감소를 이유로 계약직을 해고하기 시작했다.



노동부는 불법파견을 이유로 기륭전자에게 개선명령을 내렸지만 기륭전자는 비정규직 중 1년 미만 노동자 전원을 해고한 뒤 이들을 도급으로 돌리겠다며 개선이 아닌 개악으로 화답했다. 그러나 이는 법적으로는 불법이 아니다. 노동자들이 점거농성을 시작하자 공권력이 투입되었고, 조합원 전원이 경찰에 연행되면서 1,000일이 넘는 기나긴 투쟁이 시작된다. 기륭전자는 ‘파견근로자보호에 관한 법률’을 위반했다는 사실을 시인하였지만 끝끝내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법적으로 파견된 사람일 뿐, 기륭전자의 정규직 사원이 아니므로 회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비정규직 문제는 단지 기륭전자만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비정규직이 무조건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것은 상식에 어긋난 행동이고, 이제는 한국에 공장도 없기 때문에 정규직화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기륭전자는 이름만 바꾼 다른 공장을 통해 제품생산을 여전히 계속하고 있다.

‘용산참사’. 정식명칭은 용산4구역 철거현장 화재사건이다. 2009년 1월 20일 새벽 5시 33분, 대한민국 수도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에 위치한 건물 옥상에서 점거농성을 벌이던 세입자와 전국철거민연합회 회원들, 경찰과 용역 직원들 사이에 충돌이 벌어졌다. 이 사건으로 경찰특공대 1명, 철거민 5명이 목숨을 잃었고, 23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 시장 시절부터 추진했던 뉴타운과 도시정비사업의 결과였다. 서울시가 도시환경정비라는 목적으로 추진했던 도시정비사업은 서울 곳곳에서 벌어졌고, 그중에서 용산 4구역은 한강로3가 일대 5만3,442평방미터를 재개발하는 거대한 사업이었다. 재개발로 인해 인근의 땅값이 크게 올랐고, 그 결과 이 일대 지역에서 상가를 임대받아 장사를 하던 이들은 버티지 못하고 쫓겨나게 되었다. 도시정비사업 관련 법률은 도시개발법과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도시재정비 촉진을 위한 특별법, 토지 보상법 등 여러 법률체계에 얽혀 있어 일반인들은 설명을 들어도 쉽게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며 복잡한 법률체계의 틈바구니에서 법률이 서로 일치되지 않거나 행정 판단을 내리기도 어렵게 되어있다.



서울 곳곳에서 벌어지는 철거현장마다 아수라장이 되는 이유 중 하나는 이런 법률체계의 문제다. 그리고 이런 법률체계의 틈새를 이용해 공공연한 불법행위들이 자행된다. 문제는 행정 권력이 토지소유주들의 입장과 세입자들의 입장 사이에서 공정하게 법을 집행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 역시 도시정비사업의 한 주체로서만 인식한다는 데 있다. 서울시와 용산구는 도시정비를 통한 땅값 상승과 이를 통한 세비 증대 등을 이유로 도시정비사업을 강하게 추진했다. 그 결과 서울시와 용산구는 토지보상법에 규정된 주거이전비를 철거지역 세입자들에게 지급하지 않고, 이들을 강제로 내쫓으려 했고, 저항하는 이들을 범법자로 몰았다. 국가권력은 세입자들을 내쫓기 위해 폭력을 행사하는 용역들에게는 관용을, 이에 대항하는 세입자들은 범법자로 대했다. 범법자가 된 세입자들 가운데 생계를 위협받게 된 이들이 옥상 건물 위에 망루를 설치하고, 경찰과 용역 철거반에 맞서기 위해 화염병과 신너, 돌을 준비했다. 경찰은 이런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으나 사전에 최소한의 안전대책 마련이나 협상 없이 곧바로 경찰특공대를 진입시켰고, 그 과정에서 불법적으로 용역들을 대동하기도 했다. 화재 발생의 직접적인 요인에 대해 일각에서는 농성자들이 화염병을 던져 생긴 것이라는 주장도 있었으나 공판에 나온 경찰특공대원은 “진압 당시 화염병 던지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사건 발생 직후 경찰 내부에서 사건을 조직적으로 은폐하고, 인터넷을 통해 여론을 조작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용산참사의 직접적인 원인은 많은 이들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철거민과 조합간의 보상비 문제였다. 어떤 이들은 이에 주목해 이것을 사회문제가 아닌 세입자와 조합 사이의 문제만으로 축소해서 보려고 한다. 이명박 정부가 용산참사 희생자들에 대한 사과를 거부하며 두 번째 겨울을 맞이하도록 아무런 대책도 없이 용산참사 희생자들을 구속처벌하고, 범대위 위원장 등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한 것 역시 마찬가지의 시선이다. 용산참사를 국가권력과 시민 사이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라 세입자와 조합, 세입자가 조합에게 좀더 많은 이주보상비를 뜯어내기 위해 벌였던 시위로 규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UN사회권 규약위원회에서는 “퇴거를 당하는 사람들이 원치 않을 경우 겨울철과 같은 악천후에는 퇴거를 수행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용산4구역은 2008년 11월부터 철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국제사회는 겨울철 강제철거를 금지하고 있다. 검찰은 수사기록 등의 열람, 등사를 거부했고, 법원이 요구한 수사기록 3천 쪽 역시 변호인단에게 공개하지 않았다. 변호인단이 수사기록이 전면 공개될 때까지 공판이 중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나 끝내 거부되었고, 변론을 거부하자 재판부는 국선 변호인들로 하여금 피고인들의 변호를 맡겼다. 이에 반발한 피고인 9명이 재판부 기피 신청을 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정운찬 신임 총리는 10월 3일 전격적으로 용산참사 유가족들을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용산 철거민 참사에 대해 자연인으로서 무한한 애통함과 공직자로서 막중한 책임을 통감한다며 총리로서 사태 해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지만 “사태 해결을 위해 정부가 직접 나서기는 어렵다면서 당사자 간 원만한 대화가 이뤄지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최선을 다 하겠다”고 꼬리를 붙였다. 무한한 애통함과 막중한 책임을 뒤로 한 채 용산참사의 피의자들은 모두 1심 재판에서 중형을 선고받았다. 구형한 검찰이나 검찰의 구형 그대로 형을 선고한 법원이나 모두 비인정(非人情)이다. 그리고 용산참사는 장례도 치르지 못한 채 곧 만 1년을 맞이한다.

타인의 고통을 함께 부대끼며 살아간다는 것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의 등에 새겨진 짧지만 강렬한 문구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모두의 외침일 것이다.

“함께 살자”

함께 살자는 기륭전자의 외침, 용산의 외침, 쌍용자동차 노동자의 외침을 외면하고서는 올해의 연말정산은 불가능하다.
수잔 손탁은 『타인의 고통(이후, 2004)』에서 매스미디어를 바라보며 타인에게 연민을 느끼는 행위, 살아남은 혹은 평화롭게 살고 있는 “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똑같은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특권이 (우리가 상상하고 싶어 하지 않는 식으로, 가령 우리의 부가 타인의 궁핍을 수반하는 식으로)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 것, 그래서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라고 말한다. 이 말은 바로 고통의 근본원인은 그대로 둔 채 단지 연민하는 포즈만 취하는 것이 주는 가증스러움을 거부하라는 말이다. ‘실천 없는 연민’은 ‘자기 연민’이자 ‘자기애’의 발로이고, ‘연민 없는 논리’는 잔인하다.



‘엄살’이란 ‘아픔이나 괴로움 따위를 거짓으로 꾸미거나 실제보다 보태어서 나타내는 태도’를 일컫는다. 엄살이란 전체를 뜻하는 ‘온(온 세상의 온)’과 ‘살갗’이 합쳐진 ‘온살’이란 말이다. <2009년 대한민국의 자화상>을 준비한 작가들은 그들이 이 고통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점에서 ‘온살(엄살)쟁이’다. 길거리에서 누군가 타인이 얼어 죽어도 우리는 그와 상관없이 살 수 있다. 파업을 주도할 위치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한 언론인이 일요일 오전 제 자식들이 보는 앞에서 체포되어 잡혀가도 누군가는 여전히 평온한 아침을 맞이한다. 80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몰릴 위기 앞에서도 우리는 아프지 않을 수 있다. 그것이 지금 당장 나의 일이 아니므로 오늘 하루도 평범하게 인터넷 쇼핑몰을 뒤적이며 살아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프다면 엄살이란 손가락질을 받을 수 있다. 혼자만 도덕적인 척 한다거나 위선이라고 지적하는 세상이다. 하지만 ‘엄살'이란 상처의 기억, 고통의 상상력이다. 연인과 다툰 뒤 전화를 받지 않아 애태우던 불통의 기억, 가난하여 차별받았던 기억, 급작스러운 실직으로 고통 받았던 기억, 이런 기억을 실제로 체험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상상하게 만드는 힘, 엄살의 힘이 우리를 인간으로 존재하게 만든다.

우리는 상처의 기억, 고통의 상상력을 통해 내 일이 아닌 일에도 내 일처럼 아파할 수 있다. 인간이 꿈의 세계에서 오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꿈꾸지 못하는 자들의 현실론이야말로 상상력 부재의 밀폐된 공간에 스스로를 유폐한 사람들의 답답함을 의미할 뿐이다. 손톱 끝에 박힌 가시 하나에서 온 몸의 통증과 불편을 체험하듯 이 사회의 작은 일부가 아플 때 우리는 그것을 나의 일처럼 느낀다.



2009년 대한민국의 자화상을 포박하여 그려낸 이들은 모두 그 자리에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시선으로 우리에게 자신이 바라보았던 것을 보여준다. 그들 중 누구도 이것이 대한민국의 모든 진실이라고 말하진 않는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의 진짜 얼굴이라고 말하고 싶어 한다. 이들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눈앞에 보이는 한 장의 사진 너머 보이지 않는 더 많은 진실에 대해 이제 우리는 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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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 원망도 할 수 없는 정부


▶ 사진 : 이치열

이명박 정부가 지난 16일로 출범 600일을 맞이했다. 대통령 임기 5년(60개월) 중 약 3분의 1이 지난 것이다. 이제부터는 집권 초반기가 아니라 중반기에 들어섰다.

재임 600일 동안 이명박 대통령은 유난히 ‘불(火)’과 인연이 깊었다. 취임 직전에 국보 1호 남대문이 불탔고, 집권 100일 만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으로 벌어진 촛불시위를 청와대 뒷산에서 바라보아야 했다. 그리고 2009년 1월20일, 용산에서 점거농성을 벌이던 세입자와 경찰, 용역직원 간의 충돌로 화재가 발생해 철거민 5명과 경찰특공대 1명이 사망하고, 23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당하는 ‘용산 참사’가 벌어졌다.

이 대통령은 집권 중반을 준비하며 ‘중도 실용, 친 서민 정책’을 내세웠고, 그에 맞춰 청와대 비서진의 진용을 바꾸고 내각도 정운찬 총리 체제로 새롭게 정비했다. 그러자 주춤하던 지지율도 절반 수준을 회복했다. 미국발 금융위기는 실업난과 물가고 등의 문제를 남겼지만 경제위기는 진정 국면에 들어섰고, 그동안 꽉 막혀서 도저히 실마리를 찾을 수 없을 것 같던 남북문제도 조금씩 진전되기 시작했다. 얼마 전엔 주요 20개국(G20) 회의를 유치하는 외교적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대통령의 집권 600일을 맞아 언론이 전하는 국민들의 바람은 한마디로 ‘대한민국 CEO’가 아니라 ‘나라의 어른’이자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해달라는 것이다. 국민들이 대통령에게 기대하는 것은 특정 정당의 정치인이거나 특정 지역, 종교, 계층의 대변자가 아니라 국가와 국민의 수호자이자 대변자이길 바란다.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반등하기 시작한 것도 중도실용정책의 성공 때문이 아니라 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를 국가의 수장으로서 성의껏 치러준 덕분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 의미에서 집권 중반기를 맞은 이명박 정부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무엇보다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중도실용, 친서민 정책의 진정한 실체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용산 참사로 남편과 아버지를 잃은 유가족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이들이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용산 참사는 한 차례 사전 협상도 없이 진압에 나서면서 안전대책조차 수립하지 않은 경찰의 무리한 진압 방식 탓에 예고된 참사였다. 참사 발생 이후엔 화재의 원인부터 시작해 경찰청이 조직적으로 여론조작에 참여했다는 논란, 청와대 여론조작 지침 논란 등 무수히 많은 의혹 속에 명확한 진상이 규명되지 않고 있다.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법원이 검찰에 제출하도록 한 수사기록 3000쪽을 검찰이 공개하고, 용산 참사를 중앙정부 차원에서 해결하도록 대처해야 한다. 제대로 된 진상 규명이 없다면 원망은 더욱 더 깊어져만 갈 것이기 때문이다.

<맹자(孟子)> ‘진심장(盡心章) 상(上)’편에는 “편안하게 해주는 방법으로써 백성을 부리면 백성들은 비록 고달프더라도 원망하지 아니하며, 살리는 방법으로써 백성을 죽이면 비록 죽더라도 죽이는 자를 원망하지 아니한다(以佚道使民 雖勞不怨 以生道殺民 雖死不怨殺者)”는 말이 있다.

편안하게 살도록 해주기 위해 4대강 정비 사업을 한다면 비록 국가부채가 늘어나고 사는 것이 다소 고달파지더라도 국민들은 참고 견딜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장기적 비전이나 계획이 아니라 대운하사업이 어렵게 되자 단기적 경기 부양을 위해 벌이는 토건사업이라면 국민들은 당연히 원망하게 된다. 미래의 시민인 어린이를 보호하기 위해 어린이 성폭행범을 무겁게 처벌한다면 설령 형벌이 무거워지더라도 국민은 원망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권의 이익을 위해 방송을 장악하고, 단지 정치적 반대파를 제거하기 위해 형벌을 무겁게 내리고 억압한다면 당연히 처벌하는 자를 원망할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살아보겠노라 발버둥치는 국민들을 떼죽음으로 몰아놓고 원망조차 듣지 않겠다는 정부라면 어떤 국민이 원망하지 않겠는가.

* 원래 써서 보낼 때의 제목은 <죽어서도 원망할 수 없는 정부>라고 했는데, 제목이 살짝 달라졌다. 흠, 원제목에 나름 중의적인 메시지를 담았던 건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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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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