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선물 ㅣ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74
존 버닝햄 글, 그림 | 이주령 옮김 / 시공주니어 / 1997년 1월

 


인간은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이다. 예전에 들었던 이야기 중에 마치 할아버지의 기다란 수염에 대한 천진난만한 손주의 질문, "할아버지는 잘 때 수염을 어떻게 해요? 이불 속에 넣고 자나요? 이불 밖으로 빼놓고 자나요?" 처럼 별로 고민할 일이 아님에도 의미를 찾기 시작하면 의미란 것이 별 것도 아니면서 사람의 심리를 집요하게 잡아끄는 힘이 있다. 어떤 인간도 자신의 인생을 매순간 의미로 가득채우고 싶어 안달이란 점에서 인생에 무의미한 일이란 없는 법이다.


그런 점에서 존 버닝햄의 "크리스마스 선물"은 한 편의 시이자, 아름다운 의미론이기도 하다. 산타클로스는 자본주의적으로 보자면 비효율의 상징이다. 1년 12두달 내내 놀다가 12월 24일 하루만 일하는 노동자란 점만 놓고 보아도 그렇다. 그러나 1년 12달 내내 밤마다 돌아다니는 산타클로스를 상상할 수는 없다. 기다림이 없는 산타클로스에게 어떤 매력을 찾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산타클로스가 1년에 단 하루 노동한다고 해서 나머지 시간 동안 놀고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나머지 시간 동안 산타클로스는 우리가 즐겨 부르던 크리스마스 캐롤처럼 "누가 착한 앤지, 나쁜 앤지"를 살피고, 그에 합당한 선물을 준비하는 존재다. 산타클로스에 의한 크리스마스 선물은 선행에 대한 당장의 보상이 아니라는 점에서 산타클로스는 아이들의 퇴행(다시 어려지고자)하고자 하는 집요한 욕구를 성장시키는 존재다.


이 책의 원제는 "하비 슬럼펜버거의 크리스마스 선물(Harvey Slumfenbuger`s Christmas Present)"인데, 제목만 보더라도 작가 존 버닝햄이 얼마나 짖궂을 정도로 위트가 넘쳐나는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아이의 성(性)을 보자 "슬럼(Slum)"펜버거다. 우리는 이 이름만 보더라도 크리스마스 선물을 빠짐없이 전달했다고 생각한 산타클로스가 어째서 순록이 너무 지쳐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서, 비행기 사고를 겪고, 자동차 사고를 겪고, 오토바이 사고를 겪고, 스키 사고를 겪고, 자일을 타고 등산을 하면서까지 반드시 크리스마스 선물을 전달하려 하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존 버닝햄의 그 천재성에 고개가 절로 떨구어진다. 이 짧은 동화에서 그는 어쩌면 이토록 많은 의미들을 담아낼 수 있을까.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를 이토록 빠짐없이 담아낼 수 있을까. 거기에 재미까지 선사할 수 있을까.


크리스마스를 앞둔 밤. 산타클로스는 온세상의 모든 아이들에게 골고루 선물을 나눠주었다. 순록은 밤새 온 세상을 돌아다니며 선물을 전하느라 지쳤고, 이제 산타클로스도 잠옷으로 갈아 입고 하룻동안의 피곤을 씻기 위해 잠자리에 들 찰나 한 명의 어린이에게 선물을 전달하지 못한 사실을 깨닫는다.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못 받는 아이가 있다니... 산타클로스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다시 특유의 빨간 산타 복장을 갖춰 입고 길을 나선다. 한 명의 어린이를 위해 온 세상이 움직인다. 비행기를 갖고 있는 조종사는 비행기를, 자동차를 가지고 있는 이는 자동차를, 오토바이를 가지고 있는 오토바이를, 스키를 가지고 있는 이는 스키를, 등산용 자일을 가지고 있는 등산가는 등산용 자일을 아낌없이 선사하여 산타클로스의 사명을 다하도록 돕는다. 천신만고 끝에 산타클로스는 하비 슬럼펜버거의 굴뚝으로 들어가 잠들어 있는 하비의 머리맡에 놓인 양말에 준비해간 선물을 넣어준다. 그러나 존 버닝햄은 끝끝내 선물의 내용이 무엇일지 독자들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짖궂지 않은가? 그러나  버닝햄은 결코 짖궂은 사람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하비 슬럼펜버거에게 주어진 선물의 내용이 무엇일지 알고 있다. 친절한 버닝햄 씨는 이미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로 우리들에게 그 선물의 내용을 알려주었다.


예수는 "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고 말한다. 이 말의 의미는 이런 것이 아닐까? "한가지 비유를 가지고 설명하자.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아픈 손가락이 없다는 말이 있다. 중요한 장기가 병들었든, 손끝에 가시가 하나 박히든 그 중요성에 있어서는 마찬가지다. 인간의 육체는 심장이 손가락을 소외시키는 일이 없다. 육체라는 것은 상당히 이상적으로 우정과 사랑, 나와 너가 하나인 대단한 사랑의 조직체이다. 그러나 어떤 국가·사회·제국도 그렇게 순수한 육체의 조화로운 통일과 같은 유기성은 없다는 데 문명의 모순이 있다. 가령 어떤 사회에도 ‘천국이 따로 없다’고 생활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기본적인 물질적·정신적 보장조차 못받는 사람들이 공존한다.

물론 한쪽이 억압받는다고 해서 전체로서의 사회나 국가가 어떤 일다운 일을 못하거나 생산력을 발휘할 수 없느냐 하면 그것은 아니다. 한쪽은 병들어 있으면서도 몸 전체는 위대한 행동을 할 수도 있고 부인할 수 없는 유산도 남길 수도 있다. 어쨌든 그 사회에서 혜택을 받는 사람들은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문제는 나머지 부분인데 그 부분을 어떻게, 어느 정도 아파하느냐 하는 것이 인류역사 발전의 척도라고 할 수 있다."는 작가 최인훈의 말을 떠올려 보자. 만약 "인간의 육체"가 "심장이 손가락을 소외"시킨다면 그 손가락은 당장 오늘부터라도 썩어가기 시작할 것이다.

2004년 8월 현재 대한민국 전체 임금노동자의 60%가 비정규직 노동자이다. 이 통계 수치는 선진국의 2배에 이르는 수치이며 비정규직 임금노동자의 소득은 정규직의 50%미만이며 이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안전망은 매우 취약한 상황이어서 사회보험가입율이 정규직은 82%인데 비해서 비정규직 노동자는 30%를 간신히 넘어서고 있다. 이외에도 퇴직금, 상여금, 시간외수당, 유급휴가 등 노동조건의 적용 수준도 정규직의 82%에 비해 14%에 불과하다. 사회의 한쪽에선 한해 평균 1만여 명의 사람이 해외로 원정진료를 떠나 1조원 이상을 소비하고, 다른 한쪽에선 건강보험 지역가입 체납가구수가 약 170만 세대에 이른다. 한 세대 당 3-4인이라고 했을 때, 무려 700만에 이르는 사람(2005. 8.11. 연합뉴스 - 우리나라 빈곤층 716만명, 전체인구의 15%)들이 기초 사회복지라 할 수 있는 건강보험 혜택으로부터 소외되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손가락 하나가 썩는 정도가 아니라 몸통이 썩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정부와 이 땅의 지배계급은 아니 당신과 나는, 복지는, 분배는 시장을 먼저 살려놓고 나서 그 때 돌아봐도 괜찮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의 이웃과 친밀한 적대 관계다.


버닝햄은 가난하고 소외된 한 명의 어린이에게 사랑과 희망을 선사하기 위해 온세상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자본의 효율성이란 인간의 논리가 아니란 사실을 새삼 깨울칠 수 있다. 마더 테레사의 이야기, "난 결코 대중을 구원하려고 하지 않는다. 난 다만 한 개인을 바라볼 뿐이다. 난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다.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껴안을 수 있다." 그러나 "만일 내가 그 사람을 붙잡지 않았다면 난 4만 2천 명을 붙잡지 못했을 것이다."란 말을 단순히 한 명의 성자(聖子)만이 도달할 수 있는 경지로 생각할 때, 우리는 결국 손가락을 소외시킨다. 노조 대표가 다음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정규직 노동자의 이해관계만을 반영한 분배투쟁에 앞장설 때, 우리는 하나의 손가락을 소외시킨다. 교육 노동자가 자기 학교에 있는 비정규직 교사를 차별할 때 우리는 하나의 손가락을 소외시키고, 남성이 여성을, 한국인 노동자가 외국인 노동자를 차별할 때 우리는 또 하나의 손가락을 소외시킨다. 가장 급진적인 것은 어떤 경우에도 선언에 의한 것이 아니며, 가장 실천적인 것은 이론에 의한 것이 아니다. 누구도 자신의 주변에 눈물 흘리는 사람을 소외시키고는 급진적일 수도, 실천적일 수도 없다는 작고 소박함, 그 원칙에서 세상의 모든 급진은 꽃핀다. 꿈꾸고 사랑하라! 크리스마스가 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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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마법 침대(The Magic Bed) - 존 버닝햄 지음 | 이상희 옮김 | 시공주니어(2003)



개인적으로 존 버닝햄(John Burningham)의 작품 가운데에는 교육에 대한 신랄한 풍자가 녹아있는 "지각대장 존"을 가장 좋아한다. 탈민족주의를 외치는 시대 조류에 부응하지는 못할 망정 헛소리로 비칠 수도 있는 이야기 한 마디해보자. 민족을 '상상의 공동체'라고까지 하지만 같은 지역, 같은 환경, 같은 습속, 같은 문화(이때 같다는 건 절대적인 동일함을의미하진 않는다)를 공유한 이들끼리 비슷한 기질을 보이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나는 개인적으로 영국식의 신랄한 풍자를 상당히 좋아하는 편이다. 예를 들어 조나단 스위프트 식의 그런 풍자 말이다.


존 버닝햄의
"지각대장 존" 역시 나는 그런 영국식 유머로 받아들였는데, 그가 이런 그림책을 써낸 배경에는 그 자신이 영국의 대안학교인 서머힐스쿨 출신이란 점도 적지 않게 작용한 듯 싶다. 우리 화가인 이중섭의 경우에도 그에게 평생을 두고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 그가 오산학교 출신이란 교육 체험이 컸다고들 하는데, 버닝햄이 비록 "지각대장 존"에서 교육에 대해 신랄한 풍자를 가하긴 했으나 자기 자신은 서머힐의 교육 방식에서 비롯된 혜택을 본 수혜자이기도 하다. 인간이 만들어낸 교육이 인간에게 이토록 깊은 영향을 미치는데, 하물며 매일 들이쉬고, 내쉬며 살아온 대기와 흙, 물과 햇빛은 인간에게 얼마나 깊은 영향을 줄까.


본래 영국엔 수많은 요정들이 살고 있었다. 영국의 기후와 풍토가 수많은 요정들과 함께 살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대륙과 바다로 단절된 섬이고, 사방에 많은 숲과 습지, 깊은 안개와 잦은 비가 영국에 많은 요정들이 살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래서 영국의 여러 지방엔 그들 나름의 많은 요정 이야기가 산재해 있다. 그런 영국에서 요정이 사라지게 된 것은 대중교육이 일반화되면서부터였다. 즉, 아이들이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티 타임 시간에 마을 인근의 숲이나 습지에 살고 있는 재미난 요정 이야기를 듣는 대신, 선생님이 엄격하게 훈육하는 초등학교로 보내진 뒤부터 영국의 요정들은 점점 일반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게 되었다.


갑자기 무슨 소리인가 싶을 수 있겠다. 한 마디로 축약해보면 산업 문명과 요정들은 함께 동거할 수 없다는 말이다. 아이들이 크리스마스의 산타클로스를 몇 살 때까지 믿을까? 매년 성탄 시즌이면 TV에서 방영해주는 성탄절 특집 할리우드 영화들이 도리어 아이들의 머리속에서 산타클로스를 몰아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문명화 과정을 거치며 우리의 산야에서도 우리와 함께 머물던 수많은 귀신
(왜 귀신이라고 말하면 어쩐지 싫고, 요정이라고 말하면 괜찮은가?)들도 함께 사라져버렸다.


"이디오진크라지(idyosynkraise)"
란 말이 있다. 고도로 문명화된 현대인에게도 유일하게 남아있는 원시적이고 동물적인 반응 형식을 일컫는 말인데, 예를 들어 말미잘의 촉수 같은 무조건 반응을 말한다. 이디오진크라지는 인간을 순식간에 생물학적인 원초 상태로 만든다. 예를 들어 어떤 광경이나 상태에 처했을 때 자신도 모르게 머리카락이 곤두서거나 심장이 급하게 뛰고, 사지가 경직되는 것과 같이 일순간 신체 부분들이 주변 세계에 동화되는 현상이다.


아도르노는
"계몽의 변증법"에서 근대의 계몽을 통해 새로운 방식의 사회적 삶이 새로운 종교나 사고 방식에 공간을 내어줄 때, 보통 옛 신들도 함께 내던져진다고 말한다. 예전에 사랑받던 습관이나 신성한 행동이나 경배 대상들은 가증스러운 비행이나 공포스러운 유령으로 변질된다. 이는 인류의 폭력적 진보가 만들어낸 상흔들이다. 다신교는 일신교로, 옛 신화는 계몽된 신화로, 위대한 대지모신은 여호와(분명히 남성적인)로, 토템에 대한 경배는 그리스도에 대한 경배로 변화된다. 모든 신화를 해체되고, 예전의 터부들은 미신이 된다. 교육은 아이들의 계몽과정, 문명화 과정이다.


존 버닝햄의
"마법 침대(The Magic Bed)"의 첫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조지는 자신의 작은 침대 - 아이들이 잠결에 떨어지지 않도록 사방에 난간을 댄 - 를 잡고 일어나 있다. 테디 베어 인형이 이불에 반쯤 묻혀있고, 침대 밑엔 아이용으로 만들어진 작은 변기가 놓여 있다. 할머니와 어머니가 어린 조지에게 말한다.


"조지야, 이 침대는 이제 너한테 작아. 아빠랑 쇼핑센터에 가서 새 침대 좀 사오라니까?"


머리가 훤하게 벗겨진 아버지는 안경을 쓰고, 방금 화장실이라도 다녀왔는지 신문을 반으로 접어 들고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조지 사이의 대화를 방관자처럼 듣는 포즈다.






이제 조지는 더이상 어린 아기가 아니라 한 명의 어린이가 되어가는 중이다. 그렇기에 조지에겐 새 침대가 필요했다. 조지와 아버지는 쇼핑센터 가는 길에 중고가구점을 발견하고, 가게 주인이 말한 마법침대를 구입하게 된다. 농경민족의 마법 도구는 산신령이나 도깨비가 흘린 물건을 우연히 줍거나 연못에 빠뜨린 도끼를 줍는 것처럼 신령에게 우연히 받는 것고, 아랍 유목 민족의 마법 도구는 알라딘처럼 바자(시장)에서 우연히 구매하는 것이다. 산업화되고 도시화된 영국에서 마법 도구는 이처럼 쇼핑센터 가는 길에 우연히 들른 중고가구점에서 구매하게 된다는 차이가 있다. 이처럼 우리 주변에서 마법을 일으킬 도구들은 산재해 있다. 당신이 믿어주기만 한다면 말이다.


조지와 아빠는 침대를 가져와 깨끗하게 닦아내다가 마법의 주문을 발견한다.
"엄"으로 시작하는 다섯 글자를 읽으면 되는데, 뒤에 있는 글자들은 지워졌는지 보이지 않는다. 비록, 마법이라도 본인의 정성이 깃들지 않는다면 효험을 잃는다는 건, 신화와 전설의 서사구조에 흔히 있는 난관이다. 조지는 설레는 마음으로 어서 밤이 오길 기다린다. 첫날 밤 조지는 "엄"으로 시작하는 마법 주문을 발견해내기 위해 노력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조지는 그냥 잠들었다. 하지만 조지는 그냥 포기하지 않았다. 이 말은 조지가 마법을 믿었다는 거다. 믿지 않는 자에겐 어떤 마법도 효험이 없는 법이다.


드디어 조지는 마법의 주문을 찾아냈고, 그 덕분에 도시 위를 날고, 들판에서 난쟁이들과 요정들을 만날 수 있었다. 조지는 밀림에도 가고, 그곳에서 아기 호랑이를 만나 부모를 찾아주고, 동굴 속에서 보물이 가득찬 상자를 발견하기도 한다. 조지는 돌고래를 만나기도 하고
(버닝햄은 위트있게 돌고래를 만났기 때문에 조지의 침대에 젖어있다고 말해준다), 빗자루를 탄 마녀들과 빨리 날아가기 시합도 벌인다. 조지와 가족이 휴가를 떠난 사이 할머니는 조지의 마법 침대를 버리고, 새침대를 들여놓았다. 조지는 잽싸게 쓰레기통에 실려있는 마법 침대를 따라 달려가 마법의 주문을 외워 마법 침대를 구출해내고, 마법 침대에 올라타고 하늘로 올라간다. 버닝햄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도 지금 침대에 누워, 그 침대의 주문을 알아 내 보세요. 조지처럼 멀리멀리 여행을 떠날 수 있을 거예요."


어떤 이는 버닝햄의 이런 마무리 보다는 조지가 침대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는 결말을 내려주었으면 좋았을 뻔 했다고 이야기한다. 아마, 부모의 마음으로는 그것이 좀더 교훈적이고, 해피엔딩에 가까우리라 생각을 했을 법하다. 독실한 크리스찬으로 조지가 마녀들과 시합을 벌인 것이 이단적이란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 근대의 계몽
- 산업화, 근대화, 도시화, 과학화로 일컬어지는 -  근대화는 우리에게 많은 물질적 혜택을 주었다. 그런데 우리들은 어째서 무언가를 잃은 듯한 상실감에 젖게 되는 걸까? 어째서 무언가 순수한 세계를 잃어버린 기분이 드는 걸까? 그건 아마도 우리 안에 잠재되어 있는 순진무구한 영혼, 자연에 깃들어 있을지도 모르는 또 하나의 신성(神性)을 우리들 자신이 살해해버린 탓은 아닐까? 우리가 지각할 수 있는 것만 존재하며,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것만 실재한다고 믿는 동안 어쩌면 우리는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더 많은 세계의 무언가를 잊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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