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인 화성인 우주인 : 움베르토 에코가 들려주는 이야기 - 움베르토 에코 지음, 김운찬 옮김 / 웅진주니어(2005년)




불경하게도 움베르토 에코의 이 책을 피터 L. 버거의 "사회학으로의 초대"를 읽다가 머리를 잠시 식힌다는 의미에서 옆으로 젖혀두었다가 붙잡고 10여분만에 읽어 버렸다. "지구인 화성인 우주인"에는 모두 3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첫 번째 이야기는 원자폭탄을 사랑한 지구의 장군 이야기이고, 두 번째 이야기는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지구인 화성인 우주인 이야기이며, 세 번째 이야기는 우주 탐사를 나서 작은 난장이 외계인을 만난 지구 우주인의 이야기다.


당연한 말이지만, 에코라는 이름이 없었다면... 오히려 편안하게 읽었을지도 모르겠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그렇다고 에코가 지은 유일한 어린이 책이라는데 실망스러울 것까지는 없다.


평범한 이의 걸작보다는 비범한 이의 졸작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훨씬 많다는 영화계 속설처럼 움베르토 에코라는 이름에 짓눌리지만 않는다면 나름대로 괜찮은 작품이다. 그런데 문제는 에코의 잘못인지, 역자의 잘못인지(분명 에코의 잘못이다) ... 문장이나 내용, 그림투도 그렇고 주요 대상층으로 어딜 겨냥하고 있는지 모호하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문제다.


성인들을 위한 동화라고 하기엔 너무 단순한 이야기고,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동화라고 하기엔 기존의 동화들과 별로 다를 것이 없는데다(이 부분이 에코라고 해서 큰 기대를 걸어선 안 된다는 것이고, 역시 제아무리 뛰어난 석학이라도 어린이 문학은 참 어려운 거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불친절하게 보이기까지 한다(에코라서 그런 선입견을 갖게 되는지도).

 

 

 




"에코"란 이름에선 에코 페미니즘을 비롯한 생태의 냄새가 자연스레 흘러나온다. 그런 탓일까? 이 책에서도 요사이 우리 사회에서 생태와 환경 문제, 그리고 배타성 문제에 대해 조금만 관심 있는 이라면 알 법한 내용과 주제가 담겨져 있음을 눈치챌 수 있다. 첫 번째 이야기는 반전반핵에 대한 이야기다. 원자를 의인화하여 그들이 원자폭탄이 되기 싫어 탈출을 감행하고, 장군은 창고에 하나 가득 쌓인 폭탄을 쓰지 못해 안달한 나머지 폭탄을 썼으나 원자들이 탈출하여 원자폭탄은 불발탄이 되고 "blahblahblahblah" 그런 얘기다.


그리고 두 번째 이야기는 화성에 간 미국인, 러시아인, 중국인들이 처음엔 서로 어색해하다가 팔이 여섯개 달리고 코끼리 코를 한 화성인을 만나자 금새 지구인이란 이유로 단합하는 모습을 보이는 광경에서 타자화의 문제를 이야기한다. "우리와 다르니 넌 적이다"란 세 우주인의 생각은 화성인도 역시 새를 사랑하는 모습을 보고 금새 풀린다. 차이를 인정하니 다를 것이 없는 생명체더란 이야기다.


세 번째 이야기는 지구의 지리상 대발견을 종료하신 황제 폐하께서 지구의 문명을 드디어 우주로 전파하기 위해 파견한 우주탐험가가 발견한 외계 행성인들과 나눈 대화라 할 수 있다. 에코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지 초반부터 쉽게 이해되는 내용이다. 서구인들이 신대륙을 발견(?)하고, 원주민들을 문명화한다면서 그네들의 생명과 재산을 노략질하고 약탈한 뒤에 이룩한 문명이 과연 무엇을 주었는가? 하는 생각을 해보면 말이다.


앞서도 누차 이야기하고 있지만 에코의 이름에 걸맞는 무언가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고, 그런 기대없이 편하게 대한다면 나름대로 좋은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어린이 책이 넘쳐나는 세상에 너무 쉽게(이 말은 어린이들이 읽기 쉽다는 뜻이 아니라, 작가가) 쓰인 건 아닌가 하는 ... 그런 선입견을 완전히 거둬들이기엔 미흡하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이전버튼 1 이전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