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중용 강설 - 이기동 옮김 | 성균관대학교출판부(2006)


『소학(小學)』과 『대학(大學)』 그리고 독서정한(讀書定限)

  올해의 목표이자 내 나름대로 설정한 고전 독서의 첫 단추를 『대학(大學)』 공부로 시작하기로 결심했었다. 2008년 한 해의 결심이자 내 삶의 한 결절(結節)을 이루는 지점이 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유교문화연구소 소장이기도 한 성균관대 이기동 교수의 강설(講說)로 이루어진 『대학 ․ 중용 강설』은 유교 경전과 한자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인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사서삼경(四書三經)’을 풀이한 강설 시리즈의 첫 번째 권이다.


  이 시리즈가 일반인들에게 비교적 널리 알려진 『논어(論語)』보다 앞서 『대학』을 첫 권으로 한 까닭은 실제로 조선시대에도 유교경전을 공부하는 기초 과정이라 할 수 있는 『소학(小學)』을 떼고, 본격적인 공부로 넘어가는 첫 단계로는 『대학』을 공부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선비됨을 가르치는 교육의 첫 걸음은 물론 태교(胎敎)부터 시작되었지만 아이가 처음 공부를 시작할 때는 우선 『천자문(千字文)』을 통해 한자를 배우고, 그 후에 『소학』과 『동몽선습』 등을 배우고 익혀 몸에 배도록 하였다. 서당이나 향교, 서원에 이르는 과정에서 『명심보감』, 『사서삼경』, 『사기』, 『자치통감』, 『당송문』, 『고문진보』 등으로 점차 경전에서 사서와 문학 작품에 이르는 폭 넓은 교육과정이 진행되었고, 같은 책을 읽더라도 강설의 수준이 높아져 가는 것이 일반적인 학습 방법이었다.

  『대학』과 대비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소학』은 송대(宋代)의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자(朱子)가 제자 유자징(劉子澄)에게 시켜 당대에 유행하던 도교와 불교를 대신하여 유교가 사회의 기본 이데올로기가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소년기부터 유학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판단으로 유학의 기본을 정리해 편찬한 책이다. 『소학』은 내편 4권과 외편 2권으로 모두 6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편은 태교부터 시작하여 교육의 과정과 목표, 자세 등을 밝히는 입교(立敎), 인간이 지켜야 하는 오륜을 설명하는 명륜(明倫), 학문하는 사람의 몸가짐과 마음자세, 옷차림과 식사예절 등 몸과 언행을 공경히 다스리는 경신(敬身), 본받을 만한 옛 성현의 사적을 기록한 계고(稽古) 등 모두 4권으로 구분되어 있다.

  내편에서는 유교사회의 도덕규범과 인간이 지켜야 할 기본자세 등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사항들만을 뽑아서 정리하였다. 외편에서는 한나라 이후 송나라까지 옛 성현들의 교훈을 인용하여 기록한 가언(嘉言), 선인들의 착하고 올바른 행실만을 모아 정리한 선행(善行)의 2개 항목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소년들이 처신해야 할 행동거지와 기본 도리를 밝혀 놓았다. 책의 구성은 내편 4권과 외편 2권으로 모두 6권이다.

  이 시대의 학습(學習)이란 말 그대로 배우고 익히는 과정이었으므로 책의 모든 구절은 암기(暗記)하였고, 암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뜻이 통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당시의 공부란 독서를 의미했고, 독서라는 것은 모름지기 숙독하여 암기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는 것을 말했다. 성리학(性理學)을 집대성한 주자(朱子)는 “책이란 모름지기 숙독(熟讀)해야 한다. 이른바 책이란 물건은 한가지다. 그러나 열 번 읽었을 때는 한 번 읽었을 때와는 정말 다르고, 백 번 읽었을 때는 열 번 읽었을 때와는 또 전혀 다른 법”이라고 해서 책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경지에 이르도록 하라고 가르쳤다.

  주희(朱熹)의 가르침을 받들었던 조선의 선비들은 두루 여러 방면의 책을 읽되 대강이라도 읽어둔다는 뜻의 섭렵(涉獵) 보다는 한 가지라도 깊이 있게 파고든다는 숙독을 독서 중 으뜸의 방법이라 여겼다. 이 시대의 독서가들은 ‘독서정한(讀書定限)’이라 하여 자신이 스스로 정한 기한 내에 어떤 책을, 어떤 순서로, 몇 번이나 읽을 것인지 계획을 짜서 실천에 옮겼다. 서산(書算) 또는 서수(書數)라 하여 자신이 책을 몇 번이나 읽었는지 헤아리는 생활 용품을 만들어 책 사이에 끼어놓고는 했다.

사서(四書)와 『대학(大學)』
  흔히 사서삼경(四書三經)이니 사서오경(四書五經)이라고들 하는데, 사서란 유학에서 확정한 네 권의 주요 경전인 『대학』, 『논어』, 『맹자(孟子)』, 『중용(中庸)』을 말하는 것이다. ‘대학’과 ‘중용’을 합쳐서 ‘학용(學庸)’이라 하고, ‘논어’와 ‘맹자’를 합쳐 흔히 ‘논맹(論孟)’이라 부르기도 한다. 중국 사상사에서 가장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공자와 맹자의 지위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논어』, 『맹자』는 처음부터 단행본으로 전해져왔지만 사서오경 중 하나인 『대학』은 처음부터 단행본으로 존재한 것은 아니었다.

  『대학』은 중국에서 유교가 국교로 채택된 한 대(漢代)에 이미 오경이 기본 경전 중 하나로 전해져 올 만큼 중요한 경전 중 하나였다. 『대학』은 본래 49편으로 구성된 『예기(禮記)』 중 제42편에 해당하고, 『중용』은 제31편에 속해 있었는데, 주자가 송대에 번성하던 불교와 도교에 맞서 유학의 새로운 체계(性理學)을 집대성하면서 『예기(禮記)』에서 『중용』과 『대학』의 두 편을 독립시켜 사서(四書) 중심 체제를 확립했다.

  『대학』의 저자에 대해서는 현재까지도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전통적으로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가 지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공자세가(孔子世家)」에는 송나라에서 급(伋:子思)이 지었다고 기록되어 있고, 한나라 때 학자인 가규(賈逵)도 공급(孔伋)이 송에서 『대학』을 경전으로 삼고, 『중용』을 위(緯)로 삼아 지었다고 전하고 있다. 『대학』은 경(經) 1장과 전(傳)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주자는 ‘경’은 공자(孔子)의 사상을 제자 증자(曾子)가 기술한 것이고, ‘전’은 증자의 생각을 그의 문인이 기록한 것이라고 하였다.

  주자는 『역경(易經)』, 『서경(書經)』, 『시경(詩經)』, 『예기(禮記)』, 『춘추(春秋)』라는 전통적인 오경 체제를 벗어나 사서를 중심으로 체계적인 주석과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는 작업을 했다. 이것은 당시 유행하던 불교와 도교의 이데올로기 공세에 대항하여 새로운 유교체계로서의 성리학을 세우는 작업이기도 했다. 사서가 체계를 갖춤에 따라 성리학은 새로운 지배 이데올로기가 되었고, 과거 시험에 사서가 주요한 과목이 되면서 사서의 권위는 오경을 앞지르게 된다.

어째서 『대학』을 가장 먼저 읽는가?
  조선시대의 선비들이 『대학』, 『논어』, 『맹자』, 『중용』의 순서로 사서를 읽었던 까닭은 주희의 가르침 때문이기도 했지만 『대학』이 학문에 임하는 자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 그 목적은 무엇이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를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대학』의 핵심 내용은 삼강령 팔조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강령은 모든 이론의 으뜸이 되는 큰 줄거리라는 뜻을 지니며, 명명덕(明明德), 신민(新民), 지어지선(止於至善)이 이에 해당한다. 팔조목은 격물(格物) ․ 치지(致知) ․ 성의(誠意) ․ 정심(正心) ․ 수신(修身) ․ 제가(齊家) ․ 치국(治國) ․ 평천하(平天下)를 말한다.

大學之道는 在明明德하며, 在親民하며, 在止於至善하니라.
큰 가르침의 길은 밝은 덕을 밝히고, 백성과 하나 되는 것에 있으며, 지극히 선한 상태에 머무르는 것에 있다. <『대학』, 經一章>


  이기동 선생은 강설에서 “우리는 무엇을 위해 공부하고 노력하는가”를 먼저 묻고, 그 목적은 의식주를 마련하는 게 가장 큰 목적일 것이라 말한다. 우리의 육체는 물질이며 다른 물질을 섭취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속성을 지녔기 때문에 인간 사회는 제한된 먹이를 구하기 위하여 서로 투쟁하는 장소가 될 수밖에 없다는 일반적인 이야기를 전한다. 그러나 육체를 위해 추구해온 모든 것은 육체가 없어진 순간 그 가치와 의미가 모두 사라지고 마는 것이며 살아오면서 추구해온 모든 것이 허망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괴로움과 고달픔을 참고 견디며 노력해온 공부의 대가는 무엇인가? 이와 같은 일생을 예견할 수 있다면 “나는 무엇 때문에 살며, 참으로 가치 있는 삶이란 어떤 것이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한 번 던져보라는 것이다.

  주자는 사서 중에서도 특히 『대학』을 중시했는데, “수기치인(修己治人)”이라는 유교적 이상, 공자의 가르침을 통해 덕을 쌓는 길로 들어가는 첫 관문에서 각자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길 원했다. 질문을 통해 학문하는 이유와 뜻에 대해 묻고 답하도록 한다. 다시 말해 우리가 공부하는 이유는 남보다 출세하여 부귀영화를 누리려는 것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물려받은 선하고 밝은 덕성을 훌륭히 연마하고, 부단한 연마를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어제보다 나은 내일이라는 밝은 덕을 더욱 밝게 하고, 이를 계속해서 유지해 나가도록 하는데 있다는 것이다. 『대학』을 통해 ‘가서 머물러야 할 목적지를 알고(知止而后, 有定)’, 뜻을 정립한 연후에 『논어』를 배워 근본을 세우고, 『맹자』를 읽어 사리를 분별하는 법을 배우고, 『중용』을 통해 우주의 원리를 깨우친다는 것이 주자의 가르침이었다.

두 명의 대가(大家)를 앞세워 읽은 『대학(大學)』
  이기동 선생의 『대학․중용강설』에 대한 이야기를 쓰지만 실제로는 『대학』만 읽었을 뿐 『중용』은 아직 손도 대지 않았으므로 지금 쓰는 글은 이 책에 대해서는 반쪽짜리일 뿐이다. 언젠가 『중용』까지 읽게 된다면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겠지만 이기동 선생의 강설을 읽었던 내 나름의 방식을 일부나마 우선 소개해본다. 이기동 선생의 강설은 한자의 독음은 수록되어 있지 않지만 한자의 해석 순서를 번호를 매겨 소개하고 있으므로 순서에 맞춰 해석해보는 것이 좋았다. 거기에 덧붙여 나는 모로하시 데쓰지의 『중국고전명언사전』 중 『대학』 부분을 펼쳐놓고, 모로하시 데쓰지가 중요하게 언급해 놓은 부분을 함께 읽었다. 한 권의 텍스트를 놓고 두 분의 대가(大家)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셈이다.

  이기동 선생의 강설이 풍부하고 감동적이었지만 핵심적인 지점을 체크해가며 읽기에는 모로하시 데쓰지의 명언사전 역시 상당한 도움이 되었고, 두 분이 약간씩 다르게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을 확인하는 것도 즐거운 경험이었다. 『대학』이 학문하는 것에 대해 가르치고 있기는 하지만 그 대부분은 또한 매우 정치적인 서술이기도 하다.

유가적 관념에 따르면 현실은 도리를 실현하는 장소이다. 정치는 바로 그 도리를 현실에서 실현하는 행위이다. 하늘과 땅은 사람을 비롯해 모든 것을 만들었다. 그러나 하늘과 땅은 만물을 낳기만 했을 뿐,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만물에 의미를 부여하고 자연을 다듬어서 문화를 창조하는 것은 바로 사람이다.
사람이 문화를 창조함으로써, 비로소 하늘과 땅의 만물창조가 의미를 갖게 된다. 문화를 창조하는 이런 행위가 정치이고, 정치가 바로 도를 실현하는 행위이다. <『책문, 시대의 물음에 답하라』, 본문 22쪽>


  김태완 선생이 엮은 『책문, 시대의 물음에 답하라』에도 잘 드러나 있는 것처럼 유교적 지배질서가 통치했던 조선시대의 문화, 정치란 그 자체로 도리(道理)를 밝히고 도리를 실현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런 이유로 『대학』은 통치, 다시 말해 정치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가르치는 책이기도 하다. 이기동 선생의 강설은 그간 신문 칼럼이나 단순한 고사성어, 명언록 따위에 간략하게 소개된 고전의 일부가 아닌 그 안에 담긴 깊은 뜻까지 풀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 중 일부만 맛보기로 소개해본다.

湯之盤銘에 曰苟日新하고, 日日新하고 又日新하라 하고, 康誥에 曰作新民이라 하며, 詩曰"周雖舊邦이나 其命維新이라 하니, 是故로 君子는 無所不用其極이니라.
탕임금의 세숫대야에 새겨진 명문(銘文)에는 “진실로 날로 새롭게 하고 날로날로 새롭게 하며 또 날로 새롭게 하라”고 하였고, 『서경』의 강고편에서는 “백성을 진작시켜 새롭게 한다”고 하였고, 『시경』에서는 “주(周)나라는 비록 오래된 나라이나 그 통치이념과 기상이 계속 새롭다”고 하였으니 이 때문에 군자는 그 최선의 방법을 쓰지 아니하는 것이 없다. <『대학』, 傳二章>


  많은 이들이 “日新하고, 日日新하고 又日新하라”에 주목하여 날로 새롭게 한다는 사전적인 의미에만 집착하지만 이 말의 진정한 뜻은 “親民[친민]”에 있다는 것이 이기동 선생의 풀이다.

발전 과정이 투쟁과 혼란의 과정을 겪지 않기 위해서는 지도력을 가진 사람, 즉 백성의 중심이 되는 사람이 백성의 진정한 요구에 부응하는 새로운 이론을 끊임없이 제공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것은 통치 의식을 가진 상태에서 지배권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피지배자의 현실을 관찰하는 정치지도자들은 이미 백성들의 처지가 될 수 없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완전히 남과 하나가 된 상태, 즉 친민(親民)의 상태가 되어 남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 되고, 남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되는 지도자만이 백성들에게 필요한 참신한 이론을 끊임없이 제공할 수 있다. 이러한 논리에서 볼 때 “진실로 날로 새롭게 하고 날로날로 새롭게 하며 또 날로 새롭게 한다”는 말이 친민의 설명이 됨을 알 수 있다.
신민(新民), 즉 새로운 사람이란 새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이론을 제공하거나 그 이론을 추종하는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의 수는 처음에는 소수였다가 차츰 많아지게 되고 결국 전부를 차지하게 된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이 소수의 신민을 억누를 것이 아니라 이를 진작시킴으로써 순조로운 발전을 이루어가야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비록 오래된 나라라 할지라도 그 나라의 통치이념은 계속 참신하고 계속 생동감이 넘칠 것이다.
그러므로 명명덕이 되고 친민이 된 상태에 있는 군자는 그 택하여야 할 최선의 방법, 즉 날로날로 새로운 방법을 택하여 쓰게 되는 것이다.<본문 41~42쪽>


읽노라면 구구절절 옳은 말들이라 밑줄 긋고, 다시 읽게 되는 것이 『고전(古典)』이 지닌 진정한 힘이란 생각이 든다. 현대화되고, 민주화된 사회라지만 시정잡배(市井雜輩)만도 못한 정치인들이 득시글거리는 이 시대에 그들에게 『대학』을 달달 외우도록 하는 시험을 치른다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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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김성동 천자문 - 하늘의 섭리 땅의 도리/ 김성동 쓰고 지음 / 청년사 / 2003년 12월



1.

소설가 김성동하면 먼저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것은 그의 소설 "만다라(曼陀羅, 1978)" 그리고 "병 속의 새를 어떻게 꺼낼 것인가?"하는 "화두(公案)"이다. 중학교 2학년 무렵에 읽은 "만다라"는 '빨간 책'에 버금갈 만큼 성적(性的)인 책이었다. 소설의 내용은 한국전쟁 당시 공산주의자로 처형당한 아버지를 둔 '법운'이란 젊은 사문이 '지산'이란 사문을 만나 번뇌를 거듭하며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아버지를 비명에 잃은 어머니는 들리지도 않는 아버지의 퉁소 소리를 찾아 헤매다 뜨거운 피를 주체하지 못하고 가출해 버리고, 법운은 입산수도의 길을 택한다.

지산은 스스로를 잡승(雜僧), 땡땡이 중으로 자처하면서 불교의 계율을 어기고 술과 여자도 거침없이 범하는 파계승이었다. 법운은 점차 지산에게 경도되어 가지만 파계승도 못 되고, 대승세계의 자유인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에서 방황하게 된다. 어느날 지산은 법운과 함께 암자 아래 술집에서 만취한 채 돌아오다 산중에서 동사(凍死)하고 말았다. 법운은 오랜 고민 끝에 여자와 동침하고 나서 세상에 뛰어든다. 이 소설엔 작가 김성동의 자전적인 내용이 상당히 많이 녹아들어 있다고 하는데, 법운이 처한 가계사와 흡사한 것이다. 사실 한국전쟁 당시 가족의 일원을 잃은 이야기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전쟁의 희생자라는 가계사가 지속적으로 비극일 수밖에 없었던 데에 우리 역사의 비극이 숨어 있다. 이 비극의 근본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주변 친척 중 전시 빨갱이로 몰려 죽은 사람은 그렇다치더라도, 대한민국 정부는 수도 서울을 끝까지 사수하고, 방어할 테니 정부를 믿고 수도 서울을 지켜달라는 말을 믿고 피난을 떠나지 않았던 시민들까지 '부역자'로 몰아 두고두고 연좌제로 괴롭힌 우리 사회의 이념적 강팍함때문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작가들 중에서도 각기 다른 작품 세계를 보이고는 있으나 김성동은 물론, 이문구, 김원일, 이문열 등도 역시 '빨갱이의 자식'이라는 보이는, 보이지 않는 낙인의 피해자들이었다. 얼마 전 작고한 이문구 선생은 스스로의 삶을 '내 삶은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친 삶'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는 어머니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너는 절대로 공부를 잘해서는 안된다. 공부를 잘하면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게 되고, 눈에 띄면 빨갱이 자식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이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 살아남을 수 없다. 너는 절대로 공부를 못해서도 안 된다. 공부 못하면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게 되고, 눈에 띄면 빨갱이 자식이라는 사실이 알려지고, 바로 그 순간 죽임을 당할 수 있다. 적당히 공부해라. 잘하지도 못하지도 말고 중간을 고수해라.'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서든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싹쓸이로부터 우리 사회가 경험적으로 터득한 처신법이었다(이와 관련한 보다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다면 "전쟁과 사회 - 우리에게 한국전쟁은 무엇이었나/ 김동춘 지음 / 돌베개 / 2000년 6월"를 참고하는 것도 좋다).


2.
어려서 김성동처럼 한학이 깊은 할아버지에게 천자문을 배운 적은 없지만, "한석봉 천자문"을 앞에 놓고 "하늘천 따지 검을현 누루황"을 공부한 적은 있었다. 누런 갱지에 괴발새발 글씨를 쓰는 건지 그림을 그리는 건지 알 수 없는 노릇으로 천자문의 한자들을 옮겨 적었다. 결과적으로 나의 한자 공부는 학교에서 배운 것보다는 어려서 천자문을 배운 것이 훨씬 더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린이 조기 교육이다, 뭐다해서 영어를 가르치는 것이 대유행인데 만약 어려서 가르쳤을 때 도움이 되는 공부를 하나만 고르라면 나는 영어니, 미술이니 하는 것보다는 개인적으로는 한자를 가르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내 개인적으로는 한자의 유용성도 유용성이지만 우리 말 단어의 70% 정도를 구성하고 있는 한자말을 이해하는 것이 우리 말을 이해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고, 글씨가 미술의 영역 안에 들어가는 서예란 점에서 조형감을 배우는데도 한자는 유익한 측면을 가지고 있다.

물론 천자문은 한문을 처음 배우는 이들을 위한 학습서인 것이 사실이나 그 격을 너무 낮춰잡는 경향이 있다. 중국 남조(南朝)시절 양(梁)나라의 주흥사(周興嗣:470?∼521)가 글을 짓고, 동진(東晉) 왕희지(王羲之)의 필적 중에서 해당되는 글자를 모아 만들었다고 전해지는데, 형식은 사언고시(四言古詩)로 250구(句), 합해서 모두 1,000자의 각각 다른 글자로 구성되어 있다.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며 , 우주는 넓고 거칠다"라는 첫 구절이 상징하듯 '천자문'은 중국에서 기원하여 동양적인 사유 체계로 확장해간 중국의 철학 체계, 사상의 역사가 녹아들어 있다. 그런 점에서 천자문은 단순한 아동용 한자 학습서가 아니다.

그간 천자문엔 여러 서예가들의 이름이 붙어왔다. 전세계적으로 글자 자체가 예술의 경지로 평가받는 문화권은 내 개인적인 평가에 국한시키자면 한자 문화권과 이슬람문화권, 그리고 '타이포그라피'란 명칭을 만들어낸 라틴어문화권이 있다. 이슬람 문화권의 아랍문자는 종교적 금기상의 이유로 꾸란의 문자를 장식미로 승화시켰고, 라틴어는 성서를 양피지에 옮겨적는 수도사들의 작업과정에서 역시 장식성있는 알파벳으로 변환되어가며 여러 글자체가 되었다. 이 세 문화권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문자를 대했으며 그 차이에 따라 각기 다른 문명과 문화를 만들어냈다. 알파벳에서의 서체는 활자라는 도구를 통해 기계화되어, 문자의 대량생산에 적합한 형태로 발전해가는 형식이 되었고, 아랍문자는 아라베스크나 모스크의 입구를 장식하는 꾸란의 글귀처럼 회화나 조각을 대신하는 미적 대체제로 발전해갔다. 그에 비해 한자는 특정한 종교나 대량생산 방식과는 무관하게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이 되었다. 그러나 이때 우리가 놓치지 말고 주목해야 할 것은 동양에서는 글씨가 한 인간을 판단하는 기준 중 하나, 즉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는 인격 도야의 도구로서 강조되었다는 것이다.

옛 선인들이 신언서판(身言書判)을 강조한 것은 단지 한 인간을 판단하는 기준 자체로서의 의미보다는 이 기준에 맞춰  자신의 인격을 도야하는 잣대로 삼으란 뜻이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때의 身은 단순히 풍채나 용모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자세와 올바른 몸가짐을, 言은 말의 들고 남에 있어 얼마나 조심스러워야 할지를,  書는 단지 글씨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글이 어떠해야 할 것인지를 따지는 것이 된다. 그런데 왕희지의 천자문, 한석봉의 천자문도 있는데 구태여 김성동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다시 천자문을 썼을까?

3.
앞서 이 책의 저자인 소설가 김성동의 "위험한 가계(?)"를 이야기한 것은 그것이 이 책에 상당히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김성동의 "천자문"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천자문"이면서 동시에 소설가 김성동의 산문집이기도 하다. 시인은 시를 통해 말하지만 시를 통해 말하지 못하는 것을 산문을 통해 말한다. 역시 소설가도 소설을 통해 말하지만 소설로 말하지 못하는 것을 산문을 통해 말한다. 우리는 한가한 마음으로 또는 가벼운 기분으로 이리저리 거니는 행위를 산책(散策)이라 말한다. 이때 우리는 "산책"의 "산"자가 산문(散文)의 "산"자와 같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성동 천자문"은 그런 맥락에서 우리에게 "천자문"에 대한 새로운 해석 혹은 이 책 앞에서 어째서 "김성동"이란 이름이 붙는지 설명해준다. 저자는 어려서 한학자인 할아버지에게 유학을 공부했다. 그러나 그는 소설 "만다라"의 '법운'처럼 불가에 입문해 번뇌했다. 그렇게 성장한 지은이가 직접 1천 자의 글씨를 쓰고, 이를 다시 '사언고시'를 두 편씩 묶어 문구를 해석하고 그와 관련한 자신의 상념 혹은 생각을 정리하여 에세이 형식으로 쓰고 있다. 이 책은 "천자문" 책이자, 천자문에 대한 해설서, 그리고 저자 김성동의 에세이집의 형태를 지닌다. 그리고 곳곳에 그의 가계사가 드러나고, 당대에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에 대한 저자의 날카로운 비판 정신이 녹아있다.

책 속에는 소설가 김성동의 선친인 김봉한이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가 수록되어 있기도 하다. "연희! 내 목숨이나 달음업시 그대를 사랑하오.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귀치 안이하고, 모-든 사람이 다- 목석과 같이 차고 쓸할지라도 ..... 신이여! 사랑하는 나의 안해 젊은 연희의게 가호하심을 앗긔지 말으시고, 연희여! 만리전정에 사시장춘의 행복을 사양하지 말어주오." 저자는 천자문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자기자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세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런 까닭에 이 책은 단지 "천자문"이 아니라 "김성동"의 천자문이다. 책에는 단단한 유학자로 살아온 할아버지의 가르침에 대한 추억과 더불어 '빨갱이 자식(?)'으로 살아가며 그간 숨겨야 했던 저자 김성동의 간난신고와 부친에 대한 애끓는 그리움이 곳곳에 녹아 있다. 국가보안법이 엄존하고 있는 이 땅의 현실에서 국가가 정한 법률은 때로 가족간의 사랑보다 국가에 대한 충성을 우선적으로 강제하는 법 규정을 두고 있다. 알베르 까뮈는 혁명을 지지한다 하더라도 그 총구가 내 어미를 향하면 그에 저항하겠다 하지 않았던가?

비사란야(非寺蘭若·절 아닌 절)가 쓰여 있는 자신의 집 대문 앞에 선 소설가 김성동씨.
(사진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11291729015&code=960205)



4.
그렇다고 김성동의 <천자문>이 저자 자신의 사변에 빠져 신변잡기 수준의 글을 나열하고 있는 그런 책은 아니다. 김성동은 우선 "천자문"의 기본 내용과 형식에 충실하게 임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이 책 "김성동 천자문"의 판형이 기존 단행본들의 두 배 정도 크기라 들고 다니며 읽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예로부터 "천자문"이란 신언서판의 길로 들어서는 입문서였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책의 판형은 오히려 적당하다 할 것이다. 자고로 천자문은 서안(書案)에 정좌하고 앉아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가며 읽어야 하는 책이 아니던가? 게다가 이 책의 부제는 "하늘의 섭리, 땅의 도리"라 하였으니 마땅히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줄 필요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 이 책의 판형이 커진 명목상의 이유라면 실용적인 이유는 천자문, 즉 한자(漢字)는 서예(書藝)라는 생각해본다면 이 책을 미술 서적으로 이해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게다가 이 책에 실린 도판들은 그만한 대접을 받을 만하다. 그래도 초스피드 사회에서 편리성을 강조하고 싶다면 일반 신국판 판형으로 '보급판'도 나왔다고 한다. 하기사 과거 정약용 선생도 누워서 책읽기를 좋아해 손에 들어오는 작은 책을 구해 읽었다고 하니, 보급판을 읽는다고 문제될 일은 없을 터...

올해는 천자문을 다시 손에 잡고, 하늘의 섭리, 땅의 도리를 배우고 익혀보는 것... 무척이나 의미있는 일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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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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