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어디까지 가봤니?


지난 해 TV를 보면서 심심찮게 맞닥뜨렸던 대한항공(KAL)의 “미국, 어디까지 가봤니?”라는 광고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미국은 역사적으로 우리와도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이고, 이민, 유학생은 물론 수많은 사람들이 다녀오는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어디까지 가봤니?”라는 광고가 참신하게 느껴졌던 것은 그동안 미국하면 먼저 떠올리게 되는 뉴욕이나 LA, 샌프란시스코 같은 대도시의 풍광이 아니라 우리가 미처 잘 알지 못했던 미국의 작은 소도도시들을 찾아 소개하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대한항공 광고 덕분에 『오즈의 마법사』가 만들어진 배경이 되었던 캔자스 주의 와메고(Wamego), 『톰 소여의 모험』을 탄생시킨 한니발 같은 미국의 여러 곳들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더불어 우리가 살고 있기에 너무나 익숙하지만 실은 잘 모르는 곳이 인천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인천 시민들이 만들고, 후원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시민문화재단인 새얼문화재단에서 계간 『황해문화』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지만 어찌 보면 인천 사람이 아니다. 인천에서 현재 일하고 있고, 분양받은 아파트가 완공되면 다시 인천에서 살겠지만 인천에서 태어나지도 않았고, 인천에서 학교를 다니지도 않았다. 만약 새얼문화재단과 인연이 닿지 않았더라면, 고등학교 때부터 지역문화운동을 하고 싶다는 소망을 품지 않았더라면 나에게 인천이란 도시의 인상은 여느 타지방 사람들이 흔히 가지고 있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1996년부터 새얼문화재단에서 일하게 되면서 나는 태생이 인천 사람은 아니기 때문에 인천에 대해 좀더 많이 공부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사람으로 인천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중고등학교 수업시간에 배운 개항장 제물포, 인천상륙작전, 도크식 항만시설이 전부였다. 다행히 인천에 대해 잘 알고, 사랑하는 지역운동가들이 주변에 있었기 때문에 그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인천 한세기』를 쓰신 신태범 박사님, 『개항과 양관역정』을 펴낸 최성연 선생님 등을 생전에 직접 뵙고 생생한 이야기들을 엿들을 수 있었던 것도 좋은 경험이었다. 인천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더 많이, 더 자주 듣게 되는 이야기는 인천의 약한 정체성과 문화에 대한 고민이었다.

현재 인천의 상황을 안타깝게 여기는 그 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덩달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곤 했지만, 그 분들이 살아왔던 과거의 인천을 경험해보지 못한 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지난 30여 년간 지속된 개발근대기 동안 많은 수의 인구가 일자리를 찾아 인천으로 유입되었고, 그 결과 타지에서 함께 이주한 문화가 본래의 인천문화와 혼종(混種)되면서 새로운 인천문화, 다양하고 역동적인 인천을 만들어냈다. 그들은 이제 인천에 자리를 잡아 인천 시민이 되었고, 지금의 인천문화는 싫든 좋든 이들과 함께 만든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인천을 문화가 없는 도시라고 폄하하지만 문화란 지역민의 생활, 풍토, 환경이 한데 어우러져 시간과 함께 쌓여온 것이기에 문화 자체의 우열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 인구 270만의 광역시인 인천에 공통된 지역문화와 단일한 정체성을 기대하는 것은 해불양수(海不讓水)의 도시 인천이 가진 풍부한 문화적 유전자를 배제할 위험성도 함께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21세기 인천은 아무도 가보지 못했고,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인천의 모습을 염려하게 만든다. 송도신도시와 청라지구가 완성되면 과거 개발근대 못지않은 제2의 대규모 인구이동이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태어난 고향이든 그렇지 않든 인천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시민들이 느끼는 공통된 염원은 한결 같다. 잘 사는 도시,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어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것이다. 잘 사는 도시, 살기 좋은 도시에 이르는 길은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현재 그 도시에 거주하고 있는 시민들이 잘 살게 되고, 그들이 살기 좋은 도시가 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잘 살고 있는 시민들이 이주하여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드는 것이다. 물론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론 모두 중요하다. 그러나 나무 한 그루가 잘 자라기 위해서는 잎과 줄기뿐만 아니라 뿌리의 힘이 중요한 것처럼 하나의 도시가 잘 성장하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뿌리가 튼튼해야 한다.

수많은 문화가 혼종되어 오면서도 현재의 인천을 만들고, 굳건히 지켜온 인천 문화의 뿌리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나는 그 뿌리가 곧 인천의 매력이며 우리가 그것을 새롭게 발견할 때 인천의 가치는 더욱 높아지리라 여긴다. 인천은 다른 여타 대도시들과 비교될 수 없을 만큼 문화 ․ 생태적으로 다양하고 힘이 넘치는 역동성을 지닌 도시다. 인천은 하늘과 바다, 육지로 연결된 인적 ․ 물적 소통의 요지로 그 어떤 지역보다 다양하고, 풍부한 자연생태계와 문화생태계를 아우르고 있다. 수많은 생명의 아우성으로 바람 잘날 없는 세계 3대 갯벌과 아름다운 풍광이 돋보이는 연안도서들이 있는가 하면, 근대 개항장과 원 인천의 옛 모습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화수부두, 북성동, 괭이부리말, 배다리 같은 지역이 있고, 부평, 관교 같은 신도심 지역은 근대화와 산업화의 터널을 통과하며 인천만의 독특한 문화벨트로 자리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어느 도시를 가보아도 한 도시 안에 이처럼 풍부한 이야깃거리와 다양한 얼굴을 감추고 있는 도시는 많지 않다. 외부에서 유입된 것이든, 근대 이후 개항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든 이제 인천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뿌리의 일부가 된 것들이다. 우리가 이런 사실을 새롭게 인식할 때 인천의 뿌리는 더욱 단단하고, 튼튼하게 내려질 것이다.

『논어(論語)』 「위정편(爲政篇)」에서 공자는 “옛 것을 알고 새 것을 알면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다(溫故而知新可以爲師矣)”고 했는데, 인천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가치를 재발견하고 새롭게 인식할 때 우리는 진정 인천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인천에 문화가 없다고 말하는 당신, “인천, 어디까지 가봤니?”

출처 : 인천발전연구원 웹진 아뜨리에
(http://webzine.idi.re.kr/content_view/read.jsp?v_seq=44&m_seq=323&content_seq=519&content_order=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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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를 위한 반대’ 라고요?



이명박 대통령이 TV에 나와 그간 논란이 되고 있는 여러 문제들에 대해 ‘국민과의 대화’로 풀어보겠다고 했을 때, 솔직하고 진솔한 대화가 될 것이라고 기대한 사람이 얼마나 있었을까. 민주화 이후 대국민 담화 대신 국민과의 대화는 꽤 여러 차례 있었지만 거의 대부분 대통령이 감독, 주연, 조연까지 도맡아서 하는 모노드라마였다. 손석희 교수가 물러난 자리에 대신 주인공으로 나선 이명박 대통령은 1분 질의에 20분간 답변하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토해냈다. 물론 그 중엔 대통령도 추운 겨울이면 일반인들처럼 내복을 껴입는다는 새로운 사실도 있었다. 그러나 우려했던 대로 100분간 진행된 ‘대화’는 불도저 대통령의 일방적인 ‘담화’로 채워지고 말았다.

대통령은 4대강 사업과 관련해 지난 정권들에서도 수질 개선과 홍수 조절 등 여러 가지 하천정비 사업에 해마다 수조원이 들어갔는데, 그때는 반대 안 하다가 지금에 와서 반대하느냐고 볼멘소리를 한다. 그간 수질 관리며 홍수 예방을 위해 찔끔찔끔 예산을 집행해 왔는데 이번에 잘 정비해서 원천적으로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는 논리다. 얼핏 들어보면 맞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 대통령이 추진하는 정책이 늘 해오던 하천정비 사업이나 서울시장 시절의 치적으로 내세우는 청계천 사업과 비교될 만한 수준이 아니라 국토환경을 변화시키는 거대사업이란 사실은 쉽게 망각되어 버린다. 게다가 지금까지 홍수가 났던 곳들은 대개 지방하천이고, 이명박 대통령이 보를 만들겠다고 하는 곳은 국가하천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통령 당선인 시절부터 ‘반대를 위한 반대’란 말을 즐겨 사용해왔다. 인수위의 영어몰입교육 정책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그때도 “반대를 위해 반대하는 사람은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목소리에 대한 대통령의 초지일관한 자세를 높이 평가해야 할까. 또 대통령은 ‘반대를 위한 반대’는 주장이 간단명료하기 때문에 국민들 귀에 잘 전달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4대강 사업에 대한 국민의 반대가 심한 까닭을 이렇게 해석하는 것은 실상을 잘못 이해하거나 대통령이 우리 국민의 수준을 너무 낮게 보고 있는 것이다.

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했던 미네르바가 구속되었다가 풀려났고, 정권이 바뀌면서 해임되었던 정연주 KBS 사장도 결국 해임 무효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MBC 의 PD와 방송작가는 재판이 진행 중이고,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환경단체들이 내보내려 했던 라디오 광고는 두 차례나 방송이 보류되었다. 미디어법 강행 통과 이후 정부의 미디어법 홍보광고는 계속되었지만 미디어법에 반대하는 시민단체의 광고는 헌재에 의해 심판 중이란 이유로 보류되었다. 이처럼 반대의 목소리는 도처에서 억압받고 있다.

요즘 이명박 대통령의 대화 상대는 아무래도 국민이 아니라 역사인 듯싶다. 그는 여러 차례 인기보다는 소신을, 그로 인해 비난받을 것도 각오하고 있음을 피력했다. 자신에게 반대하는 이들은 정치적 의도로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자신은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위해 소신 있는 정책을 추진한다고 말하는 것은 결국 역사의 정의가 자신에게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책 실패로 국민의 지지를 잃은 정치 지도자들은 곧잘 ‘역사와의 대화’나 ‘역사의 심판’이라는 미명 아래 비판의 목소리에 귀를 닫아 왔다. 정책을 추진하는 데만 급급해 국민의 말을 들을 시간조차 없는 대통령의 말에 과연 역사가 귀기울여줄지도 의문이지만, 설령 이와 같은 대통령의 소신과 진정성을 백 번 믿어준다 하더라도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한 대통령의 소신과 정책이 어째서 자고 일어나면 표현이 달라지고 내용이 달라지는지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다.

<경향신문>(2009.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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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면죄부를 팔아라




“법제로써 이끌고 형벌로써만 다스린다면 백성들은 형벌만 면하면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 그러나 덕으로써 이끌고, 예로써 다스린다면 부끄러움을 알고 바로잡게 될 것이다(道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 道之以德 齊之以禮 有恥且格).” ‘논어(論語)’ 위정(爲政)편에 나오는 공자님 말씀이다. 물론 누구나 알고 느끼고 있을 것이다. 이런 시대에 공맹을 논하는 것이야말로 시대착오적이란 사실을 말이다.

어릴 적에 본 코미디 프로그램에는 종종 서민적인 도둑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곤 했다. 이른바 생계형 범죄인 셈인데 교육을 염려해서인지 도둑은 번번이 담벼락을 넘지 못하고 도리어 시청자들에게 일장훈계를 늘어놓곤 했다. 비록 나는 이렇게 살지만 당신들은 그렇게 살지 말라는 것이다. 지금의 정부가 이전의 정부들과 어떤 차별성을 갖느냐는 것은 지켜보는 이들의 견해에 따라 다를 것이다. 그러나 정권 교체와 상관없이 민주화 이후 지금까지 매번 되풀이되는 공통점은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리더이자 엘리트로서 공익을 위해 봉사해야 할 총리, 장관을 선발하는 인사청문회 때마다 후보자들의 불법·위법 사례들이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역대 정부의 장관 후보자들에게 위장전입은 치명적인 결격 사유가 돼왔다. 그러나 지금은 청와대가 앞장서 그것이 결격 사유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집권여당 내부에서도 자녀교육을 위한 위장전입은 문제가 안된다는 분위기다.

그러나 현 정부 출범 이후에도 통일부, 환경부, 여성부 장관 후보자와 청와대 사회정책수석과 보건복지가족부 차관이 주소지를 옮겨 부동산 투기 의혹을 받았고, 이들 가운데 세 명이 중도 사퇴했다. 인사청문회가 후보자들의 관운을 평가하는 시험장이 아니라면 모두에게 동일한 원칙이 적용돼야 하는 데도 청와대는 도리어 소모적인 논쟁을 그만하자고 말한다. 후보자들이 입을 모아 변명하는 것은 맹자의 어머니처럼 자녀의 교육을 위해 그러했으니 너그러이 이해하고, 선처해달라는 것이다. 이들의 변명에 가슴이 더욱 답답해지는 까닭은 우리 사회의 엘리트들이라는 사람들이 범법자가 되면서까지 추구하는 ‘자녀교육’의 본질이 도대체 무엇이냐는 것이다.

정부는 최근 중도실용의 서민정치를 표방하고 나섰는데, 일반 서민들은 위장전입 사실이 한 번이라도 발각되면 벌금을 물고 기소돼 전과자가 된다. 엘리트들 중에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하나 없으니 나중에라도 ‘위장전입’은 위법이 아닌 것으로 법을 개정할지도 모르겠으나 어쨌든 현재까지 위장전입은 부동산 투기를 위해서건, 탈세를 위해서건, 자녀교육을 위해서건, 실정법을 위반한 범죄행위다. 헌정 질서를 수호해야 할 대통령부터 시작해 총리, 법무부 장관, 대법관, 검찰총장 후보자도 모두 범법자다 보니 국민들은 형벌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어떻게 하면 교묘히 법망을 피해 출세할까만 욕망하고, 고민하는 형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비록 나는 도둑이지만 당신들은 그렇게 살지 말라고 하는 건 코미디도 아니다.

인사청문회를 바라볼 때마다 한국사회의 지배엘리트 재생산 구조를 지탱하는 진정한 실체는 자녀교육을 위한 ‘위장전입’이란 생각이 든다. 자기 자식의 교육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부모가 그깟 불법행위쯤 하고 눈감아 버리고, 그런 부모 밑에서 교육받고 자라난 이들이 다시 출세하여 사회의 지배엘리트로 재생산되는 구조 속에 인사청문회를 백 번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차라리 중세 교회처럼 이들에게 재산헌납을 조건으로 인사청문회에서 장관 자리를 주는 면죄부를 파는 것이 국민들 입장에서는 좀더 실속 있는 선택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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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테말라에서 온 사진작가

지난 7월17일 제헌절 오후 6시 종로구 견지동, 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가 운영하는 평화공간 space*peace에서는 작지만 소중한 모임이 열렸다. 지구를 반 바퀴 돌아야 만날 수 있는 나라 과테말라에서 온 사진작가 다니엘 에르난데스 살라사르와 진실규명을 통한 평화를 염원하는 한국 시민들이 만나는 자리였다.



그는 과테말라 내전 당시 학살된 라틴 아메리카 시민들에 대한 기억을 소환함으로써 진실규명을 촉구하는 ‘어느 천사의 기억’이란 작품을 학살이 자행되었던 현장이나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공공장소에 설치하는 등 ‘학살의 기억’을 테마로 작업해왔다. 그의 작품은 중남미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 스페인 등 세계 각지에 전시·설치되어 비슷한 슬픔과 아픔을 지닌 세계 시민들에게 깊은 공감을 얻었다.

1954년 6월18일, 미국의 지원을 약속받은 480명의 쿠데타군이 온두라스 접경 지역을 넘어 과테말라로 쳐들어가는 것으로 쿠데타가 시작되었다. 합법적인 선거로 수립된 과테말라의 아르벤즈 정부는 미국 유나이티드 프루츠(UF) 소유의 바나나공화국이었던 과테말라의 토지와 산업시설을 국유화하고자 했다. 토지 없는 인디오 농민들에게 토지를 재분배하고, 다국적 자본에 종속된 국내 자본을 육성하기 위한 시도였다. 당시 정부군은 5000명에 달했지만 미국의 지원을 등에 업은 쿠데타군을 막아내지 못하고 무너졌다. 쿠데타 이후 군부의 억압통치와 탄압에 대항해 반정부 무장단체가 결성되었다. 이들이 국민 대다수를 차지하는 소작농과 원주민들의 지지를 받아 군사정부에 도전하면서 과테말라 내전이 시작되었다.

이후 30여년 넘게 치러진 과테말라 내전 기간 동안 벌어진 669건의 민간인 학살 중 626건이 군사독재정권이 주도한 국가폭력에 의한 것이었고, 반군들에 의해 벌어진 사건이 30여건으로 추정되고 있다. 20만명 이상이 살해되고, 10만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한 민간인 학살의 주요 희생자들 가운데 83.33%는 마야인이라 불리는 인디오 원주민들이었다. 내전 종식 이후 최초로 좌파정당(UNE)의 알바로 콜롬 대통령이 52.8%의 지지를 받아 대통령에 취임했다. 98년 후앙 호세 헤라르디 주교는 비정부진실위원회를 조직해 “역사적 기억 회복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광범위한 인권침해 사례를 조사했다. 그러나 ‘인권침해조사보고서’가 출간된 지 이틀 만에 헤라르디 주교는 자택 앞에서 암살당한다. 이외에도 민간인 학살재판의 증인들이 살해되고, 판사의 집에 수류탄이 투척됐다. 검사는 살해협박에 못이겨 해외망명을 떠났다.



전쟁의 세기라는 지난 20세기, 전쟁보다 집단학살(제노사이드)로 희생된 민간인의 숫자(1억7500만명으로 추정)가 훨씬 더 많았다. 70년대 이후 한국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50여개 이상의 각종 과거사청산기구가 활동해왔다. 그러나 많은 나라에서 진실규명을 위한 노력은 정치적 타협이나 가해세력에 의한 침묵 강요로 사면이나 면책을 허용하는 것으로 종결되곤 했다. 진실규명을 시도한 많은 나라에서 과거 가해자였던 세력은 여전히 강고한 권력기반을 가진 반면 민주정부는 구조적으로 매우 취약한 특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도 이들의 처지와 다르지 않았다. 과거사위원회와 국가인권위원회는 설립과정부터 기득권세력으로부터 온간 논란과 저항에 부딪혔다. 한시 기구인 과거사위원회들은 이명박 정부 들어 고사위기에 처했고, 정부와 여당은 위원회 자체를 반대했던 인사를 위원으로 임명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고립되었고, 국가기구에 의해 자행되는 인권유린 상황을 보다 못한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은 임기 3개월을 남겨놓고 사퇴했다. 진실이 소멸되기를 바라는 이들에 의해 강제로 봉인된 기억은 새로운 억압으로 기억될지언정 소멸되지 않으며, 언젠가는 돌아오게 마련이다. 스페인, 아르헨티나, 과테말라에서 과거사 청산운동이 새롭게 시작된 까닭도 여기에 있다. 광주도청 별관 건물이 무너져도 기억은 소멸되지 않는다. 역사는 그저 흘러간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밝히는 등불이기 때문이다.

출처 : <경향신문>(2009.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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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가면 막 하자는 거지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임 초 검사들과의 대화에서 “이쯤 가면 막 하자는 거지요?”라고 했을 때, 범접할 수 없는 신성불가침의 조직으로 보이던 검찰도 대통령 앞에서는 움찔한다며 통쾌하게 여긴 사람들이 있었다. ‘그럼 그렇지’하며 역시 검찰보다 높은 권력을 지닌 것이 대통령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대통령은 기업의 오너이고, 검찰은 휘하의 비서실이나 기획실쯤 되는 기관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실제로 권위주의 정권 시절 검찰은 권력의 시녀로, 민주화 이후엔 가장 중요한 개혁 수단이자 파트너였다. 국민들은 검찰이 휘두르는 칼자루를 보며 정부가 추진할 개혁과 정책의 내용을 가늠해볼 수 있었다.

  그런데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검찰이 ‘개혁의 수단’이 아닌 ‘개혁의 대상’이라고 생각했던 희귀한 대통령이었다. 그는 인권변호사 시절의 경험을 토대로 검찰이 권력의 시녀나 정권의 의도에 따라 움직이는 도구가 아니라 국민의 인권과 민주주의 법질서 수호를 위해 독립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조직이라는 상식을 일깨우려 했다. 대통령은 사법부 개혁을 주장했던 판사 출신의 여성변호사 강금실 씨를 법무부 장관에 임명해 검찰개혁을 시도했다. 임기 초반이었지만 검사들은 검찰의 독립과 존중을 내세우며 조직적으로 반발했다. 과거 정권 같았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대통령은 국민을 상대로 검찰개혁에 대한 의지를 직접 전했고, 여론의 지지를 얻어 최초의 여성 법무부 장관이 탄생했다.




  검찰은 권력을 잡았어도 예외는 없다는 본보기라도 보이듯 살아있는 권력인 대통령의 측근까지 구속했다. 변화는 성공적인 듯 보였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을 지켜보면 사실은 그렇지 못했던 모양이다. 독립과 존중을 주장했던 검찰의 최근 행보를 지켜보면 당시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것은 서열존중의 관행에 불과했던 것이 아니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사회지도층을 이루는 불멸의 신성가족들은 임기제 대통령보다 강력한 힘과 뒤를 봐주는 결속과 연대를 과시했다. 그들은 권력의 시녀가 아니라 권력의 일원이었다.

  임기를 마친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 뒤 미련 없이 고향으로 내려가면서 국민들은 행복한 전임 대통령을 가질 뻔 했다. 검찰은 드러난 혐의에 따라 수사했다지만 정권이 바뀌자마자 10년 전으로 돌아간 듯 보이는 검찰의 행보를 지켜보면서 그들의 진실성을 신뢰하는 국민은 많지 않았다. 도리어 검찰과 전임 대통령 사이에 있었던 오랜 악연들을 생각해보면 정치적 의도가 개입한 수사였을 개연성이 충분하다는 의심까지 사고 있다. 설령, 검찰의 해명을 받아들이더라도 재판에 들어가기도 전에 연일 수사 과정이 흘러나오고, 언론이 피의사실을 확정된 진실인 양 왜곡해 여론심판과 인격살인으로 이끌었던 현실이 뒤바뀌는 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안양교도소에 전임 대통령을 가둘 독방을 비밀리에 추진했다는 보도는 이를 부인하는 법무부의 주장보다 신빙성 있게 들린다.

  만약 검찰이 스스로의 억울함을 증명하고 싶다면 먼저 검찰이 국민의 인권과 민주주의 법질서 수호를 위한 조직이라는 상식을 증명해보여야 한다. 그러나 검찰은 지난해 제작진이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2008년 4월)에서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에 관한 사실을 ‘고의’로 왜곡했다며, 그 증거로 작가의 사적인 메일을 들춰내 이를 언론에 공개했다. 만약 이것이 증거라면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사상과 양심의 자유는 설 자리가 없어진다. 혐의를 적용할 수 없다며 사직한 검사도 있었다. 권력을 위해 검찰권을 남용하여 국민의 인권과 민주주의 법질서를 부정하는 현실 속에 “원칙과 정도, 절제와 품격을 갖춘 바른 수사, 정치적 편파 논란이 없는 공정한 수사를 통해 국민의 신뢰”를 받겠다는 검찰의 꿈은 너무 야무지다. 스스로의 존재 의의조차 자각할 수 없는 조직이란 사실이 만천하에 공개되고 있는 이 때, 국민들 머릿속엔 이 말이 떠오른다. “이쯤 가면 막 하자는 거지요?”

출처 : <경향신문>(2009.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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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철 발언과 ‘우리집에 왜 왔니’ 놀이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이 합당한 주권에 의거하여, 또한 적법한 국제절차에 따라 로케트(굳이 ICBM이라고 하진 않겠다)의 발사에 성공하였음을 민족의 일원으로서 경축한다. 핵의 보유는 제국주의의 침략에 대항하는 약소국의 가장 효율적이며 거의 유일한 방법임을 인지할 때, 우리 배달족이 4,300년 만에 외세에 대항하는 자주적 태세를 갖추었음을 또한 기뻐하며, 대한민국의 핵 주권에 따른 핵보유와 장거리 미사일의 보유를 염원한다.”

가수 신해철이 새로운 앨범을 준비하던 중 자신의 홈페이지에 다섯줄의 글을 올렸다가 곤욕을 치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앨범 홍보를 위한 노이즈 마케팅의 일환이라 평가 절하하는 이도 있고, 그의 사회비판정신에 대해 나름 믿음을 가지고 있던 이들은 이 글이 핵미사일이라는 위험천만한 무기로 민족의 운명을 줄타기하는 북한의 김정일 정권과 그간 남북화해협력정책의 성과들을 방치한 채 사태가 악화되도록 손 놓고 있다가 앞장서서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에 참여하겠다고 나선 남한의 이명박 정권을 싸잡아 조롱한 것이라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그저 도발적인 해프닝에 그칠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신해철의 발언에 대해 국회의원 송영선은 “북한 로켓 발사 성공을 경축하는 사람이라면 김정일 정권하에서 살아야 한다”거나, <동아일보> 김순덕 논설위원은 칼럼에서 “신해철 같은 독설가는 북한에선 공개처형감”이라 비판하면서 문제가 더욱 커졌다. 신해철 역시 자위대 기념행사에 참석했던 송 의원을 친일파라 비꼬고, 셋집 빼서 나가라 호통 치는 집주인에 빗대어 독립투사였던 외증조부 이야기로 맞받아치고 나섰다. 아마도 본인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자격이 충분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신해철 본인의 의도가 애초에 무엇이었든 ‘라이트코리아’라는 우익단체의 대표가 바퀴벌레나 쓰레기는 치워버려야 한다며 국가보안법 7조 고무찬양죄로 고발하였으므로 법정에 설 운명이다.

어릴 때 동네 아이들끼리 패를 지어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왜 왔니?”하는 놀이를 하며 놀았던 적이 있는데, 지금 논설위원과 국회의원 그리고 우익단체 대표까지 나서 “우리 집에 왜 왔니?”라며 묻고, 질문을 받은 사람은 “여기가 왜 너희 집이냐?”고 되묻는 상황이다. 비록 아이들 놀이지만 어느 패에도 속하지 못하거나 선택되지 못하는 아이들은 소외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지난 2008년 세상을 떠난 故 이청준 선생의 중편소설 중에 『소문의 벽』이란 작품이 있다. 6.25동란 직후 남해의 작은 포구를 배경으로 밤마다 인민군과 국방군이 번갈아 들이닥친다. 그들은 어둠 속에서 마을 주민들에게 ‘넌 어느 편이냐?’를 묻는다. 대답 여하에 따라 생명이 오락가락하는 판국이지만 눈이 부시도록 밝게 쏟아지는 전짓불 앞에 서 있는 마을 주민들은 정작 불빛 저편의 사람이 누구 편인지 알 수 없어 잇달아 학살의 희생자가 되고 만다.

국가가 인권보다 앞서는, 민족이 핵폭탄으로 스스로의 생존을 보장받겠다고 나서는 현실에서 넌 누구 편이냐고 묻는 국가보안법이 무서운 이유도 거기에 있다. 동네 아이들 사이에선 그저 재미난 놀이에 불과하지만 어떤 한 가지 질문을 통해 국민과 비국민의 경계를 구분 지으며 심판하는 일이 실제 국가 내부에서 벌어질 때 그 결과는 전쟁만큼이나 참혹해진다. 나는 신해철의 비아냥거림이 분명 과잉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를 바퀴벌레나 내다버릴 쓰레기에 빗대며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자격을 가졌는가를 따질 것이 아니라 농(弄)이라 할지라도 ‘핵의 보유와 장거리 미사일의 보유를 염원’한다는 끔찍한 이야기는 하지 말아야 한다고 비판했어야 옳다.

그러나 지금은 그보다 먼저 아이들의 놀이에도 ‘깍두기’라 해서 이편에도 저편에도 속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배려해 함께 놀 수 있도록 하는 장치가 있는데 과연 우리 사회에 그만한 관용과 상식이 있는지 묻고 싶다.

출처 : <경향신문>(2009.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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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아카데미 영화제 13개 부문 후보에 오른 브래드 피트 주연의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스코트 피츠제럴드의 단편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인데 젊어지고 싶다는 부질없는 욕망에 사로잡히기보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짧은 시간을 소중히 여기라는 충고가 담겨 있다고 한다.


80세의 노인으로 태어나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젊어지는 주인공 벤자민 버튼처럼 지난해 건국 60주년을 맞이했던 대한민국의 시간도 거꾸로 흐르는 것 같다. 이제 며칠 후면 이명박 대통령 취임 1주년인데 그 사이 참으로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대통령 취임 보름 전에 국보 1호 숭례문이 불탔다. 대통령인수위는 고소영 강부자 내각이란 비판 속에 영어몰입교육과 ‘어륀지’라는 유행어를 남겼다. 취임 직후 미국을 방문해 추진한 한·미쇠고기협상 결과에 분노한 100만 시민들이 ‘국민의 건강권과 검역주권’ 수호를 위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처음엔 미국의 선물이라 말했던 대통령은 취임 100일 만에 두 차례나 사과하고 재협상에 나섰다.

서브프라임모기지사태와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이라는 미국발 금융 위기로, 외국계 자본이 빠져나가면서 주가와 환율이 곤두박질쳤다. IMF외환위기를 떠올리게 만드는 경제위기 속에서도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꿋꿋하게 환율방어에 나섰고, 환율이 천오백선을 오락가락하며 주식 펀드가 반토막나자 자살하는 사람이 속출했다. 엄격한 상호주의를 내건 대북강경정책은 북핵 위기라는 어려움 속에서도 십 수 년 동안 지켜왔던 남북관계를 급속도로 냉각시켰다. 100일 동안 진행된 삼성 특검 수사는 아무 것도 밝히지 못했고, 세밑 국회는 중점법안 처리 강행을 놓고 극한 대립까지 치달았다.

온 나라가 경축 분위기로 떠들썩할 만도 했건만 건국 60주년과 광복 63주년 행사는 건국 초기처럼 보수와 진보 둘로 나뉘어 치러졌다. 국가경축일에 물대포가 등장했고, 역사학자와 저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역사교과서가 이념편향 논란 속에 개정되었다. 취임 초부터 자리를 비워달라는 압력에 시달린 기관의 수장들은 불명예 퇴진했고, 방송국엔 예전처럼 사장들이 낙하산을 타고 내려왔다. 검찰총장은 새해 벽두부터 80년대 공안정국을 떠올리게 만드는 신년사로 간담을 서늘케 하더니 인터넷경제대통령이라던 미네르바가 허위사실유포죄로 긴급체포되었다. IT강국은 세계 언론의 조롱거리가 되었다.

대한민국의 시간은 거꾸로, 거꾸로 돌더니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대참사를 일으켰다. 거꾸로 흐르는 시간은 지난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발표 30주년 기념 낭독회에서 이 책이 지금까지 현재성을 가지고 읽힐 줄 몰랐다던 조세희 선생을 다시 용산참사의 현장으로 불러냈다. 그는 “이렇게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동족을 괴롭혀 선진국이 된 예는 인류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다”며 30년 전보다 더욱 잔인하고 야만스러워진 대한민국의 현실을 개탄했다. 급기야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국민 분열의 죄, 역사 왜곡과 폄하의 죄, 민족 분열의 죄, 민주주의 파탄의 죄”를 물어 통치 권력의 정당성을 의심하는 상황까지 왔다.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도 어느덧 5분의 1이 흘렀다. 아직까지 대통령에게 희망을 걸고 있는 이들에게는 남은 시간이 만회할 수 있는 중요한 시간으로 여겨질 테고, 일찌감치 희망을 접은 이들에게는 그 시간마저 견디기 어려운 고통의 시간일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자신의 손으로 군사독재를 종식시킨 경험이 있으며 평화적으로 정권을 교체하는 과정도 이미 여러 차례 경험했다. 국민을 부정하는 권력의 시작과 끝이 어떠했는지 민주공화국의 시민들은 이제 알만큼 안다.

예전에 어느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한국 젊은이들의 병영 체험을 개그 소재로 엮은 적이 있었다. 그 코너의 유행어는 거꾸로 매달려도 국방부 시계는 간다는 말이었다. 벤자민 역시 나이를 먹을수록 외모는 더욱 젊어지지만 결국 아기가 되어 죽음을 맞이하는 것처럼 거꾸로 살아도 어쨌든 시간은 가는 법이다. 이제 4년 남았다. 서로 사랑만 하며 살아가기에도 아까운 시간이지만 지금은 공화국의 근본부터 다시 성찰해야 할 때다.

출처 : <경향신문>(2009.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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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정체



신문을 펼쳐보니 새해 벽두부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순으로 살벌한 기사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대중문화의 복고열풍이 거센 탓인지 신문마다 1980년대를 떠올리게 하는 기사들이 줄지어 실려 있다. 그중 하나가 90년대만 하더라도 자신의 소신대로 수사하는 강직한 검사 이미지로 존경받아왔던 임채진 검찰총장의 발언이다. 얼마 전 그는 검찰의 ‘신년 다짐회’에서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부인하는 세력을 발본색원하여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공고히 하는 것이 경제난 타개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라고 말했다.


요즘 들어 자주 보게 되고, 볼 때마다 불쾌해지는 것이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 운운하며 국민들을 윽박지르는 광경이다. 언제부터인가 ‘반공’을 대신하여 대한민국의 새로운 국시인양 울려 퍼지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란 말의 정체가 무엇일까.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은 헌법에 기초하고, 헌법에는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며 모든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시되어 있다.

시민의 ‘정치적 자유권’이 핵심

독재 권력과의 힘겨운 투쟁 끝에 얻어낸 자유이고 민주주의이기에 오늘날 대한민국 시민 대부분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가장 소중한 정치적 가치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런데 왜? 그토록 많은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며 헌법 제1조를 목 놓아 외치는 일이 생기는가. 왜 다른 한 편에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읊조리는 것일까. 국민의 소통과 통합을 위해서라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어떤 것인지 이제라도 제헌정신으로 돌아가 그것을 먼저 정의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민주주의의 어원이 그리스어로 ‘다수의 지배’를 뜻하는 말이란 건 널리 알려져 있다. 그동안 민주주의란 말이 너무 흔해진 탓인지, 아니면 그동안 민주주의를 대신해 국시 행세를 하던 ‘반공’의 약발이 냉전 해체 이후 다했다고 여겨진 탓인지 부지불식간에 반공을 대신해 ‘자유민주주의’가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때의 ‘자유’란 당연히 자유주의의 자유를 뜻한다. 사실 헌법에도 나오지 않는 자유민주주의란 말이 전면에 등장한 것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결합된 자유민주주의란 개념이 국민의 자유를 최대한 존중하면서, 국민이 주권을 가지고 국민에 의해 지배되는 정치이념이라는 뜻이라면 말이다.

그러나 항상 시장경제와 쌍을 이뤄 등장하는 자유민주주의란 독재와 싸우며 시민 대다수가 쟁취하고자 했던 표현과 언론의 자유, 집회와 결사의 자유, 양심의 자유가 아니라 시장의 자유만을 수식해주는 형용사에 불과하다고 느껴진다. 과연 누구의, 무엇을 위한 자유일까? 자유주의란 본래 전제왕정에 대항하는 도시의 시민들이 군주로부터 자신의 사유재산과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정치적 운동이 발전된 개념이다. 민주주의의 반대말이 사회주의이거나 공산주의가 아닌 것처럼 민주주의가 곧 자유주의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자유와 정치적 자유,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혼동하는 터무니없는 사례는 현실 속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20세기의 수많은 독재국가들이 시민적 자유권을 억압하면서도 재산의 매매와 투자처럼 시장에서 통용되는 권리를 잘 보호해온 사례는 무수히 많았다. 그러나 누구도 이런 국가들을 민주주의 국가라고 부르지 않는다. 물론 자유주의가 옹호하는 핵심적 자유권 없이 민주사회의 존립을 생각하기는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다른 개념이며, 민주주의를 곧 자유주의, 엄밀하게 말해 시장의 무한 자유를 추구하는 신자유주의와 의도적으로 혼동시킬 때 시민사회의 건강한 정치성, 다수에 의한 지배라는 민주주의의 핵심적 본질은 주변으로 밀려나버리게 된다.

‘시장의 자유’로만 착각한 정부

시민의 정치적 자유보다 우선하는 시장의 자유를 자유민주주의라고 주장하는 세력이 만약 있다면 이들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크게 훼손하는 세력이므로 먼저 이들을 발본색원해야 한다. 검찰총장이 하고자 했던 말의 원래 의도는 그런 것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출처 : <경향신문>(2009.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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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대교의 아름다운 교훈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인천 시민들에게 인천대교 상판 연결은 특별한 감회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인천대교는 인천 앞바다를 가로질러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와 제2경인고속도로를 잇는 다리로, 대한민국의 관문인 인천국제공항과 송도국제도시를 연결할 예정이다.

인천대교는 왕복 6차로에 총길이 21.270k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다리이며, 800m에 이르는 주경간 폭은 세계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주탑의 높이는 국내 최고 높이인 63빌딩 보다 10m 낮은 230.5m이고, 선박이 주로 통항하게 될 교량과 수면의 높이는 74m에 달한다.

2009년 10월 개통을 목표로 마무리 작업 중인 인천대교는 동북아중심국가로 성장해나갈 대한민국과 인천시를 세계에 널리 알릴 상징물이다. 이 밖에도 인천대교는 지난 2005년 12월 영국의 건설 전문지 《컨스트럭션 뉴스》에 ‘경이로운 세계 10대 건설'의 하나로 선정될 만큼 뛰어난 기술력과 안전성을 확보하고 있다.

각 구간마다 다양한 교량 형식을 접목시켰고, 설계와 시공을 동시에 진행하는 방식을 도입해 공사기간을 대폭 단축시켰다. 진도7의 강진에도 버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초당 72m에 달하는 강풍에도 안전한 다리로 건설되고 있다. 또한 10만 톤급 선박과의 충돌에 대비하는 교량 안전실험을 비롯해 교량으로는 세계 최대 재하하중인 3만 톤을 견딜 수 있는 실험도 통과했다.

그러나 우리가 인천대교를 자랑스럽게 바라보는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인천대교에는 인천시 정부와 시민사회가 중앙정부를 상대로 함께 싸워 얻어낸 소중한 경험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4년 전인 지난 2004년 12월 12일 건교부와 해양부는 무려 8개월 여 동안 계속된, 당시 인천항 제2연륙교 주경간 폭 안전성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애초에 건교부는 주경간 폭을 700m로 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인천항을 이용하는 해운업체 모임인 인천항발전협의회와 인천항선주협회, 인천경실련, 새얼문화재단을 비롯한 시민단체들은 선박의 대형화 추세를 고려할 때, 인천대교의 주경간 폭이 1,000m는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반대했다. 교각 사이의 거리를 원 설계대로 700m로 할 경우 선박의 안전운항을 보장할 수 없으며 자칫 대형 사고를 초래할 수도 있으므로 최소 1,000m로 늘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미 건교부를 비롯한 중앙정부 담당부처 장관의 최종 승인까지 난 사안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중앙정부의 결정사항을 지방정부와 시민단체들이 나서서 뒤집는 것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고 했다. 그러나 인천의 시민들은 피케팅이나 단식투쟁을 하는 대신 자발적으로 성금을 거둬 외국의 연구소에 연구 용역을 의뢰하는 등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건교부안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새로운 대안운동을 추진했다.

실험 결과 주경간 폭이 700m였을 때, 두 대의 선박이 왕복 통항할 경우 충돌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나 중앙정부는 주경간 폭을 100m 더 넓히는 데 합의했다. 불과 4년 전의 일이지만 우리는 이 같은 인천시와 시민의 선택이 얼마나 올바른 것이었는지 최근 부산의 북항대교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다.

2011년 공사가 완료되면 부산항의 한복판인 남구 감만동에서 영도구 청학동을 잇는 길이 3.331㎞, 왕복 4∼6차로의 해상 교량으로 설계된 북항대교는 주경간 폭이 540m, 수면 위 교량의 최대높이가 60m로 설계되었다. 그러나 이 정도 규모로는 최근 주종을 이루는 1만TEU급 이상 초대형 컨테이너 선박은 물론 8천TEU급 선박의 통항도 어렵다는 것이 업계의 판단이다. 이를 두고 국내외 전문가들은 인천대교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탓에 부산항이 역점을 두고 추진 중인 대형 크루즈선의 통항 자체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아 지적하고 있다.

최근 인천시 정부는 배다리 관통도로문제를 비롯해 여러 방면에서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용기를 보이지 못해 시민사회의 외면을 당하고 있다. 인천시정부와 시민사회의 단합된 힘이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다는 인천대교의 아름다운 교훈을 잊지 말기 바란다.

<출처> : <인천일보>(2008.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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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보다 무서운 교육은 없다


나는 고등학교 때 데모를 했다. 대단한 운동권이었던 적도, 민주화시위를 열심히 하기는커녕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하기도 힘든데 나중에 들어보니 정보과 형사가 집까지 찾아와 학생이 요즘 공부는 열심히 하고 있는지 물어보고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후일담이긴 하지만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땐 등골이 오싹했다. 주민등록증에 빨간 두 줄이 그어지는 악몽까지 꿨으니 말이다.

나는 남들보다 특별할 것 없는 고교 시절을 보냈지만 그 중에서 유난히 기억에 남는 일은 국민윤리 시간에 선생님 얼굴을 벌겋게 달아오르게 해서 교무실까지 끌려간 일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단히 겁이 없었거나 눈치 없는 학생이었다. 국민윤리 수업 시간 중에 남북한의 통일 방안에 대해 공부했는데, 전두환 대통령이 북한에 제의한 민족화합민주통일방안보다 북한이 제시한 고려연방제가 통일 방안으로 좀더 적합해 보인다며 선생님께 되물어 봤기 때문이다.

배운지 오래되어 지금은 정확히 기억도 나지 않지만 민족화합민주통일방안은 인구 비례로 투표해서 단일국가를 이루자는 통일방식이고, 북한의 고려연방제는 남북한이 일단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여 느슨한 연방제 방식으로 갔다가 나중에 통일하자는 주장이라고 내 나름대로는 그렇게 생각했다. 국민윤리 시험을 잘 치르기 위해서 그렇게 단순화시켜 외웠었다. 선생님께 되물어 봤던 이유도 대단한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내 생각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단순히 그런 의도였을 뿐인데 선생님은 귓불까지 붉게 달아오르더니 버럭 성질을 냈다. 아마도 그 무렵 대학생들이 선량한 고등학생들까지 부추겨 이념투쟁의 도구로 삼는다는 신문 보도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선생님이 성질을 내자 아이들이 덩달아 선생님께 야유를 보냈고, 아이들의 눈치 없는 호응 덕분으로 나는 수업 중에 교무실까지 끌려 내려갔다. 교무실을 박차듯 들어간 선생님은 다른 선생님들도 들으라는 듯 ‘이 녀석이 고려연방제가 민족화합민주통일방안보다 낫다고 내 수업 중에 그렇게 말했다’고 소리를 질렀다. 다행히도 당시는 1988년이었고, 교무실에서는 올림픽 축구 중계가 한창이었다.

다른 선생님들은 축구 중계 중에 벌어진 불상사에 대해 별로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았고, 2학년 때 윤리과목을 담당했던 다른 선생님이 ‘쟤는 그런 애 아니에요.’라고 말해준 덕분에 그 일은 학창시절을 추억하는 나만의 해프닝으로 끝나버렸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학년별, 학급별로 나뉘어 음악실로 모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어두컴컴한 음악실의 불편한 의자에 줄줄이 앉자 잠시 후 불이 꺼지면서 동영상이 나왔다. 아마도 제목이 ‘삼민투(三民鬪)의 정체와 위험’이란 관제홍보물이었던 것 같은데, 영상이 끝나자 우리 학교 선생님이 아닌 외부강사가 나와서 ‘민족통일, 민중해방, 민주쟁취’라는 삼민투의 주장이 얼마나 위험한지 한참동안 매우 열띤 강의를 토해냈다.

고3인데 대학진학은 영 어려울 것 같았던 나와 몇몇 친구들은 부족한 수면 시간을 채우느라 고생하는 범생이 친구들과 달리 그 강연을 매우 진지하게 들었다. 그리고 우리들끼리는 삼민투의 이념이 꽤나 그럴 듯하고 심지어는 멋있기까지 하다고 여겼다. 마치 조선 시대 활빈당이 부활한 것 같은 기분까지 들었던 것을 보면 말이다. 그런데 그 강연을 졸지 않고 열심히 들었던 나 같은 아이들은 죄다 대학에 들어가지 못했고, 그 시간마저 아껴가며 졸았던 친구들은 모두 대학에 들어갔다.

나는 재수한답시고 순대국밥 집에서 소주만 축내던 시절, 고등학교 때 4.19는 의거고, 5.16은 혁명이며, 광주는 사태라고 달달 외우던 아이들, 내가 역사교과서보다 훨씬 더 재미있는 책이라며 권해주던 금서(禁書)들은 시험에 나오지 않는다며 거들떠도 보지 않던 친구들이 대학에 가자마자 모두 운동권이 되어 나타났다. 요즘 문제가 되는 좌편향 역사교과서 논쟁이나 이념강연 논란을 보고 있노라니 불현듯 그 시절이 생각났다. 뉴라이트들은 너무 일찍 연로해져서 기억이 안 나는 모양인데 이념교육이든 의식화학습이든 현실보다 무서운 교육은 없다.

출처 : <경향신문>(2008년 12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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