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엘리트(오늘의 사상신서 10) - C. 라이트 밀즈 (지은이) | 한길사(1991년)


먼저 다음의 문장을 읽어보자.

18세기에 들어와서 역사의 무대를 관찰하는 사람들은 근대사회를 사회구조의 정점에서 권력의 분화라는 뚜렷한 현상이 전개되고 있음을 주목하게 되었다. 즉, 문관이 권위를 독점, 군사적 강제력을 장악하고 있는 사람들을 통제할 수 있게 되었고 그 반면에 군인의 세력은 제한되었으며 정치적인 중립화를 유지해야 했고 따라서 그 세력이 점차 쇠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략>... 그러나 20세기에 이르러 공업화를 이룬 여러 국가에서는 문관 우위라는, 일견 위대하기는 하지만 불확실한 사실이 점차 근본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나폴레옹 시대로부터 1차 대전까지의 오랜 평화기간이 끝남과 동시에 세계 역사는 바야흐로 군부 중심시대로 다시 되돌아가기 시작하였다. 전 세계적으로 장군들이 다시금 종전처럼 활약하게 되었다. 전 세계의 현실적인 성격은 군부의 지도자들이 제출한 조건에 따라서 결정되고 있었다. 미국에서도 정치적인 진공 속으로 장성들이 진군해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회사 중역이나 정치가와 어깨를 나란히 한 장성들이 -- 미국의 엘리트 세계에서 가장 우대받지 못하였던 이들 장성들이 진출, 지극히 중대한 결과를 가져오는 결정을 내리기도 하고 혹은 그것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강대한 권력을 부여받기에 이르렀다. <243쪽>


위의 문장을 살펴보았을 때, 이 내용이 과연 현재의 미국 혹은 세계와 무관한 내용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책의 13장에 논의된
"대중사회" 부분을 읽어보기 위해 오랜만에 손 때 묻은 이 책을 꺼내서 읽다가 심심한데(물론 절대로 심심할 겨를이 없지만) 이 책에 대해 사람들이 써 논 글이나 읽어보자는 심산에서 클릭해봤더니 절판이란다. 이런 걸 문화적 아노미라고 해야 하나? 문화지체(cultural lag)라고 해야 하나? 사회과학 분야의 관심이 예전 같지 못한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한 시대를 풍미했던 C.W. 밀스의 책이 절판되었을 줄이라곤 상상도 못했다.


세상이 이토록 빠르게 변화하는 걸 애통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이 책의 가치 효용이 다한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 모를 지경이다. 사실 이 책
"파워엘리트"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의 상당수는 이제 그 효용이 다한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어 미국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작동하는 지배구조의 엘리트들이 누구라는 걸 오늘날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하지만 이 책이 처음 나온 1950년대 중반 "파워 엘리트"가 미국 사회에 던진 충격이 어떤 것이었을지 상상해보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잘 알려진 대로 C.W.밀스는 1950년대를 전후한 미국 사회의 파워엘리트들을 상류사회, 지방사회, 대도시 상류사회의 400대 가문과 유명인사들, 대부호, 기업의 최고 간부, 기업체 부호, 군부 지도자 등등의 범주로 나누어 이들을 세밀하게 연구하고 있다. 그 가운데 미국 사회의 구조가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지를 균형이론
(권력을 독점하지 못하도록 견제하고, 분점하도록 하여 균형을 맞춘다는 이론)과 파워엘리트, 대중사회의 틀로써 설명한다. 책의 말미에는 미국 사회의 보수적 분위기(1950년대 미국은 이미 보수적 분위기의 나라라고 스스로를 인식하고 있었다)에 대해 전하고 있는데, 럿셀 커크를 인용해 미국의 보수주의에 대해 이렇게 정의내리고 있다.


"1) 신의 의도가 사회를 지배한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인간은 스스로가 사회를 지배할 수 있는 어떤 위대한 힘을 자기의 이성만으로는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2) 보수주의자는 전통적 생활의 다양성과 신비성에 애착을 느끼고 있다."
이들은 "사회는 지도자를 찾고 있다"고 믿는다. 마치 유대 민족이 선지자를 통해 하느님이 예시해준 왕을 찾아내는 것처럼 말이다. 보수주의자(미국의)들은 사람들 사이에 자연적 우열이 있으며 거기에서 계급과 권력의 자연적 질서가 형성된다고 주장한다(이는 현재 미국이 드러내놓고 말하진 않지만 내재된 보수주의의 도덕률이다). 미국의 전통은 신성한 것이며, 전통을 통해서 신의 섭리의 참된 시화적 방향이 명시된다고 보았다. C.W.밀스의 "파워엘리트"가 왜 대단한 책인지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대목들이다. 미국 사회는 신의 섭리에 따른 전통에 의해 승인된(기름부음을 받은) 엘리트들에 의해 통치되는 균형잡힌 사회인 셈이고, 밀즈는 바로 미국의 그런 보수주의를 비판한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끝낸 미국은 세계 최대의 강대국이 되었으나 내외부적으로는 두 가지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외부적인 위협이란 것은 일찌기 패튼이 주장한 바대로 소련의 위협이었고, 내부적으로는 미국 사회가 이전과 다르게 크게 변모했다는 사실이었다. 전쟁이 유럽에 미국식 문화를 광범위하게 퍼뜨린 것과 마찬가지로 미국 역시 전쟁으로 인한 사회구조의 변화로 말미암아 커다란 변화를 경험한 것이다. 우선, 전쟁전에 비해 기업의 구조가 대규모화되었다. 이전의 중소기업들은 전쟁 기간 동안 소멸되거나 거대 기업에 합병되었고, 소규모
(물론 우리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농장들 역시 거대 기업 속에 포함되어 갔다.


전쟁은 참전한 남성 병사들을 대신해 노동 현장을 메꿔 준 여성과 청소년의 사회진출을 가속화시켰고, 전쟁 수행 능력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미국 동부와 서부의 도시들이 거대화되었다. 한 마디로 이야기해서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지속되었던 미국의 기존 문화 시스템이 대중사회화
(산업화와 도시화)되었다는 것이다. 미국 자신이 대중문화의 총본산 역할을 하면서 자신들 역시 대중문화에 대해 고민했다는 것이 되는데, "파워엘리트"의 C.W.밀스 역시 이런 당시의 분위기를 전하고 있다. J.S.밀과 A.토크빌의 자유주의적 견해의 연장선상에 서 있는 밀스의 견해는 물론, 대중사회에 대해 비판적이다.


C.W. 밀스는 공중(public)과 대중(mass)을 다음과 같이 구별하였다.
공중은 ① 의견을 받는 쪽과 거의 같은 정도로 많은 수의 의견을 보내 주는 쪽이 있고 ② 공중에 대해서 표명된 의견에 효과적으로 반응을 나타낼 기회를 보장하는 공적(公的) 커뮤니케이션이 존재하며 ③ 그와 같은 토론을 통해서 형성된 의견이 효과적인 행동으로서 실현되는 통로가 용이하게 발견되며 ④ 제도화(制度化)된 권위가 공중에게 침투되어 있지 않고 공중으로서의 행동에 자율성이 유지되어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대중에 있어서는 ① 다수의 사람들은 단순히 의견을 받는 쪽에 불과하다. ② 지배적인 커뮤니케이션은 개인이 신속하고도 효과적으로 반응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며 또는 불가능하게까지 만드는 조직에 놓여 있다. ③ 의견이나 행동으로의 실현은 여러 가지의 저항으로 인해 통제되고 있다. ④ 대중은 제도화된 권위로부터의 자율성을 전혀 지니고 있지 않고 있다. 밀스는 어떠한 양식의 커뮤니케이션이 지배적인가에 따라 공중과 대중을 구별하고, 대중사회에서 지배적인 커뮤니케이션의 형태는 제도화된 미디어이며, 대중은 주어진 매스미디어의 내용을 받아들이기만 하는 존재라 하였다. 그런데 매스미디어는 누가 장악하고 있는가?


밀스에 의하면 당시
(1950년대) 미국 사회의 엘리트들이 누리고 있는 지위는 도덕, 덕성과 상관없는 것이며 그들의 능력은 칭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과 결부되어 있지도 않다고 주장한다. 다만 그 지위를 누리고 있는 이들은 사회의 지배적인 권력 수단이나 부의 원천, 명성의 기구에 의해서 선발되고 형성된 사람들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공중(public - 요새 말로 하자면 '참여 민주주의')의 토론을 정책 결정자의 의사와 결부시켜 주고 있는 자발적 결사체의 다원적 존재에 의해서 견제를 받으면서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들도 아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인류사상 일찌기 찾아볼 수 없는 거대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령관이며 미국의 무책임한 제도의 조직 내부에서 성공을 차지한 인물들이다. (낡은 이야기라고 하기엔 지금 읽어봐도 너무나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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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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