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방을 생각하며

- 김수영

혁명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
그 방의 벽에는 싸우라 싸우라는 말이
헛소리처럼 아직도 어둠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나는 모든 노래를 그 방에 함께 남기고 왔을 게다
그렇듯 이제 나의 가슴은 이유없이 메말랐다
그 방의 벽은 나의 가슴이고 나의 사지일까
일하라 일하라 일하라는 말이
헛소리처럼 아직도 나의 가슴을 울리고 있지만
나는 그 노래도 그 전의 노래도 함께 다 잊어버리고 말았다

혁명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
나는 인제 녹슬은 펜과 뼈와 광기―
실망의 가벼움을 재산으로 삼을 줄 안다
이 가벼움 혹시나 역사일지도 모르는
이 가벼움을 나는 나의 재산으로 삼았다

혁명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었지만
나의 입 속에는 달콤한 의지의 잔재 대신에
다시 쓰디쓴 냄새만 되살아났지만

방을 잃고 낙서를 잃고 기대를 잃고
노래를 잃고 가벼움마저 잃어도

이제 나는 무엇인지 모르게 기쁘고
나의 가슴은 이유없이 풍성하다

(1960)

*

"혁명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라는 첫 구절의 유명세에 비하여 전문을 다 인용되는 경우는 드문 김수영의 시 "그 방을 생각하며"를 옮겨봤다. 역시 첫 구절이 주는 강렬함이 드세다. 그 방에는 "싸우라", "일하라"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죄다 헛소리 혹은 헛소리 같이 공허한 것들이다. 그리고 시인은 그 노래들 - 싸우라, 일하라 - 라는 구호들을 이전의 구호들처럼, 아니 이전의 노래들처럼 잊어버렸다.

그리고 다시 첫연의 구절을 두 번째 연에서 반복한다. 시인이 현재 소유하고 있는 것은 녹슨 펜, 앙상하게 남은 뼈, 그리고 표독한 광기, 그리고 가벼운 실망이다. 그런데 시인은 이를 "역사일지도 모르는"이라고 말한다. 이 순간 가장 중요한 말은 "역사란 무엇인가?"하는 정의이다. 역사를 묵직함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고, 개인적인 체험의 연속, 낙망의 연속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역사의 정의는 무수하나 역사란 기본적으로 흘러간 과거를 말한다. 그에게는 이번이 처음의 실망도, 낙망도 아니다. 그런 탓에 펜은 녹슬어 버렸다. 그것을 한탄만 하고 있다면 이 시는 그저 그런 재미없는 시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시인은 3연에 와서 1,2연에서 반복했던 구절을 교묘하게 비튼다. "혁명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었지만" 그의 입속에는 의지의 잔재 대신에 쓰디쓴 냄새만 되살아났다. 구취(口臭)! "bad breath" 그는 방, 낙서, 기대를 잃었고, 노래를 잃고, 가벼움도 잃었다. 그럼에도 시인은 무엇인지 모르게 기쁘고, 가슴은 이유없이 풍성하다. 이런 낙망한 순간이 있는가? 시인이 구체적으로 그것이 무엇인지 말해주지 않으니, 읽는 나도 그게 대관절 무슨 말인지 알아챌 수가 없다. 하기사 시를 쓴 본인 스스로도 모른다 하지 않던가?

이럴 때 제목은 이 시 전체를 암시해준다. 시 제목이 무엇이던가? "그 방을 생각하며"가 아닌가.
시인은 방, 낙서, 기대, 노래, 가벼움을 잃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현재의 일이 아니라 과거의 일이다. 그래서 시인은 제목도 "그 방을 생각하며"라고 지었다. 그는 혁명을 꿈꾸었으나 방만 잃었다, 방만 잃은 것이 아니라 그와 관계되는 온갖 허접한 것들을 잃었다. 그런데 그 방에서 나와 그 방을 생각해보니 이 모든 것이 허접이었다. 버림받은 것인지, 버려진 것인지 모르겠으나 시인의 가슴이 이유없이 풍성한 까닭은 그것이다.

시인은 이제부터 자유다. 까닭이 있는 것은 대항할 구체적인 대상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엇인지 모르고도 기쁠 수 있다는 것은 구체적인 대상이나 현상이 현재로서는 타개된 것을 의미한다. 이유없이 풍성하다는 것은 그를 옭죄던 현실의 무게로부터 그가 자유로와질 수 있다는 심리적 상태를 의미한다. 이 시가 1960년에 쓰였으므로 이 시에 대해 역사적 현실을 찾아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비록 혁명은 안 되었으나 그는 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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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위기는 바로 오래된 것은 죽어가고 있으나 새로운 것은 아직 탄생하지 못한 시기이다. - 안토니오 그람시

어떤 분이 제게 '망명과 유배'란 말은 결국 '강요된 여행'의 다른 말이 아니냐고 되물은 적이 있습니다. 일견 맞는 말이라 생각했습니다. 망명과 유배, 그리고 감옥살이는 거주지의 이동이 제한되어 있고 혹은 특정한 시공간에 사로잡힌다는 차원으로 보자면 여행이랄 수 없겠지만 우리가 여행을 단지 낯선 풍경에 대한 포획(capture)의 차원이 아니라 또 다른 시공간에 놓인 나, 즉 자아를 발견(detection)한다는 점에서 감옥은 유형을 거친 이들의 우울한 회고처럼 '거대한 학교'일 겁니다. 그들처럼 오랫동안 자신과의 대면을 강요받는 경우도 드물기 때문이겠죠.


저는 여행이란 무엇인가를 얻고,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 위한 것이기보다 이미 자신의 내면 속에 존재하는 것들을 확인하기 위한, 그래서 무언가를 얻기보다 무언가를 잃지 않기 위해 치열한 대결이 허락된 공간을 찾아 떠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들은 그런 까닭에 오랜 동안 외부와의 단절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스스로를 대면하고,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의 대결을 거치며 때로 심신을 단련하거나 황폐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런 여행이란 결국 스스로가 이미 내린 결론을 확정짓기 위한 포즈이자 연극이고, 그 결과에 대해 스스로에게 내리는 유형 처분이 아닐런지요.

'레닌'부터 일본 적군파의 '다미야 다까마로'에 이르기까지, 성공한 망명자로부터 실패한 망명자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무거운 발걸음은 때로 좌절하고 때로 성공하면서, 저를 매혹시키는 세계였습니다. 때로는 비록 실패했으나 고전적인 세계, 역사에서, 거대한 흐름에 저항하는 이런 완고한 이들도 있었음을 알려주는 자객들의 열전을 읽는 것과 비슷한 감흥으로 다가옵니다. 그들은 우리의 20세기가 미처 처분할 수 없었던 "신화의 시간"을 살아 낸 것이죠.

<바람구두연방의 문화망명지>를 처음 생각할 때 저는 '망명'이란 말을 도피와 회귀, 재기를 노리는 기지 역할을 생각했습니다. 그런 생각에는 80년대를 통과하면서 한때 변혁운동에 복무하는 것을 최대의 이상으로 생각했던 이들의 삶을 지켜본 뒤에 얻은 나름의 깨달음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이 싸움이 매우 길고 지난한 것이 될 것이라는 것이었겠지요. 1990년대 초반 우리 지식 사회에 갑자기 유행했던 안토니오 그람시 열풍도 어찌보면 변혁이 좌절된 순간의 절망적인 길 찾기 시도였을 것입니다.

"헤게모니론의 창시자, 불운의 곱사등이, 마르크스 이후 가장 천재적인 좌파 사상가"라고 불리는 안토니오 그람시는 루카치와 함께 서구 마르크스주의라는 독특한 지적·정치적 운동의 토대를 놓은 사람으로 평가됩니다. 그는 제2인터내셔널의 경제주의(경제결정론)적, 파국론적 마르크스주의 해석에 반기를 들었으며, 동시에 극좌주의자들과도 투쟁했습니다. 그는 '자본론에 반하는 혁명'으로의 카운터 헤게모니 구성을 통한 진지전을 모색했던 혁명가였습니다.

러시아 혁명이래 대부분의 서구 마르크스주의자들은 학문적인 혹은 강단 좌파로 들어갔음에도 그는 공장평의회운동에 동참하며 노동하는 민중의 힘에 신뢰를 보냈고, 한쪽으로는 준동하는 파시즘에 대항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모험적인 극좌파들과 투쟁하며 러시아와는 다른 환경 아래 놓여 있는 서구에서의 혁명전략을 궁구했습니다. 무솔리니가 지배하는 이탈리아 파시스트 법정에서 "20년동안 저 사람의 두뇌가 활동하지 못하도록"하는 것이라는 판결을 받았던 그는 결국 자유를 박탈당하고 옥중의 병마와 고독 속에서 『옥중수고』,『감옥에서 보낸 편지』라는 위대한 유산을 남겨놓은 채 사망하고 맙니다.

감옥에서 보낸 편지 - 안토니오 그람시

사랑하는 카를로,

………… 어머니께 도대체 뭐라고 말씀드린 거니? 네가 과장하지 않았기를 바란다. 오히려 너는 내가 전혀 낙담하거나 패배감을 느끼고 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어야 해. 설혹 내가 사형 선고를 받는다 해도 나는 내가 평온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형 전날 밤 나는 약간의 중국어를 공부하고 있을 지도 모르지! 너의 편지, 그리고 난나로 형에 대해 네가 쓴 것은 재미있었지만 혼란스럽기도 했다. 형과 너 모두 전쟁에 참여했었지. 특히 난나로 형은 예외적인 조건에서 전쟁을 치루었어. 지뢰 공병으로 땅속에서 오스트리아군 공병들과 겨우 얇은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있으면서 형은 적들이 자신을 산산조각내기 위해 지뢰를 폭발시키려는 걸 들을 수 있었단다. 내가 보기에는, 비슷한 상황에서 사람은 자기 자신의 도덕적 힘들의 근원이 자기 안에 있다 - 자기 자신의 활력과 의지, 목적과 수단의 긴밀한 결합 - 는 확신을 갖고 결코 좌절하지 말고, 결코 통속적이고 진부한 기분이나 비관주의와 낙관주의에 빠져들지 말아야 한다. 나 자신의 마음 상태는 이 두 가지 감정을 모두 종합하고 그것들을 넘어서고 있지. 나의 지성은 비관주의적이지만 나의 의지는 낙관주의적이란다. 어떤 상황이건 나는 모든 장애물들을 극복하는 데 내가 비축해 놓은 의지력을 이끌어내기 위해 최악의 경우를 염두에 두고 있단다. 나는 절대로 환상을 가지지 않기 때문에 실망하는 일도 없어. 나는 언제나 끝없는 인내심으로 무장되어 왔단다. 그건 수동적이고 활력없는 인내심이 아니라 끈기있는 노력과 결합된 참을성이야. 오늘날 극도로 심각한 도덕적 위기가 있지만, 과거에는 또 다른 보다 심각한 위기들이 있었어. 그리고 이번 것과 이전의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지 ……… 이것이 내가 다소 관대하고 네게 난나로 형과 함께 있으라고 간곡히 부탁하는 이유란다. 나는 내 눈으로 직접 형이 얼마나 강할 수 있는지를 보았다. 형이 어쩔 줄 몰라하고 완전히 용기를 잃게 되는 것은 오로지 형이 고립될 때란다. 아마 나는 다음 번에는 형에게 편지를 쓸 거다.

사랑하는 카를로, 너에게 완벽한 설교를 하는 동안, 나를 대신해 테레시나와, 그리고 당연히 파올로에게 딸 낳은 걸 축하해 달라고 말하는 걸 잊었구나. 그리고 크리스마스와 그 뒤의 다른 명절들에 대한 인사말을 전하고 싶구나.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고의 크리스마스를 보내려고 한다. 어머니께서 우리가 어릴 때 들려주시곤 했던 유명한 츄 씨와 조금은 비슷하게 말이다.

모두에게 나를 대신해 사랑의 포옹을 해다오. 특히 어머니에게.

1929년 12월 19일

투리에서 너의 안토니오


대부분의 사상가들도 그러하겠지만 '그람시의 사상은 이런 것이다'라고 한 마디로 단언할 수도 없으며, 그래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다만 그의 저작들이 유독 읽어내기도, 이해하기도 쉽지 않다는 점은 고백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의 대표적인 양대 저작으로 꼽히는 『옥중수고』,『감옥에서 보낸 편지』모두가 그야말로 파시즘의 폭압적인 감시 아래 감옥에서 쓰여진 특수한 상황의 산물들이기 때문입니다. 위의 편지  글 중에서 ……로 표시된 것들 역시 검열에 의해 삭제된 부분들입니다.

우리는 흔히 그의 '헤게모니론'과 '국가와 시민사회', 또는 '기동전과 진지전'이라는 단편적인 개념을 통해서만 그람시를 받아들이고 있는지 모르지만 저는 그의 인간적인 풍모에도 매료된 사람입니다. 물론 아직 공부가 부족한 탓에 그의 저작들을 모두 이해한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앞으로도 시간을 두고 공부해 나갈 생각입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문화망명지> 안에서 그에 대한 제 학습의 결과를 담아내도록 하겠습니다.

만약 지배계급이 합의를 상실하여,
즉 더 이상 '지도'하지 못하고 오로지 억압만을 행사함으로써 '지배'한다면,
이것은 틀림없이 위대한 대중들이 그들의 전통적인 이데올로기로부터 분리되고
과거에 믿었던 것들을 더 이상 믿지 않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위기는 바로 오래된 것은 죽어가고 있으나
새로운 것은 아직 탄생하지 못한 시기이다.
이러한 공백기에 대단히 다양한 병적 증상들이 나타난다.
                                               -『옥중수고』중에서


끝으로 이 글은 최근 제 고민의 지향점을 일부 노출시킨 글이라는 점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인류 역사상 좌파가 지금처럼 나약하고 지향점을 잃은 채 갈팡질팡한 적이 일찍이 없었다는 점과 맞물린 고민일 텐데. 베를린 장벽의 붕괴 이후 좌파는 세상을 향한 분석틀 자체가 붕괴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그람시의 "위기는 바로 오래된 것은 죽어가고 있으나 새로운 것은 아직 탄생하지 못한 시기이다. 이러한 공백기에 대단히 다양한 병적 증상들이 나타난다"고 했던 말은 참으로 유효 적절한 지적인 것 같습니다. 오늘날 유럽의 좌파들을 보고 있노라면 어떤 면에서는 진보적 좌파 - 반동적 우파라는 등식조차 성립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하는 양상조차 보입니다. 저는 그 '병적 증상들' 중 하나가 '이라크 전쟁'이라고 생각합니다. 좌파가 현실의 압도적인 힘에 떠밀려 시대 정신을 망각하고 있거나 시대 정신을 미처 형성하지 못하는 사이에 이루어지고 있는 파렴치한 전쟁 말입니다.

그러나 문득 고개를 들어 세상을 봅니다. 언제 한 번이라도 좌파가 세상의 메인스트림이었던 적이 있었는가? 역사의 영원한 패자로 기록됨으로써 다음 시대의 사람들에게 진정한 승자이자 성취해야할 소망으로 남았던 이들을 우리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것처럼 묵묵히 그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것이 그람시의 글을 읽으며 제가 가졌던 독후감이었습니다. 이 마음이 당신에게도 전해지기를 희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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