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모래바람에게 - 첫 번째
당신을 무어라 불러야 할지를 먼저 정하는 일로 이 편지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우선 당신을 나는 "하르마탄(harmattan)"이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사전적으로 정의된 것을 보면 이래요. "사하라 남부에서 주로 겨울철에 북동쪽이나 동쪽에서 불어오는 덥고 건조한 바람. 이 바람은 보통 많은 양의 먼지를 대서양 위의 수백km 밖까지 운반시킨다. 이 먼지는 종종 항공기의 비행과 배가 부두에 착륙하는 것을 방해한다. 하르마탄은 지방에 따라 ‘독터(doctor)'라고도 하는데, 이는 하마탄의 건조함이 여름철 습기를 몰아내기 때문이다. 하마탄은 기니 만의 북쪽 연안에 걸친 저기압 중심에 의해 강화된 무역풍이다. 여름에 이 바람은 해양으로부터 불어오는 남서계절풍의 더 찬바람에 의해 약900-1,800m까지 상승한다. 때로 하르마탄과 계절풍의 상호작용이 서아프리카의 토네이도를 형성하기도 한다."
모래바람이 하르마탄이니 지블리니 하며 이렇게 여러 이명(異名)을 지닌다는 건 아마도 그만큼 그 지역사람들의 삶에 밀접한(?) 존재란 반증이겠지요. 재미있는 일입니다. 만남이 잦지 않은 우리가 먼 이국의 바람을 빌어 호명하는 일. 저는 1988년부터 워드프로세서를 이용해서 일기를 써왔어요. 사실 컴퓨터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992년부터의 일이니 88년부터 4년간의 일기는 예전에 대학 다닐 때 컴퓨터를 구입한 기념으로 아니면 시간이 남아도는 것을 주체할 수 없어 과거의 일기를 펼쳐놓고 하나하나 정리한 것들입니다. 그러다가 결혼도 하고, 인터넷에 공간을 만들면서 매일같이 써대던 일기 대신에 인터넷에 글을 쓰고 있더군요. 어느 날인가는 계산을 해보니 하루에 200자 원고지로 300매도 넘는 글을 써대더군요. 집사람은 종종 제가 말이 없다고 하는데 알고 보면 저는 엄청난 다변가(多辯家)였던 셈이지요.
그나마 최근엔 인터넷보다는 다른 매체에 글 쓰는 일과 대학원 공부에 들어가는 공력이 필요하다보니 예전보다는 말수가 준 셈입니다. 어쨌거나 그렇게 해마다 쓰는 일기 첫 머리엔 나름의 에세이 같은 제법 긴 글을 쓰곤 했습니다. 하마탄이란 모래바람 이야기는 1997년의 일기 첫 머리에 썼던 글에서 나오는 말이네요. 일기마다 책을 만들듯이 제목을 달고 표제글을 쓴다니 책 만드는 직업병이 일기 쓰기에도 번져 나온 듯해서 조금 우습기도 합니다. 그 때 쓴 글의 앞머리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
-신을 거부한 사람들
“카피르 카라쉬”라는 말은 파키스탄語로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일명 “신을 거부한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통용되기도 하지만, 사헬벨트라고 불리는 반 사막지대에 사는 떠돌이 유목민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들 주위에는 언제나 하르마탄(harmattan)이라는 모래 폭풍이 맴돌고 있다.
나는 이 세상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우리는 사헬벨트 같은 곳에 서 있다. 세상은 사막이 되어간다. 난 그곳에 서서 살아가고 있고, 마른 관목더미가 하르마탄에 날려가듯이 나는 뿌리를 잃었고, 그렇게 살고 있다.
내일부터 다시 장마가 한반도 중부까지 거슬러 오를 거라고 하던데 우리는 한가롭게 사막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내 글이 과연 당신의 메마른 가슴에 습기를 전해줄 수 있을지요. 집사람과 저는 같은 대학을 나온 사이입니다. 동기동창인 거죠. 그런데 대학을 다닐 때만 해도 우리가 미래에 부부의 연을 맺게 되리라곤 상상도 해본 적 없을 만큼 밍숭밍숭한 사이였습니다. 그러다가 대학을 졸업하고 집사람이 서점에 나갔다가 우연치 않게 집어든 책 판권란에 출판사 편집부로 있던 제 이름을 보았고 반가운 마음에 연락을 취했던 것이 우리가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만난 인연의 시작이었습니다.
저는 그 무렵 7년을 사귀던 여인네와 헤어지고 감정의 폭주를 경험하고 있던 상태였습니다. 회색인이 지닌 회색의 정체도 알고보면 처음부터 회색은 아니었던 거지요. 그녀의 다소 뜬금없는 연락을 받고 저도 반가왔지만 별일이 없어도 약속은 최대한 뒤로 미뤄두고 보는 습성 때문에 "그래, 나중에 시간 되면 한 번 보자"는 식어빠진 약속을 건성으로 건넸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오빠는 그런 식으로 약속을 정하면 언제 보게 될지 모르니 오늘 확답을 하라"고 하더군요. 지금까지 이 에피소드를 선명하게 기억하는 까닭은 당시 그녀의 말이 제 나름으로는 놀라움으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누구에게나 열정적이고, 책임감 있으며 성실하게 보이지만 사실 나 자신을 책임지고 싶어 하지 않는 게으름 혹은 방기에 대해 꿰뚫어 보았다고 해야 할까요. 어쨌거나 그녀의 닥달 아닌 닥달 때문에 한 달쯤 뒤로 약속을 정했고 그녀를 만났고 구원(모든 남자가 구원이라 말할지도 모르지만 저에겐 확실한 구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녀가 제 진짜 정체를 눈치 채기 전까지는 말이지요)받았습니다.
당신도 이미 알고 있는 일이겠지만 얼마 전부터 독서모임을 시작했습니다. 아마 이것도 오래된 버릇 혹은 내 삶의 그릇된 태도라는 사실을 인정해야겠습니다. 후배들 가운데 가끔 어떻게 공부하면 좋겠는가를 물어오는 이들이 있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공부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거 해본 사람들은 아마 쉽게 공감하는 이야기리라 생각합니다. 그네들이 보기에 저는 그 두 가지를 잘 병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 봅니다. 저는 그런 충고를 원하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공부를 "일로 하라!"고. 이 때 일이란 나름대로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공부가 현장을 떠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일이 주는 하중과 의무감을 공부에도 적용하라는 말입니다.
저는 아직까지도 미완성인 상태로 있는 인생의 십계명이 있습니다. 언젠가 10가지를 다 채우리라 마음먹고 있는데 현재까지 5개 정도밖에 만들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교훈을 얻으면 새롭게 나머지를 채워가겠지요. 그 중 하나는 이런 겁니다. "미리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고 시작하는 일은 반드시 실패한다." 나쁜 버릇이란 사실을 인정하는데 저는 늘 스스로를 막다른 골목으로 밀어 넣는 버릇이 있습니다. 최후의 최후까지 궁지에 몰린 뒤에야 비로소 한 인간은 최선을 다하더라는 믿음 아닌 믿음 같은 겁니다. 아마 이건 제 어린 시절의 척박함이 준 교훈일 겁니다. 누구보다 '실패'란 말을 내심 두려워하는 사람이 아마 저일 겁니다. 실패할 것이 두려워서 늘 안전한 길만 찾아들다보니 평생 꼭 하고 싶은 일을 아직까지 시작해보지 못했습니다. 일탈의 경험이 없거나 적은 사람도 아닌데 생사일대사(生死一大事)의 인연(因緣)을 걸고 해야만 하는 일이란 어느 대가의 말이 두렵고, 그것이 진정 옳은 말이란 믿음에 발목 잡혀 있습니다.
어쩌면 나의 책읽기는 그 인연을 애써 외면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나만의 탈출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글조차 쓸 수 없을 때 나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이제 휴가도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집사람은 하루라도 어디 다녀오라고 하며 등을 떠미는데 서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질 못하겠네요.
2006. 7. 26. 잠들지 못하는 새벽에
바람구두가...
* 추신 : 참 늦고, 게으른 답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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