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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SY/한국시

천상병 - 내가 좋아하는 여자

내가 좋아하는 여자


- 천상병


내가 좋아하는 여자의 으뜸은
물론이지만
아내이외일 수는 없습니다.

오십 둘이나 된 아내와
육십살 먹은 남편이니
거의 무능력자이지만

그래도 말입니다.
이 시 쓰는 시간은
89년 5월 4일
오후 다섯시 무렵이지만요.

이, 삼일 전날 밤에는
뭉클 뭉클
어떻게 요동을 치는지

옆방의 아내를
고함 지르며 불렀으나,
한참 불러도

아내는 쿨쿨 잠자는 모양으로
장모님의 "시끄럽다, 잠 좀 자자"라는
말씀 때문에
금시 또 미꾸라지가 되는 걸
필자는 어쩌지 못했어요.


*


천상 시인, 천상 병자, 천상 병신....

궁상맞기로 둘째 가라면 설운 시인. 천상병의 이름 석자 중에서 '천상'을 따서 사람들은 그를 그렇게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천상병을 연상하면서 이 병신 같은 독자(혹은 '~들은')는 무슨 생각을 연달아 떠올리냐 하면 인사동의 옹색한 찻집 '귀천'과 그 집에서 내오는 모과차 향기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시인의 궁상맞은 표정과 하루 용돈 2천원으로 막걸리 한 병과 담배 한 갑이면 하루가 평안했던 시인이라고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1930년 1월 29일 일본에서 천석꾼 출신 아버지의 2난 2녀 중 둘째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몸이 약해서 어른들의 걱정을 샀다. 그는 4살 때부터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창원에서 살아가 일본으로 건너갔고, 해방 뒤 마산으로 돌아와 마산중학교에 입학했다. 그는 우리 말이 서툴긴 했지만 고국에 돌아온 뒤에는 내내 책 속에 묻혀 살았고, 중학교 5학년 때인 1952년 시인 유치환의 추천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이 무렵의 그를 기억하는 이들은 천상병에 대해 비상한 기억력과 해박한 지식을 말한다.

그는 이미 문인으로 등단했기 때문에 또다시 문과로 진학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여 대학의 학과를 정할 때 종이쪽지를 날려 가장 멀리 날아간 쪽을 정해 진학하였다고 사람들은 전한다. 그래서 결정된 곳이 서울대 상대였다. 그러나 대학에서 그가 상과 공부를 열심히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학과 친구들보다는 문인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냈고, 동인지를 발간하고, 평론가로서도 활동했다. 그리고 대학 2학년 때 '갈매기'를 통해 추천을 완료한다.(당시 추천제도는 1회가 아니라도 몇 차례에 걸친 추천 절차를 밟아야 했다.)

공부는 별로 열심히 한 적 없지만 학과성적은 우수했고, 서울대 상대 출신이라는 간판만 놓고 보자면 그의 삶이 곤궁해질 이유는 별로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시인은 그런 세속적인 성공에는 관심조차 갖지 않았다. 그리고 사람들이 생각하듯 그의 삶이 가난했음에도 비루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 그는 이사람 저사람에게 눈칫밥을 먹으며 술판을 전전하거나 친구들에게 세금을 걷는 괴짜이긴 했으나 자신이 생각하기에 정말 비루한 사람들과는 절대로 동석하지 않는 철저함이 있었다. 그에게서는 마치 퇴락한 선비의 기개같은 것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그의 정신과 몸을 갉아먹는 사건이 있었다.
1967년 7월, 천상병은 '동백림 간첩단' 사건의 연루자로 지목되어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겪게 된다. 비록 집행유예로 6개월만에 풀려나긴 했지만 이때 받은 전기고문은 평생을 두고 그를 괴롭히는 후유증을 남긴다. 그는 뒤에 이런 시를 남겼다.

내 살과 뼈는 알고 있다.
진실과 고통
그 어느 쪽이 강자인가를...

내 마음 하늘
한편 가에서 새는 소스라치게 날개 편다.

                                      - <그 날은> 중에서

천상병 시인은 이 사건 이후 더 많은 술을 필요로 했고, 늘 불안헤 했다. 그런 어느날인 1971년 그는 고문후유증과 음주, 영양실조로 쓰러졌는데 행려병자로 몰려 서울시립정신병원에 수용되었다. 병명은 '알콜에 의한 정신 황폐증'. 이 때 그를 찾지 못한 친구와 친지들이 그가 사망했을 것이라고 즈레 짐작하여 유고시집 '새'를 내 놓은 것은 유명한 사건이었다. 살아있는 사람의 유고시집이 발간된 것이다. 이런 일을 경험한 뒤인 1972년 천상병 시인은 목순옥 여사를 반려자로 맞이한다.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목순옥 여사는 시인의 시 제목을 딴 '귀천'이란 찻집을 열었고, 천상병은 하루에 한 번씩 귀천에 나와 아내에게 하루 2천원의 용돈을 타서 생활했다.

천상병 시인의 가까운 지인이었던 소설가 천승세는 “상병이가 광인이라고? 그놈이 괴물이라고? 기벽과 방탕으로 일관했다고? 천만에! 천상병은 가난했을 망정 천재였고 평화주의자요 낙천주의자였다고…." 라고 말한다.

이 시 "내가 좋아하는 여자"에는 그런 천상병 시인의 결혼 뒤 생활이 녹아들어 있다. 그는 이 시를 쓰는 건 "89년 5월 4일 오후 다섯시 무렵" 이지만 그로부터 "삼일 전날 밤" 갑자기 성욕이 발동했나 보다. 요럴 땐 '자지'라고 쓰는 것이 격에 보다 맞을 텐데... 하여간에 요놈의 '자지'가 "뭉클 뭉클/ 어떻게 요동을 치는지" 시인은 옆방의 아내를 소리쳐 불러 보지만 낮동안 찻집 귀천에서 찻손님들 시중을 드느라 피곤했던 아내는 '쿨쿨' 잠이 들었고, 장모님만 "시끄럽다, 잠 좀 자자" 라고 외친다.

그래 시인의 자지는 금시 또 "미꾸라지"처럼 시들고 말았다는 것이 이 시의 전체적인 내용이다. 시인의 성욕에 대해 논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천상병 시인의 이 시는 우리가 흔히 일상에서 말과 생각이 다른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성욕이나 섹스에 대해 뒤틀린 담론이나 거짓으로 솔직한 양 범벅이 되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솔직담담하게 말한다. 이 시의 진정한 묘미는 거기에서 발생한다. 시라는 것이 무언가 거창한 것을 말할 때 힘을 받는 것이 아니다.

전에 리영희 선생의 <역정>이란 책을 읽으며 내가 감동받았던 구절 중 하나를 다시 인용해보자면 ... 남들에 비하면 늦은 결혼을 한 그는 몇년이 지난 뒤 현재의 경희대학 자리, 이문동 소나무 동산 밑 두 칸짜리 피난민집 바깥채를 얻어 부모님을 부산 피난살이에서 모셔와 함께 살게 되었는데... 신혼이나 다름없는 힘 좋은 리영희 선생은...


두 칸 사이 벽에는 아래 윗 방을 통하는 창호지 문이 있어, 음향학적으로는 사실상 방 한 칸이나 다름없었다. 나이 스물 아홉인 나에게는 아내와의 밤자리가 몹시 불편하고 불안스러울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저녁이면 가끔 아내를 꼬여 인기척 뜸한 동산쪽으로 가려 했지만, 그는 그때마다 "싫어요, 망칙하게"의 한 마디로 거절했다. 나는 그럴 때의 아내가 밉살스러웠다.


요새식으로 치자면 야외에 나가 섹스를 하자는 제의를 아내에게 했는데, 아내가 "망칙하게"란 한 마디로 단호하게 거절하자 그럴 때의 아내가 밉살스러웠다는 것이다. 우리네 마음 속에는 있지만, 우리네 바지 속, 치마 속에는 있지만 실제 현실이나 일상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양 행동하는 것들을 이네들은 겉으로 끄집어낸다. 그런데 그것이 추하게 여겨지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 왜? 우리는 밥을 먹듯이 섹스를 하고 있다. 그걸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지지난주던가? 친구의 이삿짐을 날라주기 위해 갔다가 만난 어떤 이는 "밥상머리에서도 하고 싶다"는 말을 아내에게 했다가 "우리가 짐승이냐?"는 면박을 들었다고 하던데 ... 그 이야기를 듣고 모두가 파안대소를 한 일이 있다. 흐흐, 우리가 짐승이 아니면 뭐냐?

이렇게 글을 쓴다고 해서 각자가 숨겨야 마땅한 성을 여고 앞의 바바리 맨처럼 들춰내자는 의도로 말하는 것은 아니다. 얼마전 부부 스와핑 문제로 시끄러울 때 나는 내 안에서의 모순을 보았다. 부부의 합의 아래 이뤄지는 소위 '교환섹스'란 것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므로 그네들 부부 사이에서 충돌없이 가능하다면 그것을 사회적 감시로 처벌하는 것은 불가하다는 나의 자유주의적 신조와 남들은 피곤에 지쳐 제 마누라 궁둥이 한 번 두들겨주는데도 힘에 겨운 현실 사이에서 발생하는 괴리감 혹은 일성적인 쾌락에 지친 나머지 자극적인 쾌락을 끝간데 없이 추구해야 견뎌낼 수 있는 그네들 삶이 풍기는 역겨움 때문이었다.

건강한 성의 문제에 대해 나는 이렇다 할 결론에 도달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그럼에도 고은의 시 <순간의 꽃> 중에서 "김옥자의 유방이 제일 크다"와 같은 그런 구절이 주는 쾌감까지 거부하는 사람들은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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