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不惑), 혹은 부록(附錄)
- 강윤후
마흔 살을 불혹이라던가
내게는 그 불혹이 자꾸
부록으로 들린다 어쩌면 나는
마흔 살 너머로 이어진 세월을
본책에 덧붙는 부록 정도로
여기는지 모른다
삶의 목차는 이미 끝났는데
부록처럼 남은 세월이 있어
덤으로 사는 기분이다
봄이 온다
권말부록이든 별책부록이든
목련꽃 근처에서 괜히
머뭇대는 바람처럼
마음이 혹할 일 좀
있어야겠다
*
내가 기거하는 하루 중 절반 이상의 시간을 보내는 사무실은 바람의 길 옆이라 담배라도 한 대 태우기 위해 그 길 옆에 서면 하루종일 바람소리가 '휘이휘이~'하며 불어댄다. 하늘, 바람, 구름, 돌, 꽃, 나무, 숲, 달, 강, 호수, 바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자연의 이름들이지만 이중 내가 유독 좋아하는 것은 '바람'. 잡히지 않고, 보이지 않는 대기의 흐름이 자아내는 오묘한 기운의 흔적이 바람이다. 내 나이 올해로 마흔, 내년이면 조선 나이로 환산해도 마흔, 시인이 말하는 바대로 나는 불혹(不惑)의 나이,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불혹이다.
그러나 살갗에 닿는 저 바람은 언제나 나를 길 위로 끌어들이고, 그 길 위의 바람소리는 내 삶의 거죽을 세차게 잡아 당긴다. 삶이여, 삶이여, 나를 더 많이 흔들어다오. 흔들리며 흔들리며 나는 살아있음을 느낀다. 불혹의 나이, 비록 부록처럼 남겨진 삶을 산다해도 나는 여전히 저 바람소리에 현혹당할 것만 같다. 불혹 혹은 부록의 삶을 산다해도 그것은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뿌리 내린 갈대처럼 이리저리 흔들리면서도 내 자리를 지키는 일이다. 유혹도 없이 산다는 거, 나는 하나도 반갑지 않다. 그러므로 바람이 날 유혹하는 한 언제까지나 내 삶은 언제까지나 흔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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